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의 그를 기억하자.




1878년 이 책을 출간하던 니체가 누구인가 기억할 가치가 있다. 

그가 이후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이 될 것인가 그 자신도 다른 누구도 몰랐다. 

그는 33세의 문헌학 교수였고 건강과 학자로서의 이력이 둘 다 심각히 악화하는 중이었다. 

그가 보여주었던 청년의 패기, 청년의 전도유망은 이제 그의 동료들에게 슬프게도 희미해진 기억일 뿐이었다. 

(.......) 


그에게 명성이랄 것도 없었다. 진 것으로 판명되는 중인 도박, 그것도 명성이라면 그걸 제외하고는. 

그는 철학자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는 철학자로 수련하지 않았고 전통적인 철학 논문과 비슷해 보일  

무엇도 그의 이름으로 출판되지 않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케임브리지 판에 리처드 샤크트가 쓴 해제. 

이 책 주제로 페이퍼 하나 쓰고 싶어져서 열어 봄. 그리고 독보적 ㅎㅎㅎㅎㅎ 1권 추가. 


33세의 문헌학 교수였다가 나중 니체가 될 것이었던 그 사람. 

이런 거..... 가슴을 움직이는 무엇 있지 않나. 그렇게 젊은 시절이 

내게도 있었나 하게 되는 


망할 

늙은 

시절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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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and Reveries of Will: An Essay on the Imagination of Matter (Bachelard Translation Series) (Bachelard Translations Series) (Hardcover)
Bachelard Gaston / Dallas Inst Humanities & Culture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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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가능성들의 자서전.




필립 리프의 모럴리스트 프로이트 주제 책은 

마초 맨스플레인 경향이라서 


처음엔 읽기 힘들다가 

금세 적응이 되기도 했다. 

숨막히고 읽기 힘들 때, 아 바슐라르를 읽어야 해. 모두가 바슐라르처럼 써야 해. 

이러고 있었는데 


강성 마초 필립 리프 읽다가 바슐라르를 펴니 

......... 오그라듬 느낌이 없지 않은 것이. 

너무 다정하다. 




문학으로 통과해야 한다. 

그림을 "쓰고" 조각을 "써야" 한다. 

손에 펜을 들고 -- 정직해질 용기가 우리에게 있다면 -- 우리는 청춘의 힘 전부를 우리 내면에서 다시 발견한다. 

우리는 우리가 처음 느꼈던 그대로 그 힘들을, 그 순진했던 자신감과 함께 다시 느낀다. 그 빠르고, 넓고, 확실했던 즐거움을. "문학 상상력"이 있다면 모든 예술이 우리 것이다. 탁월한 형용사 하나를 선택하라. 자, 그것이 실체를 가지고 온다! 번득이는 스타일을 구사하라. 자 그러면 인간의 성격이 형성된다. 말하라! 쓰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과거를 발명하라! 


기억하라. 손에 펜을 들고, "잘 쓰겠다"는 고심과 함께, 실제 사건들의 자서전을 초월하여 

잃어버린 가능성들의 자서전을 다시 발견하라. 




대강 (개발괴발, 괴발개발?) 번역해 보았다. 

너무 다정하고 다정은 (다정도) 병이지만 

최초의 오그라듬을 견딘다면, 정맥을 흐르는 피처럼..... 이미지와 기억들의 종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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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뭔가 좀 미국 "운동권" 말투. 

수전 손택이 젊었던 시절 미국 좌파들이 

흔히 이런 책들을 읽었으며 이렇게 말했을 거 같다. 

마르크스도 중요하게 참조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에 대한 적대. 그건 무의식 이 용어가 갖는 철학적인 혹은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만 기인한 게 아니다. 그 용어가 하게 될 비판적 역할이 있었다. 무의식 안에서 짜여지며 실현되는 그러나 누구도 어찌하지 못할 운명.

듀이가 시작했고 현재 주류인 미국의 개량주의적 사회 심리학. 이들이 득세하기 위해 무의식은 추방되어야 했다. 37.

무의식에 의식이 아닌 것만 담기는 게 아니다. 무의식엔 잊혀진 우리의 기원도 담긴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그러나 망각이 파괴인 건 아니다. 그 반대로, 어떤 사건이나 동기를 망각함은 그 사건이나 동기를 보존하고 심지어 그들이 갖는 의미를 증폭하는 일이다. 무의식에 저장된 과거의 영역들이 텅 비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영역들은 현재의 짐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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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열 살 쯤 되던 해에 

이미 시골에 살고 있지만 

진짜 그보다 더 시골일 수 없을 오지, 더더더더더 시골에 걸어서 갔던 여름. 

시골에서 시골로 걸어서 감. 당시 "시내" 버스라는 게 없었다. 버스 아닌 자차? 그런 게 있을 리가.  

