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외계인: 폴 -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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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폴의 인상착의는 외계인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몸보다 큰 머리에 커다란 아몬드 눈을 갖고 있고 팔은 땅에 닿을만큼 기다랗다. 오랫동안 소비되어 온 외계인의 형태인데, 재미있게도 폴의 말투와 행동은 외계인의 탈을 쓴 지구인 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인간화 되어있다. 지구에 온지 60년이나 됐기 때문인지 영어도 완벽하고 입도 걸걸하다. 골초에 좋아하는 음악취향도 분명하고 춤 추고 인간과 어울리는걸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쫒기는 상황임에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자신이 외계인 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는지 시시때때로 인간들에게 모습을 드러내 충격을 던져주니 괴짜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나 여유롭고 느긋한지 자신을 보고 경악하는 지구인들을 잘 다독이는데(?) 그 모습을 보고있자면 "외계인 처음 보나?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몇십년 동안 내 얼굴을 영화나 각종 인쇄물에서 봤을텐데 말야. 침착하라구!" 라고 하는것만 같다.  

그런 폴이 도망중에 만나는 이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SF에 열광하는 영국 괴짜들이었다. UFO에 관심이 많고 외계인을 만나는게 평생 소원이며 만화,소설에 푹 빠져사는 이들은 어린시절부터 꿈이었던 SF코믹콘 참가를 위해 미국까지 왔다. 일반인들은 절대 이들의 말을 이해못할텐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호텔 종업원에게 게이커플 이라는 오해도 받고, 자신들의 여행 일정을 이야기해도 알아듣질 못한다. 일반인과 오타쿠가 사는 세계는 생각보다 먼 모양이다.

꿈에 그리던 코믹콘에서 실컷 구경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에게 사인도 받고 자신들과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을 만나며 으쌰으쌰해진 괴짜커플의 다음 목적지는 외계인 연구 비밀 구역에 가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UFO가 출몰되는 곳을 찾아가 인증샷을 찍으며 영국에 돌아가 오래오래 이야기 하게 될 추억거리를 만드는 그램과 클라이드 이다. 그런데 이 여행길에서 진짜 외계인과 조우하게 된다. 외계인이 있다는걸 믿고 항상 꿈꿔왔던 그들이지만 미국 도로에서 갑작스럽게 만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담배연기를 날리며 영어를 쓰는 외계인 이었으니 보고도 믿기 힘들 것이다.

이 놀라운 만남에 클라이브는 오줌을 싸며 기절하고 그램은 자신의 항문에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외계인은 E.T 처럼 착하거나 인간을 납치해 해부하고 지구를 정복하려는 나쁜 이미지로 나뉜다. 대부분은 인간을 해치려는 이미지가 큰데, 나쁜 외계인들이 벌이는 일들은 우리가 생각해낼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법들을 상상하기 때문에 괜한 공포심만 커져간다. 이런 걱정때문에 그램과 클라이브는 호들갑을 떨며 공포스러워 하는데, 이런 모습에 폴은 "또 이런 반응이야?"라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묻는다. "대체 인간의 항문을 왜 검사해야 하는건데?"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초능력을 사용할줄 알고 인간보다 월등한 과학진보를 이뤄냈다고 여겨지는 외계인들이 왜 굳이 인간의 항문을 검사할까? 오히려 검사하고 해부하고 싶어하는건 인간이었다. 60년간 감금된 채 지구의 외계인 문화에 이바지하고 다양한 정보를 쏙쏙 빼먹은 인간들은 더 이상 얻을게 없어지자 마지막으로 폴의 몸을 원했다. 오랫동안 함께 해 왔음에도 폴은 친구가 아니라 외계생명체일 뿐이었고, 그의 뇌를 통해 더 많은 실험을 해보고 싶어했다. 이런 계획을 알고 폴을 탈출시키며 도와주는 친구가 없었다면 꼼짝없이 수술대위에 누워있었을 것이다. 잔인하고 위협적인 존재는 외계인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과 종교는 그 어떤 무기보다도 사람을 무섭게 만드는데, 여행길에서 만난 기독교 원리주의자 루스의 모습이 그렇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교육을 받아서인지 지금껏 욕 한번 하지 않고 순종하며 살아왔던 그녀는 성경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기 때문에 외계인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나님이 외계인을 창조했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루스의 발언에 발끈한 폴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루스로 하여금 자신이 믿고 있던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쫒기는 신세에 모습까지 들켜버렸으니 루스를 데리고 다닐수밖에 없었다. 물론 루스에게 감정을 느껴버린 그램의 부탁때문에 죽이는 대신 데리고 다닌 거지만 말이다.  

