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윤리는 개인적인 믿음이나 취향에 토대를 두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근거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p64

나는 인간을 이성을 높게 평가하는 글을 보면 오히려 더 의문이 생긴다. 정말일까 인간의 이성이 이렇게까지 평가 받을만한 것일까? 그런 고귀한 이성을 가진 인간들이 행하고 있는 짓들이 나의 이성으론 이해가 가지 않을 떄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그것이 얼마나 나쁜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개 때문에 인간이 악행을 계속하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안다는 것보다는 그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만이 인간이 악행을 저지르지 않을수 있다는 말이 맞을까.

내 생각엔 후자쪽이 더 맞는것 같다. 얼마나 많은 인간이 나쁜일인줄 알면서 계속적으로 자신에게 타인에게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가. 알고 있는것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잘못된것을 알고 난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더 나쁘다. 아는 것보다 중요한것은 역시 지식의 실천이다.

저자는 윤리적인 이유-동물도 인간과 똑같이까지는 아니라도 그만큼의 고통을 느끼므로 동물을 먹는 것을 반대한다. 물론 자연에서 고통없이 사육되고 고통없이 도살된다면 그러한 고기는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 그러한 고기는 존재하지 않기때문에 저자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의 채식이야기라 받아들이긴 좀 편안하지만 결정적으로 꼭 채식을 하게만들만한 큰 영향력은 좀 부족한듯 싶다.

 

타 생명체가 느끼는 고통을 이성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감성적 채식주의자들은 주변인을 설득시키기에 힘들다고 이야기 하지만 감정적으로 타 생명체에 대한 고통의 공감이 없이 오로지 이성의 판단-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사실만으로 역시 타인을 설득하기엔 좀 모자란 감이 없지 않을까 싶다.

 

당장에 내가 힘들고 지치고 어렵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고통은  보여도 못 본척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이 하물며 다른 종의 고통-심지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직접 볼수도 느낄수도 없다- 어떻게 공감할수 있을까. 윤리적이유도 중요하지만  "지상의 모든 것에 연민을 갖고, 최소한의 것에만 해가 가도록" 채식 식단을 차렸다는 헬렌 니어링의 말처럼 그 바탕엔 타 생명체가 겪는 고통에 대한 공감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가 되려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바꾸거나 하지말거나 해야한다. 동물의 고통을 윤리적 정신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에 동물의 고기를 먹지 않는 다면, 입지도 신지도 쓰지도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이 그렇게 살지 않는 것보다 몇배는 더 번거롭고 심지어 경제적으로 부담까지 된다.-왠만한 채소보다 고기값이 더 싸다- 간단히 말해서 "그래, 결심했어!" 이렇게 말하고 바로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모임이나 회식에서 고기를 안먹는 다고 이야기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식을 해야하는 이유는 그것이 윤리적으로'옳은 일' 이며 감정적으로 "좋은 일" 이기때문이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이성을 가진 인간이니까 말이다. 나 처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늘 머리와 가슴에 채식에 대한 의무감을 갖고 살수 밖에 없는것 같다. 책 읽는 내내 또 다시 채식의지가 후끈 불타올랐지만 책에 마지막에 다다랐을쯤에 친구에게서 온 문자는 한방에 그 불씨는 잠재웠다. '금욜 퇘랑에서 오키?"

단 0.1초도 생각도 고민도 하지 않았다."응 금욜날 봐"

이럴꺼면 책은 뭐하러 읽냐........ 중요한건 실천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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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1-3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퇘랑에서는 뭘 먹는건데요? 돼지고기?

아무개 2013-01-30 11:52   좋아요 0 | URL
네 주로 삽겹살에 소주. ㅡ..ㅡ::::::::::
 














한강의 소설은 원래 구매계획이 없었는데 그놈의 소주잔때문에 대상도서를 아무리 봐도

딱히 읽고싶은게 없어서 어쩔수 없이 구매했다. 그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고 나에겐 좀 위험한 작가다 싶어서 가능하면 안 읽으려고 했는데.....














이번달 초에 배송받은 책들인데 아직 다 못읽었다. 내일부터 이틀 휴가를 냈으니 주말까지 연이어 4일을 쉴수있다.  낮에는 책읽고 밤에는 배송받은 소주잔에 소주를 홀짝이다보면 또 그 4일도 금방 지나가 버리겠지. 벌써 끝나버릴 연휴가 아쉬워지다니 참 욕심도 많다.



























처음 읽었던 <일식에 대하여>가 너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것일까. 역시 첫경험은 참 날카롭다.

