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세계 뉴스를 기다리는 일. 그것은 15분 간격으로울리는 커다란 괘종시계 같았다. 그 무렵 그토록 느리게 뛰던 내 심장의 괘종시계, 주저함 없이 가장 비참한 상태로 향하는 세계의 괘종시계.
p.20

내가 숨을 쉬어야 하듯, 말하는 것은 그와 같은 일이다. 그런데 말을 하면 현실이 사라져 버린다. 숨결로 지은 감옥은 아주 견고한 것은 아니다.

p. 23
프랑스식 전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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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오랜만에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몇 주만의 리스트인지 가물가물하네요. 새로 나온 책들 중, 3페이지 안 되는 목록에서 간추린 리스트입니다. 리스트에는 붙이지 않았지만, 이미 독서 완료한 책들도 있어요. (북플에 입력해 두었으니, 천천히 밑줄 긋기 기록할게요. 좀 시원해지면 밀린 밑줄 긋기랑 리뷰 도전해봐야겠어요. 소장한 책 사진 찍기도 그때T_T)

 

 

깨어남 - 김중만 사진 Ⅹ 유진목 헌시

l 올리버 색스 타계 1주기 헌정 특별판
이번에 출간하는 특별판 3종 《편두통》《깨어남》《뮤지코필리아》는 여러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올리버 색스의 작품이 지닌 힘을 보여준다(각 300부 한정 출판). 세계적인 사진작가 김중만의 사진을 표지로, 북디자이너이자 설치미술 작가 안지미가 북디자인을 하였으며, 새로운 시 영역을 거침없이 열어가는 3인의 젊은 시인(박연준, 유진목, 황인찬)이 오직 올리버 색스와 그의 작품만을 위해 헌시를 썼다.
《깨어남》은 1920년대의 유행병인 수면병에 걸려 수십 년간 ‘얼어붙은’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올리버 색스는 수면병 환자들의 치료 과정과 더불어, 환자들의 삶에 대한 열정과 용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아름다운 사연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환자들은 죽음과 같은 질병 속에서도 각자의 개성과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으며, ‘기적의 신약’ 엘도파로 인해 ‘깨어남’을 경험하는 순간 자신의 잠재된 개성을 드러냈다. 또한 엘도파 투약 후 하나같이 부작용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삶에 대한 의지와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후 이들의 이야기는 로버트 드니로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사랑의 기적〉으로 만들어졌으며, 다큐멘터리와 라디오극으로도 제작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뮤지코필리아 - 김중만 사진 Ⅹ 황인찬 헌시

l 올리버 색스 타계 1주기 헌정 특별판
《뮤지코필리아》는 올리버 색스가 2007년 발표한 작품으로 뇌와 음악에 관한 기이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그의 주특기인 병례사적 서술이 완숙기에 오른 텍스트로 평가된다. 올리버 색스는 안타깝게도 이 작품을 쓴 이후 채 2년이 안 되어 안구암으로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황인찬 시인은 작품 〈사랑과 자비〉에서 계절의 풍경을 대비시키며 사랑과 이별의 정서를 쓸쓸하게 노래한다. 이 시를 통해 완숙기의 경이로웠던 올리버 색스를 추억하는 동시에, 그 없는 세상의 허전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편두통 - 김중만 사진 X 박연준 헌시

l 올리버 색스 타계 1주기 헌정 특별판 
《편두통》은 올리버 색스가 37세에 발표한 첫 번째 책으로 그의 작가로서의 시작을 알린 책이다. 사실 그는 34세 때 2주 만에 이 책 초고를 탈고했으나, 당시 클리닉 원장이 시샘하여 책 출간을 막았다. 그러나 올리버 색스에게는 학문적인 진리와 더 많은 환자의 치료가 우선이었고, 결국 그는 해고당하고 만다. 책 출간을 택한 것이다. 《편두통》에 수록된 박연준 시인의 헌시〈완전하지 않은 것들이 달리는 고속도로〉는 올리버 색스의 이런 면모를 포착해낸다. “진리에 앞선 홀림,/ 이 과도한 사랑// 빛은 흔들리고 부서질 때 아름다움을/ 모든 치유의 열쇠는 사랑임을/ 주워요, 당신의 종이 위에서”. 세상의 편견과 부당한 압력에 맞선 올리버 색스의 모습은 박연준 시인의 작가적 초상과 겹치면서 특별한 울림을 준다.

 

경솔한 여행자


‘프랑스 SF소설의 선구자’ 르네 바르자벨의 대표작 《대재난》을 잇는 또 하나의 걸작 SF 《경솔한 여행자》가 출간됐다. 전작(前作)의 중심 주제들을 이어받으면서 ‘시간 여행’을 핵심 테마로 삼는 이 소설은 오늘날 SF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타임패러독스’, 그중에서도 ‘할아버지 패러독스’(시간 여행자가 과거로 가서 자신의 조상을 살해하면 시간 여행자는 태어날 수 없게 되고, 그렇다면 시간 여행 자체가 불가능해지므로 조상을 살해할 수 없다는 역설)를 최초로 다룬 작품이다.
1793년부터 10만 년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 시간 여행자의 흥미진진한 모험이 펼쳐지는 《경솔한 여행자》는 과학기술문명의 종말과 원시사회로의 회귀를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삼은 《대재난》에 비해 좀 더 경쾌한 필치로 쓰였으나, 인류의 행복과 유토피아, 시간과 존재론의 문제 등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르포히스토리아 - 서대문형무소에서 팽목항까지


