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은 이원규의 <조봉암 평전>(한길사, 2013)의 부제에서 가져왔다. 소설가가 "판화처럼 복원해낸 진보주의자 조봉암의 생애"로 "딱딱하게 마련인 일반 평전형식과 달리, 소설과 르포가 섞여 있으면서도 철저한 고증과 주석을 뒷받침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른 평전으론 김삼웅의 <죽산 조봉암 평전>(시대의창, 2010)이 나와 있고, 서중석의 <조봉암과 1950년대>(역사비평사, 1999)도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죽산만큼 큰 자취를 남긴 현대사의 거인으로 씨알 함석헌 선생에 대한 평전도 나왔다. 김삼웅의 <저항인 함석헌 평전>(현암사, 2013). '싸우는 평화주의자 함석헌의 거대한 생애와 사상'이 부제다. 죽산과 씨알의 '잃어버린 꿈'을 되찾을 수 있을까. 두 권의 평전을 앞세운 김에 나머지 세 권도 한국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본 책들로 골랐다. 분석심리학자 이나미 박사의 <한국 사회와 그 적들>(추수밭, 2013)은 한국인의 심성을 진단하고 분석한 책이다. 한국인의 콤플렉스를 무려 12가지나 나열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네번째와 다섯번째는 기자들의 책이다. 한겨레 법조팀 기자였던 이춘재, 김남일의 <기울어진 저울>(한겨레출판, 2013)은 부제대로 '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를 다룬다. 박근혜정부가 과연 검찰개혁, 더 나아가 사법개혁에 나설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지만, 그래도 주권자(국민)으로서 왜 사법개혁이 필요한지 그 내막은 알아두는 게 좋겠다. 한겨레21 기자였던 김기태의 <병원장사>(씨네21북스, 2013)은 '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보고서'다. "과잉진료와 의료사고, 거대 병원들의 무한경쟁 속에 사라져가는 동네병원, 돈 안 되는 응급의료나 산부인과가 줄어드는 현상, ‘공짜 스케일링’을 내세워 고가의 시술을 강권하는 네트워크 병원들…"이 '병원장사'의 현황이다. 저자가 하어영 기자와 같이 쓴 '대한민국 성매매 보고서' <은밀한 호황>(이후, 2012)까지 더하면 한국사회의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만하다. 무엇이 왜 달라져야 하는지도 가늠해볼 수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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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평전- 잃어버린 진보의 꿈
이원규 지음 / 한길사 / 2013년 3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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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인 함석헌 평전- 싸우는 평화주의자 함석헌의 거대한 생애와 사상
김삼웅 지음 / 현암사 / 2013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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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그 적들- 콤플렉스 덩어리 한국 사회에서 상처받지 않고 사는 법
이나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3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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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울어진 저울- 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
이춘재.김남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3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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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세넷의 신작 <투게더>(현암사, 2013)에 대한 리뷰를 옮겨놓는다. '협력'이란 주제를 다룬다면 예상할 수 있는 대로 세넷은 협력이란 무엇인지 정의한 다음에 현대사회에서 그것이 어떻게 약화돼 왔으며 또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지를 탐색한다. 리뷰에서는 '약해진 협력'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는데, 아무래도 책의 풍부한 내용을 짧은 리뷰로는 다 카바하기 어렵다. 박식한 사회학자의 우아한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중앙일보(13. 03. 16) 현대사회는 어떻게 사람을 갈라놓았나


책 주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라면 예사롭게 넘길 수 있겠지만 저자가 리처드 세넷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지그문트 바우만과 함께 필독 목록에 올려놓고 있는 사회학자다. 바우만은 폴란드 태생으로 영국의 리즈대에 오래 몸담았다. 반면 세넷은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도 널리 읽히는 미국 사회학자로, 뉴욕대와 런던정경대에서 강의한다.

두 학자는 관심 분야는 다르지만 ‘근대’라는 공통 화두를 붙들고 있다. 깊이 있는 사유와 우아한 글쓰기로도 평판이 높다. 바우만이 ‘액체근대’ 혹은 ‘유동하는 근대’ 시리즈에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다면, 노동 및 도시화 연구 권위자인 세넷의 최근 화두는 ‘호모 파베르’, 곧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다. 다른 표현으론 ‘구체적 실천을 통해 생명을 만드는 존재’다.

 

 


국내에도 소개된 『장인』이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 첫 권이라면 『투게더』는 그 두 번째 책이다. 세넷은 도시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룬 세 번째 책을 마저 집필할 예정이다. 이 3부작을 통해서 그는 무엇을 다루고자 하는가. 세넷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노력, 사회적 관계,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명시한다. 특별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기술과 능력이다. ‘협력’의 문제를 다룬 『투게더』에서도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반응 능력과 대화를 나눌 때 남의 말을 듣는 기술에 초점이 맞춰진다. 여느 사회학 저작에서는 보기 드문 주제이고 문제의식이다.



