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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로, 사회, 역사, 문학과 개인 간의 관계를 예리한 감각으로 관찰하며 가공도 은유도 없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이룩했다. 


1991년 발표한 『단순한 열정』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루며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라는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반(反)감정소설이다. 아니 에르노는 발표할 작품을 쓰는 동시에 ‘내면일기’라 명명된 검열과 변형으로부터 자유로운 내면적 글쓰기를 병행해왔는데, 『단순한 열정』의 내면일기는 10년 후 『탐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게 된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통해 작가는 ‘나’를 화자인 동시에 보편적인 개인으로, 이야기 자체로, 분석의 대상으로 철저하게 객관화하여 글쓰기가 생산한 진실을 마주보는 방편으로 삼았다. 

이후 『부끄러움』 『집착』 『사진 사용법』 및 비평가인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교수와의 이메일 대담집인 『칼 같은 글쓰기』 등을 발표했다. 2003년 그녀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되었고, 2008년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선집 『삶을 쓰다』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된 작가로는 최초의 생존 작가가 되었다. -출판사 제공 작가 소개.






 아니 에르노의 세계는 정확하고 명확하다. 추측을 버리고 분명함을 택한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 전경과 후경이 명확히 구분된 글이 그녀의 글이다. 가르치지 않는 대신 일러준다. 고백하고 뇌까린다. 그런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만 그 끝에서 독자가 만나는 것은 독자 자신이다. 

 

 떠난 적이 없다는 말이 떠날 것이라는 말과 겹쳐질 때. 끝을 묻지 않았던 말끝이 끝을 닮아있을 때. 아니 에르노는 그 순간을 칼같이 써내려간다. 질문과 추측. 확신과 대답. 귀에 닿는 노크처럼 무언가의 확신이 아니 에르노의 머릿속에서는 경험과 지식, 교양, 직업, 이 모든 것이 연결된 글쓰기라는 작업을 거쳐 자기 자신에게 투사된다. 타인에게 전달되는 이 글쓰기는 그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며 글쓰기가 끝이 났을 때 개인은 풍경과 사건 뒤로 숨고 보이지 않는다. 그 뒤에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은 곧 글을 읽는 나 자신을 보는 일이다.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오는 감정의 골을 견뎌내지 못해 커피, 냅킨, 접시 수집, 자동차, 개인의 성취, 애완견 등의 주제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그녀는 이해한다. 그러나 늘 그녀가 택하는 것은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이 아니다. 노 저어 올 수 있는 잔잔한 호수가 아닌 쉽사리 넘보지 못할 풍랑이 몰아치는 격한 감정의 상태. 죄수가 간수의 호출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듯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그녀를 알아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남자의 그 여자는 그런 의미에서 끝까지 잘 먹고 살 살아주어야 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된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에르노는 그녀를 발명해 내야 했을 것이다. 나비의 날개 같은 란제리, 성적 충동을 새롭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사건, 가장 힘든 때에 쓰는 연애편지, 혹은 자신의 다른 남자 등으로. '3'이라는 숫자가 주는 위태로움과 균형을 아니 에르노는 겪는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이미 입에 든 약을 삼키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듯. 그러니 결코 이길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었다. 그들 마음속의 진흙탕과 무지개는 자신의 것이면서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끝내 겨우 그것에 닿았다 생각할 무렵 진흙탕은 굳고 무지개는 사라진다.


 

나는 감정과 감성이 물질적인 성질을 띤다는 것을 처음으로 분명히 알게되었고, 온몸으로 그것들의 밀도와 형태뿐만 아니라, 내 의식의 제재를 받지 않는 그들의 독립성과 완벽한 행동의 자유를 느꼈다. 이러한 내면 상태에 견줄 만한 것들을 자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날뛰는 바다, 깎아지른 절벽의 붕괴, 심연, 해조류의 증식. 난 물과 불에 빗댄 비유와 은유의 필연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심지어 가장 닳고닳은 표현조차도, 어느 날 그 누군가가 실제 겪었던 것이다.

-책 속에서



 아니 에르노에게는 뒷걸음질칠 공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순수한 지적 기쁨과는 비교도 안 될 앎에의 기쁨을 '그 여자'의 연락처를 찾아내며 느낀다. 그 여자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상대방이 수화기 너머 아니 에르노가 만들어낸 침묵에 공포를 느낄 때 원시인이 사냥에서 느꼈을 법한 쾌감을 얻는다. 아니 에르노의 질투는 물끄러미 속을 응시한다. 그 속이 비지 않았음을 알아낸다. 심연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심연에 동화되는 과정을 용케 피해 가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실재하는 실재처럼 쌓아나간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이때 그 남자가 아니며 그녀가 질투하는 것은 그 여자가 아니다. 에르노는 성적인 쾌락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만족감 너머의 무한함. 그 무한함이 글쓰기로 재현될 때 그녀는 그것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감상주의에서 벗어나 세계를 객관적으로 단순하게 바라본다. 



