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2024년3 월14

제목: 한마음이 아니라면

어제 저녁,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는 완산에게 나는 호들갑스런 마음으로 다가갔다.

낮에 지인을 통해 받은 설이의 입시관련 정보를 알려줘야 했다.

학원정보에 따르면 지금 설이의 스펙으로는 우리가 희망하는 대학이 어려울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완산 옆에서 나는 프린트 해온 자료를 열변을 토하며 설명하려고 했다.

이때 손가락에 침을 발라 프린트물을 한장 넘길때 였다.

완산이 손가락에 침 뭍이지 말라고 한소리를 했다.

나 왈: '그게 왜? 어때서? 잘 안넘겨 지니까 침 바르는 거지.'

그때 완산에게서 더럽다는 표정이 읽혔다.

한 순간에 내 마음은 싸늘하게 냉각되어 버렸다.

'됐다. 그만 두자.' 하고 말하려던 내용과 굳어진 마음을 전부 회수해 버렸다.

그리곤 나는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완산은 잠시후 나에게 한소리를 했다.

'무슨 남자가 쉽게 화를 내?'

나는 아무 대꾸도 안했다.

이때 식탁에 차려진 저녁을 나는 말 없이 먹었다.

하지만 나의 머리속엔 부부 사이에 온갖 정이 다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몇년전 부터 종종 마음이 들떠 있다가 어느 순간 완산의 표정이나 말 한마디에 내마음이 순식간에 냉랭해지곤 했었다.

아마도 이런 냉전이 부부사이에 자주 나거나 지속되면 관계가 파탄나는게 아닌가 싶다.

머리속의 망상을 한창 이어가고 있을때 완산이 다가와 내 앞에 앉았다.

'당신은 요즘 갱년기야? 왜 그리 쉽게 화를 내?'

나 왈: '화 안냈어. 다만 당신이 뭐라고 한소리 하니까 순간적으로 말하기 싫어졌어.'

완산 왈: '당신은 마음공부 한다고 한달에 한번 줌법회도 하면서 이정도 밖에 안돼?'

아, 또... 윽. 완산의 한마디에 또 무너졌다.

완산은 내가 평소에도 침을 뭍히는 것 같은 지저분해 보이는 행동이 좀 많다고 사람들 앞에서 주의하라고 몇번을 얘기 했지만 내가 잘 안듣는다고 했다.

그러게 말일세...

요즘 내가 나이를 먹는가 보다. 왜 그럴까? 진짜 갱년기가 왔을까?

낮에 유튜브, 수요법회에서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설법이든 강의를 들으면 들을때 뿐이고 실제로 실천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나' 를 내려 놓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관 한다고 하는게 그게 될 법인가? "

그렇다.

내가 지금 그런 형국이구나.

아직도 다스려지지 않은 내 안의 중생들.

참성품은 여여하지만 내 육신속의 중생들은 아직도 아우성이다.

 

결국 완산과 나는 낮에 얻은 입시 관련 정보를 설이한테 알려 주지 말자고 했다.

어쩌면 정보를 제공한 학원의 목적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돼었다.

대학합격 수준을 어렵게 잡아야 학부모들에게 입시학원 등록을 유도할 수 있을테니까.

또 이런 정보는 아직 확신이 없는 설이한테는 도움보다 오히려 불안감만 키워줄것 같았다.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나을것 같았다.

그리고 완산은 이것 때문에 서로 다투게 되었으니 사실 이 정보 자체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즉, 한마음이 안된다면 그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이럴때 완산은 도인이 아닐까 싶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4년3 월12

 

 

 

제목:  움직이는것은 그대의 마음이다. (仁者心動_ 육조단경 중에서)

두번째 사색

육조혜능이 오조홍인에게서 의발과 법을 전수받고 남방에서 숨어 살다가 어느덧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느낀후 세상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광주의 법성사란 사찰에서 열반경 법회가 열렸는데 혜능은 그 법회에 청중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사찰에 세워진 깃발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휘날리는 것을 보고 스님들 의견이 분분했다.

'저건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아니야! 저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바람이 움직이니 깃발이 움직이니 대중들은 설왕설해를 하며 논쟁을 하던중,

그때 혜능이 홀연히 답한다.