문제의식뿐 아니라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세넷 스타일은 눈에 띈다. 그는 런던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손자 얘기로 말문을 연다. 손자의 친구 녀석이 학교 방송에서 “엿 먹어, 엿이나 실컷 처먹어, 왜냐하면 네가 진짜 싫으니까, 너네 패거리 전부가 진짜 싫거든!”이란 가사의 노래를 틀어서 학교 당국을 기겁하게 했다는 것이다.

가수의 원래 의도와는 달리 아이들은 ‘엿 먹어’란 가사를 통해서 종교·인종·계급적 차이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려고 했다. 실제로 런던은 그런 혐오와 갈등이 주기적으로 폭력과 폭동으로 치닫는 도시다. 런던보다 사정이 나을지 모르지만 우리도 그런 상황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비슷한 사람들만으로는 도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넷의 강조대로 도시는 시민들에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히 숙고하고 상대할 것을 요구한다. 협력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협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원인은 무엇인가. 세넷은 물질적·제도적·문화적 이유 때문에 현대인이 협력의 기술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일단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미국 사회를 기준으로 하면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어 다수가 보유한 자산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상위 1%, 혹은 0.1%의 재산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오늘날 중간층 출신인 학생이 자기 부모들만큼 수입을 올릴 확률은 40%에 불과하지만 상위 5%의 학생들은 그 확률이 90% 이상이다. 이렇게 벌어진 격차는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를 만들어내고 이 거리는 협력과 사회적 연대를 어렵게 한다.

제도적으로는 현대의 조직 구조가 협력을 금지한다. 단기적이거나 임시적인 일자리만 늘어나면서 ‘장기근속’이라는 말은 이미 듣기 어려워졌다. 2000년에 직장에 들어간 젊은이는 평생 12번에서 15번 가량 직장을 옮기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러한 단기적 노동시간은 또 사회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고 정보를 다른 개인이나 부서와 공유하지 않는 ‘사일로 효과’를 강화한다. 당연히 조직에 대한 열의나 헌신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화적으로는 차이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을 줄이려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움츠러들거나 문화적 획일화에 편승한다. 그러는 가운데 다른 사람과 대면하고 그들과 협력하려는 욕망은 힘을 잃는다.

그렇게 약화된 협력을 어떻게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까. 세넷은 유럽 문화사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대화와 협력 방식을 끌어와 재조명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아시아인의 사례다. 중국은 ‘공격적인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강력한 사회적 단결 코드도 갖고 있다. 바로 관계나 연줄을 뜻하는 ‘꽌시(關係)’다. 이 비공식적인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중국인들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사회적 결속이 어떻게 경제적 삶을 형성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 다른 사례는 미국의 한국 이민자들이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주로 정착하여 가게를 연 그들은 자기끼리는 잘 협력했지만 가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고객을 상대할 때는 멸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 1992년 LA폭동 때 많은 한국인 상점이 파괴당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친선이 구축되지는 않았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와 편견을 뒤로 제쳐놓고 서로 침묵하기로 했다. 서로가 못마땅한 부분이 있더라도 말하지 않는 사회적 예절로서의 침묵 또한 사회적 협력의 중요한 바탕이다.

지역·인종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다민족이라는 단어가 보통명사처럼 통용되는 시대, 이른바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 어떻게 보다 더 튼튼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필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13. 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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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북리뷰 기사들을 둘러보다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식도 눈에 띈다. 내달 15일에 출간되며(짐작에 한국어본도 빨리 나오지 않을까 싶다) <색채가 없는 다사키츠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가 제목이란다(일어본은 알라딘에서도 예약판매 중이다). 관련기사는 이렇다.

 

'1Q84'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제목이 15일 공개됐다. 일본 문예춘추사는 이날 "무라카미 신작의 제목은 '색채가 없는 다사키츠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 (色彩を持たない 多崎つくると、彼の巡?の年)'"라며 "내달 15일 일본 전국 서점에서 발매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세계적인 밀리언셀러였던 '1Q84'에 이어 3년만에 나온 신작 장편소설이다. 제목길이만 무려 20자로 앞서 전작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世界の終りとハ?ドボイルド?ワンダ?ランド)'의 기록을 제쳤다. 작가 무라카미는 출판사 사이트에 게시한 작가의 말에서 "전작 '1Q84'가 이른바 롤러코스터적인 이야기였다면 신작은 조금 다른 걸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며 이번 신작을 설명했다. 이어 "그것이 과연 어떤것이었는지 써보기전에는 몰랐다"고 덧붙였다. 무라카미의 신작은 내달 15일 일본 전국 서점에서 발매될 예정이다.(뉴스1)

 

개인적으로는 <해변의 카프카>에 대한 강의도 계획돼 있어서 하루키 소설들을 좀 읽어야 하는데, 신작도 번역본이 나오면 읽어볼 참이다.

