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비뚤어지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7
진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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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덮자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그 아이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꼭 한 명씩은 있는, 전교생들의 무시와 조롱을 오롯이 당해야 했던 아이였다.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몸에서 나는 냄새와 자신감 없는 우울한 분위기가 늘 원인이었다. 복도에서 그 아이와 마주친 학생들은 별 것도 아닌 걸로 시비를 걸곤 했다. 학생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업 때 마다 교실로 들어오신 선생님께서는 분명 아이들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묵묵히 수업을 진행하셨다. 복도에서 다른 학생들이 왕따를 향해 내뱉는 욕설이 교무실에는 닿지 않는 걸까. 단 한 번도 교무실문이 제때 열린 적이 없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의 모습이 괴물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선생님 밑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도 괴물이 되는 것 같았다. 마치 수업을 통해 감염이라도 되는 것처럼. 왕따를 묵인하고 방관하는 선생님을 보며 아이들도 왕따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새 학기가 되었고 새로운 아이가 전학을 왔다. 전 학교에서도 그저 그런 취급을 받았던 그 아이는 곧 기존의 왕따 아이의 배턴을 넘겨받게 되었다. 동시에 전교생의 표적은 전학생에게 옮겨졌다. 그 이후 당연하다 듯이 전학생을 괴롭히는 무리 속에 처음에 왕따를 당했던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 아니었나 싶다.

  ‘좀 비뚤어지다.’라는 이 책에서는 아주 용감무쌍한 가출 청소년들이 나온다. 가족들에 대한 마음이라든지 외로움을 견디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모인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 앞에 큰 재앙이 닥친다. 세상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명 여배우를 시작으로 급속도로 세상에 퍼진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현관문 밖은 시체가 난무하고 비명소리와 짐승의 울음소리로 들썩인다. 또한 곳곳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노리는 좀비들이 흉측한 모습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껏 받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들은 그 어떤 도움도 없이 살아야만 했다. 주위에는 도움을 청할 기관도, 어른도 없었다. 스스로가 식량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했다. 미강, 대장, 참모, 현웅, 레몬, 분도 그리고 룩.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좀비들과 치열한 결투를 벌인다. 그 과정에서 그간 동고동락했던 동료를 잃기도 한다. 슬프고 괴롭기도 하고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둘러싼 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무섭고 위험이 도사리는 건 처음과 똑같다. 그러나 아이들은 점차 변하고 있었다. 저세상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을 매순간 겪으며 단련된 아이들은 마음가짐부터가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변해 있다.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스스로가 결정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책임지는 법을 배운 아이들은 강인했고 동시에 지난날의 상처들을 되돌아보고 포용할 줄 알았다. 그동안 놓쳤던 것들을 다시 꺼내서 진득하게 바라볼 여유가 생겼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눌 줄 알게 되었다.

 

 뜬금없지만 이런 말이 떠올랐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란 말이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말을 부모와 자식, 그러니까 가족 관계로 한정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말은 가족관계를 넘어 사회에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었다. 아이가 비뚤어지는 원인은 비뚤어진 사회를 만든 비뚤어진 어른에게 있다고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글의 내용 중, 미강이 한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부모들을 넘어설 만큼 잘 커야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부모들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부모는 아이들의 심장 모서리를 갉아 먹는 종벌레였다. 대장에게도, 레몬에게도, 미강에게도. 그리고 틀림없이 룩에게도 징그러운 종벌레들이 붙어 있었다.’

  겉으로 보았을 때, 이 말은 어른에 대해 비판하는 것 같다. 부모를 닮는 것에 대해 분하고 억울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진득하게 보고 있으면, 이 말이 어찌 보면 어리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끈질기게 심장에 달라붙었다는 종벌레. 겉으로는 티격태격하지만 좀처럼 떨쳐버릴 수 없는 게 부모인 것 같았다.

 

 아이에 대한 어른들의 영향력은 그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크다. 유행처럼 퍼져나간 좀비 바이러스처럼 그러한 영향력을 어른들이 간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조차 자신만의 가치관과 생각, 그리고 감정이 있다. 이는 어른과 다를 게 없이 아주 세밀하다. 어른이 없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용케도 자기들끼리 잘 살아간다. 하지만 위태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린 아이에게 아슬아슬한 징검다리를 건너게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리기 때문일까. 거침이 없었고 목표에 대해 뚜렷한 의지가 있었다. 위태로움 뒤에 예상치 못한 강인함이 아이들이 흘리는 땀방울을 눈부시게 빛내는 것 같았다.