'움직이는것은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

그럼 뭔데?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라고 하자 청중은 놀랐다고 한다.(一衆駭然: 일중해연)

그렇게 5조의 법을 이은 6조가 세상 밖으로 드러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

당시의 대중은 어떻게 혜능이 단지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는 것이다.'

라는 대답에 심상치 않음을 알고 놀랐을까?

무시 할 수도 있는 답이 아닌가?

어떻게 대중들은 혜능의 대답에 탄복할 수 있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혜능의 대답보다 그당시 대중들이 답을 알아보는 안목이 대단하지 않은가?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 이란 답을 아는 인식을 대중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볼수 있다.

 

즉, 혜능이 당시에 깨달음을 지녔다고 하지만  그 깨달음을 아는 대중의 안목 또한 대단한게 아닌가 싶다.

 

쇼펜하우어가 천재는 자신의 경지를 보통일반 사람들도 직관적으로 알수 있게 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한바가 있다.

즉 천재성을 깨달음으로 바꿔 표현한다면 진정한 각자(覺者)의 위대함은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지만 발현 되지 않은 불성을 자각(自覺)하게 해주는데 있다.

그래서 선지식(善知識)은 각자(覺者) 이여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것이 아닐까?

어쩌면 천재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발현시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 보통 사람들 가운데 한두명 특출난 천재성을 발현한 사람, 혹은 깨달은 사람이 나타나면 이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숨겨진 천재성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타인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보거나 깨달음의 경지를 단박에 알수 있다면 그건 이미 본인 내면에 본래 갖추고 있던 천재성이나 불성을 비추어 본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성본래불(自性本來佛)

이렇게 본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거의 완성형이 아닌가?

다만 아직 알이 깨지기 전 상태, 어미 새가 밖에서 한번 쪼아 주는게 부족한 상태.

선지식의 할과 방의 한방이 필요한 상태가 아닐까?

 

석가모니 부처님과 큰스님을 비롯한 모든 선지식은 지금도 우리에게 줄 한방을 준비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단지 우리 스스로가 알 껍질 안에서 좀 더 쪼아 놓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결국 성장과 완성은 어쩌면 한껍질 벗겨내는가에 달려 있는것 아니겠는가?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4년3 월11

 

 

제목:  원죄는 없다.

첫번째 사색.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경속의 하나님은 완성형 신은 아닌것 같다.

아마도 성장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창세기때의 하나님은 분명 신이 되신지 얼마 안된것 같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인 아담과 이브를 자신과 같은 외모로 만들어 냈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에덴동산에 가두고 길렀다.

마치 우리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이 자식을 낳고 기를때는 부모 품안에 두고 키우듯이 하나님도 그랬던것 같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품안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온다.

이 시기에는 부모가 아이 때문에 속을 태운다. 아마도 에덴동산에서도 그런일이 발생한것 같다.

마치 우리가 부모말 안듣고 친구 잘못 사귀어서 꿰임에 빠지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하나님도 아담과 이브를 끝까지 에덴 동산에 가둬두고 기를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우리 인간이 자식을 낳아 길러도 어느정도 장성하면 독립시켜야 되는것 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추방' 되었다고 해석한다.

또한 종교 연구자들은 성경 내용을 곧이 곧대로 이해하거나 해석하지 말고 맥락속에서 상징적으로 살펴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이 부모의 입장에서 아담과 이브를 바라 본다면...

그렇다면 이것은 이건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독립한것이라 봐야 되지 않을까?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자신이 가둬두고 함께 살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된것은 아닐까?

에덴동산에서 추방이 아니라 독립 시키는것이 그당시 신이 인간에 대한 최선의 사랑이 아니였을까?

그렇게 하나님도 신과 동시에 부모로서 성장을 하게 되는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도 난생 처음 부모 역할을 맡은셈인데 어찌 우여곡절이 없으셨을까?

자식이 부모에게서 자립하는것이 죄가 되는것인가?

그러니 원죄는 없다.

결국 성경속의 하나님도 결국 우리 인간처럼 신으로,부모로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건 신 만이 알겠지.

나도 우리 부모님 속 몰랐고, 우리 애들도 내속을 모르듯이. 지금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다 이해 할 날이 올것이란것은 안다.

그때 되면 나도 아이들도 철이 들겠지.

하나님도 그렇지 않을까?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