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중딩, 고딩 시절 대표 음악은 무엇이냐 

생각해 봄. 


중딩 시절은 아마 무엇보다 Sea of Heartbreak (Poco). 

그 촌구석에서 그 옛날이었음에도, (사실 지금 생각하면 놀랍게도!) 영어회화 방송을 매일 했고 

그 방송의 시그널 뮤직이 저것이었다. 


당연히 이 노래와 함께 그 중학교 건물, 복도와 교실, 운동장. 

그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ㅜㅜ 막 웃음소리, 기타 잡음까지도 들리는 것 같음. 


고딩 시절의 대표 음악은

저학년일 땐 "새벽기차." 고학년일 땐 최성수의 남남. 

그런데 이 노래들이 다, 지금은 알아보이지만 그때는 몰랐던 

들끓던 '리비도' 이것의 노래들 아닌가 ; 


그렇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 

같은 시절을 살았다면 바로, 앗! 그럴 수도! 이거나 

무슨 소리 껄껄껄... ; 이거나겠지만 그렇기 않다면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요... ㅇ일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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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n't aging weird?

It's like, what the fuck is going on


이러던 Greenberg에서 벤 스틸러 대사는 진정 명대사긴 하다. 

40대도 훌쩍 넘긴 사람들이 대학 시절 노래 들으면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저런 것이지 않을까. 


이 노랜 (영화도) 실제 나온 건 대학 시절 전이지만 

그 시절로 남은 노래. 어리둥절하던 그 시절........... 초록이던 그 여름. 그런 거 생각나게 하는 노래다. 


이 노래 같이 듣던 사촌 여동생(허나 거의 동갑)이 있는데 

이십대 말 어느 날 마지막으로 보고 나서 십몇년 못보다가 재작년에 만났다. 

염색한 머리. 염색 아래로 전부 하얗던 머리. '언니, 나야' : 이게 이십년이면 어떻게 바뀌는지 

(목소리, 말투에 실리는 경험의 양, 경험의 종류에서;) 알던 때. 머리 빨리 세는 거 엄마 쪽 유전인가 보다. 

(나도 완전히 하얗다, 염색하지 않을 수 없음...... 내년부터 하지 않으려 해, 라면서 10년째...) 


이모 집에서, 한라산 담배 같이 몰래 피우던 그 시절... ; 

언니, 한라산은 초콜렛 맛이 나. 그러던 시절... 그게 정말 손에 잡힐 것 같지 말입니다. ; 



*한라산이 요즘 나오는진 모르겠으나 

음 .... 담배 아직은 피우는 중이나 곧, 끊었더니 이렇군요 저렇군요 ; 힘듭니다 ㅜㅜ 죽음을 보았어여; 

포스팅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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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9시간 20분 분량. 

1-2부 합쳐 근 20시간에 이르는 분량으로 "현대 철학사" 다루는 강의가 유투브에 있다. 

어쩌다보니 오늘 아침 이걸 들어보게 되었음. 


음. 나쁘지 않다. 혹은, 좋다. ; 

강의하는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는데 (시작할 때 자기 이름을 말하긴 한다. 

그런데 아주 유명한 사람 아니겠는게, 못 알아듣겠는 이름. 모리스 카훈? Morris Calhoun? 내겐 이렇게 들려오던 이름).


사실 오늘 아침 들으면서 벙찌게 되던 건, "무엇이 존재하는가?" 포함해서 

바로 어제 오늘, 서재에 글도 쓰고 새삼 생각해보던 질문들이 그대로 나와서. 

역시 사람은 누구나, 어떤 자석인 것이다. 

무엇을 끌어당기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누구나 무엇인가 언제나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무언가가, 매일 당겨 혹은 끌려 오는 것이다. : 이런 생각 진지하게 할 뻔. 


그런데 진지하게 그런 생각 할 법도 한 게 

우연의 일치라기엔 좀 섬뜩할 정도의 일도 가끔 일어나지 않나? 

