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0427 (Jeanne_Hebuterne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042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4월 27일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07 Nov 2026 13:17:28 +0900</lastBuildDate><image><title>Jeanne_Hebuterne</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77282198111142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042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Jeanne_Hebuterne</description></image><item><author>Jeanne_Hebuterne</author><category>K</category><title>내겐 너무나 어려운 너 - [너라는 생활]</title><link>https://blog.aladin.co.kr/0427/17597425</link><pubDate>Wed, 28 Oct 2026 07: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0427/175974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4801&TPaperId=175974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151/81/coveroff/89546748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4801&TPaperId=175974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너라는 생활</a><br/>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09월<br/></td></tr></table><br/>내가 한 마디를 하면 언니가 두 마디, 세 마디를 했다. 누구나 할 법한 이야기이고 틀린 말이 아닌데도 듣다보면 묘하게 기분이 상했고 뭔가 말을 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졌다. 대화는 적당한 속도로 차분하게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덜컹거리며 엉뚱한 방향으로 이어졌고 매번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br><br><br><br><br>숫자와는 도통 익숙치 않은데......이상하게도 숫자를 다루는 일을 했었고 종종 지금도 물끄러미 숫자들을 들여다본다. 거짓이 없고 그간의 사정을 보여주는 차별없는 객체이자 주체로서의 숫자들을.&nbsp;1983년 태어난 한국 여성작가의 2020년 출간작. 표지에서부터 숫자가 나온다. 너라는 생활. 너, 2인칭. 이걸 독일어나 영어로 옮긴다면...이때의 '너'는 2격일까 3격일까. 이런 생각도 해보는데, 생각의 경로는 단편 전체가 관통하는 주제의식이었다. 대체 이 낯익은 지옥과 낯선 일상, 영원히 모를 천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이런 일에는 아직도 어리다. 그럴 나이, 아닌데도 이 나라 말, 잘 모릅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까지 원치 않는 덤처럼 따라온다.<br>&nbsp;&nbsp;&nbsp;여덞 편의 단편 속을 관통하는 여덟 사람의 너는..요령있다가도 답답하고,(3구역, 1구역) 어두운 캠퍼스에서 내가 답을 내리게끔 했고(다른 기억), 거절의 열패감과 위협의 당혹감을 연이어 드러내기도 했다(너라는 생활). 이런 사람들도 우리가 배려하며 서로 양보하며 살아야지, 라는 말을 듣고도 고개를 주억거렸었고(자정 무렵), 평온하고 조용한 주말을 보내고픈 내 바람은 무시하고 왜 내가 사과하냐고 언성을 높였고(동네 사람), 성실히 장사하는 사장님인지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인지 나를 헛갈리게 했고(우리는), 그 언니 때문에 헤어질 수 있는 한해빠진 옛 연인이기도 했으며(아는 언니) 광장이라는 신기루 같은 오지 않은 시간을 나누던 사람(팔복 광장). 이 전부가 다 이 소설집 속의 너인데......<br><br><br>&nbsp;이 모든 소설집 속 너의 모습들은 너를 하나의 소유와의 주체로 볼 수도, 너의 동작과 생활이 향하는 대상, 그 수여 대상을 나타낼 수도 있다는 나 개인적인 생각. 이 책을 여러번 읽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데, 그 중 하나가 도통 알 수 없는, 분통터지게 만드는 너라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쉬었다가도 재개해오는 침범이다. 너에게 닿으려면 이래야만 하나. 너의 소유에서 나의 소유로 넘어와야만 하는 걸까. 그 사이, 시인 황인숙의 시 '강가에서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처럼, 꼭 그래야 한다는 듯 선을 하나 그어둘 수는 없는 걸까. 라고 한다면, 차라리 성경의 누가복음 한 구절이 답으로 적당할 듯하다.