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한쪽에는 미국의 필립스 컬렉션 건물 사진이 걸려있었고, 나는 미국에서 살았던 무렵의 이런저런 추억도 이야기했다. 그런데 시라토리 씨는 작품에 관한 설명 이상으로 열심히 귀를 기울이더니 "정확한 작품 해설 같은 것보다 보는 사람이 받은 인상이나 추억 같은 걸 알고 싶어요."라는 게 아닌가.
기분이 훨씬 유쾌해진 나는 기억의 상자에서 튀어나오는 잡다한 추억을 전부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울적했던 워싱턴의 사무실이나 파리에서 살았던 아파트 바닥의 헤링본 무늬 등 사소한 이야기뿐이었지만, 두 사람은 기꺼이 들어주었다(아마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헤어진 연인의 집에 있었던 지나치게 물렁한 매트리스의 감촉과 그에게 던졌던 욕까지 뒤엉켜서떠올랐다. 미국, 프랑스와 관련이 깊은 필립스 컬렉션은 잠겨있던 내 기억의 상자를 여는 열쇠나 다름없었다.
신나서 너무 떠든 탓인지 한 중년 여성이 "저기요, 아까부터시끄러워요!"라고 강하게 항의해서 당황했다. 뭐야, 미술관은당신의 전유물이 아니야. 이렇게 받아치고 싶었지만 마이티가대신 "죄송합니다"라고 답해서 소곤소근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나와 마이티는 20년 동안 수많은 예술 작품을함께 관람해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재미있었지." "그러게." 하는 대화밖에 하지 않았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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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체력의 기술 핵심 정리① 폭식만은 하지 말자무엇을 먹든 과하지 않게, 적당한 양을 천천히 먹는다. 삼겹살을 먹어도, 초콜릿 케이크를 먹어도 좋다. 다만 과식하고 폭식하지 않으면 된다. 특히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일단 먹는 것보다는 운동에 먼저 초점을 맞추기를 권한다. 자신에게 적당한, 지속 가능한 운동의 리듬이 자리 잡으면, 그때부터 먹는 걸 신경 써도 늦지 않다.
② 일상 속 움직임 늘리기걸을 때 조금씩 보폭을 늘린다거나 사무실에 걸어 올라가거나 일상속에서 움직임의 총량을 늘리는 습관을 갖는 게 중요하다. 사무실이5층이라면 처음부터 5층까지 걸어 올라갈 필요도 없다. 4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한 층만 걸어 올라가는 것부터 시작해도좋다.

꾸준히 적금을 드는 마음으로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의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조금씩 더 움직이는 것이 생활 체력을 키우는 핵심 기술이다. 생활 체력은 우람한 몸, 군살 하나 없는 몸이 아니라 건강한 일상을 위한 것이므로 긴 호흡으로 천천히 쌓아가자.
그러려면 스스로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말고, 한두 번의 실패에 가혹하지도 말아야 한다.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은 든든한뒷배가 되어줄 친구와 오랜 시간을 들여 관계 맺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을 들이며 꾸준히정성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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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분명 공부에 즐거움을 느끼는 학생이다. 왜냐하면 학교는 여러 모로 다양한 공부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부를 단순히 수업 시간에 교과서의 지식을 머릿속에 담는 것으로만 한정한다면 책상에 엎드린 아이들은 공부를잘하는 사람이라 보기 어렵다. 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것을 교과서에 한정 짓지 않는다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학생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다. 공자가 말한 배움의 자세를따르는 학생이라면 친구와 어울리며 노는 것도 공부, 갈등을 겪는것도 공부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친구들, 선생님과의 관계 속에서 유의미한 공부를 해 나간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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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다른 곳에 있었다

횡으로 다니며, 전라도와 충청도의 곡창지대를 걸으면서 내가 너무 쉽게 건너뛴 사람들과 생각들과 느낌들을 만났다. 반백 년 짐작만 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자주 놀랐다.
지방 소멸, 농촌 소멸, 벼농사 소멸, 공동체 소멸의 상황에 대한이론적 근거는 있겠지만, 소멸을 대세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탄생과 발전의 반대편에 쇠퇴와 소멸이 놓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에 맞서서, 지방과 농촌과 벼농사와 공동체가 앞으로도 지속되면서 제 역할을 할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소멸의 양상이 제각각이듯 회생의 방법도 마을마다 차이가 나고사람마다 달랐다. 단번에 헤드라인처럼 한 줄로 정리할 수 없으므로, 반복해서 들여다보고 따지고 묻고 답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길위에서 떠돌다가 지쳐 찾아든 어리석은 소설가를 위해, 따듯한 밥과 싱싱한 야채와 맛난 과일과 함께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그 판은 비극이기도 했고 희극이기도 했고, 낮고 낮은 읊조림이기도 했고 높고 높은 소리이기도 했고, 신화이기도 전설이기도 민담이기도 소설이기도 했고, 진담이기도 했고 농담이기도 했고, 한탄이기도 했고 다짐이기도 했다. 맨정신으로도 이야기하고 대취해서도 이야기했다. 하룻밤을 지나 이틀이나 사흘 밤을 보내는 것도예사였다.
970만 명이 사는 서울로 올라왔다가 다시 짐을 꾸렸다. 지인들은 외국에라도 잠깐 나가 머리를 식히라고 했지만, 나는 하루라도 더 빨리 이야기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횡으로 횡으로만 다니면서 가고 또 가는 곳이 생겼다. 처음엔 고향 언저리인 창원이나 김해나 진보나 부산을 자주 들렸는데, 발길이 점점 서쪽으로 향했다. 이대로 소멸하진 않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사는 마을이었다. - P1112

