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심장에서 오지만 그토록 잔혹한 충동.
살려는 욕망이 공격의 욕망이 되는 세계. 로트레아몽의 세계.
바슐라르는 로트레아몽과 니체를 비교하며 이렇게 썼다: "로트레아몽 곁에 두면,
심지어 니체가 둔해진다(느려진다). 심지어 니체가 고요하다. 자신의 독수리, 그리고 뱀과
함께 니체는 가족 모임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니체에게 춤추는 사람의 스텝이 있다면, 로트레아몽에게
호랑이의 도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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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 전기에서 5장, "로트레아몽 혹은 공격성의 에너지" 첫 문단에 나오는 내용.
(그런데 정말 "-- ou --" 구조, 이것 혹시 프랑스 계몽주의의 유산이며, 프랑스 인들은 여전히 이 유산
뜯어먹고 사는 건가. <깡디드 혹은 낙관주의>에서 <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까지...... "울랄라"도 이 "ou"와 관련이 혹시 있나.)
<로트레아몽>에서 인용하는 저 몇 줄의 문장은
문장은 정말 단순하고 내용도 실은 (바슐라르가 저 책을 쓰던 무렵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니체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바로 알아볼 내용임에도, 그럼에도 전혜린이 추종했던 "서구의 지성"
이것의 한 표본이 될 문장들이라 생각한다. 로트레아몽을 이해하고, 니체를 이해하고, 그리고 둘을 같이 생각하기.
이것이 실은 쉬운 일이 아니고, 한국에서는 아직 드물게만 일어나는 일. 아니 그런 일 자체는 드물지 않다 해도, 바슐라르처럼 그걸 꼭 맞는 문장으로 쓰는 건 드물게만 일어나는 일.
16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그만 피우려던 담배, 아직도 피우고 있다.
금연, 금연만 하면 인생에서 더 바랄 게 없어. 흡연자 정규직 vs. 금연자 비정규직이면
(밸런스 좋긴 한데) 후자라면서. 끊어라! : 이러면서도 못 끊고 피우고 있다. 지금 남은 담배까지만 피우고
금연의 기록을 서재에도 하면서, 마침내 금연에 성공하기를 바라보는 중. 흡연, 금연에 관한 많은 애기를 쓰게 될 수도. 정신없이.
그런데 과학철학자면서 로트레아몽 같은 시인을 연구했다는 게 그게 그 자체로
바슐라르가 얼마나 자유 정신이었는지, 얼마나 '교조' 이런 것과 거리 먼 정신이었는지
알게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같은 자유 정신, 대담하고 자유롭게 탐구하는 정신... 은
그를 만나는 모두에게 은총 ;;;; 준다고, 여겨보자. 그 은총 때론 작고 무력해보이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