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
그레이슨 페리 지음, 정지인 옮김 / 원더박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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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최고의 미술상 터너 프라이즈 수상자 그레이슨 페리가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지금,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을 가르는 기준과 예술가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비아냥과 냉소를 듬뿍 곁들인 영국식 유머로 이야기해 주는 유쾌한 책..인데 원제와도 내용과도 동떨어진 제목이 아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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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들어가며)에서부터 어찌나 공감가는 부분이 많던지 전부 밑줄 긋고 싶었다. ㅎㅎ

 

나도 "책 사놓으니 내 집 딸은 안 읽고 남의 집 딸이 읽는다"는 친구 엄마의 한탄(4)을 많이 들었는데 ㅋ

(엄마의 잔소리에 지친 친구가 책을 더 이상 빌려주지 않겠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지식을 쌓지도 못했고 깨달음이나 통찰력을 얻지도 못했다. 물론 이렇게라도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더 형편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5)

저자는 겸손의 말을 한 것이겠지만, 정말 공감 백배..

 

그 외에도

 

그래도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 딱히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를 때는 그냥 하던 대로 책이나 읽자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길게, 오래 해왔고 그나마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6)

 

"주머니나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는 것은, 특히 불행한 시기에,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다른 세계를 넣고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오르한 파묵의 이야기처럼 가끔씩 책 속으로 도망치는 것은 도움이 된다. (8)

 

출간된 책은 영원히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기 소개하는 책 중 절판돼 이제 구하기 어려운 책들도 많았다. 책의 유통 기한은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관심 가고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다음번에'하고 미루지 말고 그냥 사야 한다. 책은 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사놓은 책 중 골라 읽는 것이니까. (9)

 

전부 맞아맞아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었다.

 

하루키를 원문으로 읽고 싶어 일본어를 배웠다는 부분을 읽고는 놀라웠다.

나도 하루키를 읽고 싶어서,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웠지만 히라가나조차 기억나지 않던 일본어를 다시 공부했는데!

나도 하루키의 책과 하루키를 다룬 책만 따로 모아서 서가에 꽂아두었는데~~

 

밥보다 책 2권을 기다려본다.

 

 

전자책이 아무리 대중화되었다고 해도 서가에 꽂힌 책등을 쑥 훑어보는 즐거움을 대신할 수는 없다. 도서관이나 서점의 서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구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하이퍼 텍스트다. 책을 살피다 비슷한 분야의 다른 책을 우연히 찾아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주제의 책으로 점프하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만남과 연상이 우리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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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0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표지는 살바도르 달리의 집

 

 

 

 

 

저자는 서문에서 모란디의 집을 가 보고서

조르조 모란디의 그림은 그가 이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해했다고 한다.

 

책 속의 많은 예술가 하우스 사진을 보고 나니, 완벽한 일대일 대응은 아닐지라도
예술가가 살던 집과 예술가의 작품의 분위기에는 조응하는 것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모란디의 그림과 모란디의 집

 

 

 

 

 

 

 

 

 

 

 

 

 

 

 

 

 

이런 집에서 산 예술가는

 

 

 

 

 

 

 

 

 

이런 그림을 그렸고 (모네)

 

 

 

 

 

 

 

 

 

 

 

 

 

 

 

이런 집에서 산 예술가는

 

 

 

 

 

 

 

 

 

 

 

이런 그림을 그렸다는 것. (귀스타브 모로)

 

 

 

 

 

 

 

 

 

 

 

 

르네 마그리트도..

 

 

 

책에는 화가의 그림은 실려있지 않으니, 잘 모르는 화가의 경우라면 구글에서 이미지 찾아가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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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20-01-30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잔의 집도 인상적이었는데 아틀리에 벽의 회색 색조가 창밖의 자연과 이어지도록 신중하게 골랐다는 것이 참으로 세잔답게 느껴짐 ^^ 르누아르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식당의 하얀 가구들도 예뻤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몇몇 예술가들이 이런 피곤하고 눈 먼 실존에서 우리를 구해 내, 바로 코앞에 있는 것에 눈을 뜨도록 해 준다. 예를 들어 웨인 티보는 1960년대 초부터 그런 역할을 해 왔다. 그는 바로 그 검볼머신이 파란 윤곽선을 후광처럼 두르고 신비로운 빛에 빛나고 있는 그림이나 사탕 색깔의 풍경화, 스파게티가 꼬인 것 같은 고속도로 그림들을 그려 왔다. 우리가 보았다면 아무것도 아니라서 지나쳤을 일상적 광경을 티보는 마치 천상의 것처럼 표현해 냈다. 284

