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남긴 365일
유이하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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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색을 인식하지 못해
무채색의 삶을 살아가는 소년 유고.
그의 곁에는 언제나 밝고 다정한
소꿉친구 가에데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자신이 보는 색깔을 언어로 전해주며
삶의 빛이 되어주던 가에데였는데
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녀의 장례식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유고는
난생처음 하늘의 색을 마주한다.
놀라움과 기쁨도 잠시,
그 증세는 그가 앓고 있는 '무채병'의
희귀 케이스 중 하나로,
점점 더 많은 색을 보게 되다가
1년 후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이른바 시한부 선고였다.

삶에 대한 커다란 의지도,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없었던 유고는
남은 시간을 담담히 받아들이지만,
가에데의 어머니가 전한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가
적힌 노트를 본 뒤
그녀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기로 결심한다.

처음에는 소파에 누워 감자칩 한 봉 다 먹기,
학교 등교 전 커피를 사서 한 손에 들고
박력 있게 등교하기,
스마트폰 게임 결제하기 같은
사소하고 엉뚱한 소원들이었지만,
점점 유고 혼자서는 해내기 어려운
타인과의 소통이나 도움이 필요한 항목으로
리스트는 조금씩 확장된다.

학교에 있는 유일한 친구였던 아라타,
그리고 야자와, 미카미까지 합세해
가에데의 리스트를 함께 실현해가며
무채색의 고독 속에 있던 유고는
가에데와의 추억도 되살리고,
그녀에 대한 진심과
그동안 외면했던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시간은 흐르고 남은 삶은 줄어들지만
그가 볼 수 있는 색은 점점 늘어난다.
가에데가 일러준
세상의 아름다움을 하나씩 느끼며
신기함과 기쁨,
친구들과 어우러지는 시간 속에서
유고는 치유되고 성장하며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노트를 빼곡히 채운 리스트의
마지막은 그를 흔들고,
친구들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자신의 시한부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죽음을 앞둔 시한부 소년의
마지막 1년을 그린 이 책은
예상되는 먹먹한 결말 앞에서
책장을 넘기는 손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전작 《나와 너의 365일》을 통해서도
사랑과 슬픔을 이야기했던
유이하 작가의 후속편답게,
이번 작품 역시
상실과 그리움을 담아낸 시린 사랑이
눈물을 머금게 한다.

서두에서는 소꿉친구의 죽음에도
크게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그녀가 이제는 더 이상 없다'는
사실만이 믿기지 않는 유고의 모습이
색이 보이지 않는 그의 병처럼
단조롭고 메마르게 그려진다.

하지만 가에데의 죽음과 시한부 선고 이후,
그녀의 리스트를 실행하는 과정 속에서
유고는 하나씩 새로운 '색'을 찾아간다.
그의 감정과 삶의 의지는
색채처럼 점점 선명해지고,
그 변화는 내 마음에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멍해져
와닿지 않는 슬픔과 공허함,
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이 작품은
가에데의 리스트를 통해
그녀의 삶과 바람이 유고에게 이어지며
삶을 살아갈 이유를 깨닫게 도와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리스트를 실현하는 과정 속에서
유고는 자신의 삶을 다시 정의하고,
남은 시간을 따스하고
의미있게 살아간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깊은 상처지만,
유고가 가에데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녀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며
삶을 다시 살아가는 모습은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다.

가에데의 소원 리스트는
단순한 유언이나 혹은 유산이 아니라
유고와 그녀가 다시 연결되는 통로가 되어
기억이 과거를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일깨운다.

