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나도 그래.>

인간 실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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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독자들의 얘기를 살짝 들어보면, 다들 놀랐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신선한 충격이다, 또는 그가 너무 불쌍하다, 위로를 해주고 싶다, 등의 얘기들이었다. 오히려 그런 반응을 보고 내가 놀랐다. 굉장히 여러 부분에서, 그런 요조의 마음을, 그랬던 행동을, 그가 느꼈을 비참함과 자괴감과 부끄러움과 모멸감을, 나는 무척이나 공감했기 때문이다. 너무도 사소해서, 혹은 나의 말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아서 문장으로 차마 정리하지 못한 것을 정갈히 적힌 요조의 글에 여러 번 맞아, 맞아, 하며 간지러운 곳을 시원하게 긁듯이 열심히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그런 요조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닌, 담담한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야, 나도 그래.

  사람이 어려웠고, 조직은 더 어려웠다. 그 조직이 세상의 전부였을 때, 나는 틀린 아이였고, 문제아였다. 물건에 불량품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잘못된 사람이었다. 조직에 익숙하게 물들어 어울리는 사람은 정상인, 그러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힘들어하는 나는 ‘틀린’인. 그 작디작은 조직이 나의 전부였을 때,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간단한 생각의 인과였다. 나는 불량이고, 이걸 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며, 계속 이렇게 불량인 채로 살 바에야 그냥 내가 빨리 나를 없애는 것이 좋은 해답이라는, 그런 전혀 복잡하지 않은 간단한 원인과 결과.

  누가 죽음에는 삶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라고 했던가, 참 우습게도 어떻게든 이런 저런 노력은 해봐야지 않겠냐며, 이왕 죽을 거 최선의 노력은 해보고 죽자며, 사실은 죽는 것이 두려운 속내에 얕은 핑계를 대며 어떻게든 조직에 속하려고 했다. 그때 그 노력의 꼬라지를 보고 있자하니, 어쩜 이리도 요조와 비슷했을까. 궁금하지도 않는 질문을 하고, 감흥 없는 시시한 얘기에 격한 리액션을 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연예인을 좋아하는 척을 하고, 내 취향은 뭔지도 모르면서 그들의 취향의 옷과 물건을 사기도 했다. 그들이 웃기고 활달하고 털털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그런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도 하며, 우스운 농담과 야한 농담으로 익살을 부리고, 그다지 놀라고 재밌는 얘기도 아닌데 어떻게든 이목을 집중시키겠다며 과장과 오바쌈바의 재치를 부리며 얘기하곤 했다. 요조가 무슨 감정을 느꼈을지가, 요조가 어떻게 행동을 했으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가 거울처럼 보였다.

  그런 노력을 하면 할수록 모순적이게도 불안감과 초조감과 우울감은 커져갔다. 어제는 웃으며 나의 손을 잡고 같이 밥을 먹던 그들이 내일은 여느 어떤 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나의 등 뒤에 덩어리 지어모여 서서 나를 빼고 나의 이야기를 하곤 했고, 나의 작은 행동하나가, 말 한마디가, 아니, 그 어떤 것도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결코 나는 풀지 못하는 그 어떤 무언가가 한순간에 조직의 흐름을 바꿔놓고는 했다.

  어느 날은 조직의 한 사람과 작은 다툼을 했고, 나는 그 사람과 다퉜으니, 그 사람과 단 둘의 문제라고 생각하여 내일 대화를 통해 얘기를 하고 사과하려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지, 바로 조직 모두에게 일방적으로 떠들어댔고, 날이 밝은 내일은 내가 대화를 시도할 새도 없이 한순간 조직의 흐름이 바뀌었던 적도 있었다. 어려웠고, 너무 어려웠다. 계속 반복되는 어려움은 결국 나의 어려움으로 귀속되었다. 단지 내가 그 조직과 맞지 않아 그런 것이라는 생각은 그것의 씨앗도 심지 못했다. 그냥 전부였고, 주류였으며, 모두가 따르고 있으니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당연히 사람이라면 조직에 속해야 하는 것을, 그것을 못하는 나는, 잘못된 사람이었다.

