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청춘이 지났다. 청춘은 언제일까. 흔히 방황하는, 욕망하는, 열정이 끊는 20대라면 나도 청춘이 지났다고 해야겠지., 허나 나는 아직도 방황하고, 욕망하고, 열정이 있다. 20대 청춘의 그림자가 남아 있거나, 아직 철이 들지 않는 어른이겠지. 내 청춘을 들여다보는 일, 내 방황과 내 욕망과 내 열정을 이해하고 만나는 일. 김연수의 문장들은 들여다보는 일에서 빛이 난다.  


"나는 왜 쓰는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글을 쓸 때, 나는 가장 잘산다. 힘들고 어렵고 지칠수록 마음은 점점 더 행복해진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에는 과연 내가 어디까지 견딜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빛이 나는 존재들은 모두 견딤으로 빛이 날까

나는 아직도 하염없이 질문하며, 

내 질문 앞에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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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우주로 가는 길

 


제가 오늘 길게 말씀드리는 자리는 아닌 거 같고요, 올 한해 이 단체에서 굉장히 좋은 마무리를 하시는 자리에 제가 잠깐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죠? 만약에 이 강연이 저를 위한 자리였으면, 아마 이걸 들고 저쪽으로 옮길 건데요, 빨리 끝내고 맛있는 걸 드시는 자리 아닌가요?

제가 좀 편하게 해도 야단치시지 않는다면, 제가 좀 편하게 할게요. 가수도 아니고 말이죠. 이 무대에서 작은 키에 제가 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거 같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방금 10분 전에 왔고요. 인디고 서원의 허아람이라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잘 모르고 왔어요. 어떤 자리인지 잘 모르고 왔고, 사실은 하루에 20시간씩 일 한지가 올해로 18년째여서요. 서울에 한 번 오는 일이 저에게는 국경을 넘는 일보다 때로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런데다가 오늘같이 안개 가득한 도시를 가로질러 오면 갑자기 여기 오기 전에 집에 다시 가고 싶은 욕망이 막 생겨요.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따뜻한 환영의 메일을 여러 번 보내 주셨고요, 양미란 선생님께서요. 그리고 특별히 저를 보러 오시겠다는 귀한 어른도 계시고 그래서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동안 하면 되죠? 7시 20분까지. 네. 그렇게 정해주시지 않으면 제가 끝까지 달리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시계를 꼭 봐야 합니다.


다 아실 거라고 하셨지만 아마 모르는 분들이 많을 거고, 제가 알고 있는 유네스코가 제가 알고 있는 곳이 아니듯이 아마 언론에서 잠깐 보신 인디고 서원과 지금 저를 만나 저의 목소리로 만나게 되는 인디고 서원은 좀 다르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런 진실을 전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을 주셔서 굉장히 영광스럽고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또 어떤 뉴스를 제가 전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떤 걸 궁금해 하시는지요? 또 이 자리를 어떤 의미의 자리이기 때문에 제가 거기에 적합한 그 내용으로 말씀을 전할 수 있을지 그런 짧은 소통이 있은 뒤에 제가 이야기할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요, 제가 지금 알 수 있는 정보는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 더불어 사는 삶의 기쁨? 네- 그런 주제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런데다가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국제이해관계, 또는 교육 이런 문제, 제가 들려드릴 수 있는 수만 가지의 이야기들 가운데 그것만, 그것을 중심으로 그렇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대답하시죠?

-네


다음 주 월요일에 제가 콜롬비아에 갑니다. 네. 뭐…….가나? 그렇게 들리시겠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우주로 가시는 거네요.

우주요?

-여기 오는 게 국경을 넘는 거라면.

아-예.

(웃음)

그래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국제프로젝트 한 가지의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전에 인디고 서원을 잠깐 제 식으로 소개하자면 2004년 8월 28일 날, 8월 28일은 그 유명한 마틴 루터 킹이 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꿈에 관한 그 연설을 했던 날입니다. 그걸 알고 같은 날에 오픈한 거 아닙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날짜이더군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28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시작했냐하면요 제 음력 생일입니다. 쓸데없는 정보를 드려서 죄송하지만 부처가 왕자였었죠. 석가모니가. 그 이제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고행의 길로 떠났던 그 날이 바로 음력으로 2월 8일입니다. 그 날 태어난 저 같은 소인배들은 고생이 많다고 합니다. 고(苦)가 많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부처의 발끝에서 기꺼이 해야 하는 고라면 기꺼이 하죠 뭐,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 다음에 28독립선언도 2월8일이구요,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시 전문지 ‘창조’도 2월 8일 날 창간되었습니다. 저는 그냥 그 제 음력생일을 괜히 강화하는 듯한 이유로 모든 비밀번호를 28로 씁니다. 그랬고, 8월 28일 열게 된 인디고 서원도 그냥 그 해 그때가 여름이었고, 또 28일을 좋아해서 그렇게 열게 되었습니다. 촘스키도 1928년생이구요, 뭐 제 머릿속에는 28에 관련된 정보가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있지만 그건 여담이니 다음에……. 그래서 그 날 그 서점을 열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햇수로 3년 전이구요, 2004년 8월 28일 열었고요, 그걸 준비하는 시간은 겨우 3주 걸렸습니다. 13평 공간에 그 나무로, 목재로 서가를 짜고 바닥에 타일을 붙이고 조명기구를 달고, 하는 그 공사를 제가 직접 제 손으로 했기 때문에 그 짧은 3주간 노동 끝에 생긴 그 조그마한 서점이 왜 그렇게 사람들에게 관심을 많이 받게 되었는지는 사실은 저도 지금 잘 모르겠습니다.

 


유럽 철학 서점에서의 정지된 시간

 


제가 생에 최초로 가게 된, 휴가가 유럽 책방 여행이었거든요, 그래서 여섯 개 대학에 달린 도서관들과 각 대학에 프레스, 출판부를 돌면서요. 한 70여 군데 작은 서점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는데 재밌죠. 일정을 짜고 돈 게 아니고요, 그냥 서점만 구경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 열흘 동안 여행을 한 어느 날, 제가 그 소르본느 대학교 앞에 조그마한 철학서점에 들어갔어요. 그랬는데 손님은 한명도 없고, 10평 채 되지 않는 조그마한 서점에 딱 문을 열고 들어서니 테이블이 하나 큰 책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불어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읽을 줄 아는 글자가 사르트르밖에 없어가지고요, 뭐 그래도 적어간 몇 권의 책을 고르기 위해서 책을 골라서 주인장에게 어.익스큐즈 무아. 를 했어요. 그랬는데. 그 순간 그 분이 자기가 뭔가 굉장히 중요한 서류를 보고 있었는데 저 보고, 그- 얼음땡 놀이 아시죠? 얼음하면 움직이면 안 되잖아요, 얼음처럼 잠깐 멈추게 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 제가 진짜 아무 그것 없이 잠깐 멈추게 된 거에요, 책을 들고 편안한 자세로 뭐 이렇게 기다리지도 못하고 그냥 그 사람이 딱 하는 순간 그냥 저도 이렇게 섰어요. 그게 글쎄요. 30초 되었을까요? 1분이였을까요? 아무튼 저에게는 그게 정지된 시간이었어요. 그 사람이 나에게 잠깐 멈추라고 그러고는 저는 정말 잠깐 얼음이 된 상태로 있다가, 그래서 괜찮아 얼마야 하고 계산을 하고 걸어 나오는 그 순간 내가 왜 멈췄지, 그 사람이 왜 잠깐 멈추라고 할 때, 그 정적의 1분이 채 되지 않았던 시간에, 그 고요한 정적이 저에게는 굉장히 큰 파동을 마음속에서 일으켰어요. 그래서 제가 다녔던 한국에서 그 많은 서점들, 그 제가 대학시절에는 종로서점도 있었는데 처음에 종로서점에 왔을 때 책을 찾다가 그- 서가가 또 한 칸 열려서 거기에 또 책이 나오고 거기 너무 신기했던. 하지만 뭔가를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책방에서 내가 곤욕을 치렀던 그 많은 시간들이 지나가면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굉장히 짧은 메모를 한 줄 했습니다. 나는 돌아가서 우리 동네에 문화라는 이름으로 갈 수 있는, 한 잔의 차나 아름다운 식물이나, 그리고 책으로 내가 문화를 느끼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책방을 만들어야겠다, 그 책방의 이름은 ‘인디고 서원’이다. 정말 한 문장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메모가 다였는데요, 돌아와서 이제 우리 동네를 제가 걸었죠. 걸었는데 이불집 가게가 6개월 동안 비어있었어요. 아, 뭐 여기 내가 있는 공간이 바로 앞이고, 그래서 계약을 하고 바로 3주 동안 공사를 해서 연 서점이 바로 인디고 서원입니다. 서가를 나누고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라고 붙인 것은요. 저는 청소년들과 제가 진행하는 인문학 수업을 한 지 올해로 18년째입니다. 그 다음에 저는 문학을,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고요, 그리고 그 다음에 그 동안 제가 했던 수업이 인문학 수업이었기 때문에, 제가 제일 잘 아는 분야에 제일 작은 카테고리를 선정한 서점을 만들게 된 겁니다. 더 많이 알고 제가 더 아주 스펙터클한 그런 사람이었으면 저 범위가 굉장히 넓었겠지만, 아 - 사실 저것도 굉장히 넓다고 생각해요. 인문학 분야 중에서 이 다음에 저는 세월이 가면 시집만 파는 서점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열게 된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의 서가는 각 대학에서 분류한 카테고리들을 쭉 비교 검토해보니 옥스퍼드대학의 분류가 가장 제가 지향하는 가치와 잘 맞아서 그래서 문학, 역사사회, 철학, 교육, 예술, 생태환경이라고 하는 여섯 개 서가를 선정했습니다. 그 여섯 개 서가를 선정한 뒤에 그 동안 함께 아이들과 공부했던 책, 또 제가 다 읽진 못했지만 제가 읽고 싶어 했던 목록들을 모아서 제가 선정한 도서만 파는 그런 서점을 만들었습니다. 그 서점이 바로 지금의 인디고 서원입니다.

