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 위기의 지구를 위한 특별한 과학 수업
가치를꿈꾸는과학교사모임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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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가치를꿈꾸는과학교사모임 지음. 우리학교. 2020.
_위기의 지구를 위한 특별한 과학 수업

우리의 지구를 이야기할 때, 과학이 꼭 필요한 것이 맞다. 과학이 제일 전면에 나서야 하고 또, 과학으로 접근해야하는 것이 모두 맞다. 물론 거기에 법이 함께 한다면 더 좋기는 하겠지만. 과학으로 접근했을 때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과학이 우리 삶에 매우 밀접한 것을 잘 안다. 다만, 그런 과학을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일 뿐. 누가 조목조목 이야기해준다면 충분히 '위기의 지구'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꼭 방법이 아니어도 최소한의 자각이라도 할 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 지금의 지구는 위기야, 문제가 심각해, 그러니 해결해야해, 라는 인식을 누구나 갖고 있다. 다만 정말 어느 지점에서 어떤 문제가 나타나는지, 그래서 그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무엇을 알고 생각해야하는지, 일반적으로 쉽게 알고 있기는 어렵다. 이때, 이 책을 후루룩 읽으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감히 과학을 모두 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결국 이런 과학적 원리와 관계를 속에서 인간이 이제 지구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이런 얘기를 이렇게 쉽게 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주제로 하나씩 차근히 설명해주는 건, 역사 교사분들이어서 가능한 일. 어떻게 풀어 설명해주면 이해가 더 잘 될 수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을 가만히 따라가기만해도 자연스레 지금의 지구에 대해 최소한 알아야 하는 것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벽 또는 초저녁 금성의 반짝임은 오랫동안 인류에게 보내온, 되먹임과 급변점과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였던 것이다.(30쪽)

인간들은, 바로 인류는 이 경고를 내내 무시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바이러스가 특별히 인간을 표적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인간을 좋아해서도 아니다.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이 존재하고, 그 인간들이 이미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54쪽)

결국, 인간들 탓이란 뜻이다. 인간이 많은 수로 이 지구를 형편없이 망가뜨리고 있는 중인 것이다.

바꿔 말하면 가장 저렴하게 고기를 많이 먹기 위해서다. 대량 소비를 위한 대량 생산이다. 이렇게 고기를 생산하는 것이 바로 공장식 축산이다.(71쪽)

고기 안 먹고 못 사나. 고기를 먹겠다고 그 많은 동물들을 키워내고 또 죽이는 것이 맞는지.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인간 본인들을 괴롭히는 중인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몸속에 우주를 품고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위대한 방식으로 진화해 마침내 우주로 나가는 길 위에 서 있다 할지라도, 우주 속에서 인류는 먼지보다 작은 행성에 사는 지극히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177쪽)

이렇게 하찮은 존재들이 더 거대하고 광활한 지구, 우주를 뒤흔들며 망가뜨리고 있는 이 상황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어쩌자고 인간은 이 모든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며, 스스로 무엇이 잘못인 줄도 모르는 어리석음을 갖고 있는지, 그저 한탄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뭐라도 해야하는 것이다. 이 책을 함께 읽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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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 대 호랑전 - 명절맞이 부침개 대결
정현진 지음 / 창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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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 대 호랑전. 정현진 그림책. 창비. 2025.

