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크게 세 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성별화된 사회와 젠더 체계>에서는 젠더 개념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이론적 논의를 살펴보며 우리의 잘못된 상식을 바로 잡고 젠더 체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얻는데 목적을 두었다. 다소 복잡하고 논리적인 서술을 주로한 부분으로 젠더 체계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우리가 직면한 성별 불평등의 현실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가장 앞부분에 두었다. 2부는 <젠더와 일상>이란 제목 아래 연애와 몸 가꾸기, 가족, 노동, 미디어, 남성문화 등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사건들 중심으로 쉽고 흥미롭게 읽힐 수 있는 글들을 엮었다. 1부에서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면서 익힌 개념과 이론들을 2부의 일상 경험에 적용해 보면서 읽어가도 좋을 것이다. 3부 <젠더를 넘어서 성평등으로>는 성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실천으로서 정책과 운동을 다루고 있다. 여성 정책과 여성운동을 토대로 하면서도 성평등 수준을 높이기 위한 성평등 정책과 성평등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전망을 논의 다.       

 

-들어가는 글 중 발췌-

 

 

 

 

 

 

무려 2년에 걸쳐 읽은 책. 2016년도에 다 읽었다면 내게는 2016년 최고의 책이 되었을 것이다. 정말 좋은 책은 리뷰를 남기는 것도 정말 어렵다.  그럴만한 능력이 없는 탓이지.

매우 드물게 두번 읽고 싶은 책. 오늘은 밑줄긋기로 정리만 한다.

 

 

페미니즘은 근대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시민혁명의 근간이 된 천부인권론에서 미처 담지 못한 공백을 채우는 사상이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해방 없이는 민주주의의 완성이나 인간 해방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보편적 인권개념에는 은폐된 성차별 영역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현대로 올수록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차별뿐 아니라 엄격한 성 역할 구별로 억압을 느끼는 '남성'이나 스스로 느끼는 성 정체성이 사회가 허용하는 범주와 맞지 않아 갈들을 겪는 이들까지 포함하는 쪽으로 확장되고 있다.

페미니즘은 서구에서 유래했지만, 현재 세계 곳곳에 여성의 권리 또는 성평등을 위해 활동하는 개인과 조직이 있다. 또한 계몽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근대 사상상의 흐름 속에서 분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단수  femimism보다는 복수 feminisms로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성차별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지,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는 해법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자유주의, 사회주의 ,급집주의, 실존주의. 생태주의 등의 수식어를 페미니즘 앞에 붙이기도 한다.  p22-23

 

드 구즈나 울스턴크래프드, 스탠튼처럼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를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매우 평범하나 중요한 진리를 구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는 점을 강조하다보니, 여성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여성 사이의 차이도 남녀차이 못지않게 크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현실에서는 같은 여성이라도 계츠이나 인종에 따라 전혀 다른 대우를 받기 때문에 삶을 개선하기 위해 우선 해결할 과제가 무엇인가는 여성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다를 수 있다. 흑인노예 출신으로 노예제 폐지운동에 앞장섰던 소저너 트루스는 어느 날 연설에서 여성이라고 다 같겠냐고 질문을 던졌다. p26-27

 

제1차 여성운동과 비교하면 제2의 물결은 제도 개선과 더불어 개인의 삶과 일상의 변화에 방점을 찍었다. 운동의 지행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에 응출되어 있는데, 이 문장은 그때그때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였다. 우선 첫째,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로 간주되는 연애, 임신, 육아 등도 사실은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개인의 빈곤이 사회구조적 문제인 것고 ㅏ마찬가지다. 두 번째로 일상의 영역에 속한다고 소소하게 취급되는 문제도 사실은 노동운동이나 시민권만큼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다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가사 분담을 의논하는 것은 학생 조직의 민주성을 논하는 것만큼니아 중요하다. 혹은 가정폭력 문제를 이슈로 부각하는 것도 공권력의 탄압을 규탄하는 일만큼 중요하다. 세 번째, 실천의 측면에서 본다면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은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며'정치적으로 올바른'선택이 무엇인지를 매순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여성해방운동 시기에 등장했던 수많은 의식 고양 모임은 남성은 공적 영역, 여성은 사적 영역으로 나누는 이분법이 가부장제가 주입한 허위의식이라고 비판하고, 일상의 정치성을 드러내고 개인과 사회를 함께 변화시키는 방안을 탐색했다. p37-38

