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A란 Unidentified Mysterious Animal의 약어로, 쉽게 말해서 미확인 생물이란 뜻이다. 이름대로 실제로 존재하는지 증명되지 않은 생물을 가리키는 총칭이다.
..영어로 쓰여 있어 외국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 명칭은 일본식 영어다. 모두 다 아는 UFO가 Unidentified Flying Object(미확인 비행 물체)의 약칭이라는 점에서 힌트를 얻어 1976년 일본의 모 유명 SF 전문지가 명명한 것이 시초다. 덧붙여 영어로는 크립티드(Cryptid)라고 부른다.

..공포의 대상은 전국 공통이지만,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이름을 바꾸어가며 전승되기도 해요.
..메리는 집 전화가 없어진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고, 때로는 문자 메시지로 연락하지. 이젠 뭐, 메리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괴담 자체가 없어졌는지도 모르지만,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시대를 뛰어넘어 계속 남을 거야.

...신이란 존재는 잊히면 나쁜 짓을 한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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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p.
..당시의 과제 도서 중에서 말하자면 『죄와 벌』보다는 『국화와 칼』이 훨씬 재미있었다. 만약 베네딕트의 말처럼 서구 사회가 ‘죄의 문화‘이고 일본 사회가 ‘수치의 문화‘ 라면, 일본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범죄는 범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인은 전세계에서 완전 범죄에 가장 적합한 민족일지도 모른다.

158p.
..슈이치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조용한 분노가 차곡차곡 마음에 쌓여간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을 휘감았던 붉은 불꽃과는 종류가 다르다. 그의 뇌리에서 빛나는 것은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푸른 불꽃이었다. 가장 깊은 사색을 나타내는 푸른색. 그러나 그 차가운 빛과 반대로 푸른 불꽃은 붉은 불꽃보다 훨씬 높은 온도로 자신을 불태운다.
..그는 이미 자신이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남은 것은 기술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361p.
.."분노는 3독 가운데 하나야."
.."뭐?"
.."한번 불을 붙이면 분노의 불꽃은 끊임없이 타오르다가 결국은 자기 자신까지 모두 태워버리고 말지."

398p.
..그는 어둠 속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하고 있었다.
..네발이었다. 자신은 아무래도 호랑이가 된 것 같다.
..등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척이 떠다녔다. 분노, 슬픔, 격분, 그리고 살의. 그것이 모두 자신을 향한 감정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여러 마을을 습격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으니까.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는 언젠간 마을 사람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나 진짜 짐승이라면 그런 것은 의식하지 않고 최후의 최후까지 절망적인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530p.
..머나먼 바다를 건너온 바람처럼 자신은 지금 종착역에 도착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자 돌연 발길이 움츠러드는 기분이 들었다. 목적을 이루려는 의지를 지탱한 것은 뇌리에서 번뜩이는 푸른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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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p.
..계속 걸으며 몸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몸과 마음이 합해진 것이 내가 아니라 몸은 그저 몸이다. 몸에게 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면 몸은 몸의 언어로 의사 표시를 한다. 그런데 마음이 그걸 곡해하면 마음은 그 원인을 몸이 아닌 외부에서 찾는다. 내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면 몸이 힘들어지는 찰나에 나쁜 마음들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77p.
..순례자 길을 걷고 나면 작가가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걷는 동안 잠시 작가의 삶을 살 뿐이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이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하면서 그저 걷는 것. 원고지 1매, 1매를 써서 800매를 쓰는 것. 1킬로미터, 1킬로미터를 걷다가 800킬로미터를 걷는 것. 그저 글을 쓰는 것. 그 순간이 잠시 되어보는 것. 그때 걷는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은 ‘나‘가 아니다. 직접 걸어보고 글을 써보면 이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삶을 잠시 살아볼 수는 있어도 걷고 나서도 계속해서 작가가 되거나 순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173p.
..나는 자신의 지옥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지옥을 가지고 있다. 대개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감추지만 아낌없이 자신의 지옥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된다. 모든 감정은 똑같은 크기의 감정이 받쳐주고 있다. 나의 지옥과 상대방의 지옥의 크기가 비슷해 보일 때,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생기고 동시에 밀어내는 힘도 생긴다. 그렇게 서로의 지옥이 된다.

