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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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여자 #줄리엔반룬

'두려움의 지리학은 우리에게 야외 공공장소에서 편히 있지 말라고 가르쳐왔고 우리는 그에 맞게 움직임을 제한하며 종종 좀 더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사적인 영역이나 가정의 영역에서 꼼짝 않곤 한다' (1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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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녀 어머니란 여성의 욕망을 승화하고 우리가 금욕하고 회생하고 견딜 것을 요구하는 지배적 모성 재현의 부리에 있는 환상이다' (1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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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백인 남성들의 철학이 아닌, 살아 있는 여성 철학자들의 이야기'라는 말을 처음 봤을 때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모른다. 사람의 디폴트가 성인 남성이기 때문인 걸까. 그동안의 철학엔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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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많이 펼쳐봤던 성경책에서 조차도 여성은 부가적이고 대상화되는 존재로 그려질 뿐이었다. 그렇게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본의 아니게 남성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했던 시절들을 끝으로, 여성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건 무척 기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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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각 여섯 가지 주제(사랑, 놀이, 일, 두려움, 경이, 우정)로 나뉘어, 각 주제별로 역사가, 소설가, 철학가, 비평가 등의 여러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의 일화와 생각들이 정리되어 있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파트는 '두려움'과 '경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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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여자의 장소'가 되었다는 부분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저번주에도 살해당한 여성이 있었는데,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누구도 놀라거나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무엇이 여성을 두려움에 가두었을까. 무엇이 여성을 자유롭게 걷지도 뛰지도 못하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여성에게 침묵과 억압을 강요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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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변화의 상태 속에 있는 것, 다양한 힘들에게 포위당해 있는 것이다.' (173-1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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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주는 폭력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살아 있는 것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다. 죽은 것들만이 가만히 있다. 살아있는 존재에게 생각을 강요하고 행동을 억압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은 폭력인 것이다. 주체성이란 말이 좋다. 우리를 형성하는 다양한 현상과 관계들로 우리들이 계속 생겨나고, 그 생겨남의 과정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계속된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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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위험에 대한 전적으로 적절한 반응이에요. 황소에게 쫓기면 신장 바로 위에 있는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을 뿜어내죠. 혈압이 높아지고 혈당수치가 높아져서 필요하다면 도망치기 위해 6피트 높이의 담장도 뛰어넘을 수 있게 돼요. 두려움에 대한 이런 부신 반응 덕분에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거죠.' (1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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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오랫동안 친밀한 남성의 폭력과 소위 매 맞는 여자가 되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입에 담지 않는 개인적인 공포를 가진 여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왔다. 그녀는, 이 여자는, 덫에 걸렸다. 그녀는 덫에 걸려 고통받고 나갈 길이라곤 없다. 게다가 그녀는 공공연히 모욕당한다. 심지어는 시선을 돌리는 것처럼 미묘한 무언가에도 수치심을 느낀다.' (2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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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상황에 대해 계속해서 촉을 세우고 생각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학부 교수님께 들었던 말씀이 떠올랐다. 인간의 무사유는 죄, 라는 말. 주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사고하고 고민하고 곱씹어야 한다고 하셨다. 편안하고 안온해보이는 상황일지라도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폭력과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주제에 대하여 어떤 정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그렇지는 않다. 다만, 주제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제목과 정말 잘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된다. 읽는 동안 독자 또한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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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꺼지라지, 하고 생각했다. 여성들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2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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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적 성과와 활동 덕분에 조금 바뀌긴했지만 아시다시피 여전히 남자에게서는 단정적이고 자신감에 찬 발화가 여자에게서는 거슬리고 앙칼지고 과하게 화를 내는 게 되죠. 여자들이 하면 잡담이나 수다라고 해요. 남자에게는 달변이고, 뛰어나고, 자신감 있는 게 되고요.' (2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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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구조가 우리를 제약하고 곤란에 처하게 한다 해도 우리가 그것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268p)

#창비 #서평 #서평단 #책리뷰 #박종주 #줄리엔반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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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이민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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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탈코르셋은 응시당하다가 맞응시(countergaze)를 하는 순간을 만드는 거죠.“​

-1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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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 언급하셨던 경험을 나 또한 겪어본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탈코르셋 내지는 탈코르셋 인증 해시태그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가지고 있던 화장품들을 깨뜨리고 깨부수는 사진들이 올라왔다가 재작년부터는 머리를 짧게 민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회에서 정한 관념적이고 전통적인 '여성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길었던 머리를 자르고, 입고 다니던 치마를 버리고, 높은 구두를 내던지는 모습들을 볼 때면 나 또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올해 초에 <탈코일기>라는 책을 산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연재되었던 만화인데, 텀블벅에서 후원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참여했었다. 책의 추천사를 탈코일기 작가님께서 써주신 것을 보았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는 강남역 10번출구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난 해에 시작된다. 여성을 노려서 살해했다는 그 사건의 가해자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만약 범인이 여성이었으면 이미 어린 아이들까지 그 이름을 알고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답답하다. 그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여성학 강연을 듣고, 관련 페미니즘 여성학 책들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이 답답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것 같다.