할머니 손 잡고 걸어서 감. 


그 걸어 가던 길이 

영원히 기억에 남은 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건물 있고 차도 지나가는 대로를 걷다가 어느 순간 고요한 산길을 걷기 시작함. 그리고 산길은 굽이굽이. 

끝이 없을 거 같던 느낌. 




끝이 났고 도착했던 곳은 

먼 친척집이었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서서히 오르막길이던) 

걷고 나니 네 개의 집이 있었고 아마 그 네 집 전부가 먼 친척이었다. 

내겐 먼 친척. 할머니에겐 가까운 친척. 


지금 고향에 가서 보면 

진입 장벽은 좀 여전히 있긴 하지만 지척이다. 그 고요한 산길 부분. 이게 진입 장벽. 

펜션 그런 게 생길 곳이 아니다보니. 당시 내겐 너무 멀었던 그 곳. 


할머니들은 할머니들과. 

애들은 애들과. 소리지르고 놀았던 그 해 여름. 

처음 보는 애들과도 소리지르고 놀았던 여름. 네 집 있는 그 산골에 내또래 애들이 한 여섯이었던 거 같다. 

고구마 캐고 설거지하면서 (설거지를 집 앞 냇가에서 했다. 정말 절묘하게 바로 집앞에 흐르던 

작은 시내...) 설거지하고 나면 또 뭐가 재미있을까 그랬던 여름. 


시골에서 시골을 가도 이런 게 추억인데 

도시 아이들에겐 오죽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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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9-15 0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영상 마지막 부분에 맥주, 크~ (저는 즐기지 않으면서도 그냥 탄성이 나오던데요)
동영상 보신 게 먼저이신가요, 페이퍼 글 쓰신게 먼저인가요.
어릴때 좋은 추억을 갖고 계시네요. 추억이 그냥 추억이 아니더라고요. 그게 곧 자산이고 생각의 원천이 되고 기반이 되고, 그런 것 같아요.

몰리 2019-09-15 07:51   좋아요 0 | URL
부동산 채널에 나오는 시골집들 중에 아궁이로 불때는 황토방, 찜질방 만든 집들이 많더라고요. 어찌나 한 번 가서 불때고 싶어지는지. 뜨거운 방바닥에 지지는 맛도 보고 싶지만, 아궁이 앞에 웅크리고 불 피우는 맛. 시골일상 kimi님 채널은 음악이나 편집이나 너무 깔끔해서 감탄하면서 보고 있어요. 보다가 생각났던 여름.

정말 특히 어린 시절의 하루.
하루가 일생을 결정하기도 하는 어린 시절의 하루.
어린 모두에게 3년만, 걱정없이 탐험만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생각하게 됩니다.
 


















독보적에서 읽기 미션은 

반드시 포스팅을 해야 하는 건가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오늘 아침엔 메뉴 무언가를 탭했을 뿐인데 

미션 클리어. 


그래도 

최근 산 책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해서 여러 번 북플 열어 본다. 위의 책은 

표지 이미지로는 무슨 책인지 알 수 없어서 탭해 보니 위와 같은 책이었다. 


존 무어. 

미국의 자연을 예찬했던 자연보호운동가. 환경사상가. 그런 분 아닌가 함. 




에머슨과 소로우를 중심으로 

미국 초절주의가 주제인 강의도 있다. 

"에머슨과 소로우가 없었다면, 미국은 지금의 미국이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개인 존중, 미국의 정신에서 자연이 갖는 위치. 이 모두가 그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교수가 1강에서 저런 말을 한다. 

당연히 "미국은 지금의 미국이지 않았을 것이다"에는 자긍심을 담아서. 


여기 정말 엄청나게 중요한 주제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성, 민족성. 이런 말 쉽게 입에 담는 이는 철학을 해선 안된다.... 취지로 비트겐슈타인이 

등장하는 그의 삶의 일화가 있기도 하지만 


미국에는 '미국의 영혼'이라 부를 것이 분명 있고 

그게, 그들이 가졌던 위대한 사상가, 작가들에 의해 형성된 것임도 분명하다는 그것. 


심지어 에머슨과 소로우를 읽기 전에도, 읽기 전인 걸 떠나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기 전에도 

.... 분명 누군가가 있었다.... 이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생계 해결이라는 직접적 고통 없이 

미국에서 생활 시작하는 이들은 비슷하게 경험하지 않을까 한다. 그들의 삶을 어디선가 규정하는 누군가들이 있음. 


내 경우엔 그랬고 

에머슨과 소로우 조금씩 알면서, 퍼즐 조각 찾는 느낌이기도 했다. 


이런 생각이 그 자체로 또 뭐 사대주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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