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br><br>&nbsp;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해와 관용의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왜 상대의 무지가 나의 관용의 이유가 되어야 하나. 살아간다는 일은 때로는 환상같으면서도 때로는 고단해서, 이 얽히고 섥힌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사실의 크기를 조각내 보곤 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해할 수 있고 내가 납득할 수 있고 내가 좋게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사이즈로 작게 줄여보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김혜진의 소설집에서 이 노력은 배경음처럼 깔려 있는데, 문제는 이 배경음이 '너'라는 상대에게는 때론 지나치게 크거나 작게 들린다는 지점에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나에게도 그 문제는 마찬가지다. 너의 노력들이 과연 노력이 맞기나 한가 싶게 의심스러운 순간&nbsp;<br><br>&lt;아는 언니&gt;와 &lt;자정 무렵&gt;에서 그 의심스러운 순간은 균열, 불균형, 실금으로 서서히 깔리기 시작하는데 더 신기한 것은, 이 균열의 결말은 불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짜장면과 짬뽕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닌,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네가 선물하고 싶어하니까 비좁은 마을 연구소라는 공간에 너무 커서 도대체 어떻게 자리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양문형 냉장고를 같이 선물하고, 네가 좋아하니까 나는 알지도 못하는 아는 언니를 만나게 되는데 아, 좀더 세련되기란 어려운 걸까. 읽다보면 느껴지는 탄식은, 이제 내가 이런 종류의 호혜적 마음을, 상대방의 나를 향한 친절을 단번에 이해하게 될 정도로 경험치가 쌓여버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있는 슬픔이 너무 많아져서 더는 어떤 종류의 영화나 소설에 등을 돌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해해버려서 찜찜한 친절도 있다는 뜻.&nbsp;<br>아,맞다. 요 아래 이번에 새로 이사온 커플도 여자분들이에요. 가까운 데 살면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하고. 좋을 것 같아.-자정 무렵<br>&nbsp;여기 길이 있어요? 여긴 아파트 단지라 막혔을 텐데.다 왔어요. 바로 여기예요. 109동이요.언니의 얼굴에 잠시 난처한 표정이 떠올랐다. 경비실을 지나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른 뒤에야 언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나는 두 사람이 이 아파트 이름을 자꾸 말하기에 부근인 줄 알았지. 여기인 줄은 몰랐네. 정말 생각도 못했네.&nbsp;...집에 책이 많네.쟤 요즘 논문 쓰잖아요.논문? 무슨 논문? 알바 한다고 안 했어?알바야 늘 하죠. 석사 졸업해도 알바는 계속해야 할걸요. 그지?-아는 언니<br><br>&nbsp;아이고. 맵다, 매워. 저 대목에서는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나는 너를 평가해 왔다는 것을......그러다가 보니 이것은 거울 치료인가, 그림자 요법인가. 생각하기에 이르른다. 여자 둘이 사귄다는 이유로 다른 동성 커플을 갖다붙인다면, 그럼 모임에서 이성 부부를 만나 아 우리 옆집에도 부부가 한 쌍 사는데, 만나보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할 노릇인가. 어쩌면 저렇게 상대를 단편적으로 재단하는가, 싶다가도 이 모든 것은 게으름의 죄이다. 상대의 몇십년의 시간을 몇가지 단편적인 사실로 요약하고 평가를 몇 초 만에 끝내버리는 일. 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는 종교인이 아니므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들의 무지함을 이해하여 용서할 수도, 석가처럼 강물이 흘러가게 내버려둘 만큼 지혜롭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알게 모르게 이런 식의 침범에 맞서서 나는, 그리고 너는 지속적으로 경계를 리셋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결국, 이 책을 읽노라면 나는 내가 바라는 편안한 내 집, 그 안에서도 책읽는 방의 안락함과 침범당할 일 없는 생활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아. 김혜진의 소설집 속의 여덟 명의 네가 떠오른다. 나에게 속한 생활이 있다는 것을, 내가 마련한 경계를 인정해두는 것이 중요한 만큼 너에게 속한 생활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 등가교환이 될지 알 수는 없으나 감가상각이라도 면하게, 너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해 보자는 것.