이동현 대표와 둘이서만 점심을 먹은 날이다. 멸치로 육수를 내지 않고 채소만으로 국을 끓이느라 주방에서 담당 매니저가 애를먹었다는 설명을 한 후, 그가 자못 심각하게 물었다.
"작가님은 채식을 왜 시작하신건가요?"
같은 질문을 한 달에 서너 번은 받아왔다. 젊은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이 질문을 받았는데, 그땐 크리스 조던이 만든 다큐멘터리 <앨버트로스>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나는 이 작품을 제7회 순천만동물세계영화제에서 보았다. 죽은앨버트로스의 몸에서 엄청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나왔다. 수면에떠 있는 플라스틱을 먹잇감으로 여긴 결과였다.
사람은 앨버트로스와 다를까. 일정기간 몸에 쌓이는 유해물질의총량을 ‘보디버든(body burden)‘이라고 한다. 먹고 마시는 음식에 포함된 유해물질이 고스란히 인류를 죽음으로 내모는 셈이다. 보디버든을 피하려면 식재료들을 어디서 누가 어떤 조건에서 만드는지 알아야 한다. - P184

공장식 축산에 의해 조달되는 육류의 경우 심각한 유해물질을 지니고 있다. 오염된 강이나 바다에 사는 물고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육류와 어류 등 식재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혁신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우리 몸에 쌓이는 보디버든은 늘어날 것이다.
‘채식에 대해선 꾸준히 관심이 있었다. 2009년과 2010년 밀림무정」을 쓰면서 야생동물 특히 멸종위기종을 따로 공부했고, 그 관심이 동물복지로까지 나아갔다. 공장식 축산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그때 알았다.
남종영 기자는 ‘혁신이 지워버린 생명의 눈망울‘이란 글에서, 컨베이어벨트가 인간과 동물을 공장 부속품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한다! 그전까지는 소나 돼지를 도축할 사람과 동물이 일대일로대면했다. 눈과 눈을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서 노동자는 자신에게 할당된 부위만 작업한다.
동물복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우선 동물의 눈을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서로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이 찾아든다.
내 눈을 바라보는 저 존재는 고기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고 느끼는 생명체란 것을!
녹색당에 가입하고 (사)한국범보전기금의 홍보대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채식주의자들을 더 많이 만났다. 서울에 있는 채식 식당도 가고 채식인을 위한 파티에도 참석했다. 그러다가 화천 산천어 축제 반대 시위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 P185

화천을 흐르는 물줄기에선 산천어가 살지 않는다. 축제를 위해 산천어를 다른 곳에서 양식한 후 화천으로 옮겨 짧은 시간 안에 소비하는 것이다. 지금까진 최소한 그 지역에 사는 동식물이나 곤충 동을 주제로 축제를 열었다. 그런데 이제 축제를 위해 그 지역에 살지도 않는 동물까지 가져오게 된 것이다. 화천의 하천에 풀어놓은 산천어는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전부 죽는다. 끔찍한 대량 살상인 것이다.
그리고 여름에 제주에서 섬도보여행가 강보식을 만났다. 나는 해마다 한두 번 그와 제주를 걷는다. ‘망각여행‘이라고 이름붙인 이예행의 목적은 작품을 탈고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미 출판사에 넘긴 작품에 대한 걱정은 깨끗이 잊고, 일주일에서 열흘 남짓 즐겁게 아무 생각 없이 제주의 길을 걷는 것이다.
12킬로미터나 감량을 해서 나타난 강보식은 찐 감자와 귤과 사과와 당근을 내놓았다. 그리고 폭탄선언을 했다. 자신은 비건이 되었으니 채식을 같이 할 거면 함께 걷고 아니면 따로 걷자고.
같이 걷기로 했다. 강제 채식이 시작된 것이다. 매일 15킬로미터에서 20킬로미터쯤 걷고, 하루 세끼 채식을 먹었다. 일주일이 지나고나니, 5킬로그램 감량도 좋았지만 몸이 정말 가볍고 머리가 맑아졌다. 직업병으로 달고 살았던 어깨와 허리 통증도 싹 없어졌다.

이 대표는 초식과 육식동물의 똥에 담긴 미생물의 차이를 다시 설명하며, 나를 응원했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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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에서 보여준 김탁환의 문제의식에 깊이 동감한다.




‘벼농사 소멸‘은 식량 안보의 관점에서 따로 논해야 한다. 2015년에서 2017년까지 세계 평균 곡물자급률이 101.5퍼센트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겨우 23퍼센트이다. 77퍼센트의 곡물을 수입하여 충당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1헥타르당 농약 사용량과 화학비료 사용량은 다른 나라보다 월등하게 많다. 땅을 아끼고 환경을 생각하는 농업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 소멸‘ 역시 ‘각자도생‘이란 단어와 함께 주목받고 있다. 공동체의 안녕보다 개인의 성공을 최우선으로 두는 사회에서 실패한자, 가난한 자, 병든 자, 약한 자를 어떻게 보듬을 것인가 함께 돕고서로 챙기며 공공선을 추구할 길을 시급하게 마련하지 않으면, 많은 이들이 홀로 쓸쓸하게 스러질 것이다.
이와 같은 소멸의 행진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흐름인가. 낡고 느리고 돈이 되지 않은 것들은 사라질 테니, 새롭고 빠르고 돈이 되는것들에 집중하는 이 방식은 당연한가. 아침에 인터넷 서점으로 주문하면 저녁에 도착하는 책들을 보라. 책을 골라 모으고 포장하고
"배달하는 노동자의 손길을 떠올리니 문득 두려워졌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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