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의사, 간호사, 병원으로부터최선의 서비스를 받아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반드시 저돌적으로 나가야 한다. 당신이 돌보는 환자는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없다. 당신이직접 조사하고, 의사로 하여금 다른 치료법, 전략, 아이디어를 찾고 시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노인 환자는 특히나 의학계에서 가망이 없는 짐짝으로 여겨진다. 모든의사가 노인 환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사들도 있다. 노인 환자는 절망적일 수 있다.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태가 좋아져서 더 나은 여생을 사는 노인 환자도 있지만.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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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칭찬의 기술
3류라는 소리 안듣는 2류의 행복
강원국 ‘감사‘는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감사하는 삶을 사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하죠. 하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거고, 또 하나는 모든사람에게는 장점이 있으니 그것을 발견함으로써 감사하는마음을 품는 거예요. 다시 말해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만인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거죠.
김민식 긍정과 인정이야말로 감사의 기본이라는 이야기군요.
강원국 그렇죠. 어느 그룹에 있을 무렵 회장님이 저한테 "너는 감사할 줄 모르는 게 문제다"라고 하셨어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폐족 신세가 된 저를 거둬 줬는데 고마워할 줄 모른다고 대놓고 말씀하셨죠. 그 당시 제가 교만했던 건 사실입니다. 겸손하지 않았고 감사할 줄 몰랐죠. 그런데 그거 아세 - P280

요?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은 영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조금씩 불행해집니다.
그만식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금원국 남 탓보다는 내 탓을 하려고 해요. 흔히들 하는 말이지만 ‘때문에‘보다는 ‘덕분에‘라고 말하고, 최선을 지향하기보다는최악이 아닌 데 감사함을 느끼려 하죠. 과한 욕망에 사로잡히기보다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데 감사하죠.
이게 다 오십에 위암 선고받고 나서 바뀐 거예요. 암 진단을받은 후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니 그동안 내가 지닌 역량과 들인 노력에 비해 과분한 대우를 받았더라고요.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아 온 거예요.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은 삶을살았죠. 내 인생에 줄곧 손해보다 이익이 많았다는 걸 그제야 깨닫고 감사함을 느꼈어요.
김민식 그런 상황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아, 오진이었다는 걸 알고 어떠셨어요?
강원국 다시 삶을 선물 받은 느낌이랄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셈이니 쭉 올라갈 일만 남아 있었조. 이전과는 달리 다시 오를 때는 매번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마음먹었어요. 앞으로도 쭉 1류를 지향하기보다 2류에 자족하며 살자. 3류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최악만 면하자고 생각하니 내가 질 수도 있고 손해 볼 수도 있고 - P281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언제나 내 생각이 옳은 것도 아니고, 늘 이익만 보는 사람은 없으니 손해도 감수해야 하고, 임자를 만나면 지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욕심, 시기심, 열등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민식 2류로 살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류가 되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반대로 1류가 되겠다고 아득바득 살았는데 2류에 머무르면 어떤 위로의 말로도 달랠 수 없을 만큼불행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볼 때 강원국 작가님은 옮은 방향으로 행복에 접근하신 것 같아요. 2류로 살아도 1류가 되어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 결국 1류가 된 행복한 2류랄까요.
강원국 3류라는 소리 안 듣는 2류가 딱 좋아요. 늘 1류가 될 여지가있잖아요.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보다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더 소중하죠.
김민식 감사할 줄 모르고 살다가 매사를 긍정하고 만인을 인정하며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면 어떤 점이 달라지나요?
강원국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하니까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게 되더군요. 오늘 하루를 이렇게 건강히 보내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죠. 더 나아가 실수하건 실패하건 크고 작은 고난을 겪을 때조차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게 되 - P282

