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공지다. 고등학생들의 인문학 공부 모임인 IRIS의 섭외를 받아 이번 주말에 'IRIS 인문비평 포럼'에 참여하게 됐다. 일정과 포럼 개요에 관한 공지를 IRIS 블로그에서 옮겨놓는다(http://blog.naver.com/weareiris?Redirect=Log&logNo=50159409545).

 

일시: 2013년 2월 16일(토) 오후 4:00-7;00

장소: 벙커원(http://bunker1.ddanzi.com/)

 

일정: 4:00-5:30 IRIS 멤버들 강연

        5:40-6:20 '로쟈' 이현우 선생님 강연

        6:20-7:00 이진경 선생님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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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개요

다른 세계!!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지난 12월 19일, 우리 모두가 이를 요구하며 투표한 경험이 있기에 더욱 익숙한 개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정치인, 경제학자와 사회운동가들은 다양한 '살만한 세상들'을 이야기해왔다. 이번 IRIS 인문비평 포럼은 이러한 '다른 세계'라는 큰 주제 하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해나가는 논의의 장이다. 인문비평 공공체 IRIS의 멤버들, 서평가 '로쟈' 이현우, 인문학자 이진경 등 많은 분들이 강연하시니 놓치지 마시라!!

 

13. 02. 11.

 

 

P.S. 주최측에서 무얼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제가 '다른 세계를 요구한다'라고 하여 떠올린 책은 예란 테르보른의 <다른 세계를 요구한다>, 토니 주트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슬라보예 지젝의 <멈춰라, 생각하라> 등이다. 무슨 얘기를 할지는 당일 IRIS 멤버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궁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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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면서 항상 덧붙이는 말씀은 '건강하세요!'다. 더불어 듣는 말씀도 이젠 건강에 신경을 쓰라는 것이니, 한국의 가족 모임에서 '건강'은 빠지지 않는 화제다. 그리고 보통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면 아픈 사람이 한둘은 끼기 마련이다. 굳이 병원에 입원해 있지 않더라도 저마다 한두 가지씩의 지병은 마치 생의 비밀처럼 갖고 있다. 건강서는 관심분야가 아니지만 이런 빌미로 가끔씩은 훑어보게 된다. 최근에 기억나는 책들도 몇권 있어서 따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타이틀은 윤철호의 <스스로 몸을 돌보다>(상추쌈, 2013)에서 가져왔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의사가 아니라 변호사다. 저자 자신이 오랜 투병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건강하게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한 결과를 책으로 엮었다. 기본 아이디어는 '구석기시대 식사법'이다. 우리 마음이나 몸이 구석기시대의 환경에 맞게 진화돼 온 만큼 그 당시의 환경을 고려한 식단이 몸에 좋을 거라는 착상이다. "구석기시대의 식생활은 그대로 따라야 할 구체적인 행동 수칙이라기보다는 이상이나 목표로 삼을 식사법이다."(191쪽) 흥미롭게도 존 앨런의 <미각의 지배>(미디어윌, 2013)를 보면 구석기 다이어트에 관한 책이 미국 서점가를 장식한 지 꽤 오래 됐다('구석기 다이어트' 혹은 '진화 다이어트'란 이름의 책들이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많이 나왔다고). 우리에겐 작년에 로렌 코데인의 <구석기 다이어트>(황금물고기, 2012)란 책이 소개됐지만 별로 반응을 얻지 못한 듯하다. 이 두 책 사이에 의사와 약사 들의 비밀에 대한 책들을 넣었다. 의약사의 도움을 적절히 받으려면 우리도 알 건 아는 게 좋겠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스스로 몸을 돌보다- 제도권 의료 시스템의 덫을 넘어
윤철호 지음 / 상추쌈 / 2013년 1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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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에게는 비밀이 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의학의 진실
데이비드 뉴먼 지음, 김성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3년 02월 10일에 저장
절판
약사가 알려주는 대한민국 약의 비밀
김정환 지음 / 경향BP / 2013년 1월
14,300원 → 12,870원(10%할인) / 마일리지 71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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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식후 30분에 읽으세요- 약사도 잘 모르는 약 이야기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지음 / 이매진 / 2013년 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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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설 합병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먹을 거리가 풍성하고 또 많이 먹게 되는 설 밥상을 염두에 두고 존 앨런의 <미각의 지배>(미디어윌, 2013)를 골랐다. 과학정보가 많이 포함돼 있어서 빨리 읽히지는 않지만 이 주제에 대한 다른 책들도 더 읽어보고픈 욕구를 부추기는 책이다. "인류 진화사와 현대 생물학을 결합하여 ‘먹는 자’와 ‘먹을 것’에 관한 신선한 아이디어의 만찬을 우리에게 융숭히 대접하고 있다! <미각의 지배> 음식에 담긴 심오하고 다양한 의미를 해석한 매력적인 책"이라고 추천한 리처드 랭엄의 <요리 본능>(사이언스북스, 2011)과 출간시 화제가 됐던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 2008)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다. 독서가 진화적 본능일 리 없지만 다양한 책을 읽어야만 지적 허기가 충족되는 독서본능은 혹 요리본능이 변형된 게 아닌가란 생각도 문득 든다... 

