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리와 위대한 결투 비룡소 걸작선 64
B. B. 올스턴 지음, 고드윈 아크판 그림, 김경희 옮김 / 비룡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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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리, 선한 존재가 된다는 건 선택이야. 선택하고 또 선택해야만 해. 아무리 힘들어도, 어둠에 굴복하고 싶은 유혹이 들어도 계속 선한 길을 선택해 나가야만 하는 거야.”(p. 208)


지난여름 초자연 세계를 위기에 구한 열세 살 소녀 아마리의  아마리와 밤의 형제단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다. 알려진 세계에서는 임대주택 구역 출신의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아마리는 초자연 세계에서도 마법이 재능이란 이유로 주변의 선입견을 감당해야 했다. 오빠 퀸턴을 찾아 악당과 맞서는 과정은 아마리에게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지만, 아마리는 제 곁을 지켜주는 친구와 가족들을 떠올렸다. 자신이 옳다고 믿은 길을 용감하게 증명하고 싶었고, 마침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았다.

다시 찾아온 여름, 두 번째 초자연 현상 관리국 여름캠프 시즌이 돌아왔다. 아마리와 위대한 결투에서는 작년보다 좀 더 자라고 여유로워진 아마리를 만날 수 있다. 마법사라며 받았던 날선 시선이 줄었고 그를 응원하는 존재들이 생겼다. 정식 주니어 요원으로서 보내게 될 여름을 기대한 아마리는, 현장학습을 가던 길에 시간 정치 사태에 휘말리고 만다. 마법사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아마리를 향하고, 새로 부임한 총리 베인과 본부장 할로는 마법사를 포함한 거부 대상자를 색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시간 정지 사태가 거부 대상자의 짓이 아닌 것을 밝힌다면 모든 오해를 풀 수 있겠지만, 관리국 어느 곳에서도 수사를 펼치고 있지 않았다. 결국 아마리는 그의 단짝 엘시와 함께 비밀스럽게 수사를 진행한다. 한편 국제 마법사 연맹에서는 베인의 위협에 대비하고자 새로운 지도자를 정하고자 했다. 아마리와, 그의 옛 파트너인 딜런에게 위대한 결투에서 승리한 자에게 왕관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보이지 않은 심연에 갇혀 있었던 딜런은 아마리가 기억하는 소년이 더 이상 아니었다. 아마리는 관리국과 마법사 간의 전쟁을 막기 위해 위대한 결투를 받아들인다.


아마리는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웃었다. “난 해낼 수 있어요.”, “날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니에요? 난 무사할 테니까 걱정 마요.” 하지만 혼자 남겨진 엘리베이터에서 중얼거리는 말은 내게도 아프게 다가왔다. “아니요. 이제 나한테 달렸어요. 전부 내가 지고 가야 해요.” 지난여름 쉽게 주눅들고 움츠러들었던 아마리는 용기를 내는 방법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모든 일들이 틀어지기만 하자 아마리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위대한 결투에서 딜런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데다 단짝 친구 엘시가 이번 여름을 끝으로 먼곳으로 떠나게 된다. 오빠 퀸턴은 여전히 저주로 깨어나지 못했고, 아마리 자신은 주변 사람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베인과 할로에게 협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릴 수 있다면 어떨까. 나의 안위만 우선시할 수 있다면. 문제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면아마리가 제이든에게 속마음을 꺼내는 장면이 있다. “가끔 난 내가 과연 여기 속한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들어. 앞으로도 나는 늘 그 마법사 소녀로 통하겠지. 사람들이 날 멋지다고 여기든 넌더리 나게 싫어하든 상관없이 난 늘 사람들 속에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 같아.”라고. 그 뒤로 이어진 제이든의 대답에 나는 밑줄을 그었다.