 


초록지붕의 집으로 옮겨 온 인디고 서원

 


두 달 전에 새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방금 받으신 그 여기서 나눠주신 팸플릿을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학생들의 디자인으로 만들었고요, 첫 폐이지를 여시며는 제가 이 집을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하나 쓰여 있습니다. 저는 다섯 살 때 제일 먼저 읽었던 책이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이었는데요, 그 초록지붕의 집은 모든 소녀들에게도 그렇지만 다 환상의 공간이잖아요. 그 초록지붕의 집을 30년 동안 꿈꿔왔어요. 그러다가 20살이 되어 알게 된 어느 시인의 그 시를 계속 좋아하다가 제가 40평이라는 1무의 땅, 옛날에 단위로 하는 1무의 겸손한 땅을 얻게 되었어요. 그 땅에 집을 지어야겠는데 아- 도대체 시인이 지은 집은 어떨까? 그런 그 꿈 하나로 그분께 전화를 드렸죠. 잘 모르는 분이세요. 저는 독자일 뿐이었고요. 그래서 전화를 드려서 혹시 빨간머리 앤에 나오는 초록지붕의 집 같은 집도 지으시냐고, 혹시 그럴 의향이 있으시면 저를 만날 계획이 있으시냐고 그렇게 해서 일주일 뒤에 그분을 만나서 48시간을 토론했습니다. 제가 꿈꾸는 집에 대한 제 철학을 이야기 했죠. 그리고 1년 동안 함께 지었습니다. 10만장의 전 돌로요. 그래서 지금 완성된 집에 이사한지 두 달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디고 서원은 아직 뭐 하자보수공사중이구요. 네, 그래서 그런 인디고 서원의 집을 같게 된 건, 13평 공간에 밀도가 너무 높아서였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고요, 너무 많은 학생들과, 너무 많은 자발적 모임들이 생기는데 제가 공간을 제공할 여력이 없었던 겁니다.

 


30명의 청소년 기자들이 만드는 인문교양지 INDIGO+ing(인디고잉)

 


지금 중․고등학생 기자들이 서른 명이구요. 그 기자들이 인디고잉이라는 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아니 청소년이 직접 만든 인문교양지라는 이름으로는 아마 우리 출판계에서 처음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의 지원금을 제가 여러 정부기관에 부탁했을 때, 당신이 이것을 문예지로 바꾼다면 지원금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문예지가 아니고요, 인문교양지인데 나는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지원금을 받을 의향은 없다. 그래서 굉장히 배고픈 1년을 보내다가요, 최근에 지역에 있는 좋은 기업으로부터 앞으로 향후 3년 동안 인디고잉을 발행할 수 있는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그 지원금을 받은 것도 작년 이맘때, 제가 가수 이상은 씨와 콘서트를 했거든요. 가수 이상은 씨는 인디고 서원에서 뽑은 제일 영원한 소녀 같은 대중가수였어요. 그래서 그 분과 함께 콘서트를 했는데, 그 콘서트 제목이 바로 󰡐My beautiful girl, Indigo󰡑라는 콘서트였습니다. 그 girl이 누구였냐면 바로 저거든요. 제 꿈이 가수여 가지고요, 꿈을 한번 이뤄 보자 해서 제가 10곡을 부르고요, 가수 이상은 씨는 네 곡밖에 안했어요. 그리고 누가 공연을 했냐면 인디고라고 하는 이 이름으로 17년 동안 저와 함께 일하고 있는 청소년들, 또 청년들이 노래를 준비하구요, 또 꾸준히 3년 동안 그 봉사활동을 했던 인디고 합창단 아이들이 나와서 공연을 하고, 그래서 맨 마지막 피날레는 인디고잉 기자들이 나와서 하소연을 했어요. 우리가 이 잡지를 한국에서 계속 낼 수 있도록 여기에 이 콘서트 와주신 마음으로 계속 지지해 주실 수 없느냐고 근데 그 자리에 저희 지원을 해주실 기업의 사장님이 계셨던 거죠. 그래서 뭐 몰랐죠. 저는. 그런 분이 와계신지도 모르고 열심히 춤추고 노래했습니다.

그랬는데 다음 해2007년 1월 3일, 올해죠. 국제신문 1면에 저희가 큰 기사가 됐습니다. 슬라보에 지젝이라고 하는 동구에 보석이라고 불리는 그 철학자가 저희에게 무료로 원고를 기고해주셨어요. 신문에 날 일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잘 아시다시피 무하마드 유누스라고 하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도 작년에 서울시 평화상을 받으셨고, 작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인디고 서원에서는 2004년 8월 28일 날 문을 열 때 우리가 이 다음에 정말 만나고 싶은 국제저자를 제일 처음 모실 수 있는 그런 날이 우리에게 온다면 그게 아주 하염없고 먼 꿈이겠지만 그 날이 온다면 우리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 그동안 읽었던 책에서 투표를 하자고 해가지고 인디고 서원을 여는 날 1위를 했던 분이 바로 무하마드 유누스였습니다. 한림원보다 안목이 높은 인디고 서원입니다. 해서 메일을 보냈고 오시기로 약속을 하셨어요. 그랬는데 노벨평화상을 받으신 거죠. 그래서 인디고를 오시기 바쁘니까 무하마드 유누스 선생님이 내가 서울을 가니까 너희들이 와서 서울에서 만나면 안 되겠니? 저번에 이화여대에서 강연을 하셨는데요. 그래서 그때 저희 기자들과 제가 무하마드 유누스 선생님 강연하시는 강당에 가서 강연을 듣고요, 끝나고 나서 수십 명이 몰려든 기자들 가운데 무하마드 유누스 선생님이 유일하게 부르시고 알아보신 팀이 바로 인디고잉 기자들이었습니다. 노암 촘스키 선생님도 여러 번 저희에게 격려 메일을 주셨고, 지금 아내가 병중이라 내가 갈 수는 없지만 원고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와 같이 저희는 세계적인 석학들과 평소에 연락하고 메일 받고 지지받고 있었는데, 그 지젝이란 양반이 원고를 보내주시는 바람에 신문에 1면에 난 것이 저희로서는 굉장히 의아했죠. 그래서 그날 연타로 스무건 정도의 신문에 저희가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직 지젝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만 인디고의 가치는 슬라보예 지젝이 저희에게 원고를 줬기 때문에 좋은 공동체이거나 좋은 잡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 이 땅의 공교육 현실에서 정말 투쟁을 하듯 열심히 공부하면서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목숨 걸고 열심히 살고 있는 청소년 기자들의 길이 있기 때문에 이 잡지가 빛나는 것이고, 이 잡지는 곧 9호가 나오고요. 제가 유네스코에 미리 택배로 보냈는데요, 국제판을 만들어서 전 세계 20여 개국에 이미 배포를 했습니다. 엘르나 유명한 패션잡지들이 한국에 거꾸로 판권을 팔죠, 그래서 소비자본주의시대에 물건을 사라고 하는 그런 잡지들이 들어와 있는 한국의 잡지시장에서 저희는 인문학을 하고 세상에 진실을 말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에게 만들어진 잡지가 전 세계 20여 개국에 발품을 팔아서 팔리고 있습니다. 아직 돈이 들어온 데는 없습니다. 그래도 인문교양지 1호가 이미 배포가 됐고요. 유네스코 전 세계 협회가 있겠죠? 거기 전달이 됐고요. 유엔에도 전달이 됐고요. 얼마 전에 타임지 기자가 저희 잡지를 가져갔습니다.

 


진실을 옹호하는 정의롭고 순수한 방식-사회의 변혁은 젊은 세대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인디고 서원에 유일한 철들지 않은 어른 한명과 그리고 앞으로 철들지 않을 청소년들이 100여명 함께 일을 합니다. 그 친구들이 정진하는 바는 진실을 옹호하고 있고, 그 진실을 옳은 방식으로 정의롭고 순수한 방식으로 일을 했더니 이렇게 이곳이 저를 부르실 만큼 인디고 서원이 조금 유명해진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런 활동들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이것이 대안교육이거나 아니면 특별히 어떤 원동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지향하고 있고 가장 본질적인 방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특별한 어려움, 없었습니다. 돈 말고는요.

