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의 <올란도> 표지 중
이 책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평원(언덕)의 참나무 이미지를 쓴 것이 있다.
바슐라르가 <올란도>의 이 참나무에 대해, 굉장히 감탄하는 몇 문단을 <대지 그리고 의지의 몽상>에
쓰는데, 그 중 내가 며칠 전 읽은 대목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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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물질이 갖는 이 "확실성"에의 열정적 애착은, 흔들림 없는 나무를 벗삼으면서 자기 존재의 견고함을 발견하는 몽상가가 있을 때, 더 감지하기 쉬운 것이 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한 탁월한 문단에서 내가 해석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깊이 한숨을 쉬고 몸을 던졌다. 그의 동작에 "던졌다"는 말을 쓰게 할 열정이 있었다. 참나무 발치의 땅 위로. 그는 자기 몸 아래에 대지의 등뼈를 느끼는 일을 사랑했다. 참나무의 뿌리가 그에게, 대지의 등뼈였다. 혹은, 이미지는 이미지를 따르므로, 그것은 그가 타고 있는 위대한 말의 등이었다. 아니면 흔들리는 배의 갑판이었다. 단단한 무엇인 한, 그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에게, 그의 떠다니는 심장을 묶어 둘 단단한 무엇이 필요했으므로. . .
단단함의 핵을 둘러싸고 단단함들이 나누는 교감을 이 작가는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 참나무, 말 그리고 배가, 형식은 이질적이며 어떤 시각적 특징 혹은 의식적 의미를 공유하지 않음에도, 통합된다. "단단함"이, 그것이 물질적 상상력에 갖는 제국주의적 힘의 덕분에, 멀리 그리고 넓게 자신의 이미지를 전파(생산, 전파)한다. 참나무가 뿌리를 뻗는 언덕에서, 말이 질주하는 평원까지, 그리고 모든 견고함이 갑판으로 피신하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물질적 이해," 단단함의 이미지에 대한 절대적 이해가, 어떤 논리학자도 정당하다 보지 않을 이 미친 확장을 지지한다. 실상 이것이 근원적 물질 이미지 -- 단단함은 그 중 하나다 -- 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아주 쉽게 다기한 형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 물질은 꿈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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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급히, 번역... 으로 생각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한 문단 바슐라르 읽기.. 로 하는 것이라, 문장들이 거침은 감안해 주십시오;.
특히 <올란도> 인용 네 줄의 번역은, 흑흑. 울프가 번역불가인 쪽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깊이 매혹적이나 누군가에겐 '그래서?'일 바슐라르의 문장들에 대해
'이해한다면 매혹될 겁니다'고 한다면, '이해할 가치가 있다는 것부터 설득해 봐'라고 하지 않을까. : 무려 이런
쓸데없는 걱정도 해보았다.
그런데 정말, 바슐라르도 공격하기 너무 쉬운 저자이긴 하다.
예를 들면, "우리는 날기는 상상하지만 추락은 안다. We imagine rising up but we know falling"
이런 말에 이어, 추락의 이미지, 추락의 상상에 대한 무수한 언급들이 이어지는 식. '추락은 상상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하기 너무 좋게 말이다.
위의 <올란도> 인용문.
울프가 그 탁월한 상상력으로 '논리학자라면 아무도 지지하지 않을 미친 확장'을 해보이는 대목.
"mad extension that no logician could find legitimate." : 울프의 이 대목을 이런 말로 해설하고
그 자신 그런 문장들 ("논리학자라면 부적합 판정할 미친 확장") 대담하게 썼던 그에게 (아니 그리고
그게 또 보면 볼수록 심오한 논리성, 심오한 정합성 그런 게 있죠....)
불토의 건배를 청합. ;;;;; *장볼 것이 있어서 나갔다가 맥주를 사온 것이죠.
미친 포스팅을 할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