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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이민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탈코르셋은 응시당하다가 맞응시(countergaze)를 하는 순간을 만드는 거죠.“
-1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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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 언급하셨던 경험을 나 또한 겪어본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탈코르셋 내지는 탈코르셋 인증 해시태그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가지고 있던 화장품들을 깨뜨리고 깨부수는 사진들이 올라왔다가 재작년부터는 머리를 짧게 민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회에서 정한 관념적이고 전통적인 '여성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길었던 머리를 자르고, 입고 다니던 치마를 버리고, 높은 구두를 내던지는 모습들을 볼 때면 나 또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올해 초에 <탈코일기>라는 책을 산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연재되었던 만화인데, 텀블벅에서 후원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참여했었다. 책의 추천사를 탈코일기 작가님께서 써주신 것을 보았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는 강남역 10번출구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난 해에 시작된다. 여성을 노려서 살해했다는 그 사건의 가해자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만약 범인이 여성이었으면 이미 어린 아이들까지 그 이름을 알고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답답하다. 그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여성학 강연을 듣고, 관련 페미니즘 여성학 책들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이 답답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것 같다.
그때 구입한 책들 중에는 이민경 작가님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가 있었다. 그때 작가님을 알게 되었고, 그때 비로소 나의 생각을 입 밖으로 자신있게 꺼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번에도 작가님께서 탈코르셋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대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서 이야기될 여성의 삶과 탈코르셋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길거리 전광판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 모델들이 화장한 얼굴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주목했다. 더불어서 이런 사회라면 여성이 화장한 얼굴을 자신의 기본 얼굴로 여기겠다는 생각을 스치듯 했다.
-37p
중학교 때부터 화장을 시작했었다. 돌이켜보면 수치심을 느꼈던 부위의 순서대로 화장을 시작했었던 것 같다. 얼굴이 노랗다는 지적을 듣고 비비를 찾아 바르기 시작하고, 입술색이 어둡다는 소리에 틴트를 사기 시작했었다. 자꾸만 거울 앞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어린 나를 떠올릴 때면 왜 이렇게 마음이 미어지고 속이 상할까.
치과에 갈 때도 틴트를 놓지 못했던 학원 아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바르지 않으면 부끄럽다고 했다. “아예 민낯으로 다니는 건 좀 그래요.” 그렇구나 하며 지나쳤던 일들이 다시금 하나 둘 떠올랐던 것 같다.
여성들은 수치심의 학습을 통해 규범적 여성성의 수행을 학습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알아야 하는, 그동안 몰랐던 사실이란 자신의 몸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보인다’는 것, 즉 신체의 특정 부위가 그것을 응시하는 시선을 통해 의식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눈썹을 그리라는 지적을 듣고 울었던 날의 윤아도 그랬다.
-85p
어학연수에 갔었을 때 동행한 남교수는 화장하지 않은 학생에게 자꾸만 여성스럽지 않다느니, 꾸미지 않고서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말이야 방귀야 하면서도 가끔씩 자유롭지 못한 내가 밉고 안쓰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작년 여름 광화문 광장 중심에서 삭발을 하며 심정을 토로하고 우는 사람들과 나도 함께 울었던 것 같다. 그만큼 울고 그만큼 위로받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탈코르셋은 자신의 마음을 고려하느라, 남성의 눈치를 보느라,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논리를 따르느라 둔감화된 고통을 생경하게 만들기 위한 운동이다. 벗어야 할 코르셋이 무엇부터 무엇까지를 의미하는지는 그것을 입은 상태에서는 알 수 없다. 알기 때문에 벗는 것이 아니라 벗어야 알게 된다.
-121p
새내기 때는 난생 처음으로 높은 구두를 사본 적이 있다. 발끝과 발뒤꿈치를 받치는 굽으로 몸 전체를 지탱하며 걷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래도 보기에 좋다는 생각으로 꿋꿋이 구두를 신고 외출을 했다. 그 날 나는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 가게에 들르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하철을 한두 개 갈아타고 버스를 기다릴 때쯤 나는 너무도 지쳐버렸었다. 구두 속에 갇힌 발이 너무 아파서 한 발짝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가게도 도서관도 조금만 더 가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으면서도 더는 걸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때 집으로 다시 돌아와 구두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었다. 구두를 신고 있는 한 나는 평생 멀리 내달리거나 자유롭게 걸을 수 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고, 그런 예감이 자꾸만 나를 불안하게 했던 것 같다.
여성의 의복이 미관을 위해 기능을 포기하는 이유는 여성의 신체가 미관을 위해 기능을 포기하는 존재, 혹은 기능이 불필요한 존재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인형에게 주머니가 필요 없듯 마네킹에게는 핫팩이 필요 없다.
-173p
올해 여름을 더울 거라는 말을 듣고, 린넨 바지를 여러 개 사두었다. 그런데 바지 주머니가 손가락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좁아서 난감했었다. 주머니가 작아 불편하지만, 바지 자체는 예쁘니까 애써 괜찮다고 생각하며 입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손이 부족해서 그 작은 주머니에 잠깐 핸드폰을 걸쳐두다시피 넣어두었다가 떨어뜨릴 뻔 한 뒤로 새 바지까지 모두 쓰레기통에 처박아 두었다.
하나에 육만 원씩 하는 린넨 바지들과 작별을 한 뒤, 이만 원에 파는 남성용 면바지를 샀는데 주머니가 너무 깊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었다. 요즘 바지는 불편하다며 토로하던 나를 바지가 뭐 어떠했길래 그러냐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이상하게 보던 남동생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불편한 바지를 입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주머니가 없는 바지를 입은 적도, 밑위가 짧은 바지를 사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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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참 이상하다. 머리 길이가 세상을 활보하는 여성의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니. 그러나 이는 우리가 대상화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과 일맥상통하다. 여성임을 더 쉽게 알아볼수록 더 쉽게 대상화된다.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1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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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동안 인상 깊었던 부분들에 줄을 그었는데, 그 중 하나를 남기고 글을 끝내려고 한다.
익숙한 이야기는 원형을 그리던 기존의 구조를 벗어나는 궤도를 택한다. 원 아닌 궤도는 ‘이걸 왜 몰랐지?’라는 의아함의 표현일 수도 있고, 바깥을 해부할 단초일 수도 있다. 이 갈림길에서, ‘왜’라는 틈 앞에 멈추어 쐐기를 박고, 쪼개어, 그 사이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궤도를 따라갈 수 있다.
-44p
새로운 궤도를 향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생동하는 우리들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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