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박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1
김혜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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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같은 데서 종종 청소년들의 창업 소식을 접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여고생 몇 명이 패션 쇼핑몰을 운영한다는 소식이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애들끼리 잘 할 수 있을는지, 조금 염려되었다. 지금 그 쇼핑몰 사이트는 업데이트를 한 지 오래됐다. 망했다는 의미이다. 여고생CEO들은 쇼핑몰을 운영했던 경험이 하나의 스펙이 되어 현재는 좋은 직장,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결국은 성공의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 쇼핑몰이었으나, 학생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독립적으로 시도했다는 것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쇼핑몰 사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시크릿 박스란 비밀스런 선물 상자로서 여울을 중심으로 다솜, 유준, 지후라는 고등학생들이 벌인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여울과 다솜, 유준이 다니고 있는 유한 비즈니스 고등학교에서 유비고 창업 경진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1등 상급이 100만원인데다 동아리 과제 점수에도 들어간다고 하니, 세 아이들과 더불어 다른 인문계 고교에 다니는 지후까지 합심하여 창업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울의 어머니의 화장품 가게가 문을 닫게 된 덕분에 창업에 필요한 물품들(화장품 재고들)은 어느 정도 준비된 상태였다. 그렇게 순조롭게 시작된 시크릿 박스는 첫 시작부터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매우 큰 수확을 얻게 된다. 대회를 위해서 시작한 사업이었으나, 준비하고 성취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막연했던 기대는 점차 확실한 목표가 되어 갔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시크릿 박스 사업을 펼치는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열심히 단합하여 시크릿 박스 3월호부터 12월호까지 총 10개의 시크릿 박스를 만들어냈다.

 꿈이 생기고 목적이 있고 계획을 세우게 되니, 그 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와 하나의 소재가 되어간다. 시크릿 박스를 어떤 식으로 홍보하면 좋을까 고민했던 여울이 다른 제품의 광고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답을 찾으려 했던 것처럼. 왜 이 광고는 이렇게 구성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자기 사업에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쌓아 올린 시크릿 박스의 인기와 수익금은 한 순간의 부주의로 무너지게 된다. 결국엔 1년동안의 노력이 원점으로 돌아온 상황인 것이다.

 얼핏 1년 전과 같은 상황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왔고, 설사 제자리 걸음을 했더라도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의 다리 근육은 튼튼하게 변했을 거다.’

 비록 수익금은 전부 날렸지만, 아이들은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지 마켓팅을 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이다. 그리고 서먹했던 친구에게 진심을 전하는 용기를 갖게 됐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용서하는 방법을 알았고, 또 진정한 반성에 대해 깨닫게 됐다. 대필이 아닌 스스로의 반성이 담긴 진짜 반성문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타인의 눈치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는 방법을 알았다. 타인의 의견에 휩쓸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주관을 갖고 임하는 자세를 말이다.

 일을 벌이기에 앞서 나는 늘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지 재며 에이, 설마. 나 같은 게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어.’라는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어리석은 태도가 아닌가. 무슨 미래를 보는 예언가도 아니면서, 바로 10분 뒤의 미래도 모르는 주제에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있었던 건지. 만약 여울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아이였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시크릿 박스의 존재 자체를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또 여울과 친구들의 다리 또한 연약한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고리타분한 얘기겠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다. 어떤 기업인은 성공이 두렵다고 했었다. 그 만큼 의외로 실패는 성공보다 더 많은 것을 남기곤 한다. 오랫동안 마모된 원석의 표면이 점차 매끄러워지는 것처럼, 실패라는 이름의 마모를 통해 우리들 또한 갈고 닦여 점차 빛을 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잠시 시크릿 박스의 사업을 중단하고 학업을 위해 애쓰고자 하는 네 주인공의 모습이 그리 쓸쓸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또다시 시크릿 박스와 같은 새로운 시도 앞에서 전처럼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나아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따스한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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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빔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4
신현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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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정류장에서 흔히 보는 버스 외부 광고의 대부분은 성형외과 광고인 것 같다. 물론 결혼 중매 광고도 있고, 영화 광고, 등 다른 광고들도 있긴 하지만 성형외과 광고만큼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는 것은 드물지 않나. 성형외과 광고의 문구는 대개 예뻐지고 싶다면혹은 , , 입을 살리는 얼굴형과 같은 문구들이 대부분이며, 광고의 그림은 거의 못생긴 사람과 반반하게 생긴 사람을 나란히 놓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교하도록 유도한다.

