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웰다잉 프로젝트 -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본격 장르만화 단편집
봉봉 지음 / 씨네21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장르만화 단편집이라는 문구에 끌려서 보게된 책이다. 그래픽노블은 이야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림체도 몰입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봉봉 작가님의 그림은 마냥 예쁘게 보이기 위한 그림이 아니고 독특해서 좋았다.
<아나>는 인공자궁 시장을 독점한 기계의 이름이기도 하고 최초로 인공자궁을 통해 태어난 아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난임 부부의 희망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은 기기였으나, 장기 이식용 아이 출산, 스토킹으로 유명인의 유전 정보를 빼돌려 자신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 등 갖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게다가 이용가격이 평균 1.5억에 달하는 이 기계는 결국 사람들의 반감을 사게된다. 최초의 아이인 아나를 '난임의 희망'으로 부르던 사람들은 '메디테크의 창녀'로 부르기 시작하고, 누군가의 차량조작으로 아나와 가족이 탄 차량이 사고가 나면서 모두 사망하게 된다. 그 후 '우리는 아나를 통해 여기에 있다'는 구호가 생기고 난임 부부에게 인공자궁을 낮은 비용으로 이용하게 해주면서 다시 인공자궁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4주에 걸쳐 원하는 방식의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는 리얼리티 쇼 <웰다잉 프로젝트>의 대상자로 선정되기 위해서 무려 1500: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대상자로 선정이 되면 죽기 전 버킷리스트를 실현시켜주고 죽음을 리허설하는 시간도 제공한다. 이들의 방송이 공개되며 대상자가 죽기 전 입었던 옷이 유행하고 죽음의 방식이 관광상품이 되는 등 상업적인 요소와의 연결이 강해진다. 화려함을 거부한 죽음조차 소비의 재료가 된 세상을 보여주는 이야기.
<붉은 여왕>에서는 외모 교정 유전자 시술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얼굴로 태어나는 세계가 등장한다. 모두 같은 외모가 되면서 사람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평가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외모 교정 유전자 조작 시술에 실패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동정받는다. 외모 소수자인 친구와 함께 수백년 전 존재했다던 성형수술방법을 되살리지만, 적용 가능한 대상자가 너무 적어 지원을 못받게 된다. 결국 자신의 동료에게 수술을 감행하게 되고, 대다수와 유사한 외모를 얻는데 성공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 차이는 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는데......
이 밖에 인터넷 방송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버스를 탈취해 국회로 돌진하려하는 세 친구의 이야기인 <마지막 비행>, 생쥐에게 손톱을 먹였더니 사람이 되었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햄스터에게 손톱을 먹인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 치매 할머니를 모시던 부모님이 고향으로 가 신께 귀의한다는 문자를 남기고 사라지자 고향으로 내려간 소설가 재원이 신의 정체를 확인하고 위험한 사건에 연루되는 과정을 그린 <신은 변기>가 담겨있다.
햄스터 이야기는 약간 결이 다르지만 나머지 다섯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욕망이 더해지면서 어떤 부조리와 추함이 발생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붉은 여왕이나 아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만날 수 있는 미래지만, 웰다잉 프로젝트나 마지막 비행, 신은 변기는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읽으면서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비교적 빨리 읽을 수 있으나 가볍지 않은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