이제 곧 추석이다. 한가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는 말이 있듯이, 1년 중 가장 풍성하고 넉넉한 시기가 추석이다. 가을이란 무릇, 곡식도 과일도 고루 추수하여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는 때이니 말이다. 그래서 다른 명절보다도 더 행복하고 기분 좋아지는 명절이 추석이지 않을까. 그런 추석, 그것도 긴 연휴가 금방 온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그런 연휴에 꼭 알맞은 <토끼전 대 호랑전>이다. 우리가 '~전'이라고 제목이 붙을 때는 '이야기, 전기, 전승된 이야기' 등을 뜻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도 토끼의 이야기, 호랑이의 이야기라고 읽을 수 있겠지만, 반전이다! 이때의 '~전'은 '생선이나 고기, 채소 따위를 얇게 썰거나 다져 양념을 한 뒤, 밀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진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바로 그 '전'이다! 표지 그림에서와 같이 토끼와 호랑이가 각각 뒤집개를 손에 쥐고 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로를 보고 있고 이 둘 뒤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니, 이들이 서로를 라이벌이라 여기고 대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 책 제목 위에는 '명절맞이' '부침개 대결'이란 말이 보인다. 아하! 그리고 책 아랫쪽으로 버젓이 다양한 종류의 전이 한가득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다. 이쯤이면 눈치만으로도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내내, 전 대감 댁 업둥이가 토끼전과 호랑전 중 어느 쪽을 승자로 결정할 지에 대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가며 읽었다. 둘의 실력도 맛도 비슷할 것 같고, 토끼와 호랑이 중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그 뒷이야기도 예사롭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승자로 해도 이상할 것 없지만, 승자가 되지 않은 쪽을 또 어떻게 이해시키고 달래줄 것인가가 고민이 되는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며 혼자 어떡해 해야하지, 만약 내가 업둥이었다면 난 어떤 결정을 내려야하는 걸까, 고민에 고민을 하며 책을 따라 읽어나갔다. 한편으로는 나에게 판결을 내리라고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육감 중에 빠진 하나는 화합!
명절 음식의 미덕은 함께 만들고 나누는 것이지."

그러니까 말이다. 나도 토끼, 호랑이와 함께 넙죽 절을 할 뻔했다. 반성의 의미로 말이다. 그저 승자를 가려야한다는 생각만을 갖고 이 이야기를 읽어나갔으니, 진짜 명절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지 못하고 그저 둘 중 하나의 결과만을 궁금해 한 짧은 생각을 반성했다. 그리고나서 생각해보니, 진짜 그랬다. 시합, 경기, 대결 등 누군가와 중 누가 더 우위를 차지할 것인가를 다툴 때 왜 다투어야 하는지, 승패를 분명히 나누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만약 업둥이가 이 대결의 승자를 결정했다면 그 결정은 업둥이 개인의 생각일 수도 있는데 그 한 사람의 결정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데에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껏 아무렇지 않게 갖고 있던 생각의 흐름을 한순간 뚝! 잘라내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허를 찔렸다고나 할까.

이런 게 우리 옛 이야기의 묘미이지 않나 생각했다. 분명 이 그림책은 판소리의 느낌을 듬뿍 살린 이야기였다. 판소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풍자와 해학. 특히 이 이야기에는 동물을 통한 우화의 기법도 가미되어 있으니, 인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쓴소리가 제대로 들어가 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인간들, 서로 물고 뜯고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 있는 모습 반성하고, 서로 사이좋게 함께, 나누며 넉넉해지는 마음을 가지며 살라고, 교훈을 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앞으로 명절 때마다 전을 부칠 때면 토선생과 호선생, 그리고 업둥이, 아니 찬슬이가 생각날 것 같다. 그들이 마당 가득 펼쳐놓고 부치는 부침개, 전을 맛보러 찾아가, 나도 실력발휘 제대로 해가며 함께 어우러져 실컷 전을 부치고 와도 좋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의 추석이 오고 있다. 이번 추석, 집에 기름 냄새 한번 풍겨봐야겠다. 역시, 명절은 전이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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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광선 꿈꾸는돌 43
강석희 지음 / 돌베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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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광선 #강석희 #돌베개 #서평단 #서평 #책추천


녹색 광선. 강석희 장편소설. 돌베개. 2025.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를 먼저 읽었다. 그래서 이 소설의 내용이 익숙했다. 이모와 연주의 산책은 앞선 소설책을 읽을 때도 인상적이었다. 뭔가 서로를 무뚝뚝하게 대하는 듯, 혹은 대면대면하는 듯하면서도 강하게 서로를 향하는 그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들이 서로에게 갖고 있던 마음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돌봄'이었다.