이 책은 30년간 현대사의 현장에서 기자로 활동해온 저자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역사의 현장 40곳을 직접 방문하고 그곳에 얽힌 사람과 사건을 기록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기자적 현장성을 살린 ‘르포’를 묶어 70년에 걸친 파란 많은 한국의 ‘히스토리아’를 드러냈다. 해방의 환희와 분단의 설움이 교차한 1945년 8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시작해, 대한민국의 처절한 민낯을 드러낸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의 팽목항에서 마무리되는 현장 방문을 통해 저자는 과거를 해설하고 현재를 고민한다.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과거 사진과 현장의 최근 모습을 담은 사진 50장을 수록해 현장감을 살렸다.
해방이 분단과 독재로 이어졌고, 이에 대한 저항을 쿠데타의 총성으로 잠재웠지만, 결국 항쟁을 통해 민주와 통일을 실현해온 한국 현대사는 또다시 돌아온 ‘나쁜 나라’와 여전한 가해자의 위세 앞에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린 채 시련을 겪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좌절이 아니라 새로운 다짐을 제안한다. 역사와 진실을 ‘망각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부터 새로운 희망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르포히스토리아'가 독자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다.

 

마음의 병과 치료법

- 최신 진단 기준에 근거한 마음의 병 - 증상.원인.치료법 l 뉴턴 하이라이트 Newton Highlight 99
‘마음의 병’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이상한’ 질병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27.6%는 평생 중 한 번 이상 정신 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이 수치는 알코올 관련 장애와 니코틴(담배) 관련 장애, 수면 장애 등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짐작하던 것보다 정신 관련 장애가 우리 사회에서 아주 흔한 일임을 보여 준다.
마음의 병은 증상과 그 정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도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 수면 장애, 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난 마음의 병이기도 하다. 또 선진국일수록 새로운 유형의 마음의 병에 걸리는 사례가 많아지는 것으로 보아,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고 산업이 발달할수록 마음의 병은 더욱 널리 퍼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반양장)

l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2
이번에 초역된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은 전작들과는 다른 특성을 더해 푸익의 색다른 면모를 살필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다. 라틴아메리카가 아닌 뉴욕이라는 외국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며, 푸익의 소설 중에서는 유일하게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초고가 쓰였다. 이는 푸익이 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아르헨티나의 정치 상황에 회의를 느끼고 오랜 세월 여러 곳을 떠돌며 망명 생활을 했다는 점과 관련지어볼 수 있다. 푸익은 1976년부터 뉴욕에 머물며 한 미국인 청년과 계약을 맺고 돈을 지불하면서 대화를 나누었고, 그 내용을 변주하여 이 작품을 집필한다.

이 작품의 제목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또한 이와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소설은 ‘이 글’이 어떤 글인지,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히 지목해주지 않는다. 프랑스 소설책에서 래리가 해독한 첫 구절이 ‘malediction… eternelle… a… qui lise… ces pages(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이라는 점에 미루어보았을 때, 라미레스의 암호화된 글을 읽는 래리가 저주를 받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고정된 해석은 아니다.
푸익은 이 작품의 해석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작품의 제목, 라미레스의 옥중 수기, 거짓과 진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한 두 사람의 대화, 그리고 마찬가지로 불분명한 두 사람의 정체성까지. 모든 것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몫이고, 절대적인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모두의 노래


사랑의 시인, 저항의 시인,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자 중남미 민초들을 대변한 칠레의 외교관 · 정치가인 파블로 네루다의 대표작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네루다는 서정적이고 관능적인 사랑, 칠레를 위시한 중남미의 역사, 정치적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 소박한 일상에 대한 반추 등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시세계를 구축한 시인이다. 한국에서도 네루다가 등장하는 소설과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사랑 시가 인기를 끌며 네루다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나, 그의 대표작인 『모두의 노래』는 완역되지 못했었다.
작품의 방대함과 난해함, 중남미의 역사와 자연을 모르면 이해하기 힘든 지역의 특수성 등이 번역, 출간의 장애 요인이었다. 그렇기에 중남미의 자연과 역사, 문화에 정통한 옮긴이 고혜선은 주석을 꼼꼼히 달아 이해를 도왔다.
네루다가 자신의 최고 역작이라고 꼽은 『모두의 노래』는 총 15부 252편으로 엮인 대서사시로 네루다 특유의 역사의식과 만물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대표 시집이다. 대부분의 역사서가 아메리카에 대해 언급할 때, 아메리카 발견 이전의 마야 · 아스테카 · 잉카 문화를 간략히 언급하고 유럽인의 진출 이후부터 상세히 기술한다면, 네루다는 아메리카의 시원에서부터 역사서가 기술하지 못한 1950년대의 현대사까지 ‘노래’한다.

 

벌레 신화

l 민음의 시 225
『벌레 신화』를 통해 시인은 세계의 쏟아지는 폭력에 대해 등을 말고 웅크린 채 견디는 식물적 능동에 대해 말한다. 비극적인 현실을 살아 내기 위해 환멸을 끌어안고 더욱 적극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방식을 택한다. 땅바닥에 가장 낮게 엎드린 벌레의 목소리로 이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유에서 유

l 문학과지성 시인선 488
중첩되는 단어와 시구 들이 밀어붙이는 리듬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창출된다. “세계를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놀이”(권혁웅, 문학평론가)이기에 오은, 그의 말놀이는 한가로운 피크닉 장소에 떨어진 폭탄처럼 평온함을 뒤엎고 전에 없던 흥겨움을 터뜨린다. 말놀이로 일궈낸 신나는 한 판이 오은의 시어들 속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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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도착했던 책 사진이에요.

