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김지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유형을 크게 외향과 내향으로 나눈다면, 이 글의 저자인 김지선 작가님은 내향인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욕구를 맞춰가는 것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쓰여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 외향인들이 보면 유난이다 할 만한 에피소드를 한두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사람들. 나도 둘중에 하나를 정해야 한다면 내향적인 사람이다. 이상하게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외향인들은 자신의 성격을 고쳐야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데, 내향인들은 자신의 성격을 고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내향적인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내향이라도 다른 점이 많고, 다른 사람인데도 내향이기 때문에 같은 점이 많아서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다.


이 책의 저자가 참 솔직하게 책을 썼다는 것은 6인용 식탁 이야기를 읽으며 알 수 있었다. 세세하게 싸운 이야기들이 놀랍도록 내 이야기 같았고, 삶의 지난하고 시시콜콜한 일련의 문제들이 나열된 것을 보면서 어딘가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와 크게 다른 점은 두 군데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소음이 싫어서 반대편 도로에서 소음을 기다리는 모습. 다른 하나는 술자리를 추모하는 모습이다. 반대편 도로에 서 있다가 버스가 보이면 급하게 길을 건너면 탄다니......나는 버스를 놓칠 것 같은 불안이 더 커서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술자리를 못하게 되니까 너무 행복하다. 추모가 아닌 축제를 벌이고 싶다.


정전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학교 다닐때 정전이 되면 선생님에게 첫사랑 이야기나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었던 옛 생각이 나기도 했다. 수업시간임에도 수업을 할 수 없고, 잡담만 가능했던 그 시간이 무척 그립다.


<하니포터 3기 활동으로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내가 팔로잉한 이들로 구성된 트위터를 보고 민심을, 경향을, 정세를 짐작하려는 시도를 두고 소위 '내 옷장에 머리를 처박고 다음 시즌의 유행을 점치는' 행동이라고들 한다.


세상의 모든 파티션이 사라진다면 현대인의 정신 질환 종수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모두가 벽을 허물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벽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도 친한 후배가 첫 출근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메시지를 보냈다. "화이팅. 쫄지 말구." 우는 듯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답장이 돌아왔다. "첫날은 그냥 바보 되는 날이죠." 빙고. 이것이 바로 머리가 커진 인간이 가져야 하는 3월 2일의 마음이다.


나의 고통은 너무나도 가깝고 상대의 고통은 지나치게 멀다. 결국 모든 인간은 자신의 고통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며, 타인의 고통은 아무리 애써도 짐작만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코올램프 군과 과학실 친구들
우에타니 부부 지음, 조은숙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실에서 물건을 가열하기 위해 쓰이는 '알코올램프' 군과 그의 파트너 '뚜껑' 군은 과학실에 새로 들어온 '실험용 가스레인지' 군에게 자리를 빼앗길 위험에 처해있다. 신경전을 벌이던 둘은 실험 전날 대결을 벌이게 된다. 불붙이기 대결과 화력 조절 대결에서 패배한 알코올램프 군과 뚜껑 군은 과학실 테이블 위에서 내려와 과학 준비실로 들어가게 되고, 과학 준비실 안은 어두컴컴하기만 한데......알코올램프 군과 뚜껑 군은 이대로 실험기구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열리지 않는 선반'에 들어가게 될 것인가, 아니면 주인공 버프를 통해 다시 실험실로 복귀하게 될 것인가!


과학실에서 알코올램프를 써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기억이 있을 것 같다. 사람이 늘 있는 공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약간 서늘하지만 교실보다 훨씬 넓은 과학실. 과학실에 가기 위해 교실에서 이동하는 시간에 누구와 함께 앉을지 고민하던 기억. 과학실에서 풍겨나오던 정체모를 시큼한 냄새. 알코올램프 심지에 불을 붙이기 좋게 조금씩 잡아당기던 기억. 과학실 테이블 위에 늘 놓여져 있던 알코올램프가 이제 없다니 뭔가 이상할 것 같다. 


어린이 분야의 책은 꼭 집에 아이가 있지 않더라도 읽기 좋은 것 같다. 일러스트가 귀엽고, 어릴 때 기억이 나기도 하고, 어릴 때는 몰랐던 것도 알 수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학령기 아동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학교에 다닐 때 학교 풍경과 지금 학교 풍경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회사에서 "요즘 학생들 과학실은 이렇데요~"라며 스몰토크하기에도 좋을 것 같은 책이다.


<하니포터 3기 활동으로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님은 이유 없이 살아가자는 말을 하고 싶어 쓴 소설들이라는데,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남모를 약속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 오고 있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인물, 누군가에게 보내는 메세지를 쓰고 있는 인물,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가고 있는 인물, 누군가를 기억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등 살 이유가 충분한 인물들인 것 같다. 