&nbsp;<br>&nbsp;굳이 보태자면, 바라보기도 전에 대충 말해버리는 장면들이 이 책에는 꽤 자주 나오는데, 그 대목에서마다 이 책은 서늘해지곤 했다. 바로,<br><br><br><br>그러니까 바로, 그정도 가지고 왜 그래? 라고, 오히려 예민해진 침범당한 사람에게 묻는 얼굴들. 너무 사소해서 따지기도 뭣한데 기껏 말하면 내가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게 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책이라는 생각은, 표제작에서는 그 속에서는 악의와 무지가 섞여 있다가 &lt;자정 무렵&gt;에 이르면 선의에 도달한다. 최선과 무지가 악의의 정점이었건만 선의에 이르면 선의에 취하여 경계를 넘으면서도 그것을 관용이나 도움으로 부르는 사람들.&nbsp;&nbsp;&nbsp;나의 삶에 걱정, 호의, 연민, 선의, 무지, 친밀함, 도움 같은 것들이 경계를 넘어설 때 김혜진은 이 책에서 재차 묻는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내가 너의 생활을 소유했다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면 당신의 생활은 어디까지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경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악의보다 어려운 것은,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자신의 최선을 고집할 때인데, 그럴 때면 상처에 대한 해석권까지 빼앗긴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nbsp;<br><br>&nbsp;이 책을 정치적으로 올바른 책이라고 부르기는 쉽다. 하지만 그보다는, 나는 제대로 질문하는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편이 이 책에도 공정하지 않을까. 서재 다락방님에게 선물받았는데 몇 번이고 읽었던 책. 이제야 더 깊게 생각해본 경계의 책.&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151/81/cover150/89546748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1518176</link></image></item><item><author>Jeanne_Hebuterne</author><category>E</category><title>&amp;lt;Robot dreams&amp;gt; 구월이다! 셉템버를 부르자! - [[수입] Ivan Labanda - Robot Dreams (로봇 드림) (2023)(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title><link>https://blog.aladin.co.kr/0427/17525000</link><pubDate>Sat, 19 Sep 2026 03: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0427/175250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232938518&TPaperId=175250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30/8/coveroff/d2329385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232938518&TPaperId=175250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수입] Ivan Labanda - Robot Dreams (로봇 드림) (2023)(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a><br/>Various Artists / Decal - Neon / 2024년 10월<br/></td></tr></table><br/><br><br><br>구월이다. 셉템버를 부르자, 로봇 드림을 보자!X의 이 제목의 포스팅에는 몽글몽글한 그림의 도그와 로봇이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우연히 본 그 트윗으로 이렇게나 구월만 되면 눈물 바가지를 쏟게 된 것이. 이 대사도 없고 나와 상관도 없는 2D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마음이 손끝에서 눈앞에서 미어지듯이...아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이렇게 거칠게 넘어가도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br><br><br><br>&nbsp;Robot Dreams,&nbsp;파블로 베르헤르의 2023년 스페인, 프랑스 합작 애니메이션<br><br><br><br><br>아마도 1990년대 풍경을 지닌 뉴욕, 혼자 지내던 도그는 로봇을 전화주문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센트럴 파크에 가고, 길거리 핫도그를 먹고, 함께 집에 와서 잠들고, 해변에도 가고. 