 상대방의 말에서 공백을 찾아내어 빈틈을 파고든다. 감각과 반응을 추적하여 아니 에르노는 질투를 다시 확인한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감정과 글쓰기를 눈앞으로 불러내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작 당장 글을 쓰는 그녀 자신을 이기지는 못할 것인데 에르노의 글쓰기는 언제나 실재를 의식한다. 작은 쪽. 말 한 마디. 사소한 이야기.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말. 모든 것이 그녀의 실재하는 무엇이 된다.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끝내 혀끝에 맴도는 말 한마디가 아닌 눈앞에 보이는 공허감이었다. 사람이 마땅히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아니 에르노는 써내려간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가엾고 순진한 한 여자를 보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려가보고 싶은 유혹에는, 우물 안으로 몸을 수그려 저 깊숙한 곳에서 떨고 있는 자신의 영상을 바라볼 때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면서도 무시무시한 그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여기에 글을 쓰고 있는 행위도, 어쩌면 바늘을 꽂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 속에서



 

 

그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강렬한 의식. 그때 지각할 수 있는 사랑이 허락하는 공간 허용과 감정 격차. 아니 에르노는 그의 신체와 감정이 그녀에게 반응하는 순간을 잊지 않는다. 그 순간 그곳에는 언제나 그 순간의 자기 자신이 있었다. 늘 그렇듯,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처럼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는 단 한 사람을 아니 에르노는 경험하고 불러내어 재현한다. 어느 순간 자신의 그 놀라운 집중력이 사그라진 다음 남는 자명한 사실. 내가 무엇을 했나. 내 얼굴에 그때 무엇이라고 쓰여 있었던가. 거울에 비친 낯선 사람이 아닌 내가 보고 느끼고 알아온, 내 일생을 통해 일구어낸 생생한 형상으로서의 나 자신. 아니 에르노는 그런 존재를 발견해낸 몇 안 되는 작가 중의 하나이다. 



 게다가 나는 그 시기에 가졌던 욕망, 감각, 행위들을 추적하여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내가 겪은 대로의 질투를 써나가고 있다. 내게는 그것만이 이 강박관념에 물질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본질적인 무언가를놓칠까봐 두려워한다. 요컨대, 실재에 대한 질투로서의 글쓰기.

-책 속에서


 

 가상의 그 여자를 당해낼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 순간 누구나 그랬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그 무엇보다 빠르게 한 사람의 일생을 관통하는 순간이면 자기 자신은 사라지고 머릿속과 내 모든 신체 기관이 어떤 한 존재로 채워지는 때가 있다. 집중력과 사고력이 단 한 점을 향해 달려갈 때 나는 사라져버린다. 그 끝에서 만나는 것은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순간의 마지막 남은 나, 혹은 겨우 닿을락 말락 사투를 벌이던 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나의 감정이 아니었다. 하나의 세계를 오감으로 느끼기를 지나쳐 한없이 단순하고 객관적으로 볼 때, 그 세계는 늘 끝나 있었다. 가장 안도감을 느끼는 순간은 보내지 않은 편지를 내 서랍에서 발견할 때다. 그리하여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그토록 다양한 모습의 내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어느 것도 내가 아니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일상을 통해 경험하고 느낀, 타인을 통해 다시 검사하고 바라보아 발견할 수 있는 진실을 차근차근 일러준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이 지금 이 순간을 명확히 바라보기 위해 필요하다면, 아니 에르노의 화살표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성적 쾌락에서 모든 것을, 쾌락 이상의 것을 기대했다. 사랑, 융합, 무한, 글쓰기의 욕망. 이제껏 내가 그에게서 얻어냈다고 여기는 최상의 것. 그것은 냉철함으로, 감상주의에서 탈피해 갑자기 단순하게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책 속에서



 



Whistler, 

Nocturne in Grau und Gold, Schnee in Chelsea

Oil on panel. 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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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5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5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mmelion 2013-01-0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셨는지요? 오랜만에 소식 전합니다. 이런, 에르노 문학상이 생겼군요. 명색이 불문학을 한다면서 게으름이 하늘을 찌릅니다. 저는 그 동안 좀 오래, 좀 멀리 집을 떠나 있었어요. 그리고 보니 돌아온지 좀 되는데 이제야. ㅠㅠ 이 서재를 이제야 다시 찾았네요. 찬찬히 둘러볼 생각을 하니, 박하맛 나는 과자 같은 게 여기저기 갈무리된 벽장문을 연 기분입니다.^^ 이게 2012년 마지막 리뷰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올해에는 콘 판냐와 에스프레소가 만나질까요?

