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 말라
조세프 응우옌 지음, 박영준 옮김 / 서삼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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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 말라

(Don't Believe Everything You Think)

조세프 응우엔 지음, 박영준 옮김

'In the zone'  이란 용어가 있다.

'그 지점에 들어 간다' 는 뜻이 되는데, 일반적으로 스포츠에서 사용된다.

프로 운동선수나 올림픽 메달리스트 같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가 경기중에 무아지경(無我之境)이나 몰입에 빠져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줄 때 '존' 안에 들어갔다고 표현한다.

'존' 안에 들어간 선수에게는 어떠한 잡념이나 망상 같은 생각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한 무아지경, 몰입의 경지가 바로 무념(無念)과 같은것 이다.

작가 조세프 응우엔은 생각(though) 와 사고(생각)하기(thinking) 간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생각하기(thinking) 를 멈췄을때 발생하는 무념(non-thinking) 의 순간에 이르기 까지 과정을 차분하게 단계별로 독자를 인도한다.

작가가 책에서 정의한 생각(though)의 근원은 우주이며, 신적, 창조적, 긍정적, 생동감, 무한함과 전체성이란 속성을 가지고 그에 반하여 사고(생각)하기(thinking)는 에고가 근원이며 인간적, 파괴적, 부정적, 긴장감, 유한하고 분리성을  지닌다고 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서 우리에게 벌고 싶은 돈이 얼마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예로 든다.

당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연간 수입은 얼마인가?

그때 떠오르는 숫자가 있다면 그건 자신의 근원적인 생각이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 금액의 5배가 되는 금액을 수입원으로 얻고자 한다면 어떻게 생각 하느냐? 고 다시 질문 한다면 우리는 이때 부터 온갖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금액을 벌 수 있지? 난 못해, 등등... 대부분 이러한 생각은 부정적인게 많다는 것이다. 생각이 부정적이면 우리는 정신의 에너지를 과하게 쓰게되고, 그러한 사고의 결과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결국 괴로움을 유발 한다는 것이다.

즉 '생각'과 '사고하기' 의 차이는 우리가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에 대해 사고를 하는 순간, 떠오른 생각을 제한하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규정하게 되며, 조건화 시키면서 그 꿈을 실행에 옮길 수 없도록 혹은 소유할 수 없도록 온갖 이유를 만들어 내는것이 '사고하기' 라고 설명한다.

또한 작가는 우리의 삶에 대해 피아노 건반을 비유로 든다.

피아노에는 88개의 건반이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피아노 앞에서 특정 건반을 가리키며 그 건반이 잘못 됐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 피아노를 연주할 때 악보와 맞지 않은 건반을 누르면 틀렸다고 표현한다. 즉 피아노의 본질은 잘못된 것이 없듯이 우리의 삶에서도 잘못된 것은 없다.

단지 좋다 나쁘다는 감정을 안겨주는 사고의 행위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의 놀음에서 벗어나서 결국에 진리를 추구 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진리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머리로만 생각하고 삶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없으면 겉으로 그럴듯해도 진리는 아닌것이다.

진리는 특정인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진리는 사고를 해야 할 만큼 복잡한게 아니다. 단순하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어떠한 문제에 봉착 했을때 해결책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 나와야 한다. 남들에게 혹은 외부에서 조언이나 해결책을 구하는것은 진실한 답이 아니다.

우리는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향해 구해야 한다. 또한 그 답이 자신에게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 해답은 자신의 무념의 상태에서 나오게 된다.

그러니 습관적으로 하는 생각하기, 사고하기는 멈춰야 하는 것이다.

사고하기는 무한한 해결 능력을 가진 자신의 내면의 힘을 가로 막는것이 된다.

우리가 지닌 근원적인 무념의 상태에서 스스로 나올수 있도록 자신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다만 두려운 마음이 앞서서 그 답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무념의 상태에 나오는 직관을 믿어야 한다. 일부러 생각을 일으켜 지어내는 모든 것은 믿어서는 안된다.

이 책의 제목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 조세프 응우엔은 자신을 괴롭혔던 문제가 곧 사고의 굴레에서 나왔음을 깨닫고 나자 자신의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이제는 대중들에게 '직관의 세계' 로 가는 안내자 역할을 하며 대중들이 쉽게 무념의 경지에 이를수 있도록 자신의 지혜를 공유하고 있다.

나는 예전에는 책속의 작가 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만을 수행자로 여겼었다.

서양에서도 예전에는 일부에게만 국한된 듯한 뉴에이지 같은 사상을 추구하는 사람은 소수였었다. 하지만 이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활 속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것 같다.  모두가 수행자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것은 지금처럼 혼란한 시기속에서 이루어지는 인류의 영적인 진화의 과정일 수도 있겠다.

일부러 생각하는 행위를 멈추고 무념속에 나온 직관에 대한 믿음을 설하는 작가의 통찰에 깊이 공감한다.

현대 사회처럼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에 자신의 마음을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책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성품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면서 비교적 수월하게 무념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뒤부분에는 앞의 내용들을 다시 한번 핵심만을 요약하여 생활 속에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서가 수록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아쉽다면 무념의 상태을 넘어선 경지, 즉 나의 고에서 벗어난 후의 단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건 아마도 작가의 차기작품이 되지 않을까?

아무튼 작가가 앞으로 낼 차기작도 기대가 된다.

이제는 '존(zone) '이란 개념이 낯설지가 않다. 

이 '무념의 공간'은 나에게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나만의 존 만들기. 그 존에 들어가게 되는 나 자신을 상상해 본다.

생각만 해도 전율이다.

우리의 목표는 영감(Inspiration) 과 절박감(Deseperation) 이라는 두 가지 원천에서 만들어집니다.
절박감에서 만들어진 목표는 당사자에게 결핍감과 긴박감을 안겨줍니다. - P103

내가 만일 무한정한 돈을 가졌고, 세계를 모두 여행 했으며, 두려워할 일이 없고, 남들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상관없다면, 이제는 어떤 일을 할 것이며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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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1-30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건반수가 그렇게 많은 줄 미처 생각치도 못했네요. 이 도서 찜합니다.

마힐 2023-12-05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36개의 검은 건반, 52개의 흰 건반으로 되어 있네요.
 
스토아철학과 서양불교 대원불교 학술총서 10
패트릭 어셔 지음, 이재석 옮김 / 운주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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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스토아철학과 서양불교( 두가지 철학적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

패트릭 어셔 지음, 이재석 옮김

 

선어록에 "달마서래의(達磨西來意)" 라는 구절이 있다.