 

 탁 트윈 결말 앞에서 솔직한 심정으로는 행복한 결말을 바랐다. 내가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른들은 현실에서 가당키나 할까, 라고 생각하는 해피엔딩이 아이들에겐 새로운 의지를 북돋게 하고 속앓이를 했던 고민에 대해 해결책이 되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말은 활짝 열린 창문과도 같았고, 앞으로 독자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미소가 돌 만큼 싱그러운 바람을 느낄지 아니면 매섭게 부는 찬바람을 느낄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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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으로 난 길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6
현길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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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다. 고이지 않고 흘러가는 물이 건강한 물이다. 이를 테면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코앞에 닥친 상황에 물러섬 없이 뛰어들어 겪어보아야만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삶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안정만 누리는 삶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복지회관에서 봉사를 했을 때가 기억난다. 단순히 문서를 작성하거나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나 하겠지 싶어 신청했던 봉사였다. 봉사 시간 내내 내가 있을 곳은 사무실 책상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담당 봉사자의 부재로 인해 나는 의도치 않게 어르신들 곁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자기 옷도 빨아 입은 적이 없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옷, 심지어 이물질과 침이 범벅된 옷감을 세탁하는 일은 참 고역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엔 ‘이딴 봉사, 다음에 또 할까보냐.’하며 이를 박박 갈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방학마다 그곳을 다시 찾아 또다시 고역을 치루고 이를 갈고, 그러다 다음 방학에도 와서 어르신들을 뵈었다. 이가 다 갈려 없어지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스스로의 행동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건 아무래도 어르신들의 식사를 도와드리며 복지회관을 청소하고 마사지나 윷놀이 같은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을 어르신들과 하면서 정이 든 것이 아닌가 싶다. 달갑지 않은 일을 계속 해도 좋을 만큼.

 

 만약 낯설고 어렵다는 이유로 봉사를 관두었다면, 지금의 나는 알고 있었을까. 옷감에서 나는 침 냄새는 살아있기에 날 수 있는 향기이고, 흐르는 물은 그 어떤 오물일지라도 아무런 기색 없이 그것을 손으로 씻겨낼 수 있다는 것을. 또는 어르신들이 겉모습과는 다르게 노래를 부를 수 있고, 경쾌하게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의 미소는 근육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을까. 만약 내가 고여 있었다면 이런 소중한 깨달음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 싶다.

 

 ‘사막으로 난 길.’이란 책은 옛 기억을 회상하게 해준다. 그것은 정말이지 신기한 경험이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새로운 공간에서 일찍이 겁부터 먹고 뒷걸음쳤던 과거의 나를 이렇게 기분 좋게 떠올릴 줄이야. 그 당시엔 날 에워싼 세상이 죽고 싶은 만큼 무섭고 싫었는데, 어느새 미소가 돌게 하는 추억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주인공 ‘세철’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을까. 내 또래인 세철 또한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을 추억삼아 웃을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세철은 고향인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 가는 커다란 모험을 하고자 한다. 자신에게 너무도 익숙한 고향을 등지고 서울을 향한 세철의 마음속엔 서울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옛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을 테지만 더욱 강하게 자리 잡은 것은 아마도, 자신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나 싶다. 제주도에선 누구에게나 인정받았던 세철이었기에 또 다른 새로운 곳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고, 누구나 그러하듯 그 자신감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불행이도, 부푼 설렘을 감싸 안고 온 세철을 맞이한 건 서울의 무정한 모습이었다. 옛 친구들과 형이 있을 서울에 대한 환상 속에는 전혀 인연이 없을 상황에 맞닥뜨렸다. 인심 좋게 생기신 아주머니를 따라 간 것이 화근이었다. 아주머니를 따라서 도착한 창녀 집에서 옥자라는 아가씨를 만났고, 깡패들과 다투기도 하였다. 고향에만 고여 있었더라면 몰랐을 세상의 또 다른 모습들을 서울에서 보고 겪으면서 세철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능숙함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매 사건마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정리하여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세철을 보며, 그의 삶의 자세를 내 일상생활에 적용하고 싶었다. 세철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세철에게 강한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그 모든 것들이 가능했으리라 싶다.

 

 책은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이 순간 책을 읽었다고 하기 보단 ‘세철’이라는 멋진 소년과 만나 벤치에서 빵을 나눠먹고 왔다고 여기고 싶다. 우리 둘 다 그 당시엔 힘들고 괴로웠던 과거를 기쁘게 회상했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따뜻하게 서로를 격려했다. 세철이나 나나 성공도, 실패도, 후회도 나중엔 웃으며 떠들 수 있을 만큼으로 남아 삶을 채워나간다는 것을 깨닫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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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소울 스키마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5
박은몽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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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읽는 내내 답답했다. 경찰에 신고하면 되지!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되지! 또 거기 공원은 왜 가는 거야, 바보같이! 별의 별 생각을 다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답답해 죽을망정 욕할 수는 없었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5살 때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동경했던 멋진 어른의 유형은 짧은 치마를 입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멋쟁이인데다가 가장 높은 곳에서 군림하여 주변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벌벌 떨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자연이 그런 유형이 되었고 그와 비슷한 유형인 아이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때때로 나는 지수가 되기도 하고, 아경이가 되기도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지냈던 것 같다.

