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텔레비전 맞춤법 프로그램 유감...

요즘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데, 어젠 우연히 맞춤법 프로그램을 보았다.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맞춤법을 맞추라고 하면서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들을 출제하던데...

과연, 이들은 맞춤법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희한한 맞춤법(꾀죄죄하다 같은)을 왜 묻는 것일까... 일상 생활에서 많이 쓰면서도 혼동되는 것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밤을 새워, 희한하다. 헷갈린다. 금세, 오랜만에, 이따 보자, 백분율, 비율, 출석률, 초점... 이렇게 많이 쓰는 단어들 말이다.

세계 여러 나라(약 200개국) 중 맞춤법이란 특이한 <법>이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럼 그 나라들은 어떻게 문자 언어를 통일 시키고 있을까? 그들에게는 계속 다듬어져 나오는 <사전>이 전부다. 영어 맞춤법을 들어본 적 있는가? 그건 맞춤법이 아니라, 문법과 사전에 나오는 말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맞춤법이란 음성 언어의 <표준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어법에 맞도록 표기하게 하고 있다.

영어에도 color 도 색깔이고, colour도 색깔이다. 미국에서 쓰기도 하고 영국에서 쓰기도 한다지만 엄격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는 거다. 그런 걸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그야말로 맞춤법은 <그때 그때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시대와 공간에 따라... 절대적으로 옳다고 우길 수는 없는 그런 것. 세종대왕도 전혀 몰랐던 것. 실수 투성이인 인간이 만든 것 말이다.

표준어를 적는다는 것도 문제다. 표준어와 사투리의 사이에는 <교양있는 사람>이란 계층의 기준과, <두루 쓰는>이란 사회성의 기준과, <현대>라는 시대적 기준과, <서울말>이라는 지역의 기준이 엄밀히 적용되는 것 같다. 그러나 교양있는, 두루 쓰는, 현대, 서울의 기준이 엄밀한지 아닌지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서울에 근무하는 삼성물산 성대리는 교양이 있다고 볼 수 있나? 서울은 어디까지인가. 종로만 서울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당동까지 서울이다. 그럼, 과천은 마냥 경기도인가? 경기도 넘버 붙인 자동차들이 아침이면 까마득하게 남태령을 넘어오는데...

한글 맞춤법은 <받침>이 있는 특이한 문자구조인 우리 언어에 독특하게 필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이 <가진 자>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공의 적 2에서 멋지게 쓰인 말이 있지 않은가. <법은 최소한이어야 한다>고...

한글 맞춤법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미를 정확히 드러낼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전자 세상에서 <안냐세염. 오랜마니네염.. 그럼... 20000 ㅃㅃ2...~~~휘리릭~~~>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다는 거다. 그리고 구두 수선공 아저씨가 <열락처 010-$$$-****)라고 적었다고 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글 맞춤법에 맞게 적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교양>과 <지식>의 폭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교양있게 보이려는 글에서는 최대한 맞게 적어야 할 것이다. 특히 지적 재산이 될 저서에서는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좋다. 알라딘에 오르는 글들에서도 한글 맞춤법에 틀리는 경우들이 제법 있다. 내 눈에는 그런 게 보인다. 국어 선생이 갖는 직업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중에 특히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의 글에서 맞춤법에 틀린 글자가 있으면 괜히 <알려 드리고> 싶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아이들 앞에서 교양과 지식을 가르치는 분들이니까...

정말 많은 분들이 틀리는 몇 가지만 생각나는대로 적어 보겠다.

1. '며칠, 몇 일'을 어떻게 구분할까? 정답은 무조건 <며칠>만 맞다. <몇 일>도 맞을 것 같지만, <몇 년 몇 월 며칠>이 맞다. 정 못믿으시겠다면 초등학교 2학년 수학 교과서의 달력 가르치는 부분을 참고하시길...

2. '할께요. 할께'는 틀린 표현이다. '할게요, 할게'가 맞다. 도와 줄께요, 도와 줄께. 기다릴께... 모두 틀렸다. 도와 줄게요, 도와 줄게, 기다릴게... 가 맞다.