애니메이션의 결은 생각보다 단순해서 대사는 없고 캐릭터의 양감도 납작하다. 무엇보다도 사소한 것이 가득한 화면. 도그와 로봇이 함께 '충분하다'라고 느낄 때엔 가득차 있던 화면이 로봇의 부재 후에는 그 빈자리를 의도치 않게 드러내는데, 이 모든 화면은 사소함으로 가득하다. 프레임을 아주 크게 잡아 길을 건너는 다른 사람(동물)들, 이 둘과 무관해 보이는 행인들, 길거리의 수정구슬, 지하철, 심지어 나중에 등장하게 될 라스칼이 앞선 장면에서는 둘을 스쳐 지나가기도 하는데, 이 모든 의도는 무엇일까.&nbsp;&nbsp;이 사소함의 축제는 꼭 우리의 생활과도 같아서 번잡스럽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며 숨쉬듯이 스쳐지나가는 모든 일상을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nbsp;<br><br><br><br><br>&nbsp;이런 일상의 디테일과 로봇과 도그의 관계, 만나고 헤어짐, 내 곁을 지나가거나 머무는 모든 사람들을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얼마나 영리한 선택인가. 가득차거나 텅 비는 화면은 이 둘을 효율적으로 보여주다가도 관계의 부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도그가 떠난 뒤 혼자 남은 로봇이 누운 그 막막한 해변이라니. 머물렀던 새들은 머뭇거리다가 너무 커서 먹먹할 지경인 하늘로 떠나고, 이 작품 속에서는 종종 도그와 로봇은 아주아주 작게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이 작은 둘이서 길을 걷거나 롤러 스케이트를 탈 때 마다 그 둘을 보는 내 머릿속에서는 로봇과 도그, 둘만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만들어졌다가, 그 비율이 너무 크다..라고 느끼는 순간 세상에. 해변에 혼자 누운 로봇과 로봇에게 가려다 저지당하는 도그라니. 그순간 캐릭터는 작고, 네거티브 스페이스는 너무 크다, 라고 분석하는 대신 아. 저 작은 존재가 저기에 저렇게 버려졌다니....생각하게 되는 것이다.&nbsp;<br><br><br><br><br>&nbsp;하지만, 무슨 애니메이션이 이렇단 말인가. 9월마다 보면서도 볼때마다 운다.&nbsp;&nbsp;여기에 이 작품의 가장 큰 비밀이 숨어있는데, 보고나면 아무리 기분이 가라앉았더라도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거나 피자를 먹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 친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사진첩에서 내가 한참 밥주던 고양이들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또는 9월이 왔으며, 더 기다리면 12월이 올 거란 생각. 그사이 좋아하는 친구의 생일과 슬픈 기일을 챙기기도 하고 단풍길을 걸어야지, 호박파이를 먹고 시나몬 향 가득한 솔방울도 들여놓아야지....이런 생각들.&nbsp;&nbsp;요컨대 이 작품을 보고나면 이상하게도 삶의 온기가 전해져 오는데 역설적으로 이 작품 속에서 행복한 장면은 초반에 얼마 되지 않는다.나머지는.......헤어지고, 만나려고 하지만 제지당하고, 기다리고 수십번을 상상하지만 찾아갈 수 없고, 심지어는 로봇은 온몸이 분해되기까지 하는데, 그사이 도그는 상심하고 괴로워하고 애쓰다가 경찰에게 끌려가고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하는 불행과 절망과 그사이를 파고드는 소소한 일상으로 가득하다. 이 일상이 대체 무엇일까. 왜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픈데 다 보고나면 행복한걸까.&nbsp;<br><br><br><br><br>&nbsp;아마 이 잔인한 행복의 상당부분은 2D라서 가능해진 면이 있다. 화면은 너무너무 귀엽고 색상은 선명하다. 인물은 동물과 로봇이며 대사가 없고, 이 귀여운 세계에서 갑자기.<br><br><br><br>&nbsp;갑자기 로봇은 해변에 버려지고, 도그가 접근할 수 없고, 다른 존재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희망은 생겼다가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둘이 각자의 삶을 사는 것. 이 모든 것이 대사 없이, 별도의 멜로드라마 같은 초점 없이, 오히려 인물과 공간을 채운 다른 존재들과 함께 보여준다.&nbsp;&nbsp;두 화면이 분할되는 느낌에서 점차적으로 넓은 화면 속에서 둘이 잠시 같이 있었구나, 정도로 변하기까지, 영화에서 활용 가능한 기술이 그 영화의 내러티브까지 만들 수 있다는 기술적, 미학적 부분을 일깨워준다. 기술 자체가 이야기의 문법이 된 셈인데, 결국, 원작의 그림체와 무관하게(원작과 상당부분 유사함) 실사화와 3D까지 가능한 이 시점에 부러 감독이 선택한&nbsp; 2D는 스타일이 아닌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된 것이다.&nbsp;<br><br><br>&nbsp;<br>&nbsp;이 방식 자체가 특이한 것은 아니지만, 유달리 이 애니메이션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앞서 말한 프레임 사용 방식이나 네거티브 스페이스 활용 정도가 아닌.....