었어요. 저는 무슨 일에도 다 그렇게 된 뜻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못 찾았을 뿐이지 결국에는 찾게 되리라고 말이죠김민식 매사를 긍정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잖아요.
강원국 예전에는 늘 남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했거든요. 하지만요즘은 남과 다르게, 나답게 살려고 해요. 그러니까 우선 나부터 나를 아끼고 사랑해 줘야지 싶더라고요. 이제 자학은그만하고 날 좀 칭찬해 주자. 정말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칭찬도 잘해요. 남의 장점을 잘 알아보니까요.
칭찬을 잘하는 법김민식 칭찬을 잘하는 건 정말 중요해요. 간혹 보면 아랫사람이나후배가 한 일을 칭찬할 때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리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저는 누구를 칭찬할 때 정확하게 어떤 점을 잘했는지 말해 주려고해요. 칭찬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면 더 효•과적이니까, 동료나 후배 앞에서 빛날 수 있게끔 대놓고 칭찬하죠. 감사를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되었고 무엇이 고마운지 얼버무리지 않고 정확하게 묘사 - P283

하려고 노력해요.
강원국 제 경우에는 직접 말하지 않고 한 단계를 거쳐 칭찬이나 감사를 표현하면 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나 그 사람이 참 고마웠어" "그 친구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어" 하는 식으로 말하면 반드시 그 얘기가 당사자에게까지 전해지더라고요.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간 게 받는 사람으로서는 직접 듣는 감사의 말보다더 기분 좋을 수도 있죠.
김민식 남을 통해 칭찬이 전달되는 게 효과적인 건 분명하지만 직접적으로 고마움을 표현할 필요도 있어요. 도중에 배달 사고가날 수도 있거든요. 그럼 저 사람은 왜 남의 신세를 지고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나 싶지 않겠어요?
강원국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오해가 생기면 오해를 풀고사과를 한 다음 다시 감사를 표해야겠죠.
김민식 그래서 감사해야 할 사람에게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꼭 확인해요.
강원국 김민식 PD님은 가족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있나요?
김민식 애들이 가끔 편지를 써 줘요. 그 가운데 몇 통은 사무실 책상앞에다 붙여 놨는데 밤샘하거나 힘들 때마다 편지를 보며 위로받곤 했죠. 동료들이 지나가면서 딸들이 저런 편지도 써 - P284

•주고 참 좋겠다 그래요. 딸들이라 더 곰살궂은가 싶기도 하고요강원국 기본적으로 아빠가 워낙 사랑 표현을 많이 하니까 아이들도자연스럽게 자기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거겠죠. 우리 애는저를 닮아서 그런 감정 표현을 잘 안 해요. 물론 우리 아들이나 아내나 늘 서로의 존재에 고마워할 거로 생각해요. 저 또한 가족에게 깊이 감사하고요.
김민식 마음속에 품고 계신 고마움을 반드시 표현해 보세요. 부모자식이나 형제자매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사나 고마움을표현하는 데 오히려 인색하잖아요. 거기에 익숙해지다가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이 앙금처럼 남아 두고두고 가슴에 사무칠 수도 있거든요. 표현은 정말 중요합니다.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사랑이나 고마움과 같은 표현도 그래요. 진짜 감사할 만큼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감사하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할수록 정말 그런삶을 살게 되거든요. - P285

에필로그------------존중과 책임이말하는태도를 만든다

2012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전문가 이범 선생님의 ‘우리 아이 미래형 인재로 키워라‘라는 강의를 들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기르면 좋을 세 가지 품성이 있는데 바로 창의성, 역량, 협업 정신이다. 이것은 PD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품성이다. 어떻게 하면 세 가지 품성을 기를 수 있을까.
창의성의 조건 중 하나는 용기다. 남다른 생각을 하고, 그걸 남 앞에서 표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말하기를 잘하고 싶다면 일부러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자꾸 말을 해봐야 한다. 말을 할때는 용기를 내어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그의 용기를 북돋아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참신한 생각 - P298

