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하의 것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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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이하의것들  #조르주페렉  #김호영 옮김 #녹색광선 #에세이 

오래 전부터 SNS 활동을 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싸이월드도 했었는데 관뒀고. 이따금씩 왜 지속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긴 하지만 어쨋든 계속하고 있다. 서평도 꾸준히 남기고 있는데,  부지런하다는 ( 내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은 대부분 호의적이다.) 말에  ‘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려서 기억하기 위해서 남긴다‘고 대답하고는 했다. 또 페이스북의 여러 기능 중 가장 좋아하는 기능은 ‘과거의 오늘‘이다. 일상이 너무나 평범해서 그날이 그날인 중년(노년?) 아줌마라, 1주일 전이 그날이고, 1년 전이 그날이라 기억 속에서 까맣게 지워졌어도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라도 끼적거려서 남은 기록은 내가 살아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빠득빠득 ‘나 존재해요‘ 하고 외쳐야 할 이유 또한 모르겠지만.

녹색광선 출판사에서 나온 조르주페렉의 ‘보통 이하의 것들‘을 읽고 나니, 내 모습이 바로 그에게 투영되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세계2차대전을 겪으면서 부모를 잃고 상실의 고통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페렉은, 글쓰기로 과거를 애도하고, 상실을 치유한다. ‘일상의 글쓰기‘로 작품의 서사를 작동시킨다. 사물도 그렇고 장소 또한 그렇다.

이 책에는 9개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가장 앞에 실린 ‘무엇에 다가갈 것인가?‘는  작가의 글쓰기의 의미가 담겨있다. 무언가 큰 일이 터져야 인식되는 각종 사건들. 그러나 진짜는 매일 일어나는 일들,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이다. 너무나 소소하고 평범해서 신문 등에서 주목하지 않는 일.

작가가 시도하는 다양한 글쓰기 시도가 참 재미있다. 장소(빌랭거리. 갈수록 파괴적으로 사라지는 모습에 마음이 아려온다.), 칼비노가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시도한 조합적 글쓰기에 대한 응답으로 시도했다는 ‘생생한 컬러 엽서 이백사십삼 장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휴식은 해변, 태닝이다..ㅎ)‘,  산책 하듯 파리 역사를 훝는 ‘보부르 주변 여행‘, 역시 발로 찾는 ‘런던 산책‘, ‘지성소‘, ‘먹어치운 음식들 목록(가장 재미없었다. 나오는 음식들을 일일이 찾아볼 수도 없고...)‘, ‘스틸 라이프/스타일 리프 (읽다가 바뀐 표현을 찾은 쾌감이란!)‘, ‘나는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넥타이와 청바지를 동시에 싫어하다니! 이또한 나의 선입견인가.)‘

조르주 페렉의 에세이를 읽으며, 매일 무언가 기록을 남기고, 그럼으로써 인터넷에 또다른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론 그렇지만..)  부끄러움은  조금 사라졌다. 그가 남긴 기록은 또다른 역사의, 사회의 기록이 될 것이고, 내가 남긴 기록은 나만의 역사, 나만의 흔적이 되겠지만 그게 뭐 어때? 살아있는 동안 즐거우면 되는 거지.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이 구역의 모든 거리는 저마다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역사 그 자체다. p119
어떤 나라를 여행하든 즐거움을 주는 것만을 택해야 한다. 런던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한가로이 거리를 산책하는 것이다.(스땅달)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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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역사이야기2 #월터스콧 #현대지성

29장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30장 순탄한 출발
31장 치사한 음모

월터 스콧의 스코틀랜드 역사 이야기2를 읽기 시작하다.
순서가 다시 1장으로 가는게 아니라 계속 이어진다.