사실 아주 최근에 내게 그런 일 있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무서울 정도 일들의 연속이던 히루. 

그것들이 무엇이었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과장인가 봄. ㅋㅋㅋㅋㅋ (한숨...;;;) 


어쨌든 이걸 

오후에도, 멸치 똥따면서 들었다. 

양푼 하나 분량을 똥따려면 1시간은 걸린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형이상학 substance metaphysics', 그것의 현대적 수용과 거부.. 에 대한 얘길 들으면서 

정말 바슐라르 (기승전..... 이죠;), 철학사의 기인이긴 기인이구나는 생각을 했다. 


*맥주도 마시고 있겠다, 막 연달아 쓸 수 있으니 

아무 대목에서나 포스트를 끝내는 이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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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의 <올란도> 표지 중 

이 책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평원(언덕)의 참나무 이미지를 쓴 것이 있다. 

바슐라르가 <올란도>의 이 참나무에 대해, 굉장히 감탄하는 몇 문단을 <대지 그리고 의지의 몽상>에 

쓰는데, 그 중 내가 며칠 전 읽은 대목은 이런 것이다. 



단단한 물질이 갖는 이 "확실성"에의 열정적 애착은, 흔들림 없는 나무를 벗삼으면서 자기 존재의 견고함을 발견하는 몽상가가 있을 때, 더 감지하기 쉬운 것이 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한 탁월한 문단에서 내가 해석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깊이 한숨을 쉬고 몸을 던졌다. 그의 동작에 "던졌다"는 말을 쓰게 할 열정이 있었다. 참나무 발치의 땅 위로. 그는 자기 몸 아래에 대지의 등뼈를 느끼는 일을 사랑했다. 참나무의 뿌리가 그에게, 대지의 등뼈였다. 혹은, 이미지는 이미지를 따르므로, 그것은 그가 타고 있는 위대한 말의 등이었다. 아니면 흔들리는 배의 갑판이었다. 단단한 무엇인 한, 그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에게, 그의 떠다니는 심장을 묶어 둘 단단한 무엇이 필요했으므로. . . 


단단함의 핵을 둘러싸고 단단함들이 나누는 교감을 이 작가는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 참나무, 말 그리고 배가, 형식은 이질적이며 어떤 시각적 특징 혹은 의식적 의미를 공유하지 않음에도, 통합된다. "단단함"이, 그것이 물질적 상상력에 갖는 제국주의적 힘의 덕분에, 멀리 그리고 넓게 자신의 이미지를 전파(생산, 전파)한다. 참나무가 뿌리를 뻗는 언덕에서, 말이 질주하는 평원까지, 그리고 모든 견고함이 갑판으로 피신하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물질적 이해," 단단함의 이미지에 대한 절대적 이해가, 어떤 논리학자도 정당하다 보지 않을 이 미친 확장을 지지한다. 실상 이것이 근원적 물질 이미지 -- 단단함은 그 중 하나다 -- 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아주 쉽게 다기한 형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 물질은 꿈의 핵심이다. 



(*막 급히, 번역... 으로 생각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한 문단 바슐라르 읽기.. 로 하는 것이라, 문장들이 거침은 감안해 주십시오;. 

특히 <올란도> 인용 네 줄의 번역은, 흑흑. 울프가 번역불가인 쪽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깊이 매혹적이나 누군가에겐 '그래서?'일 바슐라르의 문장들에 대해 

'이해한다면 매혹될 겁니다'고 한다면, '이해할 가치가 있다는 것부터 설득해 봐'라고 하지 않을까. : 무려 이런 

쓸데없는 걱정도 해보았다. 


그런데 정말, 바슐라르도 공격하기 너무 쉬운 저자이긴 하다. 

예를 들면, "우리는 날기는 상상하지만 추락은 안다. We imagine rising up but we know falling" 

이런 말에 이어, 추락의 이미지, 추락의 상상에 대한 무수한 언급들이 이어지는 식. '추락은 상상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하기 너무 좋게 말이다. 