을 다 했어요?"라며 용기를 키우는 것이 창의성을 기르는 지름길이다.
협업을 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내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힘을 합치고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주위에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모아그들에게 묻어가는 삶, 그게 협업의 요체다. 독자들도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번 책을 쓰는 나의 자세가 바로 이것이다. 말하기와듣기의 고수 강원국 작가님에게 묻어가자!
역량은 무엇일까? 지식과 기술과 태도의 합이다. 과거에는 지식과 기술이 중요했다. 이제는 아니다. 지식과 기술은 한 개인의역량으로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 양과 질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나 로봇과 경쟁하자면 한두명의 뛰어난 능력으로는 대적이 안 된다. 21세기에는 좋은 관계를 만드는 태도가 역량이다. 태도는 오랜 시간 몸에 밴 습관을 통해 드러난다. 그러기에 평소 좋은 습관을 만들고 몸과 마음에 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세 가지 품성을 기르기 위해 10년 동안 관련 주제를 다룬책을 읽으며 공부했고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이를 토대로 수많은 독자와 만나는 자리에서 그 고민을 이야기로 나누었다.
2023년 초챗GPT가 공개된 후, 유튜브 <지식인사이드 채널 - P299

에 출연했더니 ‘인공지능의 시대, 아이들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제 인간에게 남은 역량은 태도라는 것이 내 나름대로 찾은 결론이었다. 그래서 좋은 태도를 길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영상은 조회 수 200만 회를 넘겼고 덕분에 강연 요청이 쇄도해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돌이켜 보니 이 이야기를 나의 말로 하기까지 10년이 걸린 셈이다.
말하기의 좋은 태도란 무엇일까? 공감과 이해, 존중과 책임,
그리고 긍정적인 자세다. 공감과 이해를 위해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들을 때는 말을 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내가 말을 할 때는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한 말의 무게를 생각하면 평소에도 말을 갈고닦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고민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글쓰기로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해도 좋다.
‘어떻게 하면 말을 더 잘하고 잘 들을 수 있을까?‘ 강원국 작가님과 함께 고민하고 대화를 나눈 내용을 1년 가까운 시간 동안정리하고 다듬어 책으로 펴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미좋은 태도 하나를 장착한 셈이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책을 읽고 공부하는 자세. 이제 책에서 배운 것을 일상에서 적용하며 습관으로 만들어 보기 바란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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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사과

안동 다녀오는 길에 문경에 들러가을빛 환한 사과밭에 간 적 있었다.
맛보기로 내놓은 두어 조각 맛보고 나서 주인의 턱 허락받고
벌레 먹었나 따로 소쿠리에 담긴
못생긴 사과 둘 가운데 하나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물었지.
입에 물린 사과,
입꼬리에 쥐가 날 만큼 맛이 진했어.
베어 문 자국을 보며 생각했지.
사과들이 모두 종이옷 입고 매달려 있었는데
이놈은 어떻게 벌레 먹었을까?
주인 쪽을 봤지만
그는 다른 고객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어.
혹시 이 세상에서 진짜 맛 들려면
종이옷 속으로 벌레를 불러들일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제 몸 덜어내고
벌레 먹은 과일 소쿠리로 들어가야하는가?
초가을 볕이 너무 따가웠다.
상자 하나를 차에 실었다. - P12

마음 기차게 당긴 곳
인터뷰 도중 물어 왔다.
오래 사시면서 여행도 많이 하셨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가
선생의 마음을 가장 기차게 당긴 곳입니까?

괭이갈매기들 정신없이 나는 강화 펄에만 가도
바다 안개 불현듯 밀려와
해와 섬과 갈매기를 한꺼번에 삼키고
물소리만 남겨
그곳을 밑바닥부터 바꾸기도 하는데,
물소리만 남고 앞이 안 보이는 풍경이
그 어느 풍경보다 마음 더 조이게도 하는데,
어떻게 세상 어느 한 곳을 딱 짚어
마음 가장 기차게 당긴 곳이라 할 수 있겠는가?

