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이문열 엮음 / 살림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좋아할 만한 취향은 아니지만, 공부 목적으로 읽었다. 


세계문학의 번역본을 통하여 작품을 읽는다는 것의 불완전성과
흥미롭지 않은 시대상 때문에 작품을 읽는 시간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한번쯤 읽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1. 첫번째 작품 :
F.R. 사토브리앙 「르네」 

-스토리 : 소심하고, 분열적 정신과 자아를 가진 르네가 그의 누이 아멜리를 사랑하고
누이도 르네를 사랑하나, 
두 남매를 그 사실을 숨기고 정신적으로만 교류하다가
급기야 고통받던 아멜리는 수녀가 되기를 결심하고,
수녀원에 들어간 뒤 심적 평온과 기쁨을 느끼다가
전염병 창궐시 동료들을 사랑과 헌신으로 돌보다가
전염병에 걸려 죽게 되는 내용을,

르네가 어느날 양아버지인 눈먼 추장 샥타스(너그러운 성격)와
선교사 수엘 신부님(엄격한 성격)에게 털어놓으면서 벌어지는 액자 형식 소설.

 

-눈에 띈 부분 :  

* 16세에 대해 진술하며-
"인생의 아침이란 꼭 하루의 아침과 같은 것이어서, 순수함과 이미지와 조화로 가득 차 있다." 

* 르네의 성격 : "항구를 떠나지 않고도 항해를 끝마치는 일"에 대해 동경함. 모험을 싫어하고 틀어박혀 있는 일을 좋아함.  

* "달빛은 꿈의 양식" 

* "사랑이란 만나보아도 미지근한 것이고 못 보면 아주 사라져버리며, 불행에는 견뎌내지도 못하는 법." 

* 르네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 
"인간이 사는 처소에 밝혀진 불빛을 보면서 저의 생각은 그 불빛이 보여주는 괴로움과 즐거움의 여러가지 장면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저 많은 지붕 아래에 친구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고." 

* "수풀 한 구석 풀포기 위에 피운 보잘 것 없는 모닥불에 손을 녹이는 목자." 

* "우리들의 마음이란 완전하지 못한 악기와 같은 것." (기쁨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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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씨가 작품 수록 후에 적어 둔 구절 中 

--- 나의 지난 이십년간 이란 게 어떠했는가. 
     단편의 재능이 없는 탓에 구성의 무게에 과도하게 짓눌려온 세월이었으며, 
     구조니 총체니 하는 용어들로 고전적인 문장론을 깔아 뭉개버린 
     강단이론가들에게 주눅들어 지낸 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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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신발
김주영 지음 / 김영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p.11 
집집마다 다듬어서 마무리한 모양새와 문양이 서로 달라 
빈 집에 떡을 갖다주고 돌아가도
나중에 봐서 어느 집 제사 떡인가를 알아챌 수 있는 다식판처럼. 

 

P.17 
얼마를 기다렸을까. 노인은 드디어 낌새를 알아챈다.
그러나 누워있던 자세에서 미동도 않는다.
참외 서리를 노리고 밭으로 무턱대고 진입한 아이들이 다치지 말라고, 밭 귀퉁이 한 편에
쳐 둔 가시넝쿨을 치우고
개구멍을 만들어두었다. 

그 곳으로 알몸의 아이들이 포복의 자세로 기어들고 있다.
웃통을 벗어 소매 끝을 옭아매 저마다 자루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밭고랑을 파고드는 아이들의 피부에 참외 잎 스치는 소리가 또렷하다.
  

어림짐작으로 시간이 얼추 흘러갈 때까지 노인은 그린 듯이 누워 기다린다.
노인은 드디어 몸을 뒤척이며 조심스럽게 기침 소리를 낸다.
와락 외마디 소리를 지르거나 호통부터 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어마지두 놀란 아이들이 갈팡질팡하다가 원두막 아래 놓아둔
오줌장군을 안고 넘어지거나, 가시넝쿨 위로 가차없이 몸을 던지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순, 먼 데 여울 소리만 들려올 뿐, 원두막 주위는 바다 속처럼 고요하다. 
노인은 개구멍 쪽으로 목을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요놈들아 자정이 가까웠다. 인자는 고만 떠들고 들어가서 자그라." 

이튿날 동이 틀 무렵, 
일찌감치 잠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은, 개구멍 바자 근처에 드러난 지난밤의 어수선한 흔적을
수습한다.
그러나 터놓았던 개구멍 바자는 다음날 밤을 위해서 역시 그대로 둔다. 
다락으로 올라가 장죽에 살담배를 다져 놓고 불을 당긴 다음, 연기 한 모금 깊숙하게 마신다. 