하지만 이승우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한 생각이 있다. '내가 한국인이여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이승우 작가가 한국인이여서 참 다행이다 '라고 말이다. 모국어로 이런 글들을 읽을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그나저나 어제 핸드폰을 사무실에 두고 퇴근했다. 저번주 금요일에도 그랬는데 핸드폰의 존재를 요새들어 더 자주 잊어버린다. 아침에 사무실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열어보니 '국민마트 장날특가'문자 한껀만 딸랑~ 이러니 나에겐 핸드폰이 시계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다. 물론 우리 냥이들 사진도 잔뜩 찍기는 하지만 폰이 구식이라 폰과 컴을 연결시키는 케이블을 파는곳이 이젠 없는거 같다. 다이소에 가봤는데 이젠 안 판단다. 주변에서는 왠만하면 스마트폰을 장만하라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스마트폰 요금제는 너무 쎄다. 그리고 딱히 필요를 못 느낀다. 인터넷은 회사에서 하루 종일하니 충분하고 게임 같은건 어차피 안하고 음악은MP3로 듣고. 가끔 우리 이쁜 고양이들 사진을 쉽게 컴에 저장할수 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하지만 스마트폰을 구매하도록 만들 정도의 욕구를 불러 일으키지는 않는다. 스마트폰 중독때문에 초등학생들부터 문제가 많다고 하던데 뭐가 중독이 될 정도로 그렇게 재미있는걸까. 뭔가 분명 사람을 홀릴만한게 있긴 한거겠지?


내일부터 4일 동안 쉬니까 오늘 저녁에 내가 할 일은 뻔하다.

비오는 오늘. 안주는 감자탕이닷.(아직 저 책을-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안 읽었으니까 괜찮아....괜찮다구!)

이젠 더 이상 살찌는 것이 두렵지 않다. 까짓꺼 뭐.

지방흡입이라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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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3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8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하하


소주잔 때문에 책 사게 생겼구나.


미치겠구나.


이런 기획을 한 알라딘을 위해 건배라도 해야겠구나.


그나저나 이 잔으로 마시면


김애란 작가가 날 좀 취하게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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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01-2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이런 소주잔이 있던가요? 우아.....

마중물님, 오랜만..

아무개 2013-01-22 21:34   좋아요 0 | URL
달여우님~
저는 아직도 마냥 마고님이라고 부르고파요~~~~~

잘지내시죠?
전 지금 소주잔 사러 장바구니 비우러 갑니다....
소주값도 올랐다는데 이 잔으로 마시면 내 인생이 조금 두근거려 질까요 ㅎㅎ
 

다시 이승우.

 

다른 쪽에 불가지론이 있다. 사랑이 시작된 과거의 한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확신과 진행형 상태에 더 주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은 사랑의 속성을 점오漸悟 것으로 받아들인다. 한순간에 갑자끼 깨달음이 찾아왔다면 그 시간을 기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시간의 매듭이 지어지기 때문이다. 돈오頓悟의 매듭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어떤 것, 그러나 물이 가죽으로 스미는 것처럼 천천히, 조그씩, 점점 깊이 깨닫게 되는것이 진실이라면 시간의 매듭은 지어지지 않는다. 모든 상태는 '이미'와 '아직 아닌'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구원파적 엄격함을 사랑에 빗댄 사람들이 사랑이 시작된 시점을 사랑의 완성과 연결 시키고 그 이후의 시간은 다만 그 사랑을 즐기고 유지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간주하는 반면에 점오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사랑의 시작과 완성을 동일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작이 그런 것처럼 완성 역시 매듭지을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p.31

그 순간에 세상은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그 땅에, 이 세상에, 당신과 그녀 말고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세상은 두 사람만 사는 공간이 된다. 그들이 어디 있든 마찬가지다. 연인들은 최초의 하늘과 땅을 가진 에덴의 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에 다 두 사람만 거주하는 양 느끼고 말하고 행동한다. 연인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연인은 연인 말고는 다른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사랑은 세상을 축소시키는 기술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의 세계는 두 사람만 존재하는 , 아주 좁은, 아제 막 태어난 세상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웃거리지 않는 것은 기웃거릴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를 제외하면 그, 그녀만이 유일한 인류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시들해지면 세상이 조금씩 넓어지고,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점점 더 잘 보이고, 그리고 결국 한때 유이한 인류였던 그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다. 기웃거리기가 가능해지는 것은 기웃거릴 대상이 다시 생겨났다는 증거다. 만물이 그런 것처럼 사랑 역시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한다. p.37

언제나 돈오의 매듭으로 시작된 사랑이었다. 세상 만물이 그런 것처럼 그 사랑의 매듭 역시

풀렸다. 대부분은 상대방의 손에 의해서 가끔은 내 손에 의해서.