원래는 "하시조사서래의(何是祖師西來意)" 로 전해지는데 조주선사(778~897 )에게 어느 학인이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은것이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건너온 이후 중국에서는 그전까지 형식에 치우쳤던 불교와 자생 도교와의 융합으로 선불교(禪佛敎)가 탄생하게 되었고 그 선불교는 다시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이처럼 붓다가 인도에서 탄생하여 일으킨 불교는 약 2500년 동안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중국, 우리나라, 일본순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만 전파가 되었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 불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상황을 일컬어 역사학자 토인비는 20세기 서양에서 일어난 최대의 사건은 불교가 서양으로 전파가 된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도미니크 수도회의 '브라이언 피어스 신부님' 은 불교의 눈으로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이제는 명상이라 하면 오히려 '참선(參禪), 좌선(坐禪)'이란 전통적인 불교수행 명칭을 쓰기 보다 명상법이라 하여 서구적 이미지로 다시 역으로 전해져 오는 시기가 된 듯하다.

서양으로 건너간 불교는 이제는 서양인들에게 종교로서의 역할보다 삶에서 철학이나 사색을 하는 명상수행으로 보편화 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겠다.

 

그런의미에서 이책(스토아철학과 서양불교) 은 나에게 서양불교와 고대그리스 철학인 스토아철학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계기가 되는 책인것 같다.

 

원래 이책은 고대 그리스 철학인 스토아철학과 현대 서양불교의 비교 연구를 다룬 논문인데 작가 '패트릭 어셔' 는 대중의 눈높이 맞추어 다시 단행본 책으로 편찬한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스토아철학을 깊이 연구하다 현대적 관점에서 대중적으로 스토아철학을 알리고 심리치료에 까지 적용하는 활동중에 불교를 접한것 같다.

그러면서 스토아철학과 서양에 전해진 불교에서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고 서로 다른 이 두가지 철학을 상호 보완하며 삶에서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작가가 책에서 지금의 서양에서 적용되고 있는 스토아철학과 서양불교는 현시대에 맞추어 변용이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작가는 이 두가지 철학 모두 현대의 재창조물이라는 견해로 출발한다.

그래서 고대시대의 철학 보다는 현대적 재창조된 이들 철학 사이에서 서로간의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에 재창조된 두 철학이 공유하는 핵심적인 본질을 작가는 스토아철학을 대표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마 5현제중 마지막 황제),에픽테토스(노예 출신 철학자), 세네카(폭군 네로의 스승) 를 통해 찾았고, 서양불교는 스티븐 배철러(송광사 구산스님 제자), 잭 콘필드(명상 지도자), 팃냑한 스님(서양불교 큰스님)을 통해 찾는 시도를 한다.

 

두 철학이 삶에서 실제로 적용되는 공통점에 대해서 크게 마음챙김, 이타심, 본성을 구하는 것과 현대의 인지적 행동 치료에 이르는 부분까지 거론한다.

 

무엇보다도 이 두철학의 핵심적 본질은 모두 우리의  '마음' 을 중시한다는데 있다.

그중에서 실질적으로 마음을 수행하는 '마음챙김'에 주목한다.

마음챙김은 요즘 근래 들어 많이들 쓰는 용어인데 아마도 팃냑한 스님의 저서를 통해 새롭게 재창조된 용어이기도 한 것 같다.

원래 마음챙김은 불교의 팔정도(八正道)에서 '정념(正念)'을 일컫는다.

스토아철학에서 중시한 의식의 흐름을 '지금,여기' 에서 지켜보는 성찰이 불교에서 마음챙김과 같다고 본 것이다.

또한 세상에 대한 이타적인 관점에서 불교의 '자비' 와 스토아 철학이 중시한 '덕()'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나는 이부분에서 동양 철학의 대학(大學)에 나오는 명명덕(明明德: 덕을 밝게 비추는) 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좀더 공부해봐야 할 부분이 될 것같다.

 

철학이 우리의 삶속에서 적용이 되어야 하고 수행적인 가치를 두는면에서 두가지 철학이 상호 보완이 되야한다는 작가의 성찰에 깊이 공감이 된다.

 

다만 약간의 아쉬운점이 있다면 번역문제라고는 보지는 않는데 아마도 서양식 표현을 그대로 표현하다 보니 오히려 한글 해석에서 고개를 갸욱거리기한 부분이 있다.  

책에서는 팔정도에 대한 부분을 '바른 견해, 바른 의도, 바른 말, 바른 생계,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  으로만 풀어서 썼다.

 

예전에 팔정도는 한자로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이 일반화된 용어 였었다.

오히려 한글 해석이 어색하것 같아 한자어(漢字語) 를 다시 찾아보게 됐다.

혹시 시대가 바뀜에 따라 한자적 표현도 점점 사라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서양인들 입장에서 어려운 한자(漢字)가 왜 필요한가?

부처님께서도 깨닫고 나신후 귀족들이 쓰는 '산스크리스트어' 대신 일반 평민들이 쓰는 속어인 '팔리어' 로 설법을 하셨다고 했다.

 

이런 불교의 유연성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면서 전파가 되는게 아닌가 싶다.

다만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선 정작 힌두교에 흡수된게 아이러니 하다.

그래서 1500년전 그걸 미리 내다본 달마가 인도에서 동쪽으로 간게 아닌가?

이제는 다시 서쪽으로 갔으니 어쨓든 불교의 유연한 태도와 각기 다른 문화와 종교를 포용하는 면에서 서로 다른 종교간의 벽도 쉽게 허물게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철학(哲學) 이란 한자어는 일본의 학자 '나시 아마네(西周)' 가 만든 신조어 이다.

영어의 Philosophy (philo : 사랑하다 +sophy: 지혜를) 에 해당하는 마땅한 단어가 동양에는 없었기 때문에 이 일본학자는 처음에 희철학(希哲學: 지혜로와지길 바라는 학문) 으로 지었으나 앞에 '희' 자를 떼어내어 오늘날 한중일은 '철학' 이라고 부른다.

어쨓든 한자가 편하게 느껴진다니.... 나도 점점 늙어간다는 뜻이리라.

늙어서 고지식한 사람이 되기 보단 지혜롭고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토아적 사고, 불교적 수행이 생활화가 되야 되겠지?

 

달마서래의에 대한 조주의 대답은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 였다.

즉 '뜰 앞의 잣나무' 란 뜻이다.

조주 선사는'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 을 왜 '뜰 앞의 잣나무' 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달마재서거의'(達磨再西去意)' 달마가 다시 서쪽으로 간 까닭은?

서양인들은 대답할 수 있을까?

