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강의가 있기에 자정을 전후로 한 시간은 주로 강의준비에 할당되는데, 막간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강의준비 대신에 이번주 시사IN을 훑어보았다. 출판면에서는 '금주의 저자'로 <청춘의 커리큘럼>(한티재, 2013)을 펴낸 이계삼씨를 다루고 있었다. 지난해 교직생활을 그만두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기사를 읽으니 지금은 감물생태학습관에서 인문학 교사 겸 사무장으로 일한다고 한다.

 

 

'고민하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공부의 길'이 부제인 <청춘의 커리큘럼>은 독서 에세이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낯설지 않다. '책을 펴내며'에서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 책을 2011년에 구상했다. 그 무렵 나는 11년간의 교직 생황을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10대와 20대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나는 농사와 인문학을 큰 줄기로 하는 작은 학교에 둥지를 틀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세상 앞에 내놓는다.

그 '작은 학교'가 감물생태학습관인 모양이다. 기사를 보니 "천주교 부산교구회에서 폐교를 활용해 청소년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귀농교육을 한다." 다른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저자는 과거 수도원과 같은 곳을 이상적인 교육 공간이자 교육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기도와 노동이 핵심 가치인 곳이다. "기도할 수 있는 정신과 노동할 수 있는 몸으로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기자는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생각할 수 있는 힘과 자급자족할 수 있는 노동력을 의미"한다고 정리했다. 책에서는 '나는 왜 학교를 그만두었는가'라는 마지막 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인데, 그의 강조하는 '몸의 교육'은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정말 갈급한 것은 '몸의 교육'입니다. 교육의 최종심급은 '몸'입니다. 가톨릭의 교부 가운데 한 명인 베네딕트 성인과 관련된 글을 읽다가 번쩍, 하는 느낌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AD 5세기 경에 살면서 국교가 되어 지배자의 종교가 되어버린 기독교의 타락을 염려했을 그 분의 핵심적인 가치는 바로 '기도'와 '노동'이었습니다.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복잡한 게 필요하지 않다, 기도할 수 있는 정신과 노동할 수 있는 몸이 있으면 된다는 거죠. 저는 이것을 근대적 교육 언어로 번역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인문학'과 '농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328-9쪽)

그런 생각에서 작은 귀농학교를 준비하고 있다 했는데, 그 귀농학교가 문을 연 것. '몸의 교육'이 의미 있는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변방의 사색'보다는 '청춘의 커리큘럼'이 그래도 일보 전진인 듯해서 보기에 좋다...

 

13. 0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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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에 드 릴아당(1838-1889)과 허버트 조지 웰스를 묶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강의차 빌리에의 작품을 읽다 보니 그의 또다른 짝은 동시대 작가 위스망스다. "소설가 위스망스(1848-1907)는 그의 걸작 <거꾸로>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이 작품을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는 소개에서 이 작품은 <잔혹한 이야기>(물레, 2009)다. 또 위스망스는 빌리에가 식도암으로 사망할 때 말라르메와 같이 가족이 없던 그이 임종을 지킨 유일한 문우이기도 하다. <거꾸로>(문학과지성사, 2007)를 포함하여 위스망스의 작품도 두 종 번역돼 있기에 두 작가를 같이 묶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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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이브
오귀스트 빌리에 드 릴아당 지음, 고혜선 옮김 / 시공사 / 2012년 1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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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파티에서 만난 사람
빌리에 드 릴아당 지음, 박혜숙 옮김, 이승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바다출판사 / 2011년 9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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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이야기
빌리에 드 릴아당 지음, 고혜선 옮김 / 물레 / 2009년 11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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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거꾸로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지음, 유진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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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겨레신문에도 안내 기사가 나갔는데, 내주부터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로쟈의 러시아문학 클럽' 시즌2를 진행한다(http://blog.aladin.co.kr/mramor/6202312).

