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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비뚤어지다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7
진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9월
평점 :
책을 덮자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그 아이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꼭 한 명씩은 있는, 전교생들의 무시와 조롱을 오롯이 당해야 했던 아이였다.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몸에서 나는 냄새와 자신감 없는 우울한 분위기가 늘 원인이었다. 복도에서 그 아이와 마주친 학생들은 별 것도 아닌 걸로 시비를 걸곤 했다. 학생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업 때 마다 교실로 들어오신 선생님께서는 분명 아이들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묵묵히 수업을 진행하셨다. 복도에서 다른 학생들이 왕따를 향해 내뱉는 욕설이 교무실에는 닿지 않는 걸까. 단 한 번도 교무실문이 제때 열린 적이 없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의 모습이 괴물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선생님 밑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도 괴물이 되는 것 같았다. 마치 수업을 통해 감염이라도 되는 것처럼. 왕따를 묵인하고 방관하는 선생님을 보며 아이들도 왕따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새 학기가 되었고 새로운 아이가 전학을 왔다. 전 학교에서도 그저 그런 취급을 받았던 그 아이는 곧 기존의 왕따 아이의 배턴을 넘겨받게 되었다. 동시에 전교생의 표적은 전학생에게 옮겨졌다. 그 이후 당연하다 듯이 전학생을 괴롭히는 무리 속에 처음에 왕따를 당했던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 아니었나 싶다.
‘좀 비뚤어지다.’라는 이 책에서는 아주 용감무쌍한 가출 청소년들이 나온다. 가족들에 대한 마음이라든지 외로움을 견디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모인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 앞에 큰 재앙이 닥친다. 세상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명 여배우를 시작으로 급속도로 세상에 퍼진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현관문 밖은 시체가 난무하고 비명소리와 짐승의 울음소리로 들썩인다. 또한 곳곳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노리는 좀비들이 흉측한 모습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껏 받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들은 그 어떤 도움도 없이 살아야만 했다. 주위에는 도움을 청할 기관도, 어른도 없었다. 스스로가 식량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했다. 미강, 대장, 참모, 현웅, 레몬, 분도 그리고 룩.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좀비들과 치열한 결투를 벌인다. 그 과정에서 그간 동고동락했던 동료를 잃기도 한다. 슬프고 괴롭기도 하고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둘러싼 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무섭고 위험이 도사리는 건 처음과 똑같다. 그러나 아이들은 점차 변하고 있었다. 저세상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을 매순간 겪으며 단련된 아이들은 마음가짐부터가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변해 있다.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스스로가 결정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책임지는 법을 배운 아이들은 강인했고 동시에 지난날의 상처들을 되돌아보고 포용할 줄 알았다. 그동안 놓쳤던 것들을 다시 꺼내서 진득하게 바라볼 여유가 생겼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눌 줄 알게 되었다.
뜬금없지만 이런 말이 떠올랐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란 말이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말을 부모와 자식, 그러니까 가족 관계로 한정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말은 가족관계를 넘어 사회에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었다. 아이가 비뚤어지는 원인은 비뚤어진 사회를 만든 비뚤어진 어른에게 있다고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글의 내용 중, 미강이 한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부모들을 넘어설 만큼 잘 커야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부모들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부모는 아이들의 심장 모서리를 갉아 먹는 종벌레였다. 대장에게도, 레몬에게도, 미강에게도. 그리고 틀림없이 룩에게도 징그러운 종벌레들이 붙어 있었다.’
겉으로 보았을 때, 이 말은 어른에 대해 비판하는 것 같다. 부모를 닮는 것에 대해 분하고 억울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진득하게 보고 있으면, 이 말이 어찌 보면 어리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끈질기게 심장에 달라붙었다는 종벌레. 겉으로는 티격태격하지만 좀처럼 떨쳐버릴 수 없는 게 부모인 것 같았다.
아이에 대한 어른들의 영향력은 그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크다. 유행처럼 퍼져나간 좀비 바이러스처럼 그러한 영향력을 어른들이 간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조차 자신만의 가치관과 생각, 그리고 감정이 있다. 이는 어른과 다를 게 없이 아주 세밀하다. 어른이 없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용케도 자기들끼리 잘 살아간다. 하지만 위태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린 아이에게 아슬아슬한 징검다리를 건너게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리기 때문일까. 거침이 없었고 목표에 대해 뚜렷한 의지가 있었다. 위태로움 뒤에 예상치 못한 강인함이 아이들이 흘리는 땀방울을 눈부시게 빛내는 것 같았다.
탁 트윈 결말 앞에서 솔직한 심정으로는 행복한 결말을 바랐다. 내가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른들은 현실에서 가당키나 할까, 라고 생각하는 해피엔딩이 아이들에겐 새로운 의지를 북돋게 하고 속앓이를 했던 고민에 대해 해결책이 되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말은 활짝 열린 창문과도 같았고, 앞으로 독자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미소가 돌 만큼 싱그러운 바람을 느낄지 아니면 매섭게 부는 찬바람을 느낄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