 

제가 열심히 노동해서 이 많은 일들을 추진할 만큼 열심히 일을 하고 있구요. 그래서 아무런 다른 문제가 없는데, 왜 우리 사회는 우리를 열심히 끌어내려고 하시는지에 대한 답변을 제가 해야만 하는 상황이 많이 생겼어요. 왜냐면요, 모든 사회의 변혁은 언제나 그랬듯이 젊은 세대에 의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게 비단 한국사회 뿐이겠습니까. 그런 가운데 이런 변혁도 누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습니까. 그건 바로 by youth 청소년, 젊은 세대가 아니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 젊은 세대들이 지금 아무것도 느끼려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병입니다. 자기가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도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리고 그냥 허용합니다. 20대가 이명박을 많이 지지했다는 정치적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청소년들이 지금 어떻게 있는지를 아마 여기오신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들여다보면 아실 겁니다. 99.9%의 아이들이 무감각, 무사유의 병에 걸려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는 겁니다. 우리 앞선 세대들이 그렇게 투쟁했던 역사는 그냥 묻히고 마는 겁니다. 멈추는 겁니다. 아주 처참하게 일본처럼 가라앉는 겁니다. 일본은 죽은 사회라고 저는 보거든요.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을 먼저 깨달은 분들이 또는 열심히 하고 있는 분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이건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을 소리 높여서 하고 싶었는데, 보시다시피 제가 큰소리 내는 사람이 못돼서 글로 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6권의 책을 냈습니다.

 


심미적인 방식이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다-스물아홉번의 주제와 변주

 


제가 한 2년 전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에서 단 한 번도 뵙지 못했던 유명한 작가들을 그곳에서는 다 봤습니다. 껑충껑충 뛰면서 반갑게 봤지만,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그런 기쁜 감정은 사라졌어요. 왜냐, 그분들은 독일에 와가지고 그 작은 서점들을 다니시면서 사인하시고, 그것도 독일어도 아니고 한국어로 낭독하시고 그렇게 현실적으로 저자로서 한국문화를, 출판문화를 높이는데 노력하셨겠지만, 제가 왜 30년 넘게 한국사회에서 작은 서점이나 제가 만나고 싶은 문화공간에서는 그분들 얼굴을 뵙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너무도 그게 의아했어요. 엄청난 돈이 들어갔죠. 김우창 선생님이 이번 달에 원고를 주셨는데, 왜냐하면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라는 최장집 선생님과의 글에 저희 학생이 편지를 보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질문이 더 있다, 답변을 달라고. 두 달 만에 답장이 와서 이번 호에 실립니다만, 그때 조직위원장이 김우창 선생님이셨죠. 그런데 그 많은 돈을, 프랑크푸르트 도서관 한국관에 그렇게 많이 쓰시는 돈을 한국 사회에 제대로 쓰셨다면 이렇게 황폐한 한국이 되지 않을 거라고 하는 분노의 불씨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삐졌어요, 제가. 가는 곳마다 제 눈에는 어떤 거품과 보이기 위한 문화, 보이기 위한 한국문화의 위상, 국가경쟁력 강화라고 하는 자본의 논리로만 치장된 북페어에서 정말 환멸을 느꼈는데요.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타파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저 나름대로 방법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자, 여기 열세 평밖에 되지 않는 서점이지만 와주십사,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백 명의 청소년들이 당신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당신에게 할 말을 A4 2장에 다 썼다. 그래도 안오실거냐 라고 말했을 때 안 오는 작가는 한 분도 안계셨을 거 같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일조차 열어보지 않는 분에서부터 매니저가 짜르는, 이미 권력이 된 작가들이 한국사회에 많이 계십니다. 그렇지만 인디고 서원에 오셨던 29분의 선생님은 저의 부름에 이렇게 다녀가셨어요. 29번에 주제와 변주를 열었습니다.

저는 교육이 교육적이라고 말할 때 그 방법도 교육적이지 않으면 그것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심미적인 방식만이 그 사람의 가슴에 파고들어서 두 번 다시 잊히지 않는 진실을 느끼게 하는 것, 저는 그것을 믿거든요. 그래서 주제와 변주도 처음에는 이게 도대체 뭐냐 했지만 잘 아시잖아요, 음악의 악곡 형식입니다. Theme and Variations. 음악이 주제가 있으면 다양한 변주를 학생들이 할 수 있어서 거기에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는 그런 토론의 장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29분이 오시는 동안 매번 그 선생님의 저작에 가장 관심 있는 일반학생이 사회자로 지원을 하구요, 그 학생이 모든 토론의 진행을 만나서 29번이나 했습니다. 최근에는 장자에 관한 책을 쓰신 연대에 출강하시는 강신주 선생님이 오셔서요, 3시간이 넘는 토론을 했고요. 그래서 두 권의 책 중에 아마 한 권 주제와 변주, 오늘 선물로 받지 않으셨나요? 그렇게 책을 냈고요.

 


브라이언 파머 교수와 진정한 세계적 가치를 논하다

 


최근에는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서 저희가 중요한 행사를 했습니다. 그것도 때로는 제가 굉장히 그런 네트워크나 권력 망에 잘 올라타는 사람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어느 날 제가 학술진흥재단에서 전화를 받았는데요, 당장 좀 올라오라고, 어떤 사람인지 좀 봐야겠다고, 무슨 일이냐고 나는 갈 일이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래서 이유를 말하라, 그래서 잠깐 이야기를 하셨는데, 중앙일보 칼럼에 제 개인사가 소개되면서, 저는 몰랐거든요? 칼럼에 제가 소개된 지도. 그런데 도대체 이 땅의 인문학은 가냘픈 여성 혁명가 혼자에 의해서만 되고, 늙은 인문학 교수들 뭐 이런 식으로 문장이 나가서 그 늙은 인문학 교수의 대표가 전화를 하신거에요. 그래서 제가 불려갔죠. 도대체 저는 서울이라고 하는 거대한 도시의 메커니즘을 전혀 모르는 순박한 처녀라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제가 불려간 이유가. 그래서 저는 굉장히 당당하게 화를 냈어요. 화를 내고, 제가 공적으로 책임져야 하고 공적으로 도와야 할 일이 있으면 말씀하시라고. 그래서 제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설명을 잘 했는데요, 운 좋게 지원해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뭐가 있냐고 그랬어요. 그래서 국제행사를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국제행사는 딴게 아니라 국제적인 저자를 모셔서 주제와 변주를 하고 싶었는데, 저는 돈이 없었거든요. 그거 하고 싶다니까 하라고 하셨어요. 지난 1월 달에 17일 날 교육부에 왔다가 그 이후로 쭉 준비해서 이번 가을에 인문주간 행사에 유일한 청소년 기관으로 제28회 주제와 변주를 했는데, 그런 내용들이 아마 오늘 받아보신 인디고잉 8호에 실려 있습니다.

 