 

묻는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답은 쉽지 않다. 끝을 알 수 없는 그 길에 ‘희망’이 동행한다면 묵묵한 발걸음은 한층 가벼울 수 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 가면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을 담은 인문 강좌를 만날 수 있다. 신촌센터(hanter21.co.kr)에서는 ‘로쟈의 러시아문학 클럽’이 4월2일 개강한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는다. <죄와 벌> <부활> 등 그들의 대표작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분신> <크로이체르 소나타> 등 조금은 낯선 작품들도 함께 다룬다.(한겨레)

때맞춰 러시아문학 관련서들이 출간돼 반가운데, <나보코프의 러시아문학 강의>(을유문화사, 2012) 이후에 나온 책들 가운데 몇권을 골라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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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3년 3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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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스또이, 시각을 탐하다- 똘스또이 소설에 나타난 시각의 로고스
조혜경 지음 / 뿌쉬낀하우스 / 2013년 3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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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옙스끼 소설에 나타난 리터러시와 비블리오테라피- 주인공들의 독서, 글쓰기, 치유를 중심으로
조혜경 지음 / 써네스트 / 2012년 10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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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고전, 연애로 읽다
윤영순 지음 / 역락 / 2013년 2월
9,000원 → 8,550원(5%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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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이주의 저자'를 고르고 있는데, 이번 주에도 눈에 띄는 저자는 모자라지 않다. 불황으로 출판 종수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매주 언급할 만한 저자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는 되기에. 분량상 그중에서 세 명을 골랐다. 모두 학술서(내지는 학술교양서) 범주에 속하는 책들의 저자다.

 

 

 

 

먼저, <국가에 관한 6권의 책>(아카넷, 2013)이 말 그대로 '6권' 통째로 나온 장 보댕. 보댕이 16세기 사람인 줄은 이번에 알았는데(막연하게 근대 사상가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렇게 올라가는 줄은 몰랐다) 책세상 문고로 나왔던 <국가론>(책세상, 2005)을 오래 전에 구입하고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탓이다. 이 <국가론>의 원제가 바로 <국가에 관한 6권의 책>이고 무려 1576년에 나왔다. 책세상판은 그중 주권에 관한 장을 발췌한 것인데, 책의 의의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한다.

 

 

국가 이론에 있어 서구 정치 사상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법철학자 장 보댕은 이 책을 통해 국가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는 것은 물론 국가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다. 정치의 목적인 공공선과 정의의 구현 그리고 국가가 존재하기 위한 본질적 조건인 주권에 대해 순차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고 국가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다"는데, 좀더 명확하게 말하면 그는 "국가란 최고의 권력에 의한 정당한 통치"로 정의한다. 이번에 나온 아카넷판 1권이 '국가, 권력, 주권론'을 다루는데, 내용 요약은 이렇다.

"국가는 가족과 가족들에게 공통된 것들에 관한, 최고의 권력에 의한 정당한 통치라고 말한 바 있는데, 최고의 권력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최고의 권력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에게 일정한 시간 동안 절대적인 권력을 줄 수 있지만, 시간이 끝나면 권력을 받은 사람들도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고 백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얼핏 절대주의 국가론이란 게 이런 것인가 싶은데, 정치사상사적으로는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에 정립한 근대 국가와 주권론의 이론적 기초'라고 평가된다. 소개를 보니 "정치사상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퀜틴 스키너는 보댕의 ‘국가론’에 대해서 “16세기에 저술된 가장 독창적이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치철학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막간에 한마디 보태자면 마키아벨리 연구로도 유명한 퀜틴 스키너의 주요 저작인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1권, 한길사, 2004; 2권, 한국문화사, 2012)로 나와 있다. 그의 정치사상사 연구에 대한 논쟁을 다룬 <의미와 콘텍스트>(아르케, 1999)까지도 나왔었지만 지금은 절판됐다.