3. 사전에 찾아보면, <삼가하다>는 말은 없다. <삼가다>만 맞다. 삼가해 주십시오는 틀렸다. 삼가 주십시오가 맞다.

4. 다르다와 틀리다는 뜻이 다르다.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쌍둥인데도 둘은 참 틀리게 생겼죠?> 이런 말을 우린 잘 쓴다. 다른 것은 인정하는 범위이고, 틀린 것은 인정할 수 없는 범위다. 서울말과 경상도 말은 참 다르다. 그러나 둘 다 아름다운 말이다. 서울말과 경상도 말이 틀리다면, 경상도 말이나 서울말 중 하나는 죽어야 되지 않겠나?

5. <위험이 있습니다.>와 <위험이 있슴>, <위험이 있읍니다.>와 <위험이 있음>은 어떤가. '-습니다'의 소리가 나는 종결 어미는 무조건 '-습니다'로 통일. '있습니다. 먹습니다. 죽습니다...' <있읍니다>는 벌써 십육년전에 죽어버린 말이다. 하긴 이십 년 전 책에 보면 그렇게 적혀 <있읍니다.> <있습니다>로 통일되다보니, <있슴>도 이런 꼴로 통일되었다는 '유추 해석'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 경우는 명사형 어미<-음>이 붙은 것이므로 <-슴>이라고 적으면 안 된다.

그 외에도 밤을 새워도 강의할 수 있지만...

그럼, 한글 맞춤법이 헷갈리면 어떻게 할까? 내 제자들은 휴대폰으로 바로 문자를 날린다. 가증스런 것들. 사전 찾아보면 될 것을... 사전을 열심히 찾아 보시라... 한글 맞춤법을 공부할 수는 없을까? 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참아 주시라.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상)의 부록으로 한글 맞춤법이 수록되어 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열어 보시라. 곧 잠이 쏟아질 테고, 눈이 초점을 잃을테니깐... 사전은 반드시 89년 이후에 편찬된 것이어야 한다. 컴퓨터를 사용하시려면, <국립국어연구소>에서 물어보시든지, <국립국어연구소> 국어사전에서 검색하시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맞춤법에 틀려도 사실, 공식적이지 않은 문서 또는 메일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맞춤법에 맞지 않더라도 뻔뻔스럽게 자꾸 적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헷갈릴 때는 빨리 사전을 찾아볼 수 있는 위치에 국어사전 한 권 쯤 준비하면 좋겠다. 국어 교사인 나로서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에 힘을 써야 겠지만, 일반인들은 <작은 관심과 국어 사전>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게 되는 분들께 꼭 권한다.

<작은 관심과 국어 사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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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중 맞는 것은 무엇입니까?
1. 문을 잠궜다.
2. 문을 잠갔다.

정답 : 2번

‘문을 잠궜다.’라는 표현을 흔히 쓰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문을 잠갔다.’로 써야 맞습니다. 비슷한 경우로 ‘김치를 담궈 먹다.’라는 말도 ‘김치를 담가 먹다.’로 써야 옳습니다.

어간이 '으'로 끝나는 '담그-, 잠그-, 쓰-'와 같은 말들은 '-아/어, -았/었-'의 어미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해 '담가, 담갔-, 잠가, 잠갔-, 써, 썼-'으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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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16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볼땐 아는데 좀 지나면 왜 자꾸 혼동되는지 이궁

진주 2006-04-16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러게요. 틀리게 발음을 하다보니 적는 것도 어느 순간에 틀려 버리더라구요.(요것도 틀렸음 "틀려 버리더라고요" ㅋㅋ)
어간을 생각하자 어간!(이러면 안 까먹을까?)
 

 

1) 원지음을 최대한 고려해서 표기합니다.

바베큐(x) - 바비큐(o)

엑센트 - 악센트

불독(bulldog) - 불도그

타이타닉 - 타이태닉

발렌타인데이 - 밸런타인데이

매니아 - 마니아

다이아나 - 다이애나

 

2) '-쟈,져,죠,쥬,챠,쳐,쵸,츄'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쥬스(x) -주스(o)

텔레비젼 - 텔레비전

스케쥴 - 스케줄

쟝르 - 장르

쥬니어 - 주니어

챠트 - 차트

시츄에이션 - 시추에이션

 

3) f.p는 'ㅍ'으로 표기합니다.

