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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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21년 한해 산재사고로 사망한 사람수는 828명이다. 업종은 건설업 417명, 제조업 184명으로 70% 이상이 건설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중상자가 아닌 사망자수만 828명이지만 우리는 기사 혹은 뉴스에서 '00일 000에서 000으로 0명이 사망했다' 정도의 정보밖에 얻지 못한다. 산재사고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누군가의 가족이기 때문이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유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재사고가 일어나면 수사가 진행되고,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자세한 정보는 노출되지 않는다. 그리고 수사라는 행위는 원인과 예방책을 찾기보다 위법사항과 처벌받아야 할 사람을 찾는다. 우리는 흔히 일하는 사람의 부주의로 산재가 발생한다고 인식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산재를 일으키는 것은 개인 혹은 소수의 실수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위험에 노출하도록 만드는 체계라고 한다.


이 책은 만듦새가 참 좋다. 만약 제목이 <<산재는 왜 은폐되는가?>>였다면 많은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싶다. 1장에서 우리가 그나마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산재사고인 평택항 이선호 씨 사고를 시작으로 하고 있어서 '산재를 주제로 한 글은 읽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내려놓을 수 있게 한다. 2장에서 산재는 어떤 구조적 원인으로 일어나는지 이야기하며, 3장에서는 산재 위험 요인이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4장에서는 산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2장과 3장이 끝나는 부분에 재해유가족의 의견서가 나와있다. 본문을 분노하며 읽다가 의견서를 읽을 때는 매번 눈시울을 붉혔다. 재해자가 단지 1명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관계 맺고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이라는 점을 매우 절절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영리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점만 지적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을지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영국의 안전 보건청(HSE)이 기업에 배부하는 안전 교육 자료에는 사업주가 흔히 하는 '오해'와 '진실'이 무엇인지 차근히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안전하지 않은 물건을 시중에서 팔 리 없다는 것은 오해고, 어떤 물품을 살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라는 점이 진실이라고 하는 등의 내용이 인상 깊었다. 과거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특정 담당자에게만 기업의 안전관리 책임을 물었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겠지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근로자의 안전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이전보다는 구조적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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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프로젝트 -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본격 장르만화 단편집
봉봉 지음 / 씨네21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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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장르만화 단편집이라는 문구에 끌려서 보게된 책이다. 그래픽노블은 이야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림체도 몰입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봉봉 작가님의 그림은 마냥 예쁘게 보이기 위한 그림이 아니고 독특해서 좋았다.


<아나>는 인공자궁 시장을 독점한 기계의 이름이기도 하고 최초로 인공자궁을 통해 태어난 아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난임 부부의 희망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은 기기였으나, 장기 이식용 아이 출산, 스토킹으로 유명인의 유전 정보를 빼돌려 자신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 등 갖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게다가 이용가격이 평균 1.5억에 달하는 이 기계는 결국 사람들의 반감을 사게된다. 최초의 아이인 아나를 '난임의 희망'으로 부르던 사람들은 '메디테크의 창녀'로 부르기 시작하고, 누군가의 차량조작으로 아나와 가족이 탄 차량이 사고가 나면서 모두 사망하게 된다. 그 후 '우리는 아나를 통해 여기에 있다'는 구호가 생기고 난임 부부에게 인공자궁을 낮은 비용으로 이용하게 해주면서 다시 인공자궁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4주에 걸쳐 원하는 방식의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는 리얼리티 쇼 <웰다잉 프로젝트>의 대상자로 선정되기 위해서 무려 1500: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대상자로 선정이 되면 죽기 전 버킷리스트를 실현시켜주고 죽음을 리허설하는 시간도 제공한다. 이들의 방송이 공개되며 대상자가 죽기 전 입었던 옷이 유행하고 죽음의 방식이 관광상품이 되는 등 상업적인 요소와의 연결이 강해진다. 화려함을 거부한 죽음조차 소비의 재료가 된 세상을 보여주는 이야기.


<붉은 여왕>에서는 외모 교정 유전자 시술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얼굴로 태어나는 세계가 등장한다. 모두 같은 외모가 되면서 사람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평가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외모 교정 유전자 조작 시술에 실패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동정받는다. 외모 소수자인 친구와 함께 수백년 전 존재했다던 성형수술방법을 되살리지만, 적용 가능한 대상자가 너무 적어 지원을 못받게 된다. 결국 자신의 동료에게 수술을 감행하게 되고, 대다수와 유사한 외모를 얻는데 성공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 차이는 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는데......


이 밖에 인터넷 방송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버스를 탈취해 국회로 돌진하려하는 세 친구의 이야기인 <마지막 비행>, 생쥐에게 손톱을 먹였더니 사람이 되었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햄스터에게 손톱을 먹인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 치매 할머니를 모시던 부모님이 고향으로 가 신께 귀의한다는 문자를 남기고 사라지자 고향으로 내려간 소설가 재원이 신의 정체를 확인하고 위험한 사건에 연루되는 과정을 그린 <신은 변기>가 담겨있다.