위의 <올란도> 인용문.  

울프가 그 탁월한 상상력으로 '논리학자라면 아무도 지지하지 않을 미친 확장'을 해보이는 대목. 

"mad extension that no logician could find legitimate." : 울프의 이 대목을 이런 말로 해설하고 

그 자신 그런 문장들 ("논리학자라면 부적합 판정할 미친 확장") 대담하게 썼던 그에게 (아니 그리고 

그게 또 보면 볼수록 심오한 논리성, 심오한 정합성 그런 게 있죠....) 


불토의 건배를 청합. ;;;;; *장볼 것이 있어서 나갔다가 맥주를 사온 것이죠. 

미친 포스팅을 할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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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와 꿈>에 

"나는 꿈 The Dream of Flight" 이런 제목 장도 있는데 

여기서 오늘 읽은 매혹적인 문장. 


"내가 이 장에서 제시한 문서들을 읽은 모랄리스트라면, 

어떤 점에서 "고지"는 도덕을 할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이를테면 물리적으로 도덕이라고 인정할 것이다. 

고지는 상징 이상이다. 고지를 찾는 이라면 누구든, 자신의 상상력 전부와 함께 고지를 상상하는 누구든, 고지가 물질적으로, 역동적으로, 그리고 생생하게, 도덕적임을 알아본다." 


이 부분 전체가 매혹적이었지만 특히 이 구절: 

height is not only moralizing, but is in itself physically moral, so to speak. 


영어에서 moral과 moralize에 해당할 한국어 어휘가 마땅찮긴 하다. 

사실 이 말 그리고 이 말들과 연관되는 말들은, 영어와 불어 사이의 차이도 작지 않을 듯. 특히 '모랄리스트' 이것, 완강히 여전히 프랑스에 제한되는 전통일 듯하고 '모랄'이 불어에서는 영어의 ethic에 해당하는 뜻은 물론 그 이상을 말하는 말일 듯하다. (불어에 ethique 이 단어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공기와 꿈> 영어판엔 ethic, ethics로 옮겨진 구절이 많은데 혹시나 해서 불어판을 검색해 보니 ethique 쪽 어휘는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음. 전부 moral, morale, moraliste 등으로. 



'높이는 (높은 산은) 

도덕한다. 그리고 그 자신, 도덕이다.' 

이거 얼마나 심오하냐고, 이런 말은 얼마나 소중하냐고 

한숨 쉬며 감탄하다 깨달음. 이러는 바슐라르 내가 할 수 있는 한 아무리 잘 인용하고 설명하며 쓴들 

'설득력 없음' 혹은 '근거 없음' 한 마디로 무시당할 가능성이 한 ..... 89%. 나만 끌렸을 것이다. 나만 끌린다. 



*오늘치 쓰기는 초과로 하긴 했으나 

위와 같은 생각에 시달리며... 아무리 (더 이상 잘할 수 없게,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바슐라르 논의하는 것과 비교하더라도. 바슐라르를 세밀하게 읽고 하는 논의는 사실 거의 없긴 한데, 아마 위에 적은 이유가 논의 없음의 한 이유일 것이다. 그의 이런 매혹적인 문장들을 직접 그의 책으로 읽더라도 대부분은 '그래서?'일 듯. 깊이 감탄하고 끌린 사람들이, 아무리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써도.... 거의 모두가 냉담할 것이다. 그에게서 직접 인용은 최소로 하고, 오히려 남들의 이야기(더 친숙하게 철학적 담론인)로 채운다면, "오 재밌네요!" 할 것 같다. ㅋㅋㅋ <어린왕자>적 상황... 그래도, 그게 또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으니....) 하여튼 아무리 잘,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잘 써보았자 실패할 것 같다....... 생각 속에서 쓰고 고침. 그럼 뭐 어때. 그래도 좋아. 바슐라르 읽고 매혹됐던 그 자체가 보상이라고 진심 생각한 적 아주 많았음을 기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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