 

여하튼 그런 의의가 있는, 정치사상사의 고전 하나가 번역돼 나온 것인데, 놀라운 것은 이 완역본이 동양에서는 처음이라는 점이다. 곧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완역되지 않은 책이라는 것(그런 점에서 보자면 역자인 나정원 교수는 '이주의 역자'이기도 하다). 옮긴이 서문에 따르면 영어 완역판도 1606년에 나오고, 20세기에 나온 건 발췌본 2종이다(독어판은 1986년에 나왔다고). 개인 소장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적어도 도서관에서는 한 질씩 비치해놓으면 좋겠다.  

 

 

 

두번째 저자는 중국의 사상사가 거자오광이다. <중국사상사>(일빛, 2013)란 대작이 번역됐는데, 그의 책은 원래 1권 '7세기 이전 중국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세계'와 2권 '7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중국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번에 나온 건 각권의 서론과 1권을 묶은 것이다. 1권만 1000쪽이니 조만간 출간된다는 2권까지 합하면 2000쪽에 육박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한국어 독자들에게 부친 서문을 보니 "이 책은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네 번째 저서다. 이 책 <중국사상사>는 앞서 출간된 <선종과 중국문화>, <도교와 중국문화>, <중국경전십종>에 비해 분량이 상당히 많다."라고 돼 있는데, 짐작엔 이 서문이 수년 전에 쓰인 듯하다. <사상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영남대출판부, 2008)과 <이 중국에 거하라>(글항아리, 2012)가 언급되지 않은 걸로 보아 2008년 이전에 쓰인 것으로 아마도 서론만 따로 나왔던 <중국사상사>(일빛, 2007) 때 미리 받아둔 게 아닌가 싶다. 이때는 저자명이 '갈조광'이었다.

 

먼저 나왔다는 책들은 <선종과 중국문화>(동문선, 1991), <도교와 중국문화>(동문선, 1993), <중국경전의 이해>(중문출판사, 1996) 등이다(모두 절판됐다). <중국경전의 이해>가 <중국경전십종>의 번역본일 것이다('십종'은 '10종'을 말한다). <중국사상사>의 부제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신앙'과 '신앙세계'를 사상사의 중요한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거자오광 사상사의 특징으로 보인다. 물론 좀더 구체적인 건 '도론: 사상사의 서술방법'을 읽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한편 거자오광의 최신 관점은 <이 중국에 거하라>(2010)에서 읽을 수 있다. <중국사상사>의 2권을 완성한 후 그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이라는 학술대회(2002)에 참석하면서 20세기 중국사상사가 그 이전 시대와 갖는 차이점을 의식하게 된다. 그는 <중국사상사>의 제3권으로 <1895-1989년 중국의 지식, 사상, 그리고 신앙의 변천>을 쓰려고 했지만, 첫째는 자료가 너무 방대하고 새롭게 검토해야 할 문제가 많았기에, 그리고 둘째는 '중국'과 '아시아'에 대한 일본, 한국 및 대만 학계의 논의에 대한 고려 필요성 때문에 보류한다. 그의 <중국사상사> 완결판이 과연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끝으로 프랑스의 언어학자 에밀 벵베니스트. 그의 대표작 <일반언어학의 여러 문제1,2>(지만지, 2012/2013)이 출간돼서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지만지, 2012)를 옮긴 김현권 교수의 완역본이다. 저자명이 '벵베니스트'로 표기됐는데, 예전 번역본에서는 '벤베니스트'였다. 그리고 이런저런 책들에서는 '방브니스트'로 표기되기도 했다. 아, 예전 번역본은 제목도 <일반언어학의 제문제>였고, 그게 익숙한데 이젠 '여러 문제'로 불러주게 생겼다.