인디고잉 8호에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제가 국제 행사와 관련된 브라이언 파머 교수를 만난 이야기를 잠깐 해드리고 싶은데요. 아마 문예출판사라는 출판사를 잘 아실 거고, 거기서 1월 달이 ‘오늘의 세계적 가치(Global Value 101)’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제가 한꺼번에 읽고 굉장히 동감하고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는데요. 왜 이것이 제목이 Global Value인지, 너무나 화가 났어요. 왜냐면, 하버드 대학이라는 제국주의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제국주의의 중심에 있는 교수가 가장 뛰어난 엘리트들을 데리고 Global Value를 얘기하다니, 이건 좀 오만한 제목이다. 그리고 진정한 Global Value는 당신들끼리 얘기해서 되는 게 아니야, 그러니 나를 좀 만나. 이미 그때 뉴욕타임즈 등의 굉장히 큰 언론이 그 강의를 다루었어요. 왜냐면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몰려왔기 때문에요. 하버드 대학교에서 제일 많이 듣는 강의는 경제학개론이었구요. 2위가 바로 개인의 선택과 전 지구적 변화라 고하는 이 제목의 강좌가 브라이언 파머 교수의 강이었는데요, 점점 학생들이 많이 모여서 6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참여한 큰 강의가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 강의를 녹취한 결과물이 ‘오늘의 세계적 가치’였는데요. 여러분 잘 아시는 하워드 진, 노암 촘스키, 에이미 굿맨, 리사 오노와 같은 유명한 분들이 그 강의에 초대해서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의 책이었습니다. 주제와 변주와 똑같은 게 아닙니까. 그런데 브라이언 파머씨, 말이죠. 저는 서울대학교 교수가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서울에 있지 않아요. 부산에 있고, 대학교도 아니에요. 저는 13평 서점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지성을 스무 명 넘게 당신만큼 초대해서 당신은 600명이 한 학기를 했지만, 나는 이년 반 동안 2000명이 여기 다녀갔어요, 이 땅의 청소년들이. 누가 더 어려운 작업일까요? 만나야 되지 않겠어요? 라고 메일을 보냈죠. 제가 안 보냈습니다. 저의 학생이 보냈습니다. 제 의사를 잘 담아서요. 알고 봤더니 이분이 계속 하버드에 계시지 않고요. 하버드의 총장을 초대해서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는데요, 레비 총장이 굉장히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높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브라이언 파머가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당신의 리더십과 간디의 리더십을 비교해서 설명해주시죠, 그렇게요. 그래서 너무나 기분이 나빴던 레비 총장이 이렇게 불쾌한 자리는 처음이다 했더니 브라이언 파머가 그럼 내가 하버드에서 경험한 오늘이 마지막 시간이 되겠군요. 했더니, 학생들 600명이 모두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 뒤로 브라이언 파머 교수는 하버드에 남지 못하고요, 미셀 푸코가 프랑스 문화원장으로 일했던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계시더군요. 그래서 연락을 취해서 가겠습니다, 만납시다, 당신을 만나서 우리가 이 이야기를 좀 해야 될 이유가 있어요. 그렇게 스웨덴에 가서 스웨덴 공항에서 그 분을 뵈었을 때, 그리고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내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제가 이런 말씀드리면 굉장히 오만한 사람으로 비칠 걱정을 하면서 말하는데요, 저보다 좋은 사람을 처음 봤어요. 예, 저는 제가 참 마음에 들거든요. 그리고 항상 아침에 눈떠서 제가 깨어나서 오늘 일을 할 수 있을게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은 그런 기쁨을 가지고 매일 아침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새벽은, 제가 12시 전에는 자러 들어간 적이 없지만, 죽는 줄 알고 잡니다. 그래서 매일 태어나고 매일 죽었기 때문에, 이 생이 너무너무 행복하고 겸손하게 잘 살고 있는 나보다 잘 살고 있는 사람을 한국에서 만나질 못했어요. 그런데 브라이언 파머 교수 보고는 ‘아, 저 사람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정말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연대해야 될 이유가 있구나.’ 그렇게 해서 3일 동안 함께 토론했습니다. 그 분과 저희 팀원 6명의 학생들과. 브라이언 파머 교수와 그 분이 진행하시는 강의에 들어가서 저희가 같이 토론을 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내년 8월에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제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 프로젝트에 관해 말씀을 드리고, 당신이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라고 말을 하구요, 그래서 이번 10월에 교육부 돈으로 그분을 초대해서 제28회 주제와 변주를 열었습니다. 그 제목은 Global Value가 아니라 '진정한 세계적 가치를 논하다'였습니다. 인디고 서원의 목소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좀 밸런스를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서요. 해서 그런 너무나 멋진 행사를 치렀구요. 그 프로젝트는 지금 진행 중입니다. 그 프로젝트를 말씀드리고 싶은데, 내년에 이 자리에 계신 선생님들은 반드시 참가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돈키호테가 되어 '진짜' 북페어를 계획하다

 


지금부터 이건 세계특보니깐요. 귀 기울여서 재밌게 들어주세요. 사실은 어제 제가 뵌 분이 여기에 계신데요, 제가 작년 이 맘 때 서울에 와서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때 제 손에 들고 있었던 책이 바로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에드워드 사이드와 바렌보임이 함께 썼던 ‘평행과 역설’이라는 책이었는데요, 그 책은 이스라엘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젊은이들과 팔레스테인의 아랍권의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서 굉장히 멋진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내용으로 담겨 있습니다. 제가 그 책을 읽구요, 양극화라는 말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가장 극단에 있는 이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그것도 청소년들에 의해서 인간적으로 화합할 수 있는 이런 프로젝트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되는 프로젝트다, 라는 생각을 제가 하고 있었는데, 그러는 차에 제가 또 무슨 책을 읽었는지, 항상 제가 저지르는 사고는 책 한권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서 인디고잉 같은 경우에도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이라는 마고북스에서 나온 책을 한번 만에 읽고 해가 뜰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서 기다렸어요. 다음날 빨리 돈키호테처럼 나가서 무언가를 해야겠는데 도대체 나는 한국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다음날 만든 게 인디고잉이거든요. 돈키호테 맞죠? 그렇게 3주에서 하루 안에, 콜롬비아를 결정한 것도 3주 만에 지금 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제 몸이, 내 행동이, 제 실천이 앞서줘서 전 제 자신에게 항상 감사하고 고마워요,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열정을 놓치지 않아서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늘 머릿속에 있다가 2년 전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느꼈던 문화의 허구, 국제사회에서 비친 우리의 진실한 모습들. 지금은 황지우 선생님이 예종의 총장이시지만, 또 개인적으로 저에게 좋은 지지를 보내시는 분이시지만, 제가 독일에서 그분에게 화가 엄청 났어요. EBS 촬영 가운데에서. 왜냐면 진실을 물었었는데, 대답을 하기 싫다고 하셨거든요.

 


예, 뭐 그런 일도 있었고.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어느 날 갑자기 제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생각이 뭐였냐면 진짜 북페어를 하자. 진짜 북페어는 뭐냐. 책을 보고 서로 연대하고 세계를 소통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그런 장이 필요하다. 지금 도대체 북페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은 시장바닥 아니냐, 책장사. 이게 어떻게 본질적인 북페어냐, 이건 아니야. 그래서 제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는 북페어를 꿈꿨어요. 돈이 없으니까 일단은. 6개 대륙을 생각했습니다. 6개 대륙에, 지구 저편에 반드시 인디고 서원과 같은 곳이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아파하며 힘들게 꿈꿔오는 청소년들이 뭔가 행동하고 실천하는 그룹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찾기 시작해보자 했습니다. 벌서 다섯 군데를 찾았습니다. 오대륙은 결정이 됐고요, 네 개의 대륙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삶에 대한 열정과 자기 치유 - 콜롬비아 <몸의 학교>, 알바로 선생님

 


그리고 이제 콜롬비아는 남미 대표입니다. 그리고 인디고 서원의 여섯 개의 서가 예술 파트를 대표해서 옵니다. 누가 오시냐고요? 아마 오늘 집에 가셔서요, KBS 방송 다시보기를 하시면요, 약 3주 전에 예술의 반란이라는 이름으로 한 시간짜리 다큐멘터리가 있을 겁니다. 그것 보는 동안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앗, 저 분은 내가 만나야할 분이야, 내가 가야할 곳이야. 알바로 선생님, 내가 모셔와야 되는 새로운 연대의 동지야. 그래서 다음날 KBS에 전화를 해서, 이 모든 일정을 3주 만에 결정하고, 전 알바로 선생님과 27일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12시에 약속이 있습니다. 그날 저녁까지 인터뷰를 할 겁니다. 그 아이들이 뭘 하는 거냐고요? 알바로 선생님은 뉴욕에서 아주 잘나가는 무용가였어요. 그런데 조국이 어떻습니까, 콜롬비아 어떤 나라입니까? 마약과 게릴라전, 대통령 후보였던, 좌파 대통령 후보가 6년 동안 정글에 갇혀있는, 얼마 전에 기사 보셨을 겁니다. 그런 나라에서 이미 난민이 된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너무나 아프게 고통 받고 있습니다. 옥수수 조각, 튀김 하나로 열 명이 나눠 먹습니다. 그게 다 화면에 나옵니다. KBS촬영 팀이 지나갈 때, 총부리를 갖다 대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런 곳에 고국이 나를 불러서 돌아갔다, 라고 하시는 멋있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알바로 선생님이시고, 철학을 전공하신 선생님인데, 자기 고향에 돌아가서, 이곳보다 작은 공간에 춤추는 학교를 만듭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아주 테크니컬한 그런 무용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상처를 풀어내는, 우리의 살풀이 같은 춤을 춥니다. 내 눈 앞에서 내 어머니가 총을 맞아서 죽는 것을 봤던 아이, 우리 마을 사람들이 시체 더미로 농구장에 쌓여있던 것을 본 아이, 그래서 부모님을 잃고 갈 곳이 없어 난민으로 떠도는 그 아이들의 상처와 폭력과 가난이 얼마나 깊게 마음속에 뿌리 내려 있겠습니까. 그것을 풀어내는 춤을 추게 하는 학교입니다.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까. 교육이 어때야 된다, 예술은 어때야 된다. 거기는 설명이 필요 없는 당위의 장면이 있습니다. 그 몸짓 하나로 아무 설명이 필요 없는 그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그분을 여기에 모셔오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알바로 선생님을 만나서 내년 북페어 남미 대표로 예술의 대표로 오시기를 부탁하러 내일 모레 콜롬비아로 갑니다. 그렇게 만났던 네 개의 대륙에 네 개의 팀들이 이미 결정이 되어 있습니다.