 

여성억압의 기원이 자본주의인가 생물학적인 성차인가, 당면한 적이 체제인가 남성인가, 여성은 남성 지배적인 좌파와 계속 협력해서 일해야 하는가 아니면 남성과 관계를 끊고 여성들과 연대를 구축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은 미국 여성해방운동 진영을 정치파와 급진파로 분열시켰다. 여성운동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급진파와 달리, 정치파는 여성 문제를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더 큰 투쟁에 포함되는 부문운동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가진 마르크스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독일의 여성들도 비슷한 분열을 경험했다. "경제부국을 자랑하는 서독 사회에서 여성들이 감수해야 했던 모순은 진보성을 천명한 학생 청년운동 내부에서도 일어났다…밤을 지새우며 서독 사회의 모순과 그 척결 방안을 토론하는 남성 동지들을 위해 그들은 커피를 끓이고 내일 뿌릴 전단을 타자로 쳤다(…)진보적인 남성들에게 성관계, 임신, 그리고 육아는 서로 상관없는 각각의 문제였으며 해방된 여성이라면 혼자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p46

 

중요한 것은 젠더가 단순히 여성성과 남성성의 동등한 '차이'를 구조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분명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차이를 서로 반대되거나 결합할 수 없는 이질적인 요소 등으로 구분하고, 가치 판단이 개입되면서 그 과정에서 둘 간의 '위계'가 만들어 진다. 즉'차이'가 차별이 된다. 1948년 시몬 드 보부아르는 그의 저서《제2의 성》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로, 젠더 개념을 제시한바 있다. 보부아르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단순한 성적 차이가 아니라 남성중심적 가치와 규범을 반영하면서 성립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강한 성 또는 제1의 성으로 스스로를 정의해온 남성에게 여성은 남서의 '타자', 즉 제2의 성으로 간주되면서 남성에 의해 정의되고, 정체성과 역할이 규정되는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이성애 남성이 남성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은 자동적이거나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다. 그는 성장하면서 그의.타자'. 즉 여성이나 기타 성소수자와의 '차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남성성의 의미를 획득해 간가. 즉, 타자에 대한 우월성을 내재화하면서 정체성을 획득한다. p65-66

 

능력을 통한 주류 사회의 진출이 용이해진 상황에서 여성들의 경쟁력과 경쟁심 또한 강화되고 있다. 때문에 집단적으로 여성들이 경험하는 구조적 차별들에 대해 운동에 대한 반감이 증대된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능력이 있고,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 파멸은 이제 종식되었다고 선언되기도 한다. 자신들이 '해방'되었고, 남성과 똑같은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여성운동이나 페미니즘이 여성을 집단적으로 '피해자'화  한다는 이유로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경향도 강해진다. 그러나 '젠더'에 기반을 둔 위계화는 심화되고 있다. 여성들은 저임금 일자리로 몰리며, 심화된 빈곤을 경험한다. 국가의 방기로 여성과 어린이는 성적 폭력의 '쉬운 희생자'가 된다. 소위 성공한 여성 또는 이러한 체제를 지속하거나 강화하는데 공모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이 필요하다. p93

 

 

생물학 지식을 주어진 '진실'이 아닌 비판적 분석 대상으로 삼는 일련의 연구에 힘입어 페미니스트들은 '섹스'와'젠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 둘을 개념적으로 엄격히 분리된 것으로 보기보다는 둘사이의 연관성과 더 나아가 그 관계의 변증법적 특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섹스는 생물학적 내용만 갖고 젠더는 생물학을 제외한 사회문화적 내용만을 갖는다는 식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실천이 생리적 차이에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차이가 다시 화회적 관계를 구조화하는 상호 역동적인 과정을 본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시기 중국 여성의 발 크기는 전족이라는 사회적 관습을 언급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었다. 또한 육상 경기의 남녀 기록 차이는 여성의 경기참여가 허용된 시기가 언제였는지 제도의 역사를 무시한 채 평균적인 완력 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 경기에 여성의 참여가 허용된 것은 불과 1984년의 일이다.p137

 

물리학에서 발흥한 과학혁명은 자연 세계를 한층 더 근원적이고 원자적인 요인으로 조직화하고 해석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갈릴레오부터 뉴턴에 이르기까지 단지 물리역학의 승리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다, 물질의 운동 즉, 자연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확신은 인간 이성 일반에 대한 낙관론으로 이어져 지성사적으로 계몽주의를 추동했다.