조주선사의 대답은 아직도 이시대에 유효할까?

'지금, 여기!'

마음을 온 천지를 다녀보아도 자신보다 더 귀한 자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네. -붓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게 가장 최우선이며 가장 귀한 대상은 바로 자신의 존재 그리고 그 존재의 의식이다. -제논 - P102

이 도둑이나 간통자를 처형해야 하는가? 당신은 분명, 이렇게 물어서는 안된다. 대신에 이렇게 물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이 사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에 관한 어리석음에 빠진 이 사람. 시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관한 앎에 눈이 먼 이사람을 사형에 처해야 하는가? 라고 말이다. - 에픽테토스 - P120

나를 나의 진짜 이름으로 불러주오.
내가 깨어날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내 가슴의 문이
활짝 열린 채 있을 수 있도록
연민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틱냑한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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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짜리 독서법 - 내면의 성장을 넘어 경제적 부까지 이뤄준
손승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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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의 소설들에는 수많은 무공비급(武功秘笈)이 등장한다.

구음진경, 구양신경, 북명신공, 독고구검, 규화보전, 벽사검법, 건곤내다이 등등등.

이들 각각의 비급들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 같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위력을 지닌 무공들이다.

김용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이들 무림비급 중 하나, 둘 정도만 익혀도 소설 세계관 내에서 초절정 고수가 된다.

아마도 독서를 무예로 비유하고 독서법을 연구해서 책으로 낸다면 비급(秘笈) 처럼 되지 않을까?

이책 <10억짜리 독서법> 이 그러할 것 같다.

제목에 '10억짜리' 라는 표현이 좀 거슬리긴 했지만 (자기 계발서는 오로지 돈을 버는데만 집착하는것 같아서) 책의 내용은 독서에 대한 비결(秘訣)로 삼을 만 하다.

이책을 통해 독서 고수(高手)가 전하는 비법(秘法) 을 잘 배운다면10억 값어치는 충분하리라 본다.

비법은 저자가 7년간의 독서 수련(修練) 끝에 완성한 '자료화 독서법' 을 말한다.

책의 작가 '손승욱' 님은 이제는 독서 고수를 넘어선 장문인(掌門人)의 반열에 오를만 하다고 여겨진다.

7년 독서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들을 책과 유투브를 통해 세상에 내놓고 공유하고 있다.

즉, 독서법에 대해서는 자신의 문파(門派)를 세운것이나 다름 없다고 본다.

이책의 구성은 '책이 가져다준 7가지 삶의 변화', '내 인생을 바꿔준 자료화 독서법', '탁월한 독서가들의 10가지 독서 습관' 순으로 모두 3개의 파트로 이루어 졌다.

책 전반에는 작가의 삶에 대한 성향, 뭐든지 절실하게 임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고등학교 체육시간때 농구를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한계를 느낀 작가는 농구 실력을 쌓기 위해 겨울 방학 내내 홀로 혹독한 연습을 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연습을 작가는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 에서 수련한 것으로 비유했다.

'도리야마 아키라' 의 <드래곤볼> 만화속 세계관에는 주인공인 '손오공'이 단기간의 수련으로 한층 강해지는 방법이 나온다.

그 방법이란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는 수련장에서 수행하는것인데 여기서의 1년은 외부세계의 하루에 해당된다.

그래서 그 방에서 몇 년을 수련해도 외부세계는 단지 몇 일에 지나지 않는셈이 된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만의 훈련끝에 겨울방학후 자기 반에서 농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작가는 생애 처음의 터닝 포인트, 즉 인생의 전환점으로 소개 했다.

그후 대학 진학은 포기하고 오로지 돈만을 벌기 위해 20대에는 참 혹독히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관광가이드가 되기 위해 혼자 독학으로 중국어를 마스터한 후 업계 최고의 회사에서 중국어 가이드로 월 천의 수입을 벌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고 한다.

그때 관광 가이드를 더 잘해보겠다는 목적으로 읽기 시작한 역사책을 통해 점점 더 독서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이후에는 아예 독서에 빠져 버리게 되어버린다.

<책은 제가 알지 못하던 더 넓은 세계가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처음으로 인지한 순간이었습니다. P. 19 >

책에서 얻는 깨달음이 너무 좋아서 29살엔 그 수입 좋던 관광 가이드를 때려 치우고 1년 동안만 이라도 독서를 좀 더 파고 들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실행에 옮긴다.

학생시절에 농구고수가 되었던 것 처럼 작가는 이번엔 독서 수련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외부세계와 단절하고 무학 완성을 위해 면벽수련(面壁修練) 에 들어간 강호의 고수처럼 작가는 고독한 독서 수행을 하게 되었다.

1년만 하기로 했던 독서 수행은 어느덧 7년을 넘어섰고, 그동안의 수행성과로 결국 자신만의 독보적인 비급(秘笈) 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앞 글에서 언급했던 '자료화 독서법' 인 것이다.

<자료화란 '자료를 만든다는 뜻' 입니다. 책에 흩뿌려진 알맹이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언제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나만의 자료'로 만드는 독서 방법이 바로 '자료화 독서법' 입니다... 독서 하며 얻은 지식을 자료로 만들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 지식을 활용하는게 쉬워집니다. 책의 내용을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집니다. P. 70 >

자료화 독서법을 만든 계기는 작가가 독서를 한창 열심히 할 때 어느 모임에 나갔다가 아는 선배에게 책을 하나 추천해 줬다고 한다. 그러자 선배는 그 추천해 준 책에 대해 어떤 내용이냐는 질문을 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하애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단다.

그 책이 왜 좋은지 어떤 설명도 할 수가 없더란다.

책을 읽을때 느끼는 순간순간의 깨달음은 좋았지만 그 책속의 지식은 훨훨 날아가 버리고 머리속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더란것이다.

<그때의 저는 매우 비효율적인 독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무작정 열심히 읽기만 한거죠. 그때는 열심히만 읽다보면 제 뇌가 알아서 쑥쑥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게 제 착각이란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P. 76 >

아, 이건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나 역시도 읽을 당시엔 책 내용이 이해가 되고, 책의 주제도 뭔지 대충 감도 잡고, 책 한 권 마치면 웬지 모를 뿌듯한 기분이 들어 스스로가 만족 스러워 진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흘러 읽은 책을 떠 올릴때면 그 책을 읽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내용은 머리속에서 싹 다 증발되어 버린 신기한 경험들이 어디 한두번 인가?

그래서 내 나름대로 대비책으로 강구한것이 독후감 쓰기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와 같은 경험에서 한층 더 깊게 연구하여 자료화 독서법을 개발한것이었다.