 

 

 

 

 

 

 

 

 

 

 

 

 

 

 

 

 

 

 

 

 

 

 

 

샤르댕이 18세기에 오지그릇과 죽은 토끼로 하던 일을, 오늘날 티보는 검볼머신과 호박파이, 고기와 치즈를 파는 델리의 카운터, 립스틱, 그리고 핫도그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티보의 그림 역시 상실한 것들을 추억한다. 그림 속의 사물들은 아무 무게도 없는 듯 텅 빈 공간 속에 고립되어 있다. 이들은 너무나 특이한 방식으로 빛나고 있어서 거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데 천상의 빛이 아니면 수술실의 빛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한참 보다 보면 티보의 그림은 단순한 즐거움보다는 뭔가 복잡한 걸 전해 준다는 걸 알 수 있다. 샤르댕처럼 티보의 것도 본질적으로 기억에 가까운 이미지이고 이는 언제나 복잡한 양상을 띤다. 티보의 그림에 대한 반응은 실제의 세상과 우리가 바라던 세상 사이의 틈에서 천천히 우리 머릿속에 입력된다.

언젠가 작가 애덤 고프닉이 표현했던 대로 티보는 우리에게 진짜 치즈가 아니라 플라톤적인 치즈를 제공한다. 티보의 작품에서 현실과 욕망의 차이는 어쩌면 샤르댕의 그림에서보다 강도가 높아서, 그림을 처음 보고 즐거움을 느낀 후엔 슬픔이 물려오는 걸 맛보게 된다. 티보의 작품은 완벽한 세상에 관한 그림이 아니다. 그보단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 아직도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 관한 것이고, 우리는 그저 그림이 갖고 있는 가상적인 면에 잠시 기대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298-299

 

 

 

 

 

우리가 그림 속 핫도그나 립스틱을 보고 웃는 건 이들이 묘지의 비석처럼 비장하게 줄줄이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복 그 자체 때문이기도 하다. ....

동시에 그의 그림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주를 우리는 눈치채지 않을 수 없다. 파이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고 이는 표현적이고 즉흥적인 손놀림을 보여 준다. 티보는 주변 세상을 감상할 때는 신중하게 분별해서 보라고 제안한다. 다 똑같은 파이지만 똑같이 그리진 않았다. 300

 

 

 

 

 

 

웨인 티보, 진열된 케이크(7개)

 

샤르댕의 그림처럼 그의 그림도 행복감을 주는데, 다른 이유보다도 그림이 그 자체로 자족적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는 더 나아가 그림에서 묘사되는 보잘것없는 사물과 사람에 대한 어떤 메시지이기도 하다.

 가느다란 다리가 받치고 있는 원판 위의 케이크들을 그린 그림들을 보자. 뒷줄에 있는 프로스팅 케이크의 수직선이 앞에 있는 초콜릿 케이크 안에 든 크림의 결이 그리는 수평선과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지, 엔젤 케이크 가운데 뻥 뚫린 원형과 레몬 커스터드 파이의 노란 동그라미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케이크들의 수가 모두 일곱이라는 것과 양 옆에 세 개씩 케이크가 있는, 가운데 케이크 위엔 빨간색 아이싱으로 그려진 하트도 놓치지 말자.

맛있다.

 

 

 

 

 

 

음악은 시간을 통해 전개되는 예술이고, 그 경험 자체가 무척 강렬하면서도 긴박해서 감동을 주었던 음조차 듣는 순간 사라져 버리지요, 미술은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제외하면) 물러났다가 돌아와서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을 다른 식으로 움직이게 하지요. 아니면 적어도 나는 다른 식으로 움직인다고 할까요. 317

 

 

 

눈을 뜬다는 것은 실제로 생각보다 훨씬 힘들어요. 어쩌면 우리는 자라면서 보지 못하도록 훈련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어요. 주변에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각적으로 정지되어 있도록,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가 보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도록(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기 전에 설명을 먼저 읽는 것처럼) 훈련되어 온 거죠. 본다는 건 때로 그저 믿는 걸 뜻해요. 봐야 하는 방식대로 보는 것에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고 자기만의 감각으로, 자신에게 의미 있는 뭔가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해요.