환타지(x) - 판타지(o)

화이팅 - 파이팅

훼밀리 - 패밀리

 

4)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까스(x) - 가스(o)

꼬냑 - 코냑

빠리 - 파리

모짜르트 - 모차르트

쮜리히 - 취리히

떼제베 - 테제베

까페 - 카페

째즈 - 재즈

써비스 - 서비스

꽁트 - 콩트

썬탠 - 선탠

르뽀 - 르포

 

예외) 빵, 껌, 삐라, 빨치산, 샤쓰, 짬뽕, 히로뽕 등 굳어진 관용 표기를 인정한다.

빨치산 - 파르티잔, 샤쓰 - 셔츠, 히로뽕 - 필로폰 등은 양쪽 모두 인정합니다.

 

5) 영어에서 들어온 외래어는 영국식 발음을 기준으로 합니다.

수퍼(x) - 슈퍼(o)   - 미국식 발음(수퍼), 영국식 발음(슈퍼)

수퍼마켓 - 슈퍼마켓

캄팩트 디스크 - 콤팩트 디스크

 

6)짧은 모음다음의 어말 무성 파열음 [p],[t],[k]는 받침으로 적는다.

도너츠(x) - 도넛(o)

로케트 - 로켓

카페트 - 카펫

 

예외) 배트, 체크, 히트, 노크, 메리트, 네트, 세트, 쇼크, 커피 포트, 티베트

 

7) 유음,비음,이중모음,긴모음 뒤의 [p],[t],[k]는 '으'를 붙여 적는다.

케익(x) - 케이크(o)

테입 - 테이프

팀웍 - 팀워크

플룻 - 플루트

스카웃 - 스카우트

 

8) [∫] 는 영어의 경우 자음 앞에서는 '슈',  어말에서는 '시'로 적는다. 그러나 다른 언어에서 온 말은 언제나 '슈'로 적는다.

쉬림프(shrimp)(x) - 슈림프(o)

대쉬 - 대시

플래쉬 - 플래시

브러쉬 - 브러시

러쉬아워 - 러시아워

쇼맨쉽 - 쇼맨십

리더쉽 - 리더십

아인시타인 - 아인슈타인(독일어)

 

9) 장모음의 장음은 따로 표기하지 않습니다.

그리이스(x) - 그리스(o)

뉴우스 - 뉴스

 

참조) 알코올, 앙코르는 맞는 표기입니다.

 

10) [∧]는 어로, 는 오로 적는다.

콘트롤 - 컨트롤

컨서트 - 콘서트

컨셉트 - 콘셉트

컨텐츠 - 콘텐츠

 

11) 고유명사에서 철자가's'로 끝나고 발음이 [z] 인경우는 '스'로 적는다.

템즈(Thames강)(x) - 템스(o)

타임즈(Times) - 타임스

 

12) 현지음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현지음이 아닌 제3국의 발음(주로 영어)로 통용되고 있는 경우는 그 관용을 따른다.

Caesar 케사르(x) - 현지음 : 카이사르(o), 영어 : 시저(o)

 

13) 조심해야할 나라이름

말레이지아(x) - 말레이시아(o)

싱가폴 - 싱가포르

이디오피아 - 에티오피아

자이레 - 자이르

 

14) 주의해야할 된소리, 거센소리

카톨릭(x) - 가톨릭(o)

쿠테타 - 쿠데타

쿵푸 - 쿵후

짜장면 - 자장면

빵빠레 - 팡파르

가디건 - 카디건

플라밍고 - 플라멩코

 

15) 부정의 접두어 (non-)

넌센스(x) - 난센스(o)

넌타이틀 - 논타이틀

넌스톱 - 논스톱

넌픽션 - 논픽션

 

16) 군더더기 표기에 주의

뎃생(x) - 데생(o)

