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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박재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11월
평점 :
만화가 박재동씨의 그림일기를 들여다보니 나도 그림솜씨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연신 부러움이 생긴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 만났던 사람들, 기억해두고 싶은 사건을 그림으로 그리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박재동씨 하면 시사만화가 가장 먼저 떠어로는데 이 책을 보니 사회적 이슈 말고도 가족, 친구를 비롯해 시시콜콜한 일상이 담겨져 있어 전보다 친근하게 느껴진다. 한장 한장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로 따스한 그림과 색채, 사람 사는 이야기가 들어있고 유머까지 있어서 어려운 예술가가 아니라 나와 같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옆집 그림 그리는 아저씨 라는 인상을 준다. 화장실을 가는데 그냥 걸어가는 것보다 춤을 추며 가면 재미있겠다 싶어 춤을 추고 가니 너무 즐거웠다는 이야기, 적게 먹고 배고픔의 쾌감을 느끼려 했으니 중국집에서 풍겨오는 짜장면 냄새에 항복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고뇌하고 진지한 표정의 예술가보다는 푸근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리고 자기성찰이 담긴 글과 그림을 통해서도 완벽하진 않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만의 길을 꾸준히 가는 사람만이 주는 고뇌와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 '손바닥 아트'는 박재동씨의 그림일기인지라 거창한 그림이 들어있는게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늦은 밤 노량진 골목길을 지나서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간판들을 쭉 읊은 것도 있고, 생활하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의 사연도 들어있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며 문을 닫은 새마을구판장 주인 그림은 "어디로 간 것일까?"라고 묻는걸로 보아 연락이 되지 않는 모양인데 이 분이 해준 아버지 이야기가 재미있다. "어릴때 내가 친구들과 수박서리 갔다가 들켜서 담임 선생님이 우리 집에 왔는데 선생님을 도리어 나무라는 거에요. 내가 이렇게 못배워서 애를 인간구실하도록 학교에 보냈는데 나를 찾아오면 대체 날더러 어떡하라는 거냐면서..."
이런 삶의 이야기들로만 책을 엮어도 참 재미있을 것 같은데, 5페이지 정도를 택시 이야기로 할애했다. '택시는 사람 사는 얘기 오가는 달리는 작은 찻집' 이라고 정의했는데 마지막 페이지의 글자 크기가 너무 작아서 읽는데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한명 한명의 인생이 한편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따스한 색감으로 그려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환한 웃음. 봉하마을을 그린 그림도 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림도 있다. 요 몇년 사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떠났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페이지는 한동안 넘기지 못했다. 보고 보고 또 보게 된다.
지하철 안에서 그림을 많이 그리는데, 어떻게 그리는지 궁금해진다. 사람들이 많으면 그리기도 힘들고 주변에서 쳐다보거나 모델들이 알아챌텐데 말이다. 한 남자아이는 박재동씨가 자신을 그리는걸 눈치채자 당황하더니 자는 척을 하는걸로 상황을 벗어나려 했다가 정말 잠들었다는데, 박재동씨는 악의는 없었지만 미안하다고 썼다. 혹시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을까? 아니면 안 들키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위의 그림은 보자마자 웃음짓게 만들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한마디 하고 까르르 웃던 예쁜 아이와 다정하게 듣고 있는 엄마. 너무 예쁜 그림이다. 올망졸망한 아이 셋이 나온 그림도 귀엽다. 아이들이 귀여운지 앞에 앉은 할아버지가 우산으로 장난을 쳤다는데 글과 그림을 보니 상황이 그려진다. 요즘 지하철에서 삭막한 풍경이 많이 펼쳐지는데, 이런 그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왕이면 얼굴 찡그리는 대신 웃고, 양보하고 기분 좋게 타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이 땅에서 피어난 꽃, 아름다운 존재들' 임을 마음에 새긴다면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웃는 얼굴로 대할텐데 말이다.
정말 충격적인 바퀴벌레 그림이 많이 그려져있다. 집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하면 보통 사람들은 비명과 함께 어떻게든 죽일 방법을 찾을텐데, 박재동씨는 옳다구나 이번 기회에 바퀴벌레를 관찰해 그림을 그리자 라는 쪽으로 나갔다. 그렇게 그리게 된 바퀴벌레 그림은 아무리 그림이라지만 긴 더듬이만 봐도 소름이 돋는다. 바퀴벌레를 경탄의 눈으로 보게 됐다는 박재동씨지만, 나에겐 여전히 무섭고 처치해야 할 벌레일 뿐이다. 결국 박재동씨의 딸이 바퀴벌레 소탕작전을 펼쳤는데, 정말 용감한 딸을 두셨다. 바퀴벌레 페이지는 휙휙 넘겨버렸다.
뒷부분엔 '찌라시 아트'가 소개되는데 이 부분이 정말 재미있다. 길거리에 버려진 광고전단지, 영수증, 은행 거래명세표도 하나의 소재가 되고 씨앗이나 카네이션 같은 사물을 붙이기도 하나. 박재동씨의 소망 중 하나가 생활사 박물관을 만들어 우리 생활에 쓰이는 물건들을 전시하는 것이라는데, 라면 봉지도 그 중 하나이다. 옆에 작게 쓰여진 글엔 '양념을 약간씩 남겼으니 백년후에 연구해보기 바란다ㅋ'라고 쓰여있다. 하하, 알면 알수록 박재동씨는 참 유머러스하다. 광고사진에 그려진 귀여운 그림과 성인광고물의 에로틱함까지, 찌라시 아트 보는 재미가 최고다.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2권 안나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