제임스 5세가 마음의 병으로 죽고,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메리가 스코틀랜드의 갓난 아기 여왕이 되었다.
애런 백작 해밀턴에 이어 엄마 마리 드 기즈가 섭정이 되고, 그 동안 메리는 프랑스로 보내져 교육을 받는다.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자신의 아들 에드워드와 메리의 결혼을 추진하지만 실패하고, 이로 인한 전쟁이 또 일어난다. 이 전쟁은 후사 문제만이 아니라 종교 개혁과 맞물려 치열해진다.
메리 여왕은 프랑스의 프랑수아와 결혼한다. 프랑수아가 죽고 나서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돌아온다.18세였다고.

한편 잉글랜드는 헨리 8세, 에드워드 왕 이후 처녀왕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한다.

이 편에서는 두 여왕의 대립이 -그 동안 수많은 오페라, 영화, 책 등에서 다루어진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서술된다.
알고 있던 사전 지식이 많아서 한결 재미있게 읽혀진다. 31장까지에서, 메리 여왕이 재혼하고, 아들을 낳고 남편 단리경이 암살당하는 내용까지 다루어진다. 읽는 내내 ‘제대로 된 사람을 보는 법‘이 정말 어렵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32장 기나긴 이별
33장 왕국에서 제국으로

메리는 우아하고 아름답고 엘리자베스보다 나이도 어려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게다가 잉글랜드의 카톨릭교도들은 사생아(앤 볼린을 인정안하고) 인 엘리자베스보다 메리가 더 적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러 면에서 공정하고 영예로운 잉글랜드의 어머니는 메리에 관한 한 자비롭고 지혜로울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에 대한 반란의 간접 책임도 처형할 수 있게 하는 법령이 제정되고 메리는 처형당한다.
그러나, 이 발버둥 조차 무의미한 것이니. 엘리자베스도 가는 세월을 잡지 못하고, 비록 그녀가 메리의 아들 제임스 (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를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았지만, 잉글랜드 국민들은 제임스를 왕으로 받아들인다. 이로써, 스코틀랜드, 잉글랜드로 나뉘어졌던 그레이트 브리튼 섬은 마침내 같은 왕 아래 놓이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투쟁했을까??? 그 왕관을 무덤까지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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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역사이야기1 #월터스콧 #현대지성

24장 플로든 전투
25장 섭정 여왕 마가렛

이 단원에서는..ㅎㅎ
잉글랜드 왕 헨리 7세의 현명한 정책으로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와 헨리 7세의 딸 마가렛 공주가 결혼해서
모처럼 평화가 찾아왔는데, 헨리 7세가 죽고 헨리 8세가 즉위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제임스 4세는 제대로된 파단을 내리지 못하고 (프랑스의 꼬임도 한 몫하고) 전쟁을 일으켰는데, 플로든에서 대패하고 본인도 전사한다. 1513년 9월 9일. 이 전투에서, 스코틀랜드는 귀족들, 주교들, 영주들, 젠틀맨 등 고위 계급에서 많은 사망자가 생겼다. 그 아픔이 지금까지도 노래와 전설을 통해 전해진다고.
제임스 4세가 죽고 나서, 부인 마가렛 여왕이 어린 아들이 클 동안 섭정을 맡는데, 재혼..등등..남편을 갈아치우는데 익숙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오빠는 유명한 헨리 8세. 6번 결혼한..그 유명한 앤 불린의 남편임. ㅎㅎ

여차저차한 재미난 이야기가 많은데, 새로 알게된 내용 하나.
봉건제도에서는, 전쟁터에 나서는 병사들은 각자 40일간의 식량을 가져온다고 한다. 그래서 전쟁이 길어지면, 식량 부족으로 귀향하곤 한다고.


26장 앵거스, 부클루크, 레녹스 그리고 더글러스
27장 제임스5세
28장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1542)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를 훑어보면 (지나고 보면)
격변의 시기가 아닌 적이 없지만 잉글랜드의 헨리 8세가 통치하던 시기, 스코틀랜드는 헨리 8세의 동생 마가렛 여왕이 섭정을 하고, 이후 아들 제임스 5세가 통치하던 시기는 급격한 변화가 도래하던 때였다.
제임스 5세는 훌륭한 통치를 했지만, 종교에 관한 한 제대로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헨리 8세가 종교개혁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며 적극적인 도움을 제안했지만 거절하고) 그 오판은 전쟁으로 이어지고 패전하고, 제임스 5세는 은거하다 마음의 병으로 사망한다. 겨우 31세.