 

예전 번역본이란 건 김현권 교수의 편역본 <일반언어학의 제문제>(한불문화출판, 1989)가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1991년 복학생 시절에 읽을 듯하다. 몇 개 논문이 '러시아어학 개론'의 참고문헌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언어학 개론 강의도 들었던 때라 아마도 언어학 책은 그때 가장 많이 읽었을 성싶다. 이후에 이 책은 황경자 교수의 완역본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1,2>(민음사, 1993)로 출간됐었다. 모두 현재는 절판. 벵베니스트에 관해서라면 이제 겨우 20년 전 상태를 회복한 셈이라고 할까(영어판은 사정이 더 나쁘다. 70년대에 나온 번역본이 절판된 지 오래다).

 

 

벵베니스트의 또 다른 주저로는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연구1,2>(아르케, 1999)가 있는데, 이미 절판된 지 오래다. 다행히 언젠가 구입해놓은 책이긴 하지만. 이 또한 도서관에서라도 읽을 수 있는 정도는 됐으면 좋겠다. <국가에 관한 6권의 책>, <중국사상사>, <일반언어학의 여러 문제>, 모두 많이 팔릴 책들은 아니지만 소수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책이 나오고 오래 유통되는 것이 '출판문화'다. 소수의 관객만 찾는 영화라 하더라도 좋은 영화들이 상영관에서 오랫동안 관객과 만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영화문화인 것처럼...

 

13. 0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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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웅진지식하우스, 2013)가 나온 지 한달 보름이 돼 간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책 소개도 하고 강의도 진행중인데, 가끔씩 긍정적인 독서 경험을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반갑다. 한 기업 사보에서는 이 책을 서평도서로 다뤄주기도 했는데, 직장인 서평단에서 이 책을 읽고 질문한 내용에 붙인 대답을 여기에 옮겨놓는다(지면에는 아마 조금 축약돼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주로 고전과 독서에 관한 질문들이다.

 

 

 

1. 살면서 돌아보니 어느 순간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만 읽게 됩니다. 회사의 허리를 책임지는 40대 직장인에게 좋은 책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세요.


-> ‘40대’ 인구가 많아지고 유력한 독자층으로 부상하면서 출판계에서는 아예 40대를 겨냥한 책들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제목에 ‘마흔’을 달고 있는 책들이 부쩍 늘어났지요. 40대의 관심사와 고민을 염두에 둔 책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책만 읽을 필요는 없겠죠. 40대는 ‘회사의 허리를 책임지는’ 나이이지만 동시에 각자의 인생을 중간결산해보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뭔가 새로운 인생을 살기에 아주 뒤늦은 나이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그러기도 쉽지 않은 나이. 좋은 책을 많이 찾아서 읽는 것도 좋겠지만 어떤 책을 깊이 읽는 게 필요한 때 같습니다. 저의 지론이지만 우리가 인생을 두 번 살 수는 없어도 책은 두 번 읽을 수 있습니다. 좋은 책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읽은 책을 나에게 좋은 책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다면 무의미하지요. 좋은 책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2. 아이들과 함께 고전을 읽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합니다. 즐겁게 고전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어떤 고전을 추천해주는 게 좋을까요?

-> 고전을 억지로 읽는 일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높은 산을 오를 때 분명 힘이 들지만 정상을 오르고 나면 그만한 기쁨을 보상으로 받을 수는 있지요. 하지만 독서는 결과보다 과정 자체가 중요하기에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는 것에서만 독서의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어떤 책이건 간에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책은 우리가 뭔가 발견하거나 깨닫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고 뭔가 성장했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책들이지요.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범위를 고전으로 확장해나가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가 고전을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고, 그런 즐거움을 아는 아이라면 자연스레 고전으로도 손길이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3. 작가님은 이미 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독서를 하시기에 작가의 창작의도까지 꿰뚫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독자들은 지식을 많이 갖추지 못할 수도 있는데요. 이런 대중이라면 어떤 기준으로 독서의 방향을 잡아야 할까요?

