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치유 > 하늘바람님

배꽃......아쉽다..이사진을  처음 본게 아니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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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4-06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지금은 곁에 늘... 예쁜 복이가 함께 있겠지.^^*

홍수맘 2007-04-07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은이의 엄마, 맞죠? 음. 역시 또 한명의 미모의 알라딘을 보는 순간이군요.

뽀송이 2007-04-0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맞아요!!
참!! 지금은 태은이구나!! 복이가 세상에 나와서 얻은 이름!!
하늘바람님과 태은이가 나란히 찍은 사진도 보고 싶어요.^.^
 
 전출처 : 치유 > 아영엄마님

배꽃....소녀같은 엄마...그의 공주님들....아영 혜영.

첨에 알라딘 들어설때 참 다정하게 이끌어 주신 분들 중 한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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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4-06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영맘은 참 귀엽고, 여성스러워 보인다.^^*
귀여운 두 딸이 함께 있어 더 행복해 보이고...^^

홍수맘 2007-04-07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저의 서재 첫 방명록 주인공이시자, 역시 한 미모의 주인공...

뽀송이 2007-04-0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그러셨군요.^^ 남다르시겠어요!!
넘!! 귀엽고, 예쁘시죠!! 그리고 미녀 삼총사!!
 
 전출처 : 치유 > 아프락사스님



배꽃...아프락사스님은 참 여성스럽고 셈세하신듯 하다..

남자분이 이런 꽃길에서 사진 찍기 쉽지 않으신데

이렇게 멋진 포즈로 찍으신걸 보면.....

그런데 어째 꽃보다 아프락사스님의 얼굴이 더 꽃같은지..

남자분이라 멋지다고 해 줘야 하는데

 너무 잘 생기셨다기 보다 이쁘다란 말이 나오네..

이걸 나중에 공개로 돌리게 되면 꼭 지워야 한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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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4-0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와~~~
너무 잘생기신 선생님이라서 퍼 올 수밖에 없었다는...^^;;

홍수맘 2007-04-07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프락시스님의 헤어스타일이 넘 멋져보여요.

뽀송이 2007-04-0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아이들이 아프님의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까요?? 호호^^
 
 전출처 : 치유 > 마노아님.



배꽃.............사실 이분은 만난지가 얼마 안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궁금증을 확~풀어주시려고 짠~!!하고 올려 주셨다..

알라딘 지기님들은 왜 이리 한 미모들을 하시는지....

대학생처럼 상큼하게 웃는 모습에 홀딱 반할 분들이 많겠다..

님의 앞날에 늘 이렇게 환하게 웃을 일들이 많이 많이 생겨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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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4-0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마노아님의 순수한 저 미소를 보면서 수업받는 아그들이 부럽다.^^*
너무 귀여우셔라~~~~^.~

실비 2007-04-06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소가 아름답죠?^^

뽀송이 2007-04-06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와~~ 예쁜 실비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전 요즘 컨디션이 엉망이다가 이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실비님^^ 아주 많이 반가워요!!!

홍수맘 2007-04-07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노아님이 이렇게 예쁘신 분이셨군요. 저번 스티커 사진에서 본 모습보다 더 예뻐요. ^ ^

뽀송이 2007-04-0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넘!! 맑고, 밝은 미소의 소유자이신 것 같아요.^^*

2007-04-07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뽀송이 2007-04-09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_*
저는 늘... 어여쁜 님의 방문을 행복하게 생각한답니다.^.~
 
 전출처 : 프레이야 > 나? 소개한다면!

 

스텔라님 이벤트에 참가하는 목적이지만, 이 기회에 흥미로운 자기소개서를 써보게 되었네요. 취직할 때 전형적인 양식으로 써보았지만 여기선 조금 다르게 써보면 좋겠는데 별다른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고 그저 한 번 까발려 볼랍니다. 깜소님의 은근한 부추김으로 힘을 내어서요.