대개 미술에 관한 글들은 눈을 뜨고 있으라고 권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라고 지시할 뿐이죠. 하지만 가장 값진 교훈은 예술가들로부터 얻을 수 있어요. 그들은 그냥 보는 행위를 즐길 뿐, '옳게' 노는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죠. 319

 

 

 

 

 

많은 동시대 미술들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도록 고안된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 사람들이 미술을 보며 따돌림을 당하는 느낌을 갖는 건 이해할 만해요. 그런 예술에 대한 글들은 아주 거만할 때가 많지요. 부와 권력과 배타적인 인상을 주는 이런 글들은 단순히 불쾌할 뿐 아니라 아주 역겨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삶에서 쉬운 건 없듯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우리 자신이 노력을 해야 해요. .... 동시대 미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회의는 건전하지만 냉소는 그렇지 않아요. 이런 정신만 있다면 누구나 동시대 미술을 즐기고 이해할 수 있어요.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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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28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성스레 미술작품 사진 올려주셔서 눈이 배부르고 갑니다.

slobe00 2020-01-28 18:13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쁩니다 ㅎㅎ
 

 

 

 

 

 

 

 

 

 

 

 

 

 

 

 

작년에 읽은 이택광의 <버지니아 울프 북클럽>은 좀 실망스러웠는데, 이번에 읽은 알렉산드라 해리스의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으로>는 아주 좋았다. 짧은 분량이 아쉬울 뿐이었으니.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적인 소설과 에세이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책들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듯. 다 좋은 책들이었다.

올해에는 읽다 만 <막간>이나 <제이콥의 방>, 그리고 아직 구하지 못한 허마이오니 리의 버지니아 울프 전기를 읽고 싶다.

 

 

 

 

 

 

 

 

 

 

 

 

 

 

 

 

 

 

 

 

 

 

 

 

 

 

 

 

 

 

 

 

 

 

 

 

 

 

 

 

 

 

 

 

 

 

 

 

 

 

 

 

 

 

 

 

 

 

독창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줄거리였지만(출항), 울프는 이 흔한 소재를 가지고 모종의 아스라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엮어냄으로써 뚜렷한 형태로 구체화되기를 거부하는 어떠한 의미를 가리켜보였다.

...이 침묵 속에는 여자들에게 주입되어 있는 수동성에 대한 울프의 맹렬한 비난이 깃들어 있지만, 그런 맹렬함이 터져 나올 만한 직접적 통로는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테렌스는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는 여자들의 시각을 떠올리면서 "피가 끓지 않습니까?" 라고 묻지만, 독자의 귀에 들리는 것은 레이첼이 마음속에 떠올리는 막연한 대답과 레이첼이 겨우 꺼내놓는 양보와 타협의 몇 마디 뿐이다. 67

 

 

 

 

 

 

 

 

 

 

 

 

 

 

 

 

<밤과 낮>은 이행의 순간들에 주목하는 소설이자 "관습적 문체"가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하고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한 소설이자 마구 뻗어나가던 책 전체를 끝부분에서 하나의 단순하면서도 비전의 속성을 띠는 이미지로 압축하는 소설이다. 캐서린이 랠프와 함께 환한 가로등길을 걷는 장면이다.

"불가사의한 수수께끼가 풀린 느낌, 어려운 문제가 해결된 느낌이었따. 우리가 혼돈과 혼란으로부터 평생을 바쳐서 다듬어내고자 하는 비뚤어짐 없는, 모자람 없는, 허술함 없는 유리구슬을 캐서린은 아주 짧은 순간 두 손에 담은 느낌이었다."

울프의 이후 소설들이 지향하는 선명한 비전을 미리 일별할 수 있는 순간이다. 77-78

 

 

 

 

 

 

 

 

 

 

 

 

 

<밤과 낮>은 울프의 전시 소설이다 (1918년 가을에 전쟁이 끝나면서 이 소설도 완성되었다). <밤과 낮>을 쓰는 동안 바람결에 실려 오는 소리들 중에는 프랑스 북부의 포탄소리도 있었다. 낮게 우르릉거리는 죽음의 소리는 약했고, 멀었고, 어떤 일상과도 잘 어우러지지 않았다.

나중에 <등대로>에서 울프는 앤드류 램지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꺽쇠 괄호에 넣게 된다. 그래서 전쟁이 비현실적이고 먼 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전사가 충격적인 죽음, 개죽음이라는 느낌은 그만큼 더 강해진다.

혹자는 울프가 자기 시대의 대규모 분쟁들을 직접 다루지 않은 작가라고 비판하지만, 울프의 모든 전후 소설들은 우리가 전쟁으로 무엇을 잃어버렸나를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작품들이다. 79

 

 

 

울프에게 일기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삶의 덧없음에 저항하는 방법들 중 하나였다. 하루하루가 기록도 없이 그냥 흘러간다는 생각이 울프에게는 상실감의 원천이었다.