그저 인물들이 화면 속에 들어왔다 나가버리는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도그는 이 관계에 대해 그 무엇도 배우지 않는다.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다.&nbsp;&nbsp;만약 실사 영화였다면 대사가 생기고, 감정은 좀 더 개인적인 것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인물이 클로즈업되고, 관계의 이름이 가족, 친구, 연인 등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그리고 대체로 화면을 바라보는 우리는 인물이 사건을 겪은 후 무언가를 배우거나, 머물거나, 혹은 앞으로 나아가는 등의 장면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nbsp;이 애니메이션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저 덕 같은 인물은 프레임 속으로 들어왔다가 어느날 갑자기 이유없이 사라지고(엽서 한 장 달랑!), 얄미워죽겠는 개미핥기 커플은 끝까지 짜증나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심지어는 로봇 곁에 머물던 아기새마저 날아가 버리는데 이 모든 것을, 과자봉지 열기 같은 일상이 가득 채우고 있다.&nbsp;<br><br><br><br>&nbsp;&nbsp;그래, 과자봉지! 질소충전 과자봉지를 뜯는 도그의 모습을 화면에서 꽤 여러번 보는데 볼 때마다 아....저거 로봇이 뜯어줬는데. 싶다가 나중에는 버스 안에서 혼자 그것을 뜯으려 낑낑대는 모습을 보면, 있었는데, 없구나. 그런데 하필이면 이 관계가 끊어진 것은 누가 잘못을 해서가 아닌(엄밀히 말하면 도그 네 잘못이다......), 사고였고, 상황이 꼬였고, 각자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쯤되면 생각하게 된다. 저 관계를, 짧은 행복한 순간 이후 나머지는 잔인하기까지 하면서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저 관계. 저 관계는 도대체 무엇인가.<br><br><br><br><br>&nbsp;도그와 로봇을 떠올리다 보면, 많은 것을 함께 나누다가 어쩌다 보니 헤어진 관계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누구 한 사람이 큰 잘못을 했다거나 사랑이 식어 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도그와 로봇, 이 둘을 보자면 둘 사이에는 분명 사랑이라 부를만한 감정이 있다. 꼭 둘의 관계가 무엇인지의 서술은 이름 붙일 필요가 없다. 그저&nbsp;둘의 삶에는 한때 서로가 서로의 중심이었다가, 서로가 함께일 때만 가능해지는 셉텝버 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아, 마침내 영화의 말미를 보면 알게 된다.&nbsp;&nbsp;대체 로봇과 도그, 사는 것이 왜 저리도 힘든지! 하며 보다가도 말미를 보면 이 몽글몽글함을 타고 다른 감각이 전해져 온다. 막상 이 둘이 사랑하다 헤어져서 슬펐다, 라고 본다면 그것은 감정의 시간적 구조를 놓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각자가 그 노래를 들으며 새로운 문법을 발견해 나가니까.&nbsp;&nbsp;&nbsp;헤어지는 것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성공적인 관게였기에 이별이 힘들었던 사건. 어쩌면 너를 잃어버렸다는 감각이 지나가고 나서 너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이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감각으로 끝맺음. 이처럼 가치 계산이 명확한 작품을 두번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행복한 시간은 그것 대로 진짜였고, 끝난 것은 끝난 대로 진짜이다.<br><br><br><br><br>&nbsp;로봇과 도그가 각자 반짝거리는 것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세계.&nbsp;<br><br><br><br><br>&nbsp;그래서, 구월이다! 로봇 드림을 보자!<br>
<br><br><br>덧붙이기 1'9월이다 셉템버를 듣자 로봇드림을 보자'-문장의 출처는 구트현엑의 facingthettruth 님의 계정임.&nbsp;이와 별개로 `9월이다, 셉템버를 부르자`는 9월이면 돌아오는 earth wind and fire 팬들의 meme.<br>덧붙이기 2트레일러 마지막에 이르면 로봇이 부르는 셉템버.<br>덧붙이기 3정확히 말하자면 도그가 로봇과 헤어진 후 한가지 배운 것은 있지만(오일 바르는 대목), 이를테면 관계를 반추한 후 확장시키거나 돌파하는 식의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없다는 의미에서.