장편 <녹색 광선>을 쓰며 해결해야 했던 첫 번째 질문은 그들이 왜 '서로를 돌볼 수 없는가?'였고, 다음 질문은 '그렇다면 이들은 누가 돌보아야 하는가?'였으며, 마지막 질문은 '돌봄에서 희생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이야기는 그 질문에 대한 서툰 대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176쪽_'작가의 말' 중)


'돌봄'.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한동안 고민했었다. 지금껏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던 돌봄에 대한 사회의 무책임과 떠넘김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생각만이 아니라 그게 대한 답을 내려야 하는데 말이다. 소설가는 답으로 이 소설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내놓으면 좋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연주가 갖고 있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상실이란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있다. 솜이. 이걸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음을 주고 사랑으로 품었던 대상과 관련한 트라우마가 그 이후 어떤 것도 삼킬 수 없는 지경이 된다는 것의 기분이 무엇일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돌봄의 과정으로 본다면, 연주는 솜이를 돌보지만 외할아버지는 이모를 돌보기 위해 그 돌봄의 대상인 솜이를 돌봄의 대상으로 두지 않는다. 결국 그 상처가 연주를 또 다른 돌봄의 대상으로 만들고, 다시 이모가 연주를 돌본다. 어쩌면 연주가 이모를 돌보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 어찌보면 이모가 다른 가족들의 돌봄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고 보여지지만, 실제로는 그런 이모 덕분에 이 가족이 살았을 수도 있다. 특히 연주에게 있어서 이모가 갖는 존재의 의미는 연주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 이모와 연주가 서로의 돌봄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 되는 관계. 다시 연주를 먹게 하고 또 살찌우게 만들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존재였을 수도 있다.


네 개의 손이 창백해진 내 손을 꽉 잡았다. 무척 따뜻했다. 다해와 정연의 손. 그 아이들은 부드럽게 힘을 주어 내 손이 주먹을 쥐도록 했다. 애들의 손이 떠나고 주먹 쥔 손을 펴 보니 묵묵이 있었다. 묵묵은 체온으로 데워져 따뜻했다. 아, 내가 돌볼 차례였구나.(159-160쪽)


다행인 건, 혜영이 있었고 다해와 정연이 있었고, 이들이 갖고 있는 따뜻함의 감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여준 행동과 마음이 곧 '돌봄'이지 않을까.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따뜻함, 그 따뜻함의 돌봄을 사실 연주는 내내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주가 자꾸만 '생활 트래핑' 모임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 아닐지. '친구'라는 말에도 감정이 누그러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지. 이미 연주는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그 이전부터, 그 따뜻함에 끌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이제 직접 다른 이에게 전해줄 차례가 된 것이다.


누가 '돌봄'을 책임질 것인가에 대해서만 날을 세우고 지켜봤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돌봄'이란 것이 어떤 차원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그 본질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경제적인 문제나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수준으로의 '돌봄'만이 아닌, 그 안에 담겨 있는 마음을 되짚어봐야 할 것 같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로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인가가 어쩌면 훨씬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즉,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뜻. 


연주는 밤이와 함께, 그리고 혜영 다해 정연과 함께, 또 이모 엄마와 함께, 이제 진짜 본격적인 '돌봄'의 세계로 들어갔다. 이제, 연주의 '돌봄'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잘 지켜보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참 다행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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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암 수술까지 남은 시간 - 병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진짜 암 극복 매뉴얼
오유경 지음 / 라라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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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암수술까지남은시간 #오유경 #라라 #유방암 #암 #서평단 #서평 #책추천

30일, 암 수술까지 남은 시간. 오유경 지음. 라라. 2025.
_병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진짜 암 극복 매뉴얼

암. 한 글자짜리 별 거 아닌 것 같은 아주 짧은 단어가 갖는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어느 누구든 막상 이 단어가 자신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한순간에 이 글짜 앞에 무릎을 꿇게 되지 않을까. 그만큼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드는, 지금까지의 삶을 하루아침에 뒤바꿔놓는 단어가 될 것이다. 암이란 그런 병인 것이다.
아니, 그런 병일 것이다. 암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기는 어렵다. 막상 내 앞에 닥친 이야기는 아니니까. 하지만 만약 나에게 일어난 일일 거라고 생각해본다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 같다. 암을 알기 전과 후, 암을 내 인생에 들이기 이전과는 다른 삶을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은 현실이 될 것 같다.