Jeanne_Hebuterne 2013-01-09 15:04   좋아요 0 | URL
어딘가 다녀오셨군요!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에르노 문학상, 그런 것도 생겼습니까?
과연 세상에 문학 천재들이 넘쳐나는데 저는 읽기에도 급급합니다. 발버둥쳤으나 소용돌이만을 남긴 자락에 관한 과분한 칭찬, 고맙습니다. 원문이 훌륭하지만 그를 제대로 담지도 못한 '뒤쥭박쥭(정조 대왕 버전)'만을 남긴 기분입니다.
올해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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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연주했던 것과 똑같군요. 당신 기억나요? 우리는 저기에 있었죠. 똑같은 모습으로. 그리고 저 음악가도 같은 곡을 연주하고 있어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나 보죠. 하기야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조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실 다른 쪽 끄트머리에 있는 자크를 바라보았다. 베르나르가 그녀의 시선을 뒤쫓았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에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나도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그의 손을 잡고 잠시 힘을 주었다.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그가 말했다. 

 "조제, 이건 말이 안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조제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

-186,187 페이지



 


 


 

 




어떤 작가는 작품만큼이나 선연하게 떠오른다. 스피드광, 마약중독, 도박광이면서 돈을 다 잃었을 때에도 '본래 돈이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고 마약 소지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자신을 변호한 사람. 연이은 이혼, 신경 쇠약, 노이로제, 수면제 과용, 정신병원 입원. 프랑스 내 도박장에서 5년간 출입을 금지하자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도박 원정을 갔던 사람. 그녀는 지드를 읽고, 카페에 출입하여 담배를 피우고, 소르본에서 교양과목 시험에 떨어지자 두 달간 은둔하며 쓴 작품(슬픔이여 안녕)이 당선되자 인세로 재규어, 모피 코트, 뒤셀도르프의 별장을 사들이고는 누구에게나 되는 대로 술을 사고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망가지면 바로 버리고 새로 사들였던 사람, 프랑수아즈 사강. 



 모호하고 교묘했다. 안개처럼 닿는 글. 잡으려 하면 닿을 수 없는 글. 경험한 적 없으며 알 수 없는 것은 글로 쓸 수 없다는 (아니 에르노가 떠오른다) 사강의 글은 의지도 신념도 계획도 없다. 그 어떤 빛도 어둠보다 어둡고 그 어떤 어둠도 빛보다 밝다. 그 젊은 날들이 그런데 꼭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고 중얼거리는 작은 음성. 통속이 따로 없다. 감정의 격랑이 휘몰아친다. 희극인 듯한 비극, 비극인 듯한 희극. 너저분하지 않고 이야기 전반을 관통하는 예리한 시선이 느껴진다. '한 달 후 일 년 후'의 이야기 전반에 드러나는 것은 이들의 연애이다. 니콜이 베르나르를, 베르나르가 조제를. 에두아르가 베아트리스를, 베아트리스가 졸리오를. 



 사강의 글이 가진 힘은 바로 수면 아래 물고기의 마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조금씩 흔들리는 물결의 움직임, 가끔 떠오르는 기포를 이야기하는 듯한 모호함에 있다. 그녀는 결코 심리적 안정과 개인의 굳건한 심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흔들리는 마음, 사형선고를 내리는 듯한 마음으로 헤어지자고 말할까 망설이는 사람의 입술을 이야기한다. 한 여자를 사랑해서 파리 시내에 존재하는 길이라고는 그녀에게 가는 길밖에 없는 청년이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은 평범한 사람의 마음에 깃든 불안에서 나온다. 사랑받을 수도, 사랑할 수도 없어 고독을 택하지만 이로 생긴 슬픔을 조용히 책임지는 것은 개인일 뿐이다. 사강의 지성은 곧은 날을 뽐내지 않는다. 대신 삶이 우리에게 주는 문제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사강의 지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습관에 의해' 행복할 것이고 예의바를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간다는 것의 행복은 "죽는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이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사물의 무지막지함"과 모든 것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권태를 좌절시킬 만큼 충분히 강하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만약 삶이 '어떤 미소'의 도미니크가 느끼는 것처럼 "긴 속임수" 라면, 그 소임수는 너무나 고독한 나머지 길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임수는 순진한 사람들과 계속해서 게임을 할 것이다. 순진한 사람들은 규칙에 따라 게임에 임하면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이보다 더 자연에 반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우리 모두 기분전환 거리 없는 고독한 왕이 아니겠는가? -필리프 바르틀레.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이면서 다른 이의 도덕을 오락거리로 삼지 않는 문체. 자신이 경험한, 익히 아는 사람들을 캐릭터로 만들어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는 구조 속에서 사강이 드러내는 것은 필연적으로 인물에 대한 이해이다. 인물의 생각과 작가의 말, 과거시제와 현재시제, 대화와 생각, 시공간의 이동, 이 모든 것이 사강의 글 속에는 뒤섞여 있다. 낭만주의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자신의 세계에 솔직해지는 순간, 사강의 글은 인물들을 비판하지 않고 이해하게 한다. 그녀가 뜻했던 대로 설득하지 않고 매혹하게 되는 글. 부드러운가 하면 딱딱하고 찰나인가 하면 영속적이다. 지금 이 순간이라고 생각하던 과거가 미래가 되고 오지 않은 미래는 소용없음을 말한다. 양면성과 이중성, 자신이 자기 자신을 모방하는 데에서 오는 권태와 영광과 좌절을 한 번에 관통하는 시선. 사강의 글은 행복해지고 싶지만 그러지 않은, 혹은 않았던, 않을 모든 이의 찰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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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1-27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이름 만으로도 프랑스와 마르셀 프루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프랑수아즈 사강.
참 오랜만에 Jeanne님의 글을 통해 그녀만의 글과 이미지를 다시 보게 되는군요.
한 달 후, 그땐 일년 후가 된다고 '그런 식으로' 생각할 때도 되었는데, 사강의 소설책 한 권이 그런 생각에 강력히 대항하라고 부추기는군요. ㅎㅎ

