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에서 묵고 있는 숙소가 뷰가 좋은 곳이라 입성 첫날부터 눈에 익혀두어었던 아크로폴리스를 어제 찾았다. 먼저 아크로폴리스박물관에서 고대 그리스의 유물들을 둘러보고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오르기 시작(아크로가 높은 곳이란 뜻이어서 각 폴리스마다 아크로폴리스가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대표적이지만. 한국에서 대학의 가장 낮은 곳의 집회광장을 아크로폴리스라고 불렀던 건 의미의 전용사례. 아고라보다 더 ‘있어 보이는‘ 어감 때문이었을까).

정상의 파르테논 신전까지 가는 길에 이미 사진으로 많이 접했던 디오니소스극장과 음악당을 볼 수 있었다. 디오니소스극장은 절반의 흔적이 남은 유적이고 음악당은 아직도 축제때 공연이 이루어지는 명소다(물론 스탠드가 개축되어서 가능한 일). 이번에 확인한 건 그리스비극의 출발점이 되는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기원전 472년)이 페르시아전쟁(기원전 499-450년)의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비극의 탄생배경이라고 여겨진다. 니체의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전쟁의 관계를 생각해봐야겠다).

당연하게도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은 고대 그리스의 가장 크고 중대한 사건이었으며 아테네의 운명도 결정지은 전쟁이다(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낳은 전쟁이니 역사의 시원이기도 하다). 제국과 싸우면서 아테네는 제국으로 변모해가며(델로스동맹의 중심으로서의 해상제국) 이는 그리스반도의 또다른 맹주 스파르타와의 내전, 곧 펠로폰네소스전쟁(기원전 431-404년)을 낳는다.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나지만 상처뿐인 승리로서 오랜 전쟁으로 힘을 소진한 두 도시는 결국 몰락하게 된다.

가이드는 디오니소스극장이 기원전 5세기에 세워졌다고 했지만(그리스 비극의 전성기다) 강대진 박사의 책에선 전성기 이후인 기원전 4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설명한다. 아크로폴리스박물관에서 디오니소스극장에 관한 책을 구입한 터라 나중에 확인해봐야겠다(‘나중에‘ 그리스비극 3대작가의 전작 읽기도 시도해뵈야겠다).

언덕 정상의 파르테논은 지금 보기에도 아테네 최고 영광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불행한 역사의 증거이기도 하다. 오스만제국하에 있던 17세기 후반 화약창고로 쓰이던 파르테논이 베네치아군의 포격에 크게 파손된 일이 상징적이다. 기둥들이 버텨준 것만으로 기적이라고 해야할지. 아무려나 세계문화유산 1호로서 파르테논은 지금도 해마다 30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그리스 최고의 명소다. 어제 일행은 각자 1/3000만의 몫을 해낸 셈.

아크로폴리스 견학 이후 점심을 먹은 뒤의 일정은 아테네 정치와 경제의 중심부 아고라 유적과 로마시대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유적을 둘러보는 일에 할애되었다. 당초 문학기행 출발전에 비 예보가 있어서 염려했는데 일정을 다 소화할 때까지 좋은 날씨가 이어졌다. 적당한 햇볕과 기온, 그늘과 바람 등. 예보는 일정 종료 후에 가진 자유시간에 한차례 소나기를 뿌리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 예보가 틀리지 않았지만 일정이 방해받지도 않았으니 일종의 윈-윈이다.

저녁식사는 호텔의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아크로폴리스의 야경과 함께 즐겼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인지, 로마에 가면 로마인처럼 행동하라는 격언에 견주어 이렇게 말해볼 수 있겠다. 아테네에선 모두가 신이 된다. 신들에 둘러싸여 하루를 지내다보니 저녁만찬이 신들의 만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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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카잔차키스 공항. 보딩을 한시간 남겨두어서인지 대기 승객이 많지 않다. 길다란 직사각형의 건물이어서 특별해보이진 않지만 이제 보니 카잔차키스 공항은 지중해를 눈앞의 전망으로 보여준다. 카잔차키스의 무덤에서 바라보게 되는 바다 역시 지중해. 현대문학 독자에게 지중해는 카뮈의 바다이기도 하지만 카잔차키스의 바다이기도 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묘비명으로 유명한 카잔차키스의 무덤은 해변가 언덕에 있어서 해안도로에서 하차해서는 10분쯤 걸어올라가야 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바다가 같이 보여서 막연히 바닷가에 위치한 것으로 알았다.

1957년 10월 독일에서 사망하고 카잔차키스의 시신은 그리스로 운구되지만 러시아 정교회와의 갈등으로 장례가 치러지지 않다가 어럽사리 묻힐 수 있었다. 반골의 자유정신을 죽어서도 과시한 경우라고 할까. 덕분에 카잔차키스는 그의 주인공 조르바와 함께(부처와 그리스도, 성프란치스코와 레닌이 자유인으로서 그와 나란하다) 영원한 자유인의 표상이 된다.