아무튼 평생동안 각종 규제에 억압받으며 살아왓던 루스는 충격과 동시에 자유로움을 느낀다. 아버지의 곁과 집을 벗어나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그녀는 이제 무슨 일을 벌여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이제 루스가 하는 경험은 모두가 처음이다. 첫 키스, 첫 욕(?),첫 담배 등등 말이다. 이제 괴짜친구와 외계인,루스까지 동행하게 된 여행은 검은옷을 입은 사내들과의 추격전이라기 보다는 즐거운 게임처럼 보인다. 마지막엔 총도 쏘고 폭발같은 위험한 순간도 있지만 긴장감은 제로라서 그런가보다.  

제목은 황당한 외계인 이지만 그램과 클레이브, 그리고 루스 같은 인물들이 더 황당해 보이는건 왜 일까? 오히려 머뭇대는 이들에게 "한번쯤 주사위를 굴리는 모험이 필요해."라는 말을 해주고, 처음 지구에 왔을 때 자신을 구해준 소녀를 찾아가고, 총에 맞은 친구를 살리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폴이 더 인간처럼 느껴진다. 폴과 만난 사람들은 그로 인해 더 나은 삶을 살게 됐다. 폴의 중매로 결혼을 하게 된 요원, 이 사건을 계기로 작가로서 성공한 그램과 클라이드, 폴이 치유해줘서 시력을 되찾은 루스의 새로운 인생까지 말이다. 폴 또한 이들의 도움으로 인해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으니 잊지못할 좋은 추억이었다. 담배를 좋아하던 폴이 고향으로 돌아가 금단증상을 보이진 않을지 궁금해진다. 그래도 좋은 친구가 곁에 있으니 든든하긴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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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외계인: 폴 -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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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외계인에 관한 재미있는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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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시간 - 127 H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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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랠스톤이 겪은 감동적인 실화는 대니 보일 감독의 감각적인 영상과 제임스 프랭코의 원맨쇼로 잊지 못할 작품으로 탄생했다. 보는 내내 입이 타 들어가고, 체험하지 않고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할 큰 고통을 겪는 주인공을 보면서 내가 겪지 않아도 되는 일 임에 안심하고 감사하게 됐다. 그리고 끔찍하지만 반드시 했어야 할 일을 치룬 그의 용기가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은 불가능한 일에 닥쳤을 땐 가끔 예쌍치도 못한 초인적인 힘을 낼 때가 있는데 주인공 아론이 그러했다. 만약 그가 바위에 손이 끼지 않았다면 자신의 팔을 자르는 자르는건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었을테고 미친 짓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죽음을 기다릴순 없었기에 그는 미친짓을 감행했다. 푸른 색깔로 변하는 팔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자르며 기절하지 않기위해 애쓰는 장면은 정말 끔찍했는데, 그런 용기가 있었기에 아론은 새로운 인생을 살수 있는 기회를 얻을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캠핑을 하며 아침 해가 뜨는 장면을 봤던 기억은 그에게 여행을 취미 이상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성인이 된 지금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지도를 펼쳐 들며 '이번 주말은 어디를 누빌까~'라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아론이 찾은 곳은 눈 감고도 지리를 파악할수 있는 그랜드 캐년으로 여행책에 나와있는 것 보다 시간을 단축하는게 목표였다. 아침에 짐을 챙길 때 시간에 쫒겨 스위스칼을 놓고 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자전거와 물, 로프와 칼(사은품으로 딸려온 중국제 칼)과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문제될게 없었다. 설렘과 흥분을 안고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으며 그는 이번에도 멋진 등반이 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놓고온 스위스칼이 꼭 필요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니, 이런걸 보면 참 얄궃다는 생각이 든다. 이 모두가 앞일을 예측할수 없기 때문인데 아론 처럼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되면 더욱 더 놓쳐버린 상황들에 미련을 갖게 된다. 스위스제 칼을 미리 챙겨놨더라면,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더라면, 친구에게 행선지를 알렸더라면, 차 속에 있는 음료수를 가방에 넣었더라면 등등 말이다. 길을 잃은 두 여성에게 환상적인 장소를 제공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때만 해도 몇시간 뒤에 바위에 손이 끼는 사고가 일어날줄 몰랐다. 처음엔 꿈 같은 이 상황이 믿겨지지 않았지만 차분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500ml 물병엔 반 조금 넘게 물이 남아있고, 칼로 돌을 쪼개거나 로프를 이용해 바위를 움직일수 있을거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바위를 혼자서 움직일수 없다는걸 깨닫게 되고 광활한 그랜드 캐년 깊숙한 곳에 떨어져있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는것도 확실하게 알게 된다. 이제 바라는건 기적이 일어나는 것 뿐이다.  
 