그녀의 흔적을 따라가며
유고는 자신의 삶을 재정의 한다.
우리는 나의 인생을 살아가지만
타인의 존재를 통해 삶의 방향을 찾기도 하고,
그 존재는 죽음 이후에도
남은 자의 삶 속에 살아 숨 쉬며
다시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가에데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녀를 통해 삶의 의지를 되찾은 유고.
그가 남긴 추억과 존재는
친구들에게도 성장의 계기가 되어
또 다른 삶의 원동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냥 슬픈 새드엔딩이 아니라
상실과 슬픔을 겪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한자락이 되어주는 이야기.
불타오르는 로맨스는 아니지만
가슴 시리게 번지는 수채화 같은 사랑이
잔잔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책의 앞부분을 읽을 때는
유고처럼 어떤 감정도,
색감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색은 진해지고 깊어지며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누군가는 떠나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365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유고에게 삶의 기쁨과 행복을
알려주고 싶었던 가에데의 사랑,
그리고 그 곁을 함께 지켜준
친구들의 우정과 성장까지,
로맨스 소설이자 성장소설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그들의
선명하고 진한 채도의 삶을 바라보며
나 역시 나의 오늘에, 그리고 사랑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을 가지게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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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버거운 사람들을 위한 뇌과학 - 광활한 우주를 살아가는 나와 뇌의 작은 연대기
레이첼 바 지음, 김소정 옮김 / 현암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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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얼마 전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83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우리나라 10-40대의 주요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뉴스를 보았다.

자살의 원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우울증으로
신체적인 질병을 넘어 자기혐오와 자책 등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며
우리의 일상, 주변에서도 이러한 어려움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삶이 버거운 사람들을 위한 뇌과학》을 쓴
작가 레이첼 바 역시 마찬가지다.
갑작스레 스스로 세상을 떠난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또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엄마와 비슷한, 삶과 자기 자신에게
애정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의 하루가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신경과학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삶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뇌의 작동 방식과 심리적 전략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한다.

뇌과학이라는 이론적인 개념들이 들어 있지만
엄마의 죽음, 자신이 겪은 상실감 아래에서도
우리에겐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길 바라는
다정하고 따뜻한 간절함의 마음을 담아내듯
'~해요'식으로 표현된 문장들은
한 학자의 자기 고백이자 대화처럼 느껴져
보다 부드럽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통해 그녀는
살아가며 누구나 부딪히는
슬픔과 공허함 앞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돌보는 법에 대해 말한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스트레스와 자극이 우리 마음에 밀려들어올 때,
뇌라는 이 웅장한 마음 기계를 가동해
우리를 지키고 제대로 움직이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이는 단순한 과학만이 아니다.

모두가 경험할 만한 적절한 예를 들고,
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과학 지식이 우리 삶과 인간관계를
나아지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정체성, 기쁨, 수면, 운동, 예술 등
우리 인생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제에서
건강한 삶을 접근한다.
사람들이 삶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주위와 자신에 대해 올바르고 건강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시작한다.

책의 1장에서는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기 이해와 자기 친절은
변화의 출발점이라 말하며,
자기 자신을 실험하듯 관찰하고
실패에도 친절하게 대하며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이어서 2장에서는 삶이 힘들 때 행복을 찾기보다는
작은 기쁨을 부표 삼아야 한다 말한다.
고통 속에서도 작은 기쁨을 발견하고 기록하며,
갈망과 기쁨을 구분해
일상에 균형을 찾는 법을 알려준다.

3장은 외로움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처럼
다뤄야 한다는 접근으로,
외로움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느슨한 관계와 공감의 실천을 통해
연결감을 회복할 것을 제안한다.

이어서 4장에서는 뇌와 영혼의 회복을 위한
필수 루틴인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정한 수면과 기상 시간으로
생체 리듬을 안정화하고,
침대는 오직 수면과 친밀함의 공간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5장에서는 예술을 통해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다루고,
창조성을 통해 뇌의 유연성과
정서적 회복력을 키우는 방법을 제시한다.

6장에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뇌와 마음 모두에 유익하며,
즐거움과 자기 돌봄을 중심으로
운동을 실천하라는 조언을,

7장을 통해서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주의력과 감정을 보호하고,
정보 소비와 온라인 관계에 신중함을 갖추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마지막 8장은
인생의 의미는 만들어가는 여정이며
연결과 성찰, 작은 행동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뇌과학 지식과 개념들 속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이론이다.
뇌는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며
이것이 ‘현실에 대한 지각’을
변화시키는 존재라는 것.
이는 만일 그릇된 인식이 있더라도
우리가 원한다면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말한다.

그녀가 책을 통해 전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인 뇌와 함께
끝없이 내 인생의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새로운 경험과 통찰을 쌓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 광활하고 무심한 우주에서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100% 문제를 해결하거나
다른 결말로 이끌지 확답할 수는 없지만,

뇌가 기능하는 방법을 좀 더 분명하게,
제대로 안다면 이 과정이
덜 외롭고 힘들 것이라는 말에서
마음에 한 자락의 위안이 생긴다.