암 진단을 받기 몇 시간 전만 해도 나는 자신감 넘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까짓 진단으로 정체성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성격, 외모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나다. 차가운 비를 맞고 감기에 걸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듯이 암도 그렇다. 암은 사람, 성별, 직업, 직책을 가리지 않는다.(17쪽)

무언가 잘못의 결과로, 부주의한 삶의 대가로 닥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혹여라도 자신이 자신의 몸 관리를 소홀히 해서 얻게 된 병은 아닐 것이다. 또한 어느 누구도 자신이 암에 걸릴 것을 예상하고 있던 사람은 없을 것이고, 또한 암 앞에 무방비상태로 놓이게 될 것을 미리 조심하고 준비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말 그래도, 누구에게나 닦칠 수 있는 일이고 또한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는, 저자의 말처럼 '사람, 성별, 직업, 직책을 가리지 않는' 것이 암이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이 꼭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대충 넘길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 책이 꼭 암 환자 혹은 암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하는 사람만이 봐야하는 책은 아니라는 생각. 오히려 자신을 돌보고 또한 자신이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오고 있는 중인지, 과연 나는 지금의 나 자신에게 얼마나 충실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중인지를 생각해보고 되는 것이다. 나도 저자와 같이 여자이고, 아내이고, 엄마이며, 나의 직업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20년 이상 해 오고 있다. 내가 해왔던 모든 순간이 모두 올바르고 영리했던 것은 아니지만, 부족하고 어리석었던 일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나 자신을 잃고 살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이 사회에서 여전히 여자, 엄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이들 학원은 어떻게 할꺼냐, 그것만 해결해 놓고 가라"는 남편과 "애들은 어쩌고 혼자 병원에 들어가냐. 어린 애들을 생각해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엄마, 뭐라고요? 아이들 건사하겠다고 내 삶을 포기하라고요?' 속으로 소리쳤다. 암 수술 후 32회의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있는 내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걸까. 힘든 순간에 '너만 생각해!'라고 말해줄 사람이 오직 나밖에 없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69쪽)

진짜 엄마가, 남편이 이런 말을 한다고? 이 대목에서 내 눈을 의심했다. 다시 살폈고 진짜 글에서 읽히는대로의 의미였을까 확인하게 됐다. 남편이, 그것도 엄마가, 자신의 자식이 암으로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 모든 것을 다 뒤로하고 아이들 돌보는 것을 우선으로 하라고 했다는 것인가. 아,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그런데 그 영상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무표정한 얼굴로 배경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진심으로 후회되기 시작했다.(69쪽)

그렇게 살아온 시간은, 비단 저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시대의 엄마라는 이름은 이와 비슷한 삶을 알게모르게 강요당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삶이 당연하다는 듯한 사회적 시선 속에서 자신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마땅한 듯 의식없이 자신의 많은 삶을 자식의 삶을 위해 내놓았을 것이다. 그러니 제 자식의 고통보다도 그 자식의 자식을 돌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겠지, 싶었다. 무척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나는 그저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내 자신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내가 집에서 가장 사랑했던 공간은 화장실이었다. 두 평 남짓한 그곳에서 혼자 앉아 긴 숨을 쉬었다. 문을 열고 나가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집안일과 내가 챙겨야하는 모든 것들, 아이들을 위해 해야하는 많은 것들에 몸을 바쳐 헌실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걸 감당하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눈치챈 나의 뇌는 자꾸 화장실에라도 숨으라고 속삭였다.(156쪽)

