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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918년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였고, 세계는 제 1차 세계대전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영국에 대항해 아일랜드의 게릴라 전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이 책은 1918년에 여덟살이었던 윌리 퀸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윌리의 어머니는 영국인이고, 아버지는 아일랜드인으로 아일랜드의 킬네이 저택에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를 모르고 읽어서 부모가 다른 나라 사람인 것이 이 가문에 어떤 비극을 불러올지 알 수 없었다. 60페이지까지 익숙하지 않은 지명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지루한 감도 있었으나 이후 혀가 잘린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쉴새없이 사건이 휘몰아친다.
블랙 앤드 탠즈에게 아버지와 동생들을 잃은 윌리는 살아남은 어머니, 하녀와 함께 불탄 킬네이 저택을 떠난다. 윌리의 어머니는 남편을 죽게 만든 사람에게 복수할 생각만하며 다른 사람도 만나지 않은 채 연일 술을 마시고 알코올중독 증상을 보인다.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학업을 이어가던 윌리는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게 되며, 자신의 어머니를 보러 킬네이에 방문한 사촌 메리엔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영국인, 그리고 사촌이라는 벽앞에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윌리. 이제 윌리에게 남은 고난과 괴로움은 사랑하면 안 될 사람을 사랑한 것 뿐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에게 더 큰 고난이 찾아온다. 후에 영국을 떠나 킬네이에 다시 방문한 메리엔은 윌리가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것과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아일랜드의 주민들, 메리엔의 결정, 그리고 윌리의 행방을 다루며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소설을 읽으며 개인의 삶과 역사적 사실을 조화롭게 엮어나가는 작가의 솜씨에 감탄했다. 1983년에 나온 소설임에도 예전에 쓰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세련된 소설이다. 사건의 전후나 전개가 노골적이지 않지만 독자가 사정을 짐작할 정도의 맥락을 보여주는 방식이 좋았다. 1900년대 초반 아일랜드의 환경에 몰입해서 읽다보니 소설 후반부에 비행기 여행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다른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