 

 만약 그때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보면, 내 대답은 ‘아니요’다. 키도 150cm 정도 밖에 안 되는 애가 어른인 척, 그것도 불량배 흉배를 냈었다고 생각하면 괜스레 손, 발에 쥐가 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들이 없었던 일이었으면 하냐고 물어보면, 그것 또한 ‘아니요’다. 그때의 미성숙한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성숙한 내가 있게 된 것이니 말이다.

 

 이 책에선 두 청소년 친구들이 나온다. 늘 학업을 강요하는 어머니가 질린 나머지 가출을 시도한 강아경과 재혼 준비에 바쁜 아버지와 학교 친구들에게서 소외받는 심아경이 그 인물들이다. 둘은 이름도 비슷하고 또 무언가를 피해 도망치지만 갈 데 없는 점도 똑같다. 같은 처지인 두 사람은 마치 미리 준비된 운명처럼 급속도로 서로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느새 서로의 아픔에 가슴 아파하는 정도가 되어 나중엔 시간을 공유하는 소중한 사이가 된다.

 

 이 부분은 아름다운 우정이라고 감탄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들 주위엔 그들을 이해해 줄 어른이 없기 때문에 또래인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건가 싶어 마음이 먹먹하다. 일반적으로 친구보단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더 효율적이지 않나. 그러고 보면 그만큼 아이들에게 있어서 어른은 그리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 것 같다. 상담실 앞에 있는 ‘무엇이든 이야기하세요. 도와드립니다.’라 적혀있는 표시판을 보고 코웃음 치는 아이들이니 말이다.

 

 [차라리 세상이 원하는 방식대로 존재할 수 있어야 사는 게 훨씬 쉬울 것이다. 눈 두 개를 원하면 눈 두 개를 달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원하는 방식대로 존재할 수 있다면 불편한 시선을 느끼게 될 일도 없을 텐데…….<중략> 눈이 두 개 달린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눈 하나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그저 달아나고 싶을 뿐이었다.]

 

 어른들이 가진 잣대가 아이들을 숨막히게 하고, 결국 그들을 세상 끝으로 내몰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자신이 설 곳을 찾을 수 있을까. 그래서 방황하고, 또 도망치는 것이다. 아무런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말이다. 이때, 어른들이 정말로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상처를 더욱 벌리는 것이 아니라. 방황하는 그들에게 돌아올 곳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제든지 돌아와도 변함없이 따뜻할 미소와 안락할 품을 제공한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매서운 눈보라가 불어 혼란스러웠던 아이들의 마음에도 곧 봄은 오기마련이다. 방황하던 15살의 나를 끝까지 붙잡았던 어머니의 말랑말랑한 손처럼 봄은 당연한 곳에서 올 것 이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어른들께 이렇게 전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잊되, 당연한 것은 잊지 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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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가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4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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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중학교를 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그 당시 내 주변엔 도범이나 대호같은 아이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의 고등학교와 비교하면 정말이지 짐승들과 학교를 다닌 건 아니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릇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배움과는 담을 쌓고, 그늘 진 곳에서 주먹질이나 하던 아이들에겐 늘 무시무시한 소문들이 뒤따랐는데, 그러한 소문들은 대개 과장되어 있거나 허구가 섞여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불행한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그 아이들에게 시선이 가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하루는 책가방에 넣어 두었던 지갑이 사라진 적이 있다. 문제집을 살려고 가져온 돈들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던 것 같다. 내 사정을 들은 선생님께서는 반 아이들을 둘러보며 지갑을 본 사람 없냐면서 말씀하시다가 어느 한 곳에 시선을 두셨다. “네가 가져간 건 아니겠지.” 선생님께서 본 아이는 교내에서 악명 높기로 소문 난 아이였다. 그 애는 선생님의 말씀에 방방 뛰며 분개했다. 사실 나 또한 그 아이를 의심한 사람 중 하나였다. 늘 학교 폭력 같은 사건에 연루되었던 아이였으니까.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우습게도 지갑은 집에서 발견되었다. 책상 위에 놓고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었다.