 

 

 

시사IN(13. 02. 09/16) 인간, 참 이상한 잡식동물

 

인간을 통상 ‘생각하는 동물’로 규정하지만 좀 더 구체화하면 어떻게 될까. 가령 <미각의 지배>(미디어윌)의 저자 존 앨런에 따르면 인간은 ‘생각하는 잡식동물’이다. 혹은 이렇게도 변주된다. ‘음식을 생각하는 동물’. 신경문화인류학자라는 직함의 저자는 신경과학과 문화인류학을 접목하여 “인간이란 종이 어떻게 두뇌를 사용해 음식을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이 분야의 다양한 연구성과를 흥미로운 사실들과 함께 요리해놓았다.

 

 


압축하면 ‘인간은 두뇌로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 모든 동물은 먹어야 산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음식에 관해서 인간만큼 높은 수준의 인지능력을 가진 동물은 없다. “인간 외에도 잡식동물은 있지만 인간의 잡식성은 단순히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러니 ‘초잡식동물’로서 인간의 식이행동은 동물적인 행동이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행동이다.


인간은 어쩌다가 그토록 다양한 음식을 먹게 됐을까. 진화사의 초기에 최초로 직립보행을 한 유인원이 나타났다. 두발로 걷는 유인원이 수백만 년에 걸쳐 여러 종으로 진화했고 아프리카대륙을 벗어나 세계 각지로 이동했다. 보통 영장류는 포유류와 달리 나무 위에서 서식하는데, 직립보행을 하면서 인류의 조상은 숲에서 나오게 됐고 식물성 음식뿐 아니라 동물성 음식, 즉 고기도 섭취하게 됐다. 즉 어느 시점에선가 초식동물에서 잡식동물로 변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모든 생활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사냥에 성공하려면 집단적 협력과 함께 노동의 분화가 필요했고, 지능이 높아져야 했기 때문이다.


두뇌 크기 증가는 인간 진화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부피로만 따지면 두뇌는 신체의 2%트에 지나지 않지만 안정시대사율의 20-25퍼센트가 두뇌 때문에 발생한다. 그 비율이 다른 영장류의 경우 8-13%이고, 포유류는 3-5%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에너지 소모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육류와 고칼로리 식물성 음식의 섭취가 해법이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소장은 다른 영장류의 60% 수준이다. 소장이 작기 때문에 절약할 수 있는 열량이 큰 두뇌를 유지하는 데 투입된다.