결국,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 돌봐주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나 자신을 돌보려 애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온전한 한 사람의 삶으로 들여다보고 보호해줘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정말 저자의 말대로,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를 해주는 책이었다. 보험 얘기에서부터 수술 이후 운동하는 이야기까지. 어떤 영상소가 필요하고 또 남들이 얘기해주지 않는 어느 부분까지를 신경써야하는지를 세세하게 잘 말해주는 책이었다. 누군가를 붙잡고 물어보려해도 뭘 물어봐야할지 알지 못할 때, 이 책을 가만히 읽다보면 자연스레 몸과 마음, 생활을 정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황스럽고 또 슬프고 막막할 때, 어디에라도 기대 도움을 처하고 싶을 때, 분명한 대답이 필요할 때 꺼내 들춰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꺼내 꼼꼼하게 다시 읽어볼 일이 없기를 바란다. 다만 저자가 말해주는 삶의 가치관은 잊지말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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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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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이금이 장편소설. 사계절출판사. 2025.

어떤 삶이든 슬픔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을까. 슬픔을 밑바탕에 두고 그 다음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그러니 해방 전후의 사할린 역시 슬픔을 전제하지 않고는 그 이야기를 온전히 다 할 수 없고, 그런 슬픔의 삶과 시간 그 사이, 즉 틈새에 사랑이 비집고 들어와 슬픔을 단순한 슬픔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슬픔으로 만들어준다. 이것이 우리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우리 역사의 무게이고 그 역사 속 사람들의 삶의 무게인 것이다.
사할린. 그동안 대략적인 이야기로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제대로 그들의 삶이 어떤 굴곡 속에 놓여있었는지를 자세히 알아보려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시작이 어떤 끝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한평생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 사회와 역사의 문제 안에 놓여 개인의 삶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짚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단옥의 삶을 통해, 그들에게 어떤 삶만이 허락될 수 있었는지, 어떤 삶을 살도록 강요받았던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요즘 아이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왜 강제로 어느 지역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지, 국적이라는 것을 얻지 못하고 무국적자로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왜 그토록 자신의 뿌리, 고향의 공간으로 가고자 하는 것인지, 의아하면서도 이해가 안 간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행기만 타면 갈 수 있는 곳을 한평생 갈 수 없었다는, '억류'라는 단어 안에서 이들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할 수많은 이야기 속에는, 지금 우리가 감히 함부로 이렇고 저렇다고 판단하여 결론내리면 안 되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숨어 있는 이야기를 우리는 기꺼이 끄집어내어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자세인 것이다.

단옥은 가끔 자기 이름의 변천사를 생각해보곤 했다. 주단옥에서 야케모토 타마코, 다시 주단옥에서, 그리고 올가 송...... 이름이 바뀔 때마다 한동안 헷갈렸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웠다. 다른 한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바뀐 이름들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이었다.(323쪽)

이 소설을 읽으며 <꺼삐딴 리>가 연상되기도 했다. 당시를 살아내야만 했던 이들에게 있어서 일본, 소련, 미국 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의 운명과 정세의 변화에 대책없이 무방비상태로 놓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지, 솔직히 짐작도 쉽지 않을 정도인 것이다. 이인국 박사와 단옥의 삶이 같은 방식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이 자신의 삶을 개인적으로 감당하며 되는 상황이 될 수 없었다는 것, 세상과 세계의 움직임에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일정 부분 혹은 그 이상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이라면 모두, 그 당시의 상황을 자신의 자유 의지로 판단 혹은 선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잘못이나 문제가 전부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삶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바로,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삶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로서 접근해 살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가 어떻게 지금의 우리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도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몫, 우린 우리의 삶을 살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안 된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역사는 기억해야 하고 또 그 기억이 바탕이 되어 그 다음의 삶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살아내고자 한다면, 우리의 삶을 더 잘 살아내려고 노력 중이라면, 지금의 이 모든 삶의 이야기를 잘 확인하고 아는 것이 시작인 것이다. 이들의 삶이 곧 우리 삶의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가만히 단옥의 삶을 머릿속으로 되짚어보게 된다. 만약 단옥이 그런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이처럼 살아낼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길고도 고단한, 굴곡 많은 삶을 잘 살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가족이 있어서, 친구가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또, 이 모든 순간에 대한 진심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린 그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해야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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