며칠 전 집 발코니에서 홀린 듯 내다본
다른 세상 불길처럼 정색하고 샛노랗게 타오르던
은행나무들이 떠올랐다.
머뭇머뭇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답했다.
내 살고 있는 그렇고 그런 늘은 아파트도
해마다 두어 차례
멍 기차에 때리는 공간 됩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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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반평생을 신경과 의사로 살다가 59세에 은퇴를 하고 깨달은 바는 다음과 같다. 나이와 관계 없이, 물론 속도에는 차이가 생기겠지만 머리는 열심히 쓸수록 좋아진다는 사실이다. 기능자기공명영상(MRI)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 또한 뇌세포를 더 많이 쓸수록 젊은 사람들과 기억력이 거의 같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으로 볼 때 머리를 쓰면 쓸 - P197

수록 똑똑해져서 이른바 ‘슈퍼 천재 노인‘이 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는 머리를 많이 쓰고 인지기능을 많이 사용할수록 이후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더라도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증상 발현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뜻도 된다.
허혈성 뇌졸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발병 부위의 뇌신경세포를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바로 옆이나 부근, 심지어 반대쪽 뇌의 신경세포에서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어 새로이연결하여 죽은 신경세포의 기능을 대체한다. 이처럼 신경망을재조직하는 것을 바로 대뇌의 가소성이라 한다.
예컨대 좌측 대뇌의 중풍으로 인한 실어증이 회복되는이유는 우측 대뇌가 대상작용(생체 기관의 일부가 장애를 받거나 없어졌을 때 나머지 부분이 커져서 부족을 보충하거나 다른 기관이 그 기능을 대신하는 일-옮긴이)을 통해 좌뇌의 언어기능을대체하기 때문이다. 뇌 신경세포의 역할마저 다른 신경세포에의해 대체되는 것을 보면 이 세상에 대체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질병에 걸리는 이유는 선천적 유전자와 후천적 환경의영향도 있지만,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요인도 있다. 암의 경우5~10%만이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 생활양식이나 환경 속의각종 발암물질도 암에 걸릴 위험성을 높인다. 그러나 이러한 - P198

요인을 모두 합해도 암과의 관련성을 밝혀낼 수 있는 건 50%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암은 발암의 진짜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 따라서 환자들이 자신이 어떻게 암에 걸린 거냐고 물어볼 때면나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그저 제비뽑기에 걸린 겁니다."
환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진료과목과 의사를 만나는 것도일종의 복이다. 한 의사가 의학 학술지에 실린 변연계 뇌염에관한 글을 읽었는데 이튿날 입원한 환자에게서 흔치 않은 변연계 뇌염을 발견해 운 좋게도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었다.
어떤 의사는 진료를 보다가 문득 가슴이 불편하다는 것을 느끼고 심근경색이 의심된다며 동료에게 심장 카테터실에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놀랍게도 카테터실에 도착하자마자쇼크가 와서 혈압이 떨어지고 맥박이 느려졌다. 응급 처치 후막힌 심혈관이 곧바로 뚫려서 스텐트 두 개를 삽입하고 건강을 회복했다. 그는 일주일 후 다시 병원에 재진을 받으러 갔다.
꽃다운 나이에 의외의 사고나 중풍 또는 암으로 사망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30대 남성이 출장을 가면서 혈압약을 깜박한 나머지 뇌간 출혈이 일어나거나 60세 남성이 샤워를 하다가 뇌의 작은 동맥류가 파열되어 의식을 잃는 등의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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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생각해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걷는 이가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고향」의 말미에 적어둔 루쉰의 이 말을 "명랑한 언설로 앞길의광명을 생각하며 걷기 시작하는 자들의 구령처럼 인용하는 예가 많다고 나카노 시게하루는 지적한다. 하지만 그것은 읽는 이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희망은 없지만 걷는 수밖에 없다. 걸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희망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루시는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이야기한다. 암흑을 이야기한다. - P108

하지만 나카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견인불발의 중국 혁명가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략) 여기서 희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짙은 어둠과, 어둠 그자체에 의해 필연적으로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한 실천적희망과의 살아 있는 교착, 교체를 ‘문학적‘ 감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루쉰의 정치와 문학의 결합을 나카노 시게하루는 "서정시형태의정치적 태도 결정"이라 부른다.