잡식성으로의 변화와 함께 인간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불을 이용한 조리 기술의 발견이다. 불을 이용함으로써 다양한 식재료들을 바삭한 음식으로 바꾸어 먹을 수 있게 됐다. 저자의 추정에 따르면 우리가 바삭한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원래 영장류가 즐겨 먹던 곤충의 맛을 떠올려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식이행동에는 문화적 선호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가령 왜 미국인들은 간편한 음식을 좋아하고 프랑스인들은 탐미적인 식사문화를 즐길까. 뜻밖에도 서로 다른 음식문화의 이념적 뿌리는 똑같이 평등이다. 구대륙에 비해 식량이 풍부했던 미국은 음식문화의 평등이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것을 의미했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음식의 맛을 평가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이 사회계층 이동의 수단으로 간주됐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음식을 심미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음악과 미술을 토론하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허용된 주제였다. 그것이 어떻게 평등이란 이념에 부합하는가. 미식가의 세계에서는 돈도 권력도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오직 먹는 사람의 입과 음식의 관계에서만 결정된다는 것.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한국식 통념과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13. 02. 09.

 

 

 

P.S. 영어 단어 'food'를 '음식'이 아니라 '식량'으로 옮길 경우에는 문제의 지평이 달라진다. 당연히 읽을 책의 종류도 달라지는데, 식량 문제를 다룬 책들도 드물지 않게 출간되고 있다. 톰 스탠디지의 <식량의 세계사>(웅진지식하우스, 2012), 제니퍼 클랩의 <식량의 제국>(이상북스, 2013), 에릭 밀스톤, 팀 랭의 <풍성한 먹거리 비정한 식탁>(낮은산, 2013) 등을 꼽아볼 수 있다. 마지막 책은 식량 문제를 총체적으로 일람하게 해주는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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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권의 고전에 대한 강의를 묶은 <아주 사적인 독서>(웅진지식하우스, 2013)가 드디어 판매에 들어갔다. 책이 인쇄소에서 나온 건 월요일이고 나는 화요일에 책을 받았지만 서점에 입고되는 데 며칠 더 걸렸다. 아마도 연휴가 지나고 나서야 정상적으로 유통이 될 듯싶다. 단독 저작으론 일곱번째 책인데, 현재로선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평이한 책이다(일단 일반 독자를 위한 강의가 책의 바탕이기도 했고). 문학과 고전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12. 0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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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며 지난주 시사IN(281호)에서 이성복 시인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최근에 나온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 2013)가 빌미가 된 인터뷰인데, 시인은 1년 전 대학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지금은 '한마디로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고.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첫학기에 읽은 시집이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와 <남해금산>(1986) 등이었는데, 어느새 사반세기도 더 전이다. 시인도 이제 이순의 나이다. 그래서일까, 기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얼마 전 딸이 들려준 이야기라면서.

 

 

 

 

"마더 테레사 생전에 한 기자가 물었다고 한다. 기도를 할 때 신께 무슨 부탁을 하느냐고. 대답하길, 부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듣는다고 했단다. 기도는 말하는 게 아니라 드는 거라고. 그러자 기자가 그럼 하느님은 뭐라고 말하느냐고 물었다. 마더 테레사는 하느님도 듣는다고 답했다. 듣는 사람에겐 세상 전체가 자기 거라. 시도 듣는 거다. 시나 예술을 말하거나 표현하는 거라고 아는데 듣는 거다. 듣는데 개입할 수 없다. 다만 열려 있을 뿐이다."

시가 듣는 것이고, 시인의 귀가 열려 있으니 앞으로 시집이 더 자주 나올 수도 있겠다 싶다. 인터뷰 말미에 요즘 눈여겨보는 후배들이 있는지 물은 듯한데, 시인 서대경과 소설가 한강을 꼽았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문장이 좋다고. "어떤 개똥철학을 늘어놔도 문장만은 속일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라고 기자가 덧붙였다. 그래서 밥 먹으면서, 아니 이쯤이면 다 먹고 '서대경'을 검색해봤다(처음 들어본 시인이라).

 

 

처음 들어볼 만한 게 작년 여름에 첫 시집을 냈다.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문학동네, 2012). 그런데 특이하게 뜨는 책이 많다. 영문과를 졸업한 시인이 번역가를 겸해서다. 알고 보니 내가 전에 읽고 서평까지 썼던 조너선 색스의 <사회의 재창조>(말글빛냄, 2009)도 그의 번역이다. 그리고 눈에 띈 건 에델 릴리언 보이니치의 소설 <등에>(아모르문디, 2006). 출간시 전혀 주목하지 못했던 소설이지만 바로 관심도서가 됐다. 작가의 이력은 이렇게 소개된다.