기억에 많이 남는 소설은 <제, 재>, <이름 없는 몸>, <-에게>, <우주를 날아가는 새>다. SF소설을 읽으면 소설속 일들이 얼마나 근미래에 일어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곤 하는데, <우주를 날아가는 새>를 읽으면서는 정말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말 이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 재>는 해리성 인격 장애를 가진 인물이 주인공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과 장애를 없앨 수 있는 뛰어난 성취를 이룬 '재'와 평범에 가까운 재능을 가지고 있는 '제'의 이야기. 깊이 잠드는 것으로 인격이 교대되는 두 사람중 제가 깨어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예상치 않은 상황에서 깨어나게 된 제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련의 이상한 상황에 '선'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제의 동생-즉, 재의 동생이기도 한-인 선은 전화로 재가 제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알린다. 그 전에 제에게 재를 먼저 죽여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제가 인류에게 엄청난 공헌을 할 재를 죽이는 것이 옳은 것인지, 재가 자신을 죽이고 싶어한다는 것이 사실인지 고민하는 동안 점점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이름 없는 몸>은 이 소설집에 처음 발표된 글이다. 어찌보면 흔한 좀비물로 읽히지만, 거듭 읽다보면 다층적인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에게>는 책으로 두장 한쪽 분량의 짧은 소설이지만, 이야기가 상당히 설득력 있고 한국적이라서 좋았다. 


<하니포터 3기 활동으로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생물학자인 시오는 사고로 동물권운동가인 아내 얼리사를 잃고 혼자 어린 아들을 양육한다. 아들 로빈은 의사들에게 자폐 스펙트럼 장애, ADHD, 강박장애 등의 진단을 받은 9살 아동이다. 또래와 달리 자연에 관심이 많고 외부 자극에 과민한 로빈과 시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처음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다양한 외계 이야기가 나와서 SF 소설인 줄 알았으나, 이 이야기는 로빈이 잠들기 전 시오가 들려주는 가상의 이야기였다. 


책은 크게 뉴로피드백을 받기 전 로빈, 받는 과정의 로빈, 뉴로피드백을 받지 못하게 된 로빈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뉴로피드백을 받기 전의 로빈은 정서 조절과 충동 억제에 어려움이 있어 주변과 많은 갈등과 마찰을 겪지만, 뉴로피드백을 받으면서 엄마인 얼리사처럼 전보다 조금 너그러워지고 동물권을 위해 몰두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뉴로피드백 연구가 중단되면서 로빈은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끼게 되고 점차 위축되기 시작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 소설을 환경소설로, 어떤 사람은 성장소설로, 어떤 사람은 과학소설로 읽을 것이다. 나는 아이인 로빈과 어른인 시오가 보이는 차이에 주목하며 이 소설을 읽었다. 소설 속에서 로빈은 다가오는 종말-환경 파괴-을 바꾸기 위해 행동하려 하고, 시오는 로빈이 다른 아이같이 성장하기를 바란다. 로빈은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위해 해야할 일-시위나 관련 단체에 기부-을 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시오는 환경의 여러 제한을 생각하고 아들에게 상기시키며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누구에 가까운지 가늠해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씁쓸했다.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게 그린 사람 -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은유 작가가 <한겨레>에서 연재한 '은유의 연결'에서 인터뷰한 16명, 그리고 다른 매체에서 인터뷰한 2명을 더한 18명의 인터뷰가 실린 책이다. 어쩌다보니 작가의 인터뷰집을세 권째 읽게 되었다. 은유 작가의 인터뷰는 읽을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은 인터뷰의 마지막에 '인터뷰 후기'라고 해서 인터뷰어를 만나게 된 계기라거나 선정의 이유, 인터뷰어의 현재 상황 등을 알려주는 부분이 있다. 인터뷰 당시에서 끝나지 않고 지금의 이야기도 들려주어서 좋았다. 뭔가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인터뷰어가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는지, 어느 부분을 보여주고 싶은지에 따라 인터뷰이를 다르게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책 제목도 '크게 그린 사람'이라고. 한 사람을 온전하게 혹은 세밀하게 보여준다기보다 인터뷰어가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런 제목인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평범한 한 사람이지만 그 안에 측량할 수 없는 큰 것-의지 또는 사랑, 존엄성 그런 것들-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인터뷰이 중에서 원도, 김혜진, 수신지는 이름이 익숙했으나(적어놓고 보니 다 무언가를 쓰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생소했다. 모르는 이들을 알게되었다는 기쁨의 한켠에 '내가 사회에 이토록 관심이 없구나'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

김혜진, 민금채, 김진숙의 인터뷰가 가장 인상 깊었다. 김혜진 작가의 인터뷰는 작가의 글을 더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게 해주어서 좋았고, 민금채 대표의 인터뷰는 읽고 바로 홈페이지에서 제품을 찾아볼 정도로 매력이 있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인터뷰를 읽으면서는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참 이상하게도 '나의 삶을 규정할 수 있는 건 해고자의 삶이었으니까.'라는 구절에서 쉽사리 떠날 수 없었고, 읽을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인터뷰 후기를 읽기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무 긴장이 되었고, 다 읽고 나서는 내가 원하던 내용이 있어 기뻤다.

<하니포터 3기 활동으로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나는 인터뷰가 사람의 크기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혹은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워서 사람을 보지 못한다. <중략> 그래서 좋은 인터뷰는 안 보이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잘 보이던 사람을 낯설게 하는 것 같다.

저는 누가 광장에서 운다는 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상처 입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날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공이다."

지금도 어디 가면 309일 크레인과 희망버스로 소개받는 것도 좀 부담스럽고요. 저는 그냥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진숙이 좋아요. 나의 삶을 규정할 수 있는 건 해고자의 삶이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