그때 구입한 책들 중에는 이민경 작가님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가 있었다. 그때 작가님을 알게 되었고, 그때 비로소 나의 생각을 입 밖으로 자신있게 꺼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번에도 작가님께서 탈코르셋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대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서 이야기될 여성의 삶과 탈코르셋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길거리 전광판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 모델들이 화장한 얼굴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주목했다. 더불어서 이런 사회라면 여성이 화장한 얼굴을 자신의 기본 얼굴로 여기겠다는 생각을 스치듯 했다.

-37p

중학교 때부터 화장을 시작했었다. 돌이켜보면 수치심을 느꼈던 부위의 순서대로 화장을 시작했었던 것 같다. 얼굴이 노랗다는 지적을 듣고 비비를 찾아 바르기 시작하고, 입술색이 어둡다는 소리에 틴트를 사기 시작했었다. 자꾸만 거울 앞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어린 나를 떠올릴 때면 왜 이렇게 마음이 미어지고 속이 상할까.

치과에 갈 때도 틴트를 놓지 못했던 학원 아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바르지 않으면 부끄럽다고 했다. “아예 민낯으로 다니는 건 좀 그래요.” 그렇구나 하며 지나쳤던 일들이 다시금 하나 둘 떠올랐던 것 같다.

여성들은 수치심의 학습을 통해 규범적 여성성의 수행을 학습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알아야 하는, 그동안 몰랐던 사실이란 자신의 몸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보인다’는 것, 즉 신체의 특정 부위가 그것을 응시하는 시선을 통해 의식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눈썹을 그리라는 지적을 듣고 울었던 날의 윤아도 그랬다.

-85p

어학연수에 갔었을 때 동행한 남교수는 화장하지 않은 학생에게 자꾸만 여성스럽지 않다느니, 꾸미지 않고서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말이야 방귀야 하면서도 가끔씩 자유롭지 못한 내가 밉고 안쓰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작년 여름 광화문 광장 중심에서 삭발을 하며 심정을 토로하고 우는 사람들과 나도 함께 울었던 것 같다. 그만큼 울고 그만큼 위로받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탈코르셋은 자신의 마음을 고려하느라, 남성의 눈치를 보느라,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논리를 따르느라 둔감화된 고통을 생경하게 만들기 위한 운동이다. 벗어야 할 코르셋이 무엇부터 무엇까지를 의미하는지는 그것을 입은 상태에서는 알 수 없다. 알기 때문에 벗는 것이 아니라 벗어야 알게 된다.

-121p

새내기 때는 난생 처음으로 높은 구두를 사본 적이 있다. 발끝과 발뒤꿈치를 받치는 굽으로 몸 전체를 지탱하며 걷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래도 보기에 좋다는 생각으로 꿋꿋이 구두를 신고 외출을 했다. 그 날 나는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 가게에 들르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하철을 한두 개 갈아타고 버스를 기다릴 때쯤 나는 너무도 지쳐버렸었다. 구두 속에 갇힌 발이 너무 아파서 한 발짝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가게도 도서관도 조금만 더 가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으면서도 더는 걸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때 집으로 다시 돌아와 구두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었다. 구두를 신고 있는 한 나는 평생 멀리 내달리거나 자유롭게 걸을 수 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고, 그런 예감이 자꾸만 나를 불안하게 했던 것 같다.

여성의 의복이 미관을 위해 기능을 포기하는 이유는 여성의 신체가 미관을 위해 기능을 포기하는 존재, 혹은 기능이 불필요한 존재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인형에게 주머니가 필요 없듯 마네킹에게는 핫팩이 필요 없다.

-173p

올해 여름을 더울 거라는 말을 듣고, 린넨 바지를 여러 개 사두었다. 그런데 바지 주머니가 손가락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좁아서 난감했었다. 주머니가 작아 불편하지만, 바지 자체는 예쁘니까 애써 괜찮다고 생각하며 입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손이 부족해서 그 작은 주머니에 잠깐 핸드폰을 걸쳐두다시피 넣어두었다가 떨어뜨릴 뻔 한 뒤로 새 바지까지 모두 쓰레기통에 처박아 두었다.

