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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세계사 ㅣ 창비청소년문고 5
이영숙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역사하면 딱딱하고 어려운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하물며 지명과 발음도 어려운 외국의 역사를 머릿속에 집어넣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감자,돼지고기,빵,옥수수 등 우리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음식 재료를 통해 세계의 역사를 알아가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참신하고 재미있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딱딱한 문체가 아니라 선생님이나 엄마가 아이에게 조곤조곤 설명하는 문체를 사용해서 술술 읽혔다. 단지 역사설 사실만을 서술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고, 잘못 알려진 것은 바로 잡는 등 여러모로 유익했다.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아일랜드의 감자' 이야기는 식민지 시대를 겪은 우리나라 이기에 더 공감이 됐다. 누구나 좋아하고 간편하게 먹을수 있는 감자는 초기엔 생김새와 솔라닌 이라는 독소 때문에 '악마의 과일'이라 불리며 동물이나 전쟁 포로나 먹었지만 각고의 노력끝에 안전하다는게 밝혀지며 널리 사랑받게 됐다. 그 중에서도 아일랜드는 감자가 주식이었는데, 그럴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사정이 있었다. 옆나라 영국에 의해 지배받게 되자 상품가치가 있는 식료품을 영국에 모두 뺏겼고, 감자만이 유일하게 남게 됐던 것이다. 그래서 감자만 먹고 살 수밖에 없었는데, 감자에 병충해가 생기자 대기근으로 발전하게 됐다. 유일한 식량인 감자가 없으니 사람들은 속절없이 굶어 죽게 됐는데 그 숫자가 엄청나서 처참한 그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런데도 영국은 도와주기는 커녕 계속 뺏기만 했으니 아일랜드인의 분노는 너무도 당연했다. 감자 하나 때문에 두나라의 관계가 악화된게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비극이 이런 끔찍한 희생을 낳은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아일랜드인에게 감자로 인한 대기근은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로 남아 있다.
많은 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은 인도도 삼켜버렸고, 간디로 하여금 비폭력 운동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소금은 무조건 영국에서 수입해야 한다는 '소금법'에 대항해 '소금 행진'을 한 간디의 일은 너무도 유명하다. 처음엔 소수의 사람들이 간디의 뒤를 따랐지만 점점 많은 인도인들이 뜻을 함께 했고 무려 400km가 넘는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다다른 바다에서 소금을 직접 만들며 영국의 소금법에 대항한 간디의 행동은 많은 인도인들에게 깊은 감명과 자극을 주었다. 영국은 중국과도 전쟁을 벌였는데, 그 배경이 중국의 '차' 때문이었다. 중국의 차 문화는 발달되었고 맛도 일품인터라 영국에서 많은 양을 수입해 갔는데, 수입은 많은 대신 수출이 적으니 불균형이 일어날수밖에 없었다. 중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만 보니 생각해 낸 것이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밀수출하는 것이었는데, 중국인들의 아편중독이 심화되자 중국은 수입금지를 시켰고 이를 빌미로 전쟁을 걸어온 것이다. 편안한 휴식과 깊은 맛을 주는 '차' 한잔이 끔찍한 결과를 낸 셈인데, 어쩌면 이건 영국의 야욕을 위한 하나의 구실 이었을 뿐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차 가 아니었더라도 어떤 이유를 대서든 중국을 집어 삼키려 노력했을 테니 말이다.
예전엔 비싼 과일이었지만 지금은 저렴한 과일이 된 바나나(요샌 또 가격이 올랐지만)는 먹기 간편해 즐겨 먹게 된다. 하지만 이 바나나에 얽힌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슬퍼서 바나나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동안 바나나하면 먼 외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농약이 많이 묻어 있어 과연 안전할까 싶었고, 영양적인 면 밖엔 보지 않았다. 그런데 세계인들이 저렴하게 즐길수 있는 바나나를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이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거대 기업에 유린 당하는 모습을 보며 충격 받았고 윤리적인 면에서 꺼려지게 됐다. 한국의 소비자인 나는 그동안 바나나를 구입 할 때 '오늘은 가격이 저렴한가'만 따졌는데, 이 바나나를 만들기 위해 너무도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말이다. 나라 전체가 바나나 공화국이 되어가는 과정과 외국 기업의 포악한 횡포와 탐욕은 바나나를 집어 들던 손을 멈칫거리게 한다.
이렇게 10가지 음식에 얽힌 역사를 함께 배우니 절대 잊어버리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오직 한 나라에만 있고, 그 나라 사람들만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세계인들이 즐기고 자주 접하는 음식이기 때문에 다양한 나라들이 얽힐 수 있었고 그렇게 세계 역사가 만들어 진 셈이다. 기획도 좋았고 내용도 좋아서 정말 만족스럽게 읽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