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아 실존주의를 선언한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상가로서 사회 참여를 주장하면서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사상계의 ‘제임스 딘’이라고 할 만한 인물로 구속받는 것을 싫어했는데 보부아르와 계약 결혼을 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자유를 추구했던 두 사람에게 결혼이란 인습의 굴레와 주변의 눈에 얽매여 억압과 구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정식 결혼을 할 생각이 없었다. 처음 계약기간은 2년이었지만 둘 사이의 계약은 평생 동안 지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집단적 폭력을 경험한 196-70년대 젊은이들에게 평화와 자유는 최상의 가치였기에 억압적 권력에 맞서며 개인의 자유를 외치는 사르트르는 이들의 우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때 그는 절대적인 내면성을 추구하는 실존주의에 큰 관심을 갖게 되며 ‘앙가주망’ 곧 참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교직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공산주의자들의 생각에 동의했고, 마르크스 이론에 동감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미국의 베트남 참전, 68 혁명, 알제리 전쟁 등 역사적 투쟁의 중심엔 항상 그가 있었다.

사르트르 철학의 핵심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이다. 이 말은 인간은 사물과 다르게 자신이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펼칠 수 있으며 ‘나는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짐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를 뜻한다. 여기서 ‘자유’는 해방이라기보다 형벌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동물처럼 주어진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즉자존재와 다르게 인간은 자신의 삶을 의식하며 의미를 찾는 대자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끊임없이 외부 대상으로 자신의 속을 채우려고 하지만 끝이 없을 테니 불가능 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를 비극의 숙명이라고도 본다.

사르트르는 196-70년대 문학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기존 서양철학의 전통을 뒤집었지만 그의 사상을 독창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이데거, 니체와 같이 생각을 나란히 한 인물로 무신론적 실존주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아래 저서들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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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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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도 수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때로는 조금 더 오래 머물기를 바랐던 기쁨의 순간이 있었고, 때로는 내게서 빨리 떠나기를 바랐던 슬픔의 나날이 있었다.
어떤 기쁨은 내 생각보다 더 빨리 떠나고, 어떤 슬픔은 더 오래 머물렀지만, 기쁨도 슬픔도 결국에는 모두 지나갔다.
그리고 이젠 알겠다. 그렇게 모든 것들은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손님들일 뿐이니, 매일 저녁이면 내 인생은 다시 태어난 것처럼 환한 등을 내걸 수 있으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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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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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언제나 밀려오지만 똑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젊은 날에 인식하고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누군가는 작별하지 않고 누군가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또 다른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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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32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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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24일

이 지구에서 가장 높이 자란 저 먼 나라 삼나무는 뿌리에서 잎까지 물이 올라가는 데 꼬박 24일이 걸린다 한다.

나는 24일이라는 말에 그 삼나무가 그립고 하루가 아프다.
나의 하루에는 쏙독새가 울고 나비가 너울너울 날고 꽃이 피는데
달이 반달을 지나 보름을 지나 그믐의 흙덩이로 서서히 되돌아가는 그 24일
우리가 수없이 눕고 일어서고 울고 웃다 지치는 그 24일이 늙은 삼나무에게는 오롯이 하나의 小天이라니! 한 동이의 물이라니!

나는 또 하루를 천둥 치듯 벼락 내리듯 살아왔고
산그림자를 제 몸 안에 거두어 묻으며 서서히 먼 산이 저무는데
저 먼 산에는 물항아리를 이고 산고개를 넘어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는 샘물 같은 산골 아이가 있을 것만 같다

바닥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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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460
이제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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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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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왼손으로

우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사랑할수록 죄가 되는 날들, 시들 시간도 없이 재가 되는 꽃들. 말하지 않는 말 속에만 꽃이 피어 있었다. 천천히 죽어갈 시간이 필요하다. 천천히 울 수 있는 사각이 필요하다. 품이 큰 옷 속에 잠겨 숨이 막힐 때까지. 무한한 백지 위에서 말을 잃을 때까지. 한 줄 쓰면 한 줄 지워지는 날들. 지우고 오려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마지막은 왼손으로 쓴다. 왼손의 반대를 무릅쓰고 쓴다. 되풀이되는 날들이라 오해할 만한 날들 속에서. 너는 기억을 멈추기로 하였다. 우리의 입말은 모래 폭풍으로 사라져버린 작은 집 속에 있다. 갇혀 있는 것. 이를테면 숨겨온 마음 같은 것. 내가 나로 살기 원한다는 것. 너를 너로 바라보겠다는 것. 마지막은 왼손으로 쓴다. 왼손의 반대를 바라며 쓴다. 심장이 뛴다. 꽃잎이 흩어진다. 언젠가 타오르던 밤하늘의 불꽃. 터져 오르는 빛에 탄성을 내지르며. 나란히함께 서서 각자의 생각에 골몰할 때. 아름다운 것은 슬픈 것. 슬픈 것은 아름다운 것, 내 속의 아름다움을 따라갔을 뿐인데. 나는 피를 흘리고 있구나. 어느새 나는 혼자가 되었구나. 되돌아보아도 되돌릴 수없는 날들 속에서. 쉽게 찢어지고 짓무르는 피부. 멍든 뒤에야 아픔을 아픔이라 발음하는 입술. 모래 폭풍은 언젠가는 잠들게 되어 있다. 다시 거대한 모래 폭풍이 밀려오기 전까지. 너와 나라는 구분 없이 빛을 꽃이라고 썼다. 지천에 피어나는 꽃. 피어나면서 사라지는 꽃. 하나 둘. 하나 둘. 여기저기 꽃송이가 번질 때마다. 물든다는 말. 잠든다는 말. 나는 나로 살기 위해 이제 그만 죽기로 하였다.

파노라마 무한하게

그날은 몹시도 눈이 내렸는데
내려앉는 눈송이를 볼 수 없는 높은 침상이었는데
침상 저 너머에서 알 수 없는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밤이었는데

죽기 직전 사람은 자신의 전 생애를 한눈에 다 보다고 하는데
그것은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속도로
무한에서 무한으로 가는 움직임이라고 하는데

그때 보이지 않는 창 너머로 보았던 것은
언젠가 나를 위해 울어주던 얼굴이었는데

걷고 묻고 달리고 울고 웃던
검은 옷을 입은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있지도 않은 없는 사람을 떠올리며
없지도 않은 있는 사람을 지울 때

한 치의 여백도 없이 채우고 싶다고
더없이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고

위에서 아래로 과거에서 미래로
아득히 흘러가던 그 풍경은 다 무엇이었을까

흙은 또 이토록 낮은 곳에 있어
무언가 돌아가기에 참으로 좋은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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