 


희망의 증거를 찾아 - 인디고 청소년 북페어

 


아프리카도 소개해볼까요? 아프리카는 남아공에 계신 학교 선생님 두 분이 계십니다. 박사과정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신 분들인데요. 이분들은 아프리카 신문에서 찾았습니다. 어떤 분들이냐면요, 과학책이 굉장히 비싸잖아요? 글쎄요, 정확한 문제가 어떻게 되는지 그건 제가 미쳐 생각을 못했는데, 그것을 편집해서 전국의 도서관에 보급하는 일을 하시는 선생님 두 분이 아프리카 대표로 뽑혔습니다. 물론 훌륭한 분 많죠. 예, 이번에 아프리카 문학계에 오셨던 많은 훌륭한 작가들,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분들,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넬슨 만델라까지. 그런 분들은 인디고가 지목하지 않아도 세상이 다 세상이 다 존경하고 예찬합니다. 인디고의 시각으로 찾아내는 것, 인디고에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어떤 시각이냐면, 바로 아무것도 무감각하게 느끼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 콜롬비아에서 제가 만날 엘리엇이라는 아이에게 한국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산다고 말하면 그 아이는 여기가 천국인 줄 알 겁니다. 세끼를 먹을 수 있고, 학교 갈 버스가 있고, 심지어는 학교가 아닌 다른 사설기관에 돈을 내고 다닐 수 있고, 그 모든 것이 갖춰진 한국 사회로 볼 때, 그것이 천국이 아니냐고 나에게 반문할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런데 그런 열악한 곳에서 그 아이들이 춤으로 보여주는 열정을, 그 삶에 대한 열정과, 자기 치유의 극복의 노력들은 그게 바로 성장과 교육이 보여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우리 사회에 그것을 누가 보여줍니까? 어떤 청소년들이 그런 몸짓으로 춤을 춥니까? 제가 말하는 춤은 그냥 춤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춤을 어떻게 추고 있냐고요. 그렇게 춤추는 아이들이 없잖아요. 텅 비어서 늘어져있는 이 아이들이 이 곪는 아이들이 어찌 보면 그 전쟁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애들 보다 어쩌면 제 눈에는 더 시급한 환자들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야 되고, 그런 열정을 되새기게 해야 하는, 우리는 그런 연대와 희망의 증거들을 찾아내기로 했습니다. 그게 바로 인디고 유스 북페어입니다.

 


천 년 동안 살아 숨 쉴 네팔 학교, 인디고 도서관

 


그리고 이번 가을에 했던 인문주간 행사 때는요, 누구나 인정하시겠지만 스웨덴이라고 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복지국가의 분들, 웁살라 대학에서 온 분들, 하버드 대학교에서 파머와 그 책을 만들었던 조교 4분 그래서 총 7분을 하버드 팀에서 초대를 했고요. 다른 팀 7분은 어떤 분들이냐면, 바로 네팔에서 Today‘s Youth Asia라는 잡지를 만든 팀을 초대했습니다. 아마 유네스코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은 그 잡지를 다 아실 건데요, 그 잡지도 제가 미리 보냈습니다. 전 세계 24개국에 아시아를 알리는 잡지입니다, 그런데 청소년 기자들에 의해서. 우리보다는 훨씬 정치적이고 사회적 이슈를 다룹니다. 우린 아시아라고 했을 때, 동아시아 3국이 떠오릅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본을 정말로 중심에 놓고 보면 우리가 아시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동아시아가 다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아시아라고 했을 때, 아시아의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그런 잡지가 Today's Youth Asia입니다. 그 잡지를 만든 편집장과 발행인은 26살의 청년입니다. 그 기사가 제가 인디고잉 7호에 실었는데요, 그 친구는 5살에 학교를 3시간을 걸어 다니는 초등학교를 다녔고요, 너무나 가난한 지역에서, 옛날 같으면 개천에서 용난 친굽니다. 왕립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굉장히 우수한 성적으로 네팔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뉴욕으로 국비로 유학을 갔는데요, 뉴욕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여기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내 조국은 어떤가? 3년 동안 정권 6번 바뀌었거든요, 네팔은. 부패한 정권이. 그래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다시 얘기를 나눕니다. 우리가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그래서 그들이 만든 게 바로 Today's Youth Asia입니다. 그 잡지를 통해서 연대하고 아시아의 문제를 알리고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자. 그 Today's Youth Asia를 저는 유네스코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들 만나러 지난 6월에 카트만두에 갔습니다. 본지 일주일만에. 국빈대접을 받았습니다. 동지를 만났다고 반가워했습니다. 저희는 인디고잉을 만드니까요.

 


그곳에서 너무나 열악한 교육환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다브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시고 번 돈들을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서 네팔어를 만든 지역에 히말라야 둘러싼 그 지역에 학교를 짓기 위해서, 왜냐하면 네팔도 너무나 양극화가 심해서 가난한 아이들은 너무 가난하고, 잘 사는 아이들은 전부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조국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나라가 발전할 리가 없죠. 그래서 그런 아이들이 국내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그런 국제학교를 짖는 분에, 그 학교에 터에 갔다 왔습니다. 천년이 갈 학교니까 이렇게 짖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눈물에서 저는 그 순간 저도 뭘 할 수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었어요. 뭐든 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더니, 인디고가 와서 뭐든 하라고 하셔서 그럼 제가 도서관을 하겠다고 덜컥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땅을 주셨습니다. 몇 평의 땅인지 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인디고 이름으로 네팔에 땅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도서관을 지어, 내년 인디고 유스 북페어가 끝나면 저는 벽돌 사들고 갑니다.

 


아무것도 줄게 없어요. 사랑 말고는

 


그 돈은 어떻게 마련 하냐고요? 13평 서점은 지금 에코토피아라고 하는 채식식당이 되어 있습니다. 비빔밥과 카레를 파는데, 3800원입니다. 그 수익금은 전부 네팔도서관 통장으로 들어갑니다. 이번에 책을 내서 굉장히, 아이들이 저자가 되어서 책을 3권을 냈는데, MBC뉴스에도 나왔습니다. 이런 입시교육, 경쟁교육 사이에서도 인문학은 있다고, 책 쓰는 아이들도 있다고 그래서 그 책의 인쇄의 100%는 전부 네팔 타나후 지역의 도서관 기금으로 쓰입니다. 800만원 모았습니다. 왜냐하면 어제까지 300얼마였는데 오늘부로 2쇄를 찍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돈이 더 들어올 겁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을 이 땅의 청소년들이 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국제적인 활동을 잘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에는 국가경쟁력, 자본의 논리 그런 가치를 말할 필요, 입에 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 이렇게 말 하냐고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감히 나의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그런 것들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 일이 가능한 겁니다. 아무것도 줄게 없어요. 사랑 말고는. 그래서 그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사랑하면서 가장 본연의 인간적인 가치 타인의 아픔에 진짜 공감해서 아플 줄 알고 마음을 나눌 줄 알고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온 몸을 아끼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와 같은 우리가 지향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중요하게 지키고 있을 뿐 특별한 대안도, 특별한 원칙도 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인디고는 아마 여러분이 아시는 것보다 훨씬 더 국제사회에서 유명해질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날 그 분들이 그 대륙에서 저희와 같이 씨앗을 뿌리는 것이거든요. 그 씨앗의 발아를 보고 또 꽃이 필 때까지, 제가 살아있을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런 시절이 반드시 올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옳은 것을 눈 감는 사회는 오래 가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반대로 옳은 것을 피하기도 그렇게 쉽지 않아요. 진짜 옳은 것을, 옳게 행동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힘은 그렇게 나약 할 거 같지 않습니다. 제가 힘이 쌥니다. 그래서 그런 가치들을 일구어 내는 것이 한국사회에서 제가 운동하는 것보다 국제적인 연대가 훨씬 쉬웠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그런 연대를 통해서 우리 한국사회가 조금 변화할 수 있는, 한국의 아이들이 조금 감동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제가 왜 국제관계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 하냐고 하면은요, 주제와 변주에 왔던 29분의 선생님을 보고 아이들이 굉장히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분의 말씀과 삶에. 그런데 이번에 초대한 14분의 그 외국에서 온 청소년들과 학자들이 방문하고 그들의 영향으로 자신의 삶을 온통 바꾸는 아이들을 진짜 많이 봤습니다. 갑자기 채식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지금 몇 달 동안 열심히 지키고 있고, 그만큼 그 힘이 훨씬 큰 거 같습니다. 뭐랄까 다른 조건이 아니고요,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그 소통으로 인해서 마음이 진심으로 와 닿는 것을 한번 경험하는 국제적인 소통, 이것은 정말로 앞으로 새로운 방식의 연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제가 국경선을 일부로 그을려고 그런 게 아닌데요, 인디고가 대륙마다 국경선을 긋고 있어요. 점선으로 된 국경선인데요, 이건 언제나 지우면 됩니다. 하지만 우선은 그런 국경선을 그어가는 그런 프로젝트를 2008년 8월 20일부터 24일까지 부산 남천동 바닷가 인디고 서원에서 열어 낼 겁니다. 오실거죠? 제가 오늘 제가 늘 책을 들고 다니기는 한데, 이야기를 준비해오지 않아요. 오늘 제일 하고 싶은 말씀을 드리는 게 제일 좋은 이야기 아닌가요?

