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처럼 어리석게, 약하게 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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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사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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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와 사랑

장 은 진

나는 서점을 좋아한다. 요즘은 온라인 서점이 대세이지만

종이 냄새가 배어있고 인쇄된 글에서

풍겨 나오는 듯한 잉크 냄새 그리고 책을 고르는 사람들의

얼굴에 스며있는 미소와 책에 대한

기대감에 상기된 채로 책장에 기대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서점이 좋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을 자제해야 하는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한 달에 두, 세 번은 잠깐이라도 서점에

들러 아직 다 읽지 못한 책들을 만나고만 와도

며칠은 숨통이 트였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이는 얼마나

가슴을 조여야 하는지.

아마도 이 책을 쓰기 위해 장은진 작가는 사막을

거니는 마음이었을 것 같다.

문학동네 젊은 작가 상 수상집을 통해 처음 작가의 글을 만났지만 장편의 글을 통해 만나본

그녀는 세상의 외진 골목길에 홀로 서 있는 우산이면서 가로등이었다.

사막 같은 세상에 내리지 않을 비를 기다리는 남자와

그의 우산 속에 어깨를 나란히 한 여자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었고 나였고 우리들의 친구였다.

해주는 고등학생 때 꿈을 가져보기도 전에 장갑 공장을

책임져야 했다.

장갑을 짜면서도 다른 미래가 생길 거라고 기대를 품은 적도 있었지만 편직기는 해주에게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고 해주는 장갑 짜는 사람으로 십대에서 이십대의 청춘과 젊음을 다 보내고 말았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는 도시락만 덩그러니 남겨놓은 채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고 아빠는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찾기 위해 장갑공장을 돌보지 않았다.

미래가 궁금하다며 무당을 찾아갈 필요도 없어.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복사하면 그게 곧 자기 미래거든.

거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해.

신데렐라 같은 인생 역전은 없어.

동화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말로 끝나지만 페이지가 더 있었다면

신데렐라도 결국 졸라 불행에 쩔다 죽었다고 나올걸.

인생도 불행도 되풀이될 뿐이야.

p 74

동생 영주는 커터 칼로 손목을 그으려고 할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아르헨티나 노래를 듣고는 손목을 긋지

않았고 그 뒤로 노래를 만들겠다고 나다니는 통에 공장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그 덕에 해주의 몸에는 파스를

붙여야 하는 부위만 늘어날 뿐이었다.

공장 안은 편직기 소음과 장갑을 짜기 위한 실에서 날아오르는 먼지로 가득했지만 해주는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다.

민원은 끊이지 않고 날아들었다.

1층은 공장으로 2층은 집으로 사용하는 해주의 건물과 바로 옆에서 목공예 공방을 하고 있는 재하네 작업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먼지와 소음을 견디지 못하는 13층 아파트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재개발에서 해주와 재하의 건물만 제외되었고 지금은 그 건물 사이로 도로가 날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지만 그들은 떠날 곳도 떠나갈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주민들의 민원을 몸으로 받아낼 뿐이었다.

재하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많이 보고 시나리오도 써보고 대학도 관련 학과에 들어갔지만 재하의 아버지는 재하가 자신의 공방을 물려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재하가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오른팔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삼촌에게 서준 빛 보증 문제가 커지면서 재하는 제대 후 복학하지 못한채 휴학 후 공방을 책임지게 되었다.

짓는 것과 짜는 것의 원리는 무엇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료가 실이면 장갑을, 문자면 글이, 음이면 곡이 될 뿐이다.

본문 중

꿈을 빼앗긴 남녀의 살아가는 이야기.

거기에 늘 우산을 쓰고 다니는 우산 씨의 이야기가

더해져 글은 익어간다.

어디에서도 우산을 접지 않는 우산 씨는 해주의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광장에 늘 우산을 쓰고 나타나

무엇을 기다리는 듯 해가 저물 때까지 광장의

한곳에 앉아 있었다. 우산을 편채로...

재하와 우산 씨의 갈등은 해주를 사이에 두고 생긴 것이지만 해주는 모른 척 그냥 내버려 둔다.

애초에 꿈을 꿔보지 못한 삶과 꿈을 접어야만 한 삶 중

어느 쪽이 더 참담할까.

사막과 지옥의 차이일까.

p 90

그제와 어제의 밀린 피로는 오늘을 지친 상태로 맞이했고

오늘의 피로는 내일과 모레로 마중 나갔다.

피로는 피로를 낳기만 할 뿐 줄지 않았다.

p 92

아무런 이유 없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엄마.

엄마를 찾아 전국을 떠도는 아빠.

자신의 음악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아

늘 불만 속에 살아가는 영주.

아버지 대신 꿈을 접고 공방을 운영하는 재하.

늘 우산을 쓰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우산 씨.

이들 모두를 바라만 보아야 하는 해주.

엄마는 언제쯤 돌아오고 도로가 되어버릴 건물은 어떻게 될 것인지 모든 것이 사막의 모래바람 속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사랑이 있고 배려가 있으며 사람 냄새로 가득한 날씨 와 사랑.

먼지와 땀 냄새로 가득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우리가 자주 지치는 건 인생은 기다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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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웃었다. 그의 웃음이 어떤 문장을 떠올리게 했다. 꿈을 꾸지 않더라도, 꿈을 꾸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원하는삶을 살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꼭 나쁜 삶은 아니라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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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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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 다

아모스 오즈

아모스 오즈는 나의 미카엘(1968)로 우리와 친근해진 이스라엘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스물아홉에 나의 미카엘을 발표했고 일흔다섯 살에

사실상 유작이 된 유다(2018)를 발표했다.