234~235p.
..그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연결되는 모습들을 보았다. 행복의 조건 중 하나가 차별당하거나 거부당할 거란 두려움 없이 언제든 편하게 들를 수 있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느슨한 연대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 환대의 공간. 공간을 지키는 데는 품이 많이 든다. 만약에 어떤 공간에서 마음이 편하고 많은 것을 얻어온 기분이 든다면, 그건 그 공간을 지키는 사람이 자신의 것을 나눠줬기 때문이다. 한 공간을 만들고 지킨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나눈다는 마음 없이는 공간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공간을 만들고 지킨다는 것은 하나의 삶을 더 사는 것과 같다. 그 공간으로 사는 삶에는 기쁜 날도 있지만 슬픈 날도 있고 사실 대부분의 날은 지루하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그런 지루함을 이겨내고 버티고 있는 것처럼 공간의 삶도 우리의 삶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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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p.
..너는 말이 별로 없었기에 무언가를 틀린 적도 거의 없다. 너는 밖에 별로 안 나갔기에 말도 적게 했다. 가끔 외출할 때면, 너는 듣거나 바라보는 쪽이었다. 너는 이제 더는 말하지 않기에 계속해서 옳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너를 다시 살게 하고 너에게 질문을 던지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너는 여전히 말하고 있다. 우리는 네 대답을 듣고, 너의 현명함에 감탄한다. 그러나 만약 네 말이 사실과 다르다고 드러난다면, 우리는 너를 잘못 이해했다고 자신을 책망한다. 너는 진실이고, 우리는 거짓이다.

16p.
..너의 삶은 하나의 가설이다. 늙어서 죽는 사람들은 과거의 집합체다. 그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한 것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너를 생각할 때는, 네가 될 수 있었던 것들이 따라온다. 너는 가능성의 집합체였고 그렇게 남을 것이다.

32p.
..너는 넘치는 것을 거부했다. 너는 조금 했지만 잘했고, 못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너는 현대적인 갈증을 몰랐다. 너는 모든 것을 당장 가지려는 욕구가 없었다. 너는 먹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말하고, 외출하는 것을 자제하기를 좋아했다. 너는 커튼을 친 네 방에서 며칠 동안이나 빛 없이 흡족히 살 수 있었다. 너는 신선한 공기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침묵은 너를 기쁘게했다. 이 메마름은 너의 오래된 의식이었다.

39p.
...만약 네가 네 나라에서 이렇게 행동했다면, 사람들은 너를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미친 사람으로 대했을 터였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외국인의 어처구니없는 행동 방식이 용납된다. 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너는 소외되지 않으면서 미친 사람이 되는, 지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바보가 되는, 죄책감 없이 사기꾼이 되는 기쁨을 맛보고는 했다.
..너에게 외국이란 카페에서 단둘이 만나는 친구처럼 네가 동등하게 대하고 싶은 존재였다. 네가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면, 그 나라는 작아졌다. 네 동반자는 그 나라만큼이나 여행의 주제가 되었다. 단체 여행에서 나라는 지나치게 소심한 손님처럼 존재감이 잊히는 조용한 접대자가 되고 말았고, 중심 주제는 배경 막이 되고 말았다. 웃기고 수다스러운 단체와 함께한 영국 여행의 끝에서 너는 성인을 위한 여름 캠프는 이제 끝이라고 다짐했다....

40~41p.
..너는 다른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것처럼 사전을 읽곤 했다. 너는 각 표제어가 다른 항목에서 다시 나타나는 등장인물이라고 말했다. 복합적인 줄거리는 무작위로 읽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바뀐다. 사전은 소설보다 세상과 닮았는데, 세상은 행위의 일관적인 연속이 아니라 지각된 것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관찰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물들이 서로 모이고, 지리적인 근접성이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사건들이 연속되면 우리는 그것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역 니은 디귿은 니은 디귿 기역보다 더도 덜도 연대적이지 않다. 네 삶을 순서에 맞게 묘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나는 너를 무작위로 기억한다. 주머니에서 구슬을 골라 꺼낼 때처럼, 내 머리는 예측 불가능한 세부 사항을 통해 너를 되살려 낸다.

45p.
..너의 고통은 해가 지면 진정되었다. 행복의 가능성은 겨울에는 다섯 시에, 여름에는 그보다 늦게 시작했다.

71p.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화창한 날씨, 더위와 햇볕은 너에게는 외출하라는 초대, 고독에 대한 방해, 기쁨에 대한 의무와도 같았다. 너는 행복이 날씨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거부했다. 너는 그 행복의 유일한 책임자이고 싶었다. 누가 좋은 날씨를 이유로 너를 만나자고 청하면 너는 그 초대를 거절했다. 너는 흐린 날씨, 겨울, 비 혹은 추위를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때 자연은 너의 기분에 일치되는 것처럼 보였다. 나쁜 날씨는 너에게서 외출하지 않는 죄책감을 덜어줬다. 너는 다른 사람들 눈에 너의 유폐가 이상하게 보일 것을 걱정하지 않고 집에 머물 수 있었다. 아무도 네가 방에 틀어박히기를 좋아한다는 것에 관해 물으러 오지 않았다.