 

아마리, 네가 정말로 속한 곳이 어디인지는 너 스스로 알아내야 할지도 몰라. 솔직히 피터스 아주머니가 날 여기 데려다주셨을 때 진짜 긴장됐거든. 그런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나만의 길을 더 열심히 찾게 되었달까? 우리가 같이 왔으면 아마 네 뒤에 숨으려고만 했을지도 몰라. 그쪽이 더 마음 편했을 테니까.” (p. 429)

 

길을 잃고 무너진 아마리에게 그 말은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까 생각했다. 길을 잃었지만 다시 일어나 너만의 길을 찾아도 된다는 말처럼 느껴졌을 테니까. 어느 것도 정답이 되거나 될 수 없는 상황에서 네가 용기 내어 걸어간 길이 너만의 해답이 될 거란 의미였으니까. 아마리는 그제야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언제나 자신을 믿어 주는 엘시와 제이든, 그리고 한때 자신을 괴롭혔지만 지금은 자신의 편이 되어 준 라라를 보았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용기를 내는 마음이 아이들의 등 뒤를 단단하게 밀어 준다. 넘어지지 않도록.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아마리는 그제야 마리아 언니가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선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선택이라는 말. 추한 존재가 되는 일은 쉽다.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의 안전만을 위하는 일은 본능적인 것이니까. 그것을 거스르는 일은 어려울 것이 당연했다. 나보다 타인의 안전을 생각하고 나보다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일 테다. 하지만 아마리는 기꺼이 몇 번이고 그 기로에 서겠다고 이야기한다. 두렵고 불안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용기를 내는 것. 그것이 아마리를 단단하게 만들어 간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나는 선한 존재가 되기로 선택한다. 나는 벼랑 끝에 위태로이 서 있는 나 자신을 뒤로 끌어당겼다.”(p. 556)

 

이번 책에서는 주변 어른들의 역할도 눈에 들어왔다. 기숙사에서 빠져나오는 아마리 일행을 못 본 척해 주었던 버사 교관이 그랬다. “우리 어른들 세상에는 다 알아도 모른 척이라는 게 있거든.”(p. 523) 세상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우리 어른들이 할 일 중 하나는 그런 거겠구나 생각했다. 마법을 잃은 속상한 아마리에게 퀸턴이 했던 격려도 떠오른다. “그럼 싸워야지.” 하고 씩 웃는 아마리의 모습은 나 또한 마음을 보태고 싶을 정도로 멋있었다. 아마리의 다음 여정이 기다려지는 제2권이었다. 속삭이는 협곡, 고대 도서관, 수중 열차에 이어 만나게 될 신비롭고 환상적인 무대도 기대가 크다.

 

때로는 우리를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거야. 네가 할 수 있는 건 이제부터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정하는 것뿐이야. 일을 바로잡기 위해 열심히 싸울 거냐 아니면 납작 엎드려 항복할 거냐를 정하는 거지. 내 눈에는 여전히 아마리 피터스를 굳게 믿고 지지하는 친구들이 네 곁에 함께 있는 것 같은데?”(p. 572)

 

* 해당 후기는 비룡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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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러닝
이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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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러닝 #이지작가님

나는 우리가 멧돼지 떼 같다고 생각했다. 혼자는 다니지 않는 멧돼지 가족. 덩치만 크고 겁 많은 잡식성 동물. 달릴 수 있으니, 그래서 겁을 감출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잠시 생각했다. 누군가 감전돼도 함께 달리는 밤의 멧돼지들. (「나이트 러닝」, p. 28) 

 

애도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 이지 작가님의 소설집 『나이트 러닝』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애도에 대해 프로이트는 "애도할 때 빈곤해지는 건 세상이지만, 우울은 자아가 빈곤해진다"고 했다. 지난 신형철 평론가님 강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애도란, 나의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너의 나를 보내는 것"이란 말.

죽은 사람을 혹시라도 볼 수 있을까 봐 팔을 자르던 인물이 떠올랐다. 잘린 팔들이 있던 곳으로, 밤의 언덕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비슷한 상실의 경험을 지닌 두 인물이 나누던 대화도 기억에 남는다. "나도 그 마음을 알아요. 팔을 자르는 마음."(p. 31) 마음이란 건 형태가 없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을 텐데, 가끔은 마음이 다독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에 드는 사람들이 그렇다. 죽음이란 게, 상실이란 게 어디서든 매일 소리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서. 곁에 있는 사람의 슈슈, 숨소리가 나를 안도하게 한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내게서가 아닌 타인에게서 발견된다는 것이 뭉클했던 대목들이었다.