사랑이 끝나는 순간은 언제 일까?

번개맞은 듯한 사랑이든 가죽에 물이 스며들듯한 사랑이든 그 사랑이란것이 끝날때

모든 연인들은 결국 다시 기웃거리고 있는거겠구나.

 

 

또 다시 이승우의 사랑이야기. 하지만 역시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통스러운 사랑을 지켜나간다.

사랑하기에 떠나 보내는 사람, 사랑하기에 기다리는 사람, 사랑하기에 곁에서 지켜주는 사람, 사랑하기에 바라 볼수 밖에 없는 사람.

 

각자 선택한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일뿐이라는 것.

 

 

 

 

 

 

오늘 이승우의<검은 우물><에리직톤의 초상><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이렇게 세권을 배송받았다. 당분간 아마도 이승우에게서 헤어나오긴 힘들듯 싶다. 그래서 우울감에서도 빠져나오긴 힘들듯. 이승우의 책은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뭐랄까 마음이 발바닥쯤에 내려 앉아 있는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놓을 수가 없다. 우울감에 빠질껄 알면서 또 찾게되는 그의 책들. 나 새디스트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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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1-17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어째 저보다 더 이승우에 푹 빠지시고 또 더 많이 읽으시는 것 같습니다? ㅎㅎ 저는 [욕조가 놓인 방]은 읽었고 [식물들의 사생활]은 사두기만 했어요. 그리고 밑에 세 권을 배송받았다고 쓰신 세 권중 단 한 권도 읽지도 사지도 못했어요. 으음, 저도 분발해야겠군요. ㅎㅎ

아무개 2013-01-17 08:42   좋아요 0 | URL
제가 다락방님을 분발토록 만들수도 있군요. ^^:::::::::

다크아이즈 2013-01-1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중물님의 글 보니 갑자기 사랑에 대한 돈오와 점오에 관한 단상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ㅡ 감사합니다. 근데 그 부분 이승우 작가님 글이 그분답지 않게 정리가 덜 됐다는 생각이ㅡ 인용문 부분만 봐서 그렇겠지만 조금 아쉽습니다 ㅡ 그나저나 님 이 작가님 팬이시군요^^*

아무개 2013-01-18 08:24   좋아요 0 | URL
아마도 인용문 부분만 보셔서 그럴꺼에요....
전 팜므느와르님 처럼 그분의 글에 대한 분석같은거 아직 할수 있는 수준이 못되서요. ㅠ..ㅠ 그저 제 마음을 글로 써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녀고양이 2013-01-22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와 '아직 아닌'의 사이는 '지금 여기'겠군요...
사랑, 사랑이라... 참... 오묘하고 난해하고 어렵고, 그리고 모든 사람이 원하는.

제 댓글이 형이상학으로 빠지고 있네요.. ㅋ

아무개 2013-01-22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원하지 않다는걸 알기 때문에 영원하길 바라고
가질수 없다는걸 알기 때문에 더 간절해지는...뭐 그런거 아닐까요.. ^^:::
 


 

며칠전 서머싯 몸의 <면도날>을 다 읽었다. 얼마전 회사 사람중에 한명이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고 묻길래 서머싯 몸이라고 대답했더니 엥 그게 누구? 이런 반응이였다. 그럼 한국작가는 누구냐는 질문에 이승우 라고 대답했을때도 역시나 같은 반응. 자기도 스마트 폰이 나오기 전까지는 책 많이 읽었다고, 그런데 이젠 아예 안읽게 됐다고 말하면서 나한테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봤었는데, 나도 누구 좋아하세요? 하고 물어 봤어야 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 글을 쓰면서 들었다. 서운했을려나 그 사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굉장히 재미있어.<오딧세이아>를 원문으로 읽는다는게 얼마나 가슴뛰는 일인지 몰라. 뭐랄까. 발끝으로 서서 손을 한껏 뻗으면 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면도날 P116

발끝으로 서서 손을 한껏 뻗으면 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란 어떤 기분일까. 나도 종종 원문으로 읽을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의 지적 호기심은 나의 더 강력한 게으름에 늘 밀린다.