 

아론은 평소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죽음이 가까이 온 상황이 되서야 되돌아보게 된다. 부모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표현을 하지 못했고, 곧 결혼하는 여동생이 같이 축가 연주를 하자는 부탁에 대답도 안 했고,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살아온걸 후회한다. 여자친구에게 상처를 줬던 일과 어린 시절의 추억 등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캠코더를 통해 마지막 인사를 남기게 된다.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일종의 유언을 남기는 심정이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갈증과 허기와 싸우고 추위와 공포에 사로잡힌 아론은 점점 신경이 예민해져 가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상상은 그를 계속 괴롭힌다. 많은 비가 쏟아져내려 바위에 깔린 팔을 뺄수 있게 되어 탈출하는 상상은 영화에서 압권적인 장면인데, 그게 상상임을 알게됐을땐 관객인 나 조차도 엄청난 실망을 하게 만들고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했다.  

이제 아론은 한계에 와 있다.물이 다 떨어져 오줌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그를 괴롭혔고 뭉툭한 중국제 칼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데 실망했다. 평소엔 따뜻한 햇살의 고마움을 몰랐지만 이젠 아침마다 18분간 내리쬐는 햇살에 샤워를 하며 추위를 녹였다. 처음의 활기찬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초췌하게 변한 그는 서있기조차 힘들어 보였는데, 마지막 힘을 짜내어 한 결정이 바로 자신의 팔을 자르는 것이었다. 한계의 끝 까지 왔기 때문에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죽느냐, 아니면 팔을 잘라 탈출하느냐 두 가지 선택만이 남아있었다. 아론은 후자를 선택했고 결국 해냈다. 바위에 낀 잘린 손을 사진으로 남기는 걸 잊지 않고 그는 지옥같았던 그 곳을 탈출하게 됐다. 온갖 부유물이 떠 있는 흙탕물을 기뻐하며 마셨고 뜨거운 태양을 온 몸으로 느꼈고 희망을 봤다. 내 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은 아론을 보며 불행한 사고가 생긴걸 안타까워 하고, 그가 그 순간에 그곳에 있었다는데 유감을 표할지 모른다. 그의 없어진 오른 손을 보며 불쌍하다고 여기며 운이 나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말대로 아론은 분명 몸의 일부는 잃었을지 모르지만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실제 모습을 보면 이 사고를 통해 얻은게 더 많았다는것을 알수 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끼게 됐고 순간순간 삶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아마 그때 포기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아내와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여전히 등반을 즐기고 있는데 전과 다른 점은 반드시 행선지를 알린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가 참 강한 사람이라는걸 알게 됐다. 아론 랠스톤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는 걸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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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 - The 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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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에플렉이 감독, 각본, 주연을 맡은《타운》은 척 호건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있는데, '리얼 범죄 액션' 이라는 포스터의 글귀가 영화와 너무도 맞지 않는다.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중 하나인《가라, 아이야,가라》를 감독 데뷔작으로 고른 벤 에플렉은 이번엔 범죄가 되물림 되고있는 도시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이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은 제대로 된 환경에서 살지 못했고 아버지의 아버지때 부터 범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도소에 들어가거나 은행을 털거나 범죄에 연루돼 죽는게 일상이 되었다. 내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나도 살기 위해 손을 더럽히는게 마치 가업처럼 이어지는 모습속에서 꿈과 희망 이라는 단어는 입에 담기도 힘든 유치한 말이 되어버렸다.  