-> 독서는 매우 정직한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만큼 많이 읽고, 얼마만큼 즐겁게 읽었느냐가 그대로 ‘독서력’이 되니까요. 일차적으로는 기본 독서력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략 150권 안팎의 책을 읽는 게 필요하다고 하네요. 그런 독서량은 우리의 뇌에 독서근육을 만들어줍니다. 어지간한 책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죠. 그 이후엔 다시 읽기나 깊이 읽기가 독서력을 크게 향상시켜줍니다. 또 같은 책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읽는지 비교해보고 내가 놓친 것,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확인해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다시 읽으면 그만큼 자세히 읽게 되고 더 많은 걸 소화할 수 있습니다. 꾸준히 읽어나가면 독서력은 성장하게 되고, 우리에겐 독서를 즐길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4. 해외 고전의 경우, 번역본이기 때문에 이해도가 떨어져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서의 차이도 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고전을 읽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 같은 이유에서 한국영화만 보는 분도 있고, 한국 가요만 듣는 분도 있지요. 혹 해외관광도 그런 이유에서 피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한 가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해외관광도 좋아하고 다른 나라 음식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해외 고전을 읽는 게 힘들기만 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다른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궁금하다면요. 번역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지만, 사실 우리 고전 역시 절대 다수가 번역본입니다. 한문 고전을 한글로 옮긴 것이니까요. 정서의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그 차이 못지않게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떤 보편성입니다. 차이 속에서도 동질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할까요. 게다가 실제적인 필요성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세계는 평평하고 ‘우리는 하나’이며 지구촌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면 우리 것에만 관심을 한정하는 것은 한 가지 선택이더라도 어려운 선택입니다.   

 

5. <아주 사적인 독서>에 소개된 고전문학 중 원본으로 읽어볼만 한 책을 하나 골라주신다면 어떤 것이며 이유는 무엇인가요?

-> <마담 보바리>는 불어, <파우스트>는 독어, <돈키호테>는 스페인어, <석상손님>은 러시아어로 쓰인 작품이기에 원본으로 읽기에 좀 만만한(?) 작품은 영어로 쓰인 <햄릿>이나 <주홍글자>, <채털리부인의 연인> 등입니다. 분량을 고려하면 가장 얇은 <햄릿>을 권해드려야겠습니다. 다만 두어 종 이상의 번역본과 원문을 대조해가며 읽으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한 대목씩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는다면 고전의 맛과 힘을 경험할 수 있고, 어디 가서 자랑하기에도 좋습니다. “<햄릿>을 읽어보니까 말이야-”

 

6. <아주 사적인 독서>에 소개된 고전 문학 외에 추천해 주실만한 고전 문학을 꼽으신다면? 그리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 책에서 다룬 고전은 극히 일부이고 사실 읽을 만한 고전은 차고 넘칩니다. 따라서 마음에 드는 작가나 작품에서 관심을 확장해나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가령 <햄릿>이 흥미롭다면 셰익스피어의 비극 가운데 나머지 작품들을 마저 읽어볼 수 있고, 괴테의 <파우스트>를 독파했다면 같은 독일 작가인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에도 도전해볼 수 있습니다. 푸슈킨의 <석상손님>이 인상적이었다면 대표작 <예브게니 오네긴>에도 손길이 갈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강의차 카프카의 작품을 읽고 있습니다. <변신> 같은 카프카의 단편들과 <소송> 같은 소설도 필독 고전에 속하는데, 직장생활과 창작을 병행했던 작가의 고뇌가 직장인들에게는 남의 일 같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고전과 나 사이의 사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7. 책을 읽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책만 읽어도 될까요? 기본 소양을 키울 수 있는 필독서는 반드시 읽고 난 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요?

-> 각자가 좋아하는 책과 각자에게 좋은 책이 일치하다면 100%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게 일치하지 않는다면, 조정할 필요는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면 대개 편식하게 되고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거꾸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어느 정도 읽어나가되 여러 분야의 책들로 관심과 독서 범위를 확장해나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세계는 넓고 읽을 책은 많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읽다 보면 취향도 변화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독서를 통한 자기발견이 아닐까요.   

 

13. 0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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