Jeanne_Hebuterne 2012-11-28 17:55   좋아요 0 | URL
시간은 끊이지 않는데 사람은 그것을 끊어 생각하는 것이 신기했어요. 한 달 후, 일 년 후,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의 불안함을 짚어내는 사강의 문체, 사물을 다루는 그녀의 도덕적 내재율에 감탄했어요. 감탄한다는 뜻은 곧, 나는 그리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부러움에서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달 후의 일 년 후부터는 어떤 날들이 이어질까요?

치니 2012-11-27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었을 때, '어휴, 사강은 역시 힘들어' 라고 제껴놨던 저의 무감성이 부끄러워지는 리뷰입니다.

Jeanne_Hebuterne 2012-11-28 17:56   좋아요 0 | URL
치니님, 감성은 예민한데 공감능력은 사이코패스같은 저는 어쩌란 말입니까!

blanca 2012-11-28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강의 헤어스타일이 젊을 때랑 거의 같잖아요. 나이든 얼굴, 손을 보면 청춘이라는 게 얼마나 찰나이고 허무한 것인지. 이 책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어린 시절 읽었던 그 '슬픔이여, 안녕'의 상큼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조제'란 이름이 참 독특하고 낯익네요. 불어로 이런 발음이 가능할까요?

Jeanne_Hebuterne 2012-11-28 17:57   좋아요 0 | URL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엔 너무 아까워요. 사강의 이미지를 구경하다 블랑카님이 (당연히) 떠올랐어요. 불어 발음이 저도 무척 궁금해집니다. 불어를 하는 지인에게 전화로 들려달라고 해야겠어요. 조제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조제, 호랑이, 그 영화도 떠오릅니다. 많은 이들이 그 링크를 타고 이 책을 읽기도 하더군요!)

blanca 2012-11-2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 너무 아깝다,는 말이 너무 좋아요. 정말이에요.

Jeanne_Hebuterne 2012-11-29 12:26   좋아요 0 | URL
blanca님, 제가 아니라 조지 버나드 쇼의 말입니다. 출처를 밝혔어야 했는데, 이런 ㅜㅜ 이 분은 묘비명'오래 살다 보면 결국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를 마지막으로 칼같은 말들을 남기셨지요.
 
폴리나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임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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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머리가 내려와서 신경 쓰였다. 라는 글.

 나라고 신경 안 쓰이는 줄 아나. 라는 한 마디는

 다음 페이지의 '한국말. 어렵다'로 이어진다.

 

 

 어떤 날 썼던 일기.

 

 

 

투박한 듯 날렵한 그림. 함축되어 일상이 되는 대화. 소녀가 자라서 다시 어린 소녀와 만나기까지의 길. 



 

그날의 마음을 설명하지 못해 손을 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이유로 '오늘은 비가 내렸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 작가 바스티앙 비베스는 분명 후자의 경우다. 2007년 데뷔한 이 젊은 작가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거창한 꼬리표를 붙이고 있다. 2012년 만화비평가 협회(ACBD) 대상, 2011년 만화 전문 서점상, '르푸앙' 선정 2011년 올해의 책 20선, '르푸앙' 만화상 최종 후보작. 2009년 <염소의 맛>으로 앙굴렘 세계 만화 페스티벌 '올해의 발견 작가상'. 여기까지가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의 독자 앞에는 '폴리나'와 '염소의 맛'이 놓여있다. 만화라고 쓰고 그래픽 노블이라고 일컫는다. 불면 날아갈 듯한 막막함을 전깃줄에 맺힌 빗방울로 풀어내는 작가다. 일상을 카페인 몇 모금과 줄임표로 웃음과 눈물, 한숨을 대체할 줄 아는 작가. 이 작가의 그림과 글 속에는 귀 기울여야 들리고 유심히 보아야 보이는 귀뚜라미 소리와 매미 소리, 저녁 노을의 번짐과 연습실 조명의 떨림이 함께 섞여 있다. 여름을 겨우 넘기고 투정 부리는 어린 여자 아이의 흰 낯빛도.