그런 환경속에서 살아온 더그는 성공할수 있는 재능이 있었기에 이 곳을 탈출하는 특별한 사람이 될수 있었다.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어 모든 이들의 부러움과 자랑스러운 시민, 아이들에겐 비록 이 마을에 살아도 꿈을 놓지 않으면 성공할수 있다는 롤모델이 될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과의 다툼으로 유일한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걸으며, 형제와도 같은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과 함께 은행 강도로 변신하다. 언제나 잘 짜여진 계획을 세우고 아무도 다치는 일 없이 돈을 챙기길 원하는 더그는 한 몫 단단히 챙겨 찰스타운을 떠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범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빠져나갈 방법은 죽음 밖에 없다는걸 그 당시엔 몰랐다. 더구나 충동적인 성격의 친구 제임스 때문에 일이 자꾸 꼬여버리고,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줄은.. 

친구 세명과 함께 케임브리지 은행을 순식간에 털 때만해도 모든 계획이 착착 들어맞았다. 흥분한 제임스가 인질 중 한명을 과하게 폭행한 것만 빼면 말이다. 이들은 클레어 지점장을 인질로 끌고 가 인근 해변에 놓아주는데 그녀의 신분증을 통해 찰스타운 근처에 살고있다는걸 알게 된다. 비록 얼굴을 가렸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을 막기 위해 클레어를 조사하려고 한다. 이 일을 제임스가 맡으려 하자 그의 난폭함을 알고있는 더그는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약속하고 클레어를 우연을 가장해 만나게 된다. 아직도 범행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클레어는 더그가 범인인줄은 꿈에도 모르고 따뜻한 마음씨와 유머를 갖고 있는 그에게 호감을 품게 된다. 더그 또한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며 행복해 하면서도, 그녀에게 고통을 준게 자신이라는 괴로움과 거짓말을 할수밖에 없는 상황에 힘들어한다. 그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고 사실을 말해야 하지만 점점 옥죄어오는 FBI의 수사와 또 한번의 은행강도를 하라는 조직의 지시등은 풀지못한 문제를 계속 쌓이게 만든다.    



"난 더 이상 이 일을 하지 않겠어."라고 말한다고 끝나는게 아니다. 일거리를 제공해주는 조직의 보스는 더그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더그 또한 철저하게 이용하려고 한다. 만약 더그가 찰스타운을 벗어나지 못한 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 또한 보스의 명령대로 움직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 반복되는 굴레는 죽음으로 밖엔 끊을수가 없는 모양이다. 하물며 클레어를  죽이겠다고 협박 하고 친구 제임스 또한 그를 압박해 오는 상황이 발생하니 그가 할수 있는건 무모한 범행을 시도하는 것 뿐이다. 나쁜 예감이 들지만 벗어날수 없는 더그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찰스타운을 떠나겠다는 마음을 굳힌다. 그리고 그 길에 클레어가 있었으면 했다.  

