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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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아직 풀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책 읽기의 정독, 오독의 문제에 대한 답변도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예 글쓰기 훈련방법으로 들어가다니! 이런 방식의 수순이 책읽기에 얼마큼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글쓰기를 알면(코끼리 콧등에 박힌 작은 점 만큼일지라도)책읽기가 한결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글쓰기 책을 읽는다. 하도 글쓰기 강좌가 많고, 글쓰기 달인으로 가는 지름길까지 안내해 주는 도서들이 많아서 독자는 글쓰기 관련 책을 선택하는 일부터 고개를 휘두를 지경이다. 브라질 아마존 강 밀림처럼 다양무변하게 포개진 서점의 그 많은 책 중에서 글쓰기 안내자를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만나는 일이란 밀림에서 뱀과 맞닥뜨리지 않는 일보다 더 어렵다. 인터넷의 무한정 보급과 핵폭발보다 더 폭발력이 무서운 개인 블로거들의 대량양산으로 글쓰기는 이제 지상 최대의 세계 정복 ‘전략’의 한 종목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오죽하면 ‘글쓰기 전략’이라고 제목을 턱하니 붙인 책이 다 나오는가. 전략이 나왔으니 밀림 어딘가에 글 쓰는 일을 정복할 ‘전술’도 숨어있을 것이다. 글 쓰는 일이 얼마나 골머리가 부셔지는 일이라서 전략이니 전술이니 하는 전투용어가 동원된단 말인가. 그럼에도 하루에 수 억 명의 사람들이 그 지겨운 글을 쓴다. 글쓰기는 더 이상 전문 작가들의 고유명사가 아니다. 글을 쓰는 행위에는 종이와 펜, 또는 컴퓨터와 프린터, 고전적인 것을 좋아한다면 줄이 바뀔 때 딩동 소리를 내주는 타자기로 글을 써도 된다. 폴 오스터는 타자기로 빵도 구워 먹었는걸! 휴머니즘적인 글, 리얼리티적인 것, 이데올로기와 경제 논리, 아동의 정서, 판타지와 권선징악. 이도저도 다 짜여진 틀이 싫으면 낙서 같은 아포리즘의 섬광으로 한 권의 책을 쓴다. 물론,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글쓰기는 바로 당신의 인생과 그 인생에서 탄생하는 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에서 말하는 글쓰기의 ‘특별한 비법’이란 색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이 가는 방향대로 자유롭게 흐르도록 놓아두면서 멈추지 말고 계속 쓰라는 말씀으로 첫 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일관한다. 저자의 에필로그가 끝나는 268쪽까지 수만 글자의 단어와 수천의 문장이 말하는 것은 단 한마디의 반복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믿으며 계속 써라!” 글쓰기의 전략전술치고는 너무 실망스러운가? 좀 더 그럴듯하고 폼을 재는 힌트를 기대한 독자는 실망할 것이다. 실망한 독자에게 저자는 말한다. “그래도 멈추지 말고 써라!” 우리가 나무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글쓰기를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유도방식이다. 나무를 알려면 인터넷 검색자료를 찾거나 나무와 관련된 다른 책을 열심히 읽으며 될지도 모른다. 풍부한 나무 상식이 생긴 자신을 흐뭇하고 대견하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곧장 등산화를 신고 숲으로 들어가 나무를 만나고 그것을 만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무를 알려면 나무가 있는 숲으로 가야한다. 글을 잘 쓰려면? 당연히 글을 계속 써야한다. 단순한 결론, 명쾌한 답변이란 언제나 질문 속에 숨어있다. 그것을 멀리 폭풍우 치는 낯선 들판까지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서야 깨닫는 것이 인간이다.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19쪽)
“무언가를 은유하기 위해 당신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일을 하지 말라”-(72쪽)
“마음속에 무수히 난 많은 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들판으로 달려가지는 말라”-(103쪽)
“찻잔 하나에도 아주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130쪽)
“글쓰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에 불을 지피는 행위다. 종이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147쪽)
“심장 전체로 글을 써라”-(215쪽)
“글쓰기는 숨을 쉬는 것과 같다.”-(218쪽)
글쓰기 전략전술치고는 너무나 단순한 대답을 해 준 저자는 그 훈련방법 제시 또한 다분히 명상적인 답변을 들려준다. 1)모호하고 안개 같은 표현 대신에 사물의 대상이 지닌 이름을 불러주고, 2)생각을 확장시키면서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시각화로 서술하란다. 3) 문장구조에서 벗어나 상상력의 힘을 빌리자. 멈추지 말고 계속 쓰면 글의 품질에 의심을 갖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러면 붓을 놓자. 이건 내 방식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뇌가 수소폭탄처럼 폭발할지도 모르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논다. ‘논다’는 의미에 대하여 저자의 표현을 잠시 빌리면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재료를 정성껏 준비해서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글쓰기 방식에 비유하는 대목이 책에 나온다.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라 슬로 푸드다. 요리는 천천히 익어가야 진국이 우러난다? 그렇다면 사골 국처럼 뼛속까지 우려먹는 글이란 어떤 글인가? 앞에서 답이 나왔다.