또한 프랑스혁명으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시민혁명과 그것의 기반이 된 자유쥬의 사상은 사회의 권위나 제도 같은 기존 질서에 대한 반기를 추동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집단보다는 개체를 우선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이로써 전체론적이고 조화론적인 세계관은 종말을 고하고 원자론적이고 기계론적 새계관이 도래했다. 새로운 세계관은 차이의 근거를 사회적 요인보다는 개인적 자질에서 찾았고, 개인의 성공이나 실패의 결정 요인으로 사회적 요인보다는 개인적 자질을 강조하게 된다. 지본주의의 경제적 성공과 함께 도래한 산업주의와 부르주아의 정치적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또 다른 한변으로 식민지 착취라는 현실의 공존은 인간 집단 사이의 불평등한 지배를 정당화할수 있는 집단 간 차이의 근거를 찾아야 하는 필요를 낳았다. p141

 

사회생물학은 대부분의 경우, 동물의 행동을 보여주고 이것에서 인간 사회에 대한 함의, 즉 진화적 기초를 발견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언제나 주의해서 보아야 할 점은 동물의 행동 그러니까 자연적 사실의 "발견"으로 제시되는 그 행동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사회적 사실을 기초로 "해석"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발견'이 전제한 사회적 사실은 결국에 자연적 사실로 정당화되는 사회적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p152-153

 

또한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특정 호르몬과 행동을 연관 짓는 연구가 붐이었다. 예를 들어 보통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많은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으로 공격성을 측정하려는 시도는 냉전 체제와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같은 사회적 배경에서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런데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과학자들은 '테스토스테론이 공격성을 낳는다'라는 '호르몬→행동"의 인과관계를 상정했으나 공격적인 상황 자체가 테스토스테론 분배를 촉진한다는 연구가 나오자 인과성이 아닌 상관성을 주장하는 정도로 후최했다. 그러나 이후의 실험은 동일한 상황에서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함을 보여주었다. 사실 테스토스테론과 공격성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라는 등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남성적 행동 특성이라고 알려진 공격성을 그 물질과 연결시키고 있을 뿐이다. 다른 예를 하나 들어 보자,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의 암컷이 막 새끼를 낳았을 때 사람이 다가가면 이 동물은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때 우리는 암컷이'포악해졌다'혹은 '방어적이다'라고 말하지 '공격적이다'라고는 표현하지 않는다. 과연 실험실에서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특정 호르몬을 과다 주입잡은 수컷과 새끼를 낳은 암컷이 보여주는 행동을 하나는 '공격적'이고 다른 하나는 '방어적'이라고 정반대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둘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일까? p157-8

 

하딩은 '문제 선택'을 눈감아 버리는 가치중립적 객관성을 "약한 객관성"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강한 객관성"을 주장한다. 지식 활동은 특정한 문화 맥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그 모든 가치체계에 대해 엄격한 성찰을 시도하는 연구야말로 지식의 객관성을 극대화하는 강한 객관성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차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접할 때 주의해서 따져보아야 할 점은 바로 이러한 '문제 선택'이다. 즉 그러한 지식의 생산과 확대 그리고 대중적 수용이 어떤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이분법적이고 차별적인 사회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평등한 사회에서 생산되고 수용되는 과학적 지식은 분명 다르다. 통념이라는 이름의 편견을 지나치지 않고 인식하고 성찰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복합적 실재에 대한 통찰 또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p161

 

'성매매'라는 용어를 '성노동'으로 전환해 성매매 치해 여성들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고 이들에 대한 낙인을 줄이며 실질적인 권익을 신장하자는 주장도 있다. 성노동의 합법화는 여성의 노동권을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남성의 자연적인 성적 욕구에 기반 한 성매매가 불가피한 것이라는 관점에 동조하고, 돈과 권력이 있는 자에게 '살 권리'를 승인해 줌으로써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전유를 인정한다.(권력관계 재상산에 기여) 성매매를 정부 통제 아래 두자고 함으로써 국가 규제주의의 성격마저 지닌다.