하나에 육만 원씩 하는 린넨 바지들과 작별을 한 뒤, 이만 원에 파는 남성용 면바지를 샀는데 주머니가 너무 깊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었다. 요즘 바지는 불편하다며 토로하던 나를 바지가 뭐 어떠했길래 그러냐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이상하게 보던 남동생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불편한 바지를 입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주머니가 없는 바지를 입은 적도, 밑위가 짧은 바지를 사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참 이상하다. 머리 길이가 세상을 활보하는 여성의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니. 그러나 이는 우리가 대상화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과 일맥상통하다. 여성임을 더 쉽게 알아볼수록 더 쉽게 대상화된다.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125p

***

글을 읽는 동안 인상 깊었던 부분들에 줄을 그었는데, 그 중 하나를 남기고 글을 끝내려고 한다.

익숙한 이야기는 원형을 그리던 기존의 구조를 벗어나는 궤도를 택한다. 원 아닌 궤도는 ‘이걸 왜 몰랐지?’라는 의아함의 표현일 수도 있고, 바깥을 해부할 단초일 수도 있다. 이 갈림길에서, ‘왜’라는 틈 앞에 멈추어 쐐기를 박고, 쪼개어, 그 사이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궤도를 따라갈 수 있다.

-44p

새로운 궤도를 향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생동하는 우리들을 기대하며.

이민경,탈코르셋도래한상상,탈코르셋,페미니즘,여성학,코르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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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
김혜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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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사랑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보다 학점이 높게 나온 친구의 웃는 얼굴을 보았을 때,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등단했다는 선배의 소식을 들었을 때, 부모님의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페이스북으로 친구의 근사한 휴가를 엿보았을 때 왜 그리 내 자신이 작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자신이라고들 하지만,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주연급들이 너무 많다. 이쯤 되면 내게도 책에서 자주 나온 비교증후군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비교하는 습관을 버리자. 내 인생의 기준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다. 나는 나로서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인데, 왜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주눅 들고 자책해야 하는 것일까? 친구가 하는 것을 내가 하지 못한다고, 친구가 가진 것을 내가 가지지 못했다고 내 삶이 초라하거나 형편없는 게 아니다. 친구는 친구고, 나는 나다. 내 삶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지 절대 타인이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p. 89)’

 

 고등학교 2학년 진로 상담 때 진로 선생님께서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기 보다는, 스스로에 초점을 맞춰 살아가거라. 처음엔 정신 승리라도 하라는 건가 싶었던 그 말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각각 생긴 것이 다르듯 재능도 다르고 속도도 다른 게 당연한데, 다름틀림으로 이해했었다. 참 머쓱한 일이다. 그 동안 자책하고 우울했던 시간들이 아깝다. 차라리 그 시간에 영어 단어나 외웠으면 좋았을 걸. 최근에는 어제보다 성장할 오늘의 나를 기대하며 살고 있다. 그 편이 스트레스도 덜 받고, 부담도 없어서 좋더라.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완벽이 아닌 완전한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만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콘셉트로 나오는 완벽주의 인물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동시에 참 피곤한 인생이네싶은 적이 있다. 우리는 가게에서 물건을 고를 때도 결함이 없는 완벽한 상품을 찾고자 한다. 가격은 저렴했으면 좋겠고, 디자인은 근사했으면 좋겠고, 성능은 당연히 뛰어났으면 좋겠고, 또 전기세가 많이 안 나오는 거였으면 좋겠고…… 상품에 대해 바라는 기준은 참 무궁무진한데, 이 모든 기준에 부합하는 상품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가격이 싸면 디자인이 구리고, 성능이 좋으면 전기세가 많이 나오고. 그래서 나는 아예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버렸다. 가격과 성능은 됐고, 디자인만이라도 예쁜 것을 사자는 게 나의 쇼핑 모토가 됐다. 이게 작가가 말하는 완전이 아닐까? 나만의 확고한 기준은 내게만이라도 만족감을 선사한다.