앙케이트 - 앙케트

런닝셔츠 - 러닝셔츠

제스추어 - 제스처

럭키 - 러키

젯트엔진 - 제트엔진

렛슨 - 레슨

카셋트 - 카세트

맛사지 - 마사지

컨닝 - 커닝

뱃지 - 배지

팩키지 - 패키지

 

17) 부당한 생략이나 줄임에 주의

렌지(range)(x) - 레인지(o)

레크레이션 - 레크리에이션

스텐레스 - 스테인리스

 

18) 일본식 잘못된 외래어 표기

링게르 - 링거

바란스 - 밸런스

맘모스 - 매머드

마후라 - 머플러

타이루 - 타일

다이나마이트 - 다이너마이트

다이알 - 다이얼

데이타 - 데이터

라이타 - 라이터

레이다 - 레이더

레파토리 - 레퍼토리

로숀 - 로션

로얄티 - 로열티

로타리 - 로터리

센티멘탈 - 센티멘털

스탠다드 - 스탠더드

오리지날 - 오리지널

인디안 - 인디언

콘테이너 - 컨테이너

크리스찬 - 크리스천

크리스탈 - 크리스털

타부(taboo) - 터부

토탈 - 토털

페스티발 - 페스티벌

프로포즈 - 프러포즈

 

19) '이'~'잇'이 옳은 경우

보넷(bonnet)(x) - 보닛(o)

자켓 - 재킷

비스켓 - 비스킷

캐비넷 - 캐비닛

타겟 - 타깃

 

20) '-애', '-에' 가 옳은 경우

그라프(x) - 그래프(o)

슬라브 - 슬래브

나레이션 - 내레이션

악세사리 - 액세서리

노스탈지아 - 노스탤지어

에머랄드 - 에메랄드

다이나믹 - 다이내믹

클라이막스 - 클라이맥스

판넬 - 패널

샤시(sash) - 새시

파라독스 - 패러독스

 

21) '우', '위' 계열이 옳은 경우

데뷰 - 데뷔

몽타지 - 몽타주

랑데뷰 - 랑데부

쥬라기 - 쥐라기

 

22) 양성모음의 형태가 옳은 경우

넉다운(x) - 녹다운(o)

어코디언 - 아코디언 (악기)

다이어몬드 - 다이아몬드

컬럼(column) - 칼럼

컨테스트 - 콘테스트

컴플렉스 - 콤플렉스

레미컨 - 레미콘

헐리우드 - 할리우드

 

23) 음성 모음의 형태가 옳은 경우

드리볼(x) - 드리블(o)

아답타 - 어댑터

미스테리 - 미스터리

캬라멜 - 캐러멜

캐리어 - 커리어

스폰지 - 스펀지

콘소시움 - 컨소시엄

심포지움 - 심포지엄

타올 - 타월

 

24) 철자에 따라 유의해야 할 경우

globe 글로브 - glove 글러브

color 컬러(색깔) - collar 칼라(옷깃)

메타놀(x) - 메탄올(o)

오랜지 - 오렌지

 

25) 기타

기브스(x) - 깁스(o)

블 - 블록

나르시즘 - 나르시시즘

상들리에 - 샹들리에

샌달 - 샌들

데스크 탑 - 데스크 톱

쇼파 - 소파

라이센스 - 라이선스

샵(shop) - 숍

라이온즈 - 라이온스

스넥 - 스낵

레프리(referee) - 레퍼리

렌트카 - 렌터카

스티로폴 - 스티로폼

류마티스 - 류머티즘

신나 - 시너

맨숀 - 맨션

아울렛 - 아웃렛

버비리 코트 - 바바리 코트

바디랭기지 - 보디랭귀지

악세레이타 - 액셀러레이터

부르조아 - 부르주아

앰블란스 - 앰뷸런스

옵저버 - 옵서버

컨츄리 - 컨트리

야쿠르트 - 요구르트

코스모폴리턴 - 코즈모폴리턴

캬바레 - 카바레

크레믈린 - 크렘린

카뷰레이터 - 카뷰레터

타이거즈 - 타이거스

카운셀링 - 카운슬링

빵꾸 - 펑크

플랭카드 - 플래카드

록앤롤 - 록 앤드 롤(=로큰롤)