 

모두를 잡아끄는 중력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그것이 아버지와 저 같은 가족이라 해도 말이죠. 우리가 붙인 발의 무게는 그래서 각각 다 다른 게 아닐까요. (「모두에게 다른 중력」, p. 165)

 

어떤 애도는 슬픔을 어루만지는 느낌이지만, 어떤 애도는 속죄처럼 느껴진다. 과거의 우리를 돌아보는 과정처럼. 이젠 네가 죽고 없으니 나 혼자 돌아보는 길이라서, 여기의 속죄는 "돌을 들고 직접 걷는(p. 113)" 일인 것이다. 왕릉에 누워 무덤 속을 상상하던 ‘나’와 애도를 위해 꽃을 사러 간 유구가 그렇다. ‘나’는 세상에 눈물이 가득 차서 무덤과 무덤 위를 걷는 우리의 몸들이 녹아 섞이는 것을 상상한다. 그렇게 섞이고 섞여 끝내 없어져 버린다면,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것도 영원히 오해하는 것도 다 용서가 될 것 같았다”(「우리가 소멸하는 법」, p. 138)고 생각한다. 라캉은 "사람은 자신의 결핍이었던 사람만을 애도한다"고 했었다. 우리가 상실에 아파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사랑했던 나로는 더 이상 살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너의 나를 보내는 일'이 애도인 것임을 이 장면에서 불현듯 떠올렸다.

“주저앉아 울고 싶지만 일으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기에” 울지 않으려 하는 사람도 있다. 왜 상실과 슬픔에 잠겨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현실’인 걸까. 상실이 휩쓴 세상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은데, 하필이면 떠난 사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는 사람뿐이라서 우리는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 노력을 죽은 사람들은 영원히 알지 못할 테지만, 이 슬픔의 행위는 결국 나만의 것이겠지만 우리는 무심코 다짐하고 마는 듯하다. “나는 두 묶음 사람”이지만 그래도 “일단 혼자 해보기로 했다”(p. 271)라면서. 

 

우리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호기도 죽지 않고, 할머니도 죽지 않고 제리도 나도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천천히 굳어져버리겠지. 제리는 캠핑카를 찾지 않을 거고, 나는 굳이 곰팡이를 노려보지도 않을 것이다. 세상에 어떤 죽음도 없다면, 아무도 죽지 않는다면, 나는 곰팡이도 수해도 가뭄도 무섭지 않을 거야. (「에덴―두 묶음 사람」, p. 244) 

 

결국엔 모두가 유한한 존재라는 것. 지금의 관계와 일상에는 ‘끝’이, ‘결말’이 있다는 깨달음이 우리의 등을 내민다. 멍이 들더라도 계속해서 부딪히게 한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도, 그게 안 되어서 오해를 거듭하고 질문을 품어 보는 것도 다 우리가 죽음을, 상실을 무서워해서 나온 행동이라는 게 묘하다 사람들의 연약하지만 다정한 마음을 엿본 것 같다. 뒤표지의 우다영 소설가님이 쓴 문장이 인상 깊다. "사람이 사람을 보고,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외에 무엇으로 세상을 채울 수 있다는 듯이." 상실로 빈곤해진 세상을 채우는 게 도리어 슬픔이라는 깨달음. 각자의 마음을 그러모으는 것이 애도의 순간이라는 게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나이트러닝 #이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5기_나이트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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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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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숨 #김혜나작가님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할 때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 인종, 성별, 이름, 언어를 벗어나 그저 나로서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있으니까.” (「아버지가 없는 나라」, p. 127)

 

책을 읽고 떠올린 단어는 '무해함'이었다. 나 자신이 타인에게 무해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순간들. 또는 타인에게 무해하고 싶어 스스로에게 제동을 거는 순간들. 당신의 애인이나 가족, 당신의 일상에 관해 내가 "그렇게 사악하고 불온한 존재"(p. 53)가 아니라고, 수시로 스스로를 변호하는 여자들. 그런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이번 김혜나 작가님의 『깊은숨』이라 생각했다.