79p.
..각각의 사건들이 시작, 구현 그리고 완성으로 구성된다고 했을 때, 너는 시작 단계에서 욕망이 쾌락보다 강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선호했다. 시작 단계는 사건이 완성 단계에서 잃고 마는 잠재력을 보존하고 있다. 욕망은 성취되지 않는 한 연장된다. 쾌락은 욕망의 죽음을, 곧이어 쾌락 자체의 죽음을 뜻한다. 시작을 좋아하는 네가 자신을 지워 버린 것은 뜻밖의 일이다. 자살은 끝이니까 말이다. 아니면 너는 그것을 시작이라고 판단했을까?

93p.
..해가 저물고 밤이 깊어졌고, 너는 이 사람 저 사람과 함께 대화했다. 오랜 친구와 둘이서 이야기할 때, 너는 네가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명에게 얘기할 때면, 그 둘을 동시에 설득할 수 있는 말의 형식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그것을 찾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들의 다른 점을 강조하는 물리적 거리는 각자와 동시에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상기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네 이야기를 들으려고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면, 네 말은 특정한 사람을 향하려고 하지 않았고, 무슨 말이 전달되었는지에 대한 너의 걱정 없이 그들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너는 더는 한 사람을 보지 않았고, 개인들이 녹아든 그룹만을 볼 뿐이었다. 네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말하기 위해서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의 가장 가까이에 있어야 했고, 연설할 때는 그들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 두 사이에서는 너는 오해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107p.
..태어나는 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고
..사는 것은 나를 차지하는 일이고
..죽는 것은 나를 끝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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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p.
...내 생명이 존재하지 않으면 생명 활동이 멈출 우려가 있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경우 ‘내일, 죽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생각한다기보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상태가 된다는 게 적절한 표현이겠네요. 그리고 ‘내일, 죽고 싶지 않아.‘라는 상태에 해당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런 상태에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인간은 왜 살아야 하나.‘, ‘살아야 할 의미가 도대체 어디 있느냐.‘와 같은 의문을 드러내면, 작년 여름은 더웠다고 말하듯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지." 따위의 말을 할 뿐입니다.

9p.
..저는 제가 너무 끔찍합니다. 그리고 이런 저에게 절대 관심을 품지 않을 타자를 거부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탓에 오히려 나를 끊임없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너무나 허무합니다.

58p.
..야에코는 배고픈 아이가 어렵게 얻은 도넛에 손을 뻗듯 무서운 속도로, 하나씩 그 데이터를 저장했다. 무섭지 않아. 이 사람의 시선은 무섭지 않아. 그날 이후 시선이 무섭지 않은 남자를 처음 만난 것이다. 그 기쁨이 너무나 컸다.

81p.
..야성적인 감으로 살아가는 녀석일수록 자연계에 숨은 부자연스러운 순간에 민감하다.

114p.
..게다가 부모나 뉴스 프로그램의 평론가들이 저토록 관용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미 자기들은 본질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저 공격당하지 않게 받아넘기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단계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18p.
..나쓰키는 자기 방 침대에서 단골 채널들을 순회하고 있을 때면 홀로 숲속 깊은 미지의 호수로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감각이 좋았다. 사오리의 커다란 목소리와 뉴스 프로그램의 특집 등 그저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허락 없이 다가오는 존재들보다, 다른 사람 몰래 세상을 물리치고 돌진하지 않으면 도착할 수 없는 존재에 닿고 싶다.

170~171p.
..싫어도,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게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마치 저녁 노을빛을 받듯 제멋대로 그 일부에 자신이 포함되어 버리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수학여행, 반드시 찾아오는 밤. 왠지 모르지만 완성되고 마는, 특별한 비밀을 서로 털어 놓기 위해 정비된 공간. 너 말고는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며 마치 특별한 선물을 건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순간. 멋대로 생겨나는 인간관계. 자신을 휘감아 오는 온갖 인연들.

172p.
..딱 한 가지만을 숨기고 있을 뿐인데 그게 모든 인생과 이어져 있어서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게 된다. 이야기는 나눠도 대화할 수는 없다.

215p.
..나쓰키는 생각한다. 이미 말로 표현된, 누군가에게 명명된 고통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 대단한 사고방식이 부럽다고. 당신이 품은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밝히고 공유하고 동정받을 수 있는 고통이라는 사실이 진심으로 부럽다고.

218p.
..정당한 불만은 생각을 낳고 말을 자아낸다. 출처가 정당하므로 그 논리는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논리정연하다. 그래서 더 짜증이 증폭된다.