 

 

이 세상에선 도저히 믿음이 생기지 않았어요. 저도 믿고 싶었는데,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는 하느님을 믿을 수가 없더군요.(....)수사들이 암송하는 주기도문을 듣고 있으면 저들은 어떻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꾸준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아이들이 땅에 있는 자기 아버지한테 양식을 달라고 간청하는 것 보셨습니까? 아이들은 아버지가 당연히 먹여 줄 거라고 믿잖아요. 아버지가 음식을 준다고 해서 고마워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죠, 오히려 낳아 놓고 제대로 못 먹이거나 안 먹이면 우린 그런 사람을 비난 합니다. 전능하신 창조주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물질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할 준비가 안 됐다면 그들을 창조하지 말았어야죠. -면도날 P421

나는 줄곧 믿고 싶어했던거 같다. 믿고 의지할 신을 찾아 헤메고 있었던거 같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사람들이 복종하고 믿는 저 단죄와 욕망의 신은 믿을수 없다. 그러고 싶지만 그럴수 없다.

먼 훗날 사람들이 좀 더 커다란 통찰력을 얻게 되면, 결국 자신의 영혼에서 위안과 용기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어떤 대상을 숭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잔인한 신들에 대한 기억의 잔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잔인한 신들의 비위를 맞춰 줘야 한다는 기억의 잔재라는 것이죠. 신은 제 안에 있는 게 아니라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고 저는 믿거든요. 그렇다면 저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숭배해야 하는 걸까요? 저 자신일까요? 사람들의 정신적인 발달 수준은 저마다 다르죠(...)그러니까 인도의 그 수많은 신들은 개개의 자아가 궁극의 자아와 하나라는 사실을 꺠우쳐 주는 수단에 불과한 셈이죠. (....) 사실 저는 인식을 통해 실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이후 인도의 현인들도 인간의 결점을 꺠닫고 사랑을 통해 혹은 의로운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도 있다고 시인하긴 했지만 가장 어렵고도 고귀한 구원의 수단은 단영 인식이라는 점은 결코 부인하지 않았죠. 인식이라는 수단은 인간의 가장 귀한 능력, 즉 이성이니까요. -면도날 P446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이성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번 대선은 내게 말그대로 멘붕이였다.

정말 우리 인간의 가장 귀한 능력이 이성이 맞는 걸까 싶었으니까

 

지금은 <리영희 평전>을 읽고 있다. 구매한지는 꽤 되었는데 책장에 꽂아만 두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노이에자이트님의 글에 진보를 대표하는 000이 누구일까? 우리는 왜 그런 사람이 없나? 라는 글을 읽고 책장에 꽂혀 있던 리영희 평전을 읽기 시작했다.

 

4.19 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 요인들이 5.16쿠데타 정권에 가담하고, 4.19혁명 주동자들이 군사정권과 유신권력에 협조하고 참여한 대가로 일신의 영달을 누렸다. 쟁쟁한 반독재 지식인,언론인이 신군부정권에 봉사하고,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386세대 가운데 다수가 양지를 좇아 수구세력에 가담하였다. 이처럼 변화 무쌍하고 난장판인 격변기에 진실의 편에 서서 양심을 지키는 일은 구도의 길만큼이나 험난하고 고단하였다. -리영희 평전 P.30

리영희 선생님이 그렇게나 타도하려던 그 우상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도 국민 대통합과 국민 행복을 내세워서 말이다.  

나는 박근혜 당선인이 말하는 그 대통합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우리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는 쪽에서 어떤 의미의 대통합을 이야기 하는지.... 더욱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대통합이 아니라 더욱더 자율성과 개별성이 인정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한꺼번에 싸잡아 넣는 대통합을 외치는 대통령말고.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세상. 한두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 설수 있고, 노력하면 달라질꺼라고 희망을 가질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수 있는 길을 함께 걸어줄 대통령이 필요했다.

물론 대통령 한사람이 이 모든것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길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필요했던거다. 

 

하지만 그녀가 이야기 하는 대통합은 아마도

가진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대통합인듯 싶다.

 

대선 후유증인지 무슨 책을 읽어도 결국 이런 쪽으로 생각이 흘러 버린다.

 

그나저나

나의 이성은 치킨도 이기지 못하면서 남들의 이성을 탓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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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2-3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하. 걱정마삼. 전 이시간에 치킨과 맥주를 다 먹었어요. 게다가 바로 잘겁니다. 하하하하

아무개 2012-12-31 10:4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전 어제 저녁에 치킨과 소주 2병을 먹고 기절했어요.
조금 있다 친구랑 오랫만에 서울 나들이 갑니다.
영화보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팔러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