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하여 클래식 라이브러리 14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김현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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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월에도 '체홉읽기'는 계속 진행중이다.

참 많은 출판사에서 체홉의 단편집이 나와 있지만,출판사마다 개성이 보이지는 않는다. 거의 비슷한 작품들의 향현.. '피고인' 이란 제목은 처음 들어본 제목이라 'arte' 출판사의 <사랑에 관하여> 단편집을 골랐다. '피고인'이 눈에 들어 올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있고, 조금은 예상되는 이야기일거라 생각하면서도 읽었다. '피고인'에 집중된 이야기일지 '판사'에 집중된 이야기일지... 정의로운 판사 보다, 억울한 피고인이 소설에는 더 많이 등장하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서 체홉이 그려낸 '피고인'이 궁금했다. 아주아주 짧은 소설이다. 길었다면 피곤했을지도 모르겠다. 정의롭지 않은 판결에 구구절절 서사를 담아낼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 잘 알고 나서 판결을 하셔야지,제대로 체벌을 준다 하더라도 그러려면 양심적으로다...."/17쪽

그런데 체홉의 '피고인'은 정의롭지 못한 판사와 구질구질한 피고인이 등장한다는 것이 매력포인트가 아닌가 싶다.피고인이 모두 억울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탄핵의 시간을 지나면서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절도는 문제되는 것이 아니며, 판사는 '양심'적으로 판결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그러니까 판사 입장에서는 억울(?) 할 수 있다고 항변 할 수도 있겠다. 철도 사고가 났는데, '너트'가 빠진 것이 이유인 것 같고, 마침 데니스의 집을 압수수색했더니 '너트'가 발견되었다.문제는,증거가 아니라, 정황이 그렇다는 거다. 자신은 너트를 세몬의 아들에게서 받았고, 낚시하는 이들이 더 많은 너트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판사는 단호하게 '거짓말' 이라고 말한다. 가택수사를 하고도 황금폰을 찾아가지 않았다는 방송을 봤다. 뭐 이런식의 열거는 수없이 많다. 그냥 궁금하다. 판(대부분은 아니겠지만)들은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도대체 왜 어려운 걸까... 그건 자신의 잘못을 모른채 판사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려고 하는 피고인도 마찬가지다. 체홉이 놀라운 건 '피고인' 이란 제목으로 뭔가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 아니란 점이다.(독자의 오독일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얼마나 '양심'에 위배되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역자의 후기에서 '피고인' 이란 작품이  '체호프의 유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실렸다는 설명을 읽었다. 러시아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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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소설집 音樂小說集
김애란 외 지음 / 프란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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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한국문학'에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 미안해질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나고 있다. 모두 들어본 작가들의 이름이라 반가웠고, 음악을 주제로 써내려간 소설이란 점도 흥미를 끌었다.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 덕분에 멋진 음악을 만날수 있어 좋았다..고 생각한 순간 윤성희 작가의 '자장가'는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편혜영 작가의 '초록 스웨터' 는 오롯이 나만 알고 있던 감정에 대해  누군가와 공유한 기분이 들어 또 다시 울컥했으나 뭔가 개운함도 느껴졌다.분명 슬픔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음에도 마냥 우울하지 않았다. 앞서 <명랑한 유언>이란 에세이를 읽은 탓일 수도 있겠지만, 죽음과 잘 마주해야 하는 이유들에 대해 끝임없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불현듯 이모에게 내가 느낀 상실감을 말하고 싶어졌다. 그동안 내게 "시간이 흐르면" 하고 시작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그런 말은 하지 않는 사람보다 기어이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나도 그 말에 의지했지만 그 말은 진실이 아니었다. 시간은 그냥 흘러갈 뿐이고 마음은 여전했다(..)"/196쪽 '초록 스웨터' 