 

 완전의 기준은 나에게 있다. 스스로 세운 기준에 맞춰 살면서 부족한 게 없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은 완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난 완벽한 사람보다 완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p. 105)’

이 책에서는 각각 다른 에피소드로 다른 이야기를 함으로써 같은 주제를 던지고 있다. ‘네 자신을 사랑하렴!’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찾는 것도, 나의 고민과 슬럼프를 이겨낼 방법을 찾는 것도, 나의 과거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기대하는 것 모두가 자기 자신에 대해 애정을 갖지 않는다면 행하기 힘든 일들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주인공이 되고 싶은지. 독자나 관객의 관심을 끌려면 아무래도 시시한 주인공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시련은 있지만 유쾌하고 즐겁게 이겨낼 수 있는 주인공은 어떨까. 그런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할 여지가 많은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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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학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5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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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푹 빠졌던 인터넷 소설(이하 인소)이 생각났다. 인소의 단골소재는 일진인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의 일진은 짧게 줄인 교복을 입었으며 걸쭉한 욕설을 구사하고 싸움질을 일삼는 동시에 술과 담배를 밥 먹듯이 했다.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상처 입은 야수 같은 깊은 눈따위의 묘사가 기억난다. 활자로 접했을 땐 소녀의 감성을 자극하여 설레게 하는 묘사였다.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화장실 맨 뒤 칸에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흡연하는 애들을 보았을 때, 인소를 보며 느꼈던 설렘은 없었다. 그저 냄새가 참 구리다는 생각만 들었던 것 같다. 어쩜 이리 이상과 현실은 다른지. 책 속의 준영이처럼 담배로 건강이 악화된 애도 있었다. 그 애는 결국 학교를 몇 달 쉬었던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성돈이는 평범한 중학교 3학년생으로, 특이한 점을 꼽자면 흡연 중독자라는 점이다. 중학생이 담배를 사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니고, 담배 생각은 나날이 간절해져만 간다. 참으로 지독하게 간절했는지, 놀이터에 쓰러진 사람의 담배를 훔친 성돈이는 암만동 놀이터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버리고, 그 동안 숨겨온 흡연 사실도 가정과 학교에 들통나버린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본의 아니게 학교의 금연 캠페인을 도맡게 되기도 하고, 담임 선생님과 금연 학교에 끌려가기도 한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매끄럽고 유쾌하게 전개되어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성돈이와 금연 캠페인을 하게 된 담임 선생님은 학교 아이들에겐 금연을 강조하면서 정작 아무도 없을 땐 담배를 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 우리들에겐 하지 말라면서 어른들은 하잖아. 10대때 내가 종종 했던 생각이 책에 그대로 있어서 많이 놀랐다. 내 경우엔 파마랑 화장을 하지 말라는 선생님들이 이해가 안 갔다. 화장이 피부를 썩게 한다고? 그런데 어째서 선생님들은 하는 건데? 어른들은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아! 같은 별의별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말로는 안 좋다면서 화장을 하고 담배를 피는 어른들을 보면, 어른들도 하는데 나도 좀 하면 어때 같은 생각이 들어버렸기에.


 오맑음 강사가 들려준 에피소드(p. 136)도 인상 깊었다. 남자 친구를 따라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가,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에게 차였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담배의 심각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가 누래지는 건 당연지사, 피부도 거칠어지고, 입과 몸에서 냄새가 나고, 머리도 나빠지고, 목구멍과 폐가 나빠져 가래침과 구토를 달고 살아야 하고. 참 나쁠 것밖에 없는 담배인데, 왜 사람들은 담배를 주구장창 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빠 말로는 스트레스가 쌓인 날에 담배를 피면 살 것 같다고 하는데, 자식된 도리로 너무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래요, 선생님도 이참에 담배 확실히 끊고 건강해져서 꿈을 이루세요. 오십 살이 넘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p.250)’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면, 자신의 건강에 무감하지 않았을 텐데.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자신이 존재하는 순간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고, 순간을 사랑한다는 건 하루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서 와, 금연 학교는 처음이지? 이게 뭐라고, 나는 이 말이 너무 웃겼다. 금연 학교지만 금연만 가르쳐주진 않을 거란다? 라며 의미심장하게 웃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금연보다 더 귀한 주제와 감동을 얻었다. 이 책을 20년간 담배를 피우신 아버지께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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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아빠와 등골브레이커의 브랜드 썰전 자음과모음 청소년인문 3
김경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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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드는 뱀파이어야!’

 

