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프리의 나폴레옹 전기. 영어 번역 먼저 읽고 

이것과 비교하면서 불어 원서로 1권부터 다시 시작했다. 

내용을 조금이라도 미리 알고 읽으면 당연히 이해가 조금이라도 더 잘 된다. 외국어 독해할 때, 내용을 미리 알고 읽지 말고 아예 모르고 읽어야 그게 공부다 쪽인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 반대. 완전 반대. 잘 모르는 외국어를 독해할 때, 그 내용을 미리 잘 알면 알수록 공부가 된다 생각한다. 내용을 이미 잘 알수록 단어들을 (처음 보는 단어라도) 더 명확히 이해하고 (뉘앙스, 용법 뭐 등등) 기억하고 문장 구조가 더 선명해지고 등등. 


아무튼. 발자크 제한과 함께 하는 것이 이것, 불어 공부. 한없이 더디어도 상관없음. 뭐 어차피. 쎄라비. 케세라세라. 발자크도 영어 번역 다 읽고 나면 불어 원서로 다시 시작. 


랑프리의 책을 원서로 읽는다면 놓칠 수 없겠지만 번역으로 읽으면 아마 거의 확실히 놓칠 것. 원서에 존재하지만 영어 번역에서는 상실되는 것 (lost in translation). 그런 것 중에 "도덕 (morale)" 이것이 있다. 


도덕적 패배. 도덕적 승리. 도덕적 충격. 도덕적 효과. 

저런 구절들이 반복적으로 쓰인다. 사건과 인물들을 평가하는 중요한 (거의 궁극적인, 최종의) 기준. 


프랑스어의 "모랄"이 영어의 "모럴"이 아니고, 그걸 한국어에서는 "도덕"으로 옮길 수 없고 다른 마땅한 역어가 필요하고. 이 점을 세밀하고 깊이있게 파고 드는 논의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역어가 지금 없다면 나올 때까지 "도덕"으로. 프랑스어의 "morale"은 그게 "도덕"임에도 도덕을 넘어 인간의 심리적 반응 영역 전체를 보게 하는 단어 같다. 인간이 심리적 존재라면 그 존재를 움직이고, 살게 하고 죽게 하는 그것이 "모랄." 


바슐라르의 책들에서 "모랄"은 아주 자주 쓰이지만 "윤리 (영어로 ethic, ethical, 불어로도 철자 거의 같은)"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아마 단 한 번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어쩌다 우연히 그렇게 된 사소한 사실이 아니고 최소 논문 하나를 쓸 만한 주제일 것이다. 프랑스 정신, 그것의 중요한 일면을 보게 하는 논문이 나올지 모른다. 




랑프리는 자신이 역사가로서 나폴레옹 전기를 쓰고 있음을 반복해서 말한다. 

역사가가 역사를 "모랄"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 역알못 (역사가 알못;;;) 입장에서 그냥 짐작에 불과하지만 거침없이 말해본다면, 위대한 역사가는 다, 예외없이, 그랬을 거 같다. 위대한 역사가는 반드시 모랄리스트이기도 했을 거 같다. 그러나 역사 연구가 전문화하면서 도덕/모랄은 역사학에서 추방되는데........... 


랑프리의 경우엔, 일관되게 모랄리스트로서 역사를 이해하면서, "희생자 비난하기(blaming the victim)" 이것이 역사의 기록 안에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만든다. 입장 불허. 추방. 그의 책이 "엘리트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책이고 "대중을 밀어내는 힘"을 가진 책이라는 서평은 이 면모를 지목하는 평이기도 하다는 생각 든다. "희생자 비난하기"가 거의 만인에게 어느 정도는 정신의 습관인 (포악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것인데, 그 습관이 낯설어지게 한다. 


...................... 아무튼 참으로 뜻밖에도 이곳저곳에 감탄할 면모들을 감추고 있는 프랑스 저자들, 프랑스의 역사. 문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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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이레스. 

처음 알았던 외국 도시 이름 중 하나다. 6-7세. 

오래 배 타다 돌아오신 아버지에게 들음. 몇 도시가 더 있었는데 분명히 기억나는 건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린이 귀에 특별하게 들린 이름. 이국적이고 따뜻하게 부는 바람에 몽환적으로 잠이 오는 천국일 거 같고 ... 기타 등등 상상을 자극한 이름. 


월드컵에서 한국 경기에 아무 관심 없는 이유가 뭐냐. 

원래 주로 관심 없는 편이긴 했지만 올해 월드컵에서 한국 경기에 관심 없는 건, 관심 없는 걸 넘어 적대적인 거 같은데. 월드컵 하지 말지. 그러다가 이란에서 이란 축구팀의 선전을 원하지 않는다던 뉴스 (이란팀 탈락에 환호한 20대 남자가 총살되었다는) 보면서, 이란 사람들의 그 마음 완전히 이해함. 혹시 잘하면 현정부가 좋아할 거 아닌가. 그럴 일은 없어야 한다. 