어떤 글이든, 자신의 글은 한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글이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웃기거나 괴롭거나 외로운 모습과 분노하고 행복한 삶의 얼굴이 글자와 함께 한다. 최소한 나와 당신이 아마추어라는 딱지를 영원히 떼지 못한다하더라도 글을 쓰면서 자신의 욕구를 배출하는 자위수단으로 삼고 있는 한 그렇다. 책을 읽으면서 기대했던 신비의 ‘명약’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은 시들하다. 글쓰기의 ‘불로초’를 구한다면 진시황의 무덤에 가서 묻자. 단, 진시황은 책을 죽인 장본인임을 기억해야 한다.
명문장이 책 한권에 가득하다. 저자는 선(禪)과 글쓰기를 연결했다.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배경으로 깔고 삶 전체를 관통하는 큰 그림위에 글쓰기라는 하나의 모티브를 장식한다. 장식으로 얹어진 글쓰기 훈련방법이 시니컬하지 않으면서 현학적이지 않아서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읽는 일도 어려운데 글을 쓰는 방법을 듣는 일에까지 신경을 닳고 싶지는 않다. 세상의 모든 것이 글의 재료다. 그러니 옷 장속에 개켜둔 낡은 털 잠바부터 책상위에 어질러 놓은 연필 토막과 밤 아홉시에 피아노를 치는 위 층 여자를 흉보는 이야기까지 모두 글로 쓴다. 평범한 것으로 부터 출발하는 삶. 긍정하는 삶. 따지고 보면 인간은 원래 홀씨 하나로 출발했다. 인간은 우주 전체의 한 부분이다. 다시 저자의 종교적인 입담을 빌려서 말하자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니까”-(177쪽) 글쓰기를 꿈만 꾸지 말고 천국으로 달려가자. 인생은 한 장의 넓은 도화지이고 내가 쓰는 글은 그 위에 그려지는 그림이다. 천국의 그림! 좀 못생긴 천국이면 어떠냐! ‘종이에서 걸어 나와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외로운 나의 글쓰기다.
부기) 번역이 잘 되어서 글자가 눈에 착착 감겼다. 저자가 워낙 윤기 자르르한 명문장을 구사한 탓이겠지만 옮긴이의 실수가 눈에 띄지 않는 몇 안 되는 반가운 책이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이 책을 검색해보니 옮긴이 이름이 작은 화면에는 ‘권진욱’이라고 나온다. 물론 내가 지닌 2005년도 판에도 권진욱이라고 써 있다. 하지만 책 제목을 입력한 메인 화면에는 ‘권경희’라는 옮긴이의 다른 이름이 나온다. 어절씨구? 약력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동일인물로 보인다. 그런데 번역이 훌륭했다고 흐뭇해하는 독자에게 이 두 개의 이름은 우야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