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유명했던 

북한산 정상에서 식빵 굽는 고양이. 





"북한산 고양이"로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들 중 

핵귀여운 턱시도(가 아니라 작아서 못입는 조끼 정도인가)냥. 뚱냥이. 

고양이 다 이쁘지만 이런 고양이는 특히 더, 당장 부비부비 쪽쪽하고 싶어지지 않나. 





혹시 얘가 커서 쟤가 된 건가. 

싶어지는 사진들이 발견되는데 

같이 놓고 보니, 이 냥이가 저 뚱냥이 어릴 적은 아닌 거 같다. 

그러기엔 얼굴에서 검은색 부분의 모양이 다른 듯. 몸에서 검은 털 부분도. 

얘는 식빵 굽는 고양이와 더 닮아 보인다. 





근데 얘는 아마도 쟤의 좀더 어린 시절인 듯?! 

얼굴 털모양도 그렇고 다리도. 꼬리 감는 모습도. (꼬리야 고양이들 전부 감으려면 저렇게 감겠지만 그래도 뭔가). 

토실토실한 게 아주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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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에 대해선 이 말도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 


너드인게 왜 나빠? 

"너 너드로구나" = "너는 멍청하기보다 똑똑하겠다, 아무 생각없기보다 생각 많겠다, 린제이 로한의 체포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게 세상엔 있다고 믿겠다" ........ 인건 왜야? (*원문에서 따옴표가 잘못 붙은 것 같네요. 나쁜 인용....) 


나는 특히 이 구절이 마음에 든다. 

rather be thoughtful than be vapid. 

이 구절에서 특히 thoughtful 이 단어가 좋다. 





겨울 동안 

매일 두 시간은 걷고 

네 시간은 쓰기에 바치겠다

나머지 시간은, 공부도 해야겠지만 위의 6시간을 실행할 수 있다면 

어떻게 써도 좋다. 어떻게 쓰든, 매일 6시간을 저럴 수 있다면 살아남을 것이다. : 이런 

비장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_-;;;;;; 생각을 했다 오늘 새벽 산책하면서는. 들었던 건 

T. S. 엘리엇과 밥 딜런 전문가라는 크리스토퍼 릭스가 출연해 "엘리엇과 현대 시인의 탄생" 주제로 

얘기했던 npr의 서평 팟캐스트. 


npr이나 뉴욕타임즈 larb 등등 서평 팟캐스트 들을 때, 그러고 싶거나 그래야 하면  

그냥 술술 중요한 (논문 같은 것에 근거로 인용할 법도 한) 얘길 압축적으로 한다는 점에 

감탄하기도 하고, 한국어로 이렇게 말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같은 생각도 항상 하게 되는데 

오늘 들은 이 에피소드에서도 자주 그랬다. 언제나 그렇진 않지만 전화로 청취자와 대화할 때도 

고담준론, 지식인들 대담에서나 보았던 유형 문장들을 마치 누가 읽고 있는 것 같아지는 순간들이 있다. 

"대학을 나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시절 읽은 엘리엇의 세계, 그 visceral and mystical한 세계를 

선명히 기억합니다" 이런 말로 시작하는 청취자. "50년대에 코넬 대학에 재학 중일 때, 단테와 엘리엇을, 단테는 

이탈리아어로도, 읽었는데 엘리엇이 단테를 흠모하고 큰 영향을 받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말로 시작하는 

다른 청취자. 




*이 얘길 쓰려던 건 아니었는데 

이 즈음에서 갑자기 생각나고 쓰고 싶은 건 

영어와 불어가 공유하는 그 수많은 단어들. (불어가 영어에게 전수했다.... 가 정설인가? Norman conquest 시기?) 

어디서 본 숫자로는 (1만 2천? 2만?) 아주 그렇게 대단히 많이 공유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기도 한다. 그런데 어쨌든 불어 공부 조금씩 해보는 내 입장에서, 끝이 없게 느껴지고 신기할 지경. visceral도 똑같은 단어가 (악상이 있긴 하지만) 불어에도 있다. 영어 사용자 중 불어에서 온 어휘 쓰지 말자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한국어에서, 한국어의 일부가 되었지만 안 쓰는 게 좋겠는 외국어나 외래어가 개인적으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겠지만, 이거 일종의 '캠페인' 할 일이 전혀 아니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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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자리 2016-12-30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이 보일 때마다 읽곤 하던 숨은 독자입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성냥불을 켠 것 같은, 짤막하지만 반짝거리는 글들이었어요. 눈앞이 환해진 것 같거나, 어떤 부분을 확대경으로 비추어 주는 듯한 느낌이요 ㅎ

아무튼 갑작스레 잘 읽고 있었다는 인사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ㅎ

몰리 2016-12-30 17:00   좋아요 1 | URL
아이고 너무 좋은 말씀 주셔서
몸둘 바 몰라지면서, 감사합니다.
신나서 오늘 밤 폭포스팅할지도 ;;; 모르겠네요.
물고기자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노문학자 게리 솔 모슨의 

인용, 인용과 문화에 대한 책. 