찰스타운은 그의 고향이었지만 한번도 좋은 기억을 남겨주지 않았다. 아버지 때문에 자신을 떠난줄로만 알았던 어머니에 대한 진실까지 알게 된 마당에 그가 찰스타운에 산다는건 인생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비록 잘 살진 못하더라도 더그는 이 곳을 떠나야만 했고, 제임스가 자신을 총으로 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이 곳에 있는 한 할수 있는건 범죄를 저지르는 것 밖에 없을테고 아버지가 그러했듯 감옥에 가는 일만 남게될 테니까. 그러면 보스는 또 다른 아이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찰스타운에서 은행 강도는 대물림되는 기업과 같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것이다. 만약 더그가 이곳이 아닌 다른 평범한 도시와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어 법을 어기는 것과는 거리가 먼, 떳떳하고 당당한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찰스타운의 은행강도 였고, 친구들 중 유일하게 이 곳을 벗어날 결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곳으로 가던지 찰스타운에서 했던 모든 일과 사람들은 결코 잊혀지지 않고 그의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나쁜 기억밖에 없는 곳이지만 그의 생에 전부가 있는 곳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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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Black S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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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을 뚫고 더이상 조연이 아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연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예체능 계열은 유독 그러해 보이는데 나이에 대한 제약도 많고 젊은 나이에 재능을 인정받아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면 어느 새 재능있고 나이 어린 후배들에 의해 뒤로 밀리기 쉽상이다. 그러다 서서히 잊혀지거나 세월에 의해 강제적인 은퇴를 당하기도 한다. 그나마 한번이라도 빛날수 있었던 무용수는 행운아 일지도 모르겠다. 이 엄격한 승부의 세계에서 삼류 댄서가 되느냐 프린세스가 되느냐는 기회를 잡느냐 마느냐로 갈리게 된다. 어쩌면 한번도 찾아오지 않을 그 기회를 잡기위해 땀과 눈물을 쏟으며 혹독하게 자신을 다그치는 이들은 과거에도,지금도,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뉴욕 발레단의 니나(나탈리 포트만)또한 기회를 잡고 싶어하는 수많은 발레리나중 한명으로 어머니의 지극한 지원을 받으며 오로지 발레만 생각하며 산다. 애인도 없고 극단과 집 만 오가는 단순한 삶 속에서 니나는 춤을 통해 자신을 꽃피울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오랫동안 바라던 기회는 단장이 새롭게 재해석한 '백조의 호수'을 새 공연으로 택하면서 찾아오는데,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별 희망이 없어 보였다. 감독 토마스(뱅상 카셀)는 순수하고 연약한 백조만을 연기한다면 니나를 주저없이 택하겠지만, 흑조를 같이 연기해야 하기에 그녀를 선택할수 없다고 했다. 니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지만 흑조의 어두운 면을 연기하기엔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많이 부족해 보였다. 니나에겐 범생이 이미지만 있을 뿐, 도발적이고 유혹적인 흑조의 이미지는 찾아볼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란 니나가 깨물어 버리자, 토마스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 그녀를 주인공으로 택하게 된다. 그야말로 충동적이고 무모한 결정이었는데 토마스는 니나에게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면을, 도발적이고 유혹적인 면을 볼수 있을 거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본 모양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엄마의 품 안에서 공주님으로 살아온 연약한 니나에겐 릴리처럼 카리스마와 무대 장악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흑조를 연기한다고 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백조를 연상시켰고 숨겨진 잠재력을 끄집어 내지 못했기 때문에 점점 릴리와 비교가 됐다. 그토록 꿈꿨던 역할 이었지만 이젠 릴리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생각과 내게 언제나 헌신했던 어머니에게서 같은 무용수로서의 질투심을 느끼며 점점 겉잡을수 없는 상태가 되버린다. 어머니의 말을 잘 듣던 착한 딸은 이제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았던 욕망을 분출하며 흑조가 되어가는데 등에 난 상처에서 깃털이 나오는 환상까지 합쳐지며 완벽한 흑조의 모습으로 바뀌어져 간다. 그러면서 니나는 지금 모습이 실제인지 환상인지 헷갈려한다. 안 좋게 표현하면 반 미친 상태로, 한번의 공연을 위해서 올인하게 되는데 그만큼 절실했던 것 이다. 마치 내일의 해는 뜨지 않는다는 사람처럼 아픈것도 잊고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는 것도 잊은 채 황홀경의 상태에서 연기를 하고 춤을 춘다. 가녀린 백조의 모습에서 약간의 실수를 했지만, 2막이 시작되고 흑조가 되어가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 돋게 하고 그 감동은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녀 말대로 정말로 완벽한 공연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한번의 공연을 위해 그녀가 치른 댓가는 무척 컸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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