히트 앤 런 - 히트 앤드 런

리듬 앤 블루스 - 리듬 앤드 블루스

고호(화가)(x) - 고흐(o)

엘리어트(시인) - 엘리엇

세느 강 - 센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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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6-04-13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제게 매우 유익한 자료군요. 꾹 누르고 퍼갑니다^^

하늘바람 2006-04-1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전출처 : 이리스 > 번역투 표현이 우리말 망친다

[주간조선 2006-04-11 09:26]

영어에 오염돼 가는 한국어
교과서에도 기형적 문장 많아... 단어뿐만 아니라 문법까지 왜곡

우리말이 위기를 맞고 있다. 글이 없는 상태에서도 근 2000년을 버텨온 우리말이, 그토록 우수하다는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오늘 이 시점에서 오히려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인가? 몇 가지만 사례를 들어보자.

장면 1

“오전에 메이커에 인스펙션하러 가고, 오후에 팀미팅이 잡혀 있어서 스케줄이 풀이야.” 어떤 종합상사 직원이 구내식당에서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는 내용의 일부이다.

우리말은 우리말인데, 어딘지 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중요한 부분은 거의 영어 단어로 도배되어 있고, 기껏 토씨(조사)나 씨끝(어미) 정도만 우리말로 되어 있지 않은가? 이쯤되면 우리 글자가 없던 시절에 남의 나라 한자를 빌려서 우리말을 표기하던 방식이 생각나니 가히 현대판 이두(吏讀)라 할 만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런 기형적인 한국어는 특히 대학 강의실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정보가 과연 우리 것이 될 수 있을까?

장면 2

“그래도 내가 왕년에는 한 당구 했다.” 십수 년 전부터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이른바 관형사 ‘한’을 붙인 용법인데, 근래에 들어와 번성하게 된 확산의 저변을 한번 생각해 보자.

물론 전통적인 우리말의 용법에서도 고승이 도를 깨우친 경우를 가리켜 ‘한 소식 했다’고 한다거나, 이미 전성기가 지난 운동선수나 연예인을 두고 ‘한물갔다’고 하는 용례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널리 통용되어 세력을 얻게 된 것은 최근의 조류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필자는 중학교부터 이루어진 영어 교육에 혐의를 두고 싶다. 우리말에 없는 부정관사의 용법에 일찌감치 혼이 난 학생들은 ‘a’만 나오면 진저리를 치면서도 이 놈을 ‘한’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공식을 머릿속에 갈무리해 두었던 것이다. 욕하면서 배우는 격이라고 할까? 예전에는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 잘못된 어법을 바로 잡아줄 교사가 있었다. 바로 우리의 부모님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부모도 중등교육을 통해 영어를 체계적으로 잘(?) 배우셨으니, 자동 교정 장치도 이제는 기대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그런 배경에서 어떤 발상의 재주꾼이 익살스럽게 ‘한 당구’를 외치자 모든 젊은이가 그 낯익은 ‘한’의 용법에 나도 알고 있다는 식으로 환호를 보내기 시작하고, 그리하여 이 ‘한’이 젊은이의 언어 생활 영역에 당당히 입성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오늘 점심으로 한 라면 어떠신지요?”

장면 3

“여의도 가는 길에 마포까지만 좀 실어주면 좋겠어.” 차에 태워 달라고 부탁하면서 미안한 마음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비하(?)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태워주고’ ‘짐짝’은 ‘실어주는’ 것인데, 그래도 스스로를 짐짝 취급한 처사는 너무하지 않나 싶다.(우리말 동사는 사람처럼 생명이 있는 생물과, 나무나 돌처럼 생명이 없는 무생물을 문법적으로 달리 대우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 동사의 용법도 ‘사람’과 ‘짐짝’을 동일하게 목적어로 받아들이는 영어의 동사 ‘carry’가 퍼뜨린 병원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피해의식일까?