 


제3의 길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북미대표는요 미국일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아니고, 어디냐 하면 아이티 들어보셨죠? 쿠바, 동티모르 그리고 아이티가 있습니다. 우리 남한 면적의 3분에 1정도 되는 나라입니다. 제가 아이티를 여기서 설명하기 좀 그런 게 다 아실 거 같아서 길게 이야기하지 않구요. 아리스티드라는 대통령을 네 번이나 하신 분이 있습니다. 네 번 다 쿠테타로 물러났습니다. 지금은 미국에 망명가 계십니다. 신부님이십니다. 그래서 정말로 아이티의 민주화를 이루신 분입니다. 제가 이번에 뭔가 정치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나는 아리스티드 같은 대통령을 원한다고 아마 언론에 이야기 했을 겁니다. 기회가 없었습니다. 다만 문화관광부 무슨 레터에 제가 이 책을 소개했을 뿐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책,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분 만나러 북미대표를 만나러 2월에 또 아이티로 갑니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만날 수 없습니다. 미국에 망명을 가 계시기 때문에. 그렇지만 이 분이 재단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리스티드 재단입니다. 이분들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서 정말로 소중한 작업을 하고 계시구요 이 팀이 저희 북미 대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굉장히 재미난 에피소드 2개가 나옵니다. 미국정부가 지지하던 그 정권이 되지 않고, 아이티 국민들이 선출한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이 된 뒤, 미국은 바로 원조를 끊었습니다. 굉장히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쿠데타가 일어나서 결국은 정권이 바뀌는 가운데. 그걸 네 번이나 반복했는데요. 그 가운데 아리스티드가 재단을 세워서 어린 청소년들에게 많이 훌륭하게 교육을 하시는데, 지금 라디오 방송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청소년들이요. 그 라디오 방송국, 훌륭한 청소년들을 초대하는 것이 인디고의 일입니다. 세계 곳곳에는 자기 조국을 위해서 또 민주화를 위해서 꿈을 위해서 노력하는 이루고 있는 또는 노력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그 젊은이들이 연대했을 때 그 목소리를 모으는 것.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휴머니즘』이라는 이 책에 재밌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플로방스라는 다섯 살짜리 고아 아이가 일요일마다 아리스티드 집에 옵니다. 아이티에는 마당에 풀장이 있으면 부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티 집에는 풀장이 없었어요. 근데 이 플로방스가 와서 아~ 저는 수영을 하려고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속으로 수영장이 없는데 어디서? 저기 양동이를 가리키는 겁니다. 아, 그래 저게 너한테는 작니 크니? 그렇게 물었어요. 다섯 살짜리 플로방스에게 아리스티드는. 뭐라고 대답하실래요? 여러분은? 그런데 그 꼬마는 너무 아름다워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고아들을 데려다가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들이 있었는데 어떤 이야기를 했냐하면 항상 영어로 기브미 워터를 가르칩니다. 기브미 워터, 기브미 워터. 그랬는데 어떤 아이가 ‘기브미 초콜렛’ 그랬습니다. ‘아 너는 내가 워터를 달라고 가르쳤는데 왜 초콜렛이라고 하니.’ ‘제가 언제 목마르다고 했어요? 저는 저기 선생님 책상위에 있는 초콜렛이 먹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설명 드리지 않아도 이 두 가지에 많은 생각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우리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 아닙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하고 항상 이것 아닌 저것이 아니라 제3의 길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사이에 간극을 좁혀 나가면서 동시에 그것을 일치되는 삶을 꿈꿉니다. 저는 99.9% 일치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 있었던 일로 오늘 아침에 아이들에게 카페에 글을 쓰고 왔습니다. 홈페이지가 공식적으로 알려진 건 인디고 서원 홈페이지에 오시면 많은 정보를 함께 하실 수 있는데요. 이거 말고 제가 지금 18년째 진행하고 있는 아람샘이라고 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 아람샘 공동체 홈페이지는 비공개입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들과 졸업생들로만 긴밀하게 이루어지는 비밀 홈페이지입니다. 거기에 제가 오늘 아침에 글을 쓰고 왔어요. 왜냐하면 돌아가면 아이들이 나를 못 보니까. 오늘 제가 도착하면 1시가 넘으니까. 매일 밤 그렇게 저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부럽죠? 제가 뭐, 박진영 거의 부럽지 않습니다. 저도 저를 그렇게 항상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항상. 그래서 오늘은 그 아이들에게 내가 저녁때 못 만나니까 글을 쓰고 왔는데요. 저의 아이디는 금빛물고기한마립니다. 제가 물고기자리인데다가 파울 클레 작품을 많이 좋아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아이디를 썼는데요, 그 오늘 2007년 12월 21일 오전 10시 28분해서 이렇게 찍혀 있고요. 글쓴이 금빛물고기한마리 제목은 아름다운 날들. 이것을 끝으로 오늘 이 짧은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아름다운 날들 - 작성자 : 금빛물고기한마리

 


내가 새로 산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바다를 보고 다시 헉헉거리며 웃으며 초록지붕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붕어빵도 사고 꽃도 보고 나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다. 하지만 지금 그걸 못하는 대신 제 각기 다른 논술첨삭과 가기 싫은 은행과 아직도 정리해야 하는 공사관계자와의 전화는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다한다. 그것도 열심히 한다. 그리고 착한 고3들과 수업이라는 이름으로의 마지막 시간들도 마음을 다해 하고 있고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다정해졌다. 내가 밥을 해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바나나빵과 귤을 사기도 하면서, 원고지 위의 공포의 빨간 첨삭 사이로 우리는 여전히 진실과 정의와 신념을 얘기하는 숨 막히는 순간들도 함께 하면서.

 


어제 귀한 시대의 어른이 내 앞에 나를 만나러 개성을 가야할 기차를 놓치고 남쪽바닷가 끝동 네에 오셨다. 기억력 좋은 나는 그분이 쓰신 글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그분과 만났다. 정권이 바뀌는 첫날 우리는 어쩌면 더 어려운 시대를 살아야할지 모를 길을 잃은 자가 순례자로 여기 이곳, 인디고 서원에 왔다고 하셨다. 그것은 앞으로 인디고 서원이 사람들에게 더 간절히 원해지는 시대를 살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우명 해질수록 나락에 빠지는 원인은 돈과 명예 앞에 무릎을 꿇기 때문인데 인디고는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저항력을 강화하라고 말씀하셨다.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썩은 나무에 거름과 비료로 그것의 상태를 처방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하시면서 땅을 파서 새로 씨앗을 뿌려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 같은 새로운 종자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를 만난 후 나는 행운을 잡은 사람이 아니라 옳은 사람임을 알았다고 하셨다. 옳은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 사회가 이런 옳음과 순수로부터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 안타까워 하셨다. 나는 그분의 저녁이었던 껍질째 먹어도 좋은 사과와 맛있는 치즈를 받았고 가을 이후 처음 만난 윤정이가 에코토피아에서 후배들 맛있는 거 해주러 왔다면서 선생님께 드릴 건 이것밖에 없어요, 하며 사온 소담스런 국화꽃을 그분께 드렸다. 꼭 아내에게 드리라고. 한 손에 꽃을 들고 가시라고. 나중에 아이들이 그러는데 한손에 책가방과 한손에 꽃을 들고 힘들어하시면 서도 이게 허아람 선생의 방식이니 따르겠어, 하시며 꽃을 들고 가셨다고 했다. 나는 오늘 늙은 소년이라 하셨지만 참 좋은 소년을 만났고 그분께 나의 아름다운 소년들을 소개시켜드렸고 그중 가장 어리고 진실한 한 아이를 그분이 뜨겁게 끌어안는 걸 보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의 한가운데 이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짧은 강연을 정확하게 마쳤습니다. 저는 정말 퍼펙트에요 항상. 여러분도 더 길게 하시는 것 원하시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질문을 받고 싶어요. 질문 하시죠. 서로 리액션이 없는 이런 소통이 없는 자리는 저를 황망하게 해요. 그렇게 하시지 마시구요 해산하시든지 소통해주시기 바랍니다.

 


소통해주세요(강연이 끝나고 Q&A) - 사랑과 평화의 혁명

 


Q&A

 

Q. 금천중학교 교장 이정하인데요. 부산이라고 했잖아요. 다른 지방에 있는 학생들도 한 번씩 가서 강의를 들을 수 있나요?

A.네. 그렇습니다. 주제와 변주는요 그 책을 읽은 어떤 청소년도 다 올 수 있지만요. 구경만 하는 방관자는 드릴 자리가 없어요. 반드시 만날 준비가 되어있는 아이들이 와야 합니다. 그 말은 인디고 서원에서 진행하는 방식, 그러니까 책을 읽고 저자에게 질문할 것과 열린 마음과 그런 따뜻한 감성을 준비해서 와야 합니다. 그 정도의 원칙을 지켜준다면 대한민국 청소년 누구나 올 수 있고 지금 전국에서 많이 참여하고 있어요. 지금 시립미술관에서 내일도요 오전 11시에 부산에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 라는 프로그램을 8회째 진행하고 있어요. 네 시간 동안의 프로그램을 학생들이 진행하고 기획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는 그런 토론회가 내일 열리는데, 그 행사에도 서울에서도 많이 오더군요. 내일 마지막, 올해 마지막 행사입니다.

 

Q. 그 행사에 참여하는 무슨 비용 같은 거 없나요?

A.학생들은 없고요. 신청비 없고요. 주제와 변주 오신 선생님들께 제가 항상 30만 원 이상의 강연료와 차비와 숙박료를 드렸고요. 제가 버는 돈으로 제가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식은 서원에서 문화운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참여하는 분들은 돈을 내지 않습니다. 그런거 지원해주는 좋은 나라였으면 좋겠습니다.