6월의 책은 조만간 올립니다. (박스 아직 안 뜯었습니다.)

세 권의 책은 읽었고, 나머지 책은 아직 펼치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 독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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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꾸 리스트만 올리고 있습니다.(;) 리뷰는 무기한 잠수 중이고, 밑줄 긋기는 지금 준비 중이에요. 책 읽을 적에는 오로지 책만 읽는 터라(인상 깊은 부분에는 종이 끼워두기), 뭐든 기록은 나중에 하고 있습니다.

리스트 작성 전에 호기심 갔던 책들이 많았지만, 오프라인 확인 후 실망하고 만 책들은 다 뺐습니다.

프리다 칼로 책은 앞 리스트에 슬쩍 붙였어요.:)

 

나는 매번 시 쓰기가 재미있다

- 젊은 시인 12인이 털어놓는 창작의 비밀
차이 또는 일치 사이의 간격

 질문에 답한 시인들의 글은 서로 다른 듯하면서 묘하게 일치하는 지점들도 보인다. 예를 들어 ‘시가 오는 순간’에 대한 답변들을 보라. 일부는 시란 어느 순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일부는 시가 문득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시는 찾아오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찾아오는 순간의 과정과 조건이 시인 따라 다르다. 차이 또는 일치 사이에 나타나는 제각각의 간격은 12명의 젊은 시인들이 각자 다른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바탕일 것이다.

 

 

 

 

 

비유의 바깥

l 문학동네 시인선 83
문학동네시인선 83권. 1994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장철문 시인의 네번째 시집이다. 그가 8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 '비유의 바깥'에는 다섯 개의 매듭으로 엮여진 총 51편의 시가 담겨있다.

 

 

 

 

 

 

 

 

 

 

 

인간의 증명

- 추억이 만들어지는 시간 l 증명 시리즈 
일상의 평범한 존재와 평범하지 않은 이질적인 존재와의 어찌할 수 없는 인연과 숙명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 것인가? 소설 속 어느 화자의 말처럼 “인간은 약자와 타협하지 않는” 혹은 “약한 것들을 사냥하는” 족속일 뿐인가? 과연 그러한가? 『인간의 증명』은,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러 혐오 범죄가 발생하고 사회적 약자가 죽어나가는 현 상황과 작품 속 마지막 장면이 우연찮게 겹쳐지며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오늘의 런치, 바람의 베이컨 샌드위치


도쿄에서 세 시간여 떨어진 유리가하라 고원, 이곳에서 나호는 카페를 열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시골 마을의 생활도 사람들도 모두 낯설기만 한 나호이지만 고원의 신선한 재철 재료에 감탄하며 그날의 런치 메뉴를 준비하고, 자신만의 고민거리를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요리를 만들어주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간다. 그런 날들 속에서 나호는 진심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조금씩 찾아간다.
무엇을 위한 속도인지도 모른 채 휩쓸려 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보게 된 파란 하늘의 시원함을 닮은 《오늘의 런치, 바람의 베이컨 샌드위치》는 녹음이 짙어져가는 이 계절에 담백하면서도 마음에 보약이 될 소설이다.

 

비 온 뒤


《비 온 뒤》는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하는 최고의 단편작가’로 수식되는 거장 윌리엄 트레버의 중기 편 모음집이다. 총 12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중 <티머시의 생일>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에서 테마 소설집 《버스데이 스토리》를 기획, 편역까지 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 중 하나이다.
하루키는 작품해설을 통하여 트레버 소설의 특징을 “불필요함 없이 적확하고 생생하며 아름다운 묘사, 설정한 인물의 흔들림 없는 정교함, 칼 같은 날카로움과 불가사의한 부드러움을 동시에 품은 소설적 시선”이라 설명했다. 이렇듯 트레버의 작품에서는 최소한의 단어를 정확한 위치에 배치하고, 작중 인물들에 거리를 두되 연민의 시선을 잃지 아니하며, 솜털 하나 큰 숨 한 번까지 느껴지게 하는 섬세한 묘사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진다.


화가의 마지막 그림

- 삶의 마지막 순간, 손끝에서 피어난 한 점의 그림
가톨릭 성직자들 묘지 입구에는 라틴어 “Hodie Mihi, Cras Tibi(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해석하자면 “오늘은 내가, 내일은 당신이”라는 뜻이다. 수수께끼처럼 들리겠지만, 이 말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격언이다. 오늘은 내게 죽음이 드리워져 이렇게 누워 있지만 내일은 바로 당신의 차례라는 것이다.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여기 ‘기억하고’ 싶은 죽음들, 하지만 죽음조차 그 예술혼을 사그라뜨릴 수 없어 시공간을 초월해 ‘기억되는’ 화가들이 있다.
그림을 다리 삼아 세상을 통과해온 미술 저술가, 이유리는 예술가들이 남긴 빼어난 예술작품, 그중에서도 유독 ‘화가의 마지막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다. 생의 끝, 가장 아름답고 치열한 시간에 화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그림 한 점엔 쉬이 껴안지 못할 삶의 진실이 녹아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실제로 화가의 마지막 그림 안에는 죽음이 임박한 순간, 그들이 무얼 예감했고 무얼 목격했으며 무슨 메시지를 최후로 남기고 싶었는지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양 목에 방울달기