때로 生에 대한 의지를 잃거나
스스로 세상을 등진 이들의 사연에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면서도
그들을 오롯이 이해하지 못했다.

꼭 치료받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와르르 마음이 무너지거나
모든 것이 귀찮고 두려워질 때에도
스스로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의 부재를 통해
이 마음을 헤아리고, 또 보다 건강하게
몸과 마음을 돌보는 법을 따스하게 전하는
한 사람의 노력 덕분에 전보다 조금은 더
내 마음을, 타인의 외로움과 고독을
헤아릴 수 있는 시선을 배울 수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솟아난 물이
나를, 내 마음을 잠식시켜 고립시키는 기분이 들 때
애써 내 손을 잡아끌어주는 이 애틋함을,
그 수고스러운 노력과 헤아림을
잊지 말고 떠올려야지 하는 생각이다.

부디 이 책의 조언이 필요 없을 만큼
모두가 평온하고 행복한 매일이길 바라지만,
혹여 마음에 작은 검은 개 한 마리가 있다면
그에게 조금은 위로와 힘이 되는
문장이 되리라 생각한다.

삶이 버거운 이들의 잿빛 하루를
기꺼이 끌어안아주는 따스함이
차가운 과학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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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느슨한 기록 일지 - 꾸준함을 만드는 가벼운 끄적임의 힘
이다인(다이너리) 지음 / 청림Life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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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해 째인지 모르겠지만

늘 새해가 되면

'아날로그 기록'에 대한 열망으로

야심 차게 다이어리를 펼쳤다가

작심삼일처럼 실패하곤 했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큰 나이기에

스스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하루라도 빼먹으면 그게 싫어서

혹은 조금 잘못 기록한 게 꼴 보기가 싫어져

비장했던 다짐과는 달리

'완벽하지 못할 거라면 그만두는 게 좋겠어'

하곤 금세 다이어리를 던져두었다.


그렇게 쌓인 다이어리와 노트가 몇 권,

펜이나 스티커 등이 제법 쌓이다 보니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다.

차라리 사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후회하는 마음도 들고 말이다.


대단한 기록을 하고자 함도 아니고

그저 일정이나 기억해야 할 것들을

조금씩 써두고 싶을 뿐인데,

뭐가 그리 어렵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내년에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언제 또 그만둘지 모르니

지금 일단 연습 삼아 기록해 볼까?'

하는 마음이 갑자기 불타올라서

9월의 마지막 주 어느 날 노트 한 권을 펼쳤다.


뭐든 확실한 것을 좋아해서

분기나 월의 시작 혹은 새해가

시작의 적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연습이니까 망쳐도 괜찮아'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대단한 기록은 아니었다.

무언가 소비를 한 날은

날짜와 물건, 구매금액을 적었고

꼭 기억해야 할 일정을 투 두 리스트로 적어

완료한 것엔 체크, 하지 못한 것에 X를 그으며

내 마음대로의 수첩으로 활용했다.


무언가 기분을 남기고 싶은 날에는

오늘의 감정이라는 제목과 글을 썼고

틀리면 수정테이프로 지우거나

쭉 줄을 긋기도 하고,

꾸미는 건 귀찮으니까 3색 볼펜으로 쓰니

부담감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기록이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명절 연휴나 피곤한 날은 과감히 패스하고

(어차피 이건 연습이니까,

지나간 기록을 굳이 적을 필요는 없어서)

쓸 수 있는 날에만 쓰다 보니

점점 기록의 재미가 붙었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빼곡하게

오늘의 소비, 오늘의 할 일, 오늘의 감정,

정말 쓸 소재가 없는 날에는

오늘의 감사한 일을 적으면서 이어갔다.


이렇게 한 달 넘게 채워진 노트를 보니

뿌듯한 마음과 함께

'내년에도 기록을 이어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게 되었고,

좀 더 제대로 기록하는 방법이 있을까 싶던 찰나에

이 책 《나의 느슨한 기록 일지》를 펼쳤다.