제임스 5세는 거친 스코틀랜드를 다스리려 여러 현명한 법제를 만들었다.고등법원과 민사법원을 구성한 것이 그 예. 특히 민사 법원은 법에 관련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소송사건의 변호인으로 지명하여 구성하였는데, 이들은 변호사로 불렸고, 정식 법학 교육을 받은 최초의 집단이었고. 이후 변호사는 스코틀랜드에서 명예로운 직업으로 인정받아 왔다.

이로써 스코틀랜드 역사 이야기 1편을 완독했다. 4권 중 첫번째. 이어질 2권부터 근대로 가는 길이 어떻게 휘몰아칠 지 기대된다.

저자 월터 스콧의 서술은 많은 사례와 더불어 군더더기 없는 설명을 곁들인 스토리 전개로 읽는 내내 즐거움을 준다. 나의 독서 방법은 한 권을 집중해서 몰아치기해서 읽는 편인데, #현대지성1일1쪽 이벤트와 함께 하면서 다행이 역사책이라 천천히 짚어 가면서 읽는 방식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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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역사이야기1 #월터스콧 #현대지성

19장 제임스 1세
20장 제임스 2세

스코틀랜드 역사는 특히 피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년만의 포로생활에서 풀려난 제임스 1세는 교육도 많이 받고 신중하고 정의로워 백성들의 이익에 관심이 많았다. 즉위하고 나서 머독 일가에게 법적인 처단을 가했고 (참수형), 하일랜드 지역을 강력한 군대로 다스렸고, 무질서한 나라에 평정을 회복시켰으나, 이 과정에서 귀족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여함으로써 백성들은 불평불만이 많았다. 이런 분위기는 왕의 살해음모로까지 이어졌고, 1437년 왕은 살해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왕이 죽고 난 후, 생전에 백성들을 인자하고 공평하게 대했다는 여론이 퍼지면서 백성들은 왕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다..(이 무슨...!!)

상속자 제임스 2세는 6살에 왕위를 이어받아, 스코틀랜드는 다시 혼돈상태에 들어갔다. 대귀족 더글러스 가문은 너무 막강하여, 부와 권력이 종종 왕의 권위를 넘어섰다. 더글러스 가문은 왕이 다루기 힘든 지경이었으나, 전쟁 중에는 늘 스코틀랜드의 자유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기때문에 왕이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도에 지나친 가문의 권세에 왕은 기회를 엿보기 시작한다.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보면 참...우리는 왜 과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21장 더글러스 일가의 내전
22장 제임스 3세
23장 제임스 4세

더글러스가문의 횡포를 막기 위해 제임스 2세는 자신의 안전보장 약속을 깨고 백작을 직접 살해한다. 이후 벌어진 더글러스 가문의 반항은 화살묶음 정책- 화살을 하나씩 빼면 전부 부러뜨릴 수 있다- 으로 해결한다. 그런데 정작 제임스 2세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고.
이어 상속한 제임스 3세는 어리석고 겁이 많고 탐욕스러운 왕이었고, 아들 제임스 4세를 옹립한 귀족들의 반란 중에 암살당한다. 제임스 4세는 평생을 속죄하며 살았으며, 아버지가 모아놓은 재물로 귀족들의 환심을 샀고, 잉글랜드와 유례 없이 오랜 기간 평화를 유지했다.
당시 잉글랜드 왕이었던 헨리 7세는 현명하고 슬기로와, 자신의 딸 마가렛 공주를 제임스 4세와 결혼시킨다. 그리고 이들의 손자인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 - 잉글랜드왕 제임스 1세- 가 , 그레이트 브리튼 전체의 왕이 되면서 양국 간의 모든 전쟁이 종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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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가는 길은 이렇듯, 멀고도 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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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역사이야기1 #월터스콧