제목이 나의 마음을 끌었고 유대인의 눈에 비친 예수라는 글은 지금도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을 하며 책의 첫 장을 열었다.

이야기는 1959년 말에서 1960년 초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슈무엘 아쉬는 유대인의 눈에 비친 예수라는 제목으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연구자였고 넓은 어깨, 짧은 목, 곱슬거리는 수염과 털로 덮인 마치 철사로 짠 양모 같은 생김이었다.

그는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기를 좋아했고, 특히 같은 서클 동료들 앞에서 사회주의 제도 개혁을 논의하는 것을 사랑했다. 그는 만연체로, 즐겁게, 활기차게 말을 했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가 되면 곧 참을성을 잃고 주의가 산만해져 갑자기 피곤함을 느꼈고 눈이

감기곤 했다.

그는 야르데나만을 앞에 두고도 열렬한 강의를 했는데 그녀가 말을 하면 2~3분 만에 그의 눈꺼풀이 감기고 말았다.

어느 날 그는 연인이었던 야르데나에게 이별 통보를 받게 되는데 그녀는 전에 사귀던 남자 친구가 청혼을 하자 슈무엘과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인 네쉐르 사르쉡스키는 조용한 수문학자로 빗물을 저장하는 연구에 있어서 전문가였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귀에 속삭일 줄 알고 그녀의 부모님 생신을 기억하고 있을 만큼 자상한 남자였다.


비운은 한 번에 몰려온다?


슈무엘은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파산에 이르고 사랑하는 여자도 이별 통보를 해온 상황 속에 그녀 아르데나 가 결혼식을 하는 그날 천식을 앓고 있던 그에게 발작이 일어났고 보건소에 실려갔지만 악화되는 바람에 바로 바쿠르 홀림 병원으로 이송되는 불운을 겪는다.

다음 날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기로 했다.

p22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고 사랑하는그녀도 그를 떠나갔다.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는 그가 석사논문으로 준비하던 논문 제목이었다.

마음 맞는 분 구함

p 26

저녁마다 학식이 깊고 지적인 일흔 살 장애인 남성에게 말동무를 해 주시면 숙소를 제공하고 소액의 월급을 지급함.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슈무엘 아쉬는 그 집을 찾아가 일을 시작한다.

아탈리야는 결혼한 지 일 년 만에 남편을 잃고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미망인 이었다. 그녀를 처음 본 그날부터 슈무엘 아쉬는 그녀를 흠모하게 된다.

이 세상에 모든 종교와 혁명이 사라지기만 한다면,

- 이 세상에 전쟁들이 훨씬 적게 일어날 걸세.

p 104

슈무엘은 게르숌 발드가 그의 논문 제목인 유대인의 눈에 비친 예수와 유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두 사람이 마실 차를 따를 뿐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런 기록 중에서 가룟 유다를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유다가 아니었다면 십자가도 없었을 테고

십자가 없었다면 기독교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p 125

진실로 세상에 있는 모든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꿀 수 는없어요.

p 158

예수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유대인으로 죽었어요.

그는 한 번도 새로운 종교를 창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P 168

유다는 열두 제자 중 가장 충성스러우며, 예수를 가장 사랑한 제자였다.

유다는 유일하게 예수와 함께 죽은 제자이다.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끝까지 예수의 주변을 지켰던 제자였고 30세겔이 탐이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유대인에게 예수를 넘겼고 예수가 죽는 그 순간 그도 함께 죽었다.

누구도 유다를 탓하지 않았다.

예수를 사기꾼이며 교활한 마술사라고 했던

유대인들조차도...

P 286

슈무엘 은 방황했다.

종교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유다를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에서 바라봤고 그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원했고 또 사랑하기를 원했다.


슈무엘은 노인과 논쟁을 벌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인과 가까워졌고 아주 오랫동안 알아왔고 사랑해 왔던 관계처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음을 알았고 아탈리야와의 사랑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 사랑조차도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이 모든 일들은 슈무엘에게 더 배 고픈 상태가 되어 그들을 떠나야만 했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팔레스타인에 아랍, 유대의 개별 국가를 각각 건설한다는 UN의 결정에 따라 1948년 지중해 동남쪽 연안과 아리비아 반도 서북쪽 일대에 이스라엘이라는 국명으로 건설되었다.

아모스 오즈는 묻고 있다.

권고인가?

선택할 수 없는 약자의 아픔인가?

[노벨상 후보였던 아모스 오즈는 결국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고 그는 상을 타려고 조국을 배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사람들로부터 '배신자'로 불렸다.

"우리는 모두 가룟 유다야. 거의 여든세 대가 지났지만 우리모두 가룟 유다에 불과해 ."

그가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이었을까? 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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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궁금하다며 무당을 찾아갈 필요도 없어.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복사하면 그게 곧 자기 미래거든. 거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해, 신데렐라 같은 인생역전은 없어. 동화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말로 끝나지만, 페이지가 더 있으면 신데렐라도 결국은 졸라 불행에 쩔다 죽었다고 나올걸, 장갑을 짜고포장하는 게 반복되듯 인생도 불행도 되풀이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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