엄마와 이별하고 난 후, 가장 현실감 없는 위로가 '시간이 흐르면' 이라고 하는 이들의 말이었다. 맞는 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대 와 닿을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그러나 시간이 흘러간 덕분에.. 그리고 엄마가 '슬픔'만 남겨 두고 간 것이 아니란 그 말도 와 닿아.울컥하면서도 기분 좋은 기분이 들었다. 내 주변에는 아직 엄마와 이별한 지인들이 거의 없다보니, 저와 같은 말을 할 때면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 하는 지인도 여럿 있다.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위로란 것이 있을까.. 특히 '말'로 전하는 위로는 경험상 크게 와 닿지 않는다.특히 '시간이 지나간다'는 말은,전혀 따뜻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나주이모처럼 무심한듯 엄마의 추억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이들이 실은 더 고맙다.추억을 이야기하다 보면 마냥 슬퍼지는 것만은 아니니까..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으면서 '안녕'이란 단어를 생각보다 가벼이 생각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윤성희 작가의 '자장가'는 정말 슬프다. 그런데 글을 너무 잘 쓰셔서..주변에 마구마구 권하고 싶었다. 죽음은 슬프지만, 그럼에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로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서로 다른 작가가 써내려간 '음악'에 공통분모처럼 등장한 죽음,혹은 이별...을 따라 읽다가, 은희경작가의 음악(?) 홀스트에서 결국...그런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어느 긴 터널을 지날때 듣게 되었던 홀스트의 음악은,내게 단순히 우주의 어딘가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 좋은 상상만을 허락해 주었는데, 소설 덕분에 상세(?)히 홀스트의 음악 강의를 듣게 된 것도 좋았지만, 탄생보다 소멸을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에 밑줄을 긋고,죽음은 우리에게 고통 이외의 것은 허락하지 않는 다는 걸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윤성희 작가의 '자장가'와 편헤영 작가의 "초록 스웨터' 와 같은 이야기가 좋은 거다. 죽음이 정말 우리에게 고통(만) 주는 건 아니라는 걸 들려주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 다음에야 평화를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혼연한 쾌락 다음에는 곧바로 늙음이 찾아들며 초자연적인 상상력을 통해서만 비로소 납득이 되는 존재의 소멸,그것이 구스타브가 생각하는 인생의 궤적이었다. 그리고 소멸은 탄생을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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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조용히 보내는 한 주가 될 전망이다. 소란스러움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작가도 있지만 샤토브리앙을 들고 앉으려면 조용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스타일에 가려 뉘앙스를 너무 많이 놓친다.


샤토브리앙은 <무덤 저편의 회고록>중 상당 부분을나폴레옹에 할애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영웅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나중에는 폭군으로 그려진다. 이 환멸의 연대기를 보니 이와 유사한 과정을 겪는 애정과 결별의 관계들이 떠오른다. 지드와 스탈린,손태그와 카스트로... .


제 자신을 향한 것처럼 들리는 힐난 한 마디. "세상은 나폴레옹에게서 그의 승리만을 본다"


나폴레옹이 행한 폭정에 대해 샤토브리앙이 묘사한 것은 거의 모든 독재 정권에 적용될 수 있다 /101쪽











<독서일기>를 언제 또 읽게 될까 싶어 정리를 하려고 하다가,무심코 넘긴 페이지가 아직 떠나 보낼때가 아니라고 알려준다. 탄핵의 시간을 보내는 사이 '환멸의 연대기'가 같은 말로 이해되더니.. 세상이 나폴레옹에게서 '승리'만 보려 한다는 샤토브리앙이란 이가 궁금해졌다. 어쩜 이렇게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지... <무덤 저편의 회고록>을 읽어보려고 했더니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책은 <나폴레옹과 샤토브리앙>이다. 읽어야 할 책이 이렇게 한 권 더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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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년 전 아침, 부엌 식탁에서 사과를 깎는데 곁에서 커피를 내리던 헌수가 '러브 허츠'를 틀었다"/9쪽


음악이 주인(?)공인 소설이니까..'러브 허츠' 제목을 읽는 순간, 바로 음악을 찾아 들었다. 마법처럼 끌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느껴지는 그 순간이 있었다 '안녕'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생각하는 순간.. 소설 속 대화를 다시 찾아 읽어야 했다.


"방금 들었어/ 뭘?/ 안녕이라 하잖아/ 누가? " /11쪽


팝송에 '안녕' 이란 말이 언급될 리가 없다. 그렇지만 또 요즘은 시대가 또 다르니까.어느 가수는 '고요한밤 거룩한 밤'이란 노래를 대략 20개가 넘는 언어로 불렀다는 걸 지난해 클래식라디오방송에서 들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니깐, '안녕' 만큼은 한국어로 불렀을 수도 있지 않을까.그러나 어디까지나 '안녕이라 그랬어'를 재미있게 풀어갈 출발점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다만) 반복해서 들어도 '안녕'이라 들리는 묘한 마법. 누군가에게 '안녕'이란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이 소설 속 인물에게 있었던 건 아닐까. 무심코 했던 '안녕'이란 말에 또 다른 의미들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으니까.무심코 '안녕' 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텐데, 누군가는 상대방이 '안녕' 이라고 말해주길 바랄수도 있구나..그리고 차마 '안녕' 이란 말 속에 담지 못할,바람이 담긴 인사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아주 짧은 이야기였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킴 딜이랑 로버트 폴러드의 특별출연(?)덕분에 유쾌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상투적인 인사도 때론  필요할 수 있겠구나. 나는 그냥 무심코 '안녕' 이라고 인사했을 뿐이지만, 상대방은 그 '인사'에 많은 의미를 담을수도 있겠구나.마치..아주 특별한 관심을 받은 것 같은 그런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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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저 내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앞에서 매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을까? 마치 살면서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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