 

춤이 어렵지, 이런 건 어렵지 않아. 라고 말하는 소녀를 만났다.

그런 그녀의 모든 말과 동작은 이 가라앉은 이야기와 그림으로 엮인다.

 

 

 연속되는 동작들 속에서 시선과 리듬을 꺼낸다. 무용수가 힘들어하면 관객은 괴로운 무용수를 볼 뿐이라는 말. 공간 속에 양감이 있는, 의미 있는 움직임을 초 단위로 만들어내는 것. 폴리나는 발레 학교 입학 후 까다로운 선생님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어 나가는 어린 여자아이였다. 이것은 발레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 선생님이 필요한 학생의 이야기. 당시에는 읽지 못했던 뜻을 시간이 흐른 다음에 꺼내어서 곱게 써내려가 보는 이야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기 전 손톱을 정리하고, 머리를 다듬고, 길을 걸어가서 깨끗한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물을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게 되는 그런 이야기. 붓끝은 농담을 툭툭 던진다. 처음 보면 그 뭉툭한 끝날이 오히려 가벼워 마음을 매섭게 치곤 한다. 아무리 들어도 모를 것 같은 말. 결국, '선생님이 원하시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는 학생. 틀리는 일만 남았는데 그것이 두려운 사람. 폴리나의 표정, 손목과 발목의 움직임, 시선의 끝, 심지어는 그녀가 입은 연습복의 질감까지도 제외하고 나면 한 사람이 남는다. 그때 나는 비로소 폴리나를 알 수 있었다.

 

 

 가르침은 어긋나고 그때의 폴리나와 지금은 폴리나는 다르다. 분명 어제 내 손을 잡았던 그 스승과 오늘 내 손을 잡는 스승이 바라보는 곳이 다르다. 박자가 엉킨다. 파드두도 어렵다. 링바링도 안된다. 

 느낌을 담아, 의미를 실어서, 손끝까지 표정을 넣어서. 중력과 반대되게. 타고난 우아함을 살려서.

 그러게 그때에는 그렇게 그 이름을 불렀을 것을 왜 부르기를 그만두었을까.

 그러게 그때 그만두지 말았어야 했을 일.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흘러 다시 손을 잡았을 때 남아있는 어떤 가르침. 맞아떨어지는 호흡.


 

 눈빛이 날카로웠을수록 흐뭇했어야 할 일이다. 스승이 제자를 진심으로 대했다는 것. 

 곧, 지금의 제자에게도 진심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폴리나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컴퍼니에 들어가고 패스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마음 깊이 남아있는 보진스키의 말들을 느끼기에 그만둘 수밖에,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머리를 써야 하고 노력을 해야 했지만 그런 식으로 갖는 것은 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었다. 알고만 있었다. 그리하여 선생님의 목소리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어떤 것이 된다.

 

 

 지나간 모든 것은 어떻게 남게 되나. 앞으로 올 모든 것은 어떻게 변했던가. 어제의 걸음이 오늘과 다르고 오늘의 수업이 내일과 다르다. 과거는 이미 미래가 되었고 우리는 결국 모두 매일 다짐을 하게 된다.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를 망설이는 어린 사람들에게 힘이 될 이야기.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는 목소리. 여유를 가지고 도약하지 않으면 아무리 높이 도약해도 소용없다는 말을 마지막에 끄집어내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발레 슈즈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의미를 지닌 무엇이 된다. 우리가 정신을 집중하고 곧게 해야 할 것은 처음 가졌던, 그리고 처음 찾았던 우리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때 들었던 목소리를 잊지 않는 일.



제목은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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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2-09-19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메시스에서 나오는 만화는 계속 관심을 갖고 보고 있어요. 소재가 발레여서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 소다 마사히토의 스바루.는 아주 몰입해서 봤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였죠.

Jeanne_Hebuterne 2012-09-20 15:08   좋아요 0 | URL
미메시스의 만화를 지켜보고 계셨군요. 저는 폴리나가 처음이었습니다. dreamout님이 몰입해서 보았다는 스바루가 궁금해집니다. 폴리나는 소재와 무관하게 자라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저부터 먼저.
 