 <꼰대 아빠와 등골 브레이커의 브랜드 썰전>이라는 책에서 이런 대사가 있다.

 “ 미국의 한 연구 기관의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육천 개에서 팔천 개에 이르는 브랜드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 <중략> 브랜드는 이런 식으로 우리의 무의식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있어.”

 위 대사처럼 우리는 성형외과 광고에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는 성형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게 하며, 수술을 쉽게 결정하게 만들도록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플라스틱 빔보(plastic bimbo)란 성형 미인을 뜻한다. 이때 빔보는 뷰티(beauty)와 같은 미인이란 의미를 갖고 있으나 보통 머리가 빈 미인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이 플라스틱 빔보는 주인공, 강혜규를 중심으로 성형 수술을 원하는 여학생들이 만든 일종의 클럽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성형 수술을 혐오했었던 혜규는 부상을 당하면서 성형수술에 관심을 갖게 된 케이스였다. 9번의 칭찬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은 한 번의 비난이란 말이 있다. 부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빠르게 회복되어 안심했던 혜규에게 다 나은 거니?’같이 외모에 대한 의문은 별거 아닌 질문이었음에도 혜규를 불안하게 만든다. 부상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얼굴인데, 새삼스레 못나 보이는 게…… 그토록 혐오스러웠던 성형이 왠지 이 모든 상황을 타개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은 혼자보다는 친구와 함께 수술을 받으면 수술비를 할인해주는 곳이 많다. 내 위의 선배들도 같은 성형외과에서 다같이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비용이 50만원 채 되지 않았었다. 혜규 또한 이런 기회를 알았기에 함께 성형할 친구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또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 몰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러나 혜규의 생각대로 좀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수상한 사람으로부터 온 이상한, 경고의 메시지 그리고 같은 학교의, 여학생과 유명 연예인의 잇따른 죽음들. 그 모든 사건, 사고가 성형 수술과 무관하지 않다. 혜규는 진실의 실마리에 가까워지면서 성형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안티 플라스틱이라는 성형 반대 모임을 결성한다.

 내 친구들 중 절반은 쌍꺼풀 수술을 했다. 걔네가 수술을 하기 전날 그들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쌍수는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야!”라고 주장했었다. 쌍꺼풀을 만드는 것이 이제는 보편화되면서 누구나 쌍꺼풀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쌍수가 간단하고 가벼운 시술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나도 쌍꺼풀 수술을 중3때쯤인가, 결심한 적이 있다. 결국엔 비싼 수술비 때문에, 그리고 수술과정을 구두로 세세하게 설명하며 중3꼬마애를 겁줬던 간호사 언니 때문에 겁이 나 그만 뒀다. 지금은 얼굴의 단점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화장품들이 많아, 화장을 하며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강남 미인도를 보면 성형을 안 한 게 어쩌면 다행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미인도는 마치 성형이 똑 같은 미인을 생산하는 기계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이었다. 수술용 기구와 보형물들 아래로 똑같은 얼굴들을 뚝딱뚝딱 생산하는 기계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는 성형 수술이 단순히 미용을 목적으로 생겨난 치료가 아님을 계속해서 전달한다. 성형외과 시스템의 불안정성, 섀도 닥터의 비전문성, 등을 드러내면서 성형 수술의 부작용과 후유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성형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에 대해 비판하는 동시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이 책만의 특별함을 엿볼 수 있다. 극단적으로 성형을 반대하기 보다는, 그저 성형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주어 자신을 위한 판단을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자신을 위한 판단, 후회가 없는 결단을 위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 풍토나 타인의 시선에 휘둘린 선택이 아닌, 진짜 선택을 말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식상한 얘기지만, 내 생각엔 내면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 달 넘게 입어서 지독한 냄새가 나는 속옷 위로 아무리 깨끗한 바지, 근사한 바지를 입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아무 이상 없을까? 멋진 바지를 입었으니 괜찮은 걸까? 아니다, 그 속옷의 지독한 냄새는 바지에 베어 바지까지 냄새가 전염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속옷이 깨끗하면, 바지가 화려하지 않아도 냄새 날 걱정이 없다. 왜냐면 속옷이 깨끗하니까! 이처럼 지금 우리에겐 외적인 미()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미를 갈고 닦는 게 일단은, 우선과제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귀한 깨달음을 준 플라스틱 빔보를 이 글을 본 여러분들께 추천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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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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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와 크게 싸워 절교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슬픔은 너무도 내 삶이 끝나기까지 영원할 것만 같았고, 평생 친구 하나 없이 외로이 살다 홀로 늙어 죽진 않을까 걱정스러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새 친구가 생겼다. 현재는 그 친구와 오랫동안 연을 맺고 잘 살고 있다. 그때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아주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저번 주 목요일에 절교했던 친구에게 페이스북 친구 요청이 왔다.