내가 겨울 가기 전 해야 되는 과제, 20문제 출제에서 

지금까지 12문제 만들고 남은 8문제에 쓸 2-3개의 지문을 찾아 

이것저것 보던 중 이 책도 꺼내 보았다. 막 "nominalism" 혹은 hermeneutics, phenomenology 이런 단어 안 나오고 

전반적으로 수능 지문으로 선택될 법도 한 문단들이 있지 않았나 하면서. (*hermeneutics 이 단어는 사전에 엄연히 있는 단어인데도 지금 써보니 철자 확인하라는 빨간 줄 그어진다. 로버트 해리슨이, 인문학자로 내가 이 단어들을 쓰면 Entitled Opinions 청취자가 1/3로 줄어든다는 둥.... 농담했던 해석학, 현상학). 


그런데 "감사의 말"에서 첫문장이 가슴을 침. 이런 문장이다: 

"그 사람들은 갔지만, 웨인 부스, 빅토 얼리히, 아론 카세넬린보이겐, 스티븐 툴민의 

생각과 말은 여전히 나의 생각과 표현을 형성하고 있다. 글을 쓸 때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웨인 부스, 빅토 얼리히, 아론 카세넬린보이겐, 스티븐 툴민은 모두 죽은 사람들. 

죽은 유명한 사람들. 죽은 백인 (혹은 유태인) 남자 유명한 사람들. 


한국의 대학에, 한국의 동료들을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저런 얘기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을까? 

무슨 소리야, 그래도 열 사람은 돼. 일까. 


그에 이어 "작고한 로렌스 B. 뒤마는 노스웨스턴 대학이 최선의 연구와 강의가 일어나는 곳이 되게 했다" 이 말도, 이런 일 한국에서 일어납니까? 하면서 보게 되고 맘. 


토론문화가 한국에서 어떻게 부재하는가 보려면 

이 점도 생각해야 하지 않나. 토론을, 이기고 지기의 관점에서 보는 이들이 많다는 것. 

그러지 않으려 하는데도 그러고 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바르다, 발리다. ㅋㅋㅋ 이 말들. 

exchange of ideas, 다름 아니라 바로 이게, 그게 일어나기는 하나? 어리둥절했던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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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에 관한 다른 말들은 뭐가 있나 찾아보다가 

위의 말을 발견. "너드 되기, 이것이 친구 만들기의 최선의 방법"을 조금만 밀면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어질 것 같다. 


이 두 문장에 아주 흥미롭고 중요한 진실이 있고 

여러 방향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연대" 이것이 공허하지 않기 위해, 

아니면 어쨌든 즐거운 무엇이기 위해, 절실하며 과한 지적 추구가 반드시 공유되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urban dictionary에서 누가 "지식인 intellectual"을 

"알콜과 섹스 외에도 관심사가 있는 사람 someone who has interests other than alcohol and sex"으로 

정의해 놓은 걸 보고 정확하네 정확해. 충분히 좋은 정의다. 좋아 나도 이렇게 정의하겠어. (진지하게). 


그런데, 어렸을 때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던 것 같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interests" 이것이 공유되지 않으면 

아무 어떤 여하한 무슨 조금도 인간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이 되지 않지 않나. 그리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interests"라는 것이 개인화하게 되어 있고 (그것들이 점점 더 그 사람의 삶, 개성에 의해 변모하고 심화하는 일) 그래서 그것들이 공유될 만한 지점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 나이들수록 '친구만들기' 어려워짐의 이유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보다 더 쓸모없는 포스트 주제 드물 것 같다. 