&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30/8/cover150/d2329385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300853</link></image></item><item><author>Jeanne_Hebuterne</author><category>2026</category><title>흩어져서 마침내 머무는-Chopin Etude Op.25 No.11(winter wind)</title><link>https://blog.aladin.co.kr/0427/17504157</link><pubDate>Wed, 09 Sep 2026 01: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0427/1750415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952938266&TPaperId=175041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477/70/coveroff/c95293826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 class="Apple-interchange-newline">어떤 일을 다시 겪는 열쇠는 시간이 지난 다음의 복기에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그 사건이 어떻게 사라졌고, 무엇이 남았으며, 무엇이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는지를 알게 된다.&nbsp;음악에도 같은 경우가 있는데, 쇼팽을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을 느꼈는가'가 아니라 '그 감정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남아있는가'를 되짚어 보는 데에 있다.<br><br>내가, 혹은 누군가가 느꼈을 사랑, 아쉬움, 애닯음, 아슬아슬함. 천가지의 흔들림, 만 걸음의 발자국. 맑고 푸른 가을의 아침 조용히 흔들리는 나뭇가지, 입술을 만지작거리던 손끝, 커피를 마시던 순간의 움직임.&nbsp;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이제 사랑은 지나갔고 기억이 남았다. 흔들렸으나 동경했고 사랑했지만 말하지 못한 순간도 있었다. 아주 멀리, 또 멀리 각자의 실크로드를 발견하던 순간. 그 먼 시간을 찰나의 거리로 바꾸는 젊음, 그것이 사라진 지금.&nbsp;<br>겨울이 긴 곳에 살아요. 그래서 눈이 많이 내리죠. 커피를 더는 마시지 않고 많이 걸어요. 어떻게 남거나 사라졌을까요.<br><br>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쇼팽을 듣게 되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남았고 무엇이 사라졌는지, 사라졌다 생각한 것마저 내가 어떻게 다시 돌아오는지, 그렇게 사라지고 남고 되돌아오는 시간이 쇼팽에게는 있다. 낙엽처럼 떨어지고 눈송이처럼 쌓이는 시간.&nbsp;쇼팽의 음악은 직접화법을 쓰지 않는다. 감정을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지목하지 않고 그것이 시간 속에서 남고 변형될 여지를 남기는 음악.&nbsp;무릇 고전음악의 많은 경우가 그렇겠으나 유달리 쇼팽이 연주자에 따라 다른 색채를 띠는 듯한 인상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리히터의 아르페지오는 강력한 물성을 만들어내지만 지금 이야기하고픈 임윤찬의 아르페지오는 계속 흐르는 흐름을 이끌어낸다. 즉, 연주자는 글로 쓰여진 음악을 읽는 자가 아니라 시간과 기억의 거리를 이끌어내는 사람이다.&nbsp;<br><br><br><br><br><br><br><br>
<br><br><br><br><br><br><br><br><br><br>그 시간과 기억의 거리는, 리히터의 손끝에서는 강력한 물성이 된다. 특히 겨울바람. Op. 25. No.11 연주를 듣자면......&nbsp;어떤 청음자(=나)에게는 꽤 강력한 기준점이 된 연주인데, 강력하고 무겁고 거칠다. 겨울폭풍이 인간을 덮쳐오듯 속수무책으로 리히터가 만들어낸 음은 양감을 가졌고, 양감이라기보다는 그 질감이 충돌하고, 부딪히고, 마침내 폭풍처럼 덮쳐오는 느낌.&nbsp;&nbsp;&nbsp;소리가 얼마나 큰지, 아니면 세게 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내게는 오히려 음을 툭 놓아버리는 듯한 감각으로 들린다. 한마디로 소리에게 어느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게 할지, 그 음을 공간에 어떻게 놓아둘지를 결정하는 방식이 리히터가 골몰한 문제 중 하나 아니었을까. 음들의 연결이 점처럼 느껴지지 않고 거대한 덩어리처럼 다가오는 순간. 느리거나 빠름의 문제가 아니라 겨울바람의 도입부부터 아예 무언가가 건반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 음의 충돌이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음과 음이 연결되어 서로 밀고 들어가는, 매끄럽지 않은 듯 하지만 역설적으로 물리적인 충돌 없이도 각 음을 가볍게 증발시키지 않는 느낌. 바로 이런 종류의 충돌이야말로 리히터의 겨울 바람의 특징 아닐까. 그의 피아노에서, 감정은 육체가 된다. 건반과 타격, 중량과 중력, 긴장과 충돌이 감정과 분리되지 않아 갖게 되는 물성.<br><br><br><br><br><br><br><br><br><br><br>&nbsp;&nbsp;<br><br><br><br><br>오랜 기준점을 고수해 오다 들은 임윤찬의 겨울바람은, 듣는 순간 이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된 지점이 왔음을 느꼈다. 