-1966년 9월 모일 (음력 8월 모일) 오후 다섯 시 경, 서울에서 태어나다

엄청난 미인이었던 늘씬한(키 165) 어머니와 여덟 살 연상의 자칭 대한민국 표준형 체격(키 166, 체중 85kg?)의 아버지에게서 맏딸로 태어났어요. 작은 뱀이 치마폭에서 꿈틀거리고 하늘엔 유난히 반짝이는 잔별들을 보고 저를 낳으셨답니다. 문운과 인복을 타고 났다고 하네요. 당시 산부인과 병동이 다 떠나갈 지경으로 소리를 지르며 저를 낳으신 엄니의 고통스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덕분에 출산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잠재해 있게 된 동기가 됩니다. 그래서 아이 둘 다 수술로 낳았지요. 어리석게도 그렇게 빌었어요. 젖을 잘 안 먹고 바스락 소리에도 잘 깨어서 엄마가 무척 힘들었다고 하네요. 밤새도록 공중그네를 흔들어줘야 잤다고 하는 별난 성격.


-세 살 때(만 두돌) 한글을 다 읽고 쓰다.

엄마는 전화번호 수첩이 필요 없었다고 합니다. 제가 다 외우고 있어서 물으면 즉시 대답해 드렸다고 하네요. 믿거나 말거나. ^^  세발자전거를 타고 앉아있던 어릴 때 흑백사진만 남아있고 기억은 없습니다. 유모차에 앉아 똥을 한 바가지 싸놓고 문대며 좋아라 날뛰고 있었다는 회고담을 들려주시더군요.


-다섯 살 때 부산 엄니의 친정 가까이로 이사 오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이사하여 외할머니댁과 아주 가까이서 살았어요. 엄니는 대바늘 뜨게질을 자주 하셨고 처녀 적 간호사 경험을 살려 야매로 간호사일도 하셨어요. 그러다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는데 생활력 강한 엄니를 존경합니다. 엄니가 놓아주시는 주사바늘은 희한하게도 별로 안 아팠어요. 이때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달의 추억입니다. 어느 저녁, 외할머니댁에 엄마 심부름을 가는데 새까만 하늘에 노오란 보름달이 내 머리 위에서 따라 오는 것이었어요. 내가 걸어가면 걸어오고 달려가면 달려오고, 내 발자국에 맞춰 느리거나 빠르게 쫓아오는 달의 얼굴을 잊을 수 없어요.


-일곱 살 때 다른 아이들보다 일 년 먼저 초등학생이 되다.

가정통신문에는 조용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온순한 편이라는 글이 자주 있었고 학업우수상은 도맡아 받았어요. 자랑은 아니랍니다.^^  4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서 동시 우수상을 받았는데 제목은 ‘산길’ 이었어요. 5학년 때는 나이 드신 남자 담임 선생님에게 매일 커피를 타드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 없어요. 그런 일을 아이에게 시키다니요. 커피도 집에서 가져오게 하고.. 6학년 때 총각 담임선생님은 멋진 구레나룻에 인물이 준수하셨고 점잖았는데 이상하게도 좋아하지 못하고 겁이 났어요. 신체검사때 가슴이 다 자라 있었던 키크고 성숙한 우리반 여자친구 가슴둘레 재기 할 때 제가 선생님 대신 했던 기억이 있고 송별사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를 좋아했던 부반장 남학생 꺾다리는 지금 어디서 아저씨가 되어있는지 문득 궁금합니다. 초등학생 때 가장 두려웠던 때는 운동회 때 100미터 달리기 할 때입니다. 줄 서서 기다리는 순간이 고문이었습니다. 소변이 마구 보고 싶고 이가 덜덜덜 떨리고 정신이 아득하고... 한 번은 뒷팀에 섞여 3등을 했는데 저는 3등인 줄 알고 공책 나눠주는 3등 줄에 섰지요. 선생님이 데리고 나오시더군요. 6학년 때에는 남동생만 금지옥엽 하셨던 외할아버지가 늘 불만스러워 남녀차별 한다고 대들었던 적이 있는 못된 외손녀였습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웠는데 제법 먼 거리를 혼자 밟고 갔다오곤 했어요. 콧속이 까매져서 돌아오면 얼마나 후련한지. 바람을 맞으며 달릴 때의 시원통쾌한 기분 때문에 지금도 자전거 타기를 좋아합니다.


-1978년 귀밑 1센티미터 단발머리 중학생이 되다.