 

  인생사는 새옹지마란 말이 있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오늘은 새 신발을 신어 기분이 좋았지만 다음 날엔 내 것보다 더 좋은 신발을 산 친구를 보며 하루 온종일 기분이 꿀꿀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인생은 Never Ending Story 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결말이 없고, 정해진 답도 없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길을 걷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고 결과가 달라지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인생을 낱낱이 보여주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아이의 이름은 태산이. 오래 전에 어머니께서 위암으로 돌아가신 이후로 줄곧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왔던 태산이는 어느 날 아버지께서 사고로 돌아가시자 홀로 세상에 남겨진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지 태산이의 주변엔 좋은 이웃들이 많았다. 진짜 자식인 것처럼 태산이를 신경써주시는 떡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조금 제멋대로고 철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자상한 친구 기형이. 그 외에도 선생님, 학교 친구들, 등 여럿 분들이 태산이의 곁에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남기시고 간 ‘장사 쌀집’을 호시탐탐 노리는 오촌 아저씨와 태산, 자신을 양자로 삼길 원하는 떡집 아저씨, 아주머니 사이에서 진절머리를 느낀 태산은 아버지의 메시지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가보라던 곳인 해리 미용실을 찾아가 보았고, 그곳에서 주인집 남자를 만난다. 아버지와 어떤 인연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버지 성함조차 모르는 주인남자가 태산은 신경 쓰인다. 어디선가 본 듯 낯익은 여성의 사진도 그렇고, 원 안에 갈매기가 있는 그림의 십자수도 집에 있는 것과 똑같아서 더더욱 그렇다. 주인집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나날이 커져갈 때쯤 ‘손으로 말해요’동호회 캠프에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가게 된 태산. 거기서 어느 한 변호사를 만나게 된다. 멋진 미용 재주를 펼치던 변호사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옛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미용에 관심이 많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항공 학교에 다녔던 친구의 이야기였다. 승무원인 여자 친구와 결혼을 약속했었으나 비행기 사고로 그녀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사람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까지 보고 들어왔던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즐이 딱딱 맞춰지듯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조심스레 펼친 사진첩에서 낯설지만 익숙한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사람은 말이다. 양파 같은 거다. 여러 개의 껍질로 쌓여있단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그저 밖으로 내보이는 게 내가 가진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중략> 어려움을 벗겨내면 그와 반대가 기다리고 있고, 슬픔을 벗겨내면 기쁨이 있다는 말이다. 오늘이 슬프다고 내일까지 슬픈 법은 없고 지금이 힘들다고 네 앞날이 계속 그렇지도 않을 거야.”