각 소설의 화자들은 대체로 언어와 감정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세심하고 부드럽고 내밀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익숙한 공간을 떠나며 시작된다. 글을 쓰기 위해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더는 요가를 할 수 없어서. 저마다의 이유를 안고 방콕으로, 인도로, 고향으로 건너간다. "인생에 실패한 사람들이 마치 조류에 떠밀리듯 들어와 버린 해안 도시. 나는 왠지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p. 79)란 문장이 인상적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피처 같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도리어 그곳에서 떠나왔던 문제를 다시금 직면하고 만다. 현실로부터 도피하였지만, 결국 마주하는 것이 '또 다른 현실'이었던 것이다.

"나 자신마저도 포기한 채 그저 견디는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다는 말인가?"(pp. 250-251) 하는 독백이 떠올랐다. 이들은 왠지 모르게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과 상황들을 만난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커플과 태도가 모호한 남자들이 그랬고, 어릴적 헤어졌던 모니카에 대한 기억이 그랬다. 친부를 만난 입양아와 상대의 무례한 가족까지. 안팍으로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일들 사이에서 인물들은 더 이상의 도피가 불가하다는 걸 알아차린다. 

 

물이 보이고, 소리가 보이고, 호흡이 보였다. 숨을…… 쉬고 있는 나는…… 자연이구나. 자연과 나는 분리되어 있는 개별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흐르고 있구나. 모든 것이 나에게로 흘러들고, 나로부터 흘러가고 있구나. 물속의 소리가, 내 안의 소리가, 빛 속의 내가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면」, p. 94)

 

타인의 감정에 예민할수록 이들은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감각을 기울이려 해 본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임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p. 161)려 한다. 요가와 명상 장면들이 인상 깊은 이유이다. "우리가 얽매여 있는 온갖 기억과 감정"을 내 안에서 비우는 일. 비워 낸 자리에 또 다시 기억과 감정이 차오르겠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현상을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는"(p. 162) 여정이다. 악순환 같다는 어느 화자의 말에도 공감이 갔다. 어떤 진실은 마주할수록 고통스러울 테니까. 그럼에도 이를 감내하려는 사람들을 볼 때면 마음을 보태고 싶다. 잘 통과해 나가기를 바라고 싶어진다.

 

단지, 어머니와 나라는 존재만이 서로를 마주할 뿐이었는데 말이야. 어머니의 눈을 들여다보고 나니까 나는 결국 누구의 아이도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어. 내 과거를 찾아야만, 내 친부모를 찾아야만 내가 완전해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단지 내 망상에 불과했어. 그래, ’나‘라는 존재는 어느 누구에게서 발생한 게 아니고, 어느 누구에게 속해 있지도 않았어. 나는 그저 존재할 뿐이지. 마치 그날 바라본 친어머니의 눈처럼, 그 속에 담긴 하나의 영혼처럼, 나도 그저 존재하고 있어. 내가 잃어버린 퍼즐 조각은 나의 친부도 친모도 아닌, 나 자신이었어. 내가 찾아야 할 존재는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진실.” (「아버지가 없는 나라」, pp. 138-139)

 

때문에 제목 '깊은 숨'의 의미가 인상 깊었다. 단전까지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정적인 운동처럼 보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가장 격렬히 집중하는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깊은 내면을, 외면해 온 감정의 실체를 끊임없이 언급하고 떠올려 건져내 보이는 과정을 지나는 듯했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맺고, 시냇물이 흐르고, 해가 저무는 순간과 같이"(p. 130) 통과할 수 있는 시간.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혼자가 아님을, 각자의 존재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는 작가님의 말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깊은숨 #김혜나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4기_깊은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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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박테리아야 -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 으뜸책 수상한 심해원정대
김대철 지음, 안예리 그림 / 푸른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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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박테리아야 #김대철작가님 #안예리작가님

박테리아? 그거 세균이잖아? 병이나 옮기는 무섭고 나쁜 친구.” (p. 9)

 

그 말을 들은 주인공 시아는 억울하다. 박테리아라고 하면 세균 같은 걸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니 주변 친구들이 그 말에 겁부터 먹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시아는 박테리아가 세균 같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우리가 자주 먹는 요구르트나 김치를 만드는 유산균에도! 사람의 몸에 있는 대장균에도! 이 박테리아의 역할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세균이라 오해받는 박테리아가 사실은 지구의 최초 생물체일지도 모른다는 것까지도!