유행의 작동 원리를 알아내려는 사람들

 사실 유행하는 것 중 많은 것들이 이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혐오스러운 것들일 수 있다. 하이텍의 연구개발부에 있는 샌드라 포스터는 유행에 관해 연구하는 사회학자이지만 갖가지 유행을 따라하는 ‘부서간 연락 보조원’인 플립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데 이제는 심지어 혐오가 유행이며,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플립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이런 면에서 코니 윌리스의 소설 《양목에 방울달기》는 유행, 어쩌면 혐오 유행에 관한 소설이다. 20년 전에 이 소설이 발표될 때 미국 사회는 ‘흡연 혐오 유행’의 시기였다. 그리고 작중 샌드라의 희망섞인 예상과는 다르게 오늘날 그 유행은 아직 사그러들지 않았으며, 대한민국에도 상륙했다. 게다가 샌드라는 ‘흡연 혐오’를 넘어 ‘혐오 유행’ 전체의 특성을 지적하는데, 그런 식으로 친다면 대한민국에서 혐오는 늘 유행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양목에 방울달기》는 유행의 작동원리를 찾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1920년대 미국의 단발머리 유행의 기원을 찾는 사회학자 샌드라와, 정보 확산에 관한 혼돈 이론을 연구하는 생물학자 베넷이 만나서 유행의 근원과 유행이 퍼져 나가는 방식을, 혐오 유행의 혼돈 속에서 찾는다. 소설 속에서 유행하는 혐오는 ‘흡연 혐오’이지만, 그 대상이 무엇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

- 병, 캔, 상자에 담긴 쾌락
이 책은 수많은 익숙한 제품들의 탄생기를 담고 있다. 카카오나무에서 난 쓴 열매가 달콤한 ‘허쉬 초콜릿’이 되기까지, 의례 때나 가끔 피울 수 있었던 담배가 종이에 포장되고 담뱃갑에 담겨 특정한 이미지를 갖게 되기까지, 도축장 부산물에서 나오는 젤라틴이 ‘젤로’라는 전에 없던 상품이 되기까지, 목소리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축음기가 발명되고, 거듭된 발전을 거쳐 오늘날 MP3 플레이어가 출시되기까지의 이야기 등 익숙한 것들이 어떤 기술발전과 마케팅을 거쳐 지금 우리 곁에 오게 됐는지를 다양하게 소개한다. 오랜 시간 수집한 귀한 자료들을 하나씩, 마치 이야기하듯 설명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독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도 선사한다.

 

 

 

빈 배처럼 텅 비어

l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김소연 (시인) 

 


: 최승자는 여성이라는 주체가 얼마나 아프게 탄생되어야 했는지를, 사랑의 서사를 통하여 아픈 모습 그대로, 실패한 모습 그대로 드러냈던 시인이었다. 아버지를 초월한 여성, 남성의 타자가 아닌 주체로서의 여성,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여성으로서 출생신고를 한, 우리 시대의 첫 번째 시인이었다. 시인은 악을 쓰며 산고를 치르는 어미였고, 동시에 공포 속에서 태어나고 있는 아기였고, 동시에 아기를 받아 안던 산파였다. 혼자서 그렇게 태어났다.

 

 


 

 

 

 

 

 

 

 

 

 

 

 

 

<성벽 안에서―페라라의 다섯 이야기>는 부제에 나타난 대로 이탈리아 북부 페라라를 배경으로 한 다섯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집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페라라에 관한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이곳이 중세 르네상스를 꽃피운 데스테 가문의 본거지였고, 장편 서사시 <광란의 오를란도>를 노래한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고향이기도 했던 문화적 도시라는 사실이다. 또하나 르네상스 이후 페라라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20세기 초 파시즘의 열풍이 불면서라는 점이다. 파시스트들이 정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된 1922년 파시스트의 로마진군을 주도한 세 사람 중 하나인 이탈로 발로가 페라라 출신이었다. 이는 이탈리아 북부의 파시즘이 창궐했던 여러 곳 중에서 페라라가 차지하는 악명 높은 위상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소설집은 이런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읽을 때 진가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작가가 처했던 특수한 상황 또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요소다. 작가는 페라라의 부유하고 유서 깊은 유대인 가문에 속한 사람이었다. 과거 사보이아 왕가에서는 유대인들을 우대하고 보호하는 정책을 폈고 따라서 이들 유대인은 자신이 무엇보다 이탈리아인임을 의심하지 않고 나름의 삶을 영위해왔다. 그러나 1938년 인종법이 공포된 이후 페라라 유대인의 운명은 하루아침에 바뀐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며 분리와 배제, 소외와 핍박의 싸늘한 시선에 늘 노출되는 신세가 된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기억의 작가’답게 오늘날 이탈리아 현대문학사에서 전쟁 희생자, 죽음, 유대인, 동성애, 노동자계층 등 단절/소외/차별의 분열지대에 놓인 역사적 개인을, 개인의 역사를 바사니 자신이 겪은 자전적 체험과 더불어 녹여낸, 그의 문학세계의 완숙미와 절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 말미에 부록으로 자세한 작가 연보와 페라라 지도를 실어, 작가와 함께 격랑 속에 있었던 페라라의 신화적 장소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여로를 면밀히 따라가볼 수 있도록 했다. 유대교 회당과 무덤, 마치니 거리와 조베카 대로, 에르콜레프리모데스테 대로와 성벽이 있는 공원 등 페라라 곳곳을 문학작품 안에서 기념비적으로 눈부시게 조명했던 바사니는, 이제 페라라의 역사적 인물이 되어 그의 이름을 딴 공원이 생겼을 정도다.