고통
앙드레 드 리쇼 지음, 이재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Oh I'll be the one who'll break my heart
I'll be the one to hold the gun

I know more than I knew before
I didn't rest I didn't stop
Did we fight or did we talk

Oh I'll be the one who'll break my heart
I'll be the one to hold the gun

I love you more
I don't know what I knew before
But now I know I wanna win the war

No one likes to take a test
Sometimes you know more is less
Put your weight against the door
Kick drum on the basement floor
Stranded in a fog of words
Loved him like a winter bird
On my head the water pours
Gulf stream through the open door
Fly away
Fly away to what you want to make

I feel it all, I feel it all
The wings are wide, the wings are wide
Wild card inside, wild card inside

Oh I'll be the one to break my heart
I'll be the one who'll break my heart
I'll be the one who'll break my heart
I'll end it thought you started it

The truth lies
The truth lied
And lies divide

-fist, I feel it all.




 

 고통을 읽을 때는 두 개의 선율이 떠올랐다. 파이스트의 맑은 가사와 피아졸라의 어떤 멜로디. 다 떠나가도 무언가 남아있을 거라고, 나를 파괴할 수 있는 자는 나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밝고 경쾌한 목소리. 그러나 다 떠나가면 무슨 소용인가. 라고 그림자를 바라보는 듯한 피아졸라의 눈빛. 고통은 그런 책이다. 어두운 방, 테이블 위에 놓아둔 책의 모서리가 역광에 꽤 날카로워 보인다. 



 어찌할 수 없을 때. 내 손으로 나의 굳은 어깨를 쓰다듬어야 할 때. 무심결에 창밖을 보았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전깃줄이 위태로워 보일 때. 저 선이 끊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내 횡격막이 놀라 딸꾹질을 할 때처럼 사람들이 딸꾹질 할까. 문 닫은 카페의 고양이와 개들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버린 내 속의 마음은 어떻게 웅크리고 있을까. 



 어느 날 양로원에 들어가 있었는데 세상에, 자신의 부고를 신문에서 접했단다. (아마도 격분하여) '나는 죽지 않았다' 라는 자전 에세이를 발표했다. 프랑수아 모리앜, 앙드레 지드, 장 콕토가 그의 친구였고 전직 고등학교 철학교사였다. '고통'은 그의 첫 소설. 사회적 금기를 깨지 않았다면 첫 소설에 수여하는 프리 뒤 프리미에 로을 탔겠건만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묘사와 주제로 수상에서 제외되었다. 전시 상황에서 프랑스인 여자와 독일군 남자의 육체관계라는 설정 때문이라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2012년 8월 파리 좌안 어느 주택가의 옆집 남녀였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금기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 것.



 

두 사람의 피는 숲 속 오솔길에서 사냥꾼에게 쫓기는 한 마리 짐승처럼 동맥 속을 흘러다녔다. 어두운 숲과도 같은 육신은 살갗에서부터 모든 사람에게 닫혀 있어 오직 사랑만이 뚫고 들어가 빛을 밝힐 수 있었다.-23페이지





 저물녘 조용히 앉아 저녁 기도를 올리며 잠자기 전의 키스를 잊지 않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진을 어루만지는 어머니. 조용조용히 인사를 나누고 조금씩 마을 사람들과 비슷해져 어느 날 그들과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를 어머니. 세계의 모든 것이 한 존재를 중심으로 돌아갈 때, 그 존재가 대다수 사람들이 택한 것일 때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모범적이라고 부른다. 앙드레 드 리쇼의 이 이야기는 첫 장만 읽어도 그 전체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 아이 엠 러브의 엠마, 안나 카레리나, 보바리 부인, 같은 사람 아닌가. 우리는 단지 이 존재가 어떻게 몰락해가는지 테레즈의 그 길을 지켜볼 뿐인다. 타이타닉이 빙산에 걸려 자멸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구명정을 덜 실었다면 인명피해는 덜했을지도 모른다. 세계기록 경신을 위해 최단 루트를 택하지 않았더라도 빙산은 아예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빙산을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을 자각할 수 없는, 레 미제라블.





어떤 사랑이든 자기 마음을 인정하느라 보내는 최초의 시간은 축복받은 시간이다. 특히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는 데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존재들에게는.-84 페이지