 

시아가 살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서쪽 상어만은 햇볕이 잘 들고 물이 따뜻한 바다다. 평소처럼 산소를 만들며 시간을 보내던 시아는 문득 좀 더 넓은 바다로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저 밖의 넓은 바다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지. 어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지. 덩치 크고 힘이 센 돌고래 콩콩이와 세상 경험이 풍부한 지혜로운 거북이 천천이가 시아의 모험길에 합류한다. 이른바 심해탐사팀으로 똘똘 뭉친 세 친구가 기대와 호기심을 안고 새로운 바다로 헤엄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험은 생각 이상으로 파란만장하다. 시아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와 똑같은 바다가 맞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탐사팀은 백화 현상이 일어나 생물이 살지 못하게 된 사막을 지나기도 하고, 어부가 놓고 간 고기잡이 그물에 걸리기도 한다. 처음 가 본 용궁에서는 심해아귀 등불이의 함정에 빠져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자신들을 붙잡으려는 덩어리 군대들에게서 맞서 싸워야 하기도 했다. 여행 초반에 시아와 아이들이 빛 한 점 없는 깊은 바다를 헤엄쳐야 했던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어두운 바다를 두려워하는 시아에게 콩콩이가 했던 말이다.

 

시아야, 나도 무섭긴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후회할 것 같아. 이 아래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 여기도 어떤 동물들이 살고 있겠지. 누군가 산다면 우리도 살 수 있을 거야.” (p. 41)

 

예상치 못한 위험이 만연한 바다이지만 결국 이곳도 누군가가 살고 있는 곳이란 거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시아와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어느 바다에서나 존재한다는 바다 바이러스와 마그마 공장에 사는 박테리아 폼페이, 그리고 심해 농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게와 새우들.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바다이지만 시아와 아이들은 그곳에 사는 생물들을 통해 그 바다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부터 날카로운 이를 갖고 있는 생물까지, 사실은 모두가 서로를 도와 공생하며 살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어. () 이 관계는 우리 조상 때부터 있었어. 우린 아주 오랜 친구인 셈이지.” (p. 111)

 

그때부터 시아와 아이들의 모험이 단순히 낯선 장소나 낯선 존재를 만나는 것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서 더 나아가 낯선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익숙하게 생각했던 의 새로운 면을 발굴하고 나를 둘러싼 세계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여행인 것이다.

지구의 최초 생명체는 산소를 만드는 시아노 박테리아였을까? 뜨거운 용암과 가스를 다른 생물이 먹을 수 있도록 바꾸는 또 다른 박테리아였을까? 바닷속 생물들이 용궁에 모여 최초의 생물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장면이 기억난다. 이야기를 이어 가던 천천이가 문득 청중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최초의 논쟁이 과거의 일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어찌 될까요?”(p. 160)

 

이야기는 시아와 아이들의 모험으로 끝나지 않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까지 질문을 던지며 계속해서 이어진다. 질문을 받은 독자들이 앞으로의 모험을 이어갈 것이란 듯이.

해양지질학자인 저자의 마지막 글이 인상적이다. ‘?’, ‘어떻게?’라는 호기심이 과학의 첫걸음이고, 그 질문들을 풀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학자가 될 거라는 말. 시아와 아이들의 뒤를 따라 바닷속을 모험하는 동안 우리는 틈틈이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다음의 모험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으로 어떤 과학자가 될까? 사뭇 기대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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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리와 밤의 형제단 비룡소 걸작선 62
B. B. 올스턴 지음, 고드윈 아크판 그림, 김경희 옮김 / 비룡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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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리와밤의형제단 #BB올스턴작가님

내가 어찌 되었든 넌 절대 좌절하지 말고 세상을 끝까지 탐험해야 해. 내가 봤던 숨 멎을 듯이 아름다운 광경을 너도 꼭 봤으면 하니까.”(p. 36)