아침마다 천자문을 배우러 원두막을 찾아오는 손자 놈이 있다.
녀석은 발소리도 없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다락 위로 불쑥 고개를 디민다.
손자 놈이 들고 있는 천자문은 노인 자신이 배우다가 아들에게 대물림한 것이고,
그 소생이 또한 당신의 손자에게 대물림한 것이다.
때문에 이젠 책갈피가 낡을 대로 낡아 나달나달하다.
손자 놈은 평소와 같지 않게 할아버지의 눈길을 피하고 있다.
바로 앞에 와서 책상다리하고 앉는 손자 놈의 목덜미에 채 수습하지 못한 참외 씨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지난밤에 개구멍 바자를 망쳐놓은 참외 서리꾼들을 앞장서서 향도한 장본인이 바로 당신의 손자 놈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못 본 척한 노인은 편안하고 느긋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자문의 열두 번째 장을 회초리 끝으로 가리키며 목청을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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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사용 - 소설가 함정임의 프랑스 파리 산책
함정임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소설가 함정임의 글을 좋아한다.  

그녀의 '소설들'을 좋아해서 소설가 함정임이라고 부른 게 아니다.
고유명사처럼 그녀를 지칭하는 말이 '소설가 함정임' 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책상, 의자, 식으로 사물의 정해진 이름을 부르듯, 그녀를 그렇게 불렀을 뿐. 

젊은 작가들의 글에서는 볼 수 없는 '우물같은 깊이'가 그녀의 글에서는 있다. 

'동행'으로 유명한 그녀-
소설가 김소진의 미망인으로 유명한(그러나 이렇게 표현하기가 참 죄송한) 그녀- 

 대학시절, 선배들이 이번주 합평용 소설로 제시해 준 '동행'을 읽다가 
지하 도서관 인문코너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녀의 이 책 제목처럼 '인생의 사용'법이 따로 있다면,
그녀의 글들은 아픔이나 삶의 굴곡 같은 것을 제대로 녹여낸 것이 느껴져 참 좋다는 말이다. 

인기있는 작가의 농담이 툭툭 튀어나와 유쾌한 글을 읽고 있을 때보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 더 잔잔해서 좋을 때가 있고,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보다 우리나라 시골 골목을 묘사한 글에 더 정감이 느껴질 때가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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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1쇄 : 2003년 8월 5일. 

펴낸 곳 : 해냄 출판사. 

* 출판사에서 반 년, 일했던 경험으로 책을 읽을 때면 앞 부분이든, 뒷 부분이든 꼭 몇쇄본인지를 파악하는 습관이 있다. 

   

한줄 평 : 파리여행을 앞둔 사람들 보다는, 파리의 감성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펼쳐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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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8 

인생이란 한 사람의 일생을 말한다. 
프랑스의 19세기 작가 모파상은 한 여자의 일생을 소설로 써서 "어떤 인생"이라 했고,  
역시 프랑스의 20세기 현대 작가 조르주 페렉은 현대 파리와 파리지엔의 삶을 형식 파괴적인 소설로 써서 "인생 사용법"이라 명명했다. 
작가는 그 어떤 족속보다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의 일면과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하여 매혹된다. 
그것은 내가 사는 이 세상, 동시에 내가 닿을 수 있는 저 세상에 대해 매번 홀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32 

이러한 위안과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여행이 가져다주는 특별한 선물인가.

하루도 변화하지 않고는 존재 이유를 상싱한 내 모국의 수도,
내가 떠나온 서울의 폭력적인 변화 속도를 이곳에서는 좀처럼 감지할 수 없다.

이방인 이라서 그런가. 

이방인으로서 누리는 특장이란 바깥의 사유를 통해 더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빛을 발한다.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선 자세로 파리를 바라본다. 

 

p.105 

보들레르, 우울  

나는 천 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이 있다. 

계산서들에 시와 연애편지들, 소송 서류에 연가(戀歌)들이,  
또 영수증들에 말린 무거운 머리카락들이,
서랍들 속에 가득 쌓인 커다란 장도,
내 슬픈 머리만큼 비밀을 감추고 있지는 않다.
공동묘지보다도 많은 주검 간직한,
내 머리는 피라미드, 엄청난 납골당.
-나는 달도 싫어하는 하나의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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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과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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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패러디 소설.

2. "이것은 작품이 아니라 텍스트다." 라고 작가가 선언.