카잔차키스의 작품은 <그리스인 조르바>와 <그리스도최후의 유혹>, 그리고 <영혼의 자서전>을 강의에서 다루었는데 절판된 책들이 다시 나온다면 <수난>과 <미할리스 대장> 등 후기작들도 목록에 더 얹고 싶다. <오디세이아>까지 포함하면 제 규모의 카잔차키스 읽기가 가능하겠다. 카잔차키스를 찾는 여정의 끝에서 다시금 카잔차키스로 되돌아가는 반복의 여정. 발레리가 ‘해변의 묘지‘에서 적은 교훈을 반복할 따름이다.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

크레타를 다시 찾을 일이 또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몸으로 직접 찾아본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 크레타에서 머물렀던 1박2일의 짧은 시간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으로 등록되고 간직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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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일정의 둘째날은 온전히 카잔차키스 일정이다. 카잔차키스박물관이 있는 작은 시골마을 미르티아를 방문하고 다시 이라클리온으로 돌아와 유명한 그의 무덤을 찾는 것이 목표다. 오전 일정으로 그 두 일정을 소화한 다음 이탈리아 레스토라에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떠나기 전에(아테네로 돌아간다) 잠시 자유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라클리온의 중심에 있는 분수광장의 벤치에 앉아서.

차량으로 20분 거리의 산동네 미르티아는 인구 500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작은 마을(집은 더 많아보였는데 실거주인은 많지 않다고). 박물관 방문객은 우리 일행과 수학여행을 온 듯한 어린 학생들이 전부였다(크레타의 학교들에서 견학차 온다고).얼핏 보기엔 초등학교 1, 2학년으로 보여 카잔차키스를 읽을 나이 같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어린이를 위한 책들도 여러 권 쓴 저자가 아니던가. 카잔차키스 독자로서 우리는 동료인 셈.

박물관에서는 관람객을 위한 영상자료를 먼저 보여주었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덕분인지 한글 자막판이 있었다. 카잔차키스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잘 간추린 영상이었다. 박물관은 두 개 층으로 돼 있었는데 아랫층의 많은 공간은 작품 <오디세이아>에 할애돼 있었고(준비강의에서 다룬 게 다행스러웠다) 윗층에는 개별작품들에 대한 소개와 책들, 일부 영상으로 꾸며졌다. 박물관은 1983년에 개관하고 그 사이에 증축된 건물. 기념품샵에서는 온갖(까지는 아니고 여러 언어) 번역본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사진자료가 들어간 작가 연보(그리스어)를 기념으로 구입했다.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찾은 일은 따로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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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테네에서 크레타로 이동하면서 맞은 크레타의 첫날 일정은 문학기행보다는 문명기행에 가까웠다(카잔차키스 일정은 오늘 진행한다). 핵심은 크노소스궁전과 이라클리온(이라고 배웠는데 이곳에서는 헤라클리온이라고 읽는 듯하다. ‘헤라클레스의 도시‘가 어원적 의미라면 그쪽이 이해하기 쉽다) 고고학 박물관 방문하기. 숙소에서 고고학박물관은 도보로 10분거리. 동선은 버스를 타고(30분거리) 크노소스궁전에 다녀온 뒤에 박물관 공부를 하는 걸로 짜여졌다.

일주일전부터 확인해본 예보에는 비가 내린다고 하여 염려(라기보다는 체념)했는데 비구름의 변덕인지 화창했다. 강한 햇살은 구름이 막아주었고 심하지않게 바람도 불어서 몇시간을 야외에서 보냈지만 덥게 느껴지진 않았다(기온이 올라가고 관광객도 많아지면 다른 느낌을 줄 듯하다).

그간에 그리스 여행기는 많이 나왔지만 이번 문학기행에 도움을 준 책은 고전학자들의 문명기행서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온 강대진의 <그랜드투어 그리스>와 김헌의 <그리스 문명기행>이 그것인데, 각각 코로나 직전에 그리스를 둘러본 현장감을 반영하고 있다.

크레타와 그 주변섬들, 크노소스궁전과 고고학박물관 유물들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제공하는 건 강대진의 책으로, 준비강의 때 이번 여행과 관련한 장들을 읽었고 다시 복습을 위해 크레타까지 들고왔다(역시나 실제 견학 후에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에 더해서 들고온 책은 토머스 마틴의 <고대 그리스사>. 고대 그리스사에 대한 전반적인 조감도를 갖게해준다(저자의 책은 <고대 로마사>도 나와있다).

크로소스궁전을 세운 미노아(미노스) 문명은 중기 청동기에 건립된 유럽 최초의 궁전(왕궁)문명이고(기원전 2200년) 해양문명이다. 지중해교역의 중심로서 전성기를 누리다가 기원전 1370년경에 멸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본토의 미케아 문명에 흡수된 걸로 본다).

그 사이 크레타의 아침이 밝았고 조식을 먹었다. 미노아 문명의 점토항아리와 벽화, 그리고 문자(선형문자A, B)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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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라고 
크레타 사람이 말했다
언제적인가 논리학 시간
당신은 거짓말쟁이 크레타 사람을
믿지 못하지
크레타 사람이 진실을 말한다면
아.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

K-팝을 좋아한다고
크레타 소녀가 말했네
크레타의 바람이 산들거리는
버스정류장
크노소스 궁전으로 가는 정류장에서
소녀는 잇몸을 드러내며 환히 웃었네
언젠가 한국에 가고 싶다고
크레타 소녀는 진심처럼 말했네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환하게 웃었네
언젠가 서울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

우리는 크노소스로 가는 버스에 오르고
크레타 소녀는 크레타 친구들과 남았네
우리는 크레타 고고학 강의를 들으러
청동기 크노소스로 향하고 
크레타 소녀는 K-팝에 맞춰 기분을 낸다
크레타의 기이드는 말했다네
그녀는 뉴제너레이션이야

크레타에는 크노소스 궁전이 있고
한국사람을 반가워하는 크레타 소녀도 있다네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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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약수 2023-04-04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en elpízo típota. Den fovúmai típota. Eímai eléftheros(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