성매매는 섹슈얼리티의 단순한 교환관계거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젠더 불평등의 효과이자 이를 유지·재생산하는 제도다, 또한 섹슈얼리티, 나이 계급, 민족, 인종 등의 문제가 얽힌 포괄적인 권력관계(기반이자 결과)의 문제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미군정기와 한국전쟁, 군사주의 체제를 겪어 온 한국에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상보적으로 지지되는 지점에 국가 간, 남성 집단 간에 교환되는 여성의 몸이 있었고, 국가가 관리하는 성매매 시스템(공창제도와 기지촌 성매매)이 있었따는 역사적 사실은 성매매가 그리 단순한 거래 행위가 아님을 증명한다. p193-194

 

그러나 남성의 돌봄 참여 제도화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기본적 권리, 탈상품화를 위한 사회권 확보를 위해 먼저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남성이 빠진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육아휴직의 확대는 여성을 보호하기보다는 영원한 2등 시민으로 제한하는 차별화 기제가 되기 쉽다. 돌봄 정책이 여성만이 아닌 남녀 모두의 요구가 될 때 진정한 권리로서 확대될 수 있다. (…) 남성의 돌봄 참여 제도화는 남성의 가족화를 통해 여성의 일-가족 병행이 실질적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성평등을 위한 돌봄 정책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p429

 

성평등에 대한 서로 다른 비전을 배경으로 하는 균등 처우접근과 특별 처우 접근은 '울스턴크래프트의 딜레마' 혹은 '평등과 차이의 딜레마'라고 불리는 여성주의의 오랜 딜레마를 반영하는 것이다. '같음'혹은 '차이의 인정'으로 이해되는 성평등에 대한 비전은, 출발점은 다르다 할지라도 남성의 규범을 삶의 표준으로 인식한다는 동일한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결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즉'같음'으로서 평등은 출발점 자체가 남성의 경험에 적합하게 정의된 규범을 여성에게도 동등하게 적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차이의 인정'으로서 평등은'여성의 욕구'에서 출발한다고 할지라도'남성과'다른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여전히 '남성과'같아질 수 없는 여성의 욕구는 주변화되기 쉽다.

같음과 차이의 딜레마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성불평등 구조의 변혁을 지향하는 평등 비전이다. 같음에 기초한 '남성의 관점'도, 차이의 인정에 기포한 '여성의 관점'도 아닌 제3의 관점으로서 '젠더 관점'의 통합이 성평등에 대한 새로운 전략으로 인식된다. 젠더 관점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인식하되 이를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맥락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이제 평등은 법·제도상의 동등한 개인의 권리와 기회의 보장이나 남성과 다른 특수한 집단으로서 여성만의 '특별한 욕구'충족을 넘어서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관계를 가져오는 체계와 구조 자체의 변혁을 통해 성취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를 위한 정책 접근이 바로 1995년 북경세계여성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도입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성 주류화다.

p458-459

 

여성 정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여성주의의 선험적 정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평등에 대한 여성주의 이상이 현실 정치의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어떠한 효과를 가져 오는지에 대한 냉정한 성찰과 이에 대한 전략적 대응, 그리고 주류 정치와의 보다 치열한 토론과 논쟁이다. 여성주의는 여성주의 성쳥등 비전이 다양한 성평등의 의미화 방식 중 하나일뿐이며, 여성주의는 하나의 과정이자 실천이라는 것을 전제로 다양한 정책 주체들과의 지속적인 토론과 논쟁을 벌여야 한다. p484

 

 