218~219p.
..성적 대상은, 그저 그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뿌리다. 사고의 뿌리, 철학의 뿌리, 인간관계의 뿌리,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의 뿌리.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생애의 원천이다. 다수파의 인간은 이 점을 깨닫지 못한다. 깨닫지 못하고 갖고 있는 행복도 알지 못한다.
..타자가 등장하지 않는 인생은, 내가 살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시간은, 정말 공허하다. 그 암흑의 공허함을 누군가 알아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271~272p.
..이 지구에 사는 사람은 모두, 종교가 다르다. 요시미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슬람교나 기독교처럼 이미 이름이 붙어 있는 데만 한정되지 않는다. 무교라고 하는 일본인도 저마다 종교를 가지고 있다. 종교는 돼지고기 멘치가스를 먹는 모습을 보고 맛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될 신성한 동물이라고 생각하는지와 마찬가지로, 예를 들자면 어떤 노래를 듣고 공감하는지 반발하는지, 아이의 우는 소리를 듣고 시끄럽다고 짜증을 내는지 기운도 좋다며 흐뭇해하는지, 그런 일상의 사소한 장면에서 생긴다.
..사람은 그렇게 체내에 구축된 종교가 겹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누군가의 생존을 기원한다. 심신의 건강을 바란다. 그것은 살아 있길 바라는 마음을 뛰어넘는 곳에 있다. 그 사람이 자살을 선택하려는 세상은 곤란하다고 멋대로 생각한다.
..체내의 종교가 같은 사람의 죽음은 본인의 죽음으로만 수습되지 않는다. 그 죽음은 같은 종교를 지닌 자를 죽인 것이기도 하다. 뒤집어 생각하면 같은 종교의 사람이 심신 모두 건강하게 살고 있다면 놓아 버리고 싶은 내일을 끌어당기고 싶을 때가 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세상이라면 자신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믿는 순간이 틀림없이 있다.
..그러므로 자살은 금지. 그 밤에 재회해 둘은 그렇게 약속했다.

277p.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특이한 성적 취향을 들키지 않고 끝났다는 안도감 외에 느낀 감정이 있었다. 이제 서른이 다 된 성인이면서도 이 우주에 혼자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가까운 초조한 감정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해도,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을 인식해 준 유일한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이 세상과 자신을 연결해 준 탯줄이 드디어 잘렸다고 해야 할까, 동서남북이나 상하좌우를 알려 주는 좌표 자체가 사라진 듯한 감각이었다....

290p.
...그런 자신조차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한 성적 취향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데 스스로 놀랄 만큼 안심했다. 역겨워 견딜 수 없었던 나라는 존재가 오히려 생리적 혐오감을 느껴 절로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성적 취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깊고 풍부한 호흡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319~320p.
..이 세상에는 틀림없이, 두 가지 진로가 있다.
..하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성적 감정을 최대한 다 발견해 내려는 방향. 규제하는 인간 쪽은 최대한 시야를 넓혀 ‘성적인 것‘에 해당하는 사상을 끝까지 발굴해 하나씩 규제를 걸어 누군가가 나쁜 감정을 느낄 가능성을 최대한 제거하려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시야가 궁극적으로 매우 좁음을 저마다 인정하고 자신이 상상하지 못하는 것투성이의, 애초부터 아무도 판단할 수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탐구하는 방향. 언제나 누구든 누군가의 ‘성적인 것‘ 속에서 살아간다는 전제 아래 나아가는 방향.

328p.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욕구는 세상의 긍정을 받는다. 온 세상이 성욕을 품은 대상과의 연애를 장려하고 성욕을 품은 대상과의 결혼, 그리고 생식은 우주의 축복을 받는다. 그런 풍경 속에서 살았다면 나는 어떤 인격으로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344p.
..정말 연대하고 싶은 상대는 저런 장소에서 당당하게 손을 들고 서로 존재를 확인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몰래 만날 수밖에 없는 누군가이다.

365p.
..물 같다. 요시미치는 영향, 조장,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방패로 기능하는 상황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다. 제대로 된 측의 주민은 물과 비슷하다. 온도도 형상도 죄다 바깥으로부터의 자극에 그대로 따라 반응하는 존재. 그쪽에 태어난 사람들은 어떤 자극 속에서도 자신을 유지하는 능력을 단련하기보다 제대로 된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 요소를 죄다 멀리하자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 어엿하다는 정의에는 윤곽조차 없는데.

445p. (해설)
..정욕은 파괴적이고 폭력적이다. 그것은 타자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조차 잃고 만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정욕의 문제는 출구가 없다는 점이다. 정욕을 비판하는 것 역시 정욕이듯, 다양성에는 다양성을 부정하는 다양성이 있을 곳이 없다. 관용은 불관용에 대한 불관용일 수밖에 없다. 저주 같다. 우리는 정욕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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