 여인의 파우더 브러시 끝이 살짝 그 여자의 얼굴을 스친 다음이라 해서 공기 중에 파우더 가루가 남아있지 않은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잊는다. 그 속을 떠다니는 감각적인 공기는 어찌할 것인가. 독일군 장교가 그녀에게 남긴 포도는 어찌할 것인가. 그 흐르는 과육을 입안에서 혀로 느끼지도 않고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를 공기 중에 멀겋게 내버려둔다. 포도는 그 사이 그 과육을 잃고 만다. 혀끝에서 맴돌았어야 할 과육이 자멸하는 것은 정해진 순서였다. 타인의 살결을 만질 때 그 살결은 손끝에서 생명을 새롭게 얻는다. 피부가 육화되는 것. 이것이 사랑의 순서가 아니던가. 공간을 허용하는 일. 의미를 만드는 일. 그리하여 좁혀지는 거리. 사람들이 뒷말하는 것은 모른척 한다. 알든 모르든 그것이 중요하기나 한 일인가. 이미 가진 것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 그러나 서로에게 서로가 유일했던 어머니와 아들은 점차 다른 촉각을 감지한다. 생체기가 나았고 다른 멍이 들었다. 바람이 불 때 아마 무심히 머리카락을 넘겼을 어머니가 고개를 뒤로 젖혔을 것이다. 소년의 우주는 어머니의 블랙홀이었다. 





갖가지 수단을 써서 아들의 영혼을 휘어잡았던 그녀는 이제 경건한 마음으로 자기 양심에게 묻고 있었다.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조르제가 그런 고통을 맛보기도 원치 않았던 것이다.-55페이지




 열린 문은 닫혀야 하고 닫힌 문은 열어야 한다. 창문을 반쯤만 연다는 것은 소용이 없다. 향수 냄새. 손끝을 스칠 때 느끼던 촉각. 모자를 벗을 때 흔들리는 표정. 치맛자락을 쥐고 사뿐 걸을 때 테레즈의 발걸음. 아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릴 때 어둠이 내리는 그 느리디느린 속도. 확인해야만 할 때의 가쁜 숨소리. 



 앙드레 드 리쇼는 '다 알고 있잖아?' 라고 능청스레 말하듯 이 타올랐다가 한순간에 더 맹렬해지는 감정과 육체를 밤의 책에서 펼쳐낸다. 그것은 때로는 탐스러운 포도처럼 도발적이고, 집에 쓰인 욕설처럼 수치스럽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듯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마을 사람들의 자명한 웃음. 빵집 주인의 친절하지 않은 친절한 인사. 다를 것이 없다는 데에서 나오는 패배주의적 동료애. 다 같이 겪는 불행은 불행이 아니라는 듯한 시궁창 같은 행복. 어깨동무하고 싶지 않았던 여자. 테레즈 들롱브르는 남편이 전사한 후 어린 아들 조르제와 함께 마을에 이사온 여자였을 뿐이다.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았고 여느 사람과 같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죄가 있었다면 그것은 독일군 오토와 밤마다 만난 것이 아니라 그 남자와 만나고 싶었던 마음을 드러냈다는 데에 있다. 무언가에서 벗어나는 방법의 하나는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가벼운 죄의식을 느꼈지만 그것은 아들에 대해서였지 남편의 추억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오토와 사랑을 나누고 나서 누워있던 처음 몇 밤 그녀는 감미로운 고통을 느끼며 생각했다. '넌 지금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거야.'-114페이지





 애착의 대상이었던 아들이 오토로 옮겨간 다음, 오토가 떠난다 해서 다시 그 대상이 아들일 수가 있을까. 그것은 꼭 돌을 끓여 녹이겠다는 생각과도 같다. 한 번도 가지지 못한 사랑은 금방 피어나지만, 이미 시들었던 대상에의 집착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사그라져 무덤덤한 무엇을 다시 의미있는 어떤 존재로 싹 틔우기는 불가능할뿐더러 테레즈는 그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생각. 고민. 궁금함. 답답함. 갑갑함. 그녀는 과거를 파고들고 아이는 미래에 몸서리친다. 이것은 모자 관계가 아닌 두 세계의 충돌이다. 충돌할 때의 그 모습은 테레즈가 볼 수 있는 자신의 가장 밑바닥의 모습. 진짜 두려운 것은 집에 누가 써둔 욕설이 아닌, 다른 사람 같은 자신을 만나게 되는 일. 차마 거기까지, 그 밑바닥까지는 내려갈 수 없다고 무의식중에 테레즈가 하는 생각이 '넌 지금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부분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려가 보고 싶은 유혹, 몸을 있는 대로 숙이고 땅을 파고 들어가 깊숙한 그곳에 도달했을 때 그녀가 만난 것은, 자기 자신을 끌어당기면서도 끔찍한 어떤 존재였을 것이다. 결국, 스스로가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이 된 다음 남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녀 스스로만이 알 수 있어서, 남에게 쉬이 말해줄 수 없을 것이다. 