급진적 페미니즘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파이어스톤은 1970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성의 변증법》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은 여성을 위해 충분히 혁명적이지 않다'고 선언했다. 그는 여성억압의 기원은 경제적 기원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인 기반을 가진것이므로 계급 분석만으로는 부족하며,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생식기능의 차이가 크다고 보았다. 파이어스톤이 제시하는 여성해방의 해법은 여성 자신이 재생산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와 기술을 가짐으로써 생물학적인 숙명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여성이 성계급이라는 하위 카스트에서 벗어나려면 복제와 인공수정으로 출산을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이어스톤의 주장이 당시에는 황당하게 들렸겠지만 오늘날 의학의 발전으로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애기가 됐다. 하지만 오늘날 발달된 생식기술은 여성을 재생산으로부터 해방 시키기보다 태아 감별이나 무리한 인공배란, 대리모 등으로 오히려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문제는 여전히 과학기술이 아닌 권력관계임을 알 수 있다. p45-46

 

 

주변 사람들에게 늘 하던 말이다. '여자만 출산을 해야하는 생물학적 위치에서는 절대로 성평등은 이루어 지지 못해'.

나는 인간 종이 멸종할때 까지 성평등(인종,계급등 포함)은 불가능 할것 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는 여성혐오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성혐오를 하지 않으려고 끈임없이 자신을 검열하는 사람이다. 성평등이 인간 멸망때까지 이루어 지지 않을지라도 끝까지 고민하고 연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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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혼자 뭐먹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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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1-1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흐흐흐*^^

아무개 2017-01-16 10:11   좋아요 0 | URL
^^:::::::::::::::
 
오늘처럼 고요히
김이설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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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과 그들의 비극적인 상황들이 진부하다.
이정도의 비극은 어느 가정에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여느 가족에게 있을수 있는 일이 아닐수도 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에서는 별것아닌 것들이 다른이들에게는 별것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진부하군. 이라고 말한것은
내 세계를 읽는듯한 익숙함 때문일것이다.


아버지는 검사를 받으러 하루입원을 했다가
갑자기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죽을뻔했고 폐뿐아니라 심장에도 이상이 있어서
장기입원이 될듯하다.
일주일에 60만원이나 하는 간병인을 구해줬는데 당장 바꾸라고 아침부터
전화로 난리난리. 고집이 쎄서 자기말은 안듣고 간병인이 멋데로 한다는게 이유.
다른곳 섭외해놓았더니 전화가 다시 왔다.
서로간에 ‘오해‘가 있었던거 같다고, 대화로 풀었으니 그냥 두라고. 간병인과 연애라도 하는건지.

나의 연애는 삐걱삐걱 진행중이다.
나의 초울트라슈퍼 비관적 성격과는 다른
내 애인의 초초울트라하이퍼 긍정력 덕분에
나는 그런데로 밝아지는듯 한데
애인은 점점 어둠의 세계로 미끄러지는듯 하다.
어둠은 빛을 이길수 없는거 맞나?
늘 긍정의 화신같던 사람이 브레이크도 없이 미끄러지고있다. 더 밀어 넣지나 말아야 하는데. . .


「오늘처럼 고요히」그냥 살기위해 살자.
고요히. . . .?

˝사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사는 것이 전부가 되는 게 옳은 것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p294

˝다른 사랑이 슬픔을 대신 덜어줄 순 없다. 대신 앓을 수 없고, 대신 살아줄 수도 없듯이˝p89


약속이 지켜지리라 믿어온 사람은, 서로가 주고받은 약속이 균등하게 교환되지 못할 때, 사람은 ‘실망의 침묵‘ 단계에 접어든다. 약속이 지켜지리라 믿어온 사람은 약속을 건넨 시람과 공유해왔던 사연을 자신 안에 가두고 자발적 고행에 들어간다 -해설중 p335

등단 10년동안 식탁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한다.
작가에게 ‘자기만의 방‘이 주어진다면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성들이 이야기에 등장하리라 생각한다. 고요하지 않고 고요하기를 원하지 않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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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1-10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병인을 구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친구들이 부모님 이야기 할 때 고정메뉴지요.
여러가지로 신경쓸 게 많은 요즘이시군요.
ㅠㅠ
아무개님 이 페이퍼를 읽으니 김이설이 다시 보이네요. 등단 10년동안 식탁에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도요...