1864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18세가 되던 해 베를린에 유학하여 음악을 공부했으며, 1885년 런던으로 돌아와 유학시절부터 관심을 갖게 된 러시아 혁명 운동에 참여했다. 외국인 망명자들과 '자유 러시아의 친구들'이란 단체를 조직하여 회보 「자유 러시아」의 편집을 맡는 한편, 엘리노어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버나드 쇼, 윌리엄 모리스, 오스카 와일드 등과 교유했다. 제정 러시아치하 폴란드 출신의 망명가 미하엘 보이니치를 만나 결혼했으며, 이 때의 경험을 토대로 1897년 소설 <등에>를 저술했다. 1920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 이 때부터 저술보다는 작곡에 전념하여 여러 편의 칸타타, 오라토리오, 오케스트라 곡을 썼다. 다른 작품으로는 <등에>의 주인공 아서가 13년간 남미에서 보낸 유랑생활을 그린 <중단된 우정>(1910)과 아서의 증조모와 조모의 삶을 소재로 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1944)가 있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니 남편의 러시아 이름은 '미하일 보이니치'다. 보이니치의 이름은 '에텔 릴리안 보이니치'로 표기된다. 작가로선 댓 편의 작품을 썼는데, 대표작 <등에>는 1897년 미국과 영국에서 먼저 출간되고 이듬해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출판사 소개로는 이렇다.

오스트리아 점령하의 19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쓴 역사소설. 신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한 혁명가의 삶과 투쟁을 그렸다. '혁명적 로맨티시즘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작품으로, 혁명 운동에 대한 작가 자신의 경험과 이탈리아의 독립.통일운동에 대한 치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씌어졌다.1897년 출간된 이래,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구 공산권 사회에서 큰 대중적 인기와 명성을 얻은 소설이다. 구소련에서는 1955년 쇼스타코비치가 음악을 작곡하고 알렉산더 페인짐머가 연출을 맡아 영화화되었고, 연극과 오페라로 각색되어 상연되기도 했다. 북한 대학생들의 필독서이자 스테디셀러로도 알려져 있다.

요컨대 '혁명적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소설로 과거 사회주의권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란 애기다. 러시아에서도 아직 읽히고 있고, 클래식 문고본으로도 나와 있다(이 문고본은 6천원대 가격이다). 아래가 표지다.  

 

 

프랑스혁명기를 다룬 <레미제라블>에 열광하는 독자라면 이탈리아혁명을 다룬 <등에>도 읽어봄직하다. 나부터도 당장 장바구니에 넣어놓았다(연휴가 끼어 바로 주문할 수 없기에).

 

그래서 이야기가 이성복 시인에게서 에델 보이니치까지 흘러왔다. 서대경 시인을 잠시 건너 뛰었는데, 표제작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공장 지대를 짓누르는 잿빛 대기 아래로 한 사내가 자전거를 타고 고철 더미가 깔린 비탈길을 느릿느릿 오른다 사내는 담배를 물고 한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고 있다 한쪽 팔이 잘려나갔는지 작업복의 빈 소매가 바람에 세차게 펄럭인다 사내는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며 허공을 올려다본다 바람의 거친 궤적이 잿빛 구름을 밀어내면서 거대한 하늘 위로 새파란 대기의 띠가 몇 줄기 좁은 외길처럼 파인다 사내는 서리가 앉은 허연 머리를 허공을 향해 한껏 치켜들고서 광인처럼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더듬더듬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단순한 이름들을, 추위로 가득한 대기의 이름들을 겨울, 거대한 하늘, 서리의 길, 춤춘다

러시아 추위가 찾아왔다는 요즘 공기는 차지만 깨끗하다. 같이 대기를 느껴봐도 좋겠다. 다들 백치가 되어...

 

13. 0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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