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
정소연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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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어서 지옥 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애당초 여기가 지옥이다. 이 끝없이 닥쳐오는 혐오의 파도를 맞고 서야 하는 바닷가가, 2021 년 대한민국이, 지옥이다.
나는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차별없는 세상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차마 그렇게 큰 꿈을 가질 수가 없다. 우리가 살아서 이 지옥에 함께 머무르기만을, 그것도 간신히, 바라며, 억지로 숨을 쉬고, 손을 잡고, 발가락에 힘을 준다. ㅡ225p
'기록되지 않은 죽음' 중

작가는 어떤 이의 죽음을 대면하고 절망하여 썼다. 살아서 이 지옥에 힘께 머무르기만을 희망하는 글은 쓰러질 듯하면서도 힘이 있다. 그 작은 힘의 온기로 세상은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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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통권 180호 - 2021년 9월~10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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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보통 사람들은 우리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난관들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유대감일 것이다. 신카이의 영화도 그 점을 암시하고 있다 호다카의 경우 히나와의 연결이 그에게 희망, 포부, 유대감, 사랑, 용기를 준다. 모두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다. 흥미롭게도 그들을 가장 밀접하게 연결시키는 것은 기도이다, 기도는 그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또한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자연(영적)세계 또는 내가 '생명-세계'라고 부르는 것과 연결시켜준다. 기도는 이야기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이야기는 히나의 기도로 시작하는데. 그녀는 어머니가 병이 나아서 그녀와 함께 푸른 하늘 아래를 걸을 수 있도록 비가 그치기를 염원한다. 이 기도로 그녀는 비를 멈추고  해가 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히나는 그 능력을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호다카는 히나를 다시 보기 위해서 저승세계에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의 기도는 정말로 그를 히나에게 데려다주고, 그는 그녀가 저세상으로 가는 입구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다. 히나는 호다카의 기도의 이미지에 의해 깨어나고, 그 둘의 기도는 겹쳐지면서 하나가 되는데 그것 덕분에 그들은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호다카는 3년 동안 떠나 있던 도쿄로 돌아오는데, 히나가 거리에서 그가 그녀에게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이 기도를 많이 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기도는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에게 기원하는' 그런 종류의 기도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기도는 주인공들의 의지나 강한 염원의 표현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영적 존재보다는 자기 자신과 서로와 더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암시된 해결책은 각자가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깊이 숙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소설에서 호다카는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계속해서 무엇을 할지 생각했고, 뇌가 녹초가 되었다고 느낄 지경이 되었어. 그리고 나는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하기로 결심했어. 나는 기후변화로 바뀐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을 배우고 싶었어. 이런 막연하기 짝이 없는 목표라도 세우니까 조금 숨을 편하게 쉴 수 있었어." 그는 대학에서 농학을 공부하려고 생각한다. 이것이 기후변화에 대한 개인적 대응으로서 그가 결정한 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영화는 '인류세'라는 단어를 보여준다.


-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포스트모던 애니미즘 (요네야마 쇼코) 중에서 


 '날씨의 아이'를 보지는 않았지만 코로나 시대에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궁리하게 하는 영화임을 알려주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코로나 시대에 '고난과 함께 머무르기'를 선택한 주인공의 용기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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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고정희 유고시집 창비시선 104
고정희 지음 / 창비 / 199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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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과 자본주의 

   평화를 위한 묵상기도


어둠이 가득한 세상 속으로

악령이 깃을 치는 땅으로 

첫 열두 제자를 파송하던 날의 

그리스도 마음을 묵상합니다. 


평화를 전하러 가는 너희는 

돈주머니를 지니지 말며 

평화를 전하러 가는 너희는 

양식자루를 지니지 말며

평화를 전하러 가는 너희는 

여벌 신발도 지니지 말아라, 분부하신 그 말씀 

내 오늘 깨닫습니다. 

그것이 평화의 길인 줄

그것이 평화의 길인 줄 


추수할 곡식은 익어가는데 일꾼이 너무 적구나, 적구나

열두 제자를 파송하던 날의 

그리스도 말씀을 묵상합니다.


평화를 추수하러 가는 너희는

내 평화를 배척하는 집에 머물지 말며

평화를 추수하러 가는 너희는

내 평화를 모르는 식탁에 앉지 말며

평화를 추수하러 가는 너희는 

내 평화를 외면하는 땅에서 묻은 

신발의 먼지도 다 털어버려라, 당부하신 그 말씀

내 오늘 깨닫습니다. 

그것이 평화의 삶인 줄

그것이 평화의 삶인 줄


우리의 소원은 평화

꿈에도 소원은 평화통일

칠천만 겨레 삼천리 외침 속에 

그리스도 말씀 들려옵니다


너희가 입으로 평화를 원하면서

마음엔 두 주인을 섬기고 있구나

진실로 평화를 원하거든 

너만의 밥그릇을 가지지 말며

진실로 통일을 원하거든 

너만의 돈주머니를 책기지 말며

진실로 평화통일을 원하거든 

너만의 천국을 꿈꾸지 말아라, 이르시는 그 말씀 

내 오늘 깨닫습니다

이것이 평화의 부름인 줄

이것이 평화의 부름인 줄


91년 지리산에서 돌아가신 시인이 지금의 우리를 본다면 어떤 시를 쓸까?

너희들이  입으로는 평화를 원하면서, 마음엔 두 주인을 섬기며 돈주머니를 차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고 있다고 질타하실까?

두 주인을 섬기며 돈주머니를 챙기는 인간의 마음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일까?

받아들인 상태에서 우리의 세상이 가야 하는 모습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미워한 고정희 시인은 자본의 모순과 타락을 끊임없이 지적했지만 

자본주의가 태도를 변화하며 공동체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온갖 모순을 가진 자본주의지만 굳어진 형태는 없다.

변화하는 것 속에 내가 있고 내가 가진 태도가 이 세상의 변화를 끌어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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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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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계속 살아 있다.
삶은 계속 죽음으로 가고 있다.
작별하지 않은 죽음이 살아 있어 이 땅과 하늘은 울고
눈이 내린다.
인선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겪은 죽음의 풍경을 이어서 살고 있고 경하는 인선 곁에서 그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있다.
죽음은 보내야 한다. 함께 울어 주어 보내야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작별하게 하는 일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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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1
울라브 하우게 지음, 임선기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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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시인이 시를 쓰네

노시인이 시를 쓰네
행복하도다 행복하도다 샴페인 병처럼
그의 내부에서 봄 (春)이
기포를 밀어 올리니
병마개가 곧 솟아오르리.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태양이 나니라 물을 원해요
천국이 아니라 빛을 원해요
이슬처럼 작은 것을 가져오세요
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
바람이 소금 한 톨을 가져오듯


샴페인 병에서 기포가 솟아나듯 시가 솟아나온 듯하다.
시인은 나직하게 새가 물방울을 가져오듯, 바람이 소금 한 톨을 가져오듯 가져와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맛이 은근하다. 입에 굴려 그 맛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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