작가는 '독서는 읽는 행위가 중요한게 아니라 읽는 방법이 중요하다' 고 강조 한다.

좋지 않은 방법으로 3년을 읽는것 보다 좋은 방법으로 3개월을 읽는 효과가 더 좋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 운동할 때 최고의 자세를 익혀야 운동 수행능력이 상승하듯 열심히 운동한다고 실력이 올라가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자료화 독서법은 작가에게 내,외면의 성장을 가속화 시키고 자신의 경제적인 성취 마저 이루어낸 최고의 독서법이라 자부 한다.

이책의 가장 핵심인 파트는 두번째 파트로 자료화 독서법에 대한 내용이다.

자료화 독서법의 핵심은 책에서 얻는 모든 지식을 자료로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책의 주제, 핵심, 자신이 느낀점 등을 발췌하거나 요약하여 하나의 문서로 만드는 수집 정리 작업을 먼저 한다.

그런 수집한 내용들은 분류를 통해 노트로 만들고, 그 노트는 자료집 형태로 저장해 놓는것이다.

그렇게 일단 자료화 해 놓으면 책의 내용을 잊지 않을려고 일부러 기억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지식을 수집하고 수집하고 또 수집하여, 자료를 만들어 언제든지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료화 독서법인것이다. 독서를 통해서 성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강력 추천한다.

하지만 지식의 자료화를 위해 학창시절 시험 공부 하듯이 파고 들어 가는 그 전투적인 방식은 지금의 나에겐 안맞는것 같다.

무술에서는 외가(外家: 대표적 소림사의 무공: 외공을 중시) 와 내가(內家: 무당파의 무공: 내공을 중시)가 있듯이 자료화 독서법은 전투적인 외가에 가까워 보인다.

나는 지금처럼 일단 책읽고 독후감 쓰는 내공에만 충실 할 련다.

무공 비급을 손에 넣었지만 아직은 연마할 수가 없네.  아직 내공이 닦이지 않았으니... (내공이 받쳐주지 않으면 쉽게 주화입마(走火入魔) 에 빠지지 않던가?)

이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삶에서 독서에 대한 절실한 마음과 고독이 느껴졌다.

원래 고수가 될 수록 고독해진다고 하더라.

김용의 소설 <신조협려> 에 나오는 독고구검(獨孤九劍)의 창시자, 독고구패(獨孤求敗)는 자신을 이겨주는 사람을 찾고자 강호에서 얼마나 홀로 구하고 다녔던가?

책을 읽고 난후 작가의 유투브 채널을 잠시 찾아 보았다.

채널 속의 손승욱 작가는 참으로 진솔하고 참 바르게 인생을 산 사람인것 같았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앞으로 다 잘 됐으면 좋겠다.

<탁월한 독서가가 되기 위해서도 사소한 것을 중요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책 한권에는 저자가 직접 경험과 공부를 통해 배운 최소 3년이상의 경험치가 담겨 있습니다. ... 그런 경험치들이 책의 문장과 페이지로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1분 정도의 한 페이지 독서만으로도 우리 인생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제 정신을 일깨워주는 딱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P. 160 >

그래, '딱 한 문장' 이야. 더는 군더더기 인거야. 이게 바로 일지선(一指禪) 의 경지가 아닌가?

나를 증명하려는 욕구를 내려놓자. 나 자신을 성장하 게 만드는데 집중하자. 어제보다 한 걸음 성장하는 데 집중하자. - P193

인간의 성장은 단 한번의 깨달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메시지를 깨닫고 잊고,깨닫고 잊는 과정 속애서 더욱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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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도구들 (블랙 에디션) -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61가지 성공 비밀
팀 페리스 지음, 박선령.정지현 옮김 / 토네이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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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자기계발서' 같은 류의 책들에 대해서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

본래 모든 책들이 어쩌면 다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책들인것 같은데 또 다시  '자기계발' 이란 분류로 나누고 있는셈 같다.

더구나 '자기계발' 이라 함은 자신의 '정신적 계발' 이 우선시 되어야할 것 같은데 요즘 시중에 나오는 자기계발은 대부분 '부의 뭐뭐' , '부자의 뭐뭐뭐', ' 00 억 버는 뭐뭐뭐' 등등의 돈과 물질에 관련된 책 제목이 많은것 같다.

또한 굳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돈에 관련된 제목을 달지는 않았지만 막상 내용의 대부분은 작가의 물질적 성공담을 주제로 삼고 그에 대한 무슨 무슨 법칙이나 공식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다.

세상의 성공을 물질적인 성공만이 최고인것 같은 기분이 들게끔 하는 그런류의 책들에 대해 예전부터 반감이 많았다.

물론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는게 나쁜것은 아니다.

돈은 어느시대에서나 중요했고 당장 필요한 물질이다. 먹고 살기 위해는 꼭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류의 책들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 (작가나 출판사에게나, 또 당장 필요한 독자에게도...)

그런데 내가 볼때 물질적인 성공에 대한 자기 계발서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는것 같다.

첫째, 세상의 구조를 단순화 시켜 무슨 법칙이나 공식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70억의 인구를 가진 우리 지구별에는 사람수 만큼이나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 예측 할 수 없는 변수를 어찌 아이들 우화속의 인물들 처럼 일반화 시켜 단순하게 법칙으로 내세울수 있을까?

물리학에서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 함으로써 인류는 비로소 모든 사람이 중력의 영향을 받는 다는것을 안 것 처럼 '세상의 부' 에도 법칙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다 부를 누릴수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진정으로 '법칙' 이라고 일컫는다면 누구에게나 적용이 될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누구는 적용 되고 누구는 적용이 안된다면 그것을 법칙이라고 부를수는 없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운' 이 좋아 성공한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성공 여부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면 조건이 문제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건 '조건' 이라고 해야지 '법칙' 이나 '공식' 이라고 칭하면 안된다.

일의 성공이나 실패에는 한가지 조건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수많은 조건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 이 있어야 성공하고 없어서 실패하는것이 아니라 '~도' 있어서 성공이나 실패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무가불무가 (無可不無可 반드시 어떻게 해야만 하는것도 없고, 어떻게 하면 안된다는 것도 없다) ' 처럼 세상은 '고정된것은 없는것 '이다.

둘째, 자신의 성공담으로 '나와 남을 둘로 나눈다' 는 것이다.

"원래 나도 당신들 처럼 힘들게 살았어. 그래, 맞아, 사실 나도 당신들하고 같은 부류였었어.

그런데 어찌해서 어찌하다 보니 어쩜 이렇게 물질적으로 성공 해버렸네?