 

Q. ‘민들레 영토’ 라는게 있잖아요? 부산에 있는 걸로.. 제가 작년에 부산에 다녀왔는데요. 민들레 영토 다녀왔거든요. 부산 영화제 때 갔다 왔는데. 민들레 영토와 뜻이 맞닿아 있는지 ?

A. 저는 민들레 영토 모릅니다.

 

Q. 대중적으로 그곳이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거 같아서요.

A. 글쎄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제가 알고 있는 정보는 북카페 인데요. 인디고 서원의 이런 진실한 본질적인 가치와 본질적인 방식으로만 진행하는 방식은 아닌 거 같고요. 그래서 무엇이 맞닿아 있는지는 공부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연대하고 있는 특별한 곳은 없습니다. 지금 인디고 서원이 전 세계에서 찾고 있는, 또 한국 사회에서 찾고 있는 훌륭한 어른들. 이런 방식이 아닌 것으로 연대하거나 네트워크하고 있는 특별한 집단이나 단체는 전무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제 수업을 6개월 동안 다큐멘터리를 찍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필름으로 찍은 것이 아니고 글로 썼습니다. 그 책 제목이 <토토, 모리를 만나다>입니다. 그 책 보시면 다 보실 수 있습니다. 궁리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Q.저도 인디고 서원을 언론에서 보고 상당히 감명 받고……. 사실 제가 영어 선생님입니다. 의사소통을 하는 언어문제를 어떻게 극복하셨는가?


A.그러니까 저는 단 한 번도 중고등 학교 때 배운 교과영어로부터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데요. 다들 저 보고 영어를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여기서 하이데거와 누구를 끌고 오지 않아도요 이 언어의 문제는 철학적으로 깊게 다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소통에서의 언어는 도구에 불가할 때가 많아요.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이미 마음이 통하고, 영어가 부족한 것으로 제가 의사소통의 불가능을 느꼈던 적은 없고요. 더 중요한 것은 저보다 영어를 잘하는 제자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저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요 사실은 저희 아이들은 저를 쪽팔려 하거든요. 아니 어떻게 공식석상에서 그렇게 못하는 영어를 그렇게 유창하게 하실 수 있냐고 저를 비난하지만 저는 제가 뭘 잘못했는지, 그분이 제 말은 잘 알아들어요. 다 - 그런 순간에도 그 단어가 몰라 힘들 때는요, 늘 도움을 청하죠. 스페인어는 조금 달라요. 스페인어는 통역을 구했습니다. 우리 중에 스페인어 할 수 있는 친구가 없고. 불어하는 친구들도 있고, 일본어 영어 다 있어서 그동안 힘들지 않았고요. 글쎄요, 언어를 뛰어넘는 인간의 힘을, 사람을 만나면 극복할 수 있어요. 저는 그랬어요. 강연도 했답니다. 훌륭하지 않습니까?

 


Q.대단하십니다. 되게 철학적인 인문학, 용어들이 많이 나오지 않나요?


A.저한테요? 그분들한테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런 겉멋든 학문은요. 우리 사회에 크게 기여하지 못해요. 제가 만난 브라이언 파머도 고등학교에서 1등으로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4년 박사를 끝날 때까지 플스콜라쉽을 받았던 분이고, 옥스퍼드에서 퍼스트박사를 받은 분이세요. 그런 분을 우리는 석학이라고 부르죠. 그저 그분의 가장 학덕이 무엇이었나 하면요. 바로 겸손이었습니다. 그런 인간의 아름다운, 그런 인간의 고양된 인격보다 더 위대한 학문은 없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래서 누굴 만나든 그런 문제로 당당해 보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요.

 


Q.저는 이대훈 이라고 하구요. 성공회대학교에서 국제관계와 평화 강의하고 있고요. 아르나라는 국제 NGO를 하고 있는데요. 올해 그 대학에서 아시아의 시민활동가들을 모아서 석사과정을 개설했는데, 중요한 주제가 대안적인 삶에 양식, 대안적인 문화 양식. 중요한 주제입니다. 꼭 한번 보시고, 아시아의 시민활동가들과 강의를 조금 모시고 싶구요.


A.대안적인 삶과 대안적인 것에는 가지 않을래요. 저는 본질적인 얘기할래요. 저는 제가 한국사회의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는 본질자체를. 그런 강의에만 가겠습니다. 제목을 바꾸면 가죠.

 


Q.네 주제를 바뀌고 연락드릴게요.^^;;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다른 궁금한 건 공부를 많이 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드릴 질문은 젊은 사람과 많이 하고 공동체란 말도 쓰셨고, 이제 점점 활동이 다채로워 지는 거 같은데요. 그렇게 하다보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공동체로서 젊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공동의 결정을 내리는 그런 체제는 어떻게 만드셨는지?


A.항상 토론입니다. 항상 토론이고요. 컴퓨터가 여기 있으면 여러 장면들을 보여드릴 수가 있는데요. 저녁에 7시에 회의장에 앉으면 다음 날 아침 여덟시에요. 그게요 시간이 가는지를 우리가 몰라요. 정말로 그렇고요. 공동의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도 사실은 제 마음 속에 어떤 결정을 내린 적이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선생님 결정은 이거야 라고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아요.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려요. 그리고 합의를 내는 그 과정이 저에게는 결정의 과정이에요. 어떤 결정이 나오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을 하게 되는 그 어려운 순간순간을 아이들이 극복하게 하는 그것.

저하고 일하는 팀장은 중학교 3학년 때 저를 만난 26살 청년이거든요. 이번 학기는 인문주간 일 때문에 학기를 휴학했습니다. 그 팀장도 저와 똑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합의를 이끌어내요. 정말 힘들어요. 결정을 못하는 일로 두 달을 꼬박 밤을 새는 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기록들을 저희가 다 남겨뒀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식 자체가 우리 사회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건 있습니다. 행사를 10일 동안 하는 가운데, 갑자기 어디가 펑크 나서. 선생님 어느 식당~ 이렇게 되었을 때, 야~ 거기 가자. 이렇게 하는 결정 정도는 제가 합니다. 항상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은 리더가 갖고 있어야 하니까요. 아이들은 저를 대장이라고 하는데요. 그 대장의 역할은 모두가 다 자기 쉼터로 돌아갔을 때 다시 식당에 가서 음식쓰레기를 가지고 가고 분리수거를 하고 걸레질을 하고 내일 차를 미리 준비하는 보이지 않는 일을 누가 많이 하는가, 이게 제가 생각하는 대장의 역할이구요. 결정을 내리는 것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잘 유도해내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대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요 공격받는 방식이 뭐냐 하면요. 제가 콜롬비아에 가자, 하면 가야해요. 선생님, 사실 이 프로젝트는 이렇게 해서 쫌 끝나지 않아서, 조금 뒤로. 안돼요.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돼. 이 열정이 사그라지기 전에 거기 가야해. 그 사람들 만나야 해. 가자. 네팔 가자. 그러면 이제 막 인터넷 찾아보면 네팔 내전중이구요. 선생님 우리 방탄조끼 안 사줘요? 그리고 거기 몬순기라서 비가 올 거 같은데요. 막 그러거든요. 가보면 비 한 방울도 안 오거든요. 그러한 어떠한 거짓의 언론들이 그곳의 진실을 그곳에 사는 사람들만 알고 있는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세계 곳곳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런 것에 용감한 판단은 제가 합니다. 근데 아이들은 그게 싫대요. 선생님의 너무 지나친 돈키호테식 행동방식이 자기를 너무 숨 가쁘게 하고 그래서 나동그라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프로젝트의 팀원으로 나가지만 저희 공동체의 연대 지지자들로 항상 각자의 방식으로 연대를 열심히 해줘요.

 


Q.다른 분들의 질문 시간을 뺏는 것이 아닌가 걱정인데요. 인디고 서원 한번밖에 안 가봐서 아직은. 지금부터 알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차츰 알아보면 알게 되면 이 질문이 없어질 거 같은데 지금 우선 한 가지 질문은 허아람 선생이 없는 인디고 서원이 가능한가? 이런 질문입니다. 손오공이 머리카락 하나 뽑아서 많은 손오공 만들듯이 허아람 선생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쫌 바쁘시지 않습니까. 언제 그 많은 아이들을 허아람 선생님 만나게 할 수 있을까 - 그런 질문입니다.