9장 더글러스와 랜돌프
10장 배녹번 전투
11장 로버트 브루스의 최후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스코틀랜드를 복속시킨 에드워드 1세도 세월의 흐름에는 저항하지 못하고
로버트 브루스가 스코틀랜드 왕으로 추대되고, 더글러스, 랜돌프 등 용맹한 부하를 두고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을 전개했을 때 사망한다. 에드워드 1세를 이어 아들 에드워드 2세가 왕위에 오르나, 아들은 아버지와 달랐다. 10만 군대를 소집해서 스코틀랜드를 제압하러 오나 3만의 스코틀랜드 군대는 지혜롭고 용감한 왕의 지휘 아래 배녹번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후, 잉글랜드 왕은 스코틀랜드에 대한 종주권 주장을 완전히 철회했고, 여동생 조아나 공주를 로버트 브루스의 아들 데이비드와 결혼시켰다.
1328년 노샘프턴 조약.

로버트 왕은 이 일이 있은 후 사망한다. 그는 그동안 저지른 온갖 죄악에 대해 후회하고, 심장을 성지로 가져가 줄것을 요청했으나 (더글러스에게) 실패하고, 그의 심장은 멜로스 수도원, 시신은 던펌린 교회에 안치되었다. 이후 교회는 파손되었는데 500여년이 지나고 그의 유해가 발견되고, 새로 무덤이 만들어져 안치되었다.

왕의 놀라운 지혜, 용기 그리고 애국심이 그가 한때 다스렸던 나라의 국민들의 기억 속에 그렇게도 오래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나 로버트 브루스처럼 훌륭하고 애국적인 행위로 기억될 때에만 그 이름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군주가 압제와 학정을 휘두른 지도자로 기억되느니 차라리 천한 소작농처럼 그저 잊혀지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p151

12장 봉건시대의 스코틀랜드

로버트 브루스 통치 시기 당시의 법률제도와 사회상을 설명한다.

잉글랜드가 귀족원(상원)과 서민원 (하원)으로 의회가 구성되어 있는 반면 스코틀랜드는 귀족, 고위 성직자, 각 주의 대표, 자치도시의 대표등이 한 방에 모여 같은 의회의 구성원으로 토론과 투표를 행했다. 왕이 의회가 넘겨준 법안서를 승인하는 것으로 나라의 법률은 백성들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귀족들의 권한이 커서 여러 문제가 많았다. (특히 지방)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된 이후로는 잉글랜드 방식을 따른다.

특히 하일랜드(고지대)와 보더스 지역은 주민들이 워낙 거칠고 야만적이이서 법이 아예 없었다고도 할 정도. 하일랜드는 게일어를 쓰고 타탄이라는 체크무늬 옷을 입고..항상 무장하고 다녔다. 씨족 (가문)으로 구분, 족장에게 무조건 복종했고 저지대 사람들과의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보더스는 하일랜드만큼은 아니나 (거친면, 불복종), 씨족 중심이고, 언어는 저지대 사람들과 같은 언어를 쓰고 의복, 무기도 비슷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아웃랜더‘를 보면 하일랜드 사람들의 생활상이 보인다. 월터 스콧이 소개하는 하일랜드 사람들의 모습을 드라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재밌음!)


13장 더플린 전투와 할리던 힐의 전투
14장 앤드루 머리의 섭정기 ~1338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뛰어난 왕이었던 로버트 브루스가 죽고 나서, 그의 아들 데이비드-데이비드 2세는 겨우 4살로 왕위에 올랐다. 랜돌프가 섭정에 올랐지만, 브루스 가문에 원한을 품어온 사람들은 왕권을 삣으려고 음모를 꾸민다. 에드워드 베일리얼(브루스 전에 스코틀랜드 왕이었던 존 베일리얼의 아들)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스코틀랜드는 군사적 우위에도 대패- 더플린 전투, 할리던 힐의 전투- 스코틀랜드의 대부분을 잃는다. 베일리얼은 왕위에 올랐지만 잉글랜드의 속국이었다.
그러나 일부의 땅을 차지한 브루스 체제는,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면서 스코틀랜드에 소흘한 틈을 타서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재기를 꿈꾼다.