아무개 2017-01-16 10:10   좋아요 0 | URL
그런데 외국에도 간병인이 있을까요?
미드 같은 곳에서 보면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꼭 있어야 하는것 같지 않았는데....

김이설작가의 책은 <환영>과 이책 두권을 읽었는데
두권다 읽기 쉽지 않은 내용들이에요.
여자들이 사는게 너무 비참해요 진짜.
좀더 있있는 여자 캐릭터 기대해 봅니다.

이진 2017-01-10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탁에서 글을 쓴다, 라. 굉장히 매력적인데요.
그나저나 아무개님!!! 그간 너무 못 들렀어요. 너무 죄송해요.
여전히 이곳에서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아 기쁘네요. 저는 이제는 멀어졌지만요.

아무개 2017-01-16 10:11   좋아요 0 | URL
소이진 님 너무 오랫만이에요. 잘지내고 있지요?
이렇게 들려 주니 너무 반갑네요^^
 

 

세상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아니 언제부터인가 부쩍 많아졌다. 이런 사람들은 "너 머리가 왜 그렇게 나쁜 거야?" 또는 "그것도 할 줄 몰라?' 라는 식으로 타인에게 상처가 될 말을 반복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이처럼 말과 행동, 태도 등으로 교묘하게 정신적 폭력을 행하는 것을 '모럴 해러스먼트'라고 한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정신적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또렷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로 '왠지 심적으로 지친다'거나 '몸이 안 좋다'와 같은 증상을 느끼며 갈수록 상태가 나빠지다가 심한 경우,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모호하고 부정확한 상태로 지속적으로 충격을 받고 있다는 점'이 정신적 폭력의 최대 특징이자 주의해야 할 점이다. <들어가며 중 발췌>

 

누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수 있는게 '정신적 폭력'이다. 직장 상사가 부하에게 그 부하는 아내에게 아내는 자식에게 그 아이는 또 다른 아이에게. 어떻게 보면 이것 역시 '권력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다. 그러하여 남편에게 아내가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것도 어린 자식이 부모에게, 부하가 상사에게 그 폭력을 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적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한것을 인지하는 것이 먼저이고 주변에 그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가능하면 피해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이책에서 내가 얻은건, 나는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 라는 사실을 알게 된것이다.

어릴때부터 '내가 없으면 네가 가장이다. 식구들을 돌봐야 한다'라고 아버지는 말했고, '너만 없었어도 내가 이 결혼을 안했을텐데, 너희만 없었어도 내가 이혼했을텐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나는 나때문에 어머니가 고통스러워한다고 생각해서 내가 태어난 것이 죄스러웠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가 라는 의문은 스무살 가까이에나 갖게된것 같다. 12살에 부모가 이혼하기 전에도 그 후에도 대체로 가장처럼 행동해야 했다. 아버지의 부재가 잦았기 때문이다. 책임감을 갖고 하고 싶은것 말고 해야할 것들 하기. 그러나 그에따른 권리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여자니까. 현재까지도 12세 이후로 나의 보호자였던 적이 없는 아버지의 치닥거리를 한다. 동생이 죽을때까지 모든 뒷처리를 내가 다 했다. 이 책에 보면 알코올 의존증 환자 옆에는 나같은 이네블러가 꼭 존재한다고 한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다시 술을 마실수 있게 해주는 이네블러.

 

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받을때도, 동생이 수차례의 자해를 시도해서 병원에 가야했을때도 엄마가 쓰러졌을때도 나 혼자 간호했다. 아버지는 최근에 폐에서 작은 종양이 발견됐고, 영양실조로 혼자 거동하는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지난 주 그 집에 가서 청소, 빨래, 음식, 쓰레기 처리 등을 하고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했는데,