바사니의 문체는 결코 음울하지 않다. 격정도 눈물도 없다. 오히려 차분하고 담담하다. 이 작품의 주조음은 슬픔과 절망이 아니라 고독과 침묵이다. 정교한 플롯과 영화적 미장센, 격조 높은 심미적 묘사를 통해 바사니는 파시즘 시대의 일상을, 부르주아사회의 속물적 이면을, 그 안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소외된 자의 고독한 내면을 서정적이고 애상적으로 그려낸다. 주인공이 바라보는 검푸른 아드리아 해처럼, 아름다움 속에 죽음이 있고 그 죽음 속에 자유가 있다는 점에서 『금테 안경』은 바사니 문학 가운데 가장 탐미적인 작품이다.

나와 당신의 베토벤

- 리처드 용재 오닐이 들려주는 베토벤 현악사중주
영원한 고전 베토벤, 그의 내면으로 향하는 길
 누구나 베토벤을 알고, 많은 이들이 리처드 용재 오닐을 알지만, 그들의 내밀한 곳에 자리한 외로움과 고뇌를 마주한 이는 거의 없다. 이 책은 베토벤과 리처드 용재 오닐의 내면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음악가의 삶 속에 담긴 깊이를 읽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귓병을 앓는 사실을 숨기며 고통스러워했던 베토벤은 요양지에서 유서를 썼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택하는 대신 빈으로 돌아와 다시 작곡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베토벤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자신의 비극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리처드 용재 오닐이 세계적인 비올리스트가 되기까지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소년은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음악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동료들이 벌이는 험악한 사건들을 견뎌내야 했다. 용재 오닐은 그 시간이 끝을 알 수 없는 우울과 고독, 외로움으로 점철되어 있었노라 고백한다. 늘 자신을 묵묵히 챙기고 기다려준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날의 슬픔이 얼마나 깊었는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동료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에네스 콰르텟 단원들이 어떤 위로가 되었는지…… 이 책이 아니라면 미처 알지 못할 용재 오닐의 ‘무대 아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암흑 물질과 공룡

- 우주를 지배하는 제5의 힘

6600만 년 전, 도시 하나만 한 천체가 우주에서 지구로 쿵 떨어졌다. 그것 때문에 발생한 격변으로 공룡들이 죽었고, 당시 지구에 살던 모든 생물종의 4분의 3도 죽었다. 그런데 그 천체는 어디에서 온 것이었을까? 랜들의 가설은 이렇다. 그것은 혜성이었는데, 혜성이 원래의 궤도에서 이탈한 것은 태양계가 우리 은하의 은하면 속에 담긴 암흑 물질의 원반을 통과하느라 교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우주론적 연구와 진화 생물학적 연구를 융합하는 랜들의 연구는 암흑 물질의 구성 물질과 성질만 추정하고 마는 기존 연구에 도전하며, 나아가 과학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확인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랜들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의미에서는 암흑 물질이 공룡들을 죽였다고 말해도 될지 모른다.
랜들은 독특하고도 광범위한 관점으로 암흑 물질을 지구의 역사와 연결 짓는다. 대중 문화와 사회 정치적 관점도 끌어들이면서 암흑 물질, 우주, 우리 은하, 소행성들, 혜성들, 지구와 천체의 충돌에 관한 최신 발견들을 - 사실로 확인된 것뿐 아니라 추측 단계인 것도 - 소개한다. 또한 생명의 진화와 멸종에 관한 최신 발견들도 소개한다. 랜들은 지구의 운명이 우주의 조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며,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한 우주 속 우리의 존재가 사실은 아주 취약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감각 - 놀라운 메커니즘


눈을 감고 외부 세계를 느껴 보자. 귀에서는 온갖 소리가 들려온다. 코로는 주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리고 발바닥을 포함한 몸의 일부가 어딘가에 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고, 시원하거나 덥거나 추운 날씨도 느낄 수 있다. 이제 눈을 떠 본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외부 세계의 정보는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이렇듯 우리 몸에는 외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정교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바로 ‘감각’이다. 즉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속에서 맛을 느끼며, 온몸의 피부에서는 촉각을 느낀다.
이 책 《감각 ― 놀라운 메커니즘》은 이러한 다섯 가지 감각이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생겨서 뇌에서 인식되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먼저 프롤로그에서는, 모든 감각의 최종 ‘도착지’인 뇌에서는 감각 정보가 어떤 과정으로 도달하는지를 알아본다.