그런데 내가 당신네들 사는것 보니 참 안타까워...

그래서 내가 큰맘먹고 이런 성공한 비결을 당신네들께 알려 줄께.

그것은 바로 뭐뭐뭐 야. 당신들도 이렇게 해봐. 참 쉽지?  "

이러한 성공담의 문제점은 세상을 '자신을 포함한 성공한 사람'과 '거기에 포함 되지 못한 당신들 (보편적인 우리들)' 로 나눈다는데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소중하며 각자 존재해야만 하는 존재의 이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물질적인 성공을 한 사람과 못한 사람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성공담에 나는 공감이 되질 않는다.

세상은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데 어떻게 자기계발서 까지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인가?

세째, 성공에 대한 잘못된 관념과 성공에 대한 집착을 당연시 하게 여기는 풍토를 만들고 있다.

성공이라 함은 물질적인 성공도 중요하고, 정신적인 자기의 한계를 극복하여 지금보다 더 나은 단계로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의 소중함도 중요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일부 성공담에 나오는

'나는 이미 성공 했으니 당신들도 나처럼 해봐. 그걸 못해 낸다면 당신들이 문제였던 거야.'

로 들리는 어투는 정말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에라~ 이런걸 내가 왜 봐야 하나?

아, 그럴땐 책을 확, 던지고 싶어진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달성해야만이 성공이고 실패를 하면 안된다는 관념을 심어주는것 아닌가?

이것은 목표에 달성하지 못했어도 시도하려는 의지와 그 과정에 대한 노고를 무시하는것이 아닌가?

작가는 책을 통해서 잘못된 성공에 대한 관념을 설파하고 있는게 아닌가?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자기 계발이 되어야 하는데 물질적인 성공만이 최고라는 관념을 집착하는 작가와 그걸 부추겨 출판하는 출판사의 풍조에서 이미 이 시대는 '산문의 시대' 가 되었음을 알려 주는것 같다.

아마도 나의 이런 편견 때문에 자기계발서 류의 책에서 배워야 할 것은 나에겐 보이질 않았다.

분명 책에는 좋고 나쁨이 없지만 나의 마음은 편견으로 가득차서 책에 대해 좋고 나쁘고를 가르고 있었다.

이렇게 자기계발 류의 책들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 라는 생각이 이제는 굳어지고 있을때 쯤 <역행자> 를 읽다가 그 책에 언급된 책 <타이탄의 도구들> 이 눈에 띄였다.

알라딘을 통해 구매를 하면서 그렇고 그런 책이 아니길 바랬다.

어쨓든 구매를 하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책을 펼쳤는데 책의 서문에 전혀 뜻밖에도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가 언급 되어 있는 것이다.

우선 이책<타이탄의 도구들> 은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비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밀,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들의 비밀 로 3개의 장으로 나눠졌다.

'비밀' 이라고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긴 했지만 사실은 성공한 사람들의 물질, 정신, 육체에 대한 '조언' 인것이다.

내가 앞에서 우려했던 물질적인 성공에만 치중된 것이 아닌 지혜로운 정신과 건강한 육체까지 포함한 조화로운 자기계발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타이탄의 도구> 에서 '타이탄' 은 '거인' 이란 뜻으로 한 분야에서 정상에 선 사람, 성공한 사람을 그렇게 표현했다.  '도구' 는 디테일을 일컫는다.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디테일한 작은 습관, 태도, 명상, 주문(믿음), 보충 학습 계획, 즐겨하는 질문, 독서법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 작가가 이책을 집필한 이유가 되고 목적이 되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의 구절은

'생각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 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 는 싯다르타의  대사이다.

자신이 만나본 타이탄들은 싯다르타가 가지고 있는 세가지 능력을 키웠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소설 <싯다르타> 에는 분명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만약 사고할 알고, 기다릴 알고, 단식할 안다면, 누구나 마술을 부릴수 있고, 누구나 자기의 목표를 달성할 있습니다.  - P106더스토리 초판본>

소설속에 '당신은 무슨 능력이 있느냐?' 는 상대의 질문에 대한 싯다르타의 이와 같은 대답은 읽는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기도 하는데 읽고 음미 할수록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타이탄의 도구들> 의 작가의 통찰은 <싯다르타> 소설속의 한 대목에서 타이탄들이 가진 공통된 능력을 찾아내고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는데 초점을 둔 주제를 다뤘다는 것이다.

세속에서의 성공은 물질적인 성공뿐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까지 조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작가는 명상의 중요성과 효용에 대해서도 책의 전반에 걸쳐 언급하고 있다.

<명상의 핵심은 정신을 집중하는데 있지 않다. '정신이 방황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 있다. 정신이 흩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챈 후 단 1초만이라도 다시 만트라에 주의를 집중하면 그건 ' 성공적인' 명상이라고 할 수 있다. P. 31 >

<족첸을 아는가? 이는 티베트 불교의 최고 수행법이다. 두려움이나 불안이 엄습할 때는 눈을 뜬 채 맑은 하늘과 지평선 너머를 쳐다본다. 그러면서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에 아무 판단 없이 주의를 기울여 보라. 머리가 맑아지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을 때의 감정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P. 163 >

<명상 도중에 모욕을 당했던 일 때문에 화가 솟구치면 곧 바로 속으로 ' . 분노의 감정이 찾아왔군' 하고 말하면서 그 존재를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나면 금세 다시 집중할 수 있다.... 감정과 싸우는 것은 모래 늪에서 허우적거릴수록 점점 더 깊이 발이 잠기는 것과 같다.... 이름 붙이고,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이자 최선의 공격이자 최선의 방어다..  P. 271 >

특히 뒤에 이어지는 '마라에게 차 대접하기' 구절은 내가 이책에서 건진 가장 뜻 깊은 조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다양한 얼굴의 마라가 찾아온다. 환영의 인사를 건네며 따뜻한 차를 대접하라.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친절로 감싸 안으라. 그렇게 바라보고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면 우리는 마라의 구체적인 실체를 발견할 수 있다. 마라는 곧 우리 자신이다. P. 272 >

*마라는 마왕의 파순을 일컫는다.

지금은 <존윅> 으로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는 '키아누 리브스' 리즈 시절 영화중에 <리틀 붓다> 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에서 '키아누 리브스' 는 석가모니 붓다의 역할로 열연을 했었다.

영화의 백미는 붓다가 보리수에서 정각을 이루기전, 새벽이 오기전에 마왕 파순과 극렬한 내면 전쟁을 치루는 장면이다.