어제 동사무소에서 서류를 발급받는 중 전화를 받았는데 혼자 못움직여서 옷에다 실례를 했으니 입을 만한 옷을 사서 택배로 부치라고 했다. 저녁때는 '내가 혼자 움직일수 없으니 니 엄마가 와서 나를 돌보라고 해라' 라며 전화가 왔다. 아직도 아버지라고 하면 분노에 차서 저주를 퍼뭇는 엄마에게 자신의 병간호를 시키라고? 설령 그런 감정이 아니라고 해도 어째서 이혼한지

30년이 지난 전부인에게 자신이 다른 가족을 만드느라 이혼한 남자가(어제 발급받은 서류에는 한번도 본적없는 동생 두명이 있다)  이제와서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나와 엄마의 병간호를 원할수 있을까? 나는 당연히 안된다고 했고 '그러면 나더러 혼자 누워서 죽으라는 말이냐?' 라는 질문을 받았다.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저 당당한 요구에 왜 나는 당당히 대답하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왜 그렇께까지 살고 싶은건가?

 

어릴적부터 마음에 새겨졌던 과도한 책임감과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죄스러움은 자라서도 아니 이젠 늙었지, 늙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정작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크게 상처를 준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인간들을 책임지기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내가 지금 하는 짓거리가 내 사람에게는 '정신적 폭력'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신적 폭력 중에 "너를 낳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거나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메세지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자식에게는 엄청난 상처가 되는 말이지만, 이 말의 이면에도 부모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이 존재한다.

먼저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주고 싶다'는 의도가 있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더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너를 낳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내 인생이 불행한 이유는 '너 때문'이다. 이렇게 부모 자신의 불행을 자식의 존재 탓으로 치환해 공격하는 경우다.

동시에 그 말에는 '그래도 너를 키워젔으니까 나를 버리는 행위는 못된 짓이다'라는 메세지도 있을 것이고, '그러니까 너는 착한 아이(부모의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라는 지배 욕구도 담겨 있을 것이다.

즉"너를 낳지 않았으며 좋았을 텐데"라는 말 이면에는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기 싫다면 부모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는 협박과 비슷한 지배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자식은 당연히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하기에 '가치가 없고 필요 없는 아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강렬한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심한 소리를 하는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부모의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식으로 서로 떨어지지 못하고 상호 의존하는 관계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부모와 자식도 흔하다. p55-56

 

상호의존의 실상을 단적으로 알기 쉽게 보여주는 예시가 알코올 의존증 환자와 이네블러의 관계다. 이네블러(enabler)란 알코올 중독 등 문제가 있는 가정이나 주위 사람에게 헌신적으로 봉사만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알코올 의존증 환자 옆에는 거의 100%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네블러가 있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대부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므로, 혼자 살다 보면 경제적으로 궁핍해서 술을 마실 돈이 언젠가 동난다. 그런 사람의 생활을 보살펴주고 경제적 지원까지 해주는 사람이 이네블러다. 남성인 알코올 의존증 환자 옆에는 아내나 어머니, 애인, 동거자인 이네블러가 있다. 이네블러는 알코올 의존증인 남성이 술집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경찰서에 끌려가면 뒷수습을 해주고 생활도 보장해주면서 다시 술을 마실 환경을 만들어준다. p89

 

혹시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우울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전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이든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p139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정신적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폭력 가해자의 정신분석, 그 마지막으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간단히 다뤄보자.

원래 남자와 여자는 '가치를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 이 말을 바꾸면 콤플렉스를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남성은 대체로 '지식이나 능력'이라는 요소에 가치를 느끼려는 갈망이 강하다. 따라서 지식이나 능력과 연결된 부분이 채워지지 않으면 콤플렉스를 느낀다.(...)한편 여성은 '외모나 물건, 패션 감각, 맵시'등으로 가치를 표현하려는 사람이 많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런 것을 '여성적 가치'라고 인식힌다. p95-96

파리 제8대학 정신분석학부에서 연구하셨다는 분이 이런 이런....

 

 

이어서 읽을 책. 얇지만 한참 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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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성폭력 생존자의 자전적 이야기.