이상의 세 장면을 잘 보면, 영어의 영향이 외래어 남용이라는 단어 차원을 넘어서 문장 용법(문법)에까지 침투해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한 언어가 다른 언어를 만나서 언어의 치환(置換)이 일어나더라도 잘 바뀌지 않는 핵심부가 문법이라고 한다면, 우리말의 문법 부분에 미치는 영어의 영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비유컨대 고름이 뼛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단계라고나 할까?

이와 같이 우리말에 남은 외국어의 흔적을 번역학에서는 ‘번역투(translationese)’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어떤 글이 원본(original text)이 아닌 번역본(translated text)이라는 흔적이 일정하게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글의 특성이 바로 번역투다. 이 글에서는 일단 문어(文語)와 구어(口語)의 차이는 논외로 하고, 번역투의 논의대상도 영어 번역투로 한정하기로 한다.

번역투를 누구보다 제일 먼저, 그것도 자주 만나는 사람은 번역서의 독자다. 그런데 번역서의 독자가 번역투를 접하는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원천언어(외국어)의 구체적인 간섭을 모르는 가운데 번역본만을 본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원천언어(원본)의 존재가 있어야만 번역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기 때문에 번역투는 일단 오역의 굴레에서 면제되고, 따라서 이러한 인식, 곧 ‘번역투가 오역은 아니다’라는 인식이 바탕이 되어 번역투의 확산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우선 번역투의 확산 요인부터 짚어보자. 영어 번역투의 발생 내지 확산의 요인은 다음의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는 사회문화적 요인이다. 일제 강점기의 말기는 주지하다시피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해 우리 국어를 사용할 수 없는 모국어의 공백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에 의한 군정이 실시되고, 뒤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미군이 연합군의 주력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미국의 힘이 커진다는 것은 곧 영어의 힘이 커진다는 것과 동의어였다.

둘째는 교육적 요인이다. 학교 교육은 일반 대중의 언어생활을 좌우하는데, 이러한 학교 교육의 핵심은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성인이 되기 이전에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는 해당 공동체의 언어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국어 교과서에서 접하는 문장 표현은 평생 동안 기억에 저장되어 거의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어생활에 중요한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만큼, 국어 교과서의 문장은 당연히 여러 가지 기준에서 모범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도 실제로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문장을 살펴보면 번역투의 시각에서 적잖은 문제가 발견된다. 아래에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밑줄 그은 부분이 어색한 구문이고, 괄호 안에 이탤릭체로 된 부분은 어색한 구문을 자연스럽게 고친 것이다.

(1)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처자가 있는 가장은)

(2)수업에서의 나의 발표는….(수업 중에 내가 하는 발표는…)

(3)함부로 약속을 하지 말 것을 충고한다.(약속하지 말라고)


(4)사후에 신의 보상이 있음을 생각하라고 권한다.(보상이 있다는 생각을 하라고)

(5)잘못된 정보도 많아 주의가 요구된다.(주의해야 한다.)

(6)의사소통을 함에 있어 전혀 후각을 이용하지 않는다는….(의사소통을 할 때)

(7)그 곳에는 커다란 돌들을 쌓아 만든 화덕이 놓여 있었다.(커다란 돌을 쌓아)

(8)웃음의 유일한 기능은 ‘긴장으로부터의 해방’이다.(긴장에서 벗어나는 해방)

(9)삶에 대한 지혜를 얻기도 하였다.(삶의 지혜를)

셋째는 매스컴의 요인이다. 신문과 방송에서 적절치 못한 외래어가 남용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된 이야기이지만, 번역투와 관련하여 특히 외신기사를 다루는 국제부 담당자들이 가진 우리말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아래의 예문은 인터넷 사이트(2005년 12월 10일 D포털사이트)의 국제면 기사에서 뽑은 텍스트인데, 조금만 신경을 쓰면 번역투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다.

(1)뉴욕타임스는 맥먼처럼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킬 것을 약속하고 이를 상징하는 반지를 낀 청소년이 수십만 명에 달하고 있다면서 절제 운동의 일환으로 보급되고 있는 순결 반지가 점점 더 주류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순결을 지킨다는 약속을 하고)

(2)동양 고유의 풍수사상이 적용된 옛집은 단순한 건물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서구 부유층은 믿고 있다.(서구 부유층의 믿음은… 옛집이… 있다는 것이다.)