 

 

 

하루키에 관한 참고문헌으로는 <상실의 시대>와 <1Q84> 등의 영어판 번역자이기도 한 제이 루빈의 <하루키 문학은 언어의 음악이다>(문학사상사, 2003)부터 시작해서 <하루키를 읽는 법>(문학사상사, 2006), 그리고 고모리 요이치의 <무라카미 하루키론>(고려대출판부, 2007) 등을 들 수 있다.

 

 

전반적인 소개로는 히라노 요시노부의 <하루키, 하루키>(아르볼. 2012), <1Q84> 읽기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1Q84를 말한다>(미래지식, 2009)와 <무라카미 하루키 1Q84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예문, 2009)가 나와 있다. 3년만의 신작을 통해서도 다시금 건재하다는 걸, 살아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까. 내달이면 알 수 있겠다...

 

13. 0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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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호모 파베르' 삼부작 가운데 두번째 책 <투게더>(현암사, 2013)가 출간됐다. 첫권이 <장인>(21세기북스, 2010)이고, 마지막 세번째 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면 도시를 더 잘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책으로 예고된다. 세넷의 책은 그간에 예닐곱 권이 출간됐지만 몇 권은 절판된 상태다. 지그문트 바우만과 함께 우리에게 통찰을 전해주는 사회학자로 더 많이 읽혔으면 싶다. 그런 의미에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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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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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인-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리차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13년 03월 14일에 저장
구판절판
뉴캐피털리즘-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리차드 세넷 지음, 유병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3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3년 03월 14일에 저장
절판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리차드 세넷 지음, 유강은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5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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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287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사카구치 교헤의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이음, 2013)를 골랐는데, 저자의 다른 책으론 <도시형 수렵채집생활>(쿠폰북, 2011)이 번역돼 있다.

 

 

 

시사IN(13. 03. 16) 돈 없으면 죽는 나라는 필요 없어

 

이런 질문은 품은 아이가 있었다. “사람은 왜 돈 없이 살 수 없다고 하는가. 그 말은 진실인가.” 그는 이것도 궁금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생존권을 보장한다면 노숙자가 없어야 하는데, 노숙자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이며 그들은 왜 심지어 작은 오두막을 지을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는가.” 너무 천진한 질문이다 싶으면 굳이 들춰볼 필요가 없는 책이 사카구치 교헤의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이음)다. 어릴 적 품었던 이런 질문들에 아무도 답해주지 않아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간다는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직함이 다양하다. 건축가이자 작가이이면서 화가이고, 뮤지션에다 만담가이며 게다가 신정부의 총리다. 총리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는데,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뒤에 정부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자 그는 아예 자신의 정부를 세운다. 도쿄의 대기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고 국회의원 가족이 해외로 대피하는 마당인데도 일본 정부는 국민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고, 사카구치는 그런 정부라면 이미 정부도 아니라고 판단한다. 무정부상태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그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구마모토에 직접 ‘신정부’를 수립하고 제로센터라는 청사를 개설해 후쿠시마 피난민을 위한 무료 피난처로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벌인다. 비록 내란죄 같은 것을 피하기 위해 신정부활동을 ‘예술’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행위도 ‘예술’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사실 철학자 하이데거도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작품이라고 불렀으니 억지는 아니다.


사회운동과 예술적 실천을 동시에 밀고나가고 있는 저자의 성장담과 생각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의 방법론이다. 그는 사회를 바꾸는 것만이 혁명이 아니라 사회를 넓히는 것도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방식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존재방식을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생각이고 발상의 전환이다. 가령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그에게 영감을 던져준 것은 어느 노숙자의 집이다. 0.5편 정도의 작은 천막집이었지만 주인은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공원이 거실과 화장실, 수돗가를 겸한 곳이고 도서관이 책장이고 슈퍼마켓이 냉장고인 만큼 집은 침실로 족하다는 설명이다. 요컨대 이 노숙자에겐 도시 전체가 자기 집이었다.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면 그렇게 새로운 공간과 함께 다른 삶의 방식이 열린다. ‘사적 공공성’의 탄생이라고 할까. 저자는 사유(私有)가 나쁜 것이 아니라 사유의 개념을 우리가 너무 좁게 이해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다시 생각하는 일에서도 노숙자들은 좋은 참고가 된다. 돈도 없고 집도 없는 상태인지라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지 대책을 짜내야 한다. 안정된 시스템 바깥에 있기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한다. 돈이 없어도 살아가는 생활권을 만들고자 하는 저자의 사회적‧예술적 실험 역시 그러한 태도의 산물이다. 따지고 보면 과격한 것도 아니다. 저자가 인용한 일본 헌법 25조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한다. 돈을 벌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국가 정책은 따라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헌법에만 명시해놓고 실질적으론 보장하지 않는다면 어쩌겠는가. 따로 ‘독립국가’를 만드는 수밖에. 우리는 형편이 다른지 궁금하다.

 

13.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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