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8일 토요일- 인류의 디폴트 의무
사실 이 책이 우리집에 처음 도착했을 땐 정말 기대를 안했었다. 일단 책 이름이 너무 길어 한 눈에 들어오질 않았고 무엇보다도 제목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으며
(뭔가 저 단어 이 단어 다 조합해 그럴싸하게 급조한 느낌의 제목이었달까) 표지 디자인이 너무 종잡을 수 없고 무엇에 관한 내용안지 파악하기도 힘들만큼 산만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책을 받고 별 기대없이(오히려 실망한채로) 읽기 시작했는데 내 우려와 달리 책은 꽤 괜찮았다.
솔직히 난 이 책의 제목이 [꼰대 아빠와 등골브레이커의 브랜드 썰전] 이라길래 보통의 청소년 소설처럼 잡담에 가까운 둘의 초라한 입싸움이 주가 되 되 다소 찌질해 보이는 둘의 만담이
보는 우리들에게 묘한 충격과 깨달음을 주는, 그런 내용인 줄 알았다. 근데 내 생각보다 둘의 만담은 거의 없고 브랜드에 관한 둘의 서로 다른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정보가 많았다. 심지어 얼마 없는 이런 만담들 조차도 다 너무 지적이고 똑똑한 만담이라(특히 연수&현수 남매... 너무 충격적이었다......) 읽으면서 소설이라기 보단 학습만화를 읽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학습만화에서도 부모-자식 간 이나 친구-친구 간의 가벼운 대화도 무조건적으로 다 학습정보로 연결시켜 버리니까.. 어쨌든 청소녈 소설 특유의 통통튀는 발랄함과 귀여움이 좀 부족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학습소설로썬 꽤 괜찮은 책이었다. 하나의 지식을 말할 때도 신중하게 예시까지 들어가면서 설명하는 것과 사진까지 곁들어,
읽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쉬운 이해를 위해 노력한 것이 눈에 여실히 보이는 작품이었다. 또한 단순히 어른(부모)과 아이들(청소년)의 견해 차이만 보여준 것이 아닌 한단계 더 깊이,
사람과 철학까지 연결시켜 우리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하고, 의문을 가지게 하고, 답을 찾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소소하게 재미있는 것들도 꽤 있었고, 상식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 것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후반부에서 보여진 연수&현수의 대화가 아닐까 싶다.
아빠와 현수의 브랜드 썰전이 끝난 후 뒤에서 열심히 자신을 케어해준 누나 연수와 현수가 만담을 나누는 장면인데, 여기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나 아렌트라는 유대인 기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연수는 아렌트 기자가 취재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법으로 정해진 의무는 아니지만 도덕적인 의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유의 의무'에 대해서
현수와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이 때 나온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하는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봐야 하는 것!"
"자신이 한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일인지 생각했어야 한다는 것, 그건 인간의 의무"
물론 이 들 남매는 단순히 아빠와 현수에게서 시작한 브랜드 썰전을 훈훈하게 마무리 하자는 의미에서 이러한 대화를 한 것 이겠지만
요즘 같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정말 딱 맞는 말 아닌가 싶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해야 할 것이라는 사유의 의무, 이 공식은 작은 문제에던 큰 문제에던 가리지 않고 대입시킬 수 있는 디폴트 공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