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p. ..그러나 영어반 시절에서 가장 많이 떠올리는 장면은 역시 유인물을 넘겨주며 내게 상냥하게 말을 건네던, 전교 학생회장의 ‘부드러운 적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환대보다 적대를, 다정함보다 공격성을 더 오래 마음에 두고 기억한다. 어떤 환대는 무뚝뚝하고, 어떤 적대는 상냥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게 환대였는지 적대였는지 누구나 알게 된다. - P-1
31p.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좋은 곳에 온 사람들끼리 환대하는 것은 쉽다. 원치 않았지만 오게 된 곳, 막막하고 두려운 곳에 도착한 이들에게 보내는 환대야말로 값진 것이다. - P-1
31~32p. ..그런데 로봇 3원칙은 열여섯 살의 나에게 왜 그렇게도 인상적이었을까. 저 3원칙에 ‘로봇‘ 대신 ‘아이‘를, ‘인간‘ 자리에 ‘부모‘를 넣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한창 사춘기였던 그 시절의 나는, 부모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부모의 지시를 따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에 의해 창조되었고 부모의 통제하에 있었다는 점에서 나와 로봇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 P-1
63p. ...잡초가 이름을 모르는 식물을 의미하듯 잡귀는 이름이 잊힌 귀신이다. 잡귀가 아닌 귀신은 그 이름을 불러줄 누군가가 있다. 이름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불러 초대하면서 제사가 시작된다. - P-1
72p.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새해에 세운 그 거창한 계획들을 완수하기에 열두 달은 너무 짧다. 그러나 십 년은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서 띄엄띄엄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 P-1
77p. ..‘테세우스의 배‘는 조금씩 변했지만, 법과 권위, 대중의 동의가 그 배가 테세우스의 배임을 인증해주었기에 계속 테세우스의 배로 남을 수 있었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테세우스의 배보다도 더 큰 변화를 겪는다. 이십대의 나는 길에서 마주쳐도 지금의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나 역시 십대의 나를 그냥 지나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이 과거의 그 사람과 같은 존재라고 애써 믿으며 살아간다. 변하지 않은 어떤 것들을 애써 찾아내, 사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 P-1
80p. ...모든 지도에 축척이 있듯이 실제 세계는 이야기의 세계를 초과한다. 다만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뿐. - P-1
102p. ..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 P-1
113p. ...순교자와 양심수들에게 세이프워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배교‘와 ‘전향‘이면 고문을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안전어를 쓰지 않았다. 원하면 내려올 수 있는 러닝머신과 처벌 기계로서의 트레드밀. 아예 안전어가 없는 무의미한 시련과 있어도 내뱉지 않고 감내하는 극한의 고통. 그것은 그저 의미의 있고 없음의 차이일까? 만약 그렇다면 언젠가 ‘잘 통제된 고통‘이 아닌, 그야말로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끝 모를 고통에 직면할 때, 나는 무엇으로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고통이 닥치지도 않았는데 앞질러 두려워하는, 아니 혐오하는 이런 증상은 전세계적 현상이 되어 있다. - P-1
135p. ...내가 어딘가 잘못된 곳에 와 있고,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다시 ‘이탈‘해야만 할 것 같은 이 익숙한 충동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 P-1
137p. ..대체로 젊을 때는 확실한 게 거의 없어서 힘들고, 늙어서는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괴롭다.... - P-1
143p.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 P-1
169p. ..지금은 고전이 된 두 편의 논문에서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el (1979)과 버나드 윌리엄스Bernard Williams (1981)는 인간의 도덕성이라는 것이 일종의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논증한다. 이른바 ‘도덕적 운moral luck‘이다. 이들은 도덕적 평가는 운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과 무관해야 한다는 칸트의 주장을 반박한다. 거칠게 말해 1930년대 독일에 살게 된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치의 악행을 방관하거나 그에 가담하게 되는데, 이는 도덕이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다른 사람에게 베풀 게 많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고귀한 행위를 하기가 쉽다. 이런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P-1
192~193p. ...내 삶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를 무한한 삶들 중 하나일 뿐이라면, 이 삶의 값은 0이며(1/∞=0) 아무 무게도 지니지 않을 것이니, 존재의 이 한없는 가벼움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더는 단 한 번의 삶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태어나지 않았을 때 나는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을 몰랐기에 전혀 애통하지 않았다. 죽음 이후에도 내가 죽었음을 모를 것이고, 저 우주의 다른 시공간 어디엔가는 내가 존재했는지도 모르는 내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위안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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