거기에 거의 서정시 형태로 된 그의 정치적 태도 결정이 있었다.(중략) 루쉰의 문학이 문학으로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이러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에 있다.

시란 무엇인가? "서정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이란 무엇인가? 지금도 나는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길이 그곳으로 뻗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아무 데로도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걷는다는 것.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승산이 없으면 싸우지 않는다는 태도가 아니다. 효율이라든 - P109

가 유효성이라든가 하는 것과도 무관하다. 이 길을 걸으면 빨리 목적지에 닿을 테니 이 길을 간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요컨대 이것은 승산의 유무나 유효성, 효율성 같은 원리들과는 전혀 다른 원리에 관한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언어이며 그것이 서정시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절망‘을 말할 때도, "이런 짓을 해봤자 아무런 희망도 없어, 절망이라고 하는 것과, 루쉰이 말하는 ‘절망‘과는 같은 단어이지만 쓰임새가 전혀 다르다.
나카노 시게하루는 루쉰의 말에서 절망밖에 읽을 수 없건만, 그럼에도 읽을 때마다 이렇게 느낀다고 말한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어떤 일이 있어도 올바른 인간이 되어야지 하는 것 이상으로 (중략) 일신의 이해, 이기(利己)라는 것을 떨쳐버리고, 압박이나 곤란, 음모가들의 간계를 만나더라도 그것을 견뎌내며 어디까지나 나아가자, 고립되고 포위당하더라도 싸우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그곳으로 간다.

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말하자면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숭산 유무로 따지자면 소수자는 언제나패한다. 효율성이니 유효성이라는 것으로는 자본에 진다. 기술이 없는 - P110

인간은 기술이 있는 인간에게 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원리로서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가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이 시의 작용이다.
루쉰이라는 중국의 시인을 만나, 한 사람의 일본 시인 나카노 시게하루가 감동을 받았다. 여기에 동아시아 근대사 속의 만남이 지닌실낱같은 가능성이 엿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일본 사회에 나카노가루쉰으로부터 배운 것을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이가 존재할까? 큰 의문이다. 전후 한 시기에 보였던 그런 ‘가느다란 가능성‘은 이제 소멸의 낭떠러지에 있다. - P111

시인이란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그렇다면 시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시인이란 어떤 경우에도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요컨대 이것은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효율적인지 아닌지, 유효한지 어떤지 하는 이야기와는 다르다는 말이다.
내가 뭔가를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네는 너무 올곧고래가지곤 이길 수 없어"라든가 "네 주장을 받아들이게끔 하려면 즐더 부드러운 말투를 써야 해"라고 조언을 해준다. 고맙긴 하지만이는 틀린 말이다. 승산과 유효성에 관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게아니라,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존재하는 루쉰에게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이렇게 살겠다‘, ‘이것이 진짜 삶이다‘라는 무언가를 드러내야만 한 - P154

다. 시인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사회가 양극화되고 격차가 심해지는 까닭해, 일부 재벌이나 부유층은 기세가 등등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고통듣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경쟁사회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 인구•는 일본의 절반 정도이지만 자살자 수는 일본을 웃돌 만큼 많다.
"상처 입고 소외된 사람들"은 정희성의 말이다. 한국에서도 "상처 입고 소외된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하는 것이 시인에게 부과된 커다란 과제다. 1970년대, 1980년대 같은 피투성이 잔치는끝났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언제 되살아날지 모르지만......) 하지만 시인은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을 노래할 방법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물론 옛날과 같은 가락으로 같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해야만 한다. 그것이 시인의 소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도 똑같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 사회에 소외되고상처 입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시인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이 시대가 시인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요구하고 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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