 

글쓰기 동서대전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에게 배우는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18세기 조선을 강타한 동심의 글쓰기는 무엇이었는가? 신세계를 향해 떠난 미친 선비 서하객의 60만자 일기에는 어떤 욕망과 포부가 담겨 있었는가? 조닌 계급의 애욕과 삶을 대변한 이하라 사이카쿠의 소설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태어났는가? 풍자의 글쓰기가 유행했던 18세기 영국과 19세기 일본의 제국주의 사회는 어떻게 서로 닮아 있었는가? 서양의 마르코폴로에서 중국의 이탁오와 공안파, 그리고 조선 호모 스크립투스 심노숭에 이르기까지 39인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에게 배우는 글쓰기의 모든 것.
개성과 자연스러움을 가진 글이야말로 진짜 글이다
 이 책에서 줄기를 이루고 있는 18세기는 지식과 개성이 만개 폭발한 시대였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부르주아, 조닌, 중인 계층 등이 사회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는 경제구조적 변화가 있었다. 백과사전식 저술을 통해 지식이 대량 생산되었던 당시 상황은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지식이 폭발하는 상황과 매우 닮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글쓰기는 어떠한가? 이것이 저자가 책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질문이다. 동심의 글쓰기를 책의 첫머리에 놓은 까닭은 글쓰기에는 무엇보다도 개성과 자유,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갖춘 글이라면 비록 구성, 논리, 문법, 형식, 수사, 형식이 불완전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진짜 글이다. 구성, 논리, 문법, 형식, 수사, 형식은 누구라도 고쳐줄 수 있지만 독창적인 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서만 나오기에 다른 이들이 고쳐줄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에 얽매인 나머지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소품의 글쓰기를 권유하는 제안도 귀 기울여볼 만하다. 글이란 간결한 묘사와 절제된 표현으로도 자신의 감성과 마음을 훌륭하게 담아낼 수 있다. 20세기 초 노신과 임어당이 중국 현대문학의 발전을 위해 시급하게 복원해야 할 옛 문장의 전통 중 다른 어떤 것보다 소품문을 들고 나온 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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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 중입니다. 그러니까, 살짝살짝 책을 추가하고 주저리 덧붙일 거예요.

1. 내일, 5월에 희망도서 신청했던 책 받으러 갑니다. 과학&역사 분야를 선택했던 터라 두께가 제법 됩니다. 돌아올 때 가방이 무거울 테지만, 얼른 펼치고 싶은 마음이 앞서네요.:)

2. 큰일입니다. 자꾸 신간을 사고 읽고 싶어서요. 지금도 또 주문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거든요. 집에도 읽어야 할 책이 잔뜩 쌓여있는데…… 방금 쿵 하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가보니, 동생 방에 가져다놓은 책 박스가 무너지고 쏟아졌습니다.T_T 다행히 책에 흠집이나 이런 건 없는데, 내일 다녀와서 조금 정리해야 할 듯합니다. 읽으며 틈틈이 정리하고 그래야겠지요.

3. 쓰던 글 내버려둔 상태로, 어이없게도 새로운 단편 스토리 생각해냈습니다./ 병원 배경이라, 전공 책 한참 뒤적뒤적 할 것 같습니다. 단편의 묘미를 살릴 글이 나와야 하는데, 제 글은 제 마음에 들지 않아요.(장편이든 단편이든) 오랜만에 덤벼들 단편이라 더합니다. 공부해야 해. T_T

4. 제대로 해내는 거 없이, 여러 가지 막 건드려 수습 중입니다. 집중하러 갈게요.

5. 별 다섯 점 준 책은 리뷰 써야 하는데…….

 

모단 에쎄이

한 편의 글이 생명력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언제 읽어도 가치 있는 문장으로 다가섬을 의미한다. 단지 과거에 씌어졌다는 것만으로 역사적 의미를 고정하면 그만인 글이 있는가 하면 그처럼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로 오늘을 살기 위해 절실하게 요구되는 글이 있다. 그러한 글이야말로 좋은 글이고 영원히 젊은 글이다.
이 산문 선집을 펴내고 글을 고른 기준을 들라면 바로 이 영원한 현재성을 꼽고자 한다. 오늘의 우리가 읽을 때 그 글이 우리 선배들의 글이라는 점 말고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막막한 심정을 위로해 주고 스스로 자기의 삶을 구성할 여유와 지혜를 준다면 훌륭한 글이 아니겠는지.
그러한 체험을 귀하게 여겨 이제 내가 읽고 힘을 얻었던 글에 새로 찾아낸 글을 더하여 식민지 시대 문학인들이 남긴 산문을 가려 뽑은 선집을 내게 되었다. 이 산문 선집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_<들어가는 글>, 엮은이
1910~1940년대 한국 근대문학의 대표 작가들이 쓴
 영원한 현재성을 지닌 90편의 산문

『모단 에쎄이Modern Essay』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 후반, 역사적으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한국전쟁 사이에 발표된 수필 중 90편을 가려 엮은 책이다. 외세에 의해 급격하게 근대로 편입된 혼돈의 시대에, ‘조선 근대문학의 수립’이라는 과제를 짊어진 작가들은 근대의 풍경과 시대의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이른바 ‘필독’이라는 명찰을 단 ‘간판작가’에서 시각을 달리하여, 엮은이가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로서의 심미적 기준을 부여했다. 팍팍한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영원한 현재성’을 지닌 작품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새롭다. 냉전의 그늘 속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김기림, 임화, 김남천, 김동석 등의 월북 작가와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강경애, 나혜석, 백신애, 김일엽, 이선희, 지하련 등의 여성작 가들을 두루 조명했다. 이로써 문학사적으로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 책의 미덕이다.