이 책은 기록 크리에이터로 입소문난

다이너리 이다인이 쓴 책으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반복해온 저자가

마침내 기록을 자신의 습관으로 정착시키기까지

시도했던 여러 가지 방법 중,

핵심만을 모아 집필한 '기록 가이드북'이다.


늘 다이어리 쓰기를 중도에 포기했던 사람들에게

기록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알려주는

그녀의 기록 여정은

'열두 달 기록 샘플러'라는 형식으로 통해

매달 하나씩 새로운 기록법을 소개한다.


그녀가 제안하는 방법을 따라

기록을 시도해 봐도 좋고

기록이 가지는 내면과 삶의 변화,

혹은 내게 맞는 기록을 찾아갈 수 있기에

많은 이들에게 좋은 자극과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숱한 실패로

다이어리 쓰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하지만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며

오늘 뭐 먹었지? 같은 가벼운 질문이나

체크리스트, 감정을 기록하는 무드 트래커,

글이 아닌 사진으로 기록하며

쓰기의 부담과 귀찮음을 줄여주는

포토 먼슬리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달라진 모습을 소개한다.


이 과정을 통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일상을 정리하고 감정을 마주하며,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탐구해

선명하게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열두 달의 기록 연습을 거치고 나면,

기록은 단조로운 습관이 아니라

나를 뚜렷하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시도이자

기록을 망설이는 이에게도

새로운 동기부여로 작용할 거라 생각한다.


단순히 일상을 기록하는 데 멈추지 않고

이를 통해 타인과 함께 즐기는 삶으로까지

발전시켜 나간 그녀의 기록 생활을 통해

'나는 무엇을 기록하고 싶은가'

'내가 기록을 통해 달라지고 싶은 게 무엇인가'의

질문을 스스로 고민할 수 있었고,


그저 일정을 쓰는 기록만 떠올렸던 내게

다양한 종류의 기록이 존재하며,

그것이 나의 삶을 얼마나 다채롭게 만드는지

그리고 나도 모르던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앞으로의 기록에 무엇을 추가해 볼까

즐거운 상상에 빠지게 만들었다.


기록 크리에이터들을 보면

예쁜 다이어리에 정갈한 글씨체,

알록달록한 스티커와 다꾸 템이 등장해

'나는 저렇게까지는 못하는데'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록이 아니라는

착각을 했던 것도 같다.


다이어리나 수첩, 노트 등

형식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기록은 타인의 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내가 좋은 기록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지레 겁 먹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예쁘게 쓰지 않아도 되고,

매일 빠짐없이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며

완벽하지 않더라도 서투르고 느슨한 기록이라도

묵묵히 나만의 기록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엔 모두가 '기록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따스한 조언을 듣고 나니

나의 '연습 삼아 시작한 기록'에도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다.


원래는 새해가 되면 새로운 다이어리로,

더 예쁘게 '제대로' 해봐야지 생각했는데

지금의 기록에 살을 덧붙이는 방식으로도

충분하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문제가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작품인

기록을 앞으로도 용기 내어 꾸준히 이어가야겠다.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힘,

그것이 주는 가치를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나처럼 다이어리 기록에 부담을 갖고

수없이 실패하며 망설였던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부담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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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약국
히루마 에이코 지음, 이정미 옮김 / 윌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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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병원이 있는 건물이면

백이면 백 약국이 함께 자리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발걸음을 하게 되는 곳이 있다.


우리 엄마만 해도 동네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특정 약국만 찾곤 하는데,

그 이유가 약사님의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

때문이라 말한다.


엄마가 들를 때면 얼굴을 기억했다가

종종 들르신 적 있었던

외할머니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약에 비해 포장 부피가 큰 약을 줄 때면

여분의 통을 하나 주시며

한 번에 다 담아두라 말해주거나

복용법도 정성스럽게 적어주신다는 것.


누군가는 약국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받는 곳에 불과하고,

때로는 처방전 없이 증상에 따라

필요한 약만 사면 되는데

그런 친절이 약국을 찾는 이유가 되겠냐 싶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그냥 '일'로서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증세에 따라 나의 컨디션을 헤아리고 염려하며

따뜻하게 마음을 건네주는 곳에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한다.