한 해전에 생리를 시작한 나는 세일러복을 입고 성숙해 보이는 여중생이 되었는데 지금의 키는 그 때 키가 그대로인 것 같아요. 160도 안 되는 아담 사이즈랍니다. 현재 체중은 49kg. 중1때 가정선생님이 못마땅해 심리전을 벌이는 바람에 일 년이 안 편했고, 여자담임선생님은 왜 점심때면 가끔 나더러 도시락을 들고 교무실에 와서 같이 먹자고 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선생님께 싹싹하게 구는 성격이 아닌지라 그때 무척 마음이 불편했는데 말이지요. 한국단편소설을 이때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감자'의 에로틱한 장면에 허걱했습니다. 어느 친구집에 간 적이 있는데 무척 넓고 깊었던 정원을 기억합니다. 지금도 상상하면 빨려들어갈 것 같아요. 학교대표로 시조짓기 대회에 나가 입선하여 국어사전을 받기도 했네요. 체육을 못해 체육선생님이 겁났어요. 교문에서 그 선생님에게 걸린 기억은 제겐 너무 수치스러운 사건입니다. 하복을 입는 계절이었는데 흰색 속옷을 엄마가 안 빨아놓아 할 수 없이 연핑크 속옷을 입고 갔는데 아니나다를까 흰색 교복블라우스 겉으로 색이 비쳤던 것이었어요.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엄마와의 사춘기 갈등이 이렇게 시작되었고 우울한 얼굴로 늘 뭔가 생각에 빠져 다녔습니다.


-1979년 중학교 2학년이 되다.

테스를 읽고 여성과 성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사주신 세계명작전집(두 줄 세로 쓰기)을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 혼자 책보는 걸 좋아했어요. 하굣길에 바바리맨을 처음 보고 무지하게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수학선생님을 은근히 좋아했고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콧소리로 이 노래를 간드러지게 불렀던 우리 반 친구가 생각납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신나게 보고 수업 중에도 함께 따라 그리곤 했던 내 짝. 그 아이가 저보다 조금 더 잘 그렸어요. 그 아인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수학여행 갔다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비상사태 소식을 듣고 박수치며 부르던 노래를 일제히 그치게 되는데, 그것이 나중에 보니 10.26 사태였어요.


-1980년 중학교 3학년이 되다.

미술부에 들어갔는데 어느 선배 언니의 차가운 태도와 자존심 긁는 소리에 마음 상해 그만 두었어요. 반장이 되어 반을 그런대로 잘 이끌어갔어요. 어느 날, 오렌지색 아사 원피스를 하늘하늘 입고 학교에 오신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잊히지 않습니다. 지금의 내 나이 정도였을 울엄마의 꽃시절은 다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고희를 바라보는 할머니입니다. 역사선생님의 길다란 막대기 앞에서 벌벌 떨며 고려/조선왕조를 외우고 못 외우면 벌을 섰네요. 조선은 잘 외워지는데 고려는 잘 안 외워지잖아요. 역사를 뭐 그런 식으로 가르쳤는지 불만이 가득했었지요. 5.18은 당시 전혀 몰랐습니다. 국어시간이 제일 좋았습니다. 특히 시낭송을 시키면 꼭 손을 들고 낭송했어요.


-1981년 고등학교 1학년이 되다

추첨을 해서 고등학교를 정하는데 인문계 세 군데 중, 가장 적게 배정되었던 곳으로 가게 되었어요. 가톨릭 재단의 여고로 볼레로 스타일의 자주색 교복과 자주색 베레모가 무척 예뻤어요. 겨울코트와 구두, 가방까지 다 맞추었지요. 긴 오르막 언덕을 올라 다니느라 다리가 굵어질 수밖에 없었던 게 흠입니다. 여자 담임 선생님과 한 판 또 붙었네요. 사기 싫은 책을 학교에서 간부들 위주로 강제로 구매하게 했는데 저는 사기 싫다고 고집을 피우며 거부했지요. 그래서 학기초부터 선생님과 긴장을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제가 사과하고 선생님도 마음을 푸셨어요. 그때 제가 사과편지에 옮겨 써서 보낸 시는 우습게도,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입니다. 선생님은 저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살다보면 싫어도 해야하는 일이 있는 법이라고 하시더군요. 선생님도 그런 책 사라고 종용하신 게 싫어도 하셨던 일이었나 봅니다. 그걸 헤아리게 되는 데에 적지 않은 세월이 필요했어요.


