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사람이 권태를 망각하는 것은 그 개인을 위해서든 사회를 위해서든 바람직하지 않다. 권태의 망각은 즐거움의 중독으로 이어지며 악순환을 이루기 때문에 권태를 정면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창조적 열정으로 바꾸는 지혜가 우리에게 절실하다. 그 지혜는 단순히 어느 개인의 양심이나 선택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상은 물론 구조와 촘촘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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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를 마치고 텔레비전 앞에 앉은 직장인을 상상해보자. 그는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기 일쑤고 볼 게 없다는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우리가 언급했던 수많은 프로그램을 두고 왜 이런 불평을 할까? 우리는 대중문화의 획일성을 지적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생산자는 모험을 즐기지 않는다. 대중들은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듯 보여도 자신의 입맛을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따라서 생산자는 대중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만을 제공하게 된다.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모험은 도산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움을 가장한 그렇고 그런 콘텐츠가 매일 우리에게 제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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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를 통해 즐거움을 주는 폭력은 늘 존재했다. 예를 들어 로마시대의 검투사나 중세시대의 마녀재판은 권태에 지친 당시의 대중에게 볼거리를 선사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대중매체는 검투사, 마녀재판 등이 제공했던 폭력성을 매일같이 시청자에게 보여주면서 폭력을 일상화하고 있다. 20세기를 지나 특히 인터넷, 모바일폰 등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가 발달한 지금은 폭력이 너무나 만연해 있어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조차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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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1. 기독교 단체가 종교의 자유 주장하기 시작. 내 예상 적중. 신천지교회와 사랑제일교회만 유별난 것이 아니다. 사이비나 이단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의 기본 정서, 문화, 신앙관이 다 그렇다. 기독교는 본질은 그렇지 않다고? 그래 말 잘했다.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나면 이단이다. 그러니 한국 교회의 99.99%는 이단이거든. 믿거나말거나 누가뭐래도 난 그렇게 생각해.

2. 애써 밥 해먹으려는 것보다 그냥 사먹는 것이 더 싸고 영양도 좋은 것 같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3. 넘쳐나는 안전안내문자. 이젠 스팸으로 느껴진다. 안전불감증인가? 우울증인가?

4. 어제 열흘 이상 넘어서 다시 품에 안은 첼로. 엉망. 힘들다. 몸도 맘도 힘들고 활도 심들고 운지도 힘들다. 더운 여름나기의 고통인가? 우울증인가?

5. 컬러링북과 36색 색연필을 샀지만 그림 한 장 색칠하다가 말아버림.

6. 그럼에도 당근마켓을 통해 내일 디지털피아노 직거래 구매 예정. 죽지 않으려는 몸부림인가?

#우울증 #코로나 #기독교 #교회 #취미첼로 #취미피아노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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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정말 나의 욕망인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언제나 이미 사회적 규범, 즉 타자의 욕망이 덧입혀져 있기 때문이다. 바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언제나 ‘코타키나발루’ 섬에 가보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는데, 막상 꿈꾸던 그곳에 가서 "가자마자 섬을 다 뒤지고 다니고 음식은 죄다 먹어보고. 그렇게 딱 이틀을 지내니까 큰 의미가 없더라. 내가 정말 원했던 곳에 가보니까 알게 되었다. 내 욕망이 가짜였다는 걸"이라는 한 여성의 고백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인 버킷리스트의 품목들조차도 우리가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일인가를 묻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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