그 격렬했던 전쟁 마지막, 자신과 대립했던 흉악한 마왕 파순의 모습이 본래 석가모니 붓다의 모습으로 변해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 잘생긴 '키아누 리브스' 가 본래 붓다이며 마왕 파순이기도 했다는 걸 영화적으로 표현 한것이었다.

'선과 악은 둘이 아니라는것' 을 보여 주는 장면 인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성공과 실패도 본래는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재 성공에만 집착하는 우리는 실패에서 좌절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실패를 통해서 더 많은 성장을 이루어 낼수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것이다.

<눈에 보이는 발전이 없을 때 나타나는 좌절감은 탁월함을 향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일입니다. 좌절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니까요.... 우리가 실패하는 건 좌절감 때문이 아닙니다. '조급함' 때문이죠. 좌절감과 싸우는 동안 조급함을 느끼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표 달성에 실패합니다. P. 326 >

이책의 작가 팀페리스는 자신이 방송하는 <팀페리스 쇼>에서 세상에 성공한 200여명이나 되는 석학, CEO, 예술가, 전문가들을 만났고 그들의 성공 비결에 대해 자신만의 노트로 정리를 했다.  

이책의 수많은 조언들은 아마도 다른 자기계발을 쓰는 작가들에게서도 볼 수있겠지만 한쪽으로 편향 되지 않고 전체적으로 물질과 정신, 육체의 조화를 이룬 조언은 타 자기계발서 보다 훌륭한 점이라고 생각된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 이란 개념에 대해서 반드시 '남들보다 더 나은~ ' 이라는 '' 과의 비교에 치중하는 면이 강한것 같다.

성공은 주관적인 개념인데 이것을 모두에게 추구 하라고 하는것은 '선동' 으로 밖에 안 느껴진다.

현대 사회는 '성공 지상주의' 가 된 것이다.

'성공' 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성공' 이란 단어를 풀어봤다.

성공(成功) 이란 말의 성()은 '이룰 성' 과 공() '공 공' 자( )으로 이루어졌는데 공() 은(: 장인 공+ 힘력) 이 합쳐진 글자다.

원래 '장인 공()' 은 돌 위에 구멍을 뚫은 막대 기구를 형상화한 상형 문자인데 도구를 잘 다루는 장인 즉 기술자나 전문가를 뜻하게 된다.

따라서 공() 힘을 써야 하는 장인을 뜻하므로 성공이란 글자 안에 '이루어 낸다' 와 '장인', '힘' 등이 포함 된것이다.

즉 성공이란 결국 '사람이 막대로 돌위에 구멍을 뚫듯이 힘과 집념으로 이루어 내는 것' 이라고 볼수도 있겠다.

자, 그렇다면 성공이란 단어엔 '노력과 집념, 힘 그리고 이루어 내는것' 이 함축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 이란 말 자체에 그 조건들이 포함되어 있어 성공을 만들어 내는것은 본래 부터 쉬운게 아닌것이 되는 셈이다.

돌에 구멍을 낼 정도의 힘과 노력이 들어 가야 하는데 어디 그게 쉬운일인가?

사람이 힘과 노력으로 돌에 구멍을 뚤어 내는것. 그게 바로 성공이다.

결국 '성공' 엔 남과의 비교는 없는것이다.

각자의 돌에 구멍을 뚫을 정도의 각오와 노력이 필요한것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서 자신의 한계 규정하지 말고 현재보다 한차원 높이는데 치중해야 되겠다.

공자는 <논어 옹야편> 에서 '역부족자, 중도이폐, 금여화( 力不足, 中道而廢, 今如畵: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고 여기면, 나아가다가 필시 중도에 그만두게 되나니,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구나)'  라고 했었다.

,  스스로가 자신을 '미약하다 , 부족하다' 하고 한계를 그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계발하고 발전 시키는 것만이 우리가 눈을 감기전까지 해야될 의무이자 책임이 아닐까 생각된다.

더이상 무의미한 성공에 대한 집착과 남과의 비교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나부터 그렇게 해야지. 밖에 있는 집착과 비교는 그만 하자.

내 안의 돌에다 구멍을 내는것만 집중하자.

그래서 이책의 작가가 <싯다르타> 를 통해 통찰했던 '생각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아는 능력 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는 구절은 앞으로 내가 두고두고 곱씹게 될 명언이 될 것이다.

마라와 함께 마실 차 한잔을 위하여....

‘의문‘ 은 삶의 수준을 결정하고
‘질문‘ 은 삶 자체를 바꾼다. - P95

길거리에서 오프라 윈프리를 만나면 절대로 ‘토크쇼 잘 보고 있어요!‘ 라고 하지마라. 대신 ‘키위 좋아하세요?‘ 라고 물어라.
상대가 예상치 못한 주제를 꺼내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면 당신은 오프라 윈프리와 키위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평생 기억에 남을 멋진 경험을 할 수도 있다. - P221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데 4000시간 정도 쓰는 건 충분히 타당하다. 이는 일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2년에 해당한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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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싯다르타 (문고판) - 1922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박진권 옮김 / 더스토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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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래 <싯다르타> 독후감은 안 남기려고 했다.

이책을 이미 올 봄에 감명 깊게 읽고난 후 곧 바로 <유리알 유희>를 통해 나름 힘겹게 헤세의 사유를 정리했다고 생각 했기 때문에 싯다르타는 굳이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 한것이다.

그런데 몇일전 <타이탄의 도구들> 이란 책을 읽는데 책의 서문에서 싯다르타의 구절을 언급하는것이 아닌가?  

더구나 그 내용은 <싯다르타> 를 읽으면서 내 마음으로 들어온 구절 이였다.

"나는 사고 할수 있습니다. 나는 기다릴수 있습니다. 나는 단식 할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냥 넘어 갈수는 없을것 같다.

<싯다르타> 에 대해 다시 정리해 봐야겠다고 생각이 든것이다.

 

어릴때 부터 <싯다르타> 는 책 제목만 보고 부처님의 또 다른 이름 '고타마 싯다르타' 라고 여겨져서 그냥 단순히 부처님 일대기를 소설로 쓴것 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이미 어쭙잖게 안다는 오만한 생각에 읽고 싶은 마음이 안들었다.

그러다 어쩌다 올 초에 알라딘에 뜬 광고에서 '초판본 표지 디자인' 이란 광고에 충동 구매를 한것이다.

이거 불교 소설이고 표지 디자인이 초판이니 소장 가치가 있을 꺼란 이상한 심리가 들었다.

 

그런데 막상 책은 소장용 치고는 너무 아담하고 깔끔해서 책꽃이에 두기엔 폼은 안난다.