 

이 책에서는 귀엽지만 말을 안 듣는 중학교 2학년 아이들과 열정적이지만 생각이 많은 도서관 선생님이 등장한다. 그간 수산나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형설중학교으로 발령받은 수인 선생님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그러나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우중충한 도서관과 거침없는 아이들을 마주하는 순간, 기대는 온데간데없이. 걱정만이 주를 잇는 날들을 보내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수인 선생님은 독서회라는 방과 후 반을 담당하게 되고, 그곳에서 특별한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도범, 이담, 해명이 대표적으로 그 축에 속한다. 아버지의 잦은 발령 외에 본인의 폭력 사건으로 인해 매 번 전학을 해야 했던 도범과 아이들 사이에서 존재감 없이 배회하는 이담, 그리고 혀 짧은 소리가 콤플렉스인 과묵한 해명은 처음엔 아주 불안정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수인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변하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 나를 바로 봐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깨달음이 그 아이들로 하여금 세상을 삐뚤어지게 보던 시각에 올바른 지표가 되어주었다. 도범이 더 이상 폭력을 쓰지 않고, 해명이가 망치 대신 책을 들고, 이담이가 책과의 대화 능력을 고백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특별한 만남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인 수인에게도 확실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서로가 갖고 있었던 불안과 고통이 그들의 삶에 있어서 의미 있는 결실이 되고 있었다.

 

그런 과정을 수인의 어머니께서는 [중닭]으로 빗대어 말씀 하신다.

"(중닭은) 뼈도 자라고 날개도 자라고 깃털도 자라야 하니께 만날 가려운 겨. 미치도록 가려운 거여. 부리고 날개고, 등이고 비밀 곳만 있으면 무조건 비비대로 보잖어.

어디에서 어디로 넘어가는 것이 쉬운 법이 아녀. 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갈 수 있는 겨. 애들도 똑같어. 제일 볼품없는 중닭이 니가 지금 데리고 있는 애들일 겨. 병아리도 아니니께 봐주지도 않지. 그렇다고 폼 나는 장닭도 아니어서 대접도 못 받을 거고. 뭘 해도 어중간혀. 딱 지금 니가 가르치는 학상들 아니것냐."

 

어머니의 말씀은 마치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면박을 주기 보다는 바른 쪽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따스하게 지켜봐주어야 한다는 의미 같았다. 물론 이것은 아이로 한정되기 보단 어른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때때로 자신의 앞에 놓인 일에 관하여 불안해하는 모두가 중닭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은 너무 가려워서 힘들고 괴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 가려움은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것을.

 

“to be continued." 순간, 순간의 단편들만 보았을 땐 변화가 없어 보이는 반면에, 그것들을 길게 늘여놓았을 때야 비로소 그 변화들이 확연히 보이는 것처럼. 순간의 모습만으로 그 이상의 미래를 감히 평가하거나 가늠해선 안 된다. 이것이 이 책이 내게 준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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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플라이즈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3
수잔 거베이 지음,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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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서린만큼은 아니지만 나 또한 흉터 때문에 얼굴 붉히거나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며 속앓이한 적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엔 반점만한 흉터가 코에 있는 경우였는데, 남들 눈에 잘 보이는 위치에 있는 흉터였기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상대방은 정작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도, 나 혼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유추하여 상처입고 괴로워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쓸데없는 집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것에 얽혀있어서 그동안 많은 기회와 보상을 번번이 놓쳤었다. 좀 더 자유로웠다면 지금의 내 처지가 한결 나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진정으로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 책에는 나보다 더 커다란 흉터를 가진 여자 아이, 캐서린이 나온다. 그녀는 어릴 적에 화상을 입게 되고, 셀 수 없이 많은 수술을 받는다. 몇 차례의 이식 수술을 통하여 점차 나아지지만, 여전히 한 쪽 몸을 덮은 흉터는 늘 그녀를 옥죄어온다.

 

 그녀의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헌신적인 어머니, 의젓한 언니인 레이첼, 상냥한 친구 제시. 그리고 어른스런 남자친구 윌리엄같이 말이다. 그런 좋은 사람들이 곁에서 기다려주었기 때문에 흉터에 절망적이었던 캐서린이 비로소 그에 대해 극복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내 주변엔 캐서린 같은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녀가 얼마나 상처받았고 또 얼마나 고독을 느꼈는지에 대하여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거니와 섣불리 격려의 말을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앞서 내 경험을 쓴 것에도 너무 지나친 건 아닌가 싶어 미안하기도 하다. 이는 캐서린이 제시의 손톱만한 흉터를 부러워했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나, 제시의 말이 얼마나 부러운 표현이었을까 생각하면 그녀를 배려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러나 굳이 변명해보자면 그런 식으로나마 그녀의 아름 한 자락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왠지 그래야만 그녀가 좀 더 힘을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공유되는 배려와 헌신, 그리고 신뢰만이 ‘치유’를 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책을 통해 배웠다.

 

 결과적으로 캐서린은 자신의 흉터를 자신의 삶 가운데서 받아들인다. 그동안 피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었던 아픔조차도 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놓쳤던 기회들을 다시 거머쥐고자 다짐한다. 제목 그대로, 그녀는 ‘나비’였다. 연약해보이지만 아픔마저 사랑할 수 있는 강인함이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찢어지기 쉬운 연약한 날개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기후를 찾아 장거리를 이동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 나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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