 단숨에 읽어내려가야 그 구조가 더 잔인하게 드러나는 책. 독일군, 프랑스 여인, 포도밭, 어둠, 촛불, 피난민 소녀. 어머니의 연인. 이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틈은 독자가 그의 눈으로 메꾸어야 할 부분들이다. 집필 당시 민감한 주제였으나 이제는 덜 민감해진 설정, 어머니와 아이가 서로 대하는 시선,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기민함(나는 마지막의 그 결말이 차라리 그녀 자신도 몰랐던 그녀의 밑바닥 기민함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이 틈새는 읽는 이만이 채울 수 있는 부분. 앙드레 드 리쇼는 독자의 자리를 겸손하게 비워두는 작가다. 카뮈를 창작으로 이끌기도 한 작품.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훌륭한 책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경험해서 아는 것들, 즉 어머니라든가 가난이라든가 아름다운 저녁 하늘이라든가 하는 것들에 대해 처음으로 나에게 이야기해준 책이다. 습관대로 하룻밤새 그 책을 다 읽었다. 다음날 잠에서 깨었을 때, 낯설고 새로운 자유를 가슴에 안고 나는 머뭇거리며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책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망각과 심심파적만이 아니라는 교훈을 터득한 것이다. 나의 집요한 침묵, 정체를 알 수 없는 고통, 그리고 기묘한 이 세상, 내 가족의 고결함과 가난, 나만 알고 있는 비밀 등, 이 모든 것이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었다. '고통'이라는 책으로부터 나는, 지드가 장차 나를 유인하여 끌어들이게 될 창작의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를 막연하게나마 우선 엿볼 수 있었다.-카뮈







         





책장을 덮었을 때에는 체념하듯 눈을 감았고 이런 선율이 감은 눈을 채웠다. 

괜찮다. 그 바닥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라고 말하듯. 

그래서 괜찮지가 않았다.




제목은 '너와 함께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 없이 살 수도 없다'라는 뜻의 프랑스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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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8-29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도와 과육이란 단어를 본 순간 이 책을 읽으며 터질듯한 긴장을 느꼈던 바로 그 부분이 생각났어요. 네, 그 관능적인 포도를 발견하는 순간이요.

Jeanne_Hebuterne 2012-08-29 23:18   좋아요 0 | URL
감정의 절정은 이런 은유를 통해 더 명확해지는 듯 합니다. 아이 엠 러브에서 엠마가 새우를 입 안에서 천천히 씹는 장면같은 것. 그것이 사랑의 절정은 아니지만 서로의 살갗을 서로가 어루만져 의미있는 것으로 만드는 일. 그런 일에도 절정이 있다면, 이 포도의 표현은 탁월했어요. 기울기 직전의 달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읽다가 아, 다락방님이 왜 냉장고에 포도 없어서 슬펐는지 알 것 같았어요. 손에 잡히는 그것이라도 있으면 내 마음에 바람이 덜 불 것 같아서요.

레와 2012-08-3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3 페이지 정도 읽었을때, '아! 나는 이 책을 백프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마 그녀라면 (여기서 그녀는 당신이라오.) 백이십프로 이해하고도 남을거야.' 라는 생각을 했어요. 역시!

쥬드가 이 책을 빨리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과 안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했더랬는데.. ^^

Jeanne_Hebuterne 2012-08-30 19:46   좋아요 0 | URL
저라고 하여 어디 백프로 이해했겠습니까마는, 처음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아, 알 것 같다'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검은 책이 아니었다면 구태의연했겠지만,


파도가 너무 높아요, 레와님.
 
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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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을 겪은 사람이 있다. 그 일 후에 그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누가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 범위는 넓으나 그 맥은 각자의 스펙트럼으로 잡는다. 그런 일이 있었다. 내게는 이유가 중요했는데 타인에게는 결과가 중요한 일. 아니 에르노는 그런 개인의 경험을 글로 쓴다.
 
역사. 객관. 서사. 결과. 이유. 상황. 판단.
에르노의 글은 일기가 아니다.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은 묻지 않는다. 물 바깥으로 끄집어 내어 이미 죽어가는 물고기 머리를 바닥에 계속 패대기치지 않는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패대기치다'의 뜻을 '매우 짜증 나거나 못마땅하여 어떤 일이나 물건을 거칠게 내던지다'라고 정의한다). 에르노는 절제하지 않는다. 그대로 나타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에르노의 글이 '날 것'이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다. '날 것'의 한계 때문이다. 절제하는 감정과 그릇을 담기 위해 역사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다른 매체에서 있으나 에르노는 역사를 곧바로 겨냥한다. 슬퍼도 울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파악하는 핵심을 보는 생각하기의 전형이다.
 
아이리쉬의 초록색과 에스키모어의 흰색을 나는 하나의 단어로 바꾸어 쓴다. 내게는 그 한 단어가 전부이다. 에르노의 글을 읽으면 나는 내 감정의 어휘가 부족함을 느낀다. 이것은 마음이 가난하다는 의미가 아니므로 나를 대하는 타인의 다양한 반응에 가변차선로를 적용할 일도 이제 없을 것이다. 가지치기를 했다. 남은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른 정격전압. 부러 멋부리지 않고도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글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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