 

 지금의 슬픈 일은 시간이 지나면 그냥 지나간 일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슬픈 일을 잊으려고, 지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속에 담아도 좋고, 늘 기억 속에서 꺼내 회상을 해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일들이 계속해서 차고 넘쳐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니까. 보이는 것이,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전부가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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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
존 그린.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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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면 내가 얼마나 귀여운 아이였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친구들의 눈에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때가 있는가 하면 괜스레 피어나는 수줍음에 내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지 못해서 친구들이 오해를 해버리게 내버려 둘 때가 있다. 또는 즐거울 거라 생각해서 행한 일을 사람들이 괴상하게 생각하게 되면 나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가 하며 고민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난 우물쭈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땐 나 자신보다 소중했던 건 없었으니까. 상처받기 싫어 보이는 것만, 들리는 것에만 반응했다. 나 스스로가 나의 마음이 연약한 구슬 같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직접 부딪혀본다든지, 싸워본다든지 그런 노력은 왜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왜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을까 싶다.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윌 그레이슨이란 이름의 두 소년이 나온다. 홀수 페이지, 짝수 페이지로 나뉘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홀수 윌은 참 독특한 사람이다.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거의 투덜거리는 어투들이 가히 기저귀를 갈지 못한 아기 같았다. 그러나 투덜거리며 온갖 시니컬한 척을 다 하는 그의 행동들 하나하나를 보면 참 자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독특한 매력 때문에 제인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친구 타이니 쿠퍼도 참 독특한 사람이었다. 겉으론 혀를 차게 만들 정도로 제멋대로고, 너무 거세면서 즉흥적이었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그의 진정한 모습은 참 따스하고 다정했으며 속이 깊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눈부시도록 예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로맨틱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렇게 로맨틱해지는 걸까? 짝수 윌과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나조차 그 달콤함에 취해버리는 것 같았다.

 

 짝수 윌 또한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직접 만나 보지 못한 인터넷 채팅 속의 아이작에게만 제 속마음을 꺼낼 줄 알았던 아이. 어찌 보면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아이작만큼의 신뢰를 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으로 그의 마음의 문을 열고자 하는 사람이 있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 모든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어떤 예고도 없이 우연히, 갑작스럽게! 짝수 윌의 상처 가득한 마음을 타이니는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은 비록 그들이 동성 커플이었지만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뻤다.

 

 책 속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참 예뻤다. 하지만 불안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 사랑들이 예쁜 걸로만 그치는 점 때문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타인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랑이 어떻게 아름답게 보일 수 있을까. 당당하지 못한 사랑의 빛깔이 언제나 환한 빛을 머금을 수 있을까. 오해와 불신, 실망만이 남게 된다. 즉, 용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사랑이라는 건 보여줄수록 표현할수록 줄어들거나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늘어나고 커져버리는 것이다.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더욱 견고해지는 것이 사랑인데 터질 리가 있을까. 귀여운 아이들은 이미 그런 걱정 속에 쌓여있다. 표현하고, 솔직하기에 앞서 걱정 때문에 뒤로 숨고 말았다. 하지만 숨었다고 한들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부풀어가는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힘겹고 아프기만 할 것이다. 견딜 수 없이 아파서 망가져만 갈 뿐 일리라.

 

 때때로 걱정 속으로 나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나를 위한 선택이 될 수가 있다. 이 책은 그것을 보여준다. 걱정하고 있는 대상을 직면하고 포용할 줄 아는 용기가 이곳에 담겨져 있다. 타이니가 자신의 아픔과 사랑을 그대로 보여주는 뮤지컬을 만들었던 것처럼, 짝수 윌과 홀수 윌이 그런 그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처럼, 서로를 눈에 담고 서로를 향한 사랑을 마음에 담는 그 모습 하나하나가 커다란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예쁘기만 했던 사랑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역경을 이겨낸 꽃은 상처가 있을 지라도 그 어떤 꽃보다 강인하고 아름답다. 아직은 어린 윌, 타이니, 제인 그리고 나는 이렇게 크고 작은 시련들을 겪으며 귀여움을 탈피하고 성숙해져 가는 연습을 하며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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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오를꽃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8
정도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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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이 오르지 않아 계속 바닥에만 머물었던 때가 있었다. 다시 잘 생각해보면 그땐 친구들과 사이가 좋아지지 않아 따돌림을 당하게 된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하루하루가 참 괴로운 나머지 옥상만 보고 다녔던 것 같다. 지금 만약 그런 괴로운 일이 생긴다면 부모님과 의논해보았겠지만 그땐 부모님이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수영을 못하는 나라면 한강에 빠진다 한들 살아나지 못하겠지? 아니면 영화처럼 창문과 문틈을 테이프로 꽁꽁 막고 가스를 켜서 질식사로 죽어버리면 좋을까? 혹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서 영원한 잠 속에 빠져 버린다면? 같은 생각들로 그 파릇파릇한 시기를 보내버린 것 같다.