-1982년 고등학교 2학년이 되다

예쁘장한 불어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되어 친구처럼 지냈고 불어도 무척 좋아했어요. 수학여행을 갔던 기억이 좋습니다. 자주색 교복에 베레모 쓰고 오죽헌 마당에서 찍은 사진, 그때의 친구들도 다 어디서 무얼 하는지. 미술을 공부하던 어느 친구가 갑자기 무단 결석을 하여 담임 선생님과 함께 그 아이 집을 찾아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버스를 타고 무척 먼 거리 같은데 어느 동네였던지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이 해에 두발 자율화가 되어 양갈래로 땋았던 머리를 버섯머리 비슷하게 커트를 했습니다. 커트 머리에 베레모는 덜 어울리더군요. 그래도 참 풋풋한 시절이었어요. 보라색 볼펜으로 빽빽이 옮겨적었던 시공책이 있었는데 다 어디로 갔는지... 편지로 우정을 나누었던 고운 시절, 어느 새벽 해운대의 일출을 보자고 다섯명이서 약속을 하고 갔는데 해가 이미 다 떠올라 있었어요. 그래도 참 신선했어요. 그날의 기억이 해처럼 떠오릅니다.


-1983년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다

교복 자율화가 되어 사복을 입고 다녔어요. 난 교복이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죠. 그때 유명주니어브랜드로 ‘그린에이지’가 있었는데 이걸 한 번도 안 사주신 엄니가 야속했지요. 동네 양품점이나 시장에서 옷을 사 주셨는데 노란색 투피스와 하늘색 원피스는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도 어른 옷이어서 그린에이지 입고 다니던 아이가 은근히 부러웠다는 거 아닙니까. 반장으로서 삐딱한 반아이들과 적을 만들지 않고 함께 가자며 잘 지냈던 것 같아요. 합창대회 때 연습을 함께 하고 지휘하고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야간자습 시간이면 어찌나 잘 졸았던지 ‘삼단계’란 별명이 있었어요. 삼단계를 밟고 조금씩 고꾸라진다고. 학기초에 폐결핵이 발병되어 가을까지 치료를 겸하느라 엄니가 힘드셨을 겁니다. 등하교 시간 부담도 줄이고 몸이 덜 피로하게 하려고 5월부터 9월까지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새빨간 장미넝쿨 울타리가 기억에 선명합니다. 폐결핵이란 사실을 숨기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지내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합니다. 휴학을 시키지 않으려는 엄니의 단호한 결심 때문이었지요. 이 때 기숙사에서 얻은 변비가 만성으로 이어집니다. 체육선생님을 좋아했는데 체육을 못 했던 나를 선생님도 잘 봐주셨어요. 역시 국어시간이 제일 좋았습니다. 하굣길에 어떤 남학생이 집앞까지 따라와 장문의 편지를 주고간 일이 있었어요. 그걸 순진하게도 엄니에게 보여주고 안 만나겠다고 말한 순진파였어요.


-1984년 대학생이 되다

고3때 한 반 했던 친구들이랑 붙어 다니느라 다른 친구들을 많이 못 사귀었습니다. 좀 더 학구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것도 후회됩니다. 총학생회에서 준비하여 보여주었던 5.18 관련 슬라이드를 강당에서 보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무수하게 터졌던 학교를 다니며 데모는 한 번도 못 해 본 용기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미팅은 몇 번(아니 종종인가?) 나갔지만 별로 마음에 드는 상대를 못 만났고 과에서 여럿이 어울려 디스코텍에 몇 번 갔습니다. 유리스믹스의 Sweet Dreams~~  한때 좀 자주 간다는 소문이 나서 댄싱퀸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어요. 그렇게 부른 과선배는 영미시 동아리의 장이기도 했는데 졸업 후 두번째 직장에서 우연히 만나 깜짝 놀랐지요. 타부서의 장으로 근무중이더군요. 첫키스의 기억도 이 해였네요. 별로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만 납니다. 이 해 겨울방학때 서울대 앞에 사시는 이모댁에 놀러갔는데 거기서 자취했던 서울대생 오빠에게서 문화적 충격을 약간 받고 우물안 개구리임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도 여전히 대망을 갖지 못하고 산 게 살짝 후회됩니다.