일본 도쿄에는 무려 70년이 넘게

한자리에서 일하며

환자들을 살피는 할머니 약사가 있다.

단순히 약을 조제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돌보는 데 집중한 그녀는

오랜 시간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는 꾸준함은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녀가 운영하는 작은 약국을 찾는

손님들과 나누었던 대화,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이는 태도,

할머니 약사의 다정한 말 한마디로

사람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아낸 이 이야기는


'함께, 그리고 다정하게'라는 삶의 자세로

약보다 마음을 먼저 살피는 따뜻함,

그리고 사람을 낫게 하는 건 사람이라는

공감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의 삶에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되묻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약국,

처방전에 따라 약을 받고 비용을 내면

그걸로 끝나는 일이기에

편하게 생각하면 굳이

애써 마음을 쓸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한 발짝 먼저 인생을 살아간 어른으로서,

혹은 함께 늙어가는 또래로서,

그리고 같이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약국을 찾는 사람들을 향해

따스한 마음을 애써 건네는

그의 수고스러움 덕분에

긴 시간 한자리를 지켜갈 수 있었음을,

그리고 그 진심 덕분에 손님들 역시

마음으로 소통하게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100세 가까운 나이에도 현역으로 일하며

삶의 열정을 잃지 않는

저자의 적극적인 행동과 그 의지는

노년의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으며,

현생에 치여 열정보다는

안일하고 익숙하게 매일을 흘려보내기 쉬운

현대의 우리에게 좋은 롤 모델이자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약을 조제하고 담아내어 손님에게 전하는 것은

어쩌면 반복되는 일상이기에

여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거나

시간을 더해갈수록 의욕이 떨어질 수 있는데,

변해가는 시대의 모습에 따라

다른 이에게 맡기거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배우려는 노력과

사람을 향한 진심 가득한 태도는

비단 같은 분야의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내 일에 진심을 다하고 있는가?' 하며

그동안의 삶을 되짚게 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 어린 관심은

제아무리 마음의 문을 닫았던 사람이라도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런 다정함이 최고의 약이라는 믿음으로,

몸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을 먼저 살피는

지혜를 가진 할머니 약사를 통해

진정한 건강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늘 '빨리빨리'

그리고 효율성만 따지기 쉬운 요즘에,

잠시 멈춰 서서

사람답게 사는 법을 되새기게 하는

할머니 약사의 진득한 매일이

마음 깊이 울림을 준다.


결국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고

서로를 배려하고 헤아리며

풍요로운 삶으로 나아가야겠다는 가르침이다.


처음에는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현역으로 일하는 약사의 인생 노하우,

약국에서 만난 손님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아낸

가벼운 책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어갈수록

삶의 방향성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지난날의 삶을 되짚고 반성하며

좀 더 온기 있고 소통하는 내일을

꿈꿀 수 있는 변화를 마주할 수 있었다.


타인에게 애써 다정함을 베풀며

여전히 같은 자리에 존재하는 약국을

오며 가며 매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매번 '그 약국에 가면 말이야,'하면서

약사님이 좋다고 했던 엄마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가면서,

나도 그 약국에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책에 등장하는, 그리고

엄마가 즐겨 찾던 약국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누군가에게나 열린 마음과 따뜻한 시선으로

다정함을 베푸는 곳은 많을 것이다.


그런 따스함으로 우리의 순간, 하루가

행복해지고 치유가 되듯,

나도 스스로를 넘어 타인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함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겠다는 마음이 든 독서였다.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가 만연한 요즘,

타인과의 관계에 마음이 지친 사람이나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물론

나이, 직업, 상황을 초월해

사람답게 사는 법을 되새기고 싶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무겁지 않은 인생의 안내서, 이 책을 통해

100세 할머니가 기다리는 약국에서

나만의 치유를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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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엔딩 소설Q
김유나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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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다.
처음에는 '당연히 내가 해야지' 생각한 간병도
끝이 보이지 않는 희생과
반복되는 고된 일상이 이어지며
결국 원망과 갈등, 혹은 이를 버거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뒤엉킨다.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서로가 서로를 좀먹는 삶이다.