그래도 구매를 했으니 안읽을수가 없지 않나?  별다른 기대는 안했지만....

그뒤에 어마어마한 감동이 올지 몰랐다.

 

사람들은 소위 명작이란 작품은 나이가 변함에 따라 다시 읽어 보면 다른 느낌을 받는다고들 한다.

대표적 인게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 가 있다.

10대에 읽을때는 어린 왕자의 지구 여행기 수준의 감흥이 있을것이고

20대에 읽을때는 장미와 어린 왕자의 사랑, 여우를 통한 길들임에 대한것을 느끼게 되고,

30대에는 지구에 오기전에 여행하며 각각의 행성에서 만난 인간 군상의 상징까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40대 때는 세상과 사랑에 대해 깊어진 이해를 바탕으로 읽게 되는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래서 책은 당시 읽는 이의 마음 상태, 이해도, 삶에서 경험한 체험 상태에 따라 사람마다 시기마다 느끼고 이해하는게 전부 다르지 않나 싶다.

싯다르타 또한 그런것 같다.

내가 젊은 시절 착오로 몰라 봤지만 만약 그때 읽었었더라도 지금의 이해와는 완전히 다를것이다.

지금 상태의 나에게 <싯다르타>는 깨달음에 대한 헤르만 헤세의 풀이 이자 서양판 <유마경> 소설로 읽힌다.

 

싯다르타는 어릴때 부터 총명했고 잘 생겼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인물에 출신 또한 바라문 이였다.

'사마나' 라고 부르는 수행자가 되기 위해 친구 고빈다와 같이 스승을 찾아가 수행을 한다.

그리고 그 스승들이 만족할 만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물위를 걷거나, 사람을 부리는 마법 같은 초능력을 할 줄 안다 해도 그건 해탈이 아니다.

그런 정도의 수행과 경지로는 싯다르타의 마음을 비울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고타마 붓다' 의 문하(門下) 를 찾아가게 된다.

붓다는 당시에 완전한 깨달음, 즉 무등정각을 성취한 분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고 계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붓다의 제자가 되길 청하고 수행하기를 원했다.

싯다르타의 친구 고빈다는 결국 붓다 곁에 남아 제자가 되지만 싯다르타는 붓다에게서 떠나게 된다.

 

<오, 지존이시여! 제가 당신의 제자들 중 하나가 된다면, 저의 자아가 단지 겉으로만, 허위로만 안식에 도달하고 해탈을 얻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실제로는 저의 자아가 계속 살아서 커지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P. 69 >

 

난 이 부분에서 당시 싯다르타의 입장을 안타까워 했다.

왜 지금 눈앞에 계신 최고의 스승을 온전히 받아 들이지 못하는지?

스승에 대한 완전한 귀의(歸依)  만이 자신과 스승을 하나로 만들수 있을 텐데...

어쩌면 싯다르타는 너무나도 영리해서 아상 (我相) 과 교만 때문에 진정한 스승을 못 알아 본 것인가?

 

하지만 싯다르타가 스승에 대한 존경이 없거나 아만, 아상이 높아서가 아니였음을 책을 다 읽고 난후 에야 겨우 싯다르타의 마음을 알수 있었다.

 

싯다르타는 붓다가 성취한 깨달음은 '붓다 만의 체험' 이라고 봤다.

붓다가 아무리 설법을 훌륭하게 하고 제자들을 교화 시켜도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그건 각자 자신들의 체험이 아니라고 본것이다.

싯다르타 자신은 자신만의 길로 붓다가 깨달은 진리를 체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속으로 나와서 카말라와 사랑에 빠지고, 상인이 되어 장사를 하고, 노름과 술에 빠지는 둥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러다 반복되는 세속적인 삶의 염증 끝에 그 모든것을 버리고 떠난 싯다르타는 강가에 이르게 된다.

그 강가에서 싯다르타는 뱃사공 바수데바를 만나게 된다.

바수데바의 언행에서 감명을 받은 싯다르타는 자신 또한 뱃사공이 되어 강() 의 노래를 들을줄 알게 된다.

 

<싯다르타는 강으로 부터 끊임없이 배웠다. 무엇보다고 강으로부터 고요한 마음으로, 영혼을 열고서 기다리는 마음으로, 격정을 일으키거나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의견을 말하지 않고서 경청하는 법과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 P. 178 >

 

뱃사공이 된 싯다르타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 점차 깊어지는 깨달음에 다다랐지만

고타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던 카말라와 자신의 아들과 상봉을 하게 된다.

하지만 카밀라의 죽음과 남겨진 혈육에 대한 애착을 싯다르타는 마주 해야만 했다.

자식에 대한 애착은 싯다르타 자신도 몰랐을 정도로 큰 상처만 남겼다.

그렇지만 그것을 통해 다시 또 강에서 싯다르타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싯다르타는 들었다. 그는 이제 완전히 귀 기울이는 자가 되었고, 완전히 경청하는 데 몰두 했고,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완전히 빨아들였다.... 단일성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 수천의 소리가 어우러진 위대한 노래는 단 한 마디의 말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옴', 완성이었다. P. 226 >

 

결국 싯다르타에게는 자신이 체험한 모든 장면들이 전부 구도(求道)였던 것이다.

 

나는 이부분에서 전에 읽었던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 에서 산티아고가 사막에서 바람으로 변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산티아고는 '만물의 언어' 를 익혀 '사막' 과 대화를 하고, '바람' 과 대화를 하며, '태양' 하고 대화를 한다.

종국에는 세상을 창조한, '천지만물을 기록한 손' 에게 아무 바람도 없는 기도를 하며 깨우친다.

만물의 정기가 신의 일부이고 신의 정기가 곧 자신의 영혼임을.

 

뿐만 아니라 후에 읽은 헤세의 <유리알 유희> 의 세편의 이력서는 모두 <싯다르타> 의 이야기 결이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특히 고해사에 나오는 두 수도승의 관계는 싯다르타와 바수데바의 관계, 싯다르타와 고빈다의 관계는 각 각 다른 소설이지만 서로 유사한 점이 많음을 알수 있었다.

아마도 헤세의 입장에서 싯다르타에서 하고 싶은 메세지는 헤세가 말년 까지 고수한 자신이 추구한 이상(理想) 혹은 깨달음과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옛친구 고빈다와의 재회에서 궁극의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고빈다는 싯다르타를 통해 여실히 체험하게 된다.

이 장면이 바로 내가 본 이 소설의 백미(白眉) 이자 헤세가 추구했던 깨달음의 경지가 아닌가 싶다.