  이 글을 보는 순간, 작가의 재치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10대였을 때도 이런 적이 참 많았다. 몇 십 만원이나 하는 브랜드 패딩이 유행한 적이 있었고, 많은 애들이 같은 브랜드 운동화들로 차례대로 바꾼 적도 있었다.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 유행을 타, 모두가 비싼 값을 두고 미용실로 간 적 또한 있다. 재미있는 점은, 어른이 된 지금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유행에 따라 브랜드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 근사한 신발을 신고 있다면, 왠지 나도 그 정도는 갖추어야 같은 수준 범위에 들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청소년은 매우 힘든 단계인 것 같다. 더 이상 어린애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어른은 아닌 어중간한 단계. 15페이지의 내용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해준다. 우리가 어렸을 땐, 우리에겐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보다 엄마, 아빠가 더 중요했었고 엄마, 아빠의 사랑이 삶의 이유였었다. 그때 우리들은 어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고 배웠다. 그러다 조금 크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금씩 찾게 됐다. 그 과정에서 어른들의 말보다는 자신의 생각에 관심이 가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어른들은 2같은 말로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이상하게 여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도 공감하려고도 하지 않으니, 상처만 남을 뿐이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가 어색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 책에서는 비싼 브랜드의 점퍼를 사달라고 요청하는 아들, 현수와 그것을 반대하는 현수 아버지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볼 수 있다. 그 동안 많은 청소년 문학을 접하면서 부모 자식간의 대결이란 대결은 많이도 접했었다. 그런데 이번 대결처럼 인상 깊은 대결은 난생 처음이었다. 어느 집에서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자녀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가? 예상 외의 전개였지만 신선해서 재미있었다. 현수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얻는 정보들, 현수의 누나인 연수의 알찬 조언들 하나하나가 미처 몰랐던 것들이라 즐겁게 배웠다. 현수의 프레젠테이션을 볼 때는 어느샌가 나 또한 청중이 되어 진지하게 발표를 듣고, 반응하고 있었다. 또 현수의 발표의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현수 아버지의 반론은 브랜드의 이점과 단점, 그 두 가지를 놓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줬다.

 

 현수와 현수아버지의 썰전은 총 3개의 라운드로 이루어진다. 1라운드에서 현수는 브랜드의 본질적인 역할과 더불어 브랜드가 주는 이점, 편리성에 대해 말했다. 그에 아버지는 브랜드의 이면, 즉 그림자 같은 부분을 언급했다. 브랜드가 처음 가진 의미가 ‘keep your hand off’인 줄이야, 그제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브랜드의 위에서는 매우 편리한 삶을 누리지만, 그 아래에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무자비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2라운드에선 아름다운 가게나 굿네이버스 같은 이타적인 브랜드를 예로 들어, 브랜드의 이점을 발표하고 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브랜드 중에는 노동자의 피를 빠는 악랄한 브랜드가 있는 동시에 타인을 돕고, 봉사하고, 타인과 이윤을 나누고자 하는 착한 브랜드가 있었다.

 

 사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이,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현수의 발표가 비싼 브랜드 점퍼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브랜드의 역할과 편리성에 대해서는 잘 알겠다. 그러나 그게 현수가 비싼 브랜드의 점퍼를 사고 싶어하는 이유와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또 착한 브랜드에 대해서는 잘 알겠다. 브랜드의 악한 내용만 듣다 착하다는 내용을 들으니 마음이 편해지긴 했다. 근데 그게 현수가 비싼 브랜드의 점퍼를 사려고 하는 이유와 무슨 상관인지 역시 모르겠다. 비싼 점퍼를 파는 브랜드가 착한 브랜드라면 별 생각 안 들었을 텐데, 그것도 아니니. 결국 현수의 프레젠테이션은 브랜드의 필요성에 대해선 효과적이었을지 몰라도, 브랜드 점퍼를 입어야 하는 이유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다.

 

3라운드의 내용은 브랜드가 자신을 표현하거나 나타낼 때 쓰인다는 것이었다. 브랜드가 소비자의 추억이 된다는 점에서 그런 주장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브랜드는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그들의 삶의 일부로서 함께 하고 있다.

 

 인간은 세상의 하나뿐인 원본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는 비슷비슷한 복사본으로 죽는다.’

 

 현수의 발표에 아버지가 한 반론이었다. 이는 브랜드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인간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브랜드로 보완하려는 나약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브랜드가 세상에 주는 영향들의 결과에 대한 내용은 매우 놀랐다. 자주 브랜드 제품을 소비하는 습관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 지 몰랐다. 당장 눈앞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안일하게 생각했었던 나 자신이 매우 반성됐다. 결국 브랜드는 사람간의 차별을 만들고,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를 일으키는 동시에 환경을 오염시키는 나쁜 것인 걸까?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브랜드 반대!’를 외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음을 181 페이지에 도달해서야 깨달았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봐야 하는 거잖아.’

 

 브랜드와 사람의 관계도 그렇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자신이 한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일인지 고려해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의무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브랜드의 개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이점과 이면 그리고 경제, 사회, 문화, 심리, 철학 등 여러 관점에서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브랜드의 이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우리가 브랜드를 통해 누려야 하는 가치가 진정으로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타인이나 여러 매체의 농락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찾고 현명한 판단을 했던 현수의 태도야 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브랜드가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사는 우리이기에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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