물론 악보에 많은 정보가 있으나, 연주자가 결정해야 하는 영역 또한 많은데 이를테면 루바토, 프레이징, 템포와 탄력, 악센트, 시간의 흐름을 읽는 능력까지를 감안한다면 임윤찬의 연주는 리히터의 손수건까지 외우던 청자(역시 나)에게는 꽤 당혹스러웠다.&nbsp;&nbsp;하지만,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오류 아닐까. 이를테면 같은 곡을 연주한다 해서 모두 같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루빈슈타인의 겨울바람은 오히려 따뜻하지 않았던가. 흡사 김서린 창밖에는 바람이 모질게 불고, 눈폭풍이 내릴지라도 창 안의 공기는 습기를 먹은 따스함이 있고 마룻바닥은 차갑되 따뜻한 차와 스콘이 있는 듯한 풍경.&nbsp;<br><br>&nbsp;정작 내가 임윤찬의 연주에 당황한 것은, 임윤찬의 연주가 리히터와 달라서라기보다는 내가 오랫동안 안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낯설어 보여서였다. 오랫동안 리히터의 연주를 내가 아는 이 곡의 얼굴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임윤찬의 피아노에서 같은 음악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허공에서 떠다닐 때.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 얼굴은 쇼팽이었을까, 리히터였을까, 아니면 오랜시간 내 기억이 쌓아온 쇼팽이었을까.&nbsp;<br><br>&nbsp;임윤찬의 연주에는 종종 공중에서 음들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음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방향과 흐름을 만들어서 하나의 연주곡이 완결되는 지점에 이르르면 결국 알게 된다. 이 젊은 연주자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무슨 이야기를 이 곡을 통해 하려 했을지. 테크닉이 생각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게 한 흔적이 보인다. 이 고민의 자취는 겨울바람 한 곡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곡이 수록된 데카 음반 전체를 아우르는 그 거리감과 집중력.&nbsp; 각 연습곡이 이어진다기 보다는 하나하나의 풍경 스냅처럼 보이는 음반.&nbsp;<br><br><br><br> <br><br><br><br><br><br>&nbsp;쇼팽의 음악에서는 슬픔이 고통과 같지 않고 고통이라 하여 늘 슬픈 것은 아니다. 수천 개의 기억의 복기가 아닌, 그 기억 속에서 길잃기와도 같은 방향이다.&nbsp;&nbsp;임윤찬의 연주가 다른 연주자들과 달랐던 점이 바로 내가 당황한 지점이었다. 곧, 거칠게 말하자면 처음에는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였다가 두 번 들었을 때엔 얕은 것이 아닌데...였었고 재차 또 들었을 때에는 중력에 덜 붙잡힌 느낌. 바로 이 느낌이 나의 개인적인 기준점에서 훅 떨어진 부분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nbsp;<br><br>&nbsp;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본다. 하나의 악보, 다른 음악이라면 왜 이렇게 많은 인간의 시간이 개입할 수 있는 것인가. 연주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라고 한다면 너무 게으른 방식의 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연주자의 개별성과 보편성을 본다면 어떨까. 우리는 각자 다르지만 누구나 무언가를 사랑하고, 잃고, 후회하거나 기뻐하고 두려워한다. 그 제각각의 닮음이 주는 구조에는 동일한 지점이 있다. 글과 음악이 만나는 바로 이 체크포인트. 원본의 경험을 다른 인간의 보편성으로 밀고 나아가는 사건. 요컨대 연주자는 자신의 삶으로 음악을 읽지만, 그 음악이 자신의 삶만 말하게 두는 것은 아니다.&nbsp;&nbsp;어쩌면 바로 이 지점이 쇼팽이 자주 연주되는 이유 아닐까. 누구든지, 다른 연주자들의 이 음악을 여러번 들어보면 알게될 것 같다. 쇼팽을 듣는다는 것은 이 작곡가의 작품을 듣는 데에서 출발해 결국 듣는 사람 각자가 몸으로 밀고 나아간 시간의 흔적을 확인하는 사건이 된다는 것을.<br><br><br><br><br>&nbsp;<br><br>덧1&nbsp;겨울바람을 중점적으로 들었지만 아, butterfly는 그 아름다움의 간극이 너무나도 커서 아찔할 정도이다. 무중력의 오른손, 전체적인 단단함. 그 고민의 흔적들.&nbsp;<br>덧2아직도 계속 들을수록 다르게 느껴져서, 임윤찬의 연주에 대한 생각은 또다시 바뀔지도. 그러므로 이 글은 리뷰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이 연주가 어떻게 들렸나, 하는 감상문.]]></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477/70/cover150/c9529382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477707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