(3)조사에 참가한 북아일랜드 출신 소아과 의사 니겔 윌리엄스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현실을 돌이켜보고 정부 대책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스스로 깨닫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윌리엄스는 정부가 현실을 돌이켜보고…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4)외국의 한 미디어 분석 사이트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재킷 사진들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판매되는 사진들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비교 사진들을 올렸다.(사진과…)

다음으로 번역투의 문제를 몇 가지 짚어보자. 번역투는 친숙한 모국어 구조를 왜곡하므로 일단 읽기가 힘들어진다. 낯선 구조란 신선감이나 이국적 취향의 음미에 앞서 일단은 해독의 고통을 강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국어에 존재하는 다양한 표현 기회를 번역투로 생성된 기형적 표현이 원천봉쇄해 버린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흔히 사용되는 접속 표현의 관용구 ‘as soon as’는 거의 모든 영한사전과 영어 참고서에 ‘…하자마자’로 소개되어 있는데, 영문 텍스트를 대할 때마다 이 구문을 ‘…하자마자’로 옮기게 되면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될 여지가 영영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 구문은 ‘…하기가 무섭게’ ‘…하는 것과 동시에’ ‘…하려는 찰나에’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등 얼마든지 자연스럽고 다채로운 표현이 가능하다. 마치 다양한 종(種)이 사라지고 외래종인 블루길과 황소개구리만 남은 연못 생태계와 유사한 상황이라고 하겠다.

물론 번역투가 전부 부정적인 측면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간혹 우리말의 어휘와 구문을 풍부하게 채워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형적인 영어 구문으로 알고 있는 관용구 ‘it goes without saying’ 등도 사실 프랑스어 구문의 단어 대(對) 단어 모방 번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이 경우의 프랑스어 번역투는 영어의 구문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일조한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 선다면, 번역투에 대해 지나친 경계심을 보일 필요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번역투가 목표언어의 언어 사정을 감안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니만큼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핵심은 번역투가 모국어의 빈칸을 우연히 채워주는 경우에만 그 긍정적 기능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기존에 있는 모국어의 표현 수단이 새로 발생된 모종의 표현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이를 번역투가 대신해서 채워준다면 이러한 경우가 바로 번역투의 긍정적인 기능에 해당한다.

무분별한 번역투의 확산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모국어를 지키려는 번역가의 주체 의식이 확고하게 정립되어야 한다. 조건반사적인 번역 작업 방식을 지양하고, 항상 상황 문맥을 고려한 번역을 내놓아야 한다. 양적으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번역투 자료가 전치사와 관련된 구문이라는 것은 아직도 조건반사적인 번역 작업을 수행하는 번역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결과다. 이와 함께 번역서를 읽는 독자도 엄중한 감시자가 되어 불필요한 번역투가 넘쳐나는 텍스트를 추방하자는 사회문화적인 공감대를 이루는 데 기여해야 한다.

언어는 한 나라가 가진 고유한 문화유산의 가장 핵심적인 알맹이이다. 우리는 이 언어로 이룩한 고유한 정신을 온전하게 보전해서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다. 그래야 과거 동북아시아 최고의 문명국이던 중국의 문화와 한자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말을 의연하게 지켜낸 우리 선조에 대한 최소한의 예라도 차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우 경남대 교수·국어국문학 (kjwn@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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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정겨운 우리말 [88]


오비다 : 「동」(1)좁은 틈이나 구멍 속을 갉아 내거나 도려내다.
              ¶   벌레 먹은 데는 칼로 오벼 내고 먹어라.

                            (2)(속되게) 물건 따위를 훔치다.
              ¶  좀도둑이 신발을 오벼 갔다.

                            (3)(속되게) 다른 사람을 때리다.
              ¶  말 안 들으면 한번 오벼 줘라.



모꼬지 :  「명」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
              ¶  혼인날에도 다른 제자 보다 오히려 더 일찍이 와서 모든 일을 총찰하였고 모꼬지자리에서도 가장
                  기쁜 듯이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즐기었다.〈현진건의 “무영탑”에서>

 

출처 :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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