현정부는 

그래 이것이 한국의, 한국인의 경험이었지. 모두가 알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은.  

이런 생각 하게 만든다. 내겐 그렇다. 



에... 만일 당신에게도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책들이 쓰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 

어떤 걸작들이 나올 수 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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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 건 이것과 표지가 다르지만, 23년 달력과 다이어리 위해 11월에 주문했던 책. 

크리스틴 스몰우드의 데뷔작 <정신의 삶>. 스몰우드는 컬럼비아 대학 영문학 박사다. 책은 자전 (극히 자전) 소설. 소설 주인공은 박사 학위 후 비정규직으로 근근히 살고 있다. 동거하는 남자 친구가 있는데 사랑하지도 증오하지도 귀찮지도, 그렇다고 집 안의 가구같지도 않은 사이. 둘을 묶는 육체와 정신의 분명한 연결이 있지만 그것의 정체는... 


발자크가 끝나면... 제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3-40 페이지는 읽은 거 같다. 이 도입부에, 웃긴 장면, 웃긴 문장들이 연달아 나온다. 이제 이런 것도 주제화되는구나. 이런 문장을 이제 누가 기어코 써내는구나. 정신의 삶, 그것의 정체다, 이것이. (...) 감탄하면서 저런 생각 하기도 했다. 뱃살이 찌고 있고 그밖의 여러 이유로 집 안에 있는 상하로 긴 거울이 부담스러워진 그녀는 거울을 좌우로 길게, 벽의 상부에, 건다. 이제 거울은 그녀의 얼굴만 (목까지?) 비춘다. 거울 위치가 바뀐 후 귀가한 남자 친구는 그 점을 건조하게 지적한다. 이런 게 웃겼던 대목. 


소설을 평가할 때 "---를 위해, --가 출현해야 했던 것이다" 유형 문장들. --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 필요했다. 스몰우드의 이 소설도 그런 말들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 이전에 본 적 없는 유형의 인물, 문장, 감정, 사고가 연속 등장하는 책. 걸작, 고전으로 남을 거 같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독자들이 오래 기억할 거 같은 책. 







범죄문학 강의에서 길게 논의되던 이 소설. 

이 소설도 갖고는 있고 앞의 1 페이지 읽음. 침대에 같이 누워 있을 때 남편이 아내의 머리, 머리카락을 쓰다듬. 아내의 생각은, 그의 손가락은 나의 두개골/해골의 윤곽을 확인하려는 거 같다.......... 이런 내용이 그 1페이지에 있다. 


이때도 잠깐 감탄했었다. 이제 이런 것도 주제화되는구나, 이런 문장이 마침내 쓰여졌다. 

그래놓고 그 1페이지로 끝. (시간이 없음. 발자크 제한....) 


질리언 플린의 아버지는 영화과 교수였고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히치콕 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히치콕 영화를 사랑했다. 사촌들과 모여 놀면 사촌들은 왕비, 공주가 되고 싶다고 할 때 그녀는 마녀, 살인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잠시 생각함. 아버지가 영화과 교수이고 집에서 영화를, 히치콕 영화를 매일같이 보고 또 볼 수 있으며 아버지에게 히치콕 영화에 대해 들을 수 있다는 건, 그러니까 그런 환경은, 어떻게 결정적으로 정신을 형성하는가. 


SF 고전 강의에서 교수는, 어슐러 르귄의 부모가 둘 다 저명한 인류학자였다는 점에 대해 말하고 인류학자로 그녀의 부모가 남긴 작업이 그녀의 소설에서 어떻게 계승되나에 대해서 상세히 말하기도 한다. 인류학자로 사유하기. 르귄은 말을 배우듯 그걸 배웠다. 


말을 배우듯 그걸 배운다는 것. 그걸 태어난 집에서 할 수 있다면 아주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때,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이 있는 것. ㅎㅎㅎㅎㅎ 그렇. 책이 있고 책 말고도 여러 경로들이 있고. 그것의 일부가 될 무엇을 내가 (너와 내가) 하게 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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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21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트우드 아부지는 곤충 학자!^^
줌파 라히리 아부지는 대학 도서관 사서!^^


몰리 2022-12-21 13:41   좋아요 1 | URL
부모가 노동 (지식 말고 육체 노동) 계급인 작가는 누가 있나요. ㅎㅎㅎㅎㅎ 누구 한 두 명, 그런 작가의 대표격으로 알고 있었던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남. 발자크는 지금 찾아보니 부친이 장인 계급의 후손(이자 그 자신 장인 계급). 디드로는 부친이 cutlery, 의료용 포함해서 칼, 등등 철물 제조업. 아 그래도 지식인의 자식 중에서는 또 버지니아 울프, 아버지라는 거인을 쓰러뜨린 거인!

scott 2022-12-21 14:08   좋아요 1 | URL
카버
디킨즈
체호프
까뮈
마르케스
움베르토 에코
아니 에르노

샐리 루니
요렇게 노동계급
줄리안 반즈 아부지 교사
이언 매큐언 아부지는
군인
인데도
인터뷰 할때면 자신들 부모 세대가 노동계급 이라고
 




눈독 들이게 되는 박스 세트로는 르귄 여사 책들도 있다. 