경관의 조건

l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0
일본 경찰소설을 이야기할 때면, 대개 세 명의 거장을 꼽는다. 짙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탄탄한 드라마를 창조해내는 ‘요코야마 히데오’(《64》《루팡의 소식》), 경찰소설 대중화에 불을 지핀 ‘곤노 빈’(《은폐수사》), 그리고 경찰조직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고독한 탐정물과는 다른, 경찰소설만의 맛을 완벽히 선사하는 ‘사사키 조’(《경관의 피》《폐허에 바라다》)가 그 주인공이다. 《경관의 조건》은 사사키 조의 대표작 ‘경관 안조’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다시 손자로 이어지는 경관 삼대의 긍지와 삶을 유장한 서사로 완성한 대작 《경관의 피》로부터 구 년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작 《경관의 피》가 일본 현대사를 꿰뚫는 대하소설, 역사소설의 풍미를 자랑했다면, 《경관의 조건》은 손자 ‘안조 가즈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짜릿한 엔터테인먼트의 매력을 발휘한다. 진격의 속도감, 누아르 및 하드보일드의 아우라, 그리고 압도적인 결말까지! 아마존 독자 전원 만점이라는 완벽한 평점을 기록했다.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

l 문학동네 시인선 82
김정환 시인의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地名)』은 지난 1980년 데뷔 이후 그가 써왔던 시의 계보, 그러니까 역사를 담보로 현실을 증거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지경의 탄탄한 장시들을 독보적으로 선보인 김정환만의 시적 장기들이 유감없이 발휘된 한 권의 수작이다. 시의 정신과 시의 입말이 같은 보폭으로 그 궤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 특히나 놀랍다.

 

 

 

 

 

 

 

 

괜찮은 내일이 올거야

총거리 600킬로미터, 이동 속도 시속 3킬로미터,
그리고 스물다섯 생애 가장 빛나는 30일!

취업과 미래의 불안에 시달리며 고립되어 있던 네 청년은 행진을 응원하고 동참하는 동료들과 함께하며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받고 잠시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해방감을 만끽한다. 특급열차를 타면 한나절이면 도착할 도쿄까지 시속 3킬로미터의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그들은 누군가를 앞지르고 앞서나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서서히 알아간다. 어른들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삶이 정답이라고들 하지만 어쩌면 매일 걸음을 걷듯 하루하루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방편이 아닐까. 꿈이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완전한 ‘선물’이 아니라 삶 속에서 서서히 만들어가는 성실과 인내의 산물일지 모른다. 네 청년은 스물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품었던 삶에 대한 성급한 절망과 꿈이 없다는 불안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그러자 삶은 새로운 열정으로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이라는 기성세대의 평가와 ‘흙수저’라는 자조, ‘3포 세대’라는 유행어가 보여주듯 우리 시대 ‘청춘’의 이미지는 부정적인 언어로 얼룩져 있다. 이시다 이라가 그려낸 청춘의 이야기 『괜찮은 내일이 올 거야』 역시 이런 사실에 반대하거나 날을 세우지 않는다. 허나 오늘날 청춘들이 겪는 고통과 불안이 경제 호황기와 종신고용의 혜택을 누렸던 기성세대의 그것과 다름을 지적하고, 그들이 가야 할 길은 기성세대가 가르쳐주거나 허락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꼬집는다. 동시에 젊은이들에게 ‘괜찮은 내일이 올 거야’라고 다독여주며 그들 스스로가 청춘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나가길 순수하게 꿈꾸고 있다.

 

죽음의 자서전

l 틂 창작문고 1
김혜순의 한 마디

아직 죽지 않아서 부끄럽지 않냐고 매년 매달 저 무덤들에서 저 저잣거리에서 질문이 솟아오르는 나라에서, 이토록 억울한 죽음이 수많은 나라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죽음을 선취한 자의 목소리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시를 쓰는 동안 무지무지 아팠다. 죽음이 정면에, 뒤통수에, 머릿속에 있었다. 림보에 사는 것처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가 갔다. 뙤약볕 아래 지구의 여름살이 곤충들처럼 고통스러웠다. 고통만큼 고독한 것이 있을까. 죽음만큼 고독한 것이 있을까. 저 나무는 나를 모른다. 저 돌은 나를 모른다. 저 사람은 나를 모른다. 너도 나를 모른다. 나도 나를 모른다. 나는 죽기 전에 죽고 싶었다.

문학실험실이 준비한 <틂-창작문고> 시리즈의 첫 번째 책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은 2015년 한국문학의 질적 발전과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해, 도전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언어 탐구의 작업들을 기획하고 실천해나갈 독립 문학 공간으로 출발한 문화예술 공익 법인인 문학실험실에서 출간하는 첫 단행본으로서도 그 의미가 상당하다. 앞으로 문학실험실에선 실험 정신이 발현되는 창작 작업을 지속해 지원할 계획이며, <틂> 시리즈를 새로운 문학의 거주공간으로 구축해 장르를 나누지 않고, 시, 소설, 희곡, 텍스트실험 등을 출간해갈 예정이다. 소설은 연작 형태의 단편 3~4편을 묶거나, 중편 소설 등이 선보일 예정이고 장르를 극복한 ‘텍스트 실험’과 그간 문학 현장에서 외면받아온 ‘희곡집’도 문학의 이름으로 과감하게 출간할 예정이다. 문학실험실의 <틂> 시리즈는 정성을 다한 양장 제본으로 꾸며졌지만 무겁지 않은 판형으로 가볍게 지니고 다니며, 어디서든 읽은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교양서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6월 중 김종호 소설가의 연작 소설집 󰡔디포의 디포󰡕가 출간 예정이며, 이후 김선재(소설), 김태용(텍스트실험), 성기완(시), 이준규(시), 진연주(소설), 한유주(소설) (이상 가나다순) 등이 출간될 예정이다.