  전부가 깨져야 진짜 전부를 볼 수 있었다.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아야 진짜 전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작디작은 조직에서 벗어나 넓은 평야를 봤다. 지대는 끝을 모를 만큼 뻗어있었고, 사람들은 셀 수 없을 만큼 흩어져있었으며, 그들의 모양은 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조직에서 봤던 모양보다 훨씬 다채롭고 다양해서 감히 종류별로 나눌 수 없었다. 하늘은 작은 직사각형이 아닌 나의 발끝을 넘고도 남는 커다란 우주였고, 구름의 움직임과 별의 위치와 달의 모양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한참을 그렇게 눈이 부시게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끝을 모를 끝을 보다가, 시야는 점차 나의 발끝으로 가까워졌고, 그렇게 나를 보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누구지, 누구였지, 나는 뭐지. 아니, 도대체 뭘 가지려고 했던 거지. 나에 대해 어떤 생각도, 느낌도, 취향도, 성향도, 성격도, 그 아무것도 몰랐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나를 미워했을까, 도대체 왜 나를 그토록 좌절시켰으며, 괴롭혔을까.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갈기갈기 헤진 헝겊 같은 나를 발견하고선 그제야 나는 내가 잘못된 사람이 아니었음을, 불량품이 아니었음을, 단지 맞지 않았었음을, 맞는 조직과는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음을, 그리고 굳이 조직에 속하고 따르려 나를 죽이지 않아도 됨을, 조직이 전부가 아님을, 그렇게 나는 틀린 것이 아닌 그저 달랐을 뿐임을 알았다. 외부로만 뻗어나던 나뭇가지가 텅 빈 몸통을 채워주니 새살이 차올라 속이 찼다. 날 짓누르던 중력을 마주하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불안함도, 그 어떤 초조함도 눈을 마주하고 그것이 가진 동공의 색깔을 고이 바라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나아가니 조직은 더 무궁무진하고, 이젠 나의 의지랑은 상관없이 조직을 맞대야 할 때가 많다. 조직이 폐쇄적일수록, 수동적일수록, 변화에 부동적일수록, 그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의 과반수가 ‘고인물’일수록, 그리고 성별 나눌 것 없이 하나의 성별에 극도로 치우쳐 구성되어있을수록, 조금 더 어렵고 괴로움 정도도 높다. 그런 조직은 그들만의 특유성이 있고, 풍속이 있으며, 문화가 있고, 뭔지 모를 암묵적인 분위기가 존재한다. 그 조직의 그 분위기,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며 내뱉는 단언적이고 비난 섞인, 혹은 차별적인 생각이 묻어나는 말과 대화들, 자신의 잘못에는 능글맞게 조용히 넘어가면서 타인의 실수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피해를 주면 소스라치게 달려드는, 앞에서는 말도 못하고 웃기만 하더니 뒤에서는 바로 씹는 모습들, 같잖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작은 머리를 굴리지만 뻔히 패가 보이는 하찮은 포커페이스, 더 이상 나열해도 끝나지 않을 참 많은 것들이 여전히 어렵다.

  분명 이상한 것인데, 그들은 당연하게 행동한다. 분명 불편한 것이고, 틀린 것이며, 바로잡아야 할 것인데, 그들은 당연하게 침묵한다. 오히려 웃어 보이며 즐긴다. 그래서 말을 한다. 이상하고 불편한 것이니 작게라도 말을 한다. 묘한 공기가 짧게 흐르다 곧이어 다들 웃어넘긴다. 또 다시 말을 한다. 이제는 그런 나의 말과 태도가 관심과 애정인 줄 안다. 심지어 그들은 이상한 농담과 불편한 말들의 광장에 나를 끌어들이려 한다. 분위기 파악하라는 거지, 그냥 닥치고 너도 협조나 하라는 거야. 말을 했지만 무시당하고, 조직은 변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다들 당연하게 행동하고, 당연하게 침묵하며, 웃으면서 즐긴다. 그 속에 나는 침묵 따위는 하지 못한 애송이가 되고, 부드러운 조직에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문제아가 되며, ‘잘못된’ 사람이 된다. 얼추 추임새를 넣고선 결국 침묵한다. 그렇게 침묵을 하고선 그들의 광장에 소속되기 위해, 주류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를 죽이면서 들어 넣으려고 더 이상 애를 쓰지 않는다. 침묵을 하고 그저 책을 핀다.