머리 속에 있을 때 장대했던 주제인데. 극 미미하게 이 정도에서 끝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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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6-12-2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주제에 대해 이 지구 상에서 단 한 사람만 nerd일 수는 설마 없겠지요? 그 주제의 보편성, 비보편성이 친구가 얼마나 있을 수 있느냐의 지표가 되려나요? ㅋ

몰리 2016-12-29 17:27   좋아요 0 | URL
주제만큼 중요한 게 선별적 친화력 (˝elective affinities˝ 이 말, 이렇게 써보게 되다니 좋네요 ^^)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아는 쪽으로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경우 주제를 공유했던 것만큼 둘 사이에 강한 친화력 있었던 것이 (사실 기질은 아주 다른 두 사람인데요) 그들 우정을 설명하지 않나 했어요. 그러니까 <주제 + 친화력> 조합인데 나이가 들수록 둘 사이 관계가 ˝주제>>>>>>>>친화력˝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렇다 해도 친화력의 요소가 없다면, 둘 다 nerd고 둘 다 그 주제에서 너무 멀리 가고 그 주제를 사랑한다 해도, 그래도 그게 또 우정이 성립하지는 않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아도르노나 울프 연구자들 중 가까이서 자주 접하더라도 결코 서로 우정이 생기지는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

그렇다면 실은 ˝친화력>>>>>>>>>주제˝가 되는 것인가.
이것도 변증법적 관계인가. ;;

그런데 정말 어쨌든, 그 사람이 관심 갖는 주제가 그 사람에게 무슨 의미인지
이런 것을 잘 이해하는 사이여야 친구인 건 맞는 것 같아요.

blueyonder 2016-12-29 17:35   좋아요 0 | URL
네 친화력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말씀 ˝그 사람이 관심 갖는 주제가 그 사람에게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는 사이˝가 친구라는 데에 공감합니다.

hnine 2016-12-29 18: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제와 다른 얘기이지만 저는 nerd라는 단어의 의미가 지금도 영 쉽게 떠올려지지가 않아요. 나름대로 상상하길 예전에 TV 만화 톰소여의 모험에서 톰소여의 동생으로 나오는 애, 큰 안경 쓰고 좀 답답하고 샌님같고 이모말을 아주 잘 듣는 (톰소여랑 반대로) 그애를 모델로 생각하곤 했는데, 어제 몰리님 페이퍼 읽다보니 그것도 아닌것 같아서 아직도 잘 모르겠는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ㅠㅠ

2016-12-29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9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9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9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9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새벽 나갈 때 영하 7도. 

오늘은 영하 4도. 영하 10도 정도까지는 

그 쨍하게 차가운 공기 들이마시면서 걷는 매력이 있어서 

춥다고 나가길 망설이지는 않는데 문제는 미끄러지기.  

어제 비탈길에서 세게 미끄러졌고, 오늘 동네 산책인데 아이젠 하고 나가야 되나. 

하다 조심조심 천천히 5천보만 걷기로 하고 나갔다. 그런데 많지 않지만 눈이 쌓여 있고 

눈 위로 한 사람의 발자국. 한 고양이의 발자국. 고양이 발자국 따라서 길 걷다보니 

(내가 걷는 구역 전부에 점점이 놓인 고양이 발자국. 그 발자국 따라가도 고양이는 없지만. 사람 발자국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눈이 왔고 춥고 눈 위를 걸은 사람은 아직 한 사람 뿐이거나 없고 어둡지만 가로등이 켜져 있고 


하여튼 이게 너무 좋아서 오래 걸었다. 

새벽에 조용히 오래 산책할 수 있기. 이거 정말 행복의, 적어도 정신건강의 가능성의 조건. 


Writer's Almanac에서, 12월 27일이 생일이며 미국의 에세이스트라는 사라 보웰의 위의 문장을 인용했다. 

아 얼마나 옳은가. 감탄함. "너드라는 것, 한 주제에 대해 너무 멀리 가고 너무 많이 좋아한다는 것. 이것이 친구를 사귀는 최선의 방법." 


그런데 너드는 "덕후"와 같은가 다른가. 

조금 다르지 않나. 너드에도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 찍힐 수 있지만 

그것을 쉽게 떨칠 수도 있고 (보웰의 말이 그 한 예가 되겠고), 어쨌든 찍힌다 해도 희미하지 않나. 

그런가하면, 덕, 오덕, 덕후... 는 solitary existence가 필히 정의의 일부가 되어야 하지 않나. 아닌가. 

덕알못이면서 저런 생각을 잠시 해보았는데, 아마 아닐 것이긴 하다. 밀덕들의 연합 같은 것이 있다고 

어디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긴 하나, nerd, geek, 이 두 단어가 영어에서 쓰이는 것처럼 쓰이는 

한국어 단어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영어에 비해 한국어가 인간의 정신에 관심없는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냐며, 오늘도 새벽부터 정신의 삶을 껴안으라 한국어에 청해 봄. 사실 위의 저 말에서 "care about (something)" 이것도 순순히 번역되지는 않는 말 아닌가. 거의 "먹다" 수준으로 인간의 기본, 필수 활동을 가리키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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