 

<모든 진리의 반대도 마찬가지로 진리다..... 세존 고타마께서 가르치시면서 세상에 대해 말씀하실때, 세상을 윤회와 열반, 미혹과 진리, 번뇌와 해탈로 나눌수 밖에 없었다네.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길이 없네. P.236>

 

현대 물리학에서 차원에 대해 이렇게 정의 한다.

일차원은 점으로 되있고 이차원은 선으로 된 평면이고 삼차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인 입체 공간이며 사차원은 입체 공간 에다가 시간이 더 해졌다고 한다.

차원에 대한 특징은 각각의 차원은 자신보다 높은 차원을 볼수도 없고 이해 할수도 없다는 것이다.

일차원은 이차원을 이해를 못하고, 삼차원은 4차원을 이해를 할수가 없는것이다.

하지만 4차원은 3차원을 알수 있고, 3차원은 2차원을 알수가 있단다.

즉 우리가 사는 3차원은 4차원을 모르지만 4차원은 3차원을 잘 안단다는 뜻이 된다.

이런식으로 보면 깨달음의 세계는 3차원을 넘어선 세계나 다름없다.

그 세계를 3차원인 현실 세계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려면 이해할수 있는 범위에서 설명해야 한다.

그 도구가 언어이다. 즉 말을 통해 이해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란 도구로 진리, 깨달음을 설명 하려해도 그 전하는 말 자체는 진리가 아닌것이다.

 

노자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를 도라고 항상 부를수 있는게 아니고 이름을 항상 이름 지어져 부를수 없다) 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세존께서 깨달은 경지를 아무리 말로 표현 하려 해도, 결국 우리의 관념안에 있는 것으로 밖에 설 할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래서 선에서는 불립문자, 교외별전 (不立文字,敎外別傳) 이라고 하는것이다.

 

싯다르타가 붓다의 문하를 떠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이라고 해도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의 길에서 자신만의 체험으로 진리를 알고자 했던것이다.

 

<한 인간이 완전히 신성하거나 완전히 죄를 짓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네. 우리가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세계와 영원사이, 번뇌와 행복 사이, 선과 악 사이에 놓인 것 처럼 보이는 간격 또한 착각이라네. P.237 >

 

<죄인 안에서, 자네 안에서, 모든 사람 안에서 생성되고 있는 붓다, 가능성을 지닌 붓다, 숨겨져 있는 붓다를 존경해야만 하네.... 이 세상은 불완전하지도 않고 또는 완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지도 않다네. 아니 세계는 매 순간 완전하네. P.238>

 

얼마전에 읽은 유마경의 사상과 일치하는 구절이다.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가 곧 불국토라는것.

더럽다 깨끗하다도 없으며 번뇌와 깨달음의 차별이 없는 바로 이 자리에서 , 지금 내 안에 있는 불성(佛性) , 즉 참성품을 깨달아야 된다는 것이다.

일체 모든 것이 둘이 아니 () 라는 불이 사상과 일맥상통하다.

 

<사랑이야 말로 나에게는 무엇보다 도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네..... 그 분께서 어떻게 사랑을 모르시겠나? ..... 그분의 손짓 하나하나가 그분의 의견보다고 더 중요하다네. 나는 그분의 설법, 그분의 사상에서 그분의 위대함을 깨닫는게 아니라, 오직 행위와 삶 속에서 그분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네. P.246 >

 

이 부분에서는 얼마전에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올랐다.

비록 조르바의 차원과 붓다의 차원은 다르겠지만 사랑에 대한 본질과 순간순간을 걸림없이 산것은 틀림없다.

 

<고빈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위대한 사랑과 예감에 이끌려 그에게 순종하여 그의 몸 가까이로 몸을 숙여 싯다르타의 이마에 입술을 대는 사이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고빈다는 자기가 바로 조금전에 입을 맞추었고, 바로 조금전에 모든 형상과 생성과 모든 존재의 무대였던 싯다르타의 고요한 얼굴 위로 몸을 굽힌 채 잠시 서있었다..... 싯다르타는 잔잔히 미소지었고, 그윽하고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P.252>

 

고빈다는 싯다르타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는 순간 오랜 여정 동안 싯다르타가 추구했으며 세존 고타마가 한 체험을 고빈다 본인이 몸소 체험을 하게 된다.

그 체험은 오직 각자의 영역이다.

이것이 바로 헤세가 전하는 깨달음에 대한 소설적 표현 이라고 본다.

 

<싯다르타> 는 1922년에 출판 되었다고 한다. 계산을 해보면 헤세의 나이 45세 즈음에 완성된 것이다.

헤세의 말년에 지은 <유리알 유희>는 1943년 에 나왔으니 20년이 흐른 시간 뒤에 65~66세가 되는 나이다.

두 작품의 연관성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분명히 이어져 있다고 본다.

공자가 논어에서 말했던 일이관지(一以貫之 : 한가지로 꿰뚤어 버리는) 처럼 그의 사상은 처음부터 마지막 까지 관통하지 않았나 싶다.

 

싯다르타는 어쩌면 이미 완성된 자 일수도 있겠다.

붓다의 또 다른 모습이며, 유마경에 유마의 또 다른 모습으로도 볼수 있고, 헤세의 또 다른 분신이기도 하다.

 

 

헤세가 말했던 산문의 시대 속에서 남들에게 의지 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사고하는 능력,

바쁜 세상속에 홀로 여여하게 기다릴 수 있는 여유.

맛있어 보이는 식()의 유혹에서 벗어나 스스로 단식할 수 있는 선택.

각각의 능력이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스스로가 선택하는것 보다 AI  나 남들의 평판에 의지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가?

또한 우리는 느긋하게 기다리는것 보다 남들 보다 더 빨리 성취하려고 조급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맛집 과 먹방에 대한 유혹을 물리치고 단식을 하기는 너무나 힘들지 않는가?

 

그래서 시대엔 사고할 있고, 기다릴 알고, 단식할 아는 능력은 사실 대단한 능력 인것이다.

 

 

 

그것은 곧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를 의미 하기 때문이다.

 

 

 

사실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기다릴 수 있는 능력, 단식할 수 있는 능력은 독서에 빠지면 자연스레 이루어 지는 능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앞으로 누군가 헤세의 작품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싯다르타 !" 라고 외쳐야 겠다.

싯다르타!

 

 

싯다르타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기다리고, 사고하고, 단식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몸을 움직이지도 않은채, 마치 물속을 헤쳐 나가는 돌처럼 세속의 일들을 헤쳐 갑니다.
- P105

만약 사고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면, 누구나 마술을 부릴수 있고, 누구나 자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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