  조직은 전부가 아니다. 이미 깨져 진짜 전부가 무엇인지 아는 나에게 그런 조직은 점차 쉬워지고 괴로움 정도도 낮아진다. 물론 여전히 괴롭고 어떤 것은 역겹기 때문에 난도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괴로움 정도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직 그럴 ‘짬바’가 아니다. 그저 나는 흔들리지 않을 뿐이며, 이 세상에 틀린 조직은 있어도, 틀린 사람은 없기에, 틀림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저 다름이라는 단어에 중심을 놓는다. 조직에 몰입하기보다 나에게 몰두한다. 왜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왜 불편하고 바로 잡아야하는 것이라고 느꼈는지에 집중하며, 나 또한 사람이기에, 나도 저러지 않나 부끄러워하고,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 더 나은 내가 될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런 조직에 힘없이 물들어가는 것 대신 나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간다.

  요조는 끝없이 자신을 세간에 속하게 만들고자 했다. 자신이 세간과 맞지 않는 사람임을 잘 알면서도 세간이란 조직에게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자신이랑만 마주할 수 있는 충만한 시간은 그림을 그릴 때가 아니었을까. 그런 귀한 시간과 그림이라는 행위를 그는 또다시 그저 자신이 조직에 인정받고 속할 수 있게 만들어줄 유일한 도구로만 여겼다. 그에겐 세간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를 둘러싼 그 작은 세간이 전부였기에, 그것에 자신의 인간 자격의 판단을, 기준을 세웠던 것이다. 아마 그가 살던 시대는 개인보다 조직이 훨씬 우선되고 주류가 되며 중요하게 여겨져, 전부임이 더욱 도드라졌을 때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그가 그렇게 매몰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현재는 아닐 거라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지금의 내가 그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오만이다. 여전히 사람이 어렵고, 조직은 더 어렵다. 허나 나에게 요조가 있기에, 나는 그에게서 담담한 한마디를 듣는다.

  야, 나도 그랬어.

/그외 이야기

  솔직히 뭐랄까, 그냥 제 다짐을 썼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되게 거만해 보일 수도 있겠는데, 에헤이, 저 굉장히 겸손하고 수줍은 사람이라고욤. 사실 저도 사람이다 보니, 영향 받고 싶지 않다고 해도, 아무리 흔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알게 모르게 물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곤 해요. 원래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그게 참 무서운 거거덤요. 그래서 조직이라는 게, 집단이라는 게 더 무서운 것도 있죠. 흔들리지 않지만 더 흔들리지 않고 싶고, 계속 생각하지만 더 선명하게 생각하고 싶고, 더 반성하고 더 부끄러워하고 싶어요.

  아 참, 그냥 전달하고 쓰기 편하게 조직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게 무슨 읽다보니까 살짝 느와르마냥 조직과 형님, 조직과 범죄 이런 느낌이 나서, 의도치 않게 너무 힙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전달하고 글을 쓰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썼어요. 이왕 이런 거 그냥 힙하게 읽어줘요.

  뭐 장난스럽게 말은 했지만, 사실 고백글이랍니다. 나의 고백. 저 고백을 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쓰기가 항상 힘들더라고요. 매번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이게 아닌데, 이 느낌이 아닌데, 이러면서. 솔직히 아직도 완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아주 살짝 익었다 싶어요. 혹시라도 비슷한 고백을 품고 있는 분한테 짙은 글이 되었으면 하면서, 제가 뭐라고 했죠? 거참, 힙하게 읽으란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