발자크가 끝나야만...... 제한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 제한 있어도 아니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냥 지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많은 책들 안 사고 눈독만 들임.  


파리의 한 미국인이 1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 당시 vlog를 유튜브에 올렸는데 이런 말로 시작한다. "나는 미국에서 왔고 월드컵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어. 나는 축구를(싸커를) 중계로도 본 적이 없다. 여기서는 모두가 열광하니까 나도 축구를 보게 되었어." 


18년의 결승전은 7월 15일이었다. 

"어제는 7월 14일, 바스티유 데이였어. 바스티유 데이는 프랑스의 인디펜던스 데이야. (..........)" 


댓글에 "나는 프랑스인인데 한 마디 할게. 

바스티유 데이는 인디펜던스 데이가 아니야. 내셔널 데이야. 우리는 독립을 한 적이 없어. 프랑스는 시작부터 자유국이었어." 


미국인. 대꾸 안함. 

다른 댓글엔 불어로 답글하면서 저 댓글엔 침묵함. 

............... 이게 뭐라고 많이 웃겼다.  


왜 미국은 남자 축구에, 월드컵에 무관심한가. 이 주제로 검색했다가 "천조국이 남자 축구를 본격적으로 하면 세계 정복 시간 문제" 내용 글을 봤었다. 미국과 프랑스 결승전이면 스트레스 덜 받을 거 같다. 무관심할 수 있을 거 같다. 모로코 4강 진출 이후 과몰입 상태가 되더니 지금 결승전 앞두고 스트레스 (.....) 까지 받고 있는 중. 누가 이기든 우울할 거 같다. 그러니까, 누가 지든 우울할 것인. 자고 일어나서 결과 확인하는 게 두렵기까지 한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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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2-12-20 0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 축구가 인기가 많지 않은 건 티비 중계 관련 광고때문이 아닐까 해요. 45분 동안이나 광고를 못 하다니! 풋볼이나 야구 같은 건 수시로 광고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티비 중계를 많이 하지 않는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몰리 2022-12-20 08:10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이게 결정적인 이유일 거 같아요. 제가 읽은 글에선, 뭐라더라, 축구 자체가 미국적 관념 스포츠가 아니다? 그런 얘기 있었는데, 그보다는 광고의 문제! 천조국이 하면 세계 정복 시간문제, 정말 그렇다면 ˝아트사커˝라는 프랑스 축구와 다른 방식 축구로 그럴 수 있나 한 번 보여주징... ㅎㅎㅎㅎ 심정이기도 해요. 월드컵 우승한다면 미국에서 환영 퍼레이드는 어디서 어떻게 하지? 워싱턴 DC에서 하나. 이런 쓸데 없는 생각도.
 



발자크. <카트린 드 메디치에 대하여>. 1901년 영어판. 

이 번역으로 읽었는데, 다시 읽으면 생각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일단 지금 생각엔 이 소설은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삼류 소설"적. 엉성하고 습작같고 원시적이다. 원시적. 좋은 말로 하면 장르로서 소설의 "원형." 


그런데 이상하게도, 역사 소설을 향한 취향을 단번에 계발시킨다. 역사 소설이야말로 진정 펄프 아닌가. 역사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역사를 읽거나 아니면 문학을 읽어라. 나는 이런 쪽이었다. 그랬다가 이 소설 읽고 나서, 아! 역사 소설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아무리 호평을 들어도 관심 안 가던 힐러리 맨틀 여사 책들 검색하고 사기 시작함. 


책을 쓰게 하는 책의 사례로 발자크 작품들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 소설을 향한 취향을 단번에 계발시키기도 하는 그의 소설을 어릴 때 읽은 독자. 그가 세월이 흐른 후 쓰게 될 역사 소설의 걸작. 이런 종류 본격적이고 심대한 차원에서 영향의 수수관계도 있겠지만, 미묘하고 미세한 차원에서 일어나는 자극과 격려의 차원도. 




SF 고전 강의한 교수는 SF에 미국 작가들이 한 기여에 진심으로 자부심 느끼는 듯했다. 추리, 범죄문학 강의한 교수는 "미국 느와르"를 특별히 사랑하는 듯했다. 정신의 삶. 사유라는 공동의 작업. 지성의 삶을 위한 표준. 이 교수들은 바로 저것들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저것들을 의미있게 하는 사람들. 




그래서 어쩌라고? ㅎㅎㅎㅎㅎㅎ 

그러니까. ;; 그러니까 말입니다. 

암튼 미국은 지성의 독립도 일찌감치 한 나라인 것에 사실 때때로 감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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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실린 것들 중 이미 단행본으로 갖고 있는 게 네 편은 되는 거 같은데 

그래도 갖고 싶은 박스 세트. 고개 숙인 남녀 이미지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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