3.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을 한국으로 불러 온 소설, 또는

    한국 문학의 문제점 -독자 실종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

  

 

 

이라고들 한다.

내게는 그냥 논할 것이 많은 소설이다.

흥미롭다.

무엇보다, 작가의 공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며칠 째 이 책이 손에서 떠나질 않고 있다.

덕분에 내 시간을 잡아먹는다.

간장게장 같은 책.

 

 







 

12.4. pm 12:07.

다 읽었다.

거의 2주가 걸린 모양이다.

흔치 않다.

2주나 걸리다니.

 

 

책을 읽는 내내 김경욱이 '윌리엄 수사의 수기를 읽는 동안에는 논문에 대한 절망과 근심도 거짓말처럼 잊을 수 있었다.' 고 한 것처럼,

 

 

나도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좋은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절망과 근심도 거짓말처럼 잊을 수 있었다.

 

'소설쓰기'를 위한 소설읽기가 아니라,

한명의 독자로서 순수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 사라지고 오직 글을 읽는 나와 서책에 새겨진 기호들만 존재했다."

 

그랬다.

오직 김경욱의 소설을 읽는 나와,

김경욱의 소설 '황금사과'만이 존재했다.

 

오랫만이다.

이 느낌.

 

 

 







 

한때 그토록 고결했던 솔로몬은 어디 있는지 말해주오.

또 그토록 용맹스럽던 삼손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빼어난 용모의 압살롬은?

가장 사랑스럽고 다정하던 요나단은?

어디로 갔는가 카이사르는, 그 고귀하던 제왕은?

툴리우스는 어디로 갔는가, 그 빼어난 웅변가는?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디 있는가, 그 최고의 지성은?

 

 







 

김연수 said.

 

[김경욱은 나와 같은 해 등단한 소설가다.

1994년 4월, 우리는 서울 사간동 출판문화회관 3층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로 안면을 텄다.

 

문학상 시상식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던 그때, 나는 25세 였고 김경욱은 24세였다.

 

대개 25세 무렵의 소설적 감각이란 어디까지나 가장 훌륭한 경우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거나 가장 나쁜 경우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자기 것인 양 말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김경욱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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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벳 - 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
레이프 라슨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분류 :  성장소설 or 동화 or 여행기 or 모험기

주인공 나이 :  12

국적 :   미국

이름 :   테쿰세   스패로우(sparrow)   스피벳

특징 : 도표와, 도해, 그림, 차트가 계속 등장해 볼거리를 제공해

        매력적  인 책.

 

 

스패로우.

참새라는 철자가 이름의 중간에 들어간다.

주인공이 태어나던 날에 창에 참새가 날아와

머리를 박아서 붙혀진 별명 같은 미들 네임.

 

과학 천재적인 아이다.

 

 

* 그 아이의 방에는 특징이 있다.

 

- '과학적 도구'들을 모두 벽에 못으로 그려 놓았는데,

그 물건을 집어 올려도 '물건의 테두리'는 벽에 남아 있다.

 

즉, 그 물건을 집어올려도 물건의 잔상이 벽에 남아 있는 것이다.

무언가 없어지면 언제든 그 없어진 물건을 한 눈에 알 수 있고,

방 청소시 그 도구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쉽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ㅋㅋㅋ

(방청소가 아니라 퍼즐 맞추기하는 기분일 듯)

 

* 스패로우는 그것을 물건의 '메아리'라고 표현한다.

 

 

* 스패로우 스피벳의 마을 :

몬태나 주.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카 오디오를 조작하느라 잠깐만 한 눈을 팔아도 지나칠 정도로 작은 마을.

 

어머니는 곤충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우리 어머니는 아기에게 이유식을 먹이면서 주기율표를

       가르칠 망정, 범 세계적인 테러와 아동 유괴가 벌어지는

       이 시대에 자기 아이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사람은 아니다.」

 

 

누나가 옥수수 껍질을 깔 때, 그 옆에서 그 동작을 도해로 그린다.

누나가 제일 먼저 손을 집는 곳과, 힘의 강도 정도를.

 

    「박쥐들은 절대로 '여기'를 모른다.

      '저기'로부터의 메아리를 알 뿐.」

 

 

  「양동이 안에는 옅은 색 옥수수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꼭지의

    방향은 제각각이었고, 샛노란 알들은 누군가 눌러주기를 기다리는

    작은 버클처럼 늦은 오후 햇빛에 반짝였다.

     누구라도 날옥수수를 보면 큰 감흥을 느낄 것이다.

    노란색, 수확의 상징, 버터를 발라 구운 옥수수가 되리라는 기대.

