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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입속에서
마이클 모퍼고 지음, 바루 그림,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10월
평점 :

밝은미래에서 출간된 주니어시리즈로 [안녕우주], [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는 딸아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고 이번 6번째 시리즈 [늑대의 입속에서]는 나와 아이가 접하는 세 번째 이야기다.
[늑대의 입속에서]는 세계2차대전 당시 평범한 선생님이었던 프랜시스 카마츠가 영국군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일종의 회고록으로 조카인 마이클 모퍼고 작가가 책으로 엮은 실화이자 동화이다.
90세가 된 프랜시스는 생일을 맞이했다. 모두의 축하를 받았지만 유난히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그는 오늘 함께 하지 못한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싶어 하며 90년의 삶을 추억한다. 이제 노인은 긴 추억속 항해를 시작하고 그의 이야기는 잔잔하고 덤덤하게 나레이션 된다.
전쟁이라는 가혹한 상황에서 맞이한 동생의 죽음과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동료들의 생사, 자신이 받았던 고문까지 기억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상황들이 감정에 크게 동요되지 않고 생각보다는 차분하게 읽힌다. 분명하게도 아픔이었고, 슬픔이었고, 매우 밝고 강렬했을 순간들이 90세의 노년 앞에서는 이토록 평온해질 수 있구나를 느낀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슬픔과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때론 아련하다.
저는 굳이 늑대와 싸울 필요가 없다고 말했어요. 그냥 돌아서서 놈들을 보고 손뼉을 치며 용감한 표정을 지으면 된다고요. 그러자 피터는 아니라고 했어요. 늑대들이 다가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면, 놈들이 우리를 잡아먹으려 하면, 우리 가족을 갈가리 찢으려 하면, 자기가 나서서 싸울 거라고 했어요. -본문중에서-
2차 세계대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던 피터와 프랜시스. 두 형제의 가치관이 달랐다. 평화주의자였던 형은 교사의 길로, 동생은 공군 입대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군입대한 동생 피터의 죽음으로 그는 인생의 변환점을 맞이한다. 그의 모토이자 삶의 신조였던 평화주의를 잠시 옆에 내려놓고 자신 역시 늑대의 입속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이제부터 펼쳐지는 전쟁의 중심에서 드러나는 이야기가 이 책의 진짜 핵심이다.
늑대의 입속으로 비유된 전쟁, 그곳에서 고군분투했을 프랜시스와 동료들의 이야기, 전쟁 속 두려움에 떨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 늑대의 입속을 탈출하게 되는 그 영광적인 순간들이 담백하게 기록되어 있다.
황혼의 문턱에서 들려 주는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가끔은 슬펐다가 가끔은 기뻤다가 한다. 전쟁으로 피폐해졌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그에게 이 모든 이야기는 추억속 과거일 뿐이다. 그저 평온한 순간이 그가 맞이한 지금이다. 길었지만 보람된 그의 90년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정의 시간들이었다. 기나긴 그의 삶에 이제는 두 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 그리고 손주 키아가 남아 있다. 그는 이 모든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