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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가지 행동 - 김형경 심리훈습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2월
평점 :
젊은 시절엔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내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게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곤혹스러워졌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불안의 감정이 불쑥불쑥 치솟고 늘 내마음은 화가 나 있는 상태였으며, 그것은 큰 아이를 향해 퍼부어졌다. 별것도 아닌 일로 아이에게 자주 분노하고 화를 내곤 나선 난 무기력해지고 허탈했으며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해야 했다. 아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는 행동들을 되풀이하는 것. 그것은 참 괴로운 일이었다.
내가 왜 그러는지 처음엔 몰랐다. 그러다 40대가 되어 알게 되었다. 어린시절에 내가 받은 상처와 욕구 불만이 고스란히 내 맘 속에 불안과 분노로 쌓여 있고 부모님에 대한 분노를 아이에게 대신 투사하고 있다는 것을.
내 안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가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 분노를 나는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알고 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의 괴리 속에서 나는 늘 자책하고 또다시 되풀이되고 또 자책하고. 이렇게 내 마음에 휘둘리다간 나는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마저 엄습해왔다. 내 불안과 분노의 뿌리는 너무 깊은 것 같았고 그것을 내 머리는 의식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의 분노는 머리보다 언제나 빨리 제멋대로 솟구쳐 올랐다. 분노가 휩쓸고 간 자리는 황폐하고 쓸쓸했다. 내 마음은 시인과 촌장이라는 가수가 불렀던 가시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자리 없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릴 뺏고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외로운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아직도 나는 내 마음의 주인이 아닌 노예처럼 휘둘리며 살 때가 많다. 내 마음이 불편할 때 내 마음이 왜 그러는지 무엇때문인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음공부를 난 평생 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는 만큼 실천하진 못하지만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천지차이다. 모르면 영원히 그대로지만 적어도 알고 노력해 나가면 조금씩이나마 아주 더디게라고 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가지 행동>은 마음공부를 위해 읽은 책이다. 소설가에서 이제는 심리에세이 작가로 자리를 굳힌 듯 보이는 소설가 김형경의 전작 <사람풍경>, <천개의 공감>, <좋은 이별> 등이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춘 거라면 이 책은 '행동'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자기 변화 매뉴얼'이란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은 공감이 가고 어떤 부분에선 지나치게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하고 끼워맞추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작가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한 자세한 언급에는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작가의 소설 <새들도 제 이름을 불며 운다>는 소설만 읽었고 심리에세이는 이번이 처음인데, 작가의 전작 심리에세이 <사람풍경>, <천개의 공감>, <좋은 이별> 등을 먼저 읽었어야 맞았을 것 같다.
그러함에도 이 책은 나의 마음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충고, 탐색, 해석, 비판'이라는 나의 특성이기도 한 그것들로부터 좀 자유로워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인 '정신분석을 넘어서' 부분이 공감이 많이 갔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성과 속의 통합을 언급하며 영성, 영적인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도 엉터리긴 하지만 신앙이 있기에 이 부분에 공감이 더 간 것 같다. 알콜 중독자가 신의 자비가 없이는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분노 역시 신의 자비가없이는 제거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마음의 주인으로 서는 것도 인간의 지식과 지혜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느끼지만 그것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앞으로도 마음공부를 하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 마음의 주인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이 모든 우주를 아우르시는 거룩하신 분께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캄캄한 어둠,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시나무와 서늘하게 불고 있는 바람의 울음소리를 잠재워달라고 자비를 청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