    한 소년의 삶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관찰할 수 없다면, 종이에 기록하지도 말아야 한다.

    옛날 사람들이 '상상력'으로 잘못된 지형을 그려넣는 바람에

    사람들은 한 동안 '용이 사는 곳' 같은 장소가 실재한다고 잘못

    믿었다.」

 

 

  p.59

   「높게 자란 풀숲 속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풀썩 누우면, 들쭉날쭉한 줄기들이 뒷덜미에 닿고,

     풀들이 계속 흔들거리며 광활한 파란 하늘을 가르고, 목장과

     그 모든 일은 먼 꿈으로 희미해진다.

     이렇게 누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동 장치'라고 할까.」

 

 

  슬픈 구절도 있다.

 

   「동생과 베리웰은 둘만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했다.

     손뼉, 휘파람, 젖는 소리, 그 모두에 각각 특정한 가락이 있었다.

     베리웰은 저녁 식탁에서도 동생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켜보

     았다. 동생이 식탁에서 일어서면 베리웰도 마룻바닥을 타닥타닥

     하며 뒤따랐다.

     레이턴(스피벳의 동생-10살)이 죽었을 때, 베리웰(verywell)은

     두 달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포치를 오르내리고, 먼 곳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오후 내내 양철

     양동이를 씹어서 결국 입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다.

     

      나는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야할지 몰라서 베리웰의 고통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초여름 어느 날, 누나가 베리웰을 데리고 긴 산책을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산책일 수 있었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누나가 베리웰에게 민들레 화환을 만들어서 씌우고 양버들 옆에

      한참 멈춰 있었던 것이다. 돌아온 누나와 베리웰의 표정에는

      전에 없던 '이해'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베리웰도 더이상 양동이를 씹지 않았다.」

 

 

  「그러나 동물에게는 사람에게서는 보기 힘든 자질이 있다.

    우리 아버지를 비롯한 어떤 사람들은 그 자질을 '무지'라고 말하지만,

    나는 관용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자정이 지난 시각의 낡은 집에서는 평범한 인과 법칙에 따르지

     않는 소리가 난다는 내 가설.

     이곳에서는 처마가 제 의지로 삐걱거릴 수 있었다.

     자갈들이 저절로 맞부딪칠 수도 있었다.」

 

 

 스피벳이 워싱턴(스미소니언협회)로 떠나기 위해 막 집을 나설 때-

   「밖에는 생명의 움직임이 아직 끼어들지 않은, 동트기 전의 순수가

     깔려 있었다.

     공기 중에는 대화나 부글거리는 생각이나 웃음이나 곁눈질이 없었

     다. 모두 잠들어 있고, 세상은 깨끗하고 선명했으며 냉장고 속

     우유병처럼 차가웠다.」

 

 

 「나는 멕시코인들이 못다 한 말들을 침에 담아서 뱉는다는 가정을

   세우게 됐다.

   I'm losing you... 난 너를 잃어가고 있어.. 같은.」

 

 

 화물기차 안에서,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모두 펼쳤다. 울적해졌다.

    먹을 게 별로 없었다.

    내 두뇌는 배가 고프면 한 부분씩 천천히 닫힌다.

   처음에는 예의범절, 다음에는 곱셈 능력, 다음에는 완전한 문장으로

   말하는 능력.」

 

 

 「불을 환히 밝힌 표지판에 '미소의 도시'라고 적힌 포카텔로에 도착

   했을 때,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다.

    포카텔로 법에는 슬픈 표정을 지으면 처벌되는 조항이 있다는 글을

    전에 어디에서 읽었다.」

 

 

  화물기차 안에서 인디언 아저씨가 들려준 말.

  「참새는 지나가면서 마주치는 나무마다 다 부탁했지.

    끔찍한 날씨를 이길 집이 되어달라고.

    너도밤나무, 사시나무, 버드나무, 느릅나무, 모두 거절했어.

    믿을 수 있어?

 

    뭘 믿어요?

  

    대답은 하지 마. 그냥 추임새로 하는 말이니까.

 

    아.」

 

 

  「자동문을 나서서 어둠 속으로 돌아가기 전, M 해피밀에 포함된

    장난감을 재빨리 확인했다. 밀봉된 비닐봉지 속에 움직이지 않는

    조잡한 해적 인형이 있었다.

    비닐봉지를 뜯어서 해적 얼굴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어다.

    인형의 조잡함에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여기에 색칠을 했을 중국의 기계가 해적의 눈이 있어야 할 곳에

    눈동자를 삐죽그려놓은 것이 특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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