친/양아버지, 친/외할아버지, 친/외삼촌, 친/외사촌 등등 친족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의 99%는 남성에 의한 성폭력이다. 아버지가 딸을, 할아버지가 손녀를, 삼촌이 조카를 사촌오빠가 여동생에게 성폭력을 하는/할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해자만 입닥치고 있으면 그 '단란한 가정'은 유지 될수 있다. 피해자 여성이 자신이 당한 폭력을 발설하게 되면 가정의 파탄을 불러온 원흉이 된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부계사회를 유지하기 노력은 남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들의 어머니 역시 크게 한몫을 한다. 가정이 깨지면 자신이 살아갈곳이 없어서,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서, 가해자의 복수가 두려워서 피해자인 딸을 외면하고 방치한다. 심지어 가해자(남편/아들)을 두둔하기도 한다. 모성애가 천성이라면 어쨰서 이 모성애는 이토록 선택적이란 말인가.

 

 

 

 

 

현재와 같은 가족의 형태를 이루게 된것은 근대이후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떠한 형태로 인간은 종을 번식시켰을까? 

이성애가부장제의 존재이유는 종의번식뿐인듯 한데.....

 

 

 

자신의 고통을 숨기고 가족의 평안을 선택했던 그녀는 정신과 병원을 들낙거리고 수많은 약들에 의존해야 하고

일상을 살아갈수 조차 없게 되었지만, 그녀의 큰/작은 오빠(가해자)는 좋은 직장과 번듯한 가정을 꾸리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뭘까 가족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것인가.

 

그녀는 이제 더이상 가족과 연락하지 않는다. 가족보다 더 그녀를 위하고 걱정해주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그사람과 함께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는 살아남았고 앞으로 더 안녕히 살아갈 것이다" 라고.

 

가족이 아니어도 당신과 함께 나란히 걸어줄 사람은 반드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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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12-23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개님 리뷰만 읽어도 울컥해서... ㅠ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무개님 이 책 끝까지 읽느라 너무 수고많았어요.

2016-12-23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3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7-01-03 08:48   좋아요 1 | URL
저희애들은 다섯이 모두 기호가 다르고 캔이나 파우치를 잘 안먹어요. 사료도 두종종류를 주는데 좋은 사료라서기보다는 일단은 먹으니까 주는거구요. 사료 거의 삼십여종 캔도 그정도 시도했었는데 거의다 실패해서 길냥이들이 한동안 홀리스틱급으로 사료와 간식을 먹었었죠.
저도 오리젠 좀 얻어서 먹여보고 애들이 먹기만 한다면 오리젠으로 바꿔주려구요.
유투브에서 사료성분조사 라고 검색하시면 꼬부기아빠란분이 1700여종의 사료분석해놓은거 올린게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듯해요. 세곳 사이트에서 오리젠은 모두 추천사료 더라구요.
근데 댓글보니 호주에서는 리콜당한후 수입금지라고 ㅜㅜ
완벽한 사료는 정말 없나봐요.

Jeanne_Hebuterne 2017-01-03 09:13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아무리 좋은 사료라도 애들이 안먹으면 어쩔 수 없다는..요즈음 제 주위의 나이 많은 고양이들이 아픈 소식이 종종 들러서 더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한마리는 당뇨판정을 받았는데 수의사가 십여년 전에는 당뇨 고양이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열에 여덟 정도가 그런다면서, 사료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들었대요. 오리젠은 모두들 추천해서 일단 4파운드 분량을 샀는데, 냥이 모래에서 냄새가 엄청나다는 말에 모래도 같이 샀습니다. 다섯이 모두 기호가 다르다니..정말 아무개님도 고생이시지만 우리 모두 사서 고생하면서 즐거워하는 이 맘, 맞죠? ㅎㅎㅎㅇ 내발 캔푸드는 제 친구네 고양이만 포식을 했다는..오늘은 잠시 캔푸드를 하나둘 정도만 사서 잠시간 시험해 봐야겠어요. 계속 검색중인데, 댓글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지식이 일천하여 선배 집사님들 말씀은 요즘 다이어리에 적어가며 공부중이어요. 완벽한 사료는 없으나 기왕이면 안전한 사료를 먹이고 싶어요 ㅠㅠ 사랑에 빠지고 나니, 조금이라도 이 아이들을 곁에 오래 두고싶어지는 욕심이 생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