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에도 감동해야 하다니. 

나는 어디서 살고 있는 것이냐.... 느낌으로 

감동했던 순간이 며칠 전 있었는데 


유태교에서 신성(divinity)은 어떻게 이해되는가. 

이런 주제로 말하던 교수가 


"그것은 activity이지 deed가 아니다. 

달리 말해,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형태로 완수된 활동이 아니다. 

그 활동은 지속된다. 그 활동은 아마도 무한하다." 


대강 아마도 저런 얘기 하던 때. 

activity와 deed의 차이! 그런 것이었군요. (.....) 이것도 감동이긴 했지만 

그보다는, 그걸 말하던 그의 방식. 이 지엽적이고 피상적인 사항 하나가 이것의 정당한 예가 될 수 있겠느냐만 

외압 없이, 자유롭게 탐구한 사람의 방식이었다. 





외압 없이, 자유롭게. 

이게 왜 그리 희귀한 것임. 


아무튼. 대학원 시절이 격하게 그리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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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가 인간이기는 한가? 

바그너는 차라리 병이 아닌가? 



이런 것도 너무 좋음. 

니체 이럴 때가 최고다. 


바그너에 대해 이런 말도 한다. 


"바그너의 음악을 나는 생리학적 근거에서 반대한다.

왜 나의 반대를 미학적 공식으로 위장해야 하나? 

결국 미학은 응용 생리학일 뿐이다. 나의 (생리학적) "사실"은 이것이다. 이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호흡 곤란에 빠진다. 나의 "발"이 분노하고 저항한다. 내 발엔 속도의, 춤의, 행진의 욕구가 있다. 

그러나 독일의 황제라 해도 바그너의 Kaisermarsch에 따라 걷지 못한다. 


나의 위장도 저항하지 않는가? 

나의 심장은? 나의 혈행은? 나의 내장이 슬퍼하지 않는가?" 




오늘은 토요일. 

토요일은 밤이 좋아. (이 노래 아시는 분.....) 

사랑이 저만치 가네. 


그 맹목적이고 낭비되었던 시절. 80년대. 

밤별들이 내려와 창문 틈에 머물고.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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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초딩 고학년이나 중딩 저학년이던 시절 어느 날, 나와 형제들이 놀고 있을 때 

막내 삼촌이 무심코 했던 말이 이것이었다. "우리 -- 나중에 장관해야 하는데......." 


그 "--"는 나였고 

나 포함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던 거 같음. 

그 아이들에게 바로 반응하기, 바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일. 


우리가 살아 보았던 

장관해야 하던 그 시절. ㅎㅎㅎㅎㅎ 

대통령도 될 거였던 그 시절. 

판검사, 미래의 판검사이었던 그 시절. 


그런데 자주 기억한다. 그 후 내가 나이가 아주 많아지고 나서도 

별 볼 일 없이 (장관이라니 언감생심, 정신차려 이친구야) 나이만 계속 먹고 나서도

변함없는 믿음을 주신 삼촌. 


이런 기억, 이런 감사함. 어릴 때 잘 모르다가 세월 가면서 달라지는 것들에 속한다. 

아무튼 지금 현실은 집도 절도 없는데다가.... 집도 절도 없음에 따라붙을 그 모두까지. 

그러하다. 타개한다면 감사는 가장 먼저 삼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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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고 방식은 용인될 수 없다고 당신은 말해. 

그래서, 내가 신경이라도 쓸 거라 생각하는가? 

남들을 위해 사고 방식을 택한다면, 바보 아닌가? 

내 사고 방식의 근원은 나의 성찰이야. 

그게 내 존재와 맞는 이유가 그것이야. 

내 사고 방식을 바꾸는 건 내 힘 바깥에 있어. 

혹은 내 힘 안에 있다 한들, 바꾸지 않을 거야. 

당신이 나무라는 나의 사고 방식, 내가 삶에서 가진 유일한 위안이 그것이야. 

그것 덕분에 감옥에서 내 모든 고통이 견딜만해져. 

내가 바깥 세상에서 실현했던 즐거움의 모두가 그 덕분이었어. 

내 불행의 원인? 내 사고 방식이 아니라 남들의 사고 방식이 내 불행의 원천이었어. 


-- 사드 후작이 그의 아내에게 쓴 편지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운>. 이 책 도착해서 책 열어보니 

앞에 이 편지가 있다. 


내 불행은 

남들의 사고 방식에 있었어! 


이런 거 너무 좋지 않나. 

사춘기적이고 (.... 음 또 뭐....) 아무튼 유치해도 

아무리 반복되어도 

매번 웃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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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9-04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저도 종종 써먹어야 겠습니다..

몰리 2019-09-04 19:21   좋아요 0 | URL
세상의 모든 사춘기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지금 쓰는 페이퍼가 

'아도르노의 니체' 주제에 가깝다. 

주제면 주제지 가까운 건 뭐냐시면..... (그러게, 애매하다. 본격 탐구는 아닌 것이다...) 


"금욕적 이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도덕의 계보>의 제3논문. 이거 여태 나온 논의들은 어떤 게 있나 

(한때 찾아보았지만 무엇도 남은 것, 남긴 것 없이 내다 버렸거나 잊었거나....) 

어제 조금 검색함. 그리고 실감했다. 니체 때문에 (잘못 걸려서, 어쩌다 보니) 

부서진 정신들 적지 않을 것임. 


I saw the best minds of my generation destroyed....... 

니체와, 니체로 무얼 하던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이 문장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 있을 것이다. 


아니 정말 "금욕적 이상"은 대단히 이상하고 

이걸 어떻게 해보려다가 정신이 망가질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한 글이다. 






유명한 시인들의 유명한 시구절은 

가루가 되도록 인용합시다. 그들이 그러듯이 우리도. 인용한다면 그들처럼............. 


그런가 하면 

니체라는 주제를 공유하는 이들이 모여서 얘기할 때. 

왜 아도르노는 니체에게 저항했을까, 의문이었던 사람이 거기 있다면. 

니체 독자로서의 아도르노에게 해명해야할 무엇인가가 있다, 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 있다면 

같이 해명할 수 있을 것인가. 꼭 아도르노 니체, 독일 철학자들 무거운 주제가 아니어도 

무엇의 답을 "같이" 찾아보는 일. 


저게 문명의 척도긴 하겠지만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관심사의 공유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그게 계속 관심사이게 하기. (......) 나나 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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