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책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시험을 위해 알았을 뿐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그 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나무만을 너무 생각하느라

자살한 노동자의 유서에 스며 있는 슬픔이나

비전향자의 편지에 쌓인 세월을 잊을지 모른다고

때로는 겁났지만

나무를 뽑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그루의 나무를 기준으로 삼아

몸무게를 달고

생활계획표를 짜고

유망 직종을 찾아보았다

그럴수록 나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었다

 

내게 지금이 책이 무거운 이유는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 박고 서 있는

그 나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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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히도 흔들리는 노래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어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며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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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내 생애 바람 불지 않은 적 있었더냐

날마다 크고 작은 바람이 불어왔고

그때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바람이 잠잠해질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기다리는 그 순간 때문에

내 삶은 더뎌졌고

그 더딤을 만회하기 위해

나는 늘 허덕거렸다

 

이제야 알겠다, 바람이 분다고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다리는 이에게 바람은 더 드세게

몰아닥칠 뿐이라는 것을

 

바람이 분다는 것은

헤쳐 나가라는 뜻이다

누가 나가떨어지든 간에

한 판 붙어보라는 뜻이다

 

살다보니 바람 아닌 게 없더라

내 걸어온 모든 길이 바람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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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서 있는 갈대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갈대가 흔들리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그 바람이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려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서 있는 내가

흔들리며 방황하는 것은

내 마음속, 그대가 바람처럼 불기 때문이다.

내가 밤마다 별빛처럼 스러지는 것은

그대가 자꾸만 나에게서

세월처럼 멀어지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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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19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이 세월이었네요^^..시의 메타포가 울립니다~

줄리엣지 2016-08-19 11:33   좋아요 2 | URL
오늘 아침 문득 눈에 들어온 詩입니다. 아직도 나에겐 뜨거운 사랑이 남아있는지..이 시로 인해 아침부터 센치해지네요..유레카님~ 블로그방문 항상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어디 내 생애 바람 불지 않은 적 있었더냐

날마다 크고 작은 바람이 불어왔고

그때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바람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곤 했다


기다리는 그 순간 때문에

내 삶은 더뎌졌고

그 더딤을 만회하기 위해

나는 늘 허덕거렸다


이제야 알겠다, 바람이 분다고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다리는 이에게 바람은 더 드세게

몰아닥칠 뿐이라는 것을


바람이 준다는 것은

헤쳐 나가라는 뜻이다

누가 나가떨어지든 간에

한 판 붙어보라는 뜻이다


살다보니 바람 아닌 게 없더라

내 걸어온 모든 길이 바람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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