 

사라진 벌들의 경고

우리가 이용하는 식량자원의 3분의 1이 곤충에 의해, 그중 대부분이 꿀벌에 의해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식량 공급이나 경제적 기여뿐만이 아니다. 많은 기업이 꿀벌 사회를 모델로 기업의 협업부문에 벌들의 소통과 협동 과정을 적용하고 있고, 도시 행정가들은 벌들의 사회를 연구하여 좀더 친화적인 도시를 계획하고 있다. 인간은 벌에게 유무형의 도움을 받아왔다.
그런데 지금 지구상에서 최고의 공동체를 이뤄온 벌들이 무서운 속도로 소멸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꿀벌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로부터 불과 4년 이내에 인류도 몰락할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꿀벌 등 꽃가루 매개 곤충이 사라지면 매년 142만 명 이상이 사망할 것이라는 섬뜩한 전망을 내놓았다. 전 세계적으로 과일 생산량은 22.9%, 채소는 16.3%, 견과류는 22.3% 줄면서 임산부와 어린이에게 필수적인 비타민A, 비타민B, 엽산 등의 영양소 공급이 감소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급속히 늘 것이란 분석이다. 벌이 없으면 인간도 없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블러드차일드


버틀러는 외계 생명체 번식을 위해 몸속에서 알을 키우는 숙주가 되는 남성을 상상하거나(<블러드차일드>), 근친의 문제에 주목하기도 하고(<가까운 친척>), 언어가 사라져가는 황폐한 세상에서도 여전히 대상화될 뿐인 여성을 그려내기도 하며(<말과 소리>), 억압에 길들어버린 인간을 드러내기도 한다(<넘어감> <특사>). 작가는 다양한 상상의 범주를 선보이지만 인종, 젠더, 그리고 거기에 얽힌 권력이라는 근원적 문제의식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는 것만은 한결같다. 흑인 여성, 즉 20세기 중엽 사회에서 절대적 약자로 살아가며 마주한 세상은 충격적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달고 환상의 내러티브를 완성해낸다.

 

 


《킨》은 타임슬립을 하며 100여 년의 시공간을 오가는 흑인 여성 다나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인종, 노예, 젠더,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권력과 인간의 근원적 감정의 문제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 독특한 작품은 출간 즉시 독자와 평단의 이목을 끌었고, 오래지 않아 옥타비아 버틀러의 최고 흥행작이자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다. 타임슬립과 노예.인종 문제라는, 결 다른 모티프 간의 결합은 뜨거운 반응을 촉발하며 미국에서만 45만 권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SF로는 이례적으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물론, 수십 년째 각종 북클럽에서 필독서이자 베스트 추천 소설로 꼽히고 있다.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일기장 첫 장에 봉헌된 아홉 살의 프리다, 그리고 프리다
 일기장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적는다는 특성을 가진 만큼,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프리다 칼로의 진솔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 행여 누가 볼까 암호를 써 가며 감추어둔 일기장에는 때로는 부유하는 무의식으로, 상상으로 만들어낸 신화로, 손 가는 대로 끄적인 그림으로 그녀의 예술혼이 나타난다. 그런 만큼 그녀의 일기장은 프리다 칼로라는 화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신생

l 대산세계문학총서 136
일본의 서정시인 중에서 그만큼 청순한 연애시를 지은 시인이 없다고 할 만큼 유명한 낭만주의 시인이었으나, 자연주의 소설가로 변신해 첫 장편소설 『파계(破戒)』를 발표하고 일본 근대문학의 역사를 일신했다는 절찬을 받은 시마자키 도손의 자전적 소설 『신생(新生)』(대산세계문학총서 136)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상처한 중년 작가 기시모토 스테키치와 그의 집안일을 돌봐주는 열아홉 살 조카 세쓰코. 세쓰코가 스테키치의 아이를 임신하자 그는 참회하며 관계를 정리하고자 파리로 떠난다. 하지만 1차 대전이 발발해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홀로 아이를 낳아 입양시킨 세쓰코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상태다. 스테키치는 책임감을 느끼며 세쓰코를 돌보기 시작하고, 둘은 다시 남녀로서 마주하게 된다.
사소설(私小說)이 세력을 떨치던 다이쇼 시대, 일본 문학은 작중 인물의 모델, 혹은 작가의 실생활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대입하여 해석하는 풍토가 있었다. 작품은 작가의 실제 삶의 반영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1918년 시마자키 도손은 『아사히신문』에 자신과 조카의 관계를 고백한 작품 『신생』을 연재한다. 일본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이 작품은, 적나라한 자기 고백을 통해 삶의 진실을 그리고자 하는 일본 근대문학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문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빗방울이 후두둑


2015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작, 『빗방울이 후두둑』이 출간되었다. 푹푹 찌는 여름 장마철에 맞춤한, 사이다 같은 그림책이다. 과감한 컬러와 툭툭 그린 그림, 시적 텍스트가 오늘,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간 불안, 실패, 외로움 같은 정서를 어린이책 안에서 소신껏 다뤄온 작가 전미화는 이번 작품으로 독자층을 끌어올려 어른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을 냈다. 사는 게 쉽지 않은 요즘,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을 여름 소나기에 빗대어 표현한 이 작품은 마치 시원스레 해갈하는 청량음료처럼 차갑고 맑은 기운을 훅 하고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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