 

용기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실패와 좌절을 딛고 나아가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주인공 아마리는 임대주택 구역 출신의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모진 소리를 숱하게 듣는 아이였다. 오빠 퀸턴이 실종된 이후로 아마리의 일상은 점점 위태로워지는 느낌이다. 학교 아이들은 퀸턴이 죽었을 거라며 아마리의 신경을 긁고 어른들은 아마리를 마음대로 짐작하고 판단한다. 바쁜 엄마에게 마음을 털어 내지도 못하는 아마리가 끝내 골몰하는 건 온갖 웹사이트에 제보 안내 게시물을 올리며 퀸턴을 찾는 일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악의 형태로 여름방학을 맞이한 아마리는 우연히 퀸턴이 자신에게 남긴 메시지를 발견한다. 초현상관리국에서 진행하는 여름캠프에 아마리를 추천한다는 이야기였다. 퀸턴의 실종이 그곳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아마리는 퀸턴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 본다면 분명 그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긴다. 하지만 관리국에서 밝혀진 아마리의 재능이 사람들이 증오하는 마법인 게 밝혀지면서 아마리 앞에는 자꾸만 크고 작은 시련이 들이닥친다. 아마리는 과연 무사히 가족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 과정을 그린 것이 이번 아마리와 밤의 형제단이다.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불길을 품으렴. 널 향한 불신을 연료로 써서 그 불길을 더욱 활활 타오르게 만들어. 여기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로 인해 끊임없이 헐뜯기는 한 아이가 있어. 그 아이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며 나설 때, 세상에 무엇을 보여 주게 되는지 아니?”(pp. 180-181)

 

초자연현상관리국은 알려진 세계숨겨진 세계를 연결하는 곳으로서, 그저 전설일 뿐이라고 여기는 존재들(트롤, 스핑크스, 인어, 늑대인간)이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속하도록 지키는 일을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살아가거나 사람과의 충돌을 피해 자기들만의 구역을 따로 만든 낯선 존재들의 모습은 꼭 사람들의 날 선 시선 속에서 점차 자신을 드러내기를 주저하게 된 아마리의 모습과 닮은 점이 많았다. 낯설고 두려운 상황이어도 아마리는 그들을 이해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속상한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면을 근거로”(p. 138) 함부로 판단되는 상황을 수없이 마주했었으니까.

아마리의 용기가 발아하는 지점도 그곳이다. 자신을 믿어 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아마리는 스스로의 판단을 믿을 수 있다. 길을 잃더라도 나아갈 수 있고 주저앉더라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은 그러한 믿음에서 기인한다. 알려진 세계와 마찬가지로 초자연 세계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어도, 주위 요원들로부터 너는 할 수 없을 거란 말을 들었어도, 아마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일이 있어도 걷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밤의 형제단으로부터, 주변 사람들의 선입견으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시험에 들 때마다 아마리가 건져 올린 해답과 근거(p. 288)들이 아마리로 하여금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고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증명할 수 있게 한다.

 

다른 사람이 해치지 않고도 마법사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바꿀 수 있어요. 내가 집접 겪었어요.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면 돼요.”(p. 528)

 

소설 초반에 웨어가 했던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걸 두려워하거든. 두려움은 너무나도 쉽게 증오로 변할 수 있단다.”(p. 60) 어느 존재에 대한 편견이 어쩌면 그 존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란 말은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방학이 끝나 마법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온 아이는 이제 어떤 방식으로 많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게”(p. 416) 될까. 이후의 이야기가 기대되었던 소설이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이가 훌쩍 자랐다. 가족에게 의지하던 아이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크게 미워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고, 자신이 깨달은 세상의 신비를 누군가에게 나눌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이래서 아이의 성장을 마법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놀라운 변화를 보여 주니까. 군더더기 없는 상상력과 세계관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생동하는 듯한 묘사와 재치 있는 서술도 잊지 못할 것 같다. 3부작이라고 한다. 2부도 너무 기대된다!

* 해당 후기는 비룡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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