A.또 달리 말하면, 서울에도 또 다른 지역에도 인디고 서원과 같은 공간들이. 공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이유로 물리적 공간에 담겨 있는 것. 너무나 중요하구요. 그걸 조금 더 크게 생각하면은, 경제대통령이 된 이 나라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큰 고민과도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향하는 제일 큰 가치,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제일 큰 그릇에 공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신중하게 해야 되고요, 인디고 서원은 항상 아름답습니다. 오시는 분들이 검소하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공간을 즐거워하시는 이유는 거기에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안목을 늘 가지고 어떤 공간을 꾸민 다기 보다 자연스럽게 순수하게 자리를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기 곤란한 것이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람샘이 없는 인디고 서원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99%입니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내가 1%로 씨앗을 뿌리겠다는 학생들이 이제 20대 중반입니다. 학교를 다 마치지 못했고요. 혼자서 서울에 와서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돌아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새로운 연대를 해서 이곳에서 뭔가를 하겠다고 못하는 이유가 뭐냐, 라고 질문을 했을 때 선생님이 거기 없잖아요. 저는 집이 부산이에요. 제 삶의 뿌리가 여긴데 왜 도시에 가서 자꾸 선생님을 일을 하라고 그러시냐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가장 큰 딜레마입니다. 어떻게 나는 저희가 하고 있는 이 일과 공동체를 풀뿌리처럼. 그러니까 저희를 여러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희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과 어떻게 연대해서 힘을 드릴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가서 모든 지역과 전 세계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그 국가에서 그 대륙에서 인디고 서원 같은 분들을 찾아내는 것을 하는데 그것이 가장 파급효과가 큽니다. 그래서 저는 그 방식을 선택한 겁니다. 알바로 선생님이 인디고 서원을 아는 것과. TYA가 인디고서원과 연대해서 전 세계에 아시아잡지를 내는 것, 아프리카에서 그 선생님들이 앞으로 우리와 연대해서 하게 될 일들 같은 그런 일들을 금방 질문하신 부분에 제가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저 방식의 책무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말씀하신 모든 아이들을 마이크로 만날 수가 없고, 제가 만날 수 있는 학생들은 15명의 20명의, 머리 만져주면서 제 얼굴의 붉음을 아이들 스스로가 온기를 느끼고 웃고 울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그 만남들만 저는 쉬지 않고 열심히 해왔습니다. 그런 방식이 아닌 방식은 힘들 거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저의 방식으로 할 겁니다. 하지만 저희 인디고 서원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방식은 굉장히 민주적이고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쓰고, 이런 행사를 만들어 우리 고장에서 장을 만들어내고 네트워크해서 더 국제적으로 연대하고, 이런 것도 순수와 정의도 진실함도 권력이 될 수 있다 이때 권력도 나쁜 의미가 아니라 사랑의 권력이고 때로는 제가 하고 있는 이 방식이 새로운 미래에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혁명의 방식이고 미래에는 이런 방식으로만 혁명이 가능하다고 저는 믿고 있고, 제가 이름 붙이기로 이것은 사랑의 혁명이고 평화의 혁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존의 많은 NGO 단체들이 행한 우리 사회의 그 훌륭한 노고를 제가 업수이 여기자는 말씀이 아니고요. 지금은 새로운 방식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아무도 느끼지 않으려는 시대에 저는 인디고 서원 문을 여는 순간 아이들이 느끼는 것은 아름답다 예쁘다까지도 느낍니다. 그 마음을 잡아서 진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그곳으로 끌어오는 데는 이런 방식은 안 되는 겁니다. 삶을 녹여야 하고, 그 삶을 함께 해야 하고, 그런 방식으로만. 그래서 인디고 서원의 진행방식과 저의 지향은 여기 저기에 인디고 서원의 깃발을 꽂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희망의 증거로 앞서 나가서 함께 용기를 내서 그렇게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에 뿌리를 둔 많은 자생적인 공간들과 공동체가 생겨나고 그렇게 되었을 때 서로 다시 사랑을 나누고 물길을 만들어서 연대하는 그런 방식을 꿈꿉니다. 거기에 어떤 불순함도 어떤 다른 것도 끼어들 자리는 절대 내어주지 않을 계획입니다. 그것이 자신 있습니다. 저는.

 


A.김찬호 선생님. 최근에 비평에 쓰신 거 있잖아요. 비평에 쓰셨을 거 같은데, 제가 그거 엄청 복사해서, 그 글이 너무나 좋아서 저희 모임 선생님들께 돌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다섯 살 때부터 글자 읽을 줄 아는 아이였는데요. 그리고 늘 담벼락에 앉아서 책 읽기 무지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철이 빨리 들었고요.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마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신데렐라 내지는 장화홍련 스토리의 여자주인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너무나 나를 힘들게 하는 너무나 무섭고 나쁜 사악한 새 어머니가 저를 세상에서 너무 착하고 선한 아이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불행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는데요, 아버지는 문학 소년이셔서 외국에서 20년 동안 떨어져 계신 동안 저에게 항상 편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오면 이 고난이 끝날거라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제가 19살 때 외국에서 오셨는데 고난은 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저에게 더 이상 아버지라는 존재가 이 모든 것을 극복해주시는 구원의 손길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저는 내 안에 너무 많은 욕망들 또는 선한 욕망들 많은 철학적 질문들을 밖으로 말할 수 없는 공교육 현실에서 진짜 진짜 아프게 앓았던 아이인데 저의 장점은 기억력이 좋습니다. 그때 내가 꿈꾸었던 것들, 어떤 수업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고 어떤 것은 절대 하면 안 되고, 진짜 아이들이 바라는 건 뭐고 그 수업은 그 모든 것은 기억 속에 남겨져서 20살부터 제가 원하던 수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네 그래서 때로는 반면교사가 저를 키운다고 저는 사실은 제 자신의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때 그 나이에 겪을 수 있었던 것을 피하지 않고 심지어는 저렇게 나쁜 새엄마가 오신 것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착한아이라고, 착한아이가 되라고 그렇게 된 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마음, 철이 빨리 든 아이였던 거 같아요. 정말 힘들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기억을 하나도 잊지 않고 지금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고 그 상처를 아름다운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교육자로서 힘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아무것도 잊지 않고 너무 선명하게 내 꿈들을 기억하고 있는 그 힘 때문에 지금의 일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허허허허- 기억력이 좋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A.인디고 서원은 항상 열려 있는 공간이니까요, 민주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시면 언제나 무엇이든 도와드릴 수 있는 곳입니다. 젊은이들이 하고 있는 공간이거든요. 항상 예우를 갖추어서 친절하게 서로 소통하시면 많은 궁금한 것들을 얻어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북페어 때 많은 지지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말씀 들어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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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 Think Hard! 몰입
황농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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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입하고 있는 동안 당신이 먹을 밥은 누가 하나?

당신이 몰입하고 있는 동안 당신이 입을 옷은 누가 세탁하나?

당신이 몰입하고 있는 동안 당신이 있는 곳은 누가 청소하나?

저자는 이런  가사, 잡일을  '권태'라는 항목에 넣고 있다. 대부분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는 말일 것이다. 허나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것을 해줄 것인가. 당신을 위해 이 일을 하는 누군가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몰입이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이라면 그 일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몰입이 주는 창조력과 자기 행복감을 말하지만 공동체, 사회의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몰입을 통한 창조적 사고력이 이 사회에도 행복을 주는 길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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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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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소원

적막의 포로가 된다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이 소원들이 간절하게 그리워지도록 살고 싶다. 누군가 철없는 짓이라고 흉보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텔레비전 소리, 차소리, 떠드는 소리 소음으로 가득찬 거리에서 적막을 그리워해본 사람은 알리라, 그 적막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온갖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마른풀처럼 더이상 뻗지 않는 것은 욕망의 중지일 것이다. 욕망이 자주 꿈으로 포장되어 광고되는 세상이 이런 소원을 뭐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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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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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곧 의도를 갖는 책의 역사들이다. 책을 쓰는 사람은, 곧 책에 몰입하는 인간들이다. 다름아닌 책벌레들이다. 누가 세상을 만드냐고 묻는다면 나는 책벌레들이 만든다고 말하겠다. 이 책은 조선시대 책벌레들에 대한 이야기다. 잘 알려진 인물도 있고, 그렇지 아니한 인물도 있지만, 그들이 책에 베풀어놓은 생각들이 결국 조선 사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 강명관

책벌레라고 칭할 정도로 책에 미쳐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조선 사람들(왕이든, 선비든)이 조선을 만들었다는 저자의 글은 날카롭다. 저자는 '정조는 개혁군주다', '퇴계는 조선의 뛰어난 사상가다'는 등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단호하게 지적하고 있다. 정조는 오히려 새로운 사상을 타압했던 인물이고 퇴계 또한 그 시대의 사상경향인 주자학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상가였다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조선 시대 인물들에 대한 지도를 그리고  사상적 , 문화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독서를 바탕으로 조선의 지식풍경을 이해하고 우리 시대의 방향을 가듬해 본다면 이책의 공은 크다고 할 것이다.

질문 하나,

책벌레들. 책을 좋아하고 ,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로잡으려던 사람들, 그리고 책을 통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던 사람들이 조선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책을 볼 없었던 사람들은 무엇일까. 그들은 단지 먹고 일하고, 양반의 말에 고개를 숙이는 미물들인가.

만약 백성들이 없는 조선사회는? 양반사대부만 있는 사회는?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책벌레들이 조선을 만들었다면 그 책벌레들을 떠받혔던 백성들에 대한 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질문 둘,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누가 만들까. 여전히  책을 읽고 창조하는 지식인들의 힘은 막강할까. 돈이 말하는 사회에 책의 역할은? 책벌레들의 역할은? 나름대로 책벌레라고 하는 이들은 고민하고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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