-1986년 5월 지금의 옆지기를 만나다

국문과에 간 고3 때 친구의 소개로 세 살 연상의 대학원생을 만났어요. 인문대 복도에서 나를 여러번 보고 찜하고 있었는데 과사무실에서 일하던 내 친구의 말을 우연히 듣고 바로 소개해 달라고 졸랐다나요. 그렇게 만남은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그해 여름 우리는 무주구천동으로 둘만의 여행을 처음 떠났어요. 사람이 진실되어 보였지요. 물론 엄니의 허락을 받고. 울엄니 멋쟁이시죠. 이 무렵부터 한동안 썼던 일기장이 아직 서랍 속에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 '랄레그로와 일펜세로소'를 듣고 사람의 본성에 대한 생각을 했고 저의 모순된 본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도 철학적 사유가 담긴 가볍지만은 않은 읽을거리를 좋아하고 심상을 소중히 여깁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로 해석하길 좋아합니다. 나란 존재는 인간관계는 서툴고 마음과 달리 위악을 부리기도 하는, 알 수 없는 물질이 돌아다니는 생명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엄니랑 간 점집에서 제게 도화살이 있다는 이야기도 첨 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살이래요?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1988년 2월 옆지기 부모님과 상견례, 약혼하다

학위 수여식날 상견례를 했습니다. 그 전날 엄니랑 무슨 사소한(하지만 그당시엔 사소하지 않았던) 일로 대판 싸우고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눈이 퉁퉁 부어 나갔어요. 그리고 4월 봄바람 살랑 부는 날에 약혼식을 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조촐하니 한복입고 했어요. 예물도 주고 받고요. 사파이어 반지를 아직 갖고만 있어요. 잘 안 끼게 되더군요. 그때 참석해서 축하해주던 친구 중 몇은 연락이 끊기고 몇은 아직도 만납니다. 그때 고등학생이었던 막내시동생이 불러주었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들국화의 '축하합니다'였어요. "오늘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어찌나 성의껏 불러주던지 감격했어요. 옆지기가 그리 약혼을 서둘렀던 이유?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작은 외국인 무역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1989년 3월 26일 결혼식 하다

서로 가진 것 없이 무모하다 싶게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 옆지기는 군대에 들어갔어요. 늦은 나이에 입대해 고생 많았을 겁니다. 2년 4개월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네요. 눈물도 많이 흘렸고 외로울 적도 많았지만 그런대로 잘 견뎠던 것 같아요. 처음엔 편지도 자주 쓰고 그랬는데 말년으로 갈수록 제가 조금씩 뜸해지긴 했어요. 한동안 그 편지들이 보물 1호였는데 몇 해 전 이사오면서 다 버렸습니다. 휴가 나오면 둘이서 행복해 하며 다니고 면회도 몇 번 갔는데 어느 겨울날 세상이 하얀 그 너른 길을 걸어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화진포 겨울바다의 싸아한 기억, 속초시장을 둘이서 손잡고 이것저것 구경하던 기억, 낙산바다의 그 캄캄하고 암담한 기억 그리고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시골길을 걸어나와 마을 버스에 오른 나에게 손 흔들던 옆지기의 군복입은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저는 계속 직장생활을 하며 친정에서 살았지요. 


-1991년 8월 드디어 열 평 우리의 보금자리 마련하다

이 때의 감격은 말로 다 못합니다. 제대를 하고 신접살림에 들어갔지만 시어른들의 몰이해와 맏며느리로서 저의 미숙함으로 갈등이 잦았어요. 그 때 연립주택의 이름이 '신혼주택'이었어요. 문패로 그렇게 달려있었지요. 정말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지만 다 잊고 지금은 참 좋으신 분들입니다. 저의 배경이고 그림자이고 저의 힘이기도 합니다. 옆지기는 제대한 다음날부터 열심히 일 하고 저는 직장생활 계속하고 첫아이는 자연유산이 되었습니다.