햄스터 이야기는 약간 결이 다르지만 나머지 다섯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욕망이 더해지면서 어떤 부조리와 추함이 발생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붉은 여왕이나 아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만날 수 있는 미래지만, 웰다잉 프로젝트나 마지막 비행, 신은 변기는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읽으면서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비교적 빨리 읽을 수 있으나 가볍지 않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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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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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티저북을 제공받았습니다>


불특정한 여러명의 죽음을 보는 대신 단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이 책은 작은 섬의 새싹부터 시작한다. 새싹이 작은 나무가 되었을 때, 자신처럼 작은 나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두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난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한 나무는 죽었지만 다른 나무가 그 나무가 다시 살 수 있도록 돕고, 되살아난 나무는 되살리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장면이 전환되어 장미수와 신복일의 자녀인 일화, 월화, 금화, 목화, 목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녀 중 한 명이 사고로 사라지게 되고 남은 사람들은 각자의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남은 자녀 중 한명이 열여섯살이 되던 해에 꿈에서 다양한 시공간에 놓인 많은 사람들이 죽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떨어지는 사람을 받으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를 받아내자 그 사람은 살았고, 그제서야 눈을 뜰 수 있게 된다. 


엄마인 미수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미수도 같은 일을 겪는다는 것이다. 미수는 사람들이 죽는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아서 목소리에 저항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깨질듯한 두통뿐이었고, 목소리에 의해 소환되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미수도 엄마인 천자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고, 천자 또한 이 일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이 신비한 체험을 받아들이는 것은 세 사람이 모두 달랐다. 천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 일을 받아 들였고, 미수는 배우자인 신복일이 보여준 사랑으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었고, 미수의 자녀는 목표를 가지고 이 일을 경험한다. 그리고 티저북은 끝이 났다.


전체 소설 중 첫 1/3가량의 분량이 수록되어 있는 티저북을 정신없이 읽고나니 많은 궁금증이 생긴다. 나무와 이 가족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사라진 미수의 자녀는 어떻게 된걸까? 살릴 수 있는 사람을 고를 수 없고,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것을 알수도 없는 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접점이 생기는 순간이 있을까? 소설의 마지막에 가면 미수의 손녀 이야기도 나올까? 


<<내가 되는 꿈>>에서 최진영이 신비한 이야기를 잘 풀어나간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에 이 소설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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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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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티저북을 제공받았습니다.>


북클럽문학동네에서 진행한 티저북 서평에 참여해서 읽은 책이다. 


총 4부 중 2부에는 사물을 관찰하고 작동원리에 관심이 많은 주인공 '우주'가 유년을 겪으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닌 환경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나온다.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다가 놀림을 당하고 여자아이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적응을 위해 애쓰던 우주 앞에 '선미'라는 친구가 등장한다. 우주와 선미는 가까워지면서 육체적인 관계도 맺게 되지만, 선미와의 행복을 꿈꾸는 우주와 달리 선미는 우주가 남성이 아닌 것을 아쉬워하며 남성과 사귀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한다. 대학도 가고 직업도 가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서로를 떠나지 못하는 우주와 선미. 우주는 어떤 모임을 계기로 서로 많은 걸 알지 못하고 아주 가깝게 어울리지도 않지만 좋은 관계인 사람들을 알게되고 그들과 함께하고픈 욕망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선미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 우주는 둘의 관계가 항상 일방적이지 않았음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선미도 자신을 배려하고 기다렸음을 알게된다. 결국 선미와 헤어진 우주는 그것이 실패가 아닌 함께 만들어 낸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등장인물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그들은 우주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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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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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소 소설을 많이 읽는다.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창조한 세계, 배경과 행동이 낭비되지 않고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세계가 좋다. 하지만 때로 소설가에게 나온 정제된 문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대화속에서 만들어진  것의 문장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소설의 세계가 몰입을 통해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준다면, 후자는 좋은 사람의 건강함을 통해 나도 다시 열심을 내고 싶게 만든다.  책은 후자에 해당한다. 기록노동자인 인터뷰어 희정님이 하나의 일을 오랫동안 해 온 13명의 베테랑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어부, 배우, 조리사와 같은 직업뿐 아니라, 식자공, 마필관리사처럼 생소한 직업들도 있다. 


시작은 인터뷰어가 의도를 가지고 인터뷰이를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인터뷰어의 마음은 인터뷰이의 말과 몸을 따라 움직인다. 예를 들면, 배를 탔을 때 몰래 생물 한두 마리는 바다로 돌려보내려던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듣고 행동을 포기하는 장면이 있다. 놓아주려 했던 것은 생물이라기보다 노부부의 노동이었고 그 대가였다. 노부부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된 그들의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도록 책에 날짜를 넣어준다는 약속을 지킨 인터뷰어의 마음이 보기 좋았다. 식자공 권용국님은 열다섯에 졸업을 하고 직업을 구했다고 한다. 이것이 소설의 내용이라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을 부양했다는 이야기는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가 1934년생이고, 월급 받고 쉬는 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전쟁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부분에서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의 삶이 민족의 비극과 만나는 지점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일부러 거리의 안마소에 들어가거나 바다 위에서 고기를 낚는 일을 하는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일이 있을까? 마필관리사나 수어통역사와 이야기할 기회는 더욱 희소할 것이다. 모르고 살기엔 이들이 너무 값진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의심이 생길 때, 지칠 때, 자신의 일에 진지한 태도와 자부심이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확실한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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