  인생도 컴퓨터 게임처럼 초기화가 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사는 게 꽤 쉬워질지도 모른다. 죽으면 모든 게 다 끝이겠지. 그럼 학교를 갈 필요도, 귀찮은 사람들을 굳이 상대할 필요도 없겠지, 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마음 오를 꽃’은 그런 생각하기가 무서운 책이었다. 그런 생각을 했던 나를 회초리로 내려치는 듯 날카로운 의미를 전하는데…….

  이 책에는 중학생 규와 고등학생 나래가 나온다. 자기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던 규는 초기화를 목적으로 달려오는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나래는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그런 그들이 온 곳은 중천 혹은 중음, 즉 이승과 저승 사이의 가운데 하늘이었다. 육체를 잃고 령체가 된 두 사람은 49일 동안 그곳에서 머물며 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벌로 사지를 물어 뜯긴다든지 영혼을 찢긴다든지 그 모든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보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죽은 자신의 빈자리로 인해 피폐해지고 망가져가는 가족들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인생이 자신의 것이라고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살 순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기엔 우리 주변에 우리를 진심으로 생각해주고 위해주는 사람이 많고 또 그만큼 우리들은 그들의 사랑을 빚지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자살은 나만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자살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잔인하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았다. 가족이란 것은 겉으로 보기엔 참 견고한 집같이 보이지만 집을 지탱하는 기둥이 하나라도 사라져버린다면 그 집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어진다. 한 사람의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남은 사람들은 각자의 상처 앞에서 허둥지둥하는 사이 다른 사람을 돌볼 겨를이 없어지고 만다. 그리하여 집은 점차 폐허가 되어갔다.

 이렇듯, 우리들의 존재 하나하나는 참 소중하고, 특별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중하고 특별한 권리, 가치를 쉽게 놓아버린다. 거기엔 초기화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주변적인 이유도 분명히 존재한다. 친구들의 따돌림도 그렇고, 의지하고 신뢰할 수 없는 가족을 둔 것도 그런 이유이다. 나래의 일은 나에게 있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현명한 조치를 취하기만 했었더라도 그 아이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저기 있어. 사랑을 잃고서도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지. 사는 게 아니고, 겨우 숨만 붙어 견디는, 너의 엄마 아빠 할머니 동생이 저기에 있어. 가서 봐.”

 내 삶은 오롯이 내 것이 아니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 아빠의 것이다. 나를 깊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삶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힘든 일을 참을 필요는 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홀로 견디기 보단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참된 답이다. 되든 안 되든 내 삶을 지키는 노력이라도 보여줘야 나 자신에게도, 내 주변사람들에게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삶은 소수 사람들에 의해서 지독하고 위험해보이지만 천만의 말씀, 매우 따뜻하고 너그럽기만 하는 게 세상이다. 불편한 상황에 놓였다면 적극적으로 저항하면 된다. 그것이 사랑을 받고 태어난 우리들의 임무이고, 의리이고, 빚진 사랑을 갚는 방법이다.

 만약 지금 당장 죽는 것을 꿈꾸며 옥상만 바라보고 있을 친구들이 있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삶이 너를 혹독하게 다룬 적이 있니?

네가 겪어낸 삶을 다른 아디들도 견디지 못하였니?

네 부모와 가족은 남은 삶을 지옥에서 보낼 텐데, 그 지옥을 어떻게 할 것이니?]

 자기 살인의 죄를 지은 규와 나래에게 일원 법신께서 하신 말씀이다.

  “<중략>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냈을 것이다. 비록 윤회의 형벌로 인해 전생보다 더한 고통을 받는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나,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도록 하라.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이나 보고 감탄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짧은 생애 동안 너희는, 너희 삶의 보조출연자로 살았다. 이제부터는 주인공으로 살아라. 주인공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끝까지 견뎌 내는 것이 주인공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면 타인을 마음에 담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타인을 사랑하면 성급하게 결정할 수 없어질 것이고 삶의 순간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오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고, 또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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