전투 내용, 전쟁 중이면서도 쉬는 시간에 양국의 기사들이 마상 경기를 벌이는 등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위험한 전쟁이 심각한 직무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스포츠 경기이기도 했던 이 시대의 오락 문화(p184)‘라니..ㅎㅎㅎ



15장 데이비드 2세 1339-1370

로버트 브루스의 아들로 4살 때 왕위에 오른 데이비드 2세.
42년 간 왕위에 있었고 그 중 12년은 포로 생활을 했다.
그의 삶은 고단했으나, 어쨋든 스코틀랜드인들이 인정한 왕이었다.
에드워드 베일리언은 잉글랜드와의 협약으로 왕으로 올랐으나 이름뿐인 왕이었다. 결국은 물러남.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는 스코틀랜드 정복에 대한 꿈을 접고, 휴전을 제의하면서 데이비드 왕을 석방시켰고(1357년?1358년?). 11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 데이비드 2세가 돌아오자, 스코트인들은 너무나 기뻐했다. 왕을 졸졸 따라다녔고, 심지어는 침실로까지 들이닥쳤다고. 화가 난 왕이 홧김에 부하의 곤봉을 가로채서 가까이 있던 신하의 머리를 박살내었고, 이 사건 이후 왕이 그의 저택에 혼자 머물 수 있었다고.
(이 책에는 이런 사례가 많이 실려있다.재밌음.)

16장 스튜어트 가문의 왕위 계승

데이비드2세는 후손이 없어서, 로버트 브루스계의 남자 혈통은 끊긴다. 이후 외손자(로버트 브루스의 딸 마조리와 월터 스튜어트의 아들)에게 왕위가 계승된다. 이 가문은 스코틀랜드를 통치하게 되고, 이후 잉글랜드 왕도 겸한다. 스튜어트 가문 최후의 왕은 1688년 명예혁명에서 왕권을 잃고, 그의 아들과 손자들은 망명 중에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해서 지금은 스튜어트 가문의 여자 계통이 왕위를 잇게 된 것이다.


17장 로버트3세
18장 올버니의 섭정기

로버트 2세의 장남은 존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나 잉글랜드에서 존이라는 이름의 왕들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또 스코트인들이 로버트라는 이름을 좋아했기 때문에 존 스튜어트는 왕위에 오르면서 로버트 3세로 이름을 바꾸었다. (잉글랜드의 존왕은 악명으로 유명하고, 이후 존이란 이름은 안쓴다고 들었다.)그러나 이름을 바꾸고도 불행했다고..ㅎㅎㅎ
로버트 3세는 동생 올버니의 공작에게 휘둘려서, 큰 아들 로스지는 굶어 죽었고(헉!) 둘째 아들 제임스는 프랑스로 보내려하다가 배가 잉글랜드 군함의 공격을 받아서 포로가 된다. 제임스는 18년 동안 런던에 포로로 잡혀있었고, 이후 돌아온 제임스는 올버니의 머독 공작(로버트 3세의 동생이 섭정으로 있다가 아들에게 물려줬는데, 그 아들)과 그 아들들을 교수형에 처했다. 머독 공작의 아들들은 너무나 엉망이어서, 아버지 머독은, 잉글랜드에 잡혀있는 왕을 풀려나게 해서 아들들의 오만한 행동을 그만두게 하고 동시에 자신도 섭정 자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동서를 막론하고 권력 욕심은...핏줄도 부정한다. 역사책을 읽다보면 인간에 대한 회의가 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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