《내일의 엔딩》의 주인공 자경의 이야기도
바로 이런 지점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엄마,
그래도 아빠와 단둘이 살아온 자경은
갑작스레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빠를 간병하며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들어가는 병원비로
새삼 체감하게 된 경제적 부담은 물론,
자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미건조한 매일을 견디며 살아간다.

처음에는 아빠가 금방 툭 털고 일어날 거란
희망을 가지기도 했지만
시간은 어느덧 6년을 넘겼고,
희망도 통장 잔고도 말라붙었다.

퓨즈가 나가 어두워진 아빠만큼이나
자경도 점점 잿빛이 되어간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무너져 내리고,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감각만 남는다.

그렇게나 애쓴 간병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자경만 홀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나고,
가뜩이나 지난하고 고독한 삶 속에서
외로웠던 자경은
고향 집을 정리하며 진짜 혼자가 되었음을,
그리고 그 사실이 무엇보다 두려웠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단 한 명뿐인 상주, 찾을 사람도 없는 장례식.
그 속에서 자경은 늘 '혼자'라 믿었던 자신이
사실은 혼자 있지 않았음을 조금씩 알게 된다.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회사 선배의 발걸음
그리고 그녀의 따끔하지만 따뜻한 조언,
올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친구의 방문,
아빠의 제자라는 이유로 마음을 내어준 사람들.

그들이 건넨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손길은
자경이 외면했던 감정을 끌어올리고
그녀를 다시 삶의 자리로 이끈다.
그것은 거창한 위로나 도움이라기보다는
삶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끼리의
조용한 연대와 같달까.

그 연대는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방식으로
자경의 마음을 조금씩 덜 외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제야 깨닫게 된다.
자신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곁에서 조용히 지켜주고 있었음을.

고향 집에서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던 자경은
한때 꿈 많던 시절 자신이 만들었던 영화와
영화를 본 아빠가 쓴 일기 속 감상을 발견한다.

망했을지라도 끝까지 완성하고 싶었던 영화,
그리고 그 영화를 본 뒤 아빠가 남긴 기록 속에서
자경은 과거의 감정과 관계,
무뎌졌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 기록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자경이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는 열쇠가 된다.

'인간을 기어이 살아가게 하는 삶의 소중한 빛은
언제나 멀고 희미한 곳에 있다'는
아빠의 일기장 속 문장처럼
자경은 그 희미한 빛을 따라
새로운 내일의 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와 크게 다를 것 없이,
퍽퍽한 현실을 살아가며
자경과 진전 없는 관계를 이어가던
연인 응현은 '참 바보 같은 선택'이라 말했지만,
자경은 그 선택에 기꺼이 뛰어든다.

그건 어쩌면 더 사랑하는 쪽으로,
그리고 덜 혼자가 되는 쪽을 향한
본능적인 걸음일지도 모르겠다.
그 선택은 불확실하고,
어쩌면 또다시 상처를 남길지도 모르지만
자경은 이제 그 상처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팀원들 중 어느 하나 찾아주지 않았지만
연락도, 왕래도 없던 그녀를 헤아려준
진짜 어른 같은 선배가 있었고,
결국 포기해버린 꿈이지만
그 안에서 누구보다 자신을 믿고 함께해 준
친구 표다르가 있었기에
자경의 지난했던 삶과 그 나날들이
그래도 마냥 씁쓸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향한 돌봄과 간병,
때로는 그녀에게 버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왔지만
자신을 같은 마음으로 품고 지켜왔을
지난날의 아빠를 떠올리며,
기꺼이 그리고 끝까지 마음으로 보듬은
자경의 아빠를 향한 사랑 역시도
참 따습고 아름답게 빛났다.

많은 것을 이미 잃었음에도
여전히 한결같은 희미한 반짝임으로,
곁에 그저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음에
힘을 얻고 자경은 다시 살아가기로 한다.
그것은 꼭 자경만의 엔딩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이겠지 싶다.

자경의 현실은 가슴이 먹먹했고,
미래는 마냥 막막하게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경의 곁에서
빛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그리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러웠다.

비록 기울어진 마음이라도
서로에게 기대고 토닥이며,
조금은 더 포근한 내일을 향해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나아가는 삶.
그런 삶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내일의 엔딩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엔딩이, 자경에게 그랬듯
누군가의 시작이 되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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