-1993년 7월 29평 아파트로 옮기다

전세였지만 참 좋았습니다. 큰딸을 가지고 힘들어서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이 해 12월 30일에 큰딸을 출산합니다. 제 어릴 적에 엄마를 힘들게 한 만큼 저를 힘들게 한 아이였어요. 아이를 키우며 조금은 무료하니 퇴보되는 것 같아 답답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이가 울고 보채는 밤이면 포대기에 싸서 업고 복도로 나오면 아래로 길게 낙동강과 남해고속도로가 보였습니다. 먼 불빛이 별빛과 어울려 있는 야경을 보며 마음을 달랬지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 아이도 잠잠해졌습니다.


-1995년 7월 30평 아파트 사서 옮기다

새 아파트는 아니지만 얼마나 좋던지요. 전세로 살던 그 아파트에서 호수만 옮겼어요. 여기서 작은딸도 태어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도 알게 되었어요. 참 소박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았습니다. 지금도 제각각 다른 동네에 살지만 두달에 한 번쯤 만나 얼굴 보면 푸근합니다. 큰아이가 일곱 살 때 어린이독서지도사 공부를 시작했고 알라딘과의 인연도 시작되어 서평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 문학의 매력에 흠뻑 빠진 시기입니다. '행복한 늪' 이라는 표현을 써서 말하곤 했지요.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독서지도 일을 시작했어요. 좋은 사람들 덕분에 광고 한 번 하지 않고도 잘 되었습니다. 동화읽는 어른 모임 '얼레와연'에도 자료회원으로 가입해 행사 때마다 첫아이를 데리고 가곤 했는데 그림책을 빛그림으로 보여주던 공연이 제일 좋았습니다. 특히 똥벼락을 재미있게 보았어요. 행복한 늪에 빠져 즐기며 일하고 이래저래 참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1998년 3월30일 둘째 딸 출산하다

오늘입니다. 작은딸 생일이라 오늘 반아이들에게 간식도 돌리고 축하해 주었어요.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주어 고맙습니다. 주문해 두었던 피겨스케이트복이 마침 오늘 도착했는데 아이가 하는 말 "엄마, 나 오늘 왜 이렇게 행복하지?" ㅋㅋ 복덩이 둘째딸 덕분에 97년 이 아이를 배 안에 넣고 운전을 배우기 시작해서 단번에 면허증도 땄습니다. 이로써 자격증은 두가지가 됩니다.

 

-2001년인가 제4회 요산문학제 독후감부분 우수상 타다

동보서적에 입상자 모두 모여 시상하고 상금 삼십만원 받았어요. 이 무렵 인상 깊었던 책은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뜻있는 엄마와 셋이서 독서모임을 가졌는데 잘 유지되진 않았지만 책읽기에 스스로 박차를 가하며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2003년 8월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 오다

자유부인으로 놀면서 지내려고 했는데 천성이 그게 안 되는지 어느 선생님의 권유로 또 독서지도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여기서도 좋은 사람들 덕분에 제가 하는 것보다는 그런대로 평이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떨 땐 다 집어치우고 놈팽이 하고 싶어요.


-2004년 봄부터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글쓰기 시작하다

정말 어떠한 구체적 계획 없이 시작한 일인데 제 인생후반의 또 다른 기회인 것 같아요. 좋은 선생님들도 만나고 지도교수님도 인연이 되었고 인생의 선배님들에게 훈훈한 정도 배웁니다. 이젠 공동운명체 같은 게 되었어요. 물론 열심히 제 기량을 닦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2005년 봄에 어줍잖은 등단을 하고 수필가란 이름이 가시면류관처럼 거북합니다. 참 2004년 1월부터 쇼트랙 스케이트도 배웠는데 작년 11월부터 쉬고 있습니다. 제법 타는데 요새 안 타고 아무런 운동을 안 하고 있으니까 몸이 굳는 것 같아요. 대회에 참가해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는데 용기가 안 나서 못했어요. 몸에 딱 붙는 트리코 입는 것부터 부담스러워서요. 그리고 2004년 2월에는 알라딘 서평자들의 글을 모아 만든 ‘하하아빠 호호엄마의 책고르기’란 책의 출간 기념으로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와 인터뷰를 했어요. 알라딘의 이예린님이 나오셨고 아영엄마님이랑 독자님 그리고 혜영이랑.. 아영엄마님 서재에 가면 자료사진이 있지요.