"삶이라는 수돗물이 그냥 허비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울프였다.

 

버지니아가 기록하고 싶어 하는 일 중에는 외적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들도 있었다. 버지니아에게 더없이 행복한 하루는 더없이 조용한 하루인 경우가 많았다. 버지니아와 레너드는 일과표를 준수함으로써 모종의 생산성을 확보하는 하루하루에서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 1922년 어느 목요일의 하루 일과를 완수한 버지니아는 그 날을 가리켜 "아름다운 서랍들을 아름답게 조립해서 만든 완벽한 캐비닛 같은" 날이었다고 했다. 버지니아에게 깊은 만족감을 안겨운 하루였다. 84

 

 

 

 

 

 

 

 

 

 

 

 

 

 

"삶이라는 수돗물"은 그렇게 울프의 일기와 편지를 채워나갔다. 87

 

 

 

 

과거와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울프의 머릿속에 문득 소설 한 편의 형태가 떠오른 것은 평소처럼 타비스톡 스퀘어를 산책하던 1925년 봄의 어느 날이었다. 울프의 다른 많은 소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떠오른 형태가 끝까지 유지되었다. 울프는 산책에서 돌아오자마자 노트에 "H" 모양을 그렸다. ("두 개의 직사각형이 한개의 선으로 연결된 모양")

과거, 중간 휴지,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이렇게 세 부분이었다. 이 단순한 구조가 <등대로>의 플롯이자 요점이었다.

울프 자신도 인정했듯이 <등대로>는 가족력의 유령들을 잠재우는 작업이었다. 121

 

 

 

 

 

 

 

 

 

 

 

 

 

 

 

바로 이런 단순한 사실에 감정적 무게를 실을 수 있다는 것이 울프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울프는 어떤 면에서는 복잡미묘한 작가지만, 울프가 늘 추구하는 것은 아무 군더더기 없는 더없이 단순한 문장이다.

완성을 앞둔 릴리에게 남은 일은 화폭의 중심에 선 하나를 긋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선은 바로 그 선이어야 한다.

"계단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고 그림은 아직 어렴풋했다. 갑자기 맹렬한 기세로, 마지 그 선이 한순간 눈앞에 나타나기라도 한 듯, 릴리는 거기에, 중심에 한 선을 그었다."

울프는 이런 분명함의 경험들을 설명할 수 있는 모종의 철학을 마련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어렴풋했던 것들이 아주 잠시 분명해지는 충격적이거나 계시적인 순간들을 울프는 살면서 계속 경험해오고 있었다. 129

 

 

 

 

 

자신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은 울프에게 깊은 만족의 원천이었고, 자신의 돈이 삶의 질을 높여 주는 물건들로 번역된다는 사실은 울프 자신에게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상상력의 산물들을 꽃병이나 의자로 바꾸어놓는 돈의 연금술 앞에서 울프는 항상 경이로워했다.

<댈러웨이 부인>으로 번 돈은 몽크스 하우스에서 욕실 하나와 화장실 두 개로 바뀌었고 (그 중 하나의 이름은 '댈러웨이 부인 화장실'이었다.)

<등대로>로 번 돈은 자동차로 바뀌었다. 자동차는 정신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점에서 <자기만의 방>에서의 고급 런치와 같은 기능을 한다 (좋은 글은 정신의 풍요로움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울프 부부의 싱어 자동차 (애칭은 '등대')가 울프의 정신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주었는지는 <올랜도>의 문장 속에서도 감지된다. 장면이 휙휙 바뀌고 세상이 활짝 열린다.

.... <올랜도>로 번 돈은 몽크스 하우스에 울프의 새 침실을 마련하는 데 들어갔다. 146-148

 

 

 

 

 

 

 

 

 

 

 

 

 

 

 

 

 

 

 

실제로 울프는 <세월> 곳곳에는 사실들에게 극도의 아름다움을 허용함으로써 자신이 일상의 것들을 미학적 쾌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세월>은 어른거리는 물그림자 같은 작품, 정확히 포착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고, <세월>의 등장인물들은 "또 다른 삶",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막연한 비전을 어떻게든 표현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세월>에서도 이면의 패턴을 찾는 일이 걔속된다는 뜻이다.

엘리노어는 이렇게 자문해보기도 한다.

"그 패턴을 만드는 건 누구일까? 그 패턴을 생각해내는 건 누구일까?" 18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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