 

-2006년 11월 수암님을 인사동에서 뵙다

뵙고 싶었던 분이었어요. 중절모가 잘 어울리시는 참 멋진 할아버지셨어요. 옆지기의 라이카 사진전에 오셔서 사진을 보시며 좋은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는데 감기기운이 있다고 하셨어요. 희령이랑 같이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2007년 3월 30일 현재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알라딘서재질에, 다른 문서글 작성에, 자판 두드리는 시간이 많아 손가락 관절염 생기기 일보 직전입니다. 영화보기를 좋아하고 와인을 좋아합니다. 커피는 더 좋아합니다. 사진이나 그림을 보는 것도 즐깁니다. 밖에 나가는 것보다 누워 뒹굴거나 자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코에 바람 넣으러 꽃구경 가는 것도 좋아합니다. 올해는 작은 딸 반에 임원단 총무를 맡아 돈관리도 해야 하고 문학회에선 홍보간사와 서기일을 계속 맡고 있어 더 잘 해야 합니다. 엄마들과 수다 떠는 것보다 혼자 생각하고 책 읽고 혼자 글 쓰는 게 더 편한 저는 세수도 잘 안 하고 머리도 자주 안 감지만 우아하게 봐주시는 좋은님들 덕분에 룰루랄라 삽니다. 늘 시간에 쫓기듯 살지만 사실은 곰처럼 뒹굴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곰돌이 푸우거든요. 저랑 코드가 맞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저랑 반대성격을 가진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종교는 기독교이지만 시아버님의 강요에 의한 거라 그리 믿음이 깊지 못합니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색은 보라계열이지만 꽃은 후리지아 같은 노란색을 좋아합니다. 처녀자리이고 소음인입니다. 혈액형이 O형이라 역시 그런 성격을 숨기지 못합니다. 단순하고 현실적이면서도 로맨티스트입니다. 지혜롭지 못하고 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사람입니다. 술 먹고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고 소박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하지 못한 저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아버지 유전인자 덕분에 키가 작고 어머니 유전인자 덕분에 피부가 좋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머리 숱이 적어 모자로 가릴 때가 많은데 다행히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발이 잘 붓기 때문에 폭이 좁은 구두를 신고 외출하면 고통입니다.

 

어릴 적 꿈이 뭐였던가는 생각나지 않지만(사실은 있었지만 희미합니다) 지금 새로이 꿈을 쓴다면, 그저 괜찮게 살았다 여길 수 있으면 만족입니다.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우연한 일처럼 하나씩 엮여가는 것이더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을 늘 고요히 가지고 사람들에게도 편안하게 대할 수 있기를 늘 소망합니다. 원래 이기적이라 까칠한 성격이 발동하면 누군가랑 한 판 붙을지도 모르겠지만 대체로 고요와 평정을 유지하며 살고자합니다. 읽고 싶은 책들을 사재어두고 어서 읽지 못해 날마다 안달이 나는데 시간 탓만 합니다. 전생에 무희였다고 하는 저는 멋진 춤을 춰보고 싶은데 이게 정말 꿈에 그치려나봅니다. 그래도 배낭여행 정도는 꿈에서만 그치진 않겠거니 합니다. 50대초반 쯤 되려나, 빠르면 40대후반이거나, 하던 일도 좀 쉬게 되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봐야겠습니다. 한 세상 잘 놀다 떠나기 전에, 작은 책 한 권 정성껏 만들어낸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흔적일랑 남겨서 뭣하게?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좋아합니다. ㅎㅎ

참, 저는 죽으면 장기기증 할 겁니다. 현재 건강상태는 아주 양호합니다.

자기소개서이니만큼 사진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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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4-06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이런 이런 퍼오고 보니...
배혜경님만 잔뜩!! 크큭...^^;; 그래도 좋아...^.~

프레이야 2007-04-06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거이 무엇이래요? 부끄러워서 도망갈래요^^
사실 이것도 단면에 지나지 않는 